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우경(賢愚經) 제10권
38.아난총지품(阿難摠持品)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여러 비구들은 모두 의심을 내었다.
‘현자 아난은 전생에 어떤 행을 지었기에 저런 기억력을 얻어 부처님 말씀을 들으면 하나도 잊어버리지 않을까?’
그들은 부처님께 나아가 아뢰었다.
“현자 아난은 본래 어떤 복을 지었기에 그런 한량없는 기억력을 얻었습니까? 원컨대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여 주소서.”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자세히 듣고 잘 명심하라. 그런 기억력은 모두 복덕으로 말미암아 얻은 것이니라.
먼 옛날 아승기겁 전에 어떤 비구가 한 사미를 기르면서 항상 엄하게 명령하여 경전을 외우게 하였다. 날마다의 과정으로 그 경전을 잘 외우면 매우 기뻐하였으나, 잘 외우지 못하면 꾸짖었다.
그래서 그 사미는 경을 잘 외우지 못할까 늘 걱정하였다. 더구나 먹을 것의 준비가 없었기 때문에 만일 걸식하러 나가 밥을 빨리 얻어 먹으면 경을 충분히 외울 수 있었지마는, 걸식이 더디게 되면 경을 충분히 외우지 못하였다. 그래서 충분히 외우지 못하면 반드시 호된 꾸지람을 받을 것이라 생각하고, 근심하고 번민하면서 울고 다녔다.
그 때 어떤 장자는 그가 우는 것을 보고 그를 불러 물었다.
‘너는 왜 괴로워하는가?’
사미는 대답하였다.
‘장자님, 아십시오. 우리 스승님은 매우 엄하고 까다로워 제게 명령하여 경을 외우게 하되, 날마다 정한 과정을 잘 외우면 기뻐하시지마는, 만일 충분하지 못하면 몹시 꾸중을 하십니다. 제가 걸식하러 나가 밥을 빨리 얻으면 경을 충분히 외울 수 있지마는, 만일 밥을 더디 얻게 되면 충분히 외우지 못합니다. 그리고 충분히 외우지 못하면, 호된 꾸지람을 당합니다. 그래서 제가 근심하는 것입니다.’
그 때 장자는 그 사미에게 말하였다.
‘지금부터는 늘 우리 집에 오너라. 나는 늘 음식을 대어 주어 너를 걱정하지 않게 할 것이니, 밥을 먹고는 알뜰한 마음으로 부지런히 경을 외우도록 하라.’
그러자 사미는 그 말을 듣고, 알뜰한 마음으로 부지런히 공부할 수 있어 정한 과정이 줄지 않고 날마다 그렇게 하였다.
그 때부터 스승과 제자가 모두 기뻐하였느니라.”
부처님께서는 이어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그 때의 그 스승은 바로 정광불(定光佛)이요, 그 사미는 이 내 몸이며, 음식을 공양한 그 큰 장자는 지금의 저 아난이니라. 그는 과거에 그런 행을 지었기 때문에 금생에 기억력을 얻어 하나도 잊어버리지 않는 것이니라.”
그 때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고 믿어 받들어 행하였다.
39.우바사형소살품(優婆斯兄所煞品)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나열기국에 장사꾼 형제가 한 곳에 살고 있었다.
형은 어떤 장자의 딸을 구해 아내로 삼으려 하였으나 그 처녀는 아직 나이가 어려 시집갈 수 없었다.
그 때 그 형은 여러 상인들과 함께 멀리 다른 나라로 떠나 여러 해를 지내면서 쉬이 돌아오지 않았다. 처녀는 나이가 차서 시집갈 수 있었다. 그래서 장자는 그 아우에게 말하였다.
“그대의 형은 멀리 떠나 거기 살면서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대가 내 딸을 맞아들이도록 하라.”
아우는 대답하였다.
“어찌 그럴 수가 있습니까? 우리 형님이 아직 살아 계시는데 감히 그럴 수 있습니까?”
장자는 거듭 권하였으나, 아우의 굳은 뜻을 돌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장자는 단념하지 않고, 거짓으로 편지를 만들어 멀리 저쪽 상인들에게 부탁하여 그 형이 죽었다고 소문을 퍼뜨렸다. 아우는 형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매우 놀랐다.
장자는 다시 그 아우에게 가서 말하였다.
“그대 형이 죽었는데 내 딸은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만일 그대가 받아 주지 않으면 나는 다른 길을 구하리라.”
아우는 재촉을 받자 그 딸을 아내로 삼았다. 얼마를 지나 여자는 아기를 배었다.
그 때 그 형은 다른 나라에서 돌아왔다. 아우는 형이 본국으로 돌아왔다는 말을 듣고 몹시 부끄럽고 송구하여 사위국으로 도망갔다. 그가 떠난 뒤에 그녀의 여러 친구들은 그 아내의 배를 만져 낙태를 시켰다.
그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부처님께 나아가 부끄러움을 못 이겨 출가하기를 청하였다. 부처님께서는, 그가 제도할 만함을 아시고 이내 허락하셨다.
그는 부처님의 허락을 받고 사문이 되어 이름을 우바사(優婆斯)라 하였다. 그는 계율을 받들어 지니고 부지런히 공부하여 곧 아라한의 도를 얻었다. 그리하여 여섯 가지 신통이 트이고 온갖 지혜를 두루 갖추었다.
그 때 그 형은 집에 돌아와 아우가 이미 그 처녀에게 장가든 것을 보고, 질투하고 분한 마음으로 그를 쫓아가 죽이려고 사방을 찾아다니다가 아우가 사위국으로 갔다는 말을 들었다.
독하고 분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그는 곧 사람을 모집하였다.
“누구나 내 아우의 머리를 베어 오면 상금 5백 냥을 주리라.”
어떤 사람이 와서 그 모집에 응하였다.
“내가 그 머리를 베어 오리다.”
형은 곧 돈을 내어 그 사람을 쓰고, 그 사람과 함께 사위국으로 갔다. 그들은 거기서 그 아우가 좌선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내가 어떻게 저 비구를 죽이겠는가. 그러나 만일 내가 저를 죽이지 않으면 돈 5백 냥을 놓치는 것이다.’
활을 당겨 쏘려 하였다. 활을 당겨 그 비구를 향해 막 쏘았을 때, 화살은 그 형을 맞혔다.
형은 분하고 괴로워하다가 죽은 뒤에 독사 몸을 받아 그 우바사 도인의 지게문 지도리 밑에 났다. 그러나 독한 마음이 풀리지 않아 틈을 엿보아 그를 해치려 하였지마는 지게문을 자주 여닫을 때에 몸이 치어 죽었다.
죽은 후에도 그 마음을 고치지 않고 스스로 원하여 조그만 독벌레가 되어 그 도인의 천장을 의지해 살다가 그 도인이 단정히 앉아 있을 때를 엿보아 천장에서 그 정수리에 떨어져 그 사나운 독기로 비구를 죽게 하고 말았다.
그 때 사리불은 이 사실을 보고 부처님께 나아가 여쭈었다.
“저 죽은 비구는 전생에 어떤 인연을 지었기에 금생에 도를 얻었다가 저 벌레의 독으로 인해 죽었습니까? 원컨대 부처님께서는 가르쳐 주소서.”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잘 듣고 잘 기억하라. 내가 너를 위해 자세히 설명하리라.
오랜 옛날 무수한 세상 전에 어떤 벽지불(辟支佛)이 세상에 나와 산 속에 살면서 도를 닦아 그 원을 이루었다.
그 때 어떤 사냥꾼이 늘 짐승을 잡을 때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것을 잡으려고 노리고 있었다. 그 때 그 벽지불은 그 짐승들을 쫓아 사냥꾼으로 하여금 잡지 못하게 하였다. 사냥꾼은 화가 나고 분하여 그만 독한 화살로 벽지불을 쏘았다.
