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일원론(不二一元論) IV

몇 생을 헤맨다하더라도 거기에 돌아가고야 마는 것이 우리 중생인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기왕이면 빨리 그 자기고향자리, 생명의 근원자리로 가는 것이 모든 존재의 의무란 말입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 길을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자기 고향으로 가는 길, 자기 생명으로 가는 길은 사실은 제일 쉬운 길입니다. 우주의 도리 생긴대로 가는 길이란 말입니다. 봄이 오면 여름이 멀지 않고 여름이 지나면 가을 그렇게 오듯이 우리 공부하는 것도 역시 우리가 본래 부처인지라 부처가 되고야만다는 것입니다. 안되고 비틴다고 베기는 것이 아닙니다.

기세경(器世經)을 보면 겁진소시(劫盡燒時) 일체중생개당선정(一切衆生皆當禪定)이라. 이런 좀 복잡한 말이 있습니다. 제가 쉽게 풀이합니다마는 겁진소시는 이 세계를 구성한 세계, 우주가 엔트로피(entropy)같은 이른바 불협화(不協和)에너지(energy)가 쌓여서 즉 사용못할 나쁜 에너지가 차근차근 쌓이면 우주가 정말 파괴될 때가 온단 말입니다. 그때가 이른바 겁진소시입니다. 모두가 산화가 되어가지고서 산소화 되어서 나중에 우주가 불덩어리가 되어서 다 타버린단 말입니다. 겁이 다해 우주가 다 타버리는 그때가 되면 중생은 어떻게 될 것인가. 기독교 종말론(終末論)은 그냥 나쁜 사람은 다 태운 채로 다 파멸되고 한다는 그런 종말론이 있습니다만 부처님법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모든 중생들은 다 천상에 올라가서 편안하게 만들어놓고 이른바 무생물만 존재하는 우주가 다 타버린단 말입니다.

그래서 그런 때가서는 우주가 텅텅 비는 공겁(空劫)이 옵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현대물리학에서 말하는 천문설(天文說)하고도 다 들어맞는 것이고 현대물리학이 모르는 저 너머까지도 다 말씀해 있습니다. 그 영겁회귀(永劫回歸)사상에서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주가 형체가 이루어지고 또 중생이 거기에 살고 또 파괴되고 다시 공(空)이 되고 말입니다.

성겁(成劫) 주겁(住劫) 괴겁(壞劫) 공겁(空劫), 이 사겁(四劫)이 영원히 되풀이되는 것을 영겁회귀(永劫回歸)라 합니다. 근대의 대천재(大天才)인 독일의 니체라는 철학자가 있지 않습니까. 생철학(生哲學)인 니체는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그는 초인공부를 많이 한 사람인데 그 사람은 우연히 그렇게 잘 아는 천재가 아니라 굉장히 공부를 많이 했단 말입니다. 그는 알프스 산 중턱에 가서 아주 수년을 통해서 참선을 했습니다. 그래서 알프스 중턱에서 참선하는 가운데 영겁회귀를 알아냈단 말입니다.

그보다 2천5백년 이상 되는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이미 다 밝힌 것인데 현대의 천재적인 사람이 애쓰고 명상해서 비로소 영겁회귀를 알아냈습니다. 우주란 것은 모두가 다 형체가 이루어지고 중생이 살고 파괴되고 또 공이 되고 다시 공(空) 가운데서 또 이루어지고 하는, 영겁회귀사상을 명상을 거듭해서 알아냈으니 다시 말하면 참선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불교인 같이 대승법으로 참선을 했던가 명상을 했던가는 알 수가 없습니다마는 천재니까 또 동양사상을 공부했으니까 아마 우리 불교인들이 참선하는 본을 따라서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우리 인간이란 것이, 인간 존재가 본래로 바로 불성이기 때문에 재주있고 업장아 가벼운 분들은 좋은 계기를 잘 만나서 그와 같이 아주 깊은 명상을 하게 된단 말입니다.

