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우경(賢愚經) 제09권

현우경(賢愚經) 제09권

36.정거천청불세품(淨居天請佛洗品)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수타회천(首會天)은 염부제에 내려와 부처님께 나아가 부처님과 스님들을 목욕시키는 공양에 청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잠자코 허락하셨다.

그는 곧 음식을 장만하고 또 몸에 알맞은 따뜻한 방과 따뜻한 물을 준비하고 소유(蘇油)와 씻는 물을 모두 준비해 두었다. 그리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공양이 준비되었습니다. 성인께서는 때를 알아 하소서.”

이에 부처님과 비구들은 그 공양을 받아들여 모두 목욕하고, 음식을 공양하였다. 그 음식 맛은 세상에 드물었다. 공양을 끝내고 손을 씻고 양치질한 뒤에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 때 아난은 꿇어앉아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저 하늘은 옛날 어떤 공덕을 지었기에 형체는 묘하고 좋으며, 위엄스런 모양은 기이하고 특별하며, 그 광명은 큰 보배산처럼 빛납니까? 원컨대 부처님께서는 그 사정을 자세히 말씀하여 주소서.”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자세히 듣고 잘 기억하라. 내가 설명하리라.

먼 옛날 비바시부처님 때에 저 하늘은 그 세상에서 가난한 집의 아들로태어나 늘 품을 팔아 먹고 살았다.

그는 비바시부처님께서, 스님들을 목욕시키는 공덕을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마음으로 기뻐하여, 곧 공양할 생각을 내어 부지런히 품을 팔아 조금 얻은 돈과 곡식으로 목욕 기구와 음식을 준비한 뒤에 부처님과 스님들을 청하여 모두 공양하였다. 그래서 그 복된 행으로 말미암아 목숨을 마친 뒤에는 수타회천에 났으며, 저런 빛나는 모양을 받았느니라.”

부처님께서는 이어 말씀하셨다.

“저 하늘은 금생에만 부처님과 스님을 청한 것이 아니라 시기(尸棄)부처님 때에도 이 세상에 와서 부처님과 스님들을 공양하였고, 나아가서는 가섭 부처님 때에까지도 그러하였느니라.”

부처님께서는 이어 말씀하셨다.

“저 하늘은 그와 같이 일곱 부처님만 받들어 공양한 것이 아니라, 미래 세상과 이 현겁에 1천 부처님이 세상에 나올 때에도, 그 낱낱 부처님과 스님을 목욕시키는 것이 마치 오늘과 다름 없을 것이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곧 그 하늘에게 수기를 주셨다.

“미래 세상 아승기를 채우면 또 백 겁 동안에 부처가 되어 호를 정신(淨身)이라 하고, 10호(號)를 완전히 갖추며, 그 교화하는 중생은 한량이 없을 것이다.”

그 때 아난과 여러 대중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모두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심은 큰 이익이 있어 그런 조그만 보시로도 그처럼 많은 과보를 받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착하고 착하다. 너희들 말과 같다.”

이내 대중을 위해 널리 묘법을 설하셨다. 그 법을 들은 이들은 부처님의 자취를 얻어 나아가서는 아라한을 얻는 이도 있었으며, 큰 도의 뜻을 내는 이도 있었다. 그리고 모두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37.선사태자입해품(善事太子入海品)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나열기의 기사굴산에서 큰 비구들에게 둘러싸여 설법하고 계셨다.

그 때 현자 아난은 제바달다가 늘 부처님을 질투하여 술에 취한 코끼리를 몰아 보내기도 하고, 산을 떠밀어 부처님을 짓누르기도 하면서 갖가지 방편으로 부처님을 해치려 하나, 부처님께서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항상 그를 가엾이 여기시며, 라후라(羅羅)와 제바달다를 똑같이 보아 조금도 차별이 없는 것을 보았다.

현자 아난은 이런 사실을 보고 늘 원한을 품어 마음에 끼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 어깨를 드러내고 꿇어앉아 합장하고, 그 일을 찬탄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제바달다는 금생에만 나에 대해 나쁜 마음을 가진 것이 아니다. 전생에도 나를 해치려 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에 대해서 언제나 사랑하는 생각을 가졌느니라.”

현자 아난은 여쭈었다.

“알 수 없습니다. 전생에도 제바달다가 부처님을 해치려 하였을 때 부처님께서는 그를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신 그 일은 어떠합니까? 원컨대 자세히 말씀하여 주소서.”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먼 옛날 수 없고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는 아승기겁 전에 이 염부제에는 늑나발미(勒那跋彌)[진(晉)나라 말로는 보개(寶鎧)라는 뜻이다]라는 한 국왕이 있었다. 그는 5백의 작은 나라 왕을 거느렸고, 5백 부인과 궁녀가 있었으나 아무에게도 아들이 없었다.

그는 여러 하늘과 해·달·산·바다와 나무신에게 기도하고 제사하면서 여러 해를 지냈으나, 그래도 아들을 얻지 못하였다.

왕은 못내 걱정하면서 가만히 생각하였다.

‘나는 지금 아들이 없이 언제 죽을는지 모른다. 나라에 왕위를 이을 이가 없으면 천하는 반드시 어지럽게 될 것이다. 왜냐 하면, 5백 명 신하들이 서로 양보하지 않고 힘으로 다투어 서로 싸우면, 죄없는 사람들만 억울하게 죽을 것이니, 그 때문에 나라를 망치고 백성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은 더욱 어지럽고 번민은 더하였다.