그 때 벽지불은 그를 가엾이 여겨 회개시키려고 신통을 나타내었다. 이른바 날아다니면서 허공을 밟고, 몸을 굽혔다 펴고, 폈다 오그리며,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기를 자유로이 하면서 신통을 나타내었다.
그 때 사냥꾼은 그것을 보고 마음으로 공경하고 우러르다가 이내 두려워 스스로 꾸짖으면서 정성껏 사과하고 간절히 참회를 구하였다.
벽지불은 그 참회를 받아 주었다. 그 참회를 받고는 독으로 인해 죽어 지옥에 떨어졌고, 지옥에서 나와서도 5백 세상 동안 늘 독을 입어 죽었다. 그리고 금생에 와서 아라한이 되었지마는, 독벌레에 쏘이어 목숨이 끊어졌느니라.
그리고 한번 나쁜 마음을 내었으나 곧 참회하고 서원을 세우되, ‘나는 오는 세상에 거룩한 스승을 만나 지금처럼 신통을 얻으리라’라고 하였기 때문에 지금 나를 만나 도를 이루었느니라.”
그 때 사리불과 여러 대중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40.아오살부품(兒誤煞父品)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어떤 노인은 일찍이 그 아내를 잃고, 혼자 아들과 함께 곤궁하게 살다가 세상의 덧없음을 깨닫고 집을 떠나려고 부처님께 나아가 도에 들어가기를 청하였다. 부처님께서는 그를 가엾이 여겨 곧 집 떠나기를 허락하였다.
그 때 그 아버지는 비구가 되고 그 아들은 어리기 때문에 사미가 되어 늘 아버지와 함께 마을에 들어가 저물어서야 돌아왔다.
그 때 그들은 어떤 궁벽한 먼 마을에 가서 걸식하고 저물어서야 돌아왔다. 아버지는 늙었기 때문에 걸음이 느렸다. 아들은 온갖 독한 짐승들이 무서워 급히 아버지를 부축하여 밀고 가다가 든든히 잡지 못해 그만 아버지를 밀어 땅에 넘어트렸다. 그래서 그 아버지는 아들 손에 맞아 죽은 셈이 되었다.
아버지가 죽은 뒤에 아들은 혼자 부처님께 나아갔다. 비구들은 그 사미에게 물었다.
“너는 아침에 네 스승(아버지)과 함께 걸식하러 마을에 나갔는데, 지금 네 스승은 어디 있는가?”
사미는 대답했다.
“제가 아침에 스승님과 함께 마을에 나가 걸식하고 해가 저물어 돌아올 때에 스승님 걸음이 조금 느렸었습니다. 그 때 저는 두려움이 생겨 스승님을 급히 밀었는데, 미는 손이 너무 급해 스승님을 땅에 넘어트렸습니다. 그래서 우리 스승님은 도중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 때 여러 비구들은 그 사미를 꾸짖었다.
“너는 아주 나쁜 놈이다. 아버지를 죽이고 동시에 스승님을 죽였다.”
그들은 곧 부처님께 나아가 아뢰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 스승이 죽었지마는 그것은 악의에서 온 것이 아니다.”
그리고는 곧 사미에게 물으셨다.
“너는 네 스승을 죽였느냐?”
사미는 대답하였다.
“저는 진실로 죽였습니다. 그러나 악의로써 죽인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는 그 말을 옳다 하시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사미여, 나는 네 마음을 안다. 네게는 악의가 없었다. 지나간 세상에서도 그와 같이 악의가 없이 죽인 일이 있었느니라.”
그 때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이내 여쭈었다.
“알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지나간 세상에 이들 부자는 어떤 인연으로 서로 죽였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자세히 들으라. 나는 너희들을 위해 설명하리라.
과거의 한량없는 아승기겁 전에 부자 두 사람이 한곳에 살고 있었다. 그 때 아버지가 병이 중하였는데, 누워서 잠들려 하면, 파리가 자꾸 와서 괴롭게 하였다. 아버지는 그 아들을 시켜 파리를 쫓고 편히 잠들어 피로를 풀려고 하였다. 아들은 파리를 쫓았으나 파리는 그치지 않고 자꾸 왔다. 아들은 화를 내어 큰 몽둥이를 가지고 파리를 기다려 죽이려 하였다. 파리들은 자꾸 아버지 이마에 오기 때문에 그는 몽둥이로 파리를 때리다가 그만 아버지를 죽였다. 그러나 그 때에도 악의는 아니었느니라.
비구들이여, 알라. 그 때의 그 아버지는 바로 이 사미요, 그 때의 몽둥이로 아버지 이마를 때린 아들은 바로 지금 죽은 저 비구이니라.
그 때 그 사미는 몽둥이로 아버지를 죽였으나 악의가 아니었기 때문에 지금의 그 과보도 일부러 죽인 것이 아니니라. 그래서 그 사미는 게으르지 않고 차례로 부지런히 공부하여 마침내 아라한이 되었느니라.”
그 때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모두 마음으로 믿고 이해하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41.수달기정사품(須達起情舍品)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왕사성의 죽원(竹園)에 계셨다.
그 때 사위국의 파사닉왕에게는 수달(須達)이라는 대신이 있었다. 그의 집은 큰 부자로서 재보가 한량없었다. 그는 보시하기를 좋아하여 가난한 이와 고독한 노인들을 구제하였기 때문에, 그 때 사람들은 그의 행을 따라 이름을 급고독(給孤獨:외로운 이 돕는 이)이라 하였다.
장자에게는 장성한 아들 일곱이 있었는데, 여섯째까지는 모두 장가들였다. 그 일곱째 아들은 단정하고 뛰어났기 때문에 그를 치우치게 사랑하였다. 그 아들을 위하여 얼굴이 아주 묘하고 단정하여 원만한 상을 갖춘 며느리감을 구하려 하였다. 그는 바라문들에게 말하였다.
“누구에게 좋은 딸이 있어 그 얼굴이 원만한지, 내 아들을 위해 구해 보시오.”
바라문은 그런 처녀를 구하려고, 여기저기 행걸(行乞)하면서 왕사성에 이르렀다. 그 성 안에는 호미(護彌)라는 대신이 있었는데, 그는 재물이 한량없었고 삼보를 믿고 공경하였다.
그 때 그 바라문은 그 집에 가서 걸식하였다. 그 나라 법에 보시하는 사람은 반드시 동녀를 시켜 물건을 가져다 보시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 때 호미 장자에게는 얼굴이 단정하고 안색이 뛰어나게 묘한 딸이 있었는데, 그 처녀가 음식을 가지고 나와 바라문에게 보시하였다. 바라문은 그처녀를 보고 매우 기뻐하여 ‘내가 구하던 처녀를 오늘에야 보았다’ 하고, 그 처녀에게 물었다.
“혹 어떤 사람이 와서 너에게 청혼한 일이 있었는가?”
처녀는 대답하였다.
“없었습니다.” “네 아버지는 계신가?” “계십니다.” “밖에 좀 나오시도록 하라. 내가 만나서 의논할 일이 있다.”
처녀는 안에 들어가 그 아버지에게 아뢰었다.
“밖에 어떤 바라문이 아버님을 뵙고자 합니다.”
그 아버지는 곧 밖으로 나왔다. 바라문은 말하였다.
“기체 안녕하십니까?”
문안을 드린 뒤에 또 말하였다.
“사위국왕의 대신으로, 이름이 수달이라고 하는 정승을 아십니까?”
그는 대답하였다.
“보지는 못하였으나 그 이름은 들었습니다. 당신은 아십니까?” “그 사람은 사위국에서 부귀하기 으뜸이요, 당신은 이 나라에서 복 있고 귀하기 제일입니다. 그 수달에게는 얼굴이 단정하고 묘하며 계략과 재주가 뛰어난 아들이 있어 당신 딸을 얻고자 하는데, 될 수 있겠습니까?” “좋습니다.”
