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방의 부엉이

(부엉이 부엉이, 부엉이야, 부엉아, 무엇을 보고 있니? 엉큼한 눈으로..)라고 그가 글방의 마당에서, 짚더미 옆에서, 무화과나무 그늘에서, 또 강 언덕에서, 알지 못할 상념에 잠겨 걷고 있을 때, 생각하고 있을 때, 동무들은 뒤따르고 그를 놀려댔다.

어떤 때에는 옆구리를 찌르고 어떤 때에는 돌멩이질을 했다. 그러나 순진하고 어리석은 소년이었던 그는 그 놀림이 귀찮고 굴욕스럽기는 했으나 그들과 어울려 싸운다거나 대항하여 이기고 싶을 생각은 없었다. 차라리 그런 동무들로부터 떨어져 언제나 조용하고 명상적인 분위기에 잠겨 있고 싶었다.

부모들의 권유로 그는 진주 남강가의 봉연제라는 한문서숙에서(하늘천 따지 검을 현 누를황)이라는 어음만이 들리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종종 눈을 멈추고 그 소리를 듣기를 즐겨하였다. 그때마다 스승의 진 담뱃대가 그의 머리 위로 날아왔다. (이놈아, 그렇게 정신을 팔고 있으니 성적이 떨어지지)이런 꾸중이 들려왔다. 그는 담뱃대가 머리에 닿는 아픔보다도 (정신을 팔다니 그게 무슨 말일까?정신을 팔 수도 있는 것일까?)하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그의 생각은 언제나 배우는 그것에 보다도 그 주변에 그 둘레에 더 많이 머물러 있었고, 그랬으므로 성적은 더욱더 떨어져갔다. 성적이 떨어졌기 때문에 오히려 그런 결과가 왔을지도 모른다.

그는 담뱃대와 퀴퀴한 냄새가 들아차 있는 서숙의 분위기보다는 쉬는 시간이면 나와 노는 마당의 모든 것이 좋았다. 그것들을 사랑하였다. 햇빛이 내려 비추면 백색으로 반짝이는 마당, 그 둘레에 심여져 있는 사철 나무의 흔들리는 잎사귀들, 그리고 보이지 않게 일체를 흔들고 가는 바람을. 그는 마당가의 볏짚에 작은 몸들 기대고 서서 무심한 눈으로 그 모든 것을 보았다. 지붕위로 흘러내리는 햇빛도 보고 하늘도 보았다. 하늘에는 구름이 흘렀다.

찬란히 바라보고 있는 그의 눈에는 구름이 삽시간 어머니 모양으로 변하는 것이 들어오고 있었다. 코끼리 모양으로, 젖먹이는 어머니 모양으로, 산 모양으로, 바다 모양으로, 물긷고 가는 아낙네의 모양으로, 그리고 염소 모양으로, 토끼 모양으로. 그토록 자유자재로 변하는 구름 모양에서 그는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 수만 가지로 변화하는 생의 무상이었을까. 아니면 다만 흐르고 변한다는 구름의 형용이었을까.

어렸을 때의 일을 세세하게 생각해 낼 수는 없는 일이지만 어쩌면 그는 그때의 구름의 변용에서 일종의 소년다운 감상적인 비애를 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리하여 비애는 장차의 그를 만드는 정서적인 원천을 이루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떻든 그의 모든 장점을 우리가 오늘 들추어 추겨세워준다고 할지라도 그 무렵의 그는 분영히 훌륭한 소년은 아니었다. 훌륭한 사람으로서의 자질이 보일 뿐이었다. 그리하여 스승은 종종 공부는 못해도 순량한 놈이라고 했고 동무들은 부엉이 부엉이 하고 놀리면서도 좋은 놈이라고 칭찬하기를 잊지 않았다.

특히 그의 아버지는 생각하는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조용한 그늘이 아들의 얼굴에 흐르는 것을 보고 그는 틀림없이 장차 현자가 될 것이라고 내심으로 기뻐하였고, 그의 어머니도 아들의 걸음걸이에서, 말씨에서, 행동거지에서 예절 바르며 친절한 성미를 찾아내고 그 무엇에도 비견할 수 없는 사랑을 주는 것이었다. 이러한 종류의 부모들의 사랑은 그 누구나 맛보고 자라나는 성질의 것일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그 사랑으로부터 늘 벗어나려고 반항하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삼강오륜이라는 유교의 굴레이 꽉 얽매어 있었던 그때의 아이들은 그 반항심이라는 것을 켤코 나타낼 수는 없었다. 그것을 보였다가는 당장 불효라는 낙인이 찍히고 마을에서 소문난 문제 아이가 되기 때문이다. 어느 면에서는 몹시도 기민했다고 할 수 있는 그는 켤코 반항하지 않았다. 불편한 대로 부모들의 사랑과 기대를 등에 지고 매일 매일 아무런 재미도 없는 몽련제로 가는 것이었다. 하늘천 따지를 읽기 위해서.