그 때 어떤 천신(天神)은 왕의 그 간절한 뜻을 알고, 꿈 속에서 왕에게 말하였다.

‘이 성 밖 숲 속에 두 선인(仙人)이 있다. 첫째 선인은 몸이 황금빛이요, 복과 덕과 총명과 변재(辯才)가 있어 아무도 따르지 못한다. 네가 진실로 아들이 필요하거든 거기 가서 청해 보라. 그는 반드시 뜻을 돌려 너의 왕가에 와서 태어나리라.’

왕은 이내 놀라 깨어났다. 얼굴에 기쁜 빛을 조금 띄우면서 곧 명령하여 수레를 타고 몇 사람만 데리고, 두루 다니면서 선인을 찾다가 이내 만났다. 왕은 그를 향해 애걸하면서 갖가지로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우리 나라에 왕위를 이을 사람이 없어 근심과 걱정이 한이 없습니다. 원컨대 큰 선인께서는 뜻을 굽혀 우리 집에 태어나 왕위를 이어받아 이 근심과 걱정을 덜어 주소서. 만일 욕되지 않으시다면 돌보아 주소서.’

그 때 그 선인은 왕의 간절한 정성을 보고, 차마 거절할 수 없어 곧 좋다고 승낙하였다. 그리고 그 둘째 선인도 왕에게 말하였다.

‘나도 그대 왕가에 가서 태어나리라.’

왕은 매우 기뻐하면서 그들에게 하직하고 궁중으로 돌아왔다.

몇 시간이 지나 그 금빛 선인은 갑자기 목숨을 마쳤다. 왕의 큰부인 소마(蘇摩)는 곧 태기가 있었다. 그는 총명한 여자라 자신이 밴 아기가 남자인가 여자인가를 분별할 줄 아는 지혜가 있었다. 그는 스스로 말하기를 ‘내가 밴 아기는 반드시 남자다’라고 하였다. 왕과 궁중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한량없이 기뻐하였다. 왕은 궁중의 부인과 궁녀들에게 명령하여 모두 그녀를 받들되, 그 뜻을 맞추어 기쁘게 하도록 하였다. 침구와 음식은 아주 곱고 부드러운 것으로 하며, 출입할 때에는 늘 부축하여 위험한 곳에는 이르지 않도록 하였다.

열 달이 차서 큰 부인은 아들을 낳았다. 뛰어나게 단정하였으며, 몸은 자금색이요, 머리털은 검푸르며 사람의 모양을 완전히 갖추었다. 왕과 안팎 사람들은 아기를 볼수록 싫증이 나지 않았다.

왕은 관상쟁이를 불러 아기 상을 점치게 하였다. 관상쟁이는 곧 나아가 아래위로 자세히 살펴보다가 기뻐하면서 아뢰었다.

‘이 아기 상호는 사람 중에서 있기 어렵고, 그 총명과 복덕은 아무도 따르지 못할 것입니다.’

왕은 그 말을 듣고 못내 기뻐하면서 다시 관상쟁이에게 명령하였다.

‘이름을 지어라.’

관상쟁이는 왕에게 물었다.

‘이 태자를 밴 뒤로 어떤 이상한 일이 없었습니까?’

왕은 대답하였다.

‘이 태자 어미는 본래 질투하고 미워하는 성질이 있어 남의 허물을 좋아해 함부로 남의 음행을 드러내며, 남의 착함을 보면 마음으로 기뻐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기를 밴 뒤로는 본래 성질이 고쳐져 사람됨이 인자하며, 어리석음을 가엾이 여기고 지혜로움을 사랑하며, 보시 행하기를 좋아하고 평등한 마음으로 사람을 보호하였다.’

관상쟁이는 이 말을 듣고 찬탄하였다.

‘좋습니다. 그것은 이 아기 뜻이 어머님 정에 붙은 것입니다.’

곧 이름을 지어 가량나가리(迦良那伽梨)[진(晉)나라 말로 선사(善事)라는 뜻이다]라 하였다.

그 둘째 부인은 이름이 불파(弗巴)였다. 그 둘째 선인도 목숨을 마치고 둘째 부인에게 잉태되었다. 달이 차 둘째 부인도 사내를 낳았다. 그러나 그 형체와 모양이 조금도 특이한 데가 없었다.

왕은 다시 관상쟁이를 불러 아기 상을 보게 하였다. 관상쟁이는 그 상을 뜯어보고는 말하였다.

‘이 아기는 평범한 사람일 뿐, 그 복덕과 지능은 저 혼자만 만족할 것입니다.’

왕은 다시 명령하였다.

‘그 이름을 지으라.’

관상쟁이는 다시 물었다.

‘어떤 이상한 일이 없었습니까?’

왕은 말하였다.

‘이 태자 어머니는 본래 성질이 진실하고 선량하여 사람됨이 인자하고 남의 착한 일을 선전하기를 좋아하였다. 그런데 아기를 밴 뒤로는 나쁜 일을 좋아하여 어질고 능한 이를 질투하고 착한 일을 보면 좋아하지 않았다.’

관상쟁이는 말하였다.

‘그것은 그 아기 뜻이 어머님에게 붙었기 때문에 그렇게 시킨 것입니다.’

이내 이름을 지어 파바가리(波婆伽梨)[진(晉)나라 말로 악사(惡事)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그 때에 왕은 오로지 가량나가리 태자만을 사랑하여 그 뜻을 어기지 않았다. 그리고 곧 명령하여 세철궁전[三時殿]을 지어 겨울에는 따뜻한 궁전에서 살고, 봄과 가을에는 중간 궁전에서 살며, 여름에는 시원한 궁전에서 살게 하고, 풍류를 잡히어 즐기게 하였다.