마침 사위로 가는 어민 상인이 있었다. 바라문은 곧 편지를 써서 그 편에 수달에게 보내면서 그 사실을 자세히 전하였다.
수달은 매우 기뻐하면서 왕에게 나아가 말미를 청하여 며느리를 맞이하려 하였을 때, 왕은 곧 허락하였다.
그는 보물을 많이 싣고 왕사성으로 가는 도중에 가난한 이를 많이 구제하고, 왕사성에 이르러 호미 집으로 가서 혼인을 청하였다. 호미 장자는 기쁘게 맞이하고 자리를 폈다.
그 날 밤에 그 집에서 자는데, 온 집안에서는 음식을 장만하느라고 분주하였다. 수달은 생각하였다.
‘지금 이 장자는 큰 공양거리를 장만하는데 어디 쓰려 하는가. 장차 국왕·태자·대신·장자·거사와 또 혼인하는 친척들을 청하여 큰 모임을 열려고 하는 것인가?’
그 까닭을 궁리해 보았으나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물어 보았다.
“장자는 오늘 밤에 몸소 수고로이 사무를 맡아 보면서 공양거리를 장만하는데, 그것으로 국왕·태자·대신들을 청하려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혼인하는 친척의 모임을 열려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하려는 것입니까?”
그는 대답하였다.
“부처님과 스님들을 청하려는 것입니다.”
그 때 수달 장자는 부처님과 스님들이라는 말을 듣고 갑자기 털이 곤두서면서 어떤 얻는 바가 있는 듯 환희심이 일었다. 그래서 거듭 물었다.
“어떤 이를 부처님이라 합니까? 그 뜻을 말해 주십시오.”
장자는 대답하였다.
“당신은 듣지 못하였습니까? 정반왕의 아들은 그 이름이 실달(悉達)로서, 그가 나던 날에는 하늘에서 서른두 가지의 상서로운 징조가 내려왔으며, 1만 신들이 시위하였습니다. 그는 나자 일곱 걸음을 걸으면서 손을 들어 말하기를 ‘천상 천하에 오직 내가 제일 높다’고 하였습니다.
몸은 황금색이요, 서른두 가지 거룩한 모습[三十二相]과 여든 가지 뛰어난 모양[八十種好]을 갖추었고, 왕의 금륜(金輪)이 응할 만하였고, 네 천하를 맡을 만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생·노·병·사의 괴로움을 보고는 집에 있기를 즐기지 않고 집을 떠나 도를 닦되 6년 동안 고행하였습니다. 그래서 일체의 지혜를 얻고 번뇌를 끊어 부처가 되어서는, 18억만의 악마 무리들을 항복 받고 호를 능인(能仁)이라 하였습니다. 그는 10력(力)·4무외(無畏)·18불공(不共)이 있고 광명은 빛나며, 3달(達)로 두루 알기 때문에 부처라고 이름하는 것입니다.”
수달은 물었다.
“그러면 어떤 것을 스님이라고 합니까?”
호미는 대답하였다.
“부처님께서 도를 이루신 뒤에 범천이 부처님의 묘한 법륜 굴리시기를 권하였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바라내의 녹야원(鹿野苑)으로 가시어 구린(拘隣) 등 다섯 사람들을 위하여 4진제(眞諦)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번뇌가 다하고 결박이 풀리어 곧 사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6통(通)을 완전히 갖추고 4의(意)·7각(覺)·8도(道)를 모두 익혀 허공에 올랐고, 8만 여러 하늘들은 수다원을 얻었으며, 한량없는 천인(天人)들은 위없는 도의 마음을 내었습니다.
다음에는 울비가섭(鬱卑迦葉) 형제 등 천 사람을 제도하여 그들도 번뇌가 다하고 뜻이 풀림이 마치 위의 다섯 사람과 같았습니다. 다음에는 사리불·목련 등 5백 사람을 제도하니, 모두 아라한이 되었습니다. 그런 이들은 신통이 자유롭고 능히 중생들의 좋은 복밭이 되기 때문에 스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수달은 이러한 묘한 일을 설명하는 말을 듣고 기뻐하면서 감격하여 부처님을 믿고 공경하였다. ‘새벽이 되면 부처님을 가서 뵈오리라’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정성의 과보로 신(神)이 감동하여 땅이 환히 밝게 보였다. 그는 곧 그 밝음을 따라 나열(羅閱) 성문에 이르렀다.
그런데 그 성문은 밤 세 때에 열게 되어 있었다. 초저녁·밤중·첫새벽인데, 이것을 세 때라 한다. 그는 밤중에 문을 나가 어떤 천사(天祠)를 보고 예배하다가 그만 부처님 생각을 잊고 마음이 도로 어두워졌다. 그는 생각하였다.
‘지금 밤은 아직 어둡다. 만일 내가 지금 가다가는 혹 악귀나 맹수의 해침을 당할는지 모른다. 우선 도로 성에 들어갔다가 새벽을 기다려 가리라.’
그 때 그의 친구로서 4왕천에 난 이가 있었다. 그는 그가 후회하려는 것을 보고 내려와 말하였다.
“거사여, 후회하지 말라. 네가 지금 가서 부처님을 뵈면 한량없는 이익을 얻을 것이다. 비록 지금 네가 백 수레의 보물을 얻더라도 한 걸음 발을 옮겨 부처님께 나아가면, 거기서 얻는 큰 이익은 백 수레 보물보다 나을 것이다.
거사여, 너는 가라. 후회하지 말라. 비록 지금 백 코끼리의 보물을 얻더라도, 한 걸음 발을 옮겨 부처님께 나아가면 그 이익은 저것보다 많을 것이다.
거사여, 너는 가라. 후회하지 말라. 비록 지금 한 염부제 안에 가득한 보물을 얻더라도 그것은 한 걸음 발을 옮겨 부처님께 나아가 거기서 얻는 많은 이익보다 못할 것이다.
거사여, 너는 가라. 후회하지 말라. 비록 지금 4천하 안에 가득한 보물을 얻더라도 한 걸음 발을 옮겨 부처님께 나아가면, 거기서 얻는 가득한 이익은 저것보다 백천만 곱절이나 많을 것이다.”
수달은 하늘의 이 말을 듣고 더욱 기뻐하여 부처님을 공경하고 생각하였다. 그러자 어두움은 도로 밝아졌다. 그는 길을 찾아 부처님께 나아갔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수달이 올 줄을 아시고 밖에 나와 거닐고 계셨다. 수달은 멀리서 부처님을 뵈니, 몸은 마치 금산과 같았으며 상호와 위용은 의젓하고 빛나 호미의 말보다 만 배나 더 훌륭하였다. 그는 마음이 너무 기뻐 예법을 알지 못하고 바로 부처님께 문안 드렸다.
“구담이시여, 기체 어떠하십니까?”
부처님께서는 그를 자리에 앉게 하셨다.
그 때 수타회천은 수달이 부처님을 뵈었으나 예배하고 공양하는 법을 알지 못하는 것을 멀리서 보고 곧 네 사람으로 변하여 줄을 지어 내려와 부처님께 나아가 발에 대고 예배한 뒤에 꿇어앉아 문안 드리되, “기체 안녕하십니까?” 하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고는 한쪽에 물러앉았다.
그 때 수달은,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고 놀라면서 ‘공경하는 법은 저러하여야 할 것이다’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저들처럼 예배하고 안부를 여쭙고는, 오른쪽으로 세 번 돌고 한쪽에 물러나 서 있었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그를 위해 4제의 미묘한 법과 괴로움[苦]·공(空)· 덧없음[無常]을 설명하셨다. 그는 그 설법을 듣고 기뻐하면서 곧 거룩한 법에 물들어 수다원을 성취하였다.
그것은 마치 깨끗하고 흰 천이 쉽게 색이 물드는 것과 같았다.
