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화(普化)스님은 반산 보적(盤山寶積) 선사의 제자로 항상 미친 사람같이 거리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교화하였습니다.
그당시 그런 기행을 하는 스님을 이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나 오직 임제(臨濟)스님만이 심중을 알고 흉허물없이 잘 지냈습니다.
하루는 진주(鎭州)의 저자거리에 나와서 만나는 사람들을 붙잡고, “나에게 장삼 한 벌을 해달라”하며 졸랐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보화스님에게 장삼을 지어 드렸습니다.
그러나 스님은 “이것은 내가 입을 옷이 아니다”하며 받지를 않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더욱 이상히 여기며 미친 중이라고 수군댔습니다.
어느 날 임제스님이 그 소문을 듣고는 장삼 대신에 관(棺)을 하나 보내니, 보화스님이 웃으며 “임제가 내 마음을 안다”하고는 그 관을 짊어지고는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내일 동문 밖에서 떠나겠다”고 하였습니다.
다음 날 동문 밖에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 들었는데 보화스님은 눈도 깜짝하지 않고 “오늘 여기서 죽지 않겠다. 내일 서문 밖에서 죽겠다”고 하며 관을 메고 떠나버리니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욕을 하고는 흩어 졌습니다. 다음 날 서문 밖에 또 사람들이 몰려들었으나 보화스님은 “오늘 여기서 죽지 않고 내일 남문 밖에서 죽겠다”고 하며, 또 관을 메고 떠나버리니 사람들의 원성이 자자하였습니다.
다음 날 남문 밖에는 적은 수의 사람들이 나와 있었는데, 보화스님은 “오늘 여기서 죽지않고 내일 북문 밖에서 죽겠다”고 하며 또 관을 메고 떠나버리니, 비록 적은 수의 사람들이 모였지만 미친 중이 거짓말만 하여 사람을 속인다고 삿대질을 하며 분위기가 살벌하였습니다. 다음 날 북문 밖에는 과연 보화스님이 관을 메고 나타났으나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보화스님은 관 위에 묵묵히 앉아 있는데 마침 한 길손이 지나가므로 그에게 부탁하기를 “내가 이 관 안에 들어가 눕거든 관 뚜껑을 닫고 못질을 해달라”고 하고는, 그 관 속에 들어가 누우며 관 뚜껑을 닫으므로 그 길손이 못질을 하고 떠나갔습니다.
길손이 성중에 들어가 그 이야기를 하니 진주성 사람들이 놀래며 북문 밖으로 보화스님이 계시는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가서 못질한 관 뚜껑을 열고보니 그 속에 있어야 할 보화스님은 온데 간데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어리둥절해 있는데 그때 마침 공중에서 은은히 요령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사람들은 그 요령 소리가 나는 먼 하늘을 바라보며 수없이 절을 하며 보화스님의 법력을 알아보지 못한데에 대해 통탄하였습니다.
이것이 유명한 보화스님이 보인 전신탈거(全身脫去)의 이적입니다. 이 사실은 선종 어록 가운데 가장 권위있는 임제록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性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