그날도 그렇게 책을 읽고 쉬는 시간이 되어 밖으로 나왔었다. 볏집에 기대어 구름을 보고 있었다. 이백의 초산진산계 백운백운 처처장수군을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미 17세라는 성숙기에 이르렀던 그에게 그 때 임이라는 영상은 이미 깃들어 있었고, 임이라는 영상이 깃들었다면 구름에서 그것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가 무엇인가를 열중하고 있었을 때였다. 한 친구가 (부엉이 부엉이, 부엉이야 부엉이)하고 너무나도 큰 소리로 그의 고막을 울리면서 그의 왼팔을 잡아당겼다. 그는 쓰러졌고 일어섰을 때에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분노가 전신에서 이글이글 타고 있었다.

그는 친구에게 대들었다. 몇번이고 넘어졌다가 일어섰다. 나중에는 손에 잡히는 대로 돌을, 부지깽이를, 삽자루를 집어던졌다. 싸움이 끝났을 때는 장독대의 항아리가 부서지고 창문이 깨어져 마당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선생은 노발대발했다. (이놈 고약한 놈 같으니라구. 설사 서우가 잘못했다선지어라도 깨우쳐 이해시켜 쥐야지 그렇게 원수처럼 대드는 법이 어디 있느냐. 우리 서숙에서는 너 같은 독종은 필요없으니 나가거라)

그는 선생의 말이 떨어지는 즉시로 책보를 싸들고 나왔다. 걸음이 덜덜 떨렸다. 어버지와 어머니가 몇번이고 그에게 (그것은 선생의 잠시 화풀이니 다시 나가라)고 사정했으니 완강히 거절하였다. 아버지는 할 수 없이 그렇다면 하고 그를 진주 제일보통학교에 입학시켜 주었다.

이상한 이야기 같지만 소년기에는 엉뚱한 변모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그것은 예민한 소년들일수록 일어날 가능성이 많다. 나에게도 그 변모가 왔었다. 보통학교 학생이 되면서부터 나는 어리석은 아이의 틀에서 벗어나 무엇에나 앞장서려고 했고 그 무엇에나 지지 않으려고 바둥거렸다. 그렇게 서너 달을 하고 나니 나의 성적은 빼어나기 시작하였다. 드디어 학년에는 1,2등을 다투기 시작하였다. 성적이 좋은 아이들은 언제나 우쭐거리는 법이다. 나는 공부 못하는 아이들,어수룩한 아이들을 놀려 먹기 시작하였고 겨울이면 그런 애들을 찾아가 눈덩이를 옷속에 집어넣고 도망갔다. 아이들은 내 뒤를 따라왔고 그 대열은 그리하여 너무도 자연스럽게 달음질 경주가 되는 것이었다.

그때의 남강에는 뱀들이 득실거렸다. 그래서 아이들은 헤엄질이나 고기잡이를 그들끼리 가지 못하고 언제나 나를 앞장 세웠다. 나는 뱀들을 숭숭 붙잡아 뚝 너머로 집어던졌다. 그제서야 아이들은 와아 하고 물속으로 뛰어드는 것이었다. 물방울이 강물 위로 뛰어오르는 것이었다.

우리들은 그때 누구나 없이 일인 교사의 말씨와 동작을 사랑했었다는 생각이 든다. 담배만 피우고 앉아 맹자왈을 가르치는 서숙의 늙은 선생보다 그 일인 교사에게서는 신선하고 향긋한 무어라고 했으면 좋을까 사람을 달게 끌어들이는 일면이 있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라 하는 말이면 무엇이나 새겨들었고 그가 하는 일이면 무엇이나 모방하려고 애썼다. 선생은 나를 좋아했었던 듯하다.

선생은 학생들에게 무엇인가를 질문하고 그것을 대답해 내지 못하면, (이순성, 너는 어떻게 생각하지?)하고 그 희 목을 나에게로 향하여 돌리는 것이었다. 나는 서슴없이 일어나, (겨울에 독이 깨어지는 것은 독에거 물이 얼어 그 부피가 커지기 때문입니다. 나뭇잎이 푸른 것은 나뭇잎 속에 있는 엽록소가 푸르기 때문입니다.)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선생은 (좋아 좋아)하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말씀하시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면서 자리에 앉았다 모든 급우들의 시선이 나에게 몰리는 듯한 느낌을 가지면서 한편으로는 무심한 듯이 눈길을 창밖으로 돌리었다.

창밖은 언제나 햇볕이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은 마치 소년들의 무한한 꿈처럼 운동장 아래서 반짝이고 있었고 우리들의 꿈은 무한하게 그 밖으 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꿈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붙어 있을 때, 그리고 그것이 창창하게 타고 있을 때, 우리들에게는 그 꿈의 실체인 사실이라는 것이 찾아오는 것 같다. 그리하여 그때 나에게도 그 꿈의 형체일 수 있는 사랑이라는 것이 찾아왔던 것 같다.

淸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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