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達摩)스님을 보기로 들어보겠습니다.
불교인이라면 거의 알고 있는 달마스님의 이야기가운데 ‘척리서귀’라는 것이 있습니다. 신짝 하나를 들
고 서천(西天) 곧 인도로 가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달마스님이 혜가(慧可)스님에게 법을 전하고 앉은 채로 열반에 드시자 웅이산(熊耳山)에다 장사를 지냈습니다.
그 뒤 몇 해가 지나 송운(宋雲)이라는 사람이 인도에 가서많은 경(經)을 수집하고 귀국하는 길에 총령(파밀고원)에서 쉬고 있었습니다. 그 때 마침 어떤 스님 한분이 신짝 하나를 메고 고개를 올라왔습니다. 그래서 그는 “스님,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이제 너희 나라와는 인연이 다하여 본국으로 간다. 그런데 네가 인도로 떠날 때의 임금[효명제(孝明帝 ; 516~528)]은 죽었어. 가 보면 새 임금이 계실 테니 안부나 전하게”라고 말씀하시고는 고개를 넘어가셨습니다.
송운이 돌아와 보니 과연 먼저 임금은 죽고 새 임금[동위(東魏)의 효정제(孝靜帝)]이 천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중도에서 달마스님을 만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달마스님은 돌아가신 지가 여러 해가 지났다고 했습니다. 송운은 너무 놀라 자기 혼자만 본 것이 아니라 수십 명이 함께 달마스님을 보았으니 절대 거짓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모두들 이상하게 생각하여 달마스님의 묘를 파 보기로 했습니다. 무덤을 파보니 빈 관만 남아 있고 관 속에는 신 한짝만 놓여 있었습니다.
달마스님의 ‘척리서귀’라는 말은 선종에서는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사실입니다. 이 이야기는사후(死後)에도 이처럼 대자유가 있음을 알려 줍니다.
이에 대한 조주스님의 법문이 있습니다.
조주 남쪽 석교 북쪽
관음원 속에 미륵이 있도다.
조사가 신 한짝 남겨두었으나
지금에까지 찾지 못하도다.
‘조주스님’ 하면 천하만고에 다 아는 대조사로서, 달마스님과 연대가 그리 떨어지지 않은 때에 사셨습니다. 그런 조주스님이 달마스님이 신 한짝 버리고 간 것에 대해서 이렇게 읊었습니다. 이 게송 하나만 보아도, 달마스님이 신 한짝만 들고 간것이 틀림없는 사실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해탈이라고 하는 것은 그저 그런 것이 아니며 반드시 대자유가 따릅니다. 보통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그런 신비한 어떤 경계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보기를 더 들어 보겠습니다.
性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