태자는 점점 자라며 총명과 변재가 뛰어나고, 온갖 세속의 경전을 배워 18부(部) 경을 모두 외워 가지고 통달하였고 그 뜻도 잘 알았다.

뒤에 그는 나가 놀기를 청하였다. 왕은 곧 허락하고, 길을 다스리라 명령하여 온갖 더러운 것을 치우게 하였다.

그는 금·은으로 장식한 흰 코끼리를 탔고, 1천 수레와 1만 말이 앞뒤로 호위하였다. 큰 거리나 좁은 골목에는 모든 사람들이 길 양쪽을 끼고 늘어섰고, 다락 위에는 구경하는 사람이 수없이 많았다. 그들은 모두 말하였다.

‘태자님은 마치 범천과 같아서 그 위엄스런 상과 아름다운 얼굴은 인간에서 보기 드물다.’

그 때 태자는 여러 거지들이 몸은 여위고 옷은 해어졌으며, 왼손에는 깨진 그릇을 들고 오른손에는 부러진 지팡이를 짚고, 사람을 쫓아다니면서 비굴한 말로 구걸하는 것을 보고 신하들에게 물었다.

‘왜 저렇게 하는가?’

신하들은 대답하였다.

‘저런 사람들은 부모가 없이 외롭고 빈궁하되 의지할 곳이 없으며, 병들고 미치광이로서 일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한푼 돈이 없으니 우선 먹고 입을 것이 절박하여 저렇게 하는 것입니다.’

태자는 그들을 사랑하고 가엾이 여겨 마음으로 매우 슬퍼하였다. 태자는 다시 얼마를 가다가 백정들이 짐승을 죽여 조금씩 베어 저울에 달아 파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물었다.

‘왜 그런 짓을 하는가?’

그들은 대답하였다.

‘우리가 꼭 좋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조부 때부터 이 짓을 업으로 삼아 왔습니다. 만일 이 짓을 버리면 살아갈 길이 없습니다.’

태자는 그 말을 듣고 길이 탄식하고 떠났다.

또 얼마를 가다가 들에 이르러 여러 농부들을 보았다. 그들이 땅을 갈아 벌레가 나오면 개구리가 그것을 집어먹고, 또 뱀이 개구리를 잡아먹으며, 다음에는 공작이 날아와 뱀을 쪼아먹는 것을 보았다. 태자는 그들에게 물었다.

‘그것은 무엇하는 일인가?’

농부들은 대답하였다.

‘이것은 우리 직업입니다. 이 밭에 종자를 뿌려야 뒷날 곡식을 거두어 그것으로 먹고 살며 또 나라에 바칩니다.’

태자는 탄식하면서 말하였다.

‘사람들은 의식을 위하여 중생을 죽이고, 몸과 힘을 부리면서 저처럼 고생하는 것이구나.’

다시 얼마를 가다가 태자는 여러 사냥꾼을 만났다. 그들은 새들에게 다가가 활을 당겨 쏘았으며, 또는 그물을 땅에 쳐 두었는데, 온갖 새와 짐승들은 그 안에 떨어지면 그물에 놀라 울부짖지마는, 그것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태자는 그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무엇하는가?’

그들은 모두 대답하였다.

‘이 새와 짐승들을 잡아 그것으로 살아갑니다.’

태자는 그 말을 듣고 깊이 한숨짓고 떠났다.

태자는 강가에 이르러 고기잡이들을 보았다. 그들은 그물을 펴서 고기를 잡았는데, 고기는 땅에 널려 뛰기도 하고, 몸을 폈다 움츠렸다 하면서 죽는 놈이 수없이 많았다. 태자는 그들에게 물었다. 그들은 모두 대답하였다.

‘우리는 이 고기 덕으로 먹고 입고 살아갑니다.’

태자는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며 길이 탄식하였다.

‘저들은 의식을 위하여 저처럼 중생을 죽여 몸을 이바지하면서 그 재앙과 죄가 날로 불어가는데, 뒷날의 과보는 어떠하겠는가?’

그리고는 곧 궁중으로 돌아갔다. 아무 것도 즐겁지 않고 근심에 잠겼다가 부왕에게 나아가 아뢰었다.

‘한 가지 소원을 들어 주소서.’

왕은 대답하였다.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라. 거절하지 않으리라.’

태자는 아뢰었다.

‘저는 전날 밖에 나가 놀다가 저 중생들이 의식을 위하여 서로 속이고 죽이면서 짓는 죄가 날로 불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저들을 못내 가엾이 여겨 구제하려 합니다. 원컨대 부왕께서는 제가 부왕의 창고 물건을 마음대로 보시하여 저 인민들의 빈궁을 구제하는 것을 허락하여 주소서.’

왕은 태자를 더욱 사랑하여 그 말을 듣고 거절할 수 없어 곧 좋다고 승낙하였다. 그래서 태자는 영을 내려 모든 인민들에게 알렸다.

‘가량나가리 태자는 곤궁하고 가난한 이들에게 보시하여 일체를 대어 줄 것이니, 모두 와서 가지되, 금·은의 보물과 의복·음식과 그 밖의 필요한 것을 가지고자 하는 대로 모두 베풀어 주리라.’

그는 곧 왕의 창고를 열어 온갖 보물을 끌어내어 여러 성문과 시장에 두고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다 주었다.

