실상염불(實相念佛), 참선(參禪), 삼매(三昧) I

행해상응(行解相應)

우리는 불법에 모두 귀의했지마는, 아시는 바와 같이 같은 불법(佛法)에도 우리 나라에는 지금 18종파나 있습니다.

또한 그런 종파 내에서도 역시 똑같은 것이 아니라 자기의 개성에 따라서, 자기가 어떻게 진리를 연구했는가에 따라서 각기 다릅니다.

불교가 전래된 이후 오랜 세월을 거쳐오는 동안 지나온 과정을 회고해 보면 참 복잡했습니다.

어떻게, 뭘 스승으로 할 것인가 ?

행법(行法)에 있어서 큰스님들을 만나 뵈면 만나 뵌 분마다 같은 말씀을 안합니다.

물론 똑같은 말씀도 있겠지마는 다른 말씀을 하시는 분이 대부분입니다.

또는 상대방을 대체로는 비방하는 말씀도 합니다.

옛날 큰스님들에게서나 현대도 마찬가지지만 이러한 데서, 참다운 법, 참다운 성자가 말한 정통법(正統法)을 선택한다 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따라서, 부처님 법문에 팔정도(八正道), 칠각지(七覺支)라는 법문이 있습니다만 여러분들께서는 앞으로 부처님의 기본 교리는 외우셔야 합니다.

가사, 삼보(三寶)라든가, 사제법문(四諦法門), 십이인연법(十二因緣法), 육바라밀(六波羅蜜), 팔정도(八正道) 또는 칠각지(七覺支), 이런 기본적인 법문은 별로 많지도 않으므로 꼭 외우셔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중요한 지침이 되는 법문이므로 이런 정도는 외워야 합니다.

이런 법문은 우리 인간성을 탐구하는데 참으로 중요한 지침입니다.

그런데, 칠각지 법문에서 맨 처음에 택법(擇法)이라, 자기에게 알맞는 행법(行法)을 가리는 것입니다.

사리불(舍利弗 Saniputra) 존자가 목건련(目건連 Maudgdlyayana) 존자한테 한번 놀러 갔습니다.
목건련 역시 부처님의 위대한 십대제자(十大弟子) 가운데서 신통제일(神通第一) 아닙니까, 그때 마침 목건련의 제자 두 분이 목건련 앞에 와서 호소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도저히 공부가 안됩니다. 벌써 출가한지 오래 되었는데도 도저히 공부가 익어지지 않습니다” 하고 호소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두 제자 중 한 사람은 출가하기 전에 성냥간(대장간)에서 풀무질하는 일을 했었고, 또 한 사람은 세탁업을 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목건련이 그들의 근기(根機)를 잘 몰라서 곧, 그 사람의 개성을 잘 몰라서, 풀무질했던 사람에게 부정관을 시키고 세탁업을 했던 사람에게는 수식관을 시켰던 것입니다.

부정관(不淨觀)이란 ‘내 몸도 부정(不淨)하고 천지우주가 모두가 다 더럽고 부정스럽다’ 하는 관법(觀法)으로 우리 욕심을 제거하는 법입니다.

뭐라해도 우리가 욕망을 제거한다는 문제가 가장 어렵지 않습니까?

수행법도 여러 가지로 많이 있지만, 맨 처음에 어려운 수행법을 시킨다면 업장이 많은 사람은 잘 안 나아갑니다.

따라서 업장을 녹이기 위해서, 탐심이 많은 사람에 대해서는 ‘내 몸은 피나 고름이나 오줌이나 똥이나 그런 부정한 것으로 충만해 있고 또 죽어지면 썩어져서 냄새가 고약하고 문드러터져 부정한 것이다’ 하는 부정관법(不淨觀法)으로 탐욕심을 제거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산란심(散亂心)이 많은 사람에게는 수식관(數息觀)이라, 숨을 내쉬고 들이쉬는 호흡을 헤아리는 관법으로 산란한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것입니다.

목건련은 도(道)는 약간 좀 통해서 어렵풋이는 안다 하더라도 별로 지혜가 없어놔서 잘 분간을 못했겠지요.

