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어집] 제5편 영원한 자유인 02. 원관(圓觀)스님

중국의 역사책인 <당서(唐書)>에 나오는 것으로, ‘이원방원관(李源訪圓觀)’이라 하여 이원이라는 사람이 원관이라는 스님을 찾아간 이야기가 있습니다.

당나라 안록산의 난리(755~763) 때 당 명황(唐明皇)의 신하중에 이증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원은 그의 아들입니다. 이증은 당 명황이 안록산의 난리로 촉나라 성도로 도망갈 때 서울인 장안(長安)을지키라는 왕명을 받고 안록산과 싸우다 순국했습니다. 뒤에 국란이 평정되고 환도한 후, 나라에서 그 아들인 이원에게 벼슬을 주려 했으나 그는 도를 닦겠다고 하며 거절하고는 자기의 큰 집을 절로 만들고 혜림사(蕙林寺)라 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원관이라는 스님이 와서 살게 되었습니다. <고승전(高僧傳)>이나 <신승전(神僧傳)>에는 ‘원관’으로 기록되어 있고, 다른 곳에서는 더러 ‘원택(圓澤)’이라고 기록되기도 했습니다. 보통 흔히 볼 수 있는 스님으로 마음 씀씀이가 퍽 좋았습니다.

한번은 원관스님과 이원 두 사람이 아미산(峨眉山)의 천축사 구경을 갔습니다. 구경하는 도중에 어느 지방의 길가에서 한 여인을 보고 원관 스님이 “내가 저 여자의 아들이 될 것입니다. 태어난 지 사흘 후에 찾아오면 당신을 보고 웃을 테니 그러면 내가 확실한 줄 아시오. 그리고 열두 해가 지난 뒤 천축사(天竺寺)로 찾아오시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미산으로 가다가 이렇게 말하고 그는 길가에 앉아 죽어버렸습니다.

원관스님의 이야기가 너무 이상해서 이원이 스님의 말대로 수소문해서 여인의 집을 찾아가 보니 사흘 전에 아이를 낳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원이 아이를 보자 그 아이는 이원을 보고 웃는 것이었습니다. 이원이 이로써 그 아이가 원관스님의 환생인 줄 확실히 알고 혼자 집으로 돌아오니, 집안 사람들이 스님께서 가시면서 이번에 가면 안 온다고 말씀하시고, 어느 곳의 누구 집에 태어날 것이라고 모두 말씀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12년이 지난 뒤 팔월 추석날 이원은 전당(錢塘) 천축사로 찾아갔습니다. 갈홍천(葛洪川)이라는 개울이 있는 곳에 이르자 달이 환히 밝은데 저쪽을 보니 웬 조그만 아이가 소를 타고 노래를 하며 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가까이 다가 오더니 “이 선생은 참으로 신용있는 사람이오. 그러나 가까이는 오지 마시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약속을 어기지 않고 찾아왔으니 신용있는 사람이라고 하면서도, 세속 욕심이 꽉 차 마음이 탁하니 가까이 오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원이 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멈칫멈칫하며 서 있는데 아이는 저만큼 떨어져 소를 타고 돌아가면서 노래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三生石上舊情魂(삼생석상구정혼) 삼생돌 위 옛 주인이여
賞月吟風莫要論(상월음풍막요론) 달구경 풍월함은 말하지 마라.
慙愧情人遠相訪(참괴정인원상방) 부끄럽다 정든사람이 먼 곳에서 찾아 오니
此身雖異性長存(차신수리성장존) 이 몸은 비록 다르나 자성은 항상 같다.
身前身後事茫茫(신전신후사망망) 전생 내생 일이 아득하여 알 수 없는데
欲話因緣恐斷腸(욕화인연공단장) 인연을 말하고자 하니 창자가 끊어질 것 같다.
吳越山川尋已遍(오월산천심이편) 오나라 월나라 산천은 이미 다 보고
却廻煙掉上瞿塘(각회연도상구당) 도리어 배를 돌려 구당으로 간다.

이렇게 노래를 부르며 가는 것을 보고 이원은 그제서야 그 스님이 도를 통한 큰스님인 줄 알고, 더 가까이 하여 법문을 듣고 공부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돌아가서 열심히 수행했습니다. 뒤에 나라에서 이원에게 간이대부라는 높은 벼슬을 주었으나 이원은 이를 거절하고 팔십여 세까지 살았습니다.

이것이 ‘이원방원관’ 이야기의 내용으로, 이 이야기도 영겁불망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전생의 일을 조금도 잊어버리지 않고 그대로 기억하고 있으며 자유자재한 것입니다.

노래 가운데 ‘삼생돌 위에 옛주인’이란 누구를 가리키느냐하면 천태지의 선사의 스상인 혜사(慧思)스님을 말합니다. 혜사스님(515~577)은 만년에 대소산(大蘇山)에서 남악형산(南嶽衡山)으로 처소를 옮기고 형산의 천주봉(天柱峰) 봉우리밑에 있는 복암사(福岩寺)라는 절에 주석(住錫)하시면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한번은 “내가 전생에도 이 복암사에서 대중을 교육시켰는데 그 전생 일이 그리워서 이곳으로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대중을 거느리고 나가더니 아주 경치가 뛰어난 한 곳에 이르러 “이곳이 옛날 절
터야. 지금은 오래되어 아무 자취도 없지만, 내가 전생에 토굴을 짓고 공부하던 곳이야. 근처를 파 보자”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시키는 대로 그 주변을 파 보니 과연 기왓장과 각종 기물이 나왔습니다. 또 큰 바위가 있는 곳에 이르러 “이곳은 내가 앉아서 공부하던 곳이야. 죽어 이 바위 밑으로 떨어져 시체가 그대로 땅에 묻혔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땅을 파 보니 해골이 나왔습니다. 이것이 혜사스님의 삼생담입니다. 금생에는 복암사, 전생에는 토굴터, 그 전생은 바위 위이므로 삼생석인 것입니다.

혜사스님은 그 도력이나 신통이 자재한 유명한 스님으로, 그런 분이 분명히 증거를 들어 확인한 것이니 거짓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삼생의 해골이 나온 그 자리에 삼생탑을 세웠습니다. 이것이 유명한 남악 혜사스님의 삼생탑으로, 유명한 명소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아 가는 곳이 되었습니다.

앞에서 원관스님이 말한 삼생석 위의 옛주인이란 바로 혜사스님을 가리킨 것입니다. 곧 혜사스님이 돌아가셨다가 나중에 당나라에 태어나서 원관이라는 스님으로 숨어 살았던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보면 모든 생활이 범승(凡僧)과 같았지만 실제 생활은 자유자재한 것이었습니다.

그에게는 대자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性撤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항목은 *(으)로 표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