그는 꿇어앉아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저 사위성 안에도 저처럼 법을 듣고 물들기 쉬운 사람이 또 있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대 같은 이는 둘도 없다. 사위성 사람들은 삿된 법을 많이 믿기 때문에 거룩한 가르침에는 물들기 어려우니라.” “원컨대 부처님께서는 몸을 굽히시어 사위로 오셔서 거기 사는 중생들로 하여금 사도를 버리고 정도로 나아가게 하소서.”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집을 떠난 사람의 법은 속인과 다르므로 거처하는 처소도 달라야 한다. 거기는 절이 없는데, 어떻게 갈 수 있겠는가?” “제가 절을 일으키겠습니다. 허락하여 주소서.”
부처님께서는 잠자코 허락하셨다.
수달은 부처님께 하직하고 나와 아들 혼사를 마치러 다시 집으로 돌아가려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본국으로 돌아가 절을 세우겠습니다. 그러나 그 제도를 알지 못하니, 부처님께서는 한 제자를 보내어 함께 가서 지시하도록 하소서.”
부처님께서는 생각하셨다.
‘사위성 안에는 삿되고 뒤바뀐 견해를 가진 바라문들이 많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 가서는 반드시 일을 치르지 못할 것이다. 저 사리불만은 바라문 출신이라,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신통마저 갖추었으니 그가 가면 유익할 것이다.’
사리불을 불러 수달과 함께 가게 하였다.
수달은 사리불에게 물었다.
“부처님께서는 걸어서 하루 몇 리나 가십니까?”
사리불은 말하였다.
“하루에 반 유순씩 가시는데, 그것은 전륜왕의 걷는 법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자 수달은 길목 20리마다 객사(客舍) 하나씩 지을 계획을 세우고 인부를 사서 공사를 마쳤다. 그리고 사람을 두어 음식과 좌구(坐具)를 모두 만족하게 하였다.
그는 왕사성에서 사위국의 자기 집에 돌아와 사리불과 함께 여러 곳으로 다니면서 절을 세울 만한 편편한 땅을 물색해 보았다. 아무리 두루 돌아다녀보아도 마음에 드는 곳이 없고, 오직 왕태자 기타(祇)가 소유한 동산이 땅은 편편하고 숲은 우거졌으며, 성중에서 너무 멀지도 않고 너무 가깝지도 않아 꼭 알맞은 곳이었다.
그 때 사리불은 수달에게 말하였다.
“이 동산은 절을 세우기에 적당합니다. 성 안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걸식하기에 곤란하고 너무 가까우면 시끄러워 도를 닦기에 방해됩니다.”
수달은 기뻐하면서 태자에게 아뢰었다.
“저는 지금 부처님을 위해 절을 세우고자 하는데, 태자님 동산을 사고 싶습니다.”
태자는 웃으면서 말하였다.
“내게는 모자라는 것이 없소. 이 동산은 수목이 울창하여 내가 늘 놀고 산책하면서 시름을 풀기에 적당한 곳이오.”
수달은 두 번 세 번 간절히 청하였다. 태자는 욕심 많고 인색하여 몇 배나 비싼 값으로 부르면 사지 못하리라 생각하고 수달에게 말하였다.
“당신이 만일 그 동산에 황금을 깔되 빈 틈이 없이 하면 그 동산을 주겠소.” “좋습니다. 그 값대로 하겠습니다.”
기타 태자는 말하였다.
“그것은 농담이오.”
그 때에 수달은 태자에게 아뢰었다.
“태자 된 법으로 거짓말을 할 수 없습니다. 거짓말로 속인다면 어떻게 왕위를 이어받아 인민들을 사랑하고 구제하겠습니까?”
곧 태자와 함께 관청에 가서 소송하려 하였다.
그 때 수타회천은 ‘부처님을 위해 절을 세운다면 아직은 여러 대신들이 태자 편이 되리라’ 염려하여, 곧 한 사람으로 변하여 내려와 비판하면서 태자에게 말하였다.
“대개 태자 법으로는 거짓말을 하여서는 안 됩니다. 이미 값을 결정하여 허락하였다면 중간에서 뉘우치지 말고, 딱 끊어서 주어야 합니다.”
수달은 기뻐하여, 곧 사람을 시켜 코끼리에 금을 싣고 나와 80이랑 동산을 잠깐 동안에 덮으려 하였으나, 땅이 조금 남았다. 수달은 생각하였다. ‘어느 창고의 금이 넉넉하되, 많지도 적지도 않을까? 꼭 알맞은 창고의 금을 가져다 채우리라.’
기타 태자는 말하였다.
“금이 아깝거든 그만두오.”
수달은 답하였다.
“아닙니다. 어느 창고의 금이 이 모자라는 곳을 알맞게 채울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타 태자는 생각하였다.
‘부처님께서는 반드시 큰 덕이 있는 분인 모양이다. 그러기에 이 사람으로 하여금 이처럼 보배를 가벼이 여기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정도로 그만두게 하고 말하였다.
‘금을 더 내지 마시오. 이제 동산은 당신 것이오. 그러나 숲은 내게 속하는 것이오. 나는 숲을 부처님께 바칠 것이니, 우리 같이 절을 세우도록 합시다.’
수달은 기뻐하여 그렇게 하자 하고, 집에 돌아가 공사를 시작하려 하였다.
그 때 외도의 여섯 스승들은 이 소문을 듣고 왕에게 가서 아뢰었다.
“수달 장자는 기타 태자의 동산을 사서 사문 구담을 위해 절을 세우려 한다고 합니다. 우리 무리들과 한번 기술 겨루기를 허락하여 주소서. 그래서 저 사문들이 이기면 세우는 것을 허락하실 것이요, 만일 이기지 못한다면 세울 수 없습니다. 구담 무리들은 왕사성에서 살고 저희들은 여기서 살겠습니다.”
왕은 곧 수달을 불러 말하였다.
“지금 이 여섯 스승들이 말하기를, 그대가 기타 동산을 사서 사문 구담을 위하여 절을 세우려 한다고 하는데, 저 사문 제자와 기술을 겨루어 그가 이긴다면 절을 세울 수 있지마는, 만일 이기지 못하면 세울 수 없다고 한다.”
수달은 집에 돌아가 때묻은 옷을 입고 근심하고 번민하였다.
그 때 사리불은 이튿날 때가 되어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수달 집으로 가서 그가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물었다.
“왜 괴로워하십니까?”
수달은 대답하였다.
“세우려고 하는 절이 아마 이뤄지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 때문에 근심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기에 이루지 못할까 걱정합니까?” “지금 저 여섯 스승들이 왕에게 가서 재주 겨루기를 청하였습니다. 존자님이 이긴다면 절 세우는 것을 허락하겠지마는 만일 이기지 못한다면 세우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저 여섯 스승들은 집을 떠나 오랫동안 수행한 보람이 있어 그 배운 기술은 아무도 따르지 못한다 합니다. 나는 지금 존자님의 기술이 능히 저들과 겨룰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리불은 말하였다.
“가령 그들 여섯 스승의 무리가 이 염부제에 가득히 차서 그 수가 대나무와 같더라도 내 발 위의 털 하나도 움직이지 못할 것이오. 무엇이나 겨루어 보려거든 마음대로 들어 주시오.”
수달은 기뻐하여 새 옷을 갈아 입고 향탕에 목욕하고는, 왕에게 가서 아뢰었다.
“저는 물어 보았습니다. 여섯 스승들이 겨루려면 마음대로 하라고 합니다.”
그 때 왕은 여섯 스승에게 말하였다.
“나는 지금 너희들이 저 사문과 겨루기를 허락한다.”
그 때 여섯 스승들은 온 나라 사람들에게 두루 알렸다.
“지금부터 이레 뒤에 저 성 밖 넓은 곳에서 사문과 기술을 겨루리니, 사위국 안의 18억 인민들은 그리 알라.”
