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산 옥천암의 해수관음상
삼각산 옥천암은 해수관음상으로 유명하다. 이 관음보살에 기도해서 소원을 얻지 않은 이가 없었으므로 오늘날에도 옥천암에는 신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조선조 말엽, 순조 7년(1819)의 일이다.
지금은 고양시로 되어 있지만 옛날에는 경기도 고양군 고양읍이었다.
고양군 신도면 어느 마을에 나무장사를 해서 생계를 꾸려가는 젊은이가 있었다. 이름은 윤덕삼이라 했고 집안 형편이 어려워 나이가 서른이 넘도록 결혼도 하지 못했다.
덕삼은 70이 넘은 늙은 부모님을 모시고 있었다. 그는 매일 같이 나무를 했고 첫닭이 울기 기다려 나뭇짐을 지고 서울에 내다 팔았다. 신도면에서 서울까지 30여 리는 족히 되었다. 구파발을 들어서서는 불광동을 지나고 홍제동을 단걸음에 내달았다.
무악재를 넘어 서대문 거리로 나가 거기서 나무를 팔기고 했지만 텃세에다 경쟁까지 있어 가급적이면 자하문 쪽으로 향했다 홍제동에서 왼쪽으로 길을 틀어 개천을 끼고 세검정을 선뜻 올라서면 자하문이 바로 눈앞에 나타났다. 발바닥이 부르트고 양쪽 어깨에는 굳은살이 박혔다. 땅 한평 없는 그로서는 나무장사만이 부모를 봉양하고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생계 수단이었다.
겨울이고 여름이고 나무만을 해다 팔았다. 봄이고 가을이고 그에게는 나무 해다 파는 일이 전부였다. 나이가 벌써 서른을 넘기고 나니 관심을 가져 주는 사람도 없었다. 만일 이대로 가다가는 노총각 신세를 면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는 외로웠다.
밤이면 밤마다 고독에 몸부림쳤고 낮은 낮대로 온통 배필에 대한 그리움이 차올랐다. 더욱이 덕삼은 삼대독자였다. 무엇보다 자기에게 와서 대가 끊길 것 같아 조상에 대한 죄스러움이 들기도 했다. 집 안에 들어와도 가구라곤 들먹일 게 없었다. 설령 장가를 든다 해도 당장 혼례를 치를 여유조차 없었다 그러나 짝이 주어지기만 한다면 어떻게든 살아가리라 생각했다. 괜스레 마음이 울적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첫새벽 집을 나섰다. 나뭇짐을 지고 홍제동에서 세검정 쪽으로 길을 잡아 가노라니 어디선가 목탁소리가 들려 왔다. 덕삼은 나뭇짐을 내려놓고 담배 쌈지를 꺼냈다. 쌈지 한녘에는 담배를 말 종이도 들어 있었다. 우선 종이를 꺼내 왼손으로 쥐고, 쌈지에서 잘게 썬 담배를 한 줌 집어 내어 종이 위에 옆으로 길게 놓았다. 담배를 말아서는 마지막으로 침을 발라 입에 물었다.
목탁소리는 여전히 들려오고 있었다. 덕삼은 부싯돌에 잘 마른 쑥을 갖다 대고 오른손으로 부시를 꺼내 내리쳤다. 하얀 불꽃이 튀기며 마른 쑥에 불이 붙었다. 그날따라 담배맛이 좋았다. 연기가 사라지는 쪽을 바라보니 웬 절이 하나 보였다. 옥천암이었다. 옥천암 아래에는 내가 흘렀고, 크고 작은 바위들이 늘어서 있었다. 덕삼은 이마 위에 손을 얹어 햇살을 가리며 자세히 보았다.
수십 척이나 되는 바위가 서 있는데 거기에 마애불상이 조각되어 있었다. 아니 마애불상이 아니었다. 바위그대로가 거대한 관세음보살상이었다. 그 암페는 스님을 비롯해 많은 신도들이 기도하고 있었다. 초 타는 냄새와 향내가 코 끝에 스며들었다. 덕삼은 시간가는 줄 모르고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덕삼은 생각했다.
