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이 사밧티의 기원정사에 계실 때였다. 어느날 파세나디왕은 나라 일로 성 밖에 나가 있었다. 그때 왕의 어머니는 백 살이 가까운 나이로 오래 전부터 병석에 누워 있었는데, 불행히도 왕이 나가고 없는 사이에 돌아갔다.
지혜로운 신하 불사밀은 효성스런 왕이 이 불행한 소식을 들으면 슬퍼할까 염려한 끝에 어떤 방편을 써서라도 왕의 슬픔을 덜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오 백 마리의 코끼리와 말과 수레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수많은 보물과 기녀들을 실은 뒤
만장을 앞세워 풍악을 잡히면서 상여를 들러싸고 성 밖으로 나갔다. 왕의 일행이 돌아오는 도중에 만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왕은 호화로운 상여를 보고 마중 나온 불사밀에게 물었다.
“저것은 어떤 사람의 장례 행렬인가?”
“성 안에 사는 어떤 부잣집 어머니가 돌아가셨답니다.”
왕은 다시 물었다.
“저 코끼리와 말과 수레는 어디에 쓰려는 것인가?”
“그것들은 염라왕에게 갖다 바치고 죽은 어머니의 목숨을 대신하려고 한답니다.”
왕은 웃으면서 말했다.
“어리석은 짓이다. 목숨이란 멈추게 할 수도 없지만 대신할 수도 없는 것. 한 번 악어의 입에 들어가면 구해낼 수 없듯이, 염라왕의 손아귀에 들면 죽음은 면할 수 없다.”
“그러면 여기 오 백 명의 기녀들로 죽은 목숨을 대신 하겠다는 것입니다.”
“기녀도 보물도 다 쓸데없는 짓이다.”
“그러면 바라문의 주술과 덕이 높은 사문의 설법으로 구원하겠다고 합니다.”
왕은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
“그것은 다 어리석은 생각이다. 한 번 악어 입에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것. 생이 있는데 어찌 죽음이 없겠는가. 부처님께서도 한 번 태어난 자는 반드시 죽는다고 말씀하셨거늘.”
이때 불사밀은 왕 앞에 엎드려 말했다.
“대왕님, 말씀하신 바와 같이 모든 생명 있는 것은 반드시 다 죽는 법입니다.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태후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놀랐다. 깊은 한숨을 쉬었다. 한참을 말없이 있다가 입을 열었다.
“착하다, 불사밀. 그대는 미묘한 방편으로 내 마음을 위로해 주는구나. 그대는 참으로 좋은 방편을 알고 있다.”
파세나디왕은 성으로 들어가 여러 가지 향과 꽃으로 돌아가신 어머니께 공양하고 나서 부처님이 계신 기원정사로 수레를 몰았다. 전에 없이 한낮에 찾아온 왕을 보고 부처님은 물으셨다.
“이 대낮에 웬일이시오?”
“부처님, 저의 어머님이 돌아가셨습니다. 백 살이 가까운 어머님은 매우 노쇠했지만 저는 한결같이 공경해 왔습니다. 만약 이 왕의 자리로 어머님의 죽음과 바꿀 수 있다면, 저는 왕위뿐 아니라 거기에 다른 말과 수레와 보물과 이 나라까지도 내놓겠습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너무 슬퍼하지 마시오. 살아 있는 모든 목숨은 반드시 죽는 법입니다. 모든 것은 바뀌고 변하는 것, 아무리 변하지 않게 하려고 해도 그렇게 될 수는 없소. 마치 질그릇은 그대로 구운 것이건 약을 발라 구운 것이건, 언젠가 한 번은 부서지고 마는 것과 같소. 네 가지 두려움이 몸에 닥치면 그것은 막을 수 없는 것이오.
그 네 가지란, 늙음과 질병과 죽음과 무상이오. 이것은 그 어떤 힘으로도 막아낼 수 없소. 마치 큰 산이 무너져 사방에서 덮쳐 누르면 아무리 발버둥쳐도 빠져 나올 수 없는 것과 같소. 견고하지 못한 것은 아예 믿을 것이 못되오.
그러므로 법으로 다스려 교화하고 법 아닌 것을 쓰지 마시오. 법으로 다스려 교화하면 그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 천상에 태어나지만, 법 아닌 것으로 다스리면 죽은 뒤에는 지옥에 떨어질 것이오.”
왕은 부처님께 말씀하셨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부처님 말씀을 듣고 나니 여러가지 슬픔과 근심이 사라집니다. 나라 일이 많으니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파세나디왕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절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물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