명상을 하다보면 근원적인 진리가 바로 불법인지라 불법에 도달하고 말겠지요. 따라서 그런 지혜로 해서 이른바 천안통을 얻을 수 있는 지혜가 발동했으니까 지금까지도 위대한 철인으로해서 우리가 존경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사람은 결국 알프스 산에서 명상하다가 영겁회귀를 알아냈습니다. 그 영겁회귀 사상에서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 중생계를 벗어난 우리 겁이 다 허물어질 때는 겁진소시 일체중생개당선정이라. 모든 중생이 다 선정에 들어간단 말입니다.

우리 중생은 선정에 못 들고서 동요하고 분별시비하고 괴로움을 느끼지만 우주가 파괴될때는 모든 중생이 다 선정에 들어간단 말입니다. 우리 중생은 선정에 못 들고서 동요하고 분별시비하고 괴로움을 느끼지만 우주가 파괴될 때는 모든 중생이 다 깊은 선정에 든단 말입니다. 그래서 공겁(空劫)된다하더라도 우리 생명 자체는 죽음이 없습니다. 그 모양 없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우리 마음이란 말입니다. 우리 마음이 무엇인가. 우리 마음이 부처입니다. 우리 마음이 불성이란 말입니다. 불교를 공부할 때 중요한 요점이 무엇인가 하면 사실은 우주에는 다른 것이 없고 오직 있는 것은, 참말로 있는 것은 진여불성 뿐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가장 확실하게 모두가 다 진여불성 뿐이다" 이 말씀을 6년 고행을 통해서 깊은 삼매를 통해서 증명을 하셨고 그 뒤에도 무수한 성자가 또 다같이 체험을 통해서 증명을 하셨습니다. 팔만사천법문도 모두가 다 그런 내용입니다. 참말로 있는 것은 결국은 진여불성 뿐입니다.

진여불성(眞如佛性)은 바로 그 자리가 마음자리인 것이고 그 자리가 바로 부처자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화엄경(華嚴經)에 있는 바와 같이 심불급중생시삼무차별(心佛及衆生是三無差別)이라. 우리 마음이나, 부처나, 중생이나 다 모두가 차별이 있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우리 중생이 국한(局限)시키고 분할(分割)시켜서 그때그때 나누어 보는 것이지 참말로 우리가 본다고 생각할 때는 모두가 다 하나의 진리(眞理)입니다. 중생도 부처도, 마음도 부처고 다 부처뿐이란 말입니다. 심불급중생 시삼무차별이라. 모두가 다 오직 마음 일원론(一元論)이란 말입니다.

철학사상에서도 유물론(唯物論)과 유심론(唯心論)과 그런 논쟁이 얼마나 심했습니까? 그런 것은 중생들이 제대로 깊은 명상(暝想)에 못 들어가서 그럽니다. 명상에 든다고 생각할 때는 다른 것은 다 없고서 오직 마음만 존재합니다. 오직 진리만 존재합니다. 오직 일원(一元)이란 말입니다. 인도철학 하면 인도철학이 얼마나 복잡하고 ‘우파니샤드 사베다’등 복잡하지 않습니까마는 그렇더라도 따지고 보면 그것이 모두가 오직 마음 일원론(一元論)이란 말입니다. 불이일원론(不二一元論)이라. 둘이 아니고 셋이 아니고 모두가 다 하나의 진리뿐이란 말입니다. 하나의 진리뿐이란 것은 마음뿐이란 것과 똑같습니다. 그마음에는 무량(無量)의 공덕이 있어놔서, 우리마음이 무량의 공덕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부처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중생이 어두워서 느끼지 못하는 것이지 시방세계는 부처님의 공덕, 부처님의 무량광명이 충만(充滿)해 있습니다. 그러기에 경(經)에서 광명변조시방법계(光明 照十方法界)라 하셨습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인고 하면 이 시방세계, 우주에는 부처님의 광명이 충만해 있다는 말입니다. 충만해 있는 것을 우리가 번뇌(煩惱)에 가려서 어두워서 미처 못 본단 말입니다. 보지를 못하다가 마음이 맑아지면 광명을 실지로 체험한단 말입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이른바 광촉(光觸)이란 말로 표현합니다. 광촉은 빛 광(光)자 접촉할 촉(觸)자, 영원적인 우주에 언제나 광명이 간격없이 존재합니다. 이런 생명의 광명에 접촉한단 말입니다.

