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우경(賢愚經) 제11권

현우경(賢愚經) 제11권

45.무뇌지만품(無惱指鬘品)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그 나라 왕의 이름은 바사닉(波斯匿)이요, 한 재상은 큰 부자로 매우 총명하였다. 재상의 아내는 아들을 낳았는데, 얼굴은 단정하고 몸은 뛰어났다. 재상은 아기를 보고 매우 기뻐하여 곧 관상쟁이를 불러 상을 보게 하였다. 관상쟁이는 아기 상을 보고 매우 기뻐하면서 말하였다.

“이 아기의 복된 상은 사람 중에서 뛰어나고 총명하고 지혜로워 사람보다 뛰어난 덕이 있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그 말을 듣고 못내 기뻐하면서 이름을 지으라고 하였다. 관상쟁이는 물었다.

“이 아기를 밴 뒤로 어떤 이상한 일이 있었습니까?”

재상은 대답하였다.

“그 어미는 본래 성질이 선량하지 않았는데, 아기를 밴 뒤로는 보통 때와 아주 달라졌다. 그래서 심성이 공순하고 남에게 덕을 베풀기를 즐겨 하며, 남의 불행을 가엾이 여기고 남의 허물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관상쟁이는 말하였다.

“그것은 그 아기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름을 아흔적기(阿賊奇)[진(晉)나라 말로 무뇌(無惱)라는 뜻이다]라 하소서.”

아기는 차츰 장성하자, 용력이 뛰어나고, 장사의 힘이 있어 혼자서 천 명을 당적할 만하였다. 날쌔기는 나는 새를 붙잡을 만하였고, 달리기는 달아나는 말보다 빨랐다. 그래서 그 아버지는 매우 사랑하였다.

그 때 그 나라에 어떤 바라문이 있었다. 그는 총명하여 두루 통달하였고, 많이 듣고 널리 알았다. 그에게는 5백 명 제자가 있어 그를 따라 공부하고 있었다. 그래서 재상은 그 아들을 데리고 가서 그에게 맡겨 공부하게 하였다. 바라문은 승낙하고 그를 받아 가르쳤다.

아흔적기는 밤낮으로 부지런히 공부하여 하루 물어 배우는 것이 남이 1년 동안 배운 것보다 나았다. 그래서 공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모든 것을 두루 통달하였다. 그 스승도 특별히 대우하여 오나 가나 항상 함께 있었고, 그 동학(同學)들도 마음을 기울이고 우러러 공경하였다.

그 때 그 스승 바라문의 아내는 그의 단정한 얼굴과 빼어난 재질이 남보다 훨씬 뛰어난 것을 보고, 속으로 색정을 품어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여러 제자들이 항상 그 주위에 있어 그가 혼자 있을 때가 없었기 때문에 하소연하고 싶었으나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가진 마음을 풀 길이 없어 항상 근심하고 안타까워하였다.

마침 어떤 시주가 그 스승과 제자들을 청해 석 달 동안 공양하게 되었다. 바라문은 가만히 그 부인과 의논하였다.

“나는 지금 석 달 동안의 청을 받아 떠나야 하는데 한 제자만 남겨 두어 내 뒷일을 보살피게 하겠소.”

아내는 속으로 기뻐하면서 가만히 꾀를 내어 아뢰었다.

“그렇게 하십시오. 그런데 떠나신 뒤에 집 일이 중요하오니, 재주와 능력이 있는 아흔적기를 남겨 두어 뒷일을 부탁하심이 좋을까 합니다.”

그래서 바라문은 곧 아흔적기에게 분부하였다.

“나는 지금 저 시주의 청을 받아 간다. 뒷일이 매우 많아 누군가가 보살펴야 하겠는데, 그대는 재주와 능력이 있으니, 나를 위해 뒷일을 돌봐 다오.”

아흔적기는 분부대로 함께 가지 않고 머무르기로 하였다. 스승은 다른 제자들을 데리고 길을 떠났다.

그 아내는 마음이 느긋하고 한량없이 기뻤다. 매우 아름답게 단장하고 아양을 떨면서 아흔적기에게 말을 걸어 그 마음을 흔들어 보았다. 그러나 아흔적기는 뜻이 굳어 그녀의 유혹에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여자는 정욕이 더욱 왕성하여 진정을 하소연하였다.

“나는 당신을 사모한 지 오래였습니다. 그러나 여러 사람 등쌀에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당신 스승이 떠날 때에 내가 일부러 당신을 붙들어 둔 것입니다. 이제는 아무도 없으니 내 청을 들어 주십시오.”

아흔적기는 거절하면서 타일렀다.

“우리 바라문 법에는 스승의 아내와 음행하지 않습니다. 만일 그 잘못을 범하면 그는 바라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차라리 목을 잘라 죽을지언정 그런 짓은 하지 않습니다.”

그 여자는 쌓아 온 보람이 무너지자 창피스럽고 분하여 흉계를 꾸몄다. 그 스승이 돌아올 때가 되자, 그녀는 자기 위아래 옷을 모두 찢고 손톱으로 얼굴을 할퀴어 상처를 내고는, 먼지를 뒤집어 쓰고, 초췌한 꼴로 땅에 누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때 바라문은 제자들과 함께 돌아왔다. 안에 들어가 그 아내의 정상을 보고 그 까닭을 물었다.

“왜 그렇게 되었소?”

아내는 눈물을 흘리면서 “물을 일이 못 됩니다.”

그러나 바라문은 더욱 궁금하였다.

“당신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보시오. 왜 말하지 않소?”

아내는 울면서 말하였다.

“당신이 늘 칭찬하시던 아흔적기가 당신이 떠난 뒤로 늘 나를 침범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내가 끝내 듣지 않자, 내 옷을 마구 찢고 내 몸에 상처를 내었습니다. 당신이 기른 제자로서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바라문은 그 말을 듣고 매우 분개하여 그 아내에게 말하였다.

“저 아흔적기는 천 사람을 당할 힘이 있고 또 재상의 아들로 그 종족이 강성하여 비록 죄를 다스리려 하더라도 천천히 하는 것이 좋겠소.”

이렇게 의논한 뒤에 아흔적기를 찾아가 보고, 그 방편을 따라 위로하고 타일렀다.

“내가 떠난 뒤에 너는 집 일을 돌보느라 수고하였다. 또 너는 지금까지 충성을 다해 나를 받들어 섬겼다. 그래서 나는 너의 뜻에 감동하여 그 은혜를 갚으려고 늘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아직까지 너에게는 말하지 않은 비법(秘法)이 하나 있다. 만일 그것만 성취하면 너는 곧 범천에 날 것이다.”

아흔적기는 꿇어앉아 “그것은 어떤 법입니까?” 하고 물었다.

바라문은 대답하였다.

“만일 이레 동안에 천 사람 머리를 베고 그 손가락 하나씩 잘라 1천 개 손가락을 얻어 그것을 엮어 머리꾸미를 만들면, 그 때에는 범천이 스스로 내려와 네가 목숨을 마친 뒤에는 결정코 범천에 날 것이다.”

아흔적기는 이 말을 들었으나 망설이면서 다시 그 스승에게 아뢰었다.

“그것은 그렇지 않을 것 같습니다. 중생을 죽이고 어떻게 범천에 날 수 있겠습니까?”

스승은 말하였다.

“너는 내 제자로 어떻게 나의 지극히 중요한 말을 믿지 않는가. 만일 네가 믿지 않으면 그것은 곧 의리를 끊는 것이니 너는 너 갈 데로 가고 여기서는 머물지 말라.”

그리고는 칼을 땅에 꽂고 주문을 외웠다. 주문을 마치자, 아흔적기는 모진 마음이 생겼다. 스승은 그런 마음을 알고 그에게 칼을 주었다. 그는 그 칼을 받자 밖으로 내달아 사람을 만나는 대로 죽여 손가락을 잘라 머리꾸미를 만들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그를 앙구마라(鴦仇魔羅)[진(晉)나라 말로 지만(指鬘)이라는 뜻이다]라고 불렀다.

그는 돌아다니면서 사람을 죽여 이레가 되자 9백99개의 손가락을 얻어 한 손가락이 모자랐다. 나머지 한 사람만 죽이면 손가락 수가 차게 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두 숨어 버리고 감히 나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아무리 돌아다녔으나 구할 수가 없었다.

이레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았으므로 그 어머니는 그를 가엾이 여겨 사람을 보내어 불러오려 하였다. 그러나 모두 두려워하여 아무도 같이 가려 하지 않았다. 그 어머니가 음식을 가지고 몸소 갔다. 아들은 멀리서 어머니를 보고 달려와 죽이려 하였다. 그 때 어머니는 그에게 말하였다.

“이 불효한 자식아, 어찌 그런 흉악한 마음을 먹고 나를 해치려 하느냐?”

아들은 말하였다.

