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물속에 살면서도 물을 모르고, 사람은 불법 가운데 있으면서 부처를 모른다. 사람은 불심 속에서 나고 불심 속에서 살며 불심 속으로 죽는다.
공기도 물도 다 오염되어 있지만, 그러나 마음만은 더럽히고 싶지 않다. 함께 괴로워하고 함께 울고 함께 기뻐하고 함께 웃는 곳에, 모든 것을 함께 할 수 있는 영원한 평화가 있다. 꽃을 보고 기뻐하고 함께 웃는 곳에, 모든 것을 함께 할 수 있는 영원한 평화가 있다. 꽃을 보고 기뻐하는 것보다도 꽃을 피워놓고 남을 기쁘게 하는 마음, 이것이 곧 자비의 마음씨다.
물건은 싸움의 원인이 되고 마음은 평화의 씨앗이 된다. 사랑하지 말고 미워하지도 말아야 하는 것이니. 이렇게 애증을 초월했을 때 완전한 자유가 비로소 탄생하는 것이다. 봄에는 꽃이 피고,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 가을에는 달이 빛나고 겨울에는 은빛 산하. 다음에 번뇌가 없으면 사시사철 언제나 좋은 계절이다.
자비를 가지고 부르는 소리에는 하늘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다. 원한에는 자비로, 싸움에는 화평으로, 비방에는 협동으로 대하는 길만이 곧 부처의 진리이다. 남을 용서하는 것을 배워라. 그러면 너의 인생은 밝아진다. 남을 미워하지 않고 멸시하지 않고 어떤 상대에게도 사랑을 잃지 않고 상대를 깊이 보살펴 주는 마음, 이것이 곧 자비다. 기쁨을 느끼는 사람은 많지만 자신의 몸이나 마음을 가꾸는 일에 기쁨을 갖는 사람은 드물다.
바른 믿음은 등뼈다. 바른 마음은 인생을 밝게 하고 행복은 얻게 한다. 욕심 때문에 행실은 세상을 구하고 욕심 있는 행실은 사람을 울린다. 덧없이 변해 가는 세상 가운데서 항상 변하지 않는 것, 그것은 사람의 성실이다.
믿음이 이 세상 나그네 길의 양식이다. 더 이상 없는 재물이다. 믿음이란 남에게 감사하고 자신을 참회하는 일이다. 스스로를 아는 일이 부처님을 아는 일이지요, 부처님을 믿는 일이 스스로를 믿는 일이다. 자비 앞에서 어떠한 적도 있을 수 없다는 마음으로 무장될 때 비로소 사회정화나 민족 통일도, 세계 평화도 이루어질 수 있다. 원수로 무장하지 말고 자비로 무장할 때 즉 자비로 무장된 부처님 마음만이 나라와 가정과 나 스스로를 영원히 지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죽어 없어지는 몸뚱이 이외에 또 하나의 삶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불성이라 해도 좋고 하느님이라 해도 좋다. 어쨌든 영원히 살아있는 나, 물질이 아닌 나, 다시 말해서 진여라, 여래라 하는 것이 바로 이 또 하나의 삶이다. 이것은 온갖 움직임과 생각과의 주체가 되는 존재이기도 한다.
부처님은 유신과 유물을 초월하여 모든 것은 인간 각자에 영원한 자세의 진리 가 있음을 깨달아 유신사상의 미신과 유물사상의 위기를 구제하여 인간 자신에 영원한 생명과 희망의 길을 개척해 주었다. 즉 영원한 생명의 세계로 윤회하는 인생자체에 영원한 희망을 알려주었다.
많은 부인들이 남편에 대해 자유행사를 하려 하고 남편이 부인에게 자유행사를 하려고 하는데 이것은 남을 구속하는 것은 될지언정 참된 의미의 자유는 아니다. 흔히 사람들은 사랑하는 것은 고통이 아닌 줄로 알지만 사랑하는 것도 큰 고통이다. 사랑이 싹트면 밤에 잠도 잘 안 오고 밥맛도 없어지고 먹는 것이 소화도 잘 안된다. 사랑한다는 것은 남을 소유하겠다는 것이고 구속이요, 고통이다.
참 죄는 나에게 있다. 절대로 남이 잘못했다고 하는 생각을 갖지 말자. 저 사람을 기쁘게 하여 좋은 사람 만드는 것도 내가 할 수 있고 독사와 같은 나쁜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 사람이 모두 생각에 얽힌 탓으로 마음이 흐려져서 무엇을 생각한다고 해도 올바른 판단이 되지 않는다. 마음이 밝아지면 그것이 나와는 상관이 없지만 생각을 해달라고 하면 아무 조건없이 생각을 해두는 것이다. 그래야만 아무 부담이 없고 마음에 꺼리는 데도 없고 참되고 완전한 자유를 얻는다.
우리가 흔히 악하다든지 선하다는지 하는 말을 쓰고 있지만 그 기준은 뚜렷하지 못하다. 가령 사람을 죽이는 것은 악이지만 전쟁터에서는 사람을 많이 죽여야 공로가 크다고 하듯이 선악의 구별은 분명하지 않는 것이다.
술취한 사람이 졸다가 잠꼬대를 하는 식으로 번뇌, 망상, 탐욕에 살지 말라. 태풍에 밀려 다니는 파도처럼 이 생각 저 생각, 생각에 따라서 이것이다 저것이다하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중생 놀음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쳐다본다. 생각해 본다. 들여다 본다. 맛을 본다, 무엇을 어떻게 해본다는 이러한 말들은 연구한다, 안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 본다는 말은 우리의 아는 힘을 다 발휘해야 한다는 소리다. 우리에게 아는 힘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가지고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이지 알줄 아는 것이 없으면 아무 것도 성립되지 않는다.