그 나라 법에는 북을 치면 여러 사람이 모이고, 구리 쇠북을 치면 8억 인이 모이며, 은북을 치면 14억이 모이고, 금북을 치면 온 나라 사람이 다 모이게 되어 있었다.
이레가 되어 왕은 시합 장소에 이르러 금북을 쳤다. 모든 인민들은 죄다 모였고, 여섯 스승의 무리들은 3억 인이었다. 그 때 인민들은 모두 국왕과 여섯 스승들을 위해 높은 자리를 만들었고, 수달은 사리불을 위해 높은 자리를 만들었다.
그 때 사리불은 어떤 나무 밑에 앉아 고요히 선정에 들었다. 모든 감관은 고요하여 여러 가지 선정에 놀되, 통달하여 걸림이 없었다. 그리고 생각하였다.
‘여기 모인 대중들은 사도를 익혀온 지 오래여서 잘난 체하면서 뽐낸다. 초개 같은 저 중생들을 어떤 덕(德)으로 항복 받아야 할까?’
이렇게 생각한 뒤에 두 가지 덕을 쓰리라 하고, 곧 서원을 세웠다.
‘만일 내가 수없는 겁 동안에 부모님께 효도하고 사문과 바라문을 공경하고 높였으면, 내가 처음으로 회장에 들어갈 때 일체 대중들은 모두 내게 예배할 것이다.’
그 때 여섯 스승들은, 대중들이 이미 다 모였으나 사리불만이 오지 않은 것을 보고 왕에게 아뢰었다.
“구담 제자는 스스로 기술이 없는 줄을 알면서 거짓으로 능력을 겨루자고 하였으나, 대중이 모이는 것을 보고 겁을 내어 오지 않습니다.”
왕은 수달에게 말하였다.
“네 스승 제자도 겨룰 때가 되었으니, 빨리 와서 변론하라고 하라.”
그러자 수달은 사리불에게 가서 꿇어앉아 아뢰었다.
“큰 스님, 대중이 다 모였습니다. 회장으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사리불은 선정에서 일어나 옷을 다시 바르게 하고는, 니사단(尼師壇)을 왼쪽 어깨에 걸치고, 마치 큰 사자처럼 천천히 걸어 대중에게로 갔다. 그 때 대중들은 모습과 법복이 그 여섯 스승들과 다른 것을 보고, 여섯 스승들과 함께 모두 갑자기 일어섰다. 그리고 마치 바람에 풀이 휩쓸리듯, 저도 모르게 예배하였다. 사리불은 수달이 만들어 놓은 자리에 올랐다.
그 여섯 스승 무리 중에는 노도차(勞度差)라는 제자가 있었다. 그는 환술(幻術)을 잘 알았다. 그는 대중 앞에서 주문을 외워 한 나무를 만들었다. 나무는 저절로 자라나 그 그늘은 회장을 두루 덮고, 가지와 잎은 우거지며 꽃과 열매는 모두 기이하였다. 대중들은 모두 말하였다.
“이 신변은 노도차의 조화다.”
그 때 사리불은 곧 신력으로 회오리 바람을 일으켜 그 나무를 뽑아 땅에 쓰러뜨리고는 산산이 부수어 티끌을 만들었다. 대중들은 모두 말하였다.
“사리불이 이기고 노도차가 졌다.”
그는 다시 주문을 외워 한 못을 만들었다. 그 못의 사면은 모두 일곱 가지보배로 되었고, 못물 가운데는 갖가지 연꽃이 피었다. 대중들은 모두 말하였다.
“이것은 노도차의 조화다.”
그 때 사리불은 여섯 어금니를 가진 크고 흰 코끼리를 신력으로 만들었다. 그 한 어금니 위마다 일곱 개 연꽃이 있고 낱낱 꽃 위에는 일곱 명 미녀가 있었다. 코끼리가 천천히 걸어 못가로 가서 그 물을 마시자, 못은 이내 말라버렸다. 대중들은 모두 말하였다.
“사리불이 이기고 노도차가 졌다.”
그는 또 한 산을 만들었다. 일곱 가지 보배로 장엄하였고, 우물과 못이 있었으며 수목이 우거지고 꽃과 열매가 무성하였다. 대중들은 모두 말하였다.
“이것은 노도차의 조화다.”
그 때 사리불은 곧 신력으로 금강역사(金剛力士)를 만들어 금강저(金剛杵)로 멀리서 그 산을 가리키자, 산은 모조리 부서져 없어졌다. 대중들은 모두 말하였다.
“사리불이 이기고 노도차가 졌다.”
그는 또 머리가 열 개인 용을 만들었다. 그것은 갖가지 보물을 쏟으며, 우레와 번개는 대지를 뒤흔들었다. 거기에 놀란 대중들은 모두 말하였다.
“이것도 노도차의 조화다.”
그 때 사리불은 큰 금시조(金翅鳥)를 신력으로 만들어 그 용을 모두 찢어 먹어 버렸다.
대중들은 모두 말하였다.
“사리불이 이기고 노도차가 졌다.”
그는 다시 소 한 마리를 만들었다. 몸은 장대하고 살이 쪘으며 힘이 세었고, 다리는 굵고 뿔은 날카로웠다. 그는 땅을 파고 소리치며 사리불 앞으로 내달아 왔다. 그러자 사리불은 신력으로 큰 사자를 만들어 보내어 그 소를 찢어 먹게 하였다. 대중들은 모두 말하였다.
“사리불이 이기고 노도차가 졌다.”
그는 다시 그 몸을 변화시켜 야차 귀신이 되었다. 몸은 장대하고 머리 위에서는 불이 타며, 눈은 붉어 피와 같고 어금니 네 개는 길고 날카로우며, 입으로 불을 뿜으면서 날듯이 달려왔다.
그러자 사리불은 스스로 그 몸을 변화시켜 비사문왕이 되었다. 야차는 두려워 떨며 달아나려 하였으나, 사방에서 불이 일어 나갈 곳이 없었다. 오직 사리불 곁만이 시원하고 불이 없었다. 그는 곧 항복하고 사리불 앞에 엎드려 살려 주기를 애걸하였다. 그리고 부끄러워하고 후회하는 마음이 생기자 불이 곧 사라졌다. 대중들은 모두 외쳤다.
“사리불이 이기고 노도차가 졌다”
그 때 사리불은 허공에 솟아올라 다니고 서며 앉고 서며 4위의(威儀)를 나타내면서 몸 위에 물을 내기도 하고 몸 밑에서 불을 내기도 하며, 동쪽에서 꺼지면 서쪽에서 솟아나고, 서쪽에서 꺼지면 동쪽에서 솟아나고, 북쪽에서 꺼지면 남쪽에서 솟아나고, 남쪽에서 꺼지면 북쪽에서 솟아났다.
혹은 큰 몸을 나타내어 허공에 가득 찼다가 다시 작은 몸을 나타내고, 한 몸을 쪼개어 백천만 몸을 만들었다가 도로 합해 한 몸이 되었다. 허공에서 갑자기 사라져 땅에 있을 때에는, 땅을 밟기를 물처럼 밟고 물을 밟기를 땅처럼 밟았다.
이런 변화를 나타내고는 신통을 도로 거두어 본래의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거기 모인 대중들은 그 신력을 보고 모두 기뻐하였다.
그 때 사리불은 그들을 위해 설법하였다. 그들은 모두 그 본래의 행과 전생에 지은 복의 인연을 따라 제각기 도를 얻었다. 그래서 수다원을 얻는 이도 있었고, 사다함·아나함, 혹은 아라한을 얻는 이도 있었다. 그리고 여섯 스승의 3억 제자들은 모두 사리불 있는 곳에서 출가하여 도를 배웠다.
기술 겨루기가 끝나자 무리들은 모두 흩어져 제각기 제 처소로 돌아갔다.
