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옛날 ‘다미사’라는 임금이 있었다. 그는 외도 96종을 받들어 섬기고 있었다. 그가 하루는 어쩌다 선심을 일으켰다. 크게 보시를 한번 행하고 싶었던 것이다. 대개 큰 보시는 칠보를 산처럼 쌓아놓고, 그것을 얻으러 오는 사람에게 한줌씩 가져가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게 그들의 보시풍속이었다. ‘다미사’의 보시는 시작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보물을 한줌씩 집어갔다.

부처님께서도 그 소식을 들었다. 부처님은 그를 교화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바라문의 행색으로 변장을 하고 그 나라로 갔다. 그리고 보시하는 장소로 찾아갔다. 왕이 부처님께 물었다.

“그대는 구하려는 것이 뭐요?”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보물을 얻어다 집을 짓고자 하는 것이오”

그러자 왕이 말했다.

“좋소. 보물을 한줌 가져가시오”

부처님께서는 보물을 한줌 쥐셨다. 그리고는 돌아서서 몇 발 걸어 나오다가는 다시 되돌아서시었다. 되돌아서시더니 쥐었던 보물을 본래 있던 곳에 다시 놓으시었다. 왕이 그것을 보고 그 이유를 물었다.

“왜, 보물을 가져가지 않고 도로 놓는거요”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이것으로는 겨우 집밖에 지을 수가 없소. 집만 있으면 뭐합니까. 장가를 들어야 하는데 그 밑천이 없소. 장가를 들어야 집도 필요한거요”

왕이 그 말을 듣고 말했다.

“그럼, 세 움큼쯤이면 되겠소? 세 움큼을 가져가시오”

부처님은 왕이 말한대로 세 움큼의 보배를 그릇에 담아서 가지고 돌아섰다. 그러나 부처님은 아까와 같았다. 보물을 가지고 나가시는가 싶었는데 다시 돌아와 보물을 본래 있던 자리에 쏟아버리는 것이었다. 왕이 물었다.

“또 왜 그러시오?”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이것으로 집도 짓고 장가도 들 수는 있으나 그것만 있으면 뭐 하겠소. 논·밭도 있어야 하고 마소도 있어야 하는데 그걸 준비할 수까지는 없을 것 같소. 그래서 도로 갖다놓는거요”

왕은 말했다.

“그럼 일곱 움큼쯤이면 되겠소? 일곱 움큼을 집어가시오”

부처님은 일곱 움큼의 보물을 담았다. 그러나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걸 들고 나가시더니 이내 되돌아와 다시 본래 있던 자리에 쏟으시는 것이었다. 왕이 그것을 보고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또 물었다.

“이번엔 왜 그러시오?”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집 있고 전답도 있고 가족이 있다 하더라도 만일 길흉사가 있으면 그 비용을 뭘로 감당하겠습니까. 그러니 이 보물만 가지고는 아무 소용이 없소”

왕이 말했다.

“그렇소? 그러면 이 보물들을 다 가져가시오”

이에 부처님은 그 보물들을 가져가는 척 하시다가 역시 다시 반납하는 것처럼 했다. 왕은 또 이상히 여겼다. 그래 그 까닭을 물었다. 그 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생각해보니 세상의 모든 것은 덧없어서 오래가지 못하오. 보물이 산처럼 쌓여 있대도 이익 될 게 없을 것이오. 욕심이란 고통만 가져올 뿐 차라리 무위(無爲)의 도를 구함만 같지 못할 것 같소. 그래 보물을 다시 돌려주는 것이오”

왕이 그 뜻을 알아차리고 가르침을 청했다. 부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물거품 같다고 세상을 보라

아지랑이 같다고 세상을 보라.

이렇게 세상을 관찰하는 사람은

덧없는 세상을 살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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