그 때 여러 나라의 사문과 바라문과 빈궁하고 고독한 늙은이와 쇠약하고 병난 이들이, 강하고 약한 이가 서로 의지하며 차례로 모여 왔다. 옷이 필요하다면 옷을 주고 밥이 필요하다면 밥을 주며 금·은의 보물을 마음대로 주었다.

그러자 인민들은 서로 말을 전해 온 염부제 사람들이 모두 모여들었으므로 왕의 보배 창고는 3분의 2가 줄게 되었다.

그 때 창고지기는 왕에게 들어가 아뢰었다.

‘대왕께서는 5백의 작은 나라를 거느리고 계십니다. 그 나라 사신들은 수시로 오고 가는데, 그들이 돌아갈 때에는 반드시 보물이 필요하거늘, 이제 태자님이 널리 보시함으로써 대왕님 창고 안 물건이 3분의 2가 줄게 되었습니다. 대왕께서는 깊이 생각하시어 후회 없도록 하소서.’

왕은 그 말을 듣고 창고지기에게 말하였다.

‘내 태자는 보시하기를 좋아하되, 그 결심이 굳고 특별하여 도무지 돌릴 수가 없다. 만일 그것을 금하고 막아 혹 그 뜻을 어기면, 그는 몹시 근심하고 괴로워할 것이니 어떻게 하겠는가. 아직 그 뜻대로 맡겨 두어 어김이 없게 하라.’

이리하여 며칠 동안 태자는 보시하였다. 그래서 창고의 남은 물건에서 3분의 2가 또 줄게 되었다. 창고지기는 다시 왕에게 아뢰었다.

‘먼젓번의 남은 물건을 날마다 보시함으로써 3분의 2가 이미 줄고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저 사신들에게 줄 것까지 다 써서는 안 되겠습니다. 원컨대 대왕께서는 깊이 생각하시어 뒷날 허물이 없게 하소서.’

왕은 생각하다가 창고지기에게 말하였다.

‘나는 이 아들을 다른 아들보다 특별히 사랑한다. 그러므로 차마 드러내놓고 그 뜻을 거스릴 수는 없다. 만일 그가 와서 보물을 요구하거든 잠깐 딴 곳으로 몸을 피하고, 만일 급히 구하거든 우선 조금 주되, 혹 얻기도 하고 혹은 얻지 못하게 하여 날짜를 끌도록 하라.’

그 때 창고지기가 왕의 분부를 받은 뒤로는, 태자가 와서 보물을 요구할 때에 핑계를 대어 딴 곳을 다녀 왔다. 그래서 태자는 어떤 때는 얻고 어떤 때는 얻지 못하여 번번이 필요한 것을 얻을 수가 없었다.

태자는 짐작하고 생각하였다.

‘지금 저 창고지기에게 어떤 힘이 있기에 감히 나를 어기어 명령을 받들지 않겠는가. 반드시 왕의 뜻을 받들어 그렇게 하는 것일 것이다. 또 나는 사람의 자식된 도리로 부모님 창고 물건을 다 말려 텅 비게 할 수는 없다. 지금이 창고에는 남은 물건이 얼마 안 된다. 내가 어떻게 하면 재보를 얻어 일체 중생에게 보시하여 모자람이 없게 할 것인가.’

그는 이렇게 생각하고 여러 사람들에게 물었다.

‘이 세상에 어떤 사업을 하여야 많은 재물을 얻어 마음대로 쓸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은 말하였다.

‘곤란을 두려워 말고 멀리 나가 장사하면 많은 재물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였다.

‘전답을 개간하여 추위와 더위를 피하지 않고, 다섯 가지 곡식을 많이 심으면 많은 재물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어떤 사문은 말하였다.

‘여섯 가지 가축을 많이 길러 항상 보호하고, 때를 맞춰 번식시키면 많은 재물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말하였다.

‘목숨을 돌아보지 않고 큰 바다에 들어가 용왕궁에 이르러 여의주를 구하십시오. 그 일만 성취하면 가장 많은 재물을 얻을 것입니다.’

그 때 태자는 여러 사람의 말을 듣고 가만히 생각하였다.

‘장사와 농사와 가축을 기르는 것은 내게 적당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얻는 이익도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오직 큰 바다로 들어가 용왕궁에 가는 것이 내 마음에 든다. 나는 힘써 이 일을 성취하리라.’

그는 이렇게 생각하고 부왕에게 가서 아뢰었다.

‘저는 바다에 들어가 보배를 구하여 중생들에게 보시하되, 아무리 써도 다함이 없도록 하고 싶습니다. 원컨대 부모님께서는 허락하여 주소서.’

왕과 그 부인은 태자의 말을 듣고 매우 당황하여 물었다.

‘너는 무슨 생각으로 바다에 들어가려 하는가. 진실로 보시를 하고 싶다면 너의 본뜻을 이루게 하리라. 우리 집 창고 안에 남은 물건을 모두 너에게 주리니 너는 그것으로 보시하라. 왜 그것을 버리고 바다로 들어가려 하는가. 또 들으니 저 바다에는 온갖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태풍·나찰·소용돌이·큰 마갈어·물빛 산 등 이러한 온갖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안전한 이가 적어 백 사람이 가면 한 사람이나 돌아올까 말까다.

너는 지금 무엇이 급하기에 그런 위험에 몸을 던지려 하는가. 나와 네 어미는 못내 걱정할 것이요, 왕과 신민들도 모두 근심하고 황공해 할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여 그런 마음 버리고 다시는 여러 말 말라.’