장자 수달도 사리불과 함께 돌아가 절을 짓기 시작하였다. 수달은 손으로 먹줄 한 끝을 잡았다. 사리불도 한 끝을 잡아 절 공사를 시작하였다. 그 때 사리불은 빙그레 웃었다. 수달은 물었다.
“존자는 왜 웃으십니까?”
사리불은 말하였다.
“당신이 처음으로 여기에 땅을 고를 때에 저 욕계 6천[六欲天]에는 벌써 궁전이 이루어져 있었소.”
그리고는 곧 도의 눈을 빌려 주었다. 수달은 그 눈으로 욕계 6천에 있는 장엄하고 깨끗한 궁전들을 모두 보았다. 그리고 사리불에게 물었다.
“저 욕계의 6천은 어디가 가장 즐겁습니까?”
사리불은 말하였다.
“아래로 세 하늘은 색욕(色欲)이 너무 깊고 두터우며, 위의 두 하늘은 교만하고 방자하며, 중간의 넷째 하늘은 욕심이 적고 만족할 줄 알므로 일생보처보살(一生補處菩薩) 이 거기 나서 계시면서 법의 교훈이 끊어지지 않았소.”
수달은 말하였다.
“나는 바로 그 넷째 천상에 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자, 다른 궁전은 모두 사라지고, 넷째 하늘 궁전만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수달은 다시 먹줄을 잡았다. 그 때 사리불은 어딘가 슬픈 빛을 띠었다. 수달은 물었다.
“존자님은 왜 슬퍼하는 빛을 띠십니까?”
사리불은 대답하였다.
“당신은 지금 이 땅 속의 개미를 보았는가?” “예, 보았습니다.”
사리불은 수달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과거 비바시(毘婆尸)부처님 때에도 그 부처님을 위하여 이 땅에 절을 세웠고, 이 개미도 여기서 살고 있었소. 시기(尸棄)부처님 때에도 당신은 그 부처님을 위하여 이 땅에 절을 세웠고, 이 개미도 여기서 살고 있었소. 비사부(毘舍浮)부처님 때에도 당신은 그 부처님을 위하여 이 땅에 절을 세웠고, 이 개미도 여기서 살고 있었소. 구류진(拘留秦)부처님 때에도 당신은 그 부처님을 위하여 이 땅에 절을 세웠고, 이 개미도 여기서 살고 있었소. 구나함모니(拘那含牟尼)부처님 때에도 당신은 그 부처님을 위하여 이 땅에 절을 세웠고, 이 개미도 여기서 살고 있었소. 그리하여 오늘까지 91겁 동안이 개미는 이 한 가지 몸만 받아 벗어나지 못하고, 오랫동안 나고 죽었던 것이오. 그러므로 오직 복이 소중한 것이오, 복을 심어야 하오.”
그 때 수달은 슬퍼하고 가엾이 여기면서 땅을 모두 고르고 절을 세웠다. 그리고 부처님을 위하여 굴을 만들고, 전단향 가루를 반죽하여 벽에 발랐다. 1천2백 비구가 거처하는 딴 방은 모두 1백20개였다.
따로 건추(犍椎)를 쳐서 공사를 마치고, 곧 부처님을 청하러 가려다가 다시 생각하였다.
‘위로 국왕이 있으니 먼저 알려야 한다. 만일 아뢰지 않으면 혹 화를 낼지모르니까.’
그리고는 왕에게 가서 아뢰었다.
“나는 부처님을 위하여 절을 세웠습니다. 원컨대 대왕은 사람을 보내어 부처님을 청하소서.”
왕은 그 말을 듣고 곧 사자를 왕사성으로 보내어 부처님과 스님들을 청하였다.
“원컨대 부처님께서는 사위로 왕림하소서.”
부처님께서 네 무리에게 앞뒤로 둘러싸여 큰 광명을 놓아 대지를 진동시키면서 사위국으로 오실 때에, 지나는 객사마다 거기서 쉬시었고, 길에서도 한량없는 사람들을 제도하셨다.
사위성으로 점점 가까이 오시자, 모든 대중들은 온갖 공양거리를 가지고 나와 맞이하여 모셨다.
부처님께서는 나라에 들어가 편편한 곳에 이르시자 큰 광명을 놓아 3천 대천 세계를 두루 비추셨고, 발가락으로 땅을 누르시자 대지는 모두 진동하였다. 성 안의 악기들은 치지 않아도 울었다.
장님은 눈을 떴고 귀머거리는 소리를 들었으며, 벙어리는 말을 하였고 곱추는 등을 폈으며, 온갖 병자들은 모두 완전히 나았다. 모든 인민과 남녀 노소들은 그 상서로운 징조를 보고, 모두 기뻐 뛰면서 부처님께 나아갔다. 그래서 16억 인민들은 모두 모였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병을 따라 약을 주듯이 그들을 위해 묘법을 설하셨다. 그들은 전생의 인연을 따라 제각기 도를 얻었다. 수다원을 얻은 이도 있었고, 사다함이나 아나함이나 혹은 아라한을 얻는 이도 있었으며, 벽지불의 인연을 심는 이도 있었고,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내는 이도 있었다. 그리고 모두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지금 이 동산은 수달이 산 것이요, 이 숲과 꽃과 열매는 기타의 소유로서 두 사람이 마음을 합하여 절을 세웠으니, 이 절 이름을 기수급고독원(祗樹給孤獨園)이라 정하고, 그 이름을 널리 펴 후세에 전하도록 하라.”
그 때 아난과 네 무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그대로 받들어 행하였다.
42.대광명시발무상심품(大光明始發無上心品)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나열기의 가란타죽원(迦蘭竹園)에 계셨다.
그 때 아난은 숲 속에서 고요히 생각하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났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감관이 원만하시고 공덕과 지혜가 뛰어나시고 묘하시어, 헤아리기 어렵다. 부처님께서는 전생에 어떤 인연으로 위없는 대승(大乘)의 마음을 내셨으며, 어떤 일을 닦고 익히셨기에 저런 훌륭하고 묘한 이익을 얻으셨을까?’
이렇게 생각하고는 선정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나아가 땅에 엎드려 예배하고 여쭈었다.
“부처님 같으신 분은 인간과 천상의 온 세계 가운데 가장 높고 가장 묘하시어 공덕과 지혜는 한량없이 높고 높습니다. 알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어떤 인연으로 이 대승의 위없는 마음을 내셨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네가 알고 싶으면 잘 기억하라. 나는 너를 위해 자세히 분별하여 설명하리라.” “예, 잘 듣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옛날 한량없고 끝없고 헤아릴 수 없는 아승기겁 전에 이 염부제에 큰 나라 왕이 있었는데, 이름이 마하파라바수(摩訶波羅婆修)[진(晉)나라 말로 대광명(大光明)이라는 뜻이다]였다. 그는 5백의 작은 나라를 거느리고 있었다.
어느 날 왕은 여러 신하들과 함께 사냥을 하러 나갔다. 왕이 탄 코끼리는 어떤 암코끼리를 보고 음심이 발동하여 왕을 태운 채 그 코끼리를 쫓아 큰 숲으로 다가가서 숲 속으로 달려갔다.
상사(象師)는 왕에게 아뢰었다.
‘나무를 잡고 서면 그 위험을 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왕은 그 말대로 나무를 움켜잡았다. 코끼리가 빠져간 뒤에 왕은 매우 화를 내어 상사를 몹시 꾸짖고 곧 죽이려고 하였다.
‘그대가 코끼리를 법대로 다루지 못하였기 때문에 지금 내가 거의 위태할 뻔하였다.’
상사는 아뢰었다.
