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대략 80여 년 전 지리산 천은사 삼일암(三日庵)이라는
선원에서 어느 해 겨울 통도사에서 계신 박성월(朴性月) 스님을
모셔놓고 전국에서 난다 긴다하는 선객 50여명이 모여
한철 정진을 하려 하고 있었다.
그런데 천은사 큰절에 나이 70여세 되는 호은(湖隱)스님이 있었다.
일찍이 출가하였으나 강당이나 염불당, 또는 기도처만 사판승으로
다녔기 때문에 그 방면에는 아는 것이 많았으나,
선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다. 호은 스님은 대처승이었다.
하루는 결제 전날 입승 스님에게 와서
“소승도 큰절에서 오르내리면서 다른 스님네와 같이 공부할 수
있겠습니까? ”
하고 입방을 원했다. 입승스님은
“한 철 양식을 미리 내어도 방(榜)을 받을 수 없는데 어림도 없소.
그 따위 말은 하지도 마시오.”
하고 호통을 치며 거절하였다.
그러나 그 뜻을 굽히지 않고 끈질기게 달라붙으면서 사정사정하였다.
그러자 그 사실을 아신 조실 스님이
“우리 대중이 공부하는데 방해만 되지 않는다면 받아주어야 한다.
그 노장님 뜻은 아무도 막을 수 없느니라. ”
하시고, 그 노장님에게
“이왕이면 아주 올라와서 공부하시는 것이 좋지 않겠소?”
하시었다. 그러나 그 대답이 가관이었다.
“돈 빌려준 문서와 쌀 빌려준 문서를 지켜야 하고,
더구나 우리 마누라 궁둥이는 떠날 수 없어서…… ”
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 당시 최혜암스님 및 대중 모두는
조실 스님을 모시고 보람 있게 한철 공부를 잘 성취하려고
하였는데, 이 말을 듣고 나니 모두 신심이 뚝 떨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조실 스님의 명령이라 대중의 불평도 어쩔 수 없었다.
결제가 시작되고 노장스님은 큰절에서 오르내리면서 참선을
하였는데 본인은 시간을 잘 지키려고 애를 쓰는 것 같았으나
가끔 시간이 일정하지 않은 적도 있었다.
어떤 날은 한 낮이 되어 오기도 하였고,
어떤 때에는 추운 새벽에 수염에다 고드름을 주렁주렁 달고
오기도 하였다.
그리고 대중들이 모여 앉아 공부이야기를 할 때에는
그는 깜깜 절벽이었다. 그래서 대중은,
“원숭이가 참선하는 흉내만 내고도 천상락(天上樂)을 받았다고
하는데 저런 자도 무슨 인연이 있을까?”
하고 비웃었다.
마침 반 살림이 끝난 어느 날 조실 스님이 법문을 마치고
법상에 내려오셔서 차를 마시고 계셨다.
그때 최혜암 스님이 6년 전 혜월(慧月) 스님 회상에서 들은
법문이 생각나 성월(性月) 조실 스님께 여쭈어보았다. 그 내용은
어떤 수좌가 혜월 스님에게 묻기를
“소를 타고 소를 찾는다(騎牛覓牛)는 말이 있는데
그 도리는 어떤 도리입니까? ”
라고 묻자, 혜월스님은 그를 보시고
“왜 그런 소리를 하고 다니느냐?”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혜월 스님이 그 젊은 수좌에게
대답하신 말씀이 잘한 것입니까?
라는 말이었다. 듣고 있던 성월 스님은 혜월 스님에게 방망이를
내리는 뜻으로
“그 늙은이가 그래가지고 어떻게 학인들 눈을 뜨게 하겠는가?”
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혜암 스님이
“그럼 조실 스님 같으시면 그 때 무엇이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
하고 묻자, 조실 스님은
“그 젊은 수좌가 혜월 스님에게 묻듯이 그대가 내게 물어보게.”
하셨다. 혜암 스님은 가사 장삼을 수하고 큰 절을 세 번 드린 뒤에
“소를 타고 소를 찾는다(騎牛覓牛)는데 그것이 무슨 도리입니까?”
하고 물었다. 조실 스님은
“그대가 소를 타고 소를 찾는다니 그 찾는 소는 그만두고
탄 소나 이리 데리고 오너라. “하셨다.
혜암스님은 말이 막혀 어리둥절하여 앉아있었고,
여러 스님들도 멍하니 앉아만 있었는데,
그때 참선이 무엇인지 잘 알지도 못하고 늦게 공부를 시작한
호은 스님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춤을 덩실덩실 추며
“대중 스님들은 몰라도 나 혼자만은 알았습니다.”
라고 말하면서 곧이어
“탄소를 잡아 대령하였으니 눈이 있거든 똑바로 보시오.”
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 그때 대중은 모두 웃으면서
“어지럼병이 지랄병이 된다더니 저 노장님이
이제 미치기까지 하는구나.”
하고 비웃었다. 그러나 조실 스님은 그러지들 말라 하시고
그 노장님을 조실 방으로 불러 불조(佛祖)의 공안에 대하여
차근차근 물어보시니 하나도 막힘 없이 다 대답하므로
조실 스님은 그 노장님을 깨달았다고 인가를 하였다.
조실 스님이 대중들에게 법상을 차리게 하고 높이 앉게 한 후
대중들 보고 3배하게 하니
호은 노장이 툭 터진 목소리로 법당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한 소리를 읊었다.
홀문기우멱우성 忽聞騎牛覓牛聲
돈각즉시자가옹 頓覺卽時自家翁
비거비래법성신 非去非來法性身
부증불감반야봉 不增不減般若峰
홀연히 소 타고 소 찾는다는 말을 듣고
즉시 자기의 주인공인줄 깨달았네.
오고 감이 없는 것이 법성신이고
늘지도 줄지도 않는 것이 반야봉이라.
* 법성(法性) 진리의 성품
* 반야(般若) 마음을 비운 지혜
이것이 바로 호은 노장의 오도송(悟道頌)이었다.
이 소리를 들은 당시 젊은 최혜암 스님은 눈앞이 캄캄하여지고,
사흘 동안은 먹는 밥이 마치 모래알을 씹는 것 같았다고 하였다.
또한 그 때 대중 가운데에 박 추월(朴秋月)이라는 스님이 있었는데
그는 이 것을 듣고 돌아앉아 꼬박 16일 동안을 단식하며 지독하게
정진하였는데도 불구하고 기어이 화두 통명(通明)은 못하고,
아래 윗니가 모두 솟고 내려앉아 거의 죽게 될 지경에 이르렀다.
혜암 스님는 거의 백리 길을 다니면서 약을 구해 겨우 박추월스님을
살렸다고 하였다.
당시 공부 잘한다고 뽐내던 수십 명 선객들이 비웃고 업신여기던
그 노장님이 그렇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던 것이다.
그 때 그 노장님이 조실 스님 앞에서 큰 소리로
“조실 스님께서 나를 붙들어 주시지 않았더라면 나는 영겁(永劫)으로
무명(無明)속에서 헤맬 뻔하였습니다. ”
하면서 흐느껴 우는 것을 혜암스님이 직접 보았다고 하였다.
그 뒤 그는 강원에서 불경 공부하던 몇 명의 제자들을 모두 불러내
선원으로 보내 참선 공부하게 하고,
떨어지기 싫어하던 마누라도 한 살림을 차려 따로 살게 마련해주더니,
해제하기도 전에 큰 사찰인 금강산 석왕사의 조실 스님으로
초청되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