이에 태자는 이 말을 들었으나, 마음은 큰 계획에 있고 뜻은 구제하는 데 있으므로 왕이 아무리 만류하더라도 뜻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비록 목숨이 다하더라도 이 일은 성취하고야 말리라’라고 결심하였다. 그는 왕 앞에 엎드려 아뢰었다.

‘원컨대 저를 가엾이 여겨 저의 원을 풀어 주소서. 만일 기어코 거절하여 들어 주지 않으신다면, 이 땅에 엎드린 이대로 다시는 일어나지 않겠습니다.’

왕과 그 부인과 안팎 여러 사람들은 태자의 뜻이 돌아서지 않을 것을 보고, 그들도 죽기로 맹세하고 땅에 엎드려 다 같이 타이르면서 일어나기를 권하였다. 그러나 그의 말은 처음과 같아서 먹은 뜻은 변하지 않았다.

하루에서 이틀, 그리하여 엿새가 되었다. 왕과 부인은 서로 의논하였다.

‘태자가 먹지 않은 지 이미 엿새가 지났는데, 만일 내일 이레가 되면, 반드시 그 목숨을 보전하지 못할 것이오, 그리고 저 아이는 지금까지 무엇을 하려고 마음 먹으면, 기어코 해내고야 마는 성미라, 그 마음을 돌리지 못할 것이요, 또 저를 바다에 들여보내면 혹 돌아올 일이 있겠지마는, 지금 그 뜻을 어긴다면 우리 희망은 끊어지고 말 것이니, 우선 들어 주고 걱정은 뒤로 돌립시다.’

왕과 부인은 의논을 마치고, 다 같이 태자 앞에 나아가 한 손씩 붙잡고 서로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였다.

‘바다에 들어가겠다는 네 청을 들어 줄 것이니, 어서 일어나 음식을 먹으라.’

그 때 태자는 기뻐하면서 일어나 부모를 위로하였다.

‘제가 비록 바다에 들어가더라도 오래지 않아 돌아올 것입니다. 원컨대 너무 걱정 마소서.’

그를 위해 갖가지 맛있는 음식을 장만하였다. 그는 그것을 먹고 밖으로 나가 널리 영을 내렸다.

‘지금 가량나가리는 바다에 들어가려 한다. 아무라도 같이 가고 싶은 사람은 모두 나오너라.’

그러자 그 나라 안의 5백 상인들이 모두 모여 와서 같이 가겠다고 청하였다.

그 때 그 나라에는 장님 길잡이가 있었다. 그는 일찍부터 여러 번 바다에 들어간 일이 있었다.

태자는 이 소문을 듣고 곧 그의 곁으로 가서, 좋은 말로 간절히 그의 지도를 구하면서 말하였다.

‘당신은 나와 함께 바다에 들어가서, 가고 오는 데 이롭고 해로움과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가르쳐 주십시오.’

길잡이는 대답하였다.

‘나는 이미 늙었고 또 장님이라 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비록 같이 가고 싶으나 사정이 매우 곤란합니다. 또 대왕은 태자님을 특별히 사랑하여 잠깐 동안도 눈을 떼지 않으시고, 항상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계십니다. 지금 내가 태자님과 함께 바다에 들어간다는 말을 듣고 혹 거절하시면, 내게 허물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자 태자는 이 말을 듣고 곧 궁중으로 돌아가 스스로 부왕에게 아뢰었다.

‘지금 이 나라에는 장님 길잡이가 있는데, 그는 일찍부터 여러 번 바다에 들어간 일이 있다고 합니다. 원컨대 왕께서는 분부하시어 저와 함께 가게 하소서.’

왕은 이 말을 듣고 몸소 그에게 가서 말하였다.

‘이 태자는 뜻이 바다에 들어가는 데 있다. 여러 가지로 타일렀으나 마음을 돌리지 않기 때문에 부득이한 사정으로 이제 가기를 허락하였다. 이 아이는 아직 고생이 무엇인지 모르는 아이다. 들으니, 너는 일찍부터 간 일이 있어 바다의 사정을 잘 안다고 한다. 너는 마음을 돌려 괴로움을 참고 같이 가기를 바란다.’

그 때 길잡이는 왕의 이 말을 듣고 아뢰었다.

‘다만 제가 늙고 눈이 멀어 보지 못하는 것이 한이 될 뿐이나 대왕의 명령을 어찌 감히 어기겠습니까?’

왕은 이 승낙을 받고 곧 궁중으로 돌아갔다.

그 때 태자는 길잡이와 함께 떠날 날짜를 정하고 왕궁에 돌아왔다. 왕은 곁의 사람들에게 물었다.

‘누가 나를 공경하고 사랑하여 저 태자와 함께 보물을 캐러 가겠는가?’

파바가리가 왕에게 아뢰었다.

‘제가 형님과 함께 바다로 가겠습니다.’

왕은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생각하였다.

‘지금 저 아우가 험난한 곳으로 함께 가면, 혹 돌보는 것이 다른 사람보다 나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곧 허락하였다.

그 때 태자는 3천 냥 금을 내어, 천 냥으로는 양식을 준비하고, 천 냥으로는 배를 마련하고, 또 천 냥으로는 다른 필요한 물건들을 장만하였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떠나려 할 때에 왕과 그 부인과 여러 왕의 신민들은 길에 나와 울면서 배웅하였다.

그 때 태자는 동행들과 함께 길을 따라가다가 바닷가에 이르러서는, 배를 튼튼히 만들되 일곱 겹으로 하였다. 그리고 좋은 바람 때를 기다려 배를 밀어 물에 띄우고, 일곱 가닥 큰 밧줄로 바닷가에 매고는 요령을 흔들면서 여러 사람들에게 외쳤다.

