至道無難이요 唯嫌揀擇이니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음이요
오직 간택함을 꺼 릴 뿐이니
지극한 도(道)란 곧 무상대도(無上大道)를 말합니다. 이 무상 대도는 전혀 어려운 것이 없으므로 오직 간택(揀擇)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간택이란 취하고 버리는 것을 말함이니, 취하고 버리는 마음이 있으면 지극한 도는 양변(兩邊), 즉 변견(邊見)에 떨어져 마침내 중도의 바른 견해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세간법(世間法)을 버리고 불법(佛法)을 취해도 불교가 아니며, 마구니(魔軍)를 버리고 불법을 취해도 불교가 아닙니다. 무었이든지 취하거나 버릴 것 같으면 실제로 무상대도에 계합되지 못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참으로 불법을 바로 알고, 무상대도를 바로 깨치려면 간택하는 마음부터 먼저 버리라 한 것입니다.
但莫憎愛하면 洞然明白이라
미워하고 사랑하지만 않으면
통연히 명백하니라.
미워하고 사랑하는 이 두 가지 마음만 없으면 무상대도는 툭 트여 명백하다는 것입니다. 부처는 좋아하고 마구니는 미워하며, 불법을 좋아하고 세간 법은 워하는 증애심(憎愛心)만 버리면 지극한 도는 분명하고 또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무상대도를 성취하려면 간택하는 마음을 버려야 하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미워하고 사랑하는 마음, 즉 증애심입니다. 이 증애심만 완전히 버린다면 무상대도를 성취하지 않을 래야 않을 수 없습니다.
이상의 네 귀 절이 바로 <信心銘>의 근본 골자입니다.
이제 정맥으로서 낭야각(瑯揶覺)선사라는 큰스님이 계셨습니다.
그 스님에게 어느 재상이 편지로 “신심명은 불교의 근본 골자로서 지극한 보배입니다. 이 글에 대하여 자세한 주해(註解)를 내려주십시오” 하고 부탁했습니다.
그랬더니 낭야각선사가 답하기를 ‘至道無難이요 唯嫌揀擇이니 但莫憎愛하면 洞然明白이라’하는 첫 귀절만 큼지막하게 쓰고, 그 나머지 뒷 귀절들은 모두 조그맣게 써서 주해로 붙여버렸습니다.
그렇게 한 뜻이 무엇일까요? <신심명>의 근본 골수는 크게 쓴 귀절 속에 다 있으므로 이 귀절의 뜻만 바로 알면 나머지 귀절들은 모두 이 귀절의 주해일 뿐, 같은 뜻만 바로 알면 나머지 귀절들은 모두 이 귀절의 주해일뿐, 같은 뜻이라는 말입니다. 낭 야각선사가 앞 네 귀절만 크게 쓰고 뒤절은 주해로 써서 답장한 이것은 <신심명>에 대한 천고의 명 주해로서, 참으로 걸작이라는 평을 듣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실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신심명>을 바로 알려면 미워하거나 사랑하는 마음을 버려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증애심만 떠나면 중도정각(中道正覺)입니다. 대주스님은 <돈오입도요문(頓悟入道要門)>에서 ‘증애심이 없으면 두 성품이 공하여 자연히 해탈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첫 네 귀절이 <신심명>의 핵심이고 뒷 귀절들은 주해의 뜻으로 이해하여야 할 것입니다.
性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