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심을 일으키는 것은 대승의 관문을 통과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승을 표방하는 종파라면 어떤 수행문에서든지 반드시 보리심을 일으켜야 하며 염불수행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원효는 <무량수경종요>에서 정토에 왕생하는 정인(正因)은 보리심이라 하고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경>에서 말씀하신 정인이란 보리심(菩提心)을 말한다. 무상보리심을 일으킨다는 것은 세간의 부(富)와 즐거움(樂) 및 이승(二乘)의 열반을 돌아보지 않고 한결 같이 삼신보리(三身菩提)를 원하는 것이니 이를 무상보리의 마음이라 부른다. 총괄적으로 표시하면 비록 그러하지만 그 가운데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일을 따라 발심하는 수사발심(隨事發心)이요, 둘째는 이치를 따라 발심하는 순리발심(順理發心)이다. 수사발심은 해야 할 일을 따라 발심하는 것이다. ‘번뇌가 무수하지만 모두 끊기를 원하고 선법이 무량하지만 모두 닦기를 원하고 중생이 무변하지만 모두 제도하기를 원한다.’ 이 세 가지 일을 결정하여 기약하고 원하는 것이다. 처음의 원은 여래의 단덕정인(斷德正因)이요, 다음의 원은 여래의 지덕정인(智德正因)이요, 세 번째 원은 여래의 은덕정인(恩德正因)이다. 삼덕이 합하여 무상보리의 과(果)가 된다. 곧 이 삼심은 모두가 무상보리의 인(因)이 되는 것이다. 인과 과가 비록 다르지만 넓고 긴 양은 나란하고 평등하여 남음이 없으니 포괄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이다. 저 <경>에서 말씀하시기를 ‘발심과 필경은 둘이 차별이 없으나 이와 같은 두 마음 가운데 앞의 마음이 어렵다. 스스로는 제도하지 못했지만 먼저 남을 제도하니 이러한 때문에 나는 초발심에 경례하노라’하신 것과 같다.”
발심의 차원을 말하자면 공의 도리를 알고 보리심을 일으키는 순리발심, 종교적 신념을 가지고 보리심을 일으키는 수사발심이 있습니다. 그런데 연기와 공에 대한 이해가 요원할 뿐 아니라, 종교적 신념도 일으키지 못하는 우매한 범부는 어떻게 발심할 것인가? 이러한 의문은 오늘의 현실에서도 반드시 해결하고 이해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하여 원효는 <아미타경소>에서, “<경>에서 ‘가히 적은 선근복덕 인연으로는 저 나라에 왕생할 수 없느니라.’한 것은 대보리심으로 많은 선근을 섭수하여 그것을 인연으로 삼아 정토에 왕생할 수 있음을 나타내 보이고자 하기 때문이다. 저 <보살지지경> ‘발심품’의 글과 같다. 또한 모든 보살이 최초로 발심하여 능히 일체의 보리분법(菩提分法)을 섭수하고 수승한 선근으로 상수제자가 되기 때문이다. 능히 일체 유정의 처소에서 삼업의 악행을 멀리해야 공덕이 상응한다는 것이다. 살펴 보건데, 보살이 처음 일으킨 보리의 마음이 능히 일체의 수승한 선근을 섭수하고, 능히 악업을 끊으며, 공덕이 상응(相應)하게 한다. 때문에 “적은 선근복덕 인연으로는 저 정토에 왕생할 수 없느니라’하신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보리심에 대한 이해가 깊지 못한 범부일지라도 염불법에 대한 진실한 믿음을 일으키면 그 마음에 보리심이 포함되어 정토에 왕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일체 중생을 구제하려는 대자비 방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염불수행은 발심의 모습에 따라 칭명염불과 염불선으로 방향이 달라진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양산/정토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