“나는 스승님 명령을 받았습니다. 이레 동안에 사람 손가락 천 개를 얻으면 장차 범천에 나게 된다고 합니다. 날수는 이미 찼는데 손가락 수는 아직 채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어머니라도 죽여야 하겠습니다.”

어머니는 다시 말하였다.

“일이 진실로 그렇다면 내 손가락만 자르고 나를 죽이지는 말라.”

그 때 부처님께서는 멀리서 바라보시다가 그를 제도할 수 있음을 아시고 한 비구로 변하여 그 곁으로 가셨다. 그는 이 비구를 보자 어머니를 버리고 뛰면서 달려와 죽이려 하였다. 부처님께서는 그가 오는 것을 보시고 천천히 걸어 피해 가셨다. 그는 힘을 다해 달려갔으나 따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멀리서 불렀다.

“비구야, 잠깐 머물러라.”

부처님께서는 멀리서 대답하셨다.

“나는 언제나 머물러 있는데 네가 머무르지 않는구나.” “어째서 너는 머무르는데 내가 머무르지 않는다고 하는가?”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나는 모든 감관이 고요하여 자유를 얻었다. 그런데 너는 나쁜 스승에게서삿된 법을 배워 네 마음이 변하였으므로 가만히 머무르지 못하고 밤낮으로 사람을 죽여 끝없는 죄를 짓는구나.”

그는 이 말을 듣고 갑자기 마음이 열려 칼을 멀리 던져 버리고 멀리서 예배하고 스스로 돌아왔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그를 기다렸다가 부처 몸을 도로 나타내시자 마치 맑은 날의 광명처럼 서른두 가지 모습이 빛나고 묘하였다. 그는 부처님의 빛나는 상호와 의젓한 거동을 보고 몸을 땅에 던져 허물을 뉘우치면서 스스로 꾸짖었다.

부처님께서는 그를 위해 간단히 설법하셨다. 그는 법안이 깨끗하게 되고 믿는 마음이 순수해져서 집 떠나기를 청하였다. 부처님께서는 곧 허락하시고, “잘 왔구나, 비구여” 하시자, 그의 머리와 수염은 저절로 떨어지고 법복은 몸에 입혀졌다. 부처님께서는 그의 근기를 따라 거듭 설법하셨다. 그는 마음의 때가 아주 없어지고 아라한의 도를 얻었다. 부처님께서는 곧 그를 데리고 기타 동산으로 돌아가셨다.

그 때 그 나라의 인민들은 이 앙구마라의 소문을 듣고 모두 놀라고 두려워하였다. 그래서 아기를 밴 사람이나 짐승들은 두려움에서 아기를 낳지 못하였다.

그 때 어떤 코끼리가 새끼를 낳지 못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앙구마라에게 명령하셨다.

“너는 코끼리에게 가서 자비로운 말로 ‘나는 세상에 나온 뒤로 아직 한 사람도 죽이지 않았다’고 말하라.”

그는 여쭈었다.

“저는 지금까지 많은 살생을 하였는데, 어떻게 죽이지 않았다고 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너는 우리의 거룩한 법 안에서 처음 났기 때문이니라.”

그 때 앙구마라는 옷을 바르게 하여 분부를 받고, 거기 가서 말씀대로 말하였다. 그러자 코끼리는 이내 새끼를 낳고 모두 안온하였다. 그는 절에 돌아와 어떤 방에 앉아 있었다.

그 때 파사닉왕은 많은 군사들을 데리고 몸소 가서 앙구마라를 잡으려 하였다. 그를 잡으려면 길이 기타 동산을 거쳐야 되게 되었다.

그 때 기타 동산에는 어떤 비구가 있었다. 그의 몸은 병들고 추하였으나 음성은 매우 아름다웠다. 마침 그는 소리를 높여 노래를 불렀다. 그 음성은 매우 화창하여 군사들은 모두 귀를 기울이면서 듣기에 염증을 내지 않았고, 코끼리와 말들도 귀를 쫑긋하고 들으면서 가지 않고 서 있었다. 왕은 괴상히 여겨 어자(御者)에게 물었다.

“왜 이러느냐?”

어자는 아뢰었다.

“저 노랫소리 때문에 이 코끼리와 말들이 발을 멈추고 서서 듣습니다.”

왕은 말하였다 “이 짐승들도 법 듣기를 즐겨하거늘 하물며 우리 사람이 가서 듣지 않겠느냐?”

군중들을 데리고 잠깐 기타 동산에 들렀다. 거기 이르러서는 먼저 코끼리에서 내려 찼던 칼을 풀고 일산을 치우고는, 바로 부처님께 나아가 예배하고 문안 드렸다. 그 비구의 노랫소리는 이미 그쳤다. 왕은 먼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아까 듣던 그 노랫소리가 맑고 묘하며 화창하여 마음으로 기뻐하고 흠모하였습니다. 원컨대 그를 만나 볼 수 있으면 돈 10만 냥을 보시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먼저 그 돈을 주고 그 다음에 만나 보시오. 만일 먼저 만나 보면 한 푼도 줄 마음이 생기지 않을 것이오.”

그리고는 곧 그를 데려다 보이셨다. 그 형상은 병들고 추하여 차마 볼 수 없었다. 그래서 한 푼도 줄 생각이 없었다. 왕은 자리에서 일어나 꿇어앉아 부처님께 여쭈었다.

“지금 저 비구는 몸은 아주 작고 추하나 그 음성은 그처럼 깊고 맑으니, 전생에 어떤 업을 지었기에 지금 이런 과보를 받았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잘 듣고 명심하라. 과거에 가섭이라는 부처가 있었다. 그는 중생을 두루 제도한 뒤에 곧 열반에 들었다. 그러자 기리비(機里毘)라는 그 나라 왕은 그의 사리를 거두어 탑을 세우려고 하였다. 그 때 네 용왕은 사람 형상으로 변하여 그 왕에게 가서 물었다.

‘세우려는 탑 재료는 보물로 하겠습니까, 흙으로 하겠습니까?’

왕은 대답하였다.

‘그 탑 크기만한 많은 보물이 없는데, 어떻게 보물로 할 수 있겠는가. 지금 흙으로 만들겠는데 둘레는 5리요, 높이는 25리로, 아주 우뚝 솟아 볼 만한 것을 만들고 싶다.’

용왕은 아뢰었다.

‘우리는 사람이 아니요, 모두 용왕입니다. 왕께서 탑을 세운다는 말을 듣 고 일부러 와서 여쭙는 것입니다. 진실로 보물을 쓰시고자 하시면 우리가 도와 드리겠습니다.’

왕은 기뻐하면서 말하였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용들은 다시 말하였다.

‘네 성문 밖에 네 개의 큰 벽돌이 있습니다. 성 동쪽 샘물을 길어다 벽돌을 만들면 보랏빛 유리가 될 것이요, 성 남쪽 샘물을 길어다 벽돌을 만들면 벽돌이 된 뒤에는 모두 황금이 될 것이요, 성 서쪽 샘물을 길어다 벽돌을 만들면 벽돌이 된 뒤에는 모두 은으로 변할 것이요, 성 북쪽 샘물을 길어다 벽돌을 만들면 벽돌이 된 뒤에는 백옥으로 변할 것입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더욱 기뻐하여 곧 네 사람의 도감(都監)을 내어 각기 한 쪽씩 맡게 하였다.

세 도감의 공사는 거의 되어 가는데, 한 도감은 게을러 공사가 추진되지 않았다. 왕은 나가 시찰하다가 그것을 보고 이치로 따져 나무랐다.

‘그대는 마음을 쓰지 않았으니 벌을 받아야겠다.’

그는 도리어 원망하면서 왕에게 아뢰었다.

‘이 탑이 너무 커서 언제 될지 모르겠습니다.’

왕이 떠난 뒤에 그는 여러 인부들을 독려해 밤낮으로 부지런히 추진하여 공사는 한꺼번에 끝났다. 탑은 매우 높았고 온갖 보배는 빛났으며, 새기고 장식한 장엄은 아주 장관이었다. 그는 이것을 보고 기뻐하여 먼저 허물을 뉘우치고, 금방울 하나를 탑 머리에 달고 스스로 원을 세웠다.

‘내가 나는 세상마다 음성이 매우 아름다워 일체 중생들이 모두 듣기를 즐겨 하고, 또 장래에 석가모니부처님을 만나 생사를 벗어나게 하소서.’ 라고 하였소.

대왕이여, 알고 싶으십니까? 그 때에 한 도감으로 공사를 더디게 하고 탑이 크다고 원망한 이가 바로 이 비구요. 그는 탑이 큰 것을 꺼려 하여 원망하였으므로 5백 세상 동안 늘 몸이 병들고 추하였으며, 그 다음에 기뻐하면서 탑 머리에 방울을 달고 좋은 음성을 구하였고, 또 나를 만나기를 원하였기 때문에 5백 세상 동안 그 음성이 매우 아름다웠으며, 지금 나를 만나 해탈을 얻게 된 것이오.”

왕은 이 말을 듣고 곧 하직하고 물러가려 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왕에게 물으셨다.