한국의 돈을 전부 다 모았다는 자 한 끼에 밥 두세 그릇을 먹는 것도 아니고 옷을 한꺼번에 몇번을 껴입을 수도 없으니 아무 것도 아닌 셈이다. 천당도 있고 지옥도 있어서 어떤 중생은 지옥에 살 때도 있고 천당에 살기도 하며 또 사바세계에 있어도 그대로 극락세계가 되고 갖가지 차별의 세계를 제 각기 살고 있다. 각각 자기의 꿈세계에서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꿈을 꿀 때 문을 열지 않으면 방안에서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꿈속에 있는 문이 무슨 구애가 있을 수 있으며 꿈속에 있는 이 몸뚱이가 어떻게 걸림이 있겠는가. 한 개의 환상이고 거짓말이므로 허공이 허공을 지나가는 것처럼 아무 구애가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꿈속에 문을 열지 않아면 나가지 못하는 것은 오직 (문을 열지 않으면 못나간다.)는 관념 때문이다.
전생에 복을 좀 지어서 금생에 돈이 잘 벌어지거든 대로 이웃과 사회를 위해서,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서 사회사업도 하고 잘 도와야 한다. 공연히 남이 쓸 돈을 혼자만 갖고서 좋은 일에 사용하지 않으면 죄만 되고 남에게 미움을 받는다. 내 것이 본래 아니고 필경 내 것이 될 수도 없다. 육체를 나로 알고 의식주를 생명으로 생각하는 착각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뿐이다.
현실세계에서 보고 듣고 이야기하고 웃기도 하고 성내고 하는 그것은 하나도 기억이 안된다. 아무 생각 없이 하기 때문이다. 아무 조건없이 이야기를 하고 듣고 앉고 눕고 하는 그것이 이익도 안되고 해도 안되고 이 세상만사가 하나도 나에게 아무 상관이 없다. 마음에 다른 것은 다 생각하고, 보고, 애착을 가질 것이 없고, 현상도 적멸도 아무 것에도 미련을 둘 것이 없는 줄을 분명히 알아서 모두 집어던져 버리는 그러한 경지에 다다랐을 때가, 무엇을 수양하고 참선할 것이 남아 있을 도중이 아닌 마지막 반야에 들어갔을 때이다.
설탕은 달고 소금은 짠 것은 수상행식 때문이고, 관념 때문이다. 파도가 칠때는 파도가 가라앉은 때나 물은 변함이 없고 물의 성질은 항상 그대로이다. 바람이 부니까 물이 움직여 보인 것뿐이지 물은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다. 다만 우리의 생각이 파도와 물이 다른 것으로 여기는 것뿐이다. 육안은 단순한 물질의 구조에 불과하며 신경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세포로 구성될 것일 뿐이다. 아무리 치밀한 구조로 이뤄진 세포라 하더라도 신경 그 자체는 물질일 수 없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물질도 아니고 허공도 아닌 아는 능력을 가진 생명이 있다. 그것이 곧 마음이다.
도인이 되면 아무 괴로움이 없고 자유스런 사람이 된다. 마음을 깨친 도인이 되어 세상을 그렇게 살면 참으로 편안하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조건부로 시집가려고 하지 말고 조건부로 돈도 모으지 말며, 사람을 대해도 조건부로 대하지 말라. 그러면 부처님과 똑같은 경지에 도달한다.
아무리 태풍이 불어와서 백두산만한 파도가 일어난다 해도 물은 변하지 않는다. 천당을 올라갔다 내려왔다 하는 파도가 일어났다 하더라도 물의 성질만은 그대로이다. 또 물에다 똥을 섞여서 똥은 똥대로 물의 성질이 단 것으로 변하지 않는다. 단 것은 어디까지나 설탕이 단 것이다. 즉 당분이 수분에 섞여 있는 것 뿐이다. 이와 같이 물과 똥을 섞지 않으며 물과 당분과도 안 섞인다. 물 가운데로 똥이 돌아 다니는 것이고 물 사이에 당분이 떠 있을 뿐이다. 이와 같이 우리의 마음도 미워하고 사랑하고 희노애락에 섞여서 물들지 않으면 따라서 더러워질 것도 깨끗해질 것도 없다.
애착과 소유의 욕망으로 살다보면 이것이 관습이 되고 업이 되어 무서운 힘을 가지고 우리를 지배한다. 이 업에 의해서 다음 생이 좋게도 나쁘게도 결정된다. 가령 세계에서 좋은 보석을 한 개 선사받았다고 하면 그날부터 잠을 못 잘 것이다. 도둑이 언제 담을 뛰어 넘어올지 모르고, 언제 어디서 강도를 만날지, 택시를 타고 가도 안심이 안된다. 이와 같이 마음에 소득이 있으면 안심이 안된다.
태양이 아무리 밝다 해도 땅속이나 벽속까지는 밝힐 수 없지만 마음은 땅 속, 우주의 구석구석까지 다 밝힌다. 우리의 마음은 오가는 곳이 우주에 가득하기 때문에 극락세계도 사바세계도 지옥과 천당도 손바닥에 놓인 구슬보듯이 환히 보인다.
淸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