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것을 되찾자

불교에서는 捨妄歸眞이라고 하고 유가에서는 溫故而知新이라고 하니 망상을 버리고 참에 이르면 온갖 法이 이러히 한결같으며 또 옛것을 본받아서 새것을 발전시킨다는 말이다.

내가 1966년도 동남아 불교국가와 인도 성지순례를 마친 후 두 번째의 해외여행인 1973년에 미국 방문 시의 일이다. 프로비덴스(Providence)주립대학의 金鐘善 박사를 만났었다. 그는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느 학생이 많은 돈을 학교 정원에 쌓아두고 불을 지르는 것을 보고 물었다.

“왜 돈에 불을 지르는가?”

학생이 대답했다.

“이 돈 때문에 세계 제1차대전, 제2차대전이 일어났고 또 제3차대전이 일어날 지도 모릅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 돈 때문에 아귀다툼을 하는 것이니 다 불태워 버리고 때묻지 않은 원시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 어떤 학생은 추운 겨울에 남방샤쓰와 반바지에 샌달을 신고 책을 들고 발발 떨며 학교에 간다. 그 이유를 물은 즉 “우리나라가 아무리 강대국이라고 해도 언제 어떻게 될 줄 모르니 미리 이런 고생을 익혀야 하지 않겠습니까”했단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이 시대가 홍금만능의 사대인 줄은 알지 마는 인간의 진정한 幸業이 결코 물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물질만능의 미국에서 돈을 불사른 학생이 있고, 자기 나라의 경제를 걱정하고 자신이 검소한 생활을 하면서 남에게 폐를 끼쳐주지 않는 것이 민주국가 학생들의 마음가짐이 아닌가. 이런 사람에게는 법이 따로 필요없고 그는 완전한 만주주의 사상에 입각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사람들이 민주주의가 자유와 평화라는 구호를 외치면서도 과연 자신은 남에게 지탄을 받지 않을 수 있는가 궁금하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상륙했던 프리마우스를 가본 적이 있다.

그이들이 타고 나온 배는 불과 300톤 미만의 배로써 아직도 잘 보관하고 있고, 그가 처음으로 밟은 돌은 3척 미만의 사격형 납작돌로써 길이 보존하기 위하여 돌집을 지어 또한 잘 보관하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이들이 유럽을 떠날 때 싣고 온 모든 가축들은 죽은 뒤에 等像을 만들어서 神主처럼 봉안하고 있다.

미국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양식건물을 지을 때는 응접실에 반드시 모닥불을 피우는 화덕을 만들어 놓는다. 과학만능으로 발전된 그 나라이지만 전통과 고전을 지키는 것은 이렇듯이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떤가?

고유의 옛 전통과 풍습을 얼마만큼 지키며 그 얼을 본받아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가?

최근 홍수처럼 밀려드는 西歐思潮와 風物에 우리의 혼마저 물들어 버린 것 같지 않은가. 세계 각국 사람들이 한국에 몰려와 한국문화를 배우려 할 때 과연 우리는 현시점에서 한국의 문화가 이렇다고 내 놓을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우리는 반만년 역사와 신라ㆍ고려시대의 찬란한 정신문화를 이어받아야 한다. 그리고 한국문화의 우수성과 특수성을 오늘날에 되살려 확고한 민족정신을 일깨우고 나아가서는 세계만방에 한국민족의 긍지와 얼을 소개하고 또 널리 선양해야 한다.

이것은 서양의 문물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 전통문화의 바탕 위에 서구의 문화를 받아들여 더욱 빛날 수 있도록 한국화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이야 말로 우리가 바라는 진정한 現代化며 民主化며 愛國愛族이 아닐 수 없다.

겨레여!

우리에게는 반만년의 역사가 있다. 조상이 남긴 빛나는 문화와 전통을 아끼고 사랑하자. 그리고 이 몸이 식을 때까지 새롭게 창조라고 기꺼이 노래부르자.

남의 것 좋다해도 봄날에 霜雪이요
삼복더위 싫다해도 쬐고나면 섭섭느니
가을철 추수할 때 웃음꽃이 피어나네

겨울을 생각하며 미리 준비하는 슬기
내일을 미룰세라 누가 대신하여 주리
오뉴월 눈보라를 꿈에선들 잊을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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