“어디로 가려 하시오?”

왕은 아뢰었다.

“우리 나라에 앙구마라라는 나쁜 도적이 인민들을 죽이면서 횡포를 부리고 돌아다닙니다. 지금 군사를 거느리고 그를 잡으러 갑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앙구마라는 지금 같아서는 개미도 죽이지 못할 것인데, 하물며 다른 생물이겠느냐.”

왕은 마음 속으로 생각하였다.

‘부처님께서 이미 항복받으셨구나.’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앙구마라는 지금 이미 세속을 떠나 도에 들어가 아라한이 되어 온갖 번뇌가 다 없어졌소. 지금 어떤 방에 있는데 만나고 싶습니까?” “보고 싶습니다.”

왕은 곧 일어나 그 방문 밖에 이르러 그의 기침 소리를 들었다. 왕은 그의 포악에 많은 사람이 죽은 것을 생각하고, 두려워하여 땅에 쓰러져 기절하였다가 한참 만에야 깨어났다. 왕은 부처님께 돌아와 이 사실을 아뢰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대왕은 오늘만 그의 음성을 듣고 땅에 쓰러져 기절한 것이 아니라, 지난 세상에서도 그의 음성을 듣고 그렇게 기절하였던 것이오. 대왕이여, 잘 들으시오. 먼 옛날 이 염부제에 바라내라는 큰 나라가 있었소.

그 때 그 나라에는 어떤 독새[毒鳥]가 있어 온갖 독벌레를 잡아먹고 살았소. 그 몸은 아주 독해 가까이 할 수가 없었소. 그래서 그 그림자만 지나가도 중생들이 모두 죽었고, 나무들도 모두 말라 버렸소.

어느 때 그 새는 어떤 숲을 지나다가 한 나무 위에 앉아 울려고 기침하였소. 마침 그 때 그 숲 속에 살던 흰 코끼리가 그 곁의 나무 밑에 있다가 독새 소리를 듣고 땅에 쓰러져 기절하여 꼼짝하지 못하였소.

이와 같이 대왕이여, 그 때의 독새는 바로 지금의 저 앙구마라요, 흰 코끼리는 바로 지금의 대왕의 몸이오.”

왕은 다시 아뢰었다.

“저 앙구마라는 몹시 포악하여 그처럼 사람을 죽였는데 어떻게 부처님의 교화를 입고 선(善)을 닦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앙구마라는 오늘만 그처럼 많은 사람을 죽이고 내 교화를 입은 것이 아니라, 과거 세상에서도 그들을 죽였고 나도 그를 교화시켜 착한 행을 생각하게 하였소.” “알 수 없습니다. 그들이 전생에 해를 입은 일과 부처님께서 교화하신 그 일은 어떠합니까? 원컨대 설명하여 주소서.”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잘 듣고 명심하시오. 먼 옛날 아승기겁 전에 이 염부제에 바라내라는 큰 나라가 있었고, 그 나라 왕의 이름은 바라마달(波羅摩達)이었소. 그 때에 왕은 네 종류 군사를 데리고 숲 속에 들어가 사냥을 하였소. 왕은 어느 늪 위에 이르러 짐승을 쫓아 홀몸으로 혼자 깊은 숲 속에 들어갔소. 그 때 왕은 몹시 피로해 말에서 내려 조금 쉬었소. 그 숲 속에 사는 어떤 암사자는 음욕이 발동하여 그 짝을 찾아다녔으나 끝내 얻지 못하였소.

마침 숲 속에 홀로 앉아 있는 왕을 보고는 음탕한 마음이 더욱 왕성해졌소. 그는 왕을 따르려 생각하고 그 곁에 가까이 가서 꼬리를 위로 들고 섰소. 왕은 그 뜻을 알고 생각하였소.

‘이것은 사나운 짐승으로서 힘은 능히 나를 죽일 수 있다. 만일 내가 그 뜻을 따르지 않으면 해를 입을지 모른다.’

왕은 두려움 때문에 그 사자를 따라 일을 치렀소. 사자는 돌아가고 또 여러 군사들도 모여 왔소. 왕은 그들을 데리고 궁성으로 돌아왔소. 사자는 그 뒤로 새끼를 배고 달이 차서 한 아들을 낳았소. 형상은 꼭 사람 같으나 오직 발에 얼룩점이 있었소. 사자는 과거를 생각해 그것이 왕의 아들인 줄 알고, 물고 와서 왕 앞에 두었소.

왕도 생각하다가 전의 일을 기억해 그것이 자기 아이임을 알고 거두어 길렀소. 발에 얼룩점이 있다 하여 이름을 가마사파타(迦摩沙波)[진(晉)나라 말로 박족(駮足)이라는 뜻이다]라 하였소. 아이는 차츰 자라나자 재주와 뜻이 웅장하고 사나웠소. 부왕이 죽은 뒤에 박족이 왕위를 이어 나라를 다스렸소.

그 때 박족왕에게는 두 부인이 있었소. 첫째는 왕족이요, 둘째는 바라문족이었소.

박족왕은 어느 날, 성을 나가 동산으로 놀러 가면서 두 부인에게 말하였소.

‘나를 따라 뒤에 오라. 먼저 온 이에게는 하루 동안 같이 즐길 시간을 주겠지마는, 뒤에 떨어진 이는 나는 보지 않으리라.’

왕이 떠난 뒤에 그 두 부인은 몸을 꾸미고 수레를 장식해 타고 한꺼번에 떠났소. 도중에서 천사(天祠)를 보자, 바라문족 부인은 수레에서 내려 거기에 예배를 마치고 급히 따랐으나 그래도 뒤에 닿았소. 왕은 약속대로 그를 앞에 두지 않았소.

그러자 그 부인은 분하고 원통하여 천신을 원망하고 꾸짖었소.

‘나는 너에게 예배하였기 때문에 왕의 박대를 받게 되었다. 만일 하늘 힘이 있다면 왜 나를 보호하지 못하는가?’

원한과 울분으로 가만히 계책을 세웠소. 그리하여 왕이 궁중으로 돌아간 뒤로는 더욱 정성스럽게 받들어 섬겨 왕의 대우를 회복하였소. 그는 왕에게 원하였소.

‘하루 동안만 이 나라 일에 대한 자유를 내게 허락하여 주소서.’

마침 왕은 치우친 마음으로 곧 그것을 승낙하였소. 그는 밖에 나가 사람을 시켜 천사(天祠)를 두드려 부숴 평지처럼 만들고 궁중으로 돌아왔소. 천사(天祠)를 지키던 신(神)은 슬퍼하고 괴로워하면서 궁중으로 들어가 왕궁을 해치려 하였소. 그러나 천신이 그것을 막고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소.

그 때 어떤 선인(仙人)이 선산(仙山)에 살고 있었소. 박족왕은 늘 그에게 공양하였소. 날마다 밥 때가 되면 그는 궁중에 날아 들어왔소. 그러나 맛있는 음식은 먹지 않고 거친 공양만 조금 받았소.

마침 하루는 그 선인이 오지 않았소. 천신은 그것을 알고, 그 선인 형상으로 변해 궁중으로 들어가려 하였소. 그러나 궁신(宮神)은 그것을 알고 들어오기를 허락하지 않았소. 그는 멀리 문 밖에서 왕에게 아뢰어 통과시켜 주기를 청하였소. 왕은 선인이 밖에서 들어오기를 청한다는 말을 듣고 그 까닭을 이상히 여기면서 급히 명령하여 들어오게 하였소.

그 때 궁신은 왕의 분부를 받고 그를 막지 않고 통과시켰소. 변화한 선인은 얼른 들어가 선인이 항상 앉던 곳에 앉았소. 왕은 보통 때와 같이 음식을 장만하여 그에게 공양하였소.

그러나 그 변화한 선인은 즐겨 먹으려 하지 않고 왕에게 말하였소.

‘이 음식은 추악하고 또 고기나 생선도 없는데 어떻게 먹겠소?’

왕은 곧 아뢰었소.

‘대선(大仙)님은 늘 오셔서 맑고 담박한 것만 자시기 때문에 일부러 고기나 생선 음식은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는 또 말하였소.

‘지금부터는 추한 공양은 차리지 마시오. 다만 고기만 먹겠소.’

그 말대로 차려 오자, 그는 먹고 돌아갔소.

이튿날 옛 선인이 날아왔소. 왕은 그를 위해 갖가지 고기 음식을 차렸소. 선인은 화를 내며 왕을 원망하였소. 왕은 선인에게 ‘어제 이렇게 차리라고 분부하시지 않았습니까?’

선인은 말하였소.

‘어제는 병이 있어 하루 동안 단식하고 여기는 오지 않았소. 누가 왕에게 그런 말을 하였는가. 다만 왕이 나를 시험하려고 이렇게 한 것일 것이오. 왕은 지금부터 12년 동안 항상 사람 고기를 먹으시오.’

이렇게 말하고 날아서 산중으로 돌아갔소.