생명의 광명에 접촉하면 어떨 것인가. 그때는 환희용약(歡喜勇躍)하는 것입니다. 환희용약이라. 우리가 불경을 보면, 부처님 법문을 듣고 생전에 부처님같은 위대한 어른을 뵈었으니, 그런 분이 여실하게 법문을 하거니, 우리 마음이 얼마나 기쁘고 개발되겠습니까. 따라서 부처님 말씀 따라서 환희용약한단 말입니다. 그런 것은 부처님을 통해서 우리 생명의 영원한 광명을 스스로 느끼고 스스로 접촉(接觸)한단 말입니다.

여러분도 참선도 열심히 하시고 염불도 열심히 하시면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더러는 꿈속에서달도 가끔 영원적인 광명이 훤히 빛날 것입니다 다행히도 현대물리학이 우주는 사실은 광명뿐이다, 방사선 뿐이다라고 증명한단 말입니다. 전자(電子)나 양성자(陽性子)나 또는 중성자(中性子)나 그런 것은 하나의 파동(波動)입니다. 그것이 파동역학(波動力學)이다. 이 소립자(素粒子)는 그냥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광명의 하나의 존재양상(存在樣相)이란 말입니다. 현대물리학이 우주란 것은 광명뿐이다는 것을 증명해 낸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광명세계에 삽니다. 비단 부처님뿐만 아니라 우리 몸뚱이가 이대로 사실은 광명덩어리란 말입니다.

물질로 보는 것은 아까 말씀마따나 속물이니까 번뇌에 가려서 물질로만 보이는 것이지 물질은 오온개공이라. 본래 허망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참말로 있는 것은 광명덩어리란 말입니다. 앞으로도 참선하실 때 다른 망상은 말으십시오. 말으시고 "아 우주는 그야말로 부처님의 일체공덕을 갖춘 상락아정(常樂我淨)의 영원불멸의 생명자체구나" 하는 이런 마음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끓릴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석가모니의 삼명육통을 다한 그런 신통묘지, 예수의 모든 기적자리를 우리 마음이 원래 갖추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 마음입니다. 모양도 없고 이름도 없고 그러면서도 우주와 하나가 된 자리, 그 자리는 바로 공덕장(功德藏)이라. 한도 끝도 없는 공덕이 원만히 갖추어져있단 말입니다. 그것이 우리 마음이고 불심입니다.

이런 자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염불을 합니다. 나무아미타불이 무엇입니까. 자성미타 유심정토(自性彌陀 唯心淨土)라. 우리 자성, 우리 인간성의 본래 자리, 우주의 생명 근본자리가 바로 아미타불입니다. 중생이 그 자리를 못 보니까 부처님은 저 밖에 있다고 하는 것이지 사실은 염불이란 것은 본래 부처가 본래 부처의 이름을 부르면서 부처가 되어가는 것이란 말입니다 어느 공부나 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스러운 것은 어느 것이고 가장 가치로운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부처가 되는 길입니다. 본래 부처니까 부처가 안될 수 가 없단 말입니다. 부처가 안되면 어떨 것인가. 부처가 안되면 고생고생 많이 하고 또 서로 아귀다툼하고 그 속물로 해서 우리의 소중한 인생을 끝내고 만단 말입니다.

불자님들께서 인연따라서 화두공안(話頭公安)을 하든 또는 염불을 하든 부처님은 바로 우리생명의 주인공인 동시에 우주의 주인공이란 말입니다. 바로 우리 생명입니다.

우주란 것은 하나의 생명입니다. 달의 생명과 또는 해의 생명과 내 생명은 분할(分割)된 것이 아닙니다. 모두다 딱 연결되었단 말입니다. 오직 하나입니다. 하나의 생명자리를 바로 바탕을 보지 못하니까 우리가 분할해서 나누어서 보는 것입니다. 제일 쉽고 제일 행복스럽고, 우리 공동체를 구성하는데도 제일 기본이 되는 것이 부처님 공부입니다. 아까 말씀드린바와 같이 광명변조, 그 부처님의 자비광명이 우주에 두루해 있다는 말입니다. 그 자리를 놓치지 말으시고 부지런히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淸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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