‘너희들은 다 들으라. 바다에는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이 많다. 물결의 소용돌이·사나운 용·나찰·휘몰아치는 검은 바람·바닷빛 산·큰 마갈어 등 이 밖에도 다른 어려움이 아직 많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바다에 들어갔다가 무사히 돌아온 이는 적다. 만일 주저하는 이는 여기서 돌아가라.

그러나 누구라도 뜻을 굳게 하여 목숨을 버리고 부모를 돌아보지 않으며 처자를 생각하지 않거든 다 같이 바다로 들어가자. 그래서 보물 있는 곳에 이르러 보배를 캐어 무사히 돌아오면, 자손 7대까지 쓰고도 남을 것이다.’

이렇게 명령하고 곧 밧줄 하나를 끊었다. 날마다 이렇게 하여 이레가 되어 명령을 마치고 일곱째 밧줄을 마저 끊었다. 그리하여 바람을 향해 돛을 달자 배는 화살처럼 빨리 달렸다. 그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보배섬에 이르렀다.

태자는 원래 총명하고 세상 경전에 통달하여 보물의 빛깔과 모양을 분별하고 그 값도 모두 알았다. 그리하여 여러 상인들에게 온갖 보배의 좋고 나쁜 것을 보이면서 그들에게 말하였다.

‘마음대로 가져라.’

그리고는 다시 당부하였다.

‘적당히 실으라. 너무 많이 실으면 배가 무거워 침몰할 염려가 있고, 그렇다고 너무 적게 실으면 수고만 하였지 애쓴 보람이 없다.’

이렇게 당부한 뒤, 그는 혼자 길잡이와 함께 작은 배를 따로 타고, 여러 상인들과 이별하고 떠났다.

얼마를 앞으로 가다가 길잡이는 그에게 물었다.

‘이 앞에 흰 산이 있을 터인데 태자님은 보이십니까?’

태자는 대답하였다.

‘보입니다.’

길잡이는 말하였다.

‘그것은 은산입니다.’

또 얼마를 가다가 길잡이는 물었다.

‘검푸른 빛 산이 있을 터인데 태자님은 보이십니까?’ ‘나는 벌써 보았소.’ ‘그것은 검푸른 유리산입니다.’

또 얼마를 가다가 그는 물었다.

‘이 중간에 누런 빛 산이 있을 터인데 태자님은 보이십니까.’ ‘보입니다.’ ‘그것은 황금산입니다.’

그들은 황금산 밑에 이르러 금모래 위에 앉았다. 길잡이는 말하였다.

‘나는 이제 늙고 쇠약하여 틀림없이 죽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길을 가리키고는 말했다.

‘태자님이 이리로 가면 앞에는 성이 있을 것입니다. 그 성은 아주 묘하고 일곱 가지 보배로 사이사이에 장식하였습니다. 태자님이 그 성문에 이르렀을 때 만일 성문이 닫혔거든, 성문 곁에 금강저(金剛杵)가 있을 것이니, 그것으로 문을 두드리십시오. 그 성 안에는 5백 천녀가 있어 각기 보배 구슬을 가지고 와서 태자님에게 바칠 것입니다. 그 중에서 가장 뛰어나고 훌륭한 천녀가 있습니다. 그가 가진 보배 구슬은 보랏빛으로 이름이 전타마니(旃摩尼)인데, 그것이 여의주입니다.

그것을 얻거든 단단히 가져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시고, 다른 것도 받아 가지되, 정신을 차리고 그들과 말은 하지 마십시오. 나는 지금 남은 목숨이 얼마 안 됩니다. 만일 내가 목숨을 마치거든 내 은혜를 생각하여 나를 슬퍼하고 이 모래 속에 묻어 주십시오.’

길잡이는 이 말을 마치고 기운이 다해 숨을 거두었다. 태자는 그를 위해 못내 슬퍼한 뒤에 모래 속에 묻어 주었다.

길잡이가 지시하는 대로 앞으로 얼마를 가다가 일곱 가지 보배로 된 성에 이르렀다. 성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태자는 금강저가 그 성문 곁에 있는 것을 보았다. 길잡이 말대로 그 금강저를 가지고 성문을 두드렸다. 성문은 이내 열렸다.

5백 천녀들은 제각기 보배 구슬을 가져다 태자에게 바쳤다. 가장 앞에 있는 천녀의 손에 가진 구슬은, 그 말대로 보랏빛이었다. 그것들을 차례로 받아 옷섶에 싸서 넣고 이내 거기서 떠났다.

전날 태자와 이별한 뒤에 파바가리는 여러 상인들에게 말하였다.

‘여기는 오기가 쉽지 않으니, 그저 되는 대로 많이 가져야 한다.’

사람들은 보물을 탐하여 너무 많이 실었다.

태자가 돌아왔을 때에는 그들 배는 이미 만선이었다. 배를 띄우고 돌아가다가 그 배는 이내 침몰하였다. 여러 상인들은 잠겼다 떴다 하였지만 태자는 여의주가 있기 때문에 물에 빠지지 않았다.

파바가리는 멀리서 태자를 부르면서 말하였다.

‘나를 구제해 주십시오. 나를 버리지 마십시오.’

태자는 그 말을 듣고 곧 끌어 함께 떠서 힘껏 서로 당기며 바다에서 나오게 하였다.

바다에서 나오자, 아우는 형에게 말하였다.