그 뒤에 왕의 찬간 감독은 고기 준비를 잊었소. 밥 때가 임박하였으나 방법이 없어 밖에 나가 고기를 구하다가, 살찌고 흰 어린애 시체가 땅에 버려져 있는 것을 보았소. 그는 ‘우선 급한 대로 메꾸자’고 생각하고, 머리와 발을 잘라 버리고 찬간으로 들고 와서, 온갖 맛있는 양념을 넣고 음식을 만들어 왕에게 바쳤소. 왕은 그것을 먹고 전의 음식보다 몇 곱이나 맛있는 것을 깨닫고, 곧 찬간 감독에게 물었소.

‘지금까지 고기를 먹었으나 이런 맛있는 것은 없었다. 이것은 무슨 고기냐?’

찬간 감독은 몹시 황공하여 왕 앞에 엎드려 말하였소.

‘만일 대왕께서 저의 죄를 용서하신다면 감히 사실대로 아뢰겠습니다.’

왕은 말하였소.

‘다만 사실대로 말만 하라. 너의 죄는 묻지 않으리라.’

찬간 감독은 아뢰었소.

‘전일 어떤 일이 있어서 미처 고기를 구하지 못하고, 어린애 시체를 얻어 급한 때를 메꾸었습니다. 뜻밖에 대왕님은 그것을 아셨습니다.’ ‘이 고기는 아주 맛나 보통 것과 다르다. 지금부터는 이런 것을 구하라.’ ‘전자에는 우연히 저절로 죽은 어린애 시체를 얻었지마는, 그런 것을 다시 구하기는 어렵습니다. 또 그것으로 음식을 만들면 나라 법이 두렵습니다.’ ‘너는 그저 가만히 가져 오기만 하라. 만일 발각되면 그 판결은 내게 있지 않느냐?’

찬간 감독은 왕의 명령을 받고, 가만히 아이들을 죽여 날마다 왕에게 바쳤소.

그 때 성 안의 인민들은 각기 울고 돌아다니면서 말하였소.

‘아기를 잃어버렸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서로 물었소.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되었느냐?’

여러 신하들은 모여 말하였소.

‘가만히 조사해 보자.’

곧 거리의 곳곳마다 사람을 배치해 두었소. 마침 왕의 찬간 감독이 남의 어린애를 끌고 오는 것을 보고, 기다리다가 그를 잡아 결박하여 왕에게 나아가 지금까지 아기 잃어버린 일을 자세히 아뢰었소. 왕은 그 말을 듣고 잠자코 대답하지 않았소. 그들은 재삼 왕에게 아뢰었소.

‘이제 도적을 잡아 그 죄가 드러났습니다. 일을 판결하여야 하겠는데 어찌하여 잠자코 계십니까?’

왕은 그제야 대답하였소.

‘그것은 내가 시킨 것이다.’

신하들은 분개하여 각기 흩어져 밖에 나와 의논하였소.

‘왕이 바로 도적으로서 우리 아들을 잡아먹었다. 사람을 먹는 왕과 어떻게 나라를 같이 다스리겠는가. 저 왕을 제거하여 이런 화를 없애자.’

일동은 마음을 모아 계획을 같이하였소.

궁성 밖 동산 안에 좋은 못물이 있어 왕은 날마다 거기 가서 목욕하였소. 신하들은 군사를 모아 동산 안에 매복시켰소. 왕이 나와 목욕하려고 그 못에이르렀을 때 복병은 한꺼번에 사방을 둘러싸고, 왕을 포위하여 죽이려 하였소. 왕은 군사들이 모이는 것을 보고 놀랍고 두려워 물었소.

‘너희들은 왜 나를 둘러싸고 핍박하는가?’

신하들은 대답하였소.

‘대개 왕이 된 자는 백성을 기르는 것을 일로 삼아야 한다. 그런데 찬간에 나가 사람을 죽여 음식을 만드니, 백성들은 부르짖고 슬퍼하면서 마음을 하소연할 곳이 없구나. 그 모진 고통을 참을 길 없기 때문에 왕을 죽이려 하는 것이다.’

왕은 말하였소.

‘나는 참으로 착하지 못하였다.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용서해 놓아 주면 스스로 힘써 고치겠다.’ ‘절대 놓아 줄 수 없다. 비록 지금 하늘에서 검은 눈이 내리고, 네 머리 위에 검은 독사가 나더라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니 여러 말 하지 말라.’

그 때 박족왕은 신하들 말을 듣고, 다시 벗어날 길이 없어 반드시 죽을 것을 알고, 여러 신하들에게 말하였소.

‘나를 죽이더라도 잠깐만 늦추어 조금만 더 살기를 허락하라.’

신하들은 조금 늦추어 두었소. 왕은 곧 스스로 서원하였소.

‘나는 지금까지 닦은 선행으로 왕이 되어 바르게 다스렸으며, 선인(仙人)에게 공양하였다. 이런 온갖 공덕을 합해 돌려 지금 나로 하여금 날아다니는 나찰로 변하게 하여지이다.’

그 말을 마치자 이내 그 말대로 되어 허공을 날면서 신하들에게 말하였소.

‘너희들이 힘을 합해 억지로 나를 죽이려 하였지마는 나는 나의 큰 행운을 힘입어 스스로 구제된 것이다. 지금부터 너희들은 잘 참아야 한다. 너희들의 사랑하는 처자를 나는 차례로 잡아먹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날아갔소.

그는 숲 속에 살면서 날아가서 사람을 잡아다 그것으로 먹이를 삼았소. 사람들은 모두 두려워하여 피해 숨었소. 이렇게 하여 사람들을 많이 잡아먹자, 여러 나찰들은 그에게 와서 붙어 부하가 되었소. 그 무리들이 차츰 많아짐에 따라 죽는 사람 범위도 더욱 넓어졌소.

그 뒤에 여러 나찰들은 박족왕에게 말하였소.

‘우리는 왕을 받들어 섬기면서 그 부하가 되었습니다. 원컨대 우리들을 위해 큰 연회를 베풀어 주십시오.’ ‘박족왕은 승낙하고 말하였소.

‘여러 왕을 잡아 천 명을 채우고 그들로 너희들의 연회를 베풀라.’

이렇게 허락하자, 그들은 각각 가서 왕들을 잡아와 산 속에 가두어 두었소. 이미 9백99명의 왕을 잡고 나머지 한 사람이 모자라 그 수가 차지 않았소. 여러 왕들은 생각하였소.

‘우리는 지금 매우 급박하다. 어디로 가야 할까? 만일 저 수타소미왕(須素彌王)만 붙잡으면, 그는 큰 방편이 있어 능히 우리를 구제할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계획하고 나찰왕에게 아뢰었소.

‘왕께서 연회를 베풀되 아주 훌륭하게 하려고 순전히 여러 왕들만 잡아 오지마는, 그런 시시한 것은 쓸데없습니다. 저 수타소미는 아주 높은 덕이 있습니다. 만일 그를 잡아 오면 왕의 연회는 비로소 빛날 것입니다.’

나찰왕은 ‘어떤 높은 덕이 있나?’ 하고, 곧 날아올라 잡으러 갔소.

마침 수타소미는 여러 궁녀들을 데리고, 새벽에 성을 나와 동산 못에 목욕하러 가다가 길에서 자기에게 구걸하는 어떤 바라문을 만났소. 수타소미왕은 그 바라문에게 말하였소.

‘내가 목욕하고, 돌아올 때를 기다려라. 그 때 보시하리라.’

왕은 동산에 이르러 못에 들어가 목욕하고 있었소. 그 때에 나찰왕은 허공으로 날아와 그를 잡아 가지고 산중으로 갔소. 수타소미는 근심하고 걱정하면서 슬피 울었소. 그러자 나찰왕은 물었소.

‘나는 너의 이름과 덕이 뛰어나 제일이라는 말을 들었다. 대장부의 뜻은 빈궁과 영달에 맡겨야 하겠거늘, 어찌 별스럽게 근심하면서 어린애처럼 우는가.’

수타소미는 말하였소.

‘나는 몸을 사랑하거나 목숨을 탐해 아끼거나 하지 않습니다. 다만 나서부터 거짓말한 적이 없습니다. 아침에 궁중에서 나와 길을 가다가 어떤 도사가 내 수레 앞에 서서 구걸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목욕하고 돌아올 때에 보시하리라고 약속하였습니다. 그런데 마침 대왕이 나를 잡아 가지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지금 거짓말로써 그 정성된 믿음을 어길 것을 생각하고, 그 때문에 근심하는 것입니다. 내 몸을 아껴서가 아닙니다. 원컨대 나를 가엾이 여겨 이레 동안만 여유를 주십시오. 그 도사에게 보시하고 돌아와 죽음에 나아가겠습니다.’

나찰왕은 이 말을 듣고 물었소.

‘네가 지금 가게 되면 과연 스스로 돌아와 죽음에 나아가겠느냐?’

그리고 다시 말하였소.