그러나 사리불은 목건련의 도반(道伴)이지마는 지혜가 수승해서 그냥 척 알았단 말입니다.

‘아, 잘못 됐구나! 풀무질은 어느 정도 간격을 두고서 마치 호흡 모양으로 하는 것이니까, 풀무질을 했던 사람에게는 마땅히 수식관을 시켜야하는 것이고, 또 빨래 세탁을 하는 직업을 가졌던 사람은 더러운 것을 자꾸만 빠는 것이니까 그 사람에게는 부정관을 시켜야할텐데 ……’

그래서, 사리불이 목건련에게 말했습니다.

“아, 그대가 잘못되었네. 마땅히 풀무질하다 온 사람에게는 수식관을 시켜야 하는 것이고, 또 빨래를 하는 직업이던 사람에게는 부정관을 시켜야 될 것인데 잘못 되었네”

그래서 목건련이 그와 같이 그들의 적성에 맞춰서 행법(行法)을 제시 하니까 이윽고 얼마 안 가서 그냥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보더라도 자기 적성에 맞는 행법, 또는 부처님의 정법(正法)에 맞는 행법이라는 것이 지극히 중요합니다.

참선(參禪)한다는 것은 실은, 별로 많은 말씀을 필요로 않는 것입니다.

저번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참선은 원래 불립문자(不立文字)라, 문자를 거기에 안 넣고, 직지인심(直指人心)이라, 오직 사람 마음을 딱 집어서 마음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래 말도 많이 않고, 말 대신에 그냥 버럭 고함을 지르기도 하고 또는 방(棒)으로 후려치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옛날 식은 그렇게 했다 하더라도 현대같이 이렇게 복잡한 때는 역시,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택법(擇法)이라, 여러 가지 복잡한 가운데서 법(法)을 골라야 한다. 이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도 별로 많은 말씀을 하고 싶지도 않고 또 잘 모릅니다만, 여러 가지 복잡한 가운데서 부처님 정법을 가려내기 위해서 부득이 제가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우리 사부대중이 참고로 해야 할 것은 행해상응(行解相應)이라, 실천하는 행(行)과 풀이하는 해(解)가 같이 상응(相應)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어떤 분은 행(行)과 해(解)가 같이 아울러서 행(行)도 많이 하고 여러가지 교리도 많이 아는 분들이 계시지만 더러는 치우친 분도 있습니다.

가사, 책도 많이 보고 연구를 많이 했지만 별로 닦음은 없는 그런 분들은 체험이 부족해서 역시 바르게 못 느낍니다.

또 불교라는 것이 마음 닦아 가는 공부라서, 마음 닦지 않으면 교리를 많이 알아도 분간을 못합니다.
불교 말로 통달보리심(通達菩提心)이라, 마음이 탁 틔여서 마음이 개운하면 바로 볼 수가 있지마는, 통달보리심에 이르지 못하면, 경(經)을 보아도 이것 보면 이것이 옳고, 저것 보면 저것도 옳고, 분간을 할 수 없게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 불교공부는 교리 풀이와 행이 같이 아울러야 하는 것입니다.

또는, 행(行)만 들이 많이 하고 닦기는 많이 했지마는, 교리는 별로 모르는 경우에, 물론 우리가 닦아서 그냥 부처님 지위에 뛰어 올라가면 모르지만 부처님 지위에 올라가려면은 쉽지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약간 닦았다 하더라도 부처님의 심수오묘(深邃奧妙)한 교리를 어느 정도 연구 안하면 바른 길을 모르고 바른 닦음이 되기가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 교리를 바로 알고 바로 닦기 위해서는 행해상응(行解相應)이라, 닦아서 가는 행(行)과 교리를 풀이하는 해(解)가 나란히 상대해 가야만이 우리가 바로 나아갈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제가 아는 분 가운데 위대한 분의 하나입니다만 지금 나이가 구십도 넘었고 옛날에 불교대학도 나온 그런 분이 계십니다.