‘사람들은 참 이상하다. 바위에 불상을 조각했기로서니, 어떻게 생명도 없는 바위에 대고 예배를 하는 것일까. 우리네 인간들처럼 마음먹은 대로 다닐 수 있고 말할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무슨 영험이 있다고 저러는 것일까?’ 덕삼의 신도들의 예배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한갖 우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전에도 신도들의 예배를 무수히 보아 왔지만 아직 한 번도 그것이 무의미하다고 느끼지 못했는데 오늘따라 덕삼에게 불현듯 회의가 오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바위에 조각한 불상을 믿느니 차라리 내 두 어깨와 두 다리를 믿지’ 회의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덕삼은 어릴 때 어머니를 따라 절에 갔던 일이 생각났다. 일주문에 들어서면서부터 어머니는 예배를 하기 시작했다.
어린 덕삼도 어머니가 하는 대로 절을 했다. 일주문을 지나 천왕문에 들어서서는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 싶은 사천왕의 모습들을 보고 이내 어머니의 치맛자락으로 숨어들곤 했다. 덕삼은 그 생각을 하며 혼자 피식 웃었다. “어머니, 부처님은 어떤 분이에요?” 그때 어머니는 부처님에 대해 이렇다 할 설명을 해 주지 못했다.
“부처님? 부처님은 말이다. 복을 주는 분이란다. 부처님은 으음, 그러니까…” 어머니는 부처님을 복 주는 분이라고 했다. 복을 많이 만들어 놓고 당신 이름을 부르면 하나씩 나누어 주는 그러한 분이라는 의미로 설명했다. 그때였다. 불공기도가 끝났는지 시도들이 하나 둘식 흩어져 내려가고 있었다.
그중에 한 노보살이 덕삼이 쉬고 있는 길로 접어들었다. “할머니, 저 바위에 새겨 놓은 분은 어떤 분이세요? 그리고 할머니는 무엇때문에 거기에 절을 하곤 하셨어요?” 그러자 노보살은 정색을 하고 말했다. “이봐요, 젊은이. 보아 하니 아직 노총각인 듯한데, 나이도 꽤나 들어 보이고, 그런데 뭘 잘 모르는 것 같애.” “제가 무엇을 모르는 데요?” “저 바위에 새겨진 분은 관세음보살님이신데 정확하게 말하면 해수관음보살이야” “그래서요?”
“저 보살님은 동해와 서해, 남해 할 것 없이 바닷가에는 반드시 계시는 분이며, 어부들의 삶을 보살펴 주고 가피하시는 분이네. 그래서 동해에는 양양의 낙산사 홍련암에 관음굴이 있고 서해에는 강화군 삼산면에 보문사가 있으며, 남해에는 금산에 보리암이 있지.” “여기는 바닷가도 아닌데 어떻게 해수관음보살을 모셨습니까?” “그렇지. 이곳은 바다는 아니지. 하지만 냇가이기에 해수관음상을 모셨고, 보다 중요한 것은 바다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들에게 인연을 맺어 주려고 모신 것이라네. 그런데 이 보살님이 워낙 영험하셔서 누구나 소원을 빌면 다 들어 주신다네.
여보게, 젊은이. 젊은이도 소원이 있다면 저 보살님에게 가서 지극정성으로 소원을 빌어 보게.” 덕삼이 말했다. “그렇지만 돌부처가 무슨 영험이 있겠습니까? 저야 소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건 잘 모르는 말일세. 돌부처라도 믿는 이의 마음여하에 따라 여러가지 영험이 있지. 신앙은 이론적으로는 설명이 어려워. 직접 실천하는 길밖에 없다네.