‘가령 돌아오지 않더라도 내 스스로 가서 잡아 올 수 있다.’

그리고는 이내 놓아 가게 하였소.

왕은 본국으로 돌아왔소. 도사는 아직 거기 있었소.

그는 기뻐하여 그 바라문에게 보시하여 공양하였소.

그 때 바라문은, 왕이 오래지 않아 돌아가 죽을 것이므로 나라를 잊지 못해 근심하고 걱정할까 염려하여, 곧 그 왕을 위해 다음 게송을 읊었소.

겁(劫)의 수(數)가 끝날 때에는 
하늘과 땅에 불이 일어나 
수미산도 큰 바다도 
모두 다 재[灰] 되어 날아갈 것을.



하늘도 용도 사람도 귀신도 
그 안에서 시들고 죽어가며 
해와 달도 오히려 떨어지거늘 
나라에 무슨 항상함이 있으랴.



남과 늙음과 병들고 죽음은 
바퀴처럼 굴러 끝이 없거니 
그 일이 내 뜻을 어기게 되면 
근심과 슬픔은 병이 되어라.



탐욕이 깊으면 재화는 중하여 
부스럼과 혹[瘡疣]은 바깥이 없어 
삼계는 순전히 괴로움뿐이거니 
나라에 무슨 힘 입을 것 있는가.



존재란 본래 스스로 없는 것을 
인연이 모여 이루어진 것인데, 
그러므로 성(盛)한 것 반드시 쇠하고 
찬 것은 반드시 빌 때가 있네.



꼬물거리는 저 중생들 
모두가 하나의 허깨비 같아서 
세 가지 결과가 모두 비었고 
나라도 또한 그와 같나니.



우리의 정신은 형상이 없이 
거짓으로 네 마리 뱀을 타고 
무명을 보배처럼 길러 가면서 
그것으로 즐거움의 수레로 삼네.



형상에는 정해진 주인이 없고 
정신은 정해진 집이 없어서 
형상과 정신도 오히려 갈리거니 
거기에 어찌 나라가 있겠는가.

그 때 수타소미는 이 게송을 듣고 그 이치를 생각하다가 한량없이 기뻐하여, 곧 태자를 세워 자기 대신 왕을 삼았소. 그리고 여러 신하들과 이별하고 약속을 지키러 돌아가려 하였소. 신하들은 똑같은 말로 그에게 아뢰었소.

‘원컨대 왕은 그저 여기 머무르시고 저 박족을 걱정하지 마소서. 신들이 꾀를 내어 그 걱정을 막도록 준비하겠습니다. 쇠를 불려 집을 만들고 우선 그 안에 계시면, 박족이 아무리 사나워도 어떻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왕은 신하들과 여러 인민들에게 말하였소.

‘대개 사람이 세상에 살면 진실을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 거짓으로 구차히 사는 것은 내 마음이 허락하지 않는다. 차라리 믿음에 나아가 죽을지언정 거짓말로 살지는 않으리라.’

그는 다시 갖가지로 진실의 이익을 설명하고 또 거짓의 죄를 자세히 분별하였소. 신하들은 목메어 슬피 울면서 다시는 아무 말이 없었소. 왕은 일어나 성을 나왔소. 대중들은 모두 배웅 나와 길에서 부르짖으면서 까무러쳤다가 다시 깨어났소. 왕은 그들을 일깨워 타이르고는 길을 따라 떠났소.

그 때 박족왕은 가만히 수타소미는 오늘 올 것이라고 생각하였소. 그는 산 꼭대기에 앉아 멀리 바라보다가, 그가 길을 따라 넘어오는 것을 보았소. 그가 도착하자, 그는 수타소미의 얼굴빛이 즐거움과 기쁨에 가득 찬 것이 옛날보다 더한 것을 보았소. 곧 나찰왕이 물었소.

‘유쾌하게도 오는구나. 사람이 세상에 나면 누구나 그 목숨을 아끼는데, 너는 지금 죽음에 다다랐어도 기쁨이 보통 때보다 배나 더하구나. 본국에 돌아가 어떤 좋은 이익을 얻었는가?’

수타소미는 대답하였소.

‘대왕의 너그러운 은혜로 내게 이레 동안의 여유를 주어 나는 보시함으로써 그와 약속한 말을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또 나는 묘한 법을 듣고 마음이 열렸습니다. 지금과 같이 소원을 마쳤으니, 비록 죽게 되더라도 즐거운 마음은, 살아있는 것과 같습니다.’

박족왕은 말하였소.

‘너는 어떤 법을 들었는가? 나를 위해 설명하라.’

수타소미는 그를 위해 앞의 게송을 설명하고, 다시 방편으로 자세히 설법하였소. 즉 살생하는 죄와 그 나쁜 과보를 분별하고, 또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생하지 않는 복을 설명하였소.

박족은 기뻐하여 공경히 예배하고, 그 교훈을 받들어 다시는 해칠 마음이없어졌소. 그리하여 여러 왕들을 놓아 각각 본국으로 돌려보내었소.

수타소미는 곧 군사를 거두어 박족을 데리고 돌아가 그 본국에 편히 살게 하였소. 그는 전날 그 선인의 서원대로, 12년이 찬 뒤로는 다시는 사람을 먹지 않고, 마지막에는 대왕으로 돌아가 옛날처럼 백성을 다스렸소.

대왕께서는 알고 싶으오? 수타소미왕은 지금의 이 내 몸이요, 그 박족왕은 저 앙구마라며, 12년 동안 박족왕에게 먹힌 사람들은 바로 지금 앙구마라에게 죽은 사람들이오.

그들은 세상세상마다 항상 앙구마라에게 죽었고, 나도 세상세상마다 선(善)으로써 그를 항복받았소.

나는 생각하오. 과거에 내가 범부로 있었을 때에도 그를 교화하여 살생하지 못하게 하였거늘, 하물며 지금은 부처가 되어 온갖 덕을 두루 갖추었고 온갖 악을 아주 쉬었는데, 어찌 능히 저를 교화시키지 못하겠소?”

왕은 다시 여쭈었다.

“지금의 저 여러 사람들은 전생에 어떤 인연이 있었기에 세상세상에 저에게 죽음을 당합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자세히 잘 들으시오. 과거 오랜 겁 전에 이 염부제에 바라내라는 큰 나라가 있었고, 그 나라왕은 이름이 바라마달(波羅摩達)이었소.

그 왕에게 아들 둘이 있었소. 모두 뛰어난 재주가 있었고 얼굴은 단정하고 묘하였소. 그래서 왕은 매우 사랑하였소. 그 때 작은 아들은 생각하였소. 가령 아버지가 돌아가시더라도 형님이 그 자리를 이어받을 것이요, 나는 아직 나이 어리니 왕위는 희망이 없다. 사람이 세상에 나서 왕이 되지 못할 바에야 구태여 속세에 살아서 무엇하겠는가. 차라리 고요히 신선의 도를 구하는 것보다 못하리라. 이렇게 생각하고, 아버지에게 가서 아뢰었소.

‘깊은 산에 들어가 선도(仙道)를 구하고자 합니다. 원컨대 허락하시어 뜻한 바를 이루게 하소서.’

이리하여 그 간절한 뜻을 굽힐 수가 없어 아버지는 곧 허락하고 산에 들어가게 하였소. 몇 해가 지나 부왕이 돌아가시고 그 형이 왕위를 이어 백성을 다스렸소. 나라를 다스린 지 오래지 않아 그 형은 병이 들어 목숨을 마쳤소. 그러나 그 형에게는 왕위를 이어받을 아들이 없었소. 그래서 신하들은 서로 모여 의논하였으나 결정을 내리지 못하였소. 그 때 어떤 신하가 말하였소.

‘전 대왕에게 작은 아들이 있었다. 그는 대왕의 허락을 받고 산에 들어가 선도를 공부하고 있다. 그를 맞아들여 왕위를 잇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신하들은 기뻐하여 말하였소.

‘그것이 좋다.’

그를 청하려고 여럿이 함께 산으로 들어갔소. 산에 들어가 그 동안의 사정을 자세히 아뢰고 말하였소.

‘원컨대 이 정상을 가엾이 여겨 우리 나라를 맡아 주소서.’

선인은 대답하였소.

‘그것은 두려운 일이다. 나의 이 고요한 즐거움은 어떤 근심도 걱정도 없지마는, 세상 사람들은 흉악하여 서로 죽이기를 좋아한다. 만일 내가 왕이 된다면 혹 어떤 모함을 당할는지 모른다. 나는 그런 짓은 할 수 없다.’

그러자 여러 신하들은 거듭 아뢰었소.

‘전 왕이 돌아가시고 뒤가 끊어져 다시는 왕위를 이을 사람이 없습니다. 오직 대선(大仙)님만이 우리 왕족이시고, 또 나라 백성들은 주인이 없을 수 없습니다. 원컨대 저들을 가엾이 여겨 나오셔서 돌보아 주소서.’