‘다루기는 법대로 다루었습니다. 다만 그 코끼리가 음욕에 홀렸기 때문에 그 음욕을 다루기 어려웠을 뿐이요, 신의 허물은 아닙니다. 원컨대 용서하여 주시면 사흘 뒤에는 그 코끼리가 반드시 돌아올 것입니다. 그 때에 신이 그것을 시험하는 것을 보아 주시면 만 번 죽어도 한이 없겠습니다.’
왕은 우선 놓아 두었다. 기한대로 사흘 뒤에 코끼리는 궁중으로 돌아왔다.
그 때에 상사는 일곱 개 철환(鐵丸)을 시뻘겋게 불에 달구어 코끼리에게 먹으라고 재촉하였다.
코끼리는 감히 어기지 못하고, 철환을 모두 먹고 이내 죽었다. 왕과 신하들은 오해가 풀리고 처음 보는 일이라고 찬탄하였다. 왕은 다시 물었다.
‘그런 탐욕을 누가 능히 다루는가.’
그 때 어떤 천신은 상사를 깨우쳐 왕에게 대답하였다.
‘부처님께서 다루실 수 있습니다.’
왕은 그 말은 듣고 당장 마음을 내어 말하였다.
‘그처럼 완악하고 든든하여 항복 받기 어려운 법을, 오직 부처님만이 없애시는구나.’
곧 스스로 서원을 세웠다.
‘나도 기어이 부처가 되리라.’
그리하여 여러 겁 동안 부지런히 정진하여 일찍이 쉰 일이 없었다가 오늘에 이르러 과연 그 과보를 얻었느니라.”
부처님께서는 이어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알고 싶은가. 그 때의 그 큰 나라 왕은 지금의 이 내 몸이니라.”
그 때 대중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모두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마음을 내었다. 그리고 기뻐 뛰면서 어쩔 줄을 모르고, 정성껏 받들어 이행하였다.
43.늑나사야품(勒那闍耶品)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가비라위국(迦毘羅衛國)의 니구로타(尼拘盧) 절에 계셨다.
그 때 여러 석씨(釋氏)들은, 부처님의 광명과 신통과 묘한 교화를 드날리심이 참으로 장하고 놀라우며, 의젓하고 떳떳한 모습이 따를 이가 없음을 보았고, 또 교진여 등을 찬탄하였다.
“전생에 어떤 복을 지었기에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셔서 법고(法鼓)가 처음 울리자 그것을 가장 먼저 들었고, 감로(甘露)가 처음 내리자 곧 혜택을 입어 때와 티끌을 아주 떠나고, 마음으로 진리를 체득하여 도시나 시골 사람들이 떼를 지어 따르면서 똑같은 말로 한량없이 칭찬하는가?”
비구들은 그 말을 듣고 부처님께 나아가 땅에 엎드려 발 아래 예배하고 여쭈었다.
“지금 이 나라 인민들은 모두 한데 모여 똑같은 말로 부처님의 여러 가지 덕행을 칭송하고, 또 ‘저 다섯 사람은 전생에 어떤 복을 지었기에 먼저 구제를 받게 되었는가?’라고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금생에만 저 다섯 사람을 먼저 제도한 것이 아니다. 먼 옛날에도 저들을 구제하였다. 내 몸이 배가 되어 물에 빠진 저들을 건져 그 목숨을 살려 모두 안온하게 저 언덕에 이르게 하였다. 그리고 지금 내가 부처가 되어서도 저들을 먼저 제도하였느니라.”
비구들은 여쭈었다.
“알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전생에 어떻게 저들을 구제하여 안온하게 하셨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만일 듣고 싶어한다면, 너희들을 위해 말하리라.” “예, 듣고 싶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오랜 옛날 이 염부제의 바라내국에 범마달(梵摩達)이라는 왕이 있었고, 그 나라에는 늑나사야(勒那闍耶)라는 큰 상주(商主)가 있었는데 그는 밖에 놀러 나갔다가 어떤 숲 속에 이르렀다. 어떤 사람이 못내 슬피 울면서 새끼를 나무에 매고 거기에 목을 걸어 자살하려는 것을 보았다. 그는 곧 다가가서 물었다.
‘너는 왜 그러는가. 사람 몸은 얻기 어려울 뿐 아니라 목숨이란 위태하고 약하여 수없이 죽고 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항상 죽음이 스스로 오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여러 가지로 깨우치고 타일러, 새끼를 버리라고 하였다. 그는 대답하였다.
‘나는 박복하여 극도로 가난할 뿐 아니라, 또 빚을 잔뜩 져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빚쟁이들은 다투어 와서 무엇이나 뺏어 가면서 밤낮으로 독촉하기 때문에 근심이 풀릴 때가 없습니다. 천지는 넓다 하지만 몸 둘 곳이 없기로, 이제 스스로 목숨을 끊어 이 괴로움에서 떠나려는 것입니다. 당신은 그처럼 충고하지마는 내게는 사는 것이 죽는 것만 못합니다.’
상주는 약속하였다.
‘너는 그저 그 새끼만 끌러라. 진 빚은 얼마든지 내가 대신 갚아 주리라.’
이렇게 말하자 그는 마음을 돌리고, 기뻐하면서 한량없이 감사하였다.
그는 상주를 따라 시중으로 함께 가서 여러 빚쟁이들에게 두루 알렸다.
‘나는 이제 빚을 갚으리라.’
그 때에 빚쟁이들은 서로 다투어 구름처럼 모여와 빌려준 빚을 받아 갔다.
오는 사람이 한이 없어 상주의 재물은 벌써 떨어졌지마는 빚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상주의 처자들은 가난에 몰려 구걸하며 살아갔다. 친척과 이웃들은 모두 상주를 원망하였다.
‘이 미치광이는 스스로 살림을 망쳤구나.’
마침 그 때 여러 상인들이 상주에게 보물 캐러 바다에 같이 가자고 권하니, 말하였다.
‘상주 된 법으로는 배 기구를 장만하여야 하는데, 나는 지금 곤궁하여 아무 것도 없다. 어떻게 가겠는가?’
상인들은 말하였다.
‘우리들 5백 명이 마음을 내어 돈을 내면 그것으로 배 기구를 장만할 수 있습니다.’
상주는 이 말을 듣고 곧 승낙하였다. 여러 상인들이 모두 재물을 모아 그는 큰 재물을 얻었다.
그 때 상주는 3천 냥 금 중에서 천 냥으로는 배를 마련하고 천 냥으로는 양식을 준비하고 또 천 냥으로는 배 위에서 필요한 것을 준비하였다. 그리고 나머지로는 처자들의 생활에 썼다.
그는 바닷가에서 큰 배를 만들되 일곱 겹으로 만들었다. 엄격한 준비가 끝나자 배를 물에 띄우고는, 일곱 개 큰 밧줄로 바닷가에 매어 두었다. 그리고 큰 금방울을 치면서 외쳤다.
‘누구라도 바다에 들어가 크고 묘한 보물을 얻어, 진기한 물건을 마음껏 쓰고 싶은 사람은 모두 여기 모여 저 보물 있는 곳으로 함께 가자.’
그리고 다시 말하였다.
‘누구라도 부모 처자와 염부제의 즐거움과 또 그 목숨을 사랑하지 않는 자라면 가도 좋다. 왜냐 하면 저 바다에는 험하고 어려운 일이 많기 때문이다. 물결의 소용돌이·사나운 바람·큰 고기·모진 귀신 등 이런 여러 가지는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이렇게 말하고는 밧줄 하나를 끊었다. 날마다 이렇게 하여 이레째 날에는 그 밧줄을 모두 끊었다.
배는 곧 달려갔다. 그러나 도중에서 갑자기 사나운 바람을 만나 그 배는 부서졌다. 사람들은 모두 살려 달라 부르짖었으나, 어디에 의지할 곳이 없었다. 혹은 널빤지나 돛대나 부낭(浮囊)를 얻어 살아나기도 하였고, 혹은 물에 빠져 죽기도 하였다. 그 중에서 어떤 다섯 사람은 상주에게 말하였다.