자, 그럼 난 가네. 반드시 소원을 이루시게.” 덕삼은 헤어지려는 노보살을 붙들었다. “잠깐만요, 할머니. 제게 좀더 얘기해 주십시오. 정말 할머니 말씀대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아무렴. 그렇구말구. 이제 좀 생각이 달라지나 보군. 돌부처라도 그냥 바위가 아니고 부처님의 모습을 새겨 모신 바위니까,
만일 사람이 그 부처님의 이름을 부르고 지성으로 마음을 모아 기원하면, 기묘한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는 부처님이 기원하는 자에게 오셔서 그 소원을 이루어 주는 것이네. 그러기에 말이 있잖은가?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정성이 부족하고 신앙심이 부족하면 그런 사람에게는 그저 바위이고 돌일 뿐이지만, 무정한 바위나 돌, 흙이나 나무라도 정성이 지극한 사람에게는 살아 있는 부처님으로 나타나는 것일세. 그러므로 소원을 이루고 못 이루고는 그 돌부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기원하는 자의 마음 여하에 달려 있는 것일세.”
덕삼은 호기심이 일었다. “정말 그게 가능할까요?” 노보살이 말했다. “당연하지. 이 옥천암에 다니는 신도가 수백 명이지만 소원을 이루지 못한 이가 거의 없다는게야. 세상에 무슨 할 일이 없이 이 험하고 깊은 산골짜기까지 와서 그 고생하고 헛돈 버리며 품 버리겠는가. 여보게 젊은이. 생각해 보게. 안 그런가?” “하긴 그렇기도 하겠군요.”
“그래서 여자들은 마음이 여리고 신앙심이 두터워 열심히 믿고 소원을 이루지만 남자들은 생각이 거칠어 건성건성 믿지. 그러지 않으면 자네처럼 따지기나 하고 말야. 그러니 소원이 쉽게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말야.” 덕삼은 노보살이 가 버린뒤에도 한참 동안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점점 달라져 갔다.
그는 혼자 중얼 거렸다. ‘밑져 봐야 본전인데, 어디 나도 소원이나 빌어 볼까?’ 덕삼은 그 길로 석불에게 달려가 소원을 빌기 시작했다. “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님. 제 소원을 들어주옵소서. 저는 나이가 서른이 넘도록 장가를 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게 예쁜 여인을 배필로 보내 주십시오. 그리하여 아들 딸 넣고 건강하고 잘살게 해 주십시오. 나무장사도 면하게 해 주십시오. 지긋지긋한 가난에게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 이것이 저의 간절한 소원입니다. 관세음보살님, 관세음보살님, 관세음보살님…” 덕삼은 나무를 팔러 갈 때와 팔고 돌아올때 항상 그 해수관음상 앞에서 절을 하고 소원을 빌고 또 이름을 불러 댔다. 여러 날이 지나갔지만 그는 한번도 거르는 일이 없었다. 그야말로 지극정성이었다. 덕삼은 예배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그는 도시락을 부처님께 올렸다.
새로 지은 밥도 아니었다. 깡보리밥 아니면 깡조밥이었고 온통 된장냄새와 김치냄새만 진동하는 반찬이었다. 그는 생각했다. ‘비록 좋은 음식은 아니지만 부처님은 다 이해하실거야.’ 덕삼은 그렇게 하기 어느새 백일이 지났다. 덕삼은 이제 관세음보살상에게 어머니 이상의 다정함을 느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지만 덕삼은 단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하루는 덕삼이 관세음보살에게 소원을 빌고 일어서려는 찰나, 갑자기 주위가 어두워지기 시작하더니 먹장구름이 일고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는 수 없이 관음각에 갇히고 말았다. 비가 멎기를 기다리는 동안 덕삼은 관세음보살상 앞에 우물고누를 그려 놓고 말했다. “관세음보살님, 보살님도 심심하시지요? 저도 그렇습니다. 우리 내기 고누를 한번 두시지 않겠습니까? 저는 이길 자신이 있습니다.