이렇게 정성스럽고 간절히 청하였소. 그래서 선인은 차마 거절하지 못하여 드디어 승낙하고 본국으로 돌아왔던 것이오.

선인은 어릴 적부터 여자를 몰랐으나 속세로 돌아와 나라를 다스리게 되자, 차츰 여색을 가까이하며 애욕에 물이 들어 밤낮으로 걷잡을 수 없는 방탕에 빠져 스스로 절제하지 못하였소. 그리하여 마지막에는 온 나라에 영을 내렸소.

‘이 나라의 모든 처녀로서 시집가려 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나를 모셔라. 그러고 난 뒤에라야 제 남편에게 가기를 허락하리라.’

그리하여 그 나라의 아름다운 여자로서 그 마음에 드는 이를 모조리 능욕하였소. 그 때 어떤 여자는 여러 사람이 보는 거리에서 나체로 서서 소변을 보았소.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놀라고 웃다가 모두 와서 꾸짖었소.

‘너는 어찌 부끄러움도 없이 이런 짓을 하는가?’

그 여자는 곧 대답하였소.

‘여자가 여자 앞에서 무슨 부끄러움이 있겠는가. 너희들도 서서 소변보면서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나도 너희들과 다를 것이 없는데 무슨 부끄러움이 있겠는가?’

여러 사람들은 물었소.

‘그 말은 무슨 뜻인가?’

그 여자는 말하였소.

‘오직 왕 한 사람만이 남자다. 온 나라 여자들이 모두 그런 욕을 당하는데, 만일 너희들이 사내라면 그대로 있을 수 있느냐?’

그 때 여러 사람들은 모두 부끄러워하며 서로 의논하였소.

‘저 여자 말이 옳다. 사실인즉 그렇다.’

그리고는 비밀히 그 여자 말을 서로 전하여 마음을 모으고 꾀를 합하여 왕을 없애기로 도모하였소. 그 성 밖 동산에 맑고 시원한 못이 있었소. 왕은 지금까지 늘 그 못에 나와 목욕하였소. 신하와 백성들은 그 동산에 엎드려 있다가 왕이 나와 목욕할 때에 모두 나와 둘러싸고 왕에게 달려들어 죽이려 하였소. 왕은 놀라 말하였소.

‘왜 이러느냐?’

신하들은 아뢰었소.

‘왕은 바른 법으로 나라를 다스려야 하거늘, 도리어 음탕하기 도에 지나쳐 떳떳한 풍속을 어지럽히고 여러 여자들을 욕보이니, 우리는 그것을 보고 참을 수 없어 왕을 없애고 다시 어진 이를 구하려 하는 것이다.’

왕은 그 말을 듣고 두려워하여 신하들에게 말하였소.

‘나는 참으로 잘못하여 너희들에게 폐를 끼쳤다. 이제 스스로 깨우쳐 다시는 감히 그러지 않겠다. 원컨대 너그러이 용서하여 주면 백성들과 함께 다시 출발하겠다.’

그러나 신하들은 말하였다.

‘가령 지금 하늘에서 검은 눈이 내리고 왕의 정수리에서 독사가 나올지라도 결코 놓아 줄 수는 없으니 여러 말 마라.’

왕은 이 말을 듣고 틀림없이 죽었다 생각하고, 원통하여 신하들에게 말하였소.

‘나는 본래 산에 있어 세상 일에 간섭하지 않았거늘 억지로 와서 나를 끌어내어 왕을 만들어 놓고는, 큰 과실도 없는데 나를 없애려 하는구나. 나는 지금 홀몸으로 빠져 나갈 힘이 없지마는, 맹세코 미래 세상에서는 항상 너희들을 죽이리라. 그리고 내가 도를 얻을 때까지는 용서하지 않으리라.’

이렇게 맹세하였지마는 그들은 왕을 죽이고 말았소.

“대왕이여, 알고 싶은가. 그 때 그 선인의 왕은 바로 지금의 저 앙구마라요, 왕을 죽인 신민들은 바로 저 앙구마라에게 죽은 사람들이오. 그래서 그들은 그 뒤로 늘 저에게 죽었고 오늘에 이르러서도 또한 저에게 죽은 것이오.”

그 때 왕은 꿇어앉아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 앙구마라 비구는 그 많은 사람을 죽이고 지금 도를 얻었는데도, 장차 그 과보를 받아야 합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행에는 반드시 과보가 있다. 지금 저 비구는 방 안에 있으면서도, 지옥 불길이 그 털구멍에서 나오므로 그 고통은 말할 수 없으리라.”

그 때 부처님께서는 대중에게 악한 행을 지으면 반드시 죄의 과보를 받는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어떤 비구에게 분부하였다.

“너는 열쇠를 가지고 저 앙구마라의 방에 가서 그 문을 열어 보라.”

비구는 분부를 받고 곧 가서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앙구마라는 금시에 녹아 버렸다. 비구는 놀라 부처님께 돌아와 사실대로 아뢰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행의 과보는 그와 같으니라.”

왕과 대중들은 모두 이해하고 믿었다. 그 때 아난은 꿇어앉아 부처님께 아뢰었다.

“앙구마라는 전에 어떤 복을 지었기에 몸은 장사의 힘이 있고, 또 건장하고 민첩하며 가볍고 빨라, 달리기는 나는 새를 따르며, 또 부처님을 만나 생사를 뛰어넘게 되었습니까? 원컨대 이 대중들을 가엾이 여겨 말씀하여 주소서.”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잘 들으라. 먼 옛날 가섭부처 때에 어떤 비구는 집사(執事)가 되었다. 그는 스님들과 인부와 짐승들을 데리고, 양식을 싣고 오다가 도중에서 비를 만났다. 그러나 비를 피할 곳이 없어 곡식 부대들이 모두 흠뻑 젖었다.

그 비구는 빨리 가고자 하였으나 힘이 적어 걸음이 더디었다. 그래서 뜻대로 할 방법이 없어 마음은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그는 곧 서서 서원을 세웠느니라 ‘원컨대 나는 후생에 천 사람을 당적할 힘이 있어 몸은 가볍고 걸음은 빨라 달리기는 나는 새보다 빠르며 장래에는 석가모니부처님을 만나 나로 하여 생사를 아주 벗어나게 하라.’

이와 같이 아난이여, 그 때의 그 집사 비구는 바로 지금의 저 앙구마라니라. 그는 그 세상에서 출가하여 계율을 가지고, 절 일을 맡아 보다가 원을 세웠기 때문에, 그 뒤로는 세상세상에 얼굴이 단정하고 힘이 세고 빠른 것이 모두 그 원대로 되었다. 그리고 다시 나를 만나 생사를 건너게 되었느니라.”

그 때 아난과 여러 비구들과 왕·신민들과 또 일체 대중들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인연과 업보를 듣고 모두 감격하여 4제를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어떤 이는 수다원을 얻었고, 어떤 이는 사다함·아나함·아라한을 얻었으며, 벽지불의 선근(善根)을 심는 이도 있었고,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의 마음을 내는 이도 있었으며, 혹은 물러나지 않는 자리에 머무르는 이도 있어서모두 몸과 입을 단속하고 마음을 이겨 선(善)을 닦았다.

그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서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46.단니기품(檀膩品)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그 나라에는 빈두로타사(賓頭盧闍)라는 바라문이 있었다.

그의 아내는 얼굴이 추악한데 두 눈까지 새파랬다. 그에게는 시집간 딸만 일곱이 있었고 아들은 없었다. 그 집도 빈곤하였지마는 그 딸들도 궁하였다. 그 아내는 성질이 포악하여 늘 남편을 꾸짖었다.

그리고 딸들은 번갈아 와서 무엇을 달라고 하였는데, 그 때 그 요구대로 주지 못하면 눈을 흘기면서 훌쩍거렸다. 또 그 사위 일곱 놈이 그 집에 몰려들면, 받들어 대접하되 그 뜻을 어길까 조심하였다. 밭에 곡식이 있었으나 거두어들이지 못하여 남의 소를 빌려 거두어들이고는, 소를 잘 지키지 못하여 늪에서 잃어버렸다.

그 때 바라문은 혼자 앉아서 생각하였다.

‘나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시고 매운 쓰라림이 한꺼번에 닥치는가. 안으로는 포악한 아내에게 몰아치이고 일곱 딸년들에게 들볶이며, 사위들이 모여 와도 대접할 것이 없는데 또 남의 소까지 잃고 간 곳을 모르니.’

그는 소를 찾아 두루 돌아다니다가, 몸과 마음이 한꺼번에 피로해 근심하고 번민하였다. 그는 우연히 어느 숲 속에 이르러, 나무 밑에 앉아 계시는 부처님을 뵈었다. 모든 감관은 조용하고 아무 일 없이 편안하였다.

그 때 그 바라문은 지팡이로 턱을 고이고 한참 서서 바라보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났다.

