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로 록펠러 Rocrefeller(1839~1937)의 경우를 봅시다.
미국의 록펠러 1세는 당대에 자수성가(自手成家)하여 세계적인 갑부가 되어 아흔 아홉살까지 산 사람입니다. 그만하면 누가 보든지 참으로 행복하게 산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재산도 많아 세계적인 재벌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뿐더러 나이 아흔 아홉이 되도록 장수하였으니 무엇 하나 부러울 것이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사람의 욕심이란 그렇지 않은가 봅니다.
록펠러는 만년에 이르러 위암에 걸려 죽게 되었습니다. 암이란 지금의 발달된 현대의학으로도 웬만해서는 고치지 못하는 병인데 지금보다 오십 년 전인 그 때에는 더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세계적인 갑부로서 온갖 부를 누렸고 아흔 아홉살의 천수를 누렸으니 그만하면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을 듯 싶은데도, 그는 자기가 암에 걸려 곧 죽을 운명에 놓이게 되자 도저히 그대로 죽을 수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자기의 생명을 일년 더 연장시켜 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에게 재산의 절반을 주겠다고 온 세계에 광고를 냈습니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그 광고비만도 이백만 불이나 들었다고 합니다. 이백만 불이면 어마어마한 돈입니다. 아마 이백만 불 아니라 이백억 불을 들인다 해도 목숨을 연장하는 이러한 문제는 해결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록펠러가 낸 그 광고를 보고 의학분야에 오래 종사한 사람들은 록펠러를 한 해라도 더 살려 놓으면 자기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욕심에서 각양각색의 방법을 다 동원하고 제시 하였습니다만, 결국 록펠러는 더 살지 못하고 아흔 아홉에 죽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오래 살았어도 좀 더 살고 싶은 것, 이것이 인간의 본능 입니다. 이것은 인간뿐만 아닙니다. 저 꼬물거리며 기어 다니는 개미나 벌레까지도 죽는 것은 다 싫어 합니다. 좀 더 오래 살았으면, 좀 더 편안
하게 살았으면 하는 욕망은 생명을 가진 생명체의 버릴래야 버릴 수 없는 본능적인 욕망 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오래 살고 또 부귀와 영화를 누리며 산다 해도, 그것은 어느 한 순간이면 끝나고 맙니다. 이 유한한 생멸의 세계에서는 그러한 사람의 욕구는 결코 채워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性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