‘우리 형제가 부모를 하직하고 바다에 들어와 헛되이 돌아가지 않기를 바랐더니, 불행히도 변을 당해 많은 재보를 잃어버리고, 빈 몸으로 돌아가게 되었으니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태자는 천성이 진실하고 정직하여 곧 아우에게 말하였다.

‘나는 벌써 보물을 얻었다.’ ‘저에게 보여 주십시오.’

태자는 곧 옷에 싼 것을 풀어 그 구슬을 보여 주었다. 아우는 그 구슬을 보자 이내 나쁜 생각을 품었다.

‘우리 부왕은 은혜와 사랑이 두루하지 못하여 내 형만 치우치게 사랑하고 내게는 생각이 없다. 지금 우리 형제가 함께 바다에 들어왔다가 형은 진기한 보배를 얻고 나만 빈손으로 돌아가면, 그 때부터는 틀림없이 나를 더욱 천대할 것이니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형이 잠든 틈을 타서 가만히 형을 죽이고, 저 보배 구슬을 가지고 돌아가 부왕에게 형은 바다에 빠져 죽었다고 말하자. 그러면 그 때에는 나를 특별히 사랑하고 생각하리라.’

이렇게 생각하고 그는 가만히 꾀를 내어 형에게 말하였다.

‘이제 인간의 마을이 차츰 가까워 오는데, 우리 형제가 한꺼번에 잘 수는 없습니다. 한 사람씩 번갈아 앉아 지켜 그 보배 구슬을 보호해 가져야겠습니다.’

형은 그렇다고 하고 둘이서 번갈아 지키기로 하였다.

그래서 파바가리가 잘 차례가 되었다. 그는 땅에 누워 시간을 지내되, 너무 오래 지낸 뒤에야 일어났다. 다음에는 형이 누웠다. 형은 너무 오래 앉아 있었기 때문에 그만 잠에 아주 빠졌다.

파바가리는 일어나 숲 속으로 들어갔다. 숲 속의 어떤 나무는 그 가시가 아주 날카로웠다. 그는 길이가 한 자 다섯 치 되는 가시 두 개를 꺾어 형 곁으로 가지고 왔다. 형은 아직 잠이 깊이 들어 있었다. 그는 한 손에 가시 하나씩 쥐고 형의 두 눈을 찌르며, 가시가 보이지 않도록 찔러 넣고는, 보배구슬을 챙겨 가지고 떠났다.

태자는 고통을 견딜 수 없어 큰 소리로 급히 불렀다.

‘파바가리, 파바가리. 여기 도적이 있다.’

몇 번 불렀으나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 때 나무신[樹神]이 태자에게 말하였다.

‘파바가리가 바로 당신의 적입니다. 그는 당신 눈을 찌르고 당신 구슬을 가지고 갔습니다.’

태자는 땅에 뒹굴며 고통스러워하다가 기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 이사발타국(梨師跋陀國)의 어느 늪 가에 이르렀다. 마침 5백 마리 소가 그 곁으로 왔다. 그 중의 어떤 큰 소는 태자를 보자 가엾이 여기고 공경하여 혀를 내어 그의 눈을 핥아 주었다. 다른 소들도 모두 모여 오다가 깜짝 놀라 서서 같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 때 그 소치는 사람은 이상히 여겨 거기로 와서, 태자가 땅에 누워 있는데 그 눈에 긴 가시가 박혀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 형상을 살피다가 범인이 아닌 것을 알고는, 곧 가시를 뽑고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다. 항상 우유를 그 상처에 바르고 음식을 이바지하면서 때를 따라 간호하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눈병은 차츰 나아갔으나 그 주인이 받들어 섬기는 것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 때 태자는 그 소치는 사람에게 물었다.

‘당신은 여기 살면서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는 대답하였다.

‘나는 여기서 별다른 업이 없습니다. 오직 이 우유와 소(酥)를 팔아 살아 가고 있습니다.’

태자는 가만히 생각하였다.

‘내가 곤액을 만났기 때문에 언제나 이 주인을 괴롭혔고, 그는 항상 나를 공양한다. 이제는 병도 나아 조금은 다닐 수가 있으니, 다른 방법으로 살기 쉬운 곳을 구하자.’

이렇게 생각하고는 곧 주인에게 말하였다.

‘오랫동안 신세를 많이 끼쳤습니다. 주인의 고마운 은혜를 생각하면 참으로 한이 없습니다. 나는 이제 여기서 떠나 성 안으로 가서 여기저기 다니면서 구걸하여 살아갈까 합니다.’

주인은 태자의 말을 듣고, 자기 집의 처자나 노비들이 혹 귀찮아하는 말을 하여 그것이 태자 귀에 들어갔나 걱정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무슨 까닭으로 떠나려 하는가 생각하고, 먼저 그 집안 사람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귀한 손님이 여기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가시려 하는가?’

집안 사람들은 모두 말하였다.

‘우리들은 그를 형이나 아우처럼 대하였습니다. 무슨 까닭으로 이곳을 버리고 가려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에 주인은 태자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당신을 받들어 모시기에 아직 잘못이 없었습니다. 우리를 버리고 다른 곳으로 다니면서 구걸하지 마십시오.’

태자는 주인의 말을 듣고, 또 그가 정성껏 자기 뜻을 받들어 주는 것을 보아, 우선 잠깐 머물기로 하였다.

또 얼마를 지나 태자는 주인에게 말하였다.