‘저 사문 구담은 지금 가장 안락하다. 나쁜 아내의 욕설이나 다툼이 없고, 딸년들의 들볶음이나 가난한 사위들의 시끄러운 걱정도 없으며, 또 밭에는 익은 곡식이 없으니 남의 소를 빌렸다 잃어버릴 걱정도 없고.’

부처님께서는 그 마음을 아시고 말씀하셨다.

“네 생각과 같다. 지금 나 같아서는 고요하여 어떤 걱정도 없다. 진실로 나쁜 아내의 저주나 나무람도 없고 일곱 딸들의 들볶음도 없으며, 또 일곱 사위들이 집에 몰려오는 일도 없고, 밭에 익은 곡식이 없으니 남의 소를 빌렸다가 잃어버릴 걱정도 없다.”

부처님께서는 이어 말씀하셨다.

“너는 집을 떠나고 싶으냐?”

그는 아뢰었다.

“지금 저 같아서는 집이란 무덤처럼 보이고, 여자들의 온갖 인연은 마치 원수 속에 사는 것과 같습니다. 부처님께서 가엾이 여겨 저에게 중이 되기를 허락하시면 저의 소원에 꼭 맞겠습니다.

부처님께서 곧 “잘 왔구나, 비구여” 하시자, 그의 수염과 머리털은 저절로 떨어지고, 몸에 입은 옷은 가사로 변하였다. 부처님께서는 그를 위해 설법하셨다. 그는 자리에서 온갖 번뇌가 아주 없어지고 곧 아라한이 되었다.

아난은 이것을 보고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장하십니다. 부처님의 방편 교화는 참으로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저 바라문은 전생에 어떤 복을 지었기에 온갖 근심을 떠나 이런 좋은 이익을 얻었습니까? 그것은 마치 깨끗한 천에 빛깔이 쉬이 물드는 것과 같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저 바라문은 오늘만 내 은혜를 입어 괴로움을 떠나고 안락을 얻은 것이 아니라, 지나간 세상에서도 내 혜택을 입어 온갖 액난을 면하고 또 안락을 얻었느니라.” “알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지나간 세상에, 어떻게 그를 구제하여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셨습니까?” “자세히 듣고 잘 명심하라. 나는 너를 위하여 자세히 분별하여 말하리라.” “예, 잘 듣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먼 옛날 아승기겁 전에 큰 나라 왕이 있었다. 이름이 아파라제목가(阿波羅提目佉)[진(晉)나라 말로 단정(端正)이라는 뜻이다]였는데, 그는 도로써 나라를 다스려 백성을 억울하게 하지 않았다.

그 때 그 나라에 바라문이 있었는데, 이름이 단니기(檀膩)였다. 그는 집이 매우 가난하여 먹는 것은 배를 채우지 못하였다. 마침 익은 곡식이 조금 있었으나 거두어들일 수가 없어 남의 소를 빌려 가지고 가서 곡식을 거두었다. 곡식을 거두고는 소를 몰고 가서 주인에게 돌려 줄 때에, 주인 집 문 앞에 몰아다 놓고는, 주인에게 알리기를 잊고 그대로 돌아왔다. 그 주인도 소를 보았으나 아직 일이 끝나지 않은 줄 생각하고 몰아 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두 집이 모두 챙기지 않았기 때문에 그만 소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 뒤에 주인이 가서 소를 돌려 달라고 하자 그는 말하였다.

‘벌써 돌려 주었다.’

둘 사이에는 승강이가 벌어졌다. 그래서 주인은 단니기를 데리고 왕에게 가서 소를 받으려고 하였다.

그는 마침 밖에 나갔다가 왕의 말 먹이는 사람을 만났다. 그는 단니기를 부르면서 말하였다.

‘그 말을 붙들어 달라.’

단니기는 돌을 집어 말을 보고 던졌다. 돌이 말 다리에 맞자 그만 말 다리가 부러졌다. 그도 단니기를 붙들고 왕에게로 함께 갔다.

얼마를 가다가 그들은 강물을 만났으나 건널 곳을 몰랐다. 마침 어떤 목수가 입에 끌을 물고 옷을 걷어 올리고 건너왔다. 단니기는 그에게 물었다.

‘어디로 해야 건너겠던가?’

그는 이 말을 듣고 곧 대답하다가 입이 열리자, 끌이 물에 떨어졌다. 아무리 찾았으나 얻지 못하였다. 그도 단니기를 붙잡고 왕에게로 함께 갔다.

그 때 단니기는 여러 빗쟁이들에게 졸릴 뿐 아니라 배도 고프고 목도 말랐다. 길가 주막에서 술을 조금 얻어 평상 위에서 마시다가, 이불 밑에 어린애가 누워 있는 것을 모르고 깔고 앉아 아기가 배가 터져 죽었다. 그러자 그 아기 어미는 그를 붙들고 놓지 않으면서 말하였다.

‘이 무도한 놈아, 억울하게도 우리 아이를 죽였구나.’

그리고는 단니기를 붙들고 왕에게로 갔다.

그는 어느 담 밑을 지나다가 가만히 생각하였다.

‘나의 불행이여, 온갖 재앙이 한꺼번에 닥치는구나. 만일 왕에게 가면 나를 죽일지도 모른다. 차라리 지금 도망치면 혹 벗어날 수도 있으리라.’

그는 이렇게 생각하고 담을 뛰어넘었다. 그 담 밑에는 직공(織工)이 있었는데, 그 위에 떨어져 직공은 곧 죽었다. 직공 아들은 그를 붙잡고 여러 사람들과 함께 왕에게로 갔다.

얼마를 가다가 그는 어떤 나무 위에 앉아 있는 꿩 한 마리를 보았다. 꿩은 멀리서 그에게 물었다.

‘단니기님, 당신은 어디로 가십니까?’

그는 위의 사실을 꿩에게 모두 이야기하였다. 꿩은 말하였다.

‘당신이 거기 가시거든 저를 위해 대왕께 아뢰기를, (제가 다른 나무에 있으면 제 울음 소리가 듣기 싫은데, 이 나무에 있으면 제 울음 소리가 아름다우니,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라고 해 주십시오. 당신이 대왕을 뵙거든 저를 위해 이렇게 물어 주십시오.’

다음에 그는 독사를 보았다. 독사는 물었다.

‘단니기님, 지금 어디 가십니까?’

그는 곧 사실을 독사에게 모두 이야기하였다. 독사는 말하였다.

‘당신이 대왕에게 가시거든 저를 위해 여쭙기를, (제가 아침 일찍 처음으로 구멍에서 나올 때에는 몸이 부드럽고 연하여 아무 고통도 없는데, 저물어서 들어갈 때에는 몸이 거칠고 뻗뻗하여 아프며, 구멍에 걸려 들어가기 어렵습니다)라고 해 주십시오.’

단니기는 그 부탁도 받았다.

그는 가다가 또 어떤 여자를 만났다. 여인은 물었다.

‘당신은 어디로 가십니까?’

그는 위의 사실을 모두 그 여자에게 말하였다. 여자는 말하였다.

‘당신이 왕에게 가시거든 저를 위해 여쭙기를, (제가 시가에 가면 친정이 생각나고 친정에 있으면 시가가 생각나는데, 이것은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해 주십시오.’

그는 또 그 부탁을 받았다.

그 때 여러 빚쟁이들은 그를 둘러싸고 왕 앞에 이르렀다. 그 때 소 주인은 왕 앞에 나아가 아뢰었다.

‘이 사람이 내 소를 빌려 갔는데, 돌려 달라 해도 돌려 주지 않습니다.’

왕은 그에게 물었다.

‘너는 왜 소를 돌려 주지 않는가?’

단니기는 말하였다.

‘저는 참으로 빈곤합니다. 익은 곡식이 밭에 있을 때에 그는 은혜로운 생각으로 제게 소를 빌려 주었습니다. 저는 추수를 마치고 소를 몰고 가서 주인에게 돌려 주었고 주인도 소를 보았습니다. 말로는 알리지 않았지마는 소는 분명 그 문 앞에 있었습니다. 나는 빈 손으로 돌아왔는데, 마침내 그 소를 어떻게 잃어버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왕은 그 사람에게 말하였다.

‘너희들 둘이 다 잘못이다. 단니기는 입으로 알리지 않았으니 그 혀를 끊어야 하겠고, 너는 소를 보고도 챙기지 않았으니 네 눈을 뽑아야 하겠다.’

그 사람은 왕에게 아뢰었다.

‘차라리 제 소를 버리겠습니다. 제 눈을 빼고 저 사람 혀를 끊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왕은 곧 두 사람의 화해를 허락하였다.

말 먹이는 사람이 나와 말하였다.

‘저 무도한 사람이 제 말의 다리를 분질렀습니다.’

왕은 단니기에게 물었다.

‘너는 저 왕가의 말을 때려 다리를 분질렀는가?’

그는 꿇어앉아 아뢰었다.