관세음보살님, 만일 관세음보살님꼐서 이기시면 제가 계속해서 공양을 올리겠습니다만, 제가 이긴다면 제 소원을 들어주셔야 합니다. 제 소원이 무엇인지 관세음보살님은 이미 알고 계시지요?” 덕삼은 조약돌 두개를 주워다가 하나는 관세음보살님의 몫으로 하고 하나는 자기 것이라고 했다. “그럼 제가 아랫사람이니 먼저 두겠습니다.” 그는 첫수를 놓고 말했다.
“보십시오, 제가 분명히 이겼습니다. 보살님께서는 지셨구요. 그러니 관세음보살님은 내일이라도 당장 제 소원을 들어 주셔야 합니다.” 어느새 비는 멎었다. 덕삼은 빈 지게를 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혼자 흥겹게 콧노래를 불렀다. 천안삼거리 흥-응 능수야 버들은 흥-응 제멋에 겨워서 휘늘어졌구나 흥-응 에헤야 데헤야 흥-응 성화가 났구나 흥-응 그날 밤 덕삼은 꿈을 꾸었다.
꿈에 아름다운 모습에 하얀 옷을 입은 여인이 나타나서 덕삼에게 말했다. “나는 옥천암에 있는 해수관세음이다. 너의 정성이 하도 지극하고 또한 갸륵하여 네게 도움이 될 만한 일을 일러 주려고 한다. 내일 새벽 첫닭이 울기 전에 나뭇짐을 지고 떠나 날이 밝기 전 자하문 밖에 당도해야 한다. 그리고 문이 열리면서 첫번째로 나오는 여자가 있을테니 그녀에게 이렇게 말하라.
‘남녀가 유별한데 먼저 말을 걸기는 미안하지만, 어디로 가는 누구신지 제가 안내하겠으니 저를 따라 오시지요’라고. 그리고 그녀를 너의 집으로 안내하면 너의 소원을 이루게 될 것이다.” 덕삼은 그 말을 듣고 너무 기뻤다. “감사합니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덕삼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제 소리에 놀라 깨고 보니 꿈이었다. 덕삼은 첫닭이 울기를 기다릴 수가 없었다. 그는 재빨리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나뭇짐을 짊어졌다. 그때 덕삼의 어머니가 부시럭소리에 잠이 깨어 밖에 나와 보니 이미 아들이 사립문을 나서고 있었다. “얘, 덕삼아! 오늘은 첫닭이 울지 않았는데 벌써 나가느냐?” “예, 어머니, 오늘은 일찍 만나 데리고 올 사람이 있어서 그래요.” “그래, 그럼 찬밥 남은 것이라고 먹고 가지.” 어머니가 부엌으로 들어가려 하자 덕삼이 팔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밥 먹을새가 없어요.” “원 뭐 저리 급할까.” 덕삼은 집을 떠났다. 나뭇짐을 지고 30리를 걸어간다는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빈 속이 아닌가. 그러나 그는 즐거웠다. 뭔가 좋은 일이 생길것만 같았다. 지난 밤 꿈 얘기대로라면 예쁜 여인을 만나게 되어 있었다. 그는 길을 걸으며 앞날을 그려 보았다.
다 쓰러져 가는 초가 오두막일망정 벽은 맥질을 하면 된다. 그리고 긴 베개 하나에 이부자리 한 장이면 된다. 아들 딸들이 커가면서 재롱을 부리는 게 눈에 선했다. 큰놈이 말썽을 부리기도 하겠지. 덕삼은 혼자 즐거워서 싱글벙글했다. 자하문밖에 이르렀다. 하지만 아직 문은 열리지 않았다.
다행이다 싶어 나뭇짐을 벗어 놓고 먼동이 트기를 기다렸다. 집에서 이곳 자하문까지는 30리나 되었고 그 30리 길이 너무나 짧다고 생각했는데, 자하문이 열리는 때를 기다린다는 것이 고역이었다. 지루했다. 하지만 참기로 했다. 덕삼의 눈은 자하문 문짝아래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때였다. 자박자박 걷는 소리가 들리는 듯싶었다. 덕삼이 정신을 바짝 차리고 문을 응시하는데, 하얀 버선발이 문앞에서 멈추었다. “관세음보살님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셨어.” 자기도 모르게 그만 소리를 질렀다. 삐걱하고 문이 열렸다.
