離心中愛 是名沙門 不戀世俗 是名出家
行者羅網 狗被象皮 道人戀懷 蝟入鼠宮
마음에서 애욕을 떠남이 사문이라 이름 함이요, 세속을 그리워하지 않음이 출가라 이른다.
수행인이 몸에 비단을 두름은 마치 개가 코끼리 가죽을 쓴 것과 같고, 수도인이 그리움을 품는 것은 마치 고슴도치가 쥐구멍에 들어간 격이다.
사문이라 함은 모든 선법을 부지런히 닦고 모든 악법을 쉰다[勤修善法 息諸惡法]는 뜻으로, 수행자도 역시 마음을 잘 조절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에는 “애욕에 빠진 사람은 마치 횃불을 들고 바람을 거슬러 가는 경우 반드시 손을 데이는 것 같아서 꼭 재앙을 겪는다”하여 애욕의 위험함을 표현하고 있다. 또한 수행인의 의복에 대한 말씀도 지적하고 있다.
예전에는 누에가 친 ‘비단’으로 만든 가사들은 큰 스님들만 걸쳤는데, 요즈음은 모두 물질이 풍부해서인지 아무나 거리낌 없이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본다. 자기 복이 그것을 수용하지 못한다 하면서 마다하시던 옛 노스님들의 겸허한 마음자세가 올곧은 수행인의 아름다운 자세가 아닐까 생각한다. 소수의 젊은 스님들 층에서는 ‘무슨 메이커다’ 하며 신발이나 속 티셔츠 등을 뽐낼 때가 있는데, 시대에 관계없이 수행자는 항상 검소하고 절약하는 자세로 임해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 혹 시주물로 받았다 하더라도 뽐낼 것까지는 없다. 겸허히 떨어질 때까지 잘 입고 신어서, 시주의 은혜에 감사하면 되는 것이다.
더욱 속 깊은 이는 법우에게 양보하는 공덕을 짓는 풍경도 심심치 않게 본다. 특히 선방에서는 한철 시작의 결제일 무렵을 전후하여 안 입는 옷들을 잘 손질하여 지대방에 놓아두어 옷 없는 수행자에게 회향하는 아름다운 광경이 많다. 또한 마음이 나태해지거나 방탕심이 일어날 때는 더욱 뜻을 굳건히 하여 스스로 발분하여 참회와 공덕을 쌓아 나와 남을 구제하겠다는 원력과 정진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관점을 원효대사는『기신론소』에서 해태심의 장애를 딛고 일어설 네 가지 요소를 말하고 있다. 그 첫째는 참회(懺悔), 둘째는 권청(勸請), 셋째는 수희(隨喜), 넷째는 회향(回向) 이다. 첫째의 참회는 세세생생 나고 죽으면서 되풀이 되는 악업을 뉘우치는 것이며, 둘째 권청이라 함은 가르침을 청하는 일로서 부처님이 항상 상주하셔서 중생들을 제도하시도록 원하는 일이며, 셋째 수희란 따라 즐거워하는 것으로 남의 선행을 기뻐하는 일이며, 넷째의 회향이란 끊임없이 노력해 깨달음을 향해 나아갈 것을 간절히 설하고 있다.
雖有才智 居邑家者 諸佛是人 生悲憂心
設無道行 住山室者 衆聖是人 生歡喜心
비록 재주가 있다 해도 세간에 머무는 이는 부처님이 그를 가엾게 여기시고,
설사 도행은 없더라도 산중에 사는 이는 성현들이 그를 기쁘게 여긴다.
이 말씀은, 도시와 마을은 아무래도 환락을 가깝게 접근 할 수 있고, 따라서 재주가 있는 이라도 타락할 수 있다는 염려의 말이며, 자연과 함께 하는 산의 환경은 설사 재주 없는 이라도 선근을 쌓아나갈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이러한 말씀도 언제나 항상 되는 것이 아니다. 즉 중국불교의 6세기 초에도 ‘삼계교’의 신행선사는 산중불교를 접고 도시불교를 지향했던 인물 중 한 사람으로서 역사적으로 실존했었다. 그러한 사유는 바로 그 시대의 사회 문화적인 풍토에 기인 한 것으로써, 이 포교방법은 곧 바로 원광법사에게 유래됐다. 나아가 ‘민중에게 불교를 알기 쉽게 전하겠다’는 원력을 세운 원효는 불교를 모르는 무지한 이들에게 ‘나무’를 염하게 한 불교사적인 역사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보다 보편 타당한 이야기로서 육근의 감각작용을 피해서 자연과 접하는 것이 아무래도 성현들이 환희하며 바란다는 것을 초보적인 수행자들에게 설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과 벗하여 그 신심이 한층 굳건하게 다져지는 것이 바깥경계에 흔들리기 쉬운 초보자적인 이들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하며, 자기 자신을 냉철히 꿰뚫어 볼 수 있는 산중의 수행이 그것을 뒷받침 한다는 것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법공 스님/동국대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