‘저 빚쟁이가 저를 데리고 길을 걸어 오는데, 저 사람이 저를 불러 말을 잡아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말이 빨리 달아나므로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돌을 집어 던졌더니, 잘못 말 다리에 맞아 부러졌습니다. 그것은 고의가 아니었습니다.’

왕은 말 먹이는 사람에게 말하였다.

‘너는 저 사람을 불렀으니 네 혀를 끊어야 하고, 저 사람은 말을 때렸으니 그 손을 끊어야 하겠다.’

말 먹이는 사람이 왕에게 아뢰었다.

‘말은 제가 대신 마련하겠습니다. 형벌만은 내리지 마소서.’

그들은 서로 화해하였다.

다음에는 목수가 앞으로 나와 말하였다.

‘단니기는 제 끌을 잃게 하였습니다.’

왕은 단니기에게 물었다.

‘너는 또 왜 남의 끌을 잃게 하였는가?’

단니기는 꿇어앉아 아뢰었다.

‘제가 물 건널 곳을 물었을 때, 저 이는 얼른 대답하다가 입에 문 끌을 물에 떨어뜨렸는데, 아무리 찾아도 찾지 못하였습니다. 실로 고의가 아니었습니다.’

왕은 목수에게 말하였다.

‘그는 너에게 물었으니 그 혀를 끊어야 하겠다. 그리고 대개 물건을 가지는 법은 손을 써야 예가 되겠거늘, 너는 입에 물었기 때문에 물에 떨어뜨렸으니, 이제 네 앞니 두 개를 부러뜨려야 하겠다.’

목수는 이 말을 듣고 왕에게 아뢰었다.

‘차라리 끌을 잃겠습니다. 형벌은 내리지 마소서.’

그들은 서로 화해하였다.

다음에는 주모(酒母)가 왕에게 말하였다. 왕은 단니기에게 물었다.

‘너는 왜 남의 아이를 죽였는가?’

단니기는 꿇어앉아 아뢰었다.

‘빚쟁이들이 저를 핍박할 뿐 아니라, 또 배가 고프고 목도 말라, 저기서 술을 조금 얻어 평상에 올라가 먹었는데, 이불 밑에 어린애를 눕혀 둔 줄은 몰랐습니다. 술을 먹고 나니 어린애는 죽어 있었습니다. 고의가 아닙니다. 원컨대 대왕은 살펴 용서하소서.’

왕은 주모에게 말하였다.

‘네 집에서는 술을 팔기 때문에 손님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왜 손님들 앉는 자리에 아이를 눕히고 보이지 않게 이불을 덮었는가. 지금 너희들은 다 허물이 있다. 네 아이는 이미 죽었으니 저 단니기를 네 남편으로 삼아 아이를 낳게 한 뒤에야 놓아 보내라.’

그 때 주모는 머리를 조아리고 아뢰었다.

‘제 아이는 이미 죽었으니 서로 화해하기를 허락하소서. 저는 저 굶주린 바라문을 남편으로 삼지 않겠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서로 화해하게 되었다.

다음에는 직공 아이들이 앞으로 나와 아뢰었다.

‘이 사람은 미친 듯이 날뛰어 우리 아버지를 밟아 죽였습니다.’

왕은 단니기에게 물었다.

‘너는 왜 억울하게 남의 아버지를 죽였는가?’

단니기는 대답하였다.

‘빚쟁이들이 저를 핍박하여 나는 매우 겁이 났습니다. 그래서 담을 뛰어 넘어 도망치다가 우연히 그 위에 떨어졌습니다. 실로 고의가 아니었습니다.’

왕은 그 사람에게 말하였다.

‘둘이 다 잘못이다. 그대 아버지는 이미 돌아갔으니, 저 단니기를 그대 아버지로 삼아라.’

그 사람은 아뢰었다.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결코 이 바라문을 아버지로 삼지는 않겠습니다. 서로 화해하기를 허락하소서.’

왕은 곧 그들의 화해를 허락하였다.

그 때 단니기는 제 일이 모두 끝나자 한량없이 기뻐하여 그대로 왕 앞에 있었다.

어떤 두 어머니가 한 아이를 데리고 왕에게 와서 제각기 제 아들이라 주장하였다. 왕은 현명하고 지혜로워 방편으로 그 두 여자에게 말하였다.

‘지금 아이는 하나인데 두 어머니가 서로 주장하는구나. 너희들 둘은 각기 그 아기 한 팔씩 잡고 당겨라. 누구나 빼앗는 이가 바로 그 어머니다.’

그 어머니가 아닌 이는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므로 힘을 다해 마구 잡아당기면서 아이가 상할까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아이를 낳은 어머니는 아이를 매우 사랑하기 때문에 끌려 가면서도 아이를 아껴 차마 잡아당기지 못하였다. 왕은 그 참과 거짓을 분별하고, 그 힘을 다 낸 여자에게 말하였다.

‘이 아이는 실로 네 아들이 아니다. 억지로 남의 아이를 욕심낸 것이다. 지금 내 앞에서 사실대로 고백하라.’

그는 곧 머리를 조아리고 왕에게 아뢰었다.

‘실로 거짓이었습니다. 남의 아이를 억지로 제 아이라 하였습니다. 대왕님의 밝고 거룩하심으로 저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왕은 아이를 그 어머니에게 돌려 주고 각기 놓아 보내었다.

또 어떤 두 사람이 흰 천을 가지고 와서 서로 제 것이라 시끄러이 다투었다. 왕은 또 지혜로써 위와 같이 판결하였다. 그 때 단니기는 왕에게 아뢰었다.

‘그 빚쟁이들이 저를 데리고 올 때에 길가에서 어떤 독사가 제게 간곡히 부탁하기를, (제 뜻을 대왕님께 여쭈어 주십시오.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습니다. 구멍에서 나올 때에는 몸이 부드러워 나오기가 편하고, 구멍으로 들어갈 때에는 구멍에 걸려 고통 스러운데, 무슨 까닭인지 저는 알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왕은 대답하였다.

‘그것은 까닭이 있다. 구멍에서 나올 때에는 아무 번뇌가 없어 마음이 편하고 부드럽기 때문에 몸도 또한 그렇다. 뱀이 밖에 나오면 새와 짐승과 다른 일들이 그 몸을 침노하여 잔뜩 성이 났기 때문에 몸이 곧 거칠고 커진다. 그러므로 들어갈 때에는 구멍에 걸려 들어가기 어려운 것이다. 너는 가거든 그에게 말하기를, (만일 네가 밖에 있을 때에도 마음을 단속하여 성내지 않되, 처음 구멍에서 나올 때와 같이 하면 그런 걱정은 없을 것 같다)고 하라.’

그는 또 왕에게 아뢰었다.

‘또 길에서 어떤 여자를 만났는데 그는 제게 대왕께 여쭈어 달라고 부탁하기를, (즉 제가 시가에 있으면 친정이 생각나고, 친정에 있으면 시가가 생각나니, 무엇 때문에 그런지 그 까닭을 모르겠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왕은 대답하였다.

‘그대는 가서 말하하기를, (너는 삿된 마음으로 친정 근처에 군서방을 두었기 때문에 네가 시가에 있으면 그 군서방이 생각나고, 거기 지치면 도로 본서방이 생각난다. 그래서 그런 것이다)라고 하라. 그리고 너는 말하기를, (네가 만일 마음을 단속하여 삿된 길을 버리고 바른 길로 나아가면 그런 걱정은 없을 것이다)라고 하라.’

그는 또 왕에게 아뢰었다.

‘길가 나무 위에 있는 꿩 한 마리를 보았습니다. 그는 제게 대왕께 여쭈어 달라고 부탁하기를, (제가 다른 나무에 있으면 우는 소리가 아름답지 못하고, 이 나무에 있으면 우는 소리가 화창합니다. 어째서 그런지 그 까닭을 모르겠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왕은 말하였다.

‘그럴 까닭이 있다. 그 나무 밑에는 큰 가마의 금이 있기 때문에 그 위에서 울면 소리가 화창하고, 다른 곳에는 금이 없기 때문에 그 위에서 울면 소리가 아름답지 못한 것이다.’

왕은 이어 단니기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허물이 많았으나 나는 이미 다 용서하였다. 너는 집이 매우 곤궁하다. 저 나무 밑의 한 가마 금은 내 소유라야 하겠지마는, 나는 그것을 너에게 준다. 너는 가서 파 가져라.’

그는 왕의 분부를 받고 낱낱이 감사하였다. 그리고 그 금을 파 가지고 장사하고 농사하면서 모든 필요한 것에서 모자람이 없었고, 갑자기 큰 부자가 되어 한평생 안락하게 지냈느니라.”

부처님께서는 이어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 때의 대왕 아파라제목거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이 내 몸이요, 바라문 단니기는 바로 지금의 저 바라문 빈두로타사니라. 나는 옛날에도 그의 온갖 재앙을 구제하고 보물을 주어 안락하게 하였고, 지금 부처가 되어서도 그의 고통을 덜어 주고 다함이 없는 법 창고의 보물을 주었느니라.”

아난과 대중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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