한 여인이 머리에 보따리를 이고 세검정 쪽으로 종종걸음을 쳤다. 덕삼은 벌떡 일어섰다. 그는 성큼성큼 걸었다. 그러면서도 그 걸음은 매우 빨랐다. 앞서 가던 여인이 힐끗 돌아봤다. 이때다 싶어 그는 여인에게 말을 걸었다. “초면에 실례인 줄은 압니다만, 더욱이 남녀가 유별한데. 하오나 어디로 가시는 낭자인지 제가 길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괜찮으시겠지요?” 여인의 음성은 의외로 차분했다.
아직은 이른 새벽이라서 상대방의 얼굴이 똑똑히 보일 시간도 아니었다. 또한 이 외진 곳에서 낯모르는 남자를 대하고 있지 않는가. “예, 소저는 윤도령이란 총각을 찾아갑니다. 이름은 덕삼이라 하고요.” 덕삼은 자기의 귀를 의심했다. “제가 윤도령, 총각 덕삼이올시다.” “아, 그러세요? 어떻게 알고 오셨습니까?” 덕삼은 사실대로 얘기했다. “간밤에 꿈을 꾸었습니다.
그 꿈속에 한 여인이 나타나 자기는 옥천암의 관세음보살이라며 소개를 하고는 오늘 새벽 자하문밖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을 안내하라 했습니다. 그분이 바로 낭자인 듯싶습니다.” 여인이 말을 받았다. “어쩌면 소저의 꿈과 그리도 같습니까. 소저도 간밤의 꿈에 어떤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나 ‘자하문 밖을 나서면 첫 번째로 어떤 남자를 만날 것이다. 그의 이름은 윤덕삼이며 너의 배필이 될 것이다. 그는 마음씨가 고운 사람으로 네게 해를 끼치지는 않을 것이다.
시간은 내일 새벽 먼동이 틀 무렵이다’하면서 사라졌습니다. 이제 보니 도령이 바로 그 여인이 말하던 윤덕삼도령이셨군요.” “그게 다 천생연분이지요.” “소저도 그리 믿고 싶습니다.” 두 남녀는 십년지기나 된 듯 얘기를 주고받으며 길을 걸었다. 옥천암 관음각 앞에 이르렀을때 덕삼이 쉬어 가자고 했다. 둘은 관세음보살상 앞으로 갔다. 이미 날이 밝았다. 막 떠오르는 태양이 그들 두 사람의 이마를 비추고 관세음보살상에도 비추었다.
“한데 낭자는 성씨가 무엇이오?” 덕삼이 새삼스레 묻자 여인이 대답하였다. “저는 심 낭자라고 합니다. 저의 아버님은 규장각 학사를 지낸 분이고요.” “그렇군요, 심 낭자. 우리 이러고 있을게 아니라 부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절이나 올리고 갑시다.” 덕삼이 먼저 두 손을 모아 합장하고 관세음보살에게 큰절을 올렸다. 심낭자도 따라서 함께 했다. 한참 절을 올리고 있는데 심 낭자가 소리를 질렀다.
“어머! 바로 이분은 간밤의 꿈속에 나타났던 여인과 너무나 같습니다. 아! 그렇군요. 관세음보살님이 우리의 인연을 맺어주셨군요.” “그렇습니다. 관세음보살님은 저의 소원을 들어주셨을 뿐만아니라 심낭자의 소원도 들어 주신 것입니다. 맞지요?” 덕삼은 심 낭자를 돌아봤다. 심 낭자 역시 싱긋 웃었다. 덕삼과 마찬가지로 심 낭자도 짝을 구하고 있었음에 틀림없었다.