그런데, 그분한테 몇 번 가서 말씀을 듣고 가만히 보니까, 그분은 자기 스스로는 염주를 돌리며 관음주력을 하면서, 참선 말만 나오면 그때는 화두를 들어야 한다고 역설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모순적인 말씀을 하시는 분이 한두 분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런 것을 볼 수가 있고 또 가사, 염불을 한다 하더라도 ‘염불은 어떻게 해야 한다’ 하고 불교를 믿는 분들의 말씀을 들어보면 참 구구합니다.

또 우리 한국은 염불종(念佛宗)이라 하는 한 종파만 있는데, 일본에는 같은 염불을 하는 데도 염불종(念佛宗)이 세 파나 있고 또 그 세 파 모두가 다 각각, 한 종파가 우리 한국불교 전체보다도 더 많습니다.

그 가운데 일본의 진종(眞宗)은 절 수가 만 개나 넘고 불교대학도 몇 개가 되는 종파로 그 진종(眞宗) 사람들은 염불을 하는데도 그냥 부처님 이름만 계속 부릅니다.

부처님 상호를 생각하는 것을 배격합니다.

일본 사람들은 민족성이 굉장히 배타적인 면이 강하여서인지 같은 염불을 하는 데도 꼭 이름만 불러야 하며 이름 부르는 이외는 그냥 배격하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시종(時宗)이라, 염불을 하더라도 때를 골라서 하여야 한다는 종파이고 또 한 가지는 융통염불종(融通念佛宗)이라, 염불을 하더라도 계행(戒行) 또는 참선, 모두를 원융무애하게 하라는 종파입니다.

이와 같이 같은 염불종에도 세 파나 있습니다.

또 아시는 바와 같이 일련종(日連宗)과 같은 종파는 일련(日蓮 1222∼1282) 대사를 부처님 다음 가는 분으로 보지 않습니까,

그 종파도 굉장히 수가 많습니다.

창가학회(創價學會)나 그런 종파는 한 종파에서 공명당이라는 정당도 내고 있습니다.

그 정도로 세력이 강하고 오백만 신도가 넘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종파에서도 자기들이 하는 나무묘법연화경(南無妙法蓮華經) 즉 일본 말로 ‘나무묘우호우렌게교우’하는 법화경(法華經) 이름을 외는 것 이외는 다 나쁘다고 비방합니다.

자기들 하는것만이 성불하는 길이라고 주장합니다.

같은 불교도 이렇게 하는데 서로 다른 종교야 오죽이나 다른 종교를 비판하고 비방하겠습니까, 따라서 좀 어렵더라도 불교를 믿는 분들은 교리를 어느 정도 아셔야 합니다.

그래야 바른 길을 분간한다는 말씀입니다.

저도 역시 청화라는 한 개인의 개성에 제한됩니다.

절대가 아닌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린 것도 저는 공평하려고 애씁니다만 또 역시 저라는 하나의 개인에 제한됩니다.

따라서, 여러분들께서는 참고로 하시고 여러분께서 스스로 고르셔야 합니다.

저는 다만, 부처님이나 부처님 뒤의 정통 조사(祖師)스님들의 말씀을 소개할 뿐입니다.

같은 법문도 역시 정평이 있는 도인이 아니라 그렁저렁한 도인, 도인인가 아닌가 모르는 사람들의 말은 별로 참고할 필요가 없습니다.

부처님 말씀, 부처님 뒤의 정통 조사 스님의 말씀을 우리가 참고로 해야만이 혼동을 느끼지 않습니다.

부처님과 부처님 뒤에 나오신 달마(達磨) 대사라든가 또는 용수(龍樹 Nagar-juna B. C. 2∼3 世紀)보살, 마명(馬鳴 Asvaghosa B.C. 2∼3 世紀)보살 또는 육조혜능(六祖慧能 638∼713)스님, 한국으로 말하면 원효(元曉 617∼686)대사, 의상(義湘 625∼702)대사, 보조(普照)국사, 태고(太古普愚 1301∼1382)국사, 무학(無學 自超 1327∼1405)대사, 진묵(震默 1562∼1633)스님, 서산(西山休靜 1520 ∼1604, 사명당(四溟堂 惟政 1544∼1610), 이런 분들 말씀은 다 옳다고 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분들 말씀만 주로 해서 이제 소개를 드리는 것입니다.

淸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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