‘당신을 믿고 여기까지 왔다가 지금 물에 빠져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구제하여 주십시오.’
상주는 대답하였다.
‘큰 바다는 송장을 묵히지 않는다고 나는 들었소. 당신들은 지금 곧 나를 붙드시오. 나는 당신들을 위해 내 몸을 죽여 그 화를 구제하고, 맹세코 부처가 될 것이고, 부처가 된 뒤에는 위없는 바른 법의 배가 되어 나고 죽는 큰 바다의 괴로움에서 당신들을 제도할 것이오.’
이렇게 말을 마치고 칼로 목을 찔렀다. 그가 죽은 뒤에 바다 신[海神]은 바람을 일으켜 그들을 저쪽 언덕까지 밀어 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바다를 건너 모두 안온하게 되었느니라.”
부처님께서는 이어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알고 싶은가. 그 때의 늑나사야는 지금의 이 내 몸이요, 그 다섯 사람은 지금의 저 구린(拘隣) 등이다.
나는 전생에도 저들을, 살고 죽는 운명에서 건져 내었고, 지금은 부처가 되어 저들로 하여금 최초로 번뇌 없는 바른 법을 얻어 길이 흐르는 매어 부림[結使]의 큰 바다를 떠나게 하였느니라.”
그 때 비구들은, 부처님의 큰 자비는 깊고 묘하여 헤아리기 어려움을 찬탄하고, 모두 부지런히 공부하였다.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44.가비리백두품(迦毘梨百頭品)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마갈국의 죽원에 계셨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비구들과 함께 비사리(毘舍離)로 향하시다가 이월강[梨越河]에 이르셨다.
그 강가에는 5백 명 소치는 사람과 5백 명 고기잡이가 있었다. 그 고기잡이들은 세 가지 그물을 만들었는데, 크고 작기가 같지 않았다. 작은 것은 2백 명이 당겼고, 중간 것은 3백 명이 당겼으며, 큰 것은 5백 명이 당겼다.
부처님께서는 강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앉아 쉬시고 여러 비구들도 다 함께 앉았다.
그 때 그 고기잡이들 그물에 고기 한 마리가 걸렸는데, 5백 명이 당겨도 끌어낼 수 없었다. 그래서 소치는 사람들을 불러, 천 사람이 힘을 합해 끌어내어 큰 고기 한 마리를 얻었다.
그 고기 몸에는 여러 형상의 머리 백 개가 있었다. 나귀·말·낙타·범·이리·돼지·개·원숭이·여우·살쾡이 등 이런 여러 가지 형상이었다. 사람들은 괴상히 여겨 모두 다투어 와서 구경하였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저기 무슨 일이 있기에 대중들이 많이 모였는가. 어디 좀 가 보라.”
아난은 분부를 받고 가서 보았다. 어떤 큰 고기 몸에 머리 백 개가 있는 것을 보고, 부처님께 돌아와 본 대로 아뢰었다. 부처님께서는 곧 비구들과 함께 고기 있는 곳으로 가시어 그 고기에게 물으셨다.
“네가 바로 가비리인가?”
고기는 대답하였다.
“진실로 그렇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정중하게 세 번 물으셨다.
“네가 바로 가비리인가?”
진실로 그렇습니다.” “너를 가르친 이는 지금 어디 있는가?” “아비지옥에 떨어져 있습니다.”
그 때 아난과 대중들은 그 사정을 알지 못해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께서는 지금 무슨 이유로 그 백 개 머리를 가진 고기를 불러 가비리라고 하셨습니까? 원컨대 저희들을 가엾이 여겨 가르쳐 주소서.”
부처님께서는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자세히 들으라. 너희들을 위해 설명하리라. 옛날 가섭부처님 때에 어떤 바라문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가비리(迦毘梨)[진(晉)나라 말로 황두(黃頭)라는 뜻이다]라 하였다. 그는 총명하고 널리 알아 그들 중에서는 많이 듣기로 제일이었다. 그러나 여러 사문보다는 못하였다. 그 아버지는 임종 때 그에게 간곡히 당부하였다.
‘너는 부디 저 가섭부처님의 제자 사문들과는 도리를 강론하지 말라. 왜냐 하면, 사문들은 지혜가 깊어 너는 반드시 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 아버지가 돌아간 뒤에 그 어머니는 물었다.
‘너는 본래 총명한데, 지금 너를 이길 이가 있느냐?’
그는 대답하였다.
‘저 사문들이 저보다 훌륭합니다.’ ‘어째서 그러냐?’ ‘제게 의심이 있어서 그들에게 가서 물으면, 그들은 잘 설명하여 사람을 깨우쳐 줍니다. 그러나 저들이 만일 제게 물으면 저는 대답하지 못합니다. 그 때에 제가 못한 줄을 압니다.’ ‘그러면 왜 너는 그들에게 가서 그 법을 배우지 않느냐.’ ‘그 법을 배우려면 사문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속인인데 어떻게 배우겠습니까?’
어머니는 말하였다.
‘거짓으로 사문이 되어 그 법을 다 배운 뒤에 도로 집에 돌아오면 되지 않느냐?’
그는 어머니의 분부를 받들어 사문이 되었다. 얼마 안 지나 삼장(三藏)을 모두 읽어 외우고, 그 이치에도 통달하였다. 어머니는 물었다.
‘이제는 이기겠느냐?’
그는 대답하였다.
‘학문으로는 이길 수 있지마는 좌선으로는 질 것입니다. 왜냐 하면, 제가 저들에게 물으면 저들은 모두 분별하지마는 저들이 제게 물으면 저는 대답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들보다 못하다는 것입니다.’ ‘지금부터는 저들과 변론하여 혹 못 이길 때에는 욕설로 대항하라.’ ‘집을 떠난 사문에게는 아무 죄가 없는데, 어떻게 꾸짖습니까?’
어머니는 말하였다.
‘그저 꾸짖어 보라. 너는 반드시 이길 것이다.’
가비리는 차마 그 어머니 명령을 어기지 못하였다.
그 뒤로는 그가 변론할 때에, 만일 이론이 모자라 군색하게 되면, 그는 곧 욕설을 퍼부었다.
‘너희들은 미련하기 축생보다 더하다. 무슨 법을 알겠는가?’
그리고는 온갖 짐승 대가리를 다 이끌어 비유하였다. 이렇게 되풀이하기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 과보로 말미암아 지금 저 고기 몸을 받되, 머리 백 개를 가지게 되었느니라.”
아난은 여쭈었다.
“언제나 저 고기 몸을 벗게 되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 현겁 동안 1천 부처가 지나가더라도 벗지 못할 것이다.”
아난과 대중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실심하고 슬퍼하면서 모두 같은 소리로 이렇게 말하였다.
“몸과 말과 뜻의 행은 삼가지 않을 수 없구나.”
그 때에 고기잡이와 소치는 사람들은 한꺼번에 모두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집을 떠나 범행 닦기를 청하였다. 부처님께서는 곧 허락하시고, “잘 왔구나, 비구들이여” 하시자, 그들의 수염과 머리는 저절로 떨어지고 법복은 몸에 입혀져 이내 사문이 되었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갖가지 묘한 법을 간곡히 말씀하셨다. 그들은 번뇌가 없어지고 결박이 풀려 아라한이 되었다.
부처님께서는 다시 거기 모인 대중을 위하여 모든 법을 자세히 말씀하시고, 또 괴로움[苦]과 그것의 원인[集]과 그것의 사라짐[滅]과 그것이 사라지는 길[道]의 4제를 분별하셨다. 그들 중에는 초과(初果)와 나아가 4과(果)까지 얻는 이도 있었고, 큰 도의 뜻을 내는 이도 있어 그 수는 매우 많았다.
부처님 말씀 현우경 감사합니다
만덕이 충만 하시고
성불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