심낭자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면서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덕삼은 여인의 볼에 흐르는 눈물을 보고 물었다. “아니, 이 기쁜 날, 어찌하여 낭자께서는 눈물을 흘리십니까? 감격의 눈물인가요? 아니면…” 여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햇살이 기둥을 만들면서 여인의 가슴에 내리꽂히고 있었다. 여인의 앞으로 어디서 나타났는지 다람쥐 한 마리가 잽싸게 지나갔다. 보드라운 꼬리를 하늘을 향하고 사뿐히 뛰어 지나갔다. 관음각 앞으로 흐르는 냇물 소리가 더 높게 들리는 듯했다. 심여인은 명문대가의 규수로서 부러울것 없이 자랐다.
열여덟살때까지 어머니로부터 신부수업을 착실히 받았다. 시서와 음악, 예의범절, 음식만들기, 바느질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잘 익혔다. 그녀는 열여덟 살에 어느 양반댁으로 시집을 갔다. 혼처는 이미 오래전에 정해져 있었다. 그녀는 시집가던 날, 시댁에서 소박을 맞았다. 이유는 그녀에게 공방살이 끼었다는 것이었다.
공방살이 끼면 자식을 낳을 수 없다고 했다. 남의 집 며느리로서, 아내로서 자식을 낳을수 없다는 것은 여인에게 있어서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첫날밤부터 남편을 보지 못했다. 3년을 기다렸지만 남편은 끝내 심 낭자를 가까이하지 않았다. 그녀는 친정으로 돌아왔다. 친정부모님은 예전처럼 대해 주지 않았다. 시집간 날부터 소박을 맞아 되돌아온 딸이 늘 짐스러웠고, 심낭자는 심낭자대로 천덕꾸러기가 되어갔다. 그녀는 친정에 돌아와 7년 간 남편의 회심이 있길 기다렸지만,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심 낭자는 처녀나 다름이 없었다. 실제로 한번도 남편과의 만남이 없었다. 그러나 다시 시집을 갈 수가 없었다. 호적으로는 이미 남의 아내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혼자 지내는 것 역시 고역이었다. 자신도 자신이려니와 자기때문에 애처로워하는 부모를 바라보기가 더욱 면구스러웠다. 심 낭자는 눈물로 세월을 보냈다. 어떻게든 친정집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심 낭자는 어머니에게 졸라 댔다. ” 어머님, 저는 어찌해야 합니까? 아무래도 집을 떠나야만 할 것 같습니다.”
“떠나다니, 어디로 떠난단 말이야.” “딱히 정해 놓은 곳은 없습니다. 하오나! 이대로 산다는 것은 저도 지지만, 다른 식구들에게도 더없는 고역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려무나.” 심 낭자의 어머니는 값나가는 금, 은, 보석, 산호, 비취, 진주 등 귀중한 패물을 한 보따리 챙겨 주었다. 그날 밤, 심 낭자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한 여인이 나타나 말했다. “성을 벗어나려거든 다른 문으로 나가지 말고 반드시 자하문으로 나가거라.
그리고 첫 번째로 만나는 남자가 그대의 배필이 될 것이다. 명심하라. 그 사람 의 이름은 윤덕삼이며 아직 혼처를 정하지 못한 노총각이니라.” 그렇게 해서 심 낭자는 덕삼이를 만났고, 이제 그와 함께 관세음보살님께 기도를 드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 꿈속의 여인이 바로 이곳 옥천암의 해수관세음보살이었던 것이다.
덕삼은 심 낭자의 얘기를 듣고 너무나 감격했다. 심 낭자가 준비해 온 점심 도시락을 꺼내어 관세음보살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린 뒤 아침으로 식사를 때웠다. 그후 그들은 따로 날짜를 택하여 간소하게 혼례를 치렀다. 심낭자가 지니고 온 패물을 팔아 논밭을 사고 집과 가재도구도 장만했다.
그리하여 신도면 일대에서 꽤 넉넉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것이 모두 옥천암에 모셔져 있는 해수관세음보살의 가피에 의한 것이었다.
<동봉스님이 풀어쓴 불교설화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