‘주인께서 나를 대접하는 것은 때를 따라 모자람이 없고, 또 집안 사람들도 나를 대접하는 것이 매우 융숭합니다. 다만 내 생각에 내 스스로 돌아다니면서 저 성 안으로 가고 싶을 뿐입니다. 한 사람을 시켜 나를 저기까지 데려다 주기를 바랍니다.’

주인은 그 간절한 것을 보고, 그 뜻을 어김으로써 도리어 마음을 걱정시킬까 염려하여 몸소 그를 데리고 성 안으로 같이 갔다.

그 성에 이르러 서로 이별하게 될 때에 태자는 그에게 말하였다.

‘당신이 저를 가엾이 여기시거든 거문고 하나를 사서 제게 주십시오. 저는그것으로 즐기겠습니다.’

주인은 곧 거문고를 사서 태자에게 주고, 서로 하직하고 떠났다.

태자는 원래 재능이 많아 노래와 문장에 아주 능하였다. 그는 저잣거리에서 소리를 높여 노래를 부르면서 거문고를 튀겨 반주하였는데, 그 소리는 매우 맑고 고상하였다. 성 안 사람들은 모두 그 소리를 듣고 또 보되, 조금도 싫증을 내지 않았다. 그리고 모두 음식을 가지고 다투어 와서 그에게 주었다. 그 때 그 성 안에 있던 5백 명 거지들도 모두 그에게 와서 붙어 그의 덕으로 배불리 먹었다.

이사발왕에게는 한 동산지기가 있었다. 그는 왕을 위해 벚[奈] 동산을 지키고 있었다. 익은 벚이 있으면 앵무새가 와서 먹었지만, 그는 손이 모자라 그것을 막지 못하였다.

그 때 그 동산지기는 벚을 따다가 왕에게 바쳤다. 그 중에서 좋은 벚이, 앵무새가 쪼아 부서져 있었다. 왕은 그것을 보고 화를 내어 형벌을 주려 하였다. 동산지기는 황급하고 두려워 왕에게 그 사정을 호소하였다.

‘집의 사람 손이 모자라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저 너그러이 용서하여 형벌을 면해 주시면, 다시 지키는 사람을 구하여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왕은 용서하고 그 죄를 묻지 않았다. 동산지기는 죄를 벗어난 뒤에 돌아다니면서 사람을 구하였다. 그는 가량나가리가 길가에서 구걸하는 것을 보고, 또 그 형상을 보아 충실한 사람인 것 같아서 곧 말하였다.

‘그대는 나를 위해 동산을 지킬 수 있겠는가. 만일 할 수 있다면 나는 그대에게 모자라는 것을 대어 주리라.’

태자는 대답하였다.

‘나는 장님인데 어떻게 지키겠습니까?’ ‘그대가 진실로 하려고만 한다면, 비록 눈이 없더라도 할 수 있는 방법을 구하리라.’

그는 가는 놋줄을 많이 만들어 여러 나무 끝에 매고, 여러 개 방울을 그 놋줄에 죽 이어 달고 말하였다.

‘그대는 이 한 끝을 잡고 있다가 만일 무슨 소리가 나거든 곧 놋줄을 당겨 흔들라. 그러면 앵무새는 놀라고 두려워 나무에 앉을 수가 없을 것이다.’

태자는 그 말을 듣고, 그런 일이라면 할 수 있겠다고 서로 의논한 뒤에 바로 가서 동산지기가 되었다.

그 때 파바가리는 부왕의 나라로 돌아왔다. 왕은 그가 혼자 온 것을 이상히 여겨 곧 태자의 소식을 물었다. 파바가리는 왕에게 아뢰었다.

‘저희들의 배는 불행히도 짐이 무거워 침몰하였습니다. 그래서 가량나가리 형님과 여러 상인들은 온갖 보물과 함께 모두 바다에 빠져 죽었습니다. 나는 죽을 힘을 다하여 바다에 떠서 겨우 살아 나오게 되었습니다.’

왕과 부인은 이 말을 듣고, 한참 동안 까무러쳐 아무 의식이 없다가 물을 얼굴에 뿌려 겨우 깨어났다. 그리고 궁중 안팎과 여러 신민들도 이 소식을 듣고 모두 슬퍼하였다.

왕과 그 부인은 파바가리에게 말하였다.

‘가량나가리 태자가 바다에 빠져 죽었는데 왜 너만 혼자 왔느냐. 왜 그 바다 소에서 같이 죽지 않았느냐?’

온 나라 인민들은 모두 슬퍼하고 애석히 여겨 아침·저녁으로 울면서 사모하는 것이 마치 그 부모를 잃은 것과 같았다.

태자가 궁중에 있을 때에 기러기 한 마리를 사랑하였다. 왕은 그 기러기에게 말하였다.

‘태자는 일찍이 너를 기르다가 지금 바다에 들어가 갑자기 죽고 돌아오지 않는다. 너는 왜 가보지 않느냐. 너는 지금 가서 그가 있는 곳을 알아 오라.’

왕은 이내 편지를 적어 기러기 목에 매었다. 기러기는 곧 높이 날아 두루 다니면서 그를 찾았다. 마침 그 벚동산 위를 날다가 태자의 노래소리를 알아 듣고, 곧 내려가 찾아보았다. 기러기가 태자를 보게 되자 우니, 그 우는 소리는 슬프고도 기뻐 어찌할 줄을 몰랐다.

태자도 그 소리를 알아듣고 곧 그 목의 편지를 끌렀다. 그러나 눈으로 보지 못하매 편지를 읽을 수가 없었다. 그는 곧 종이와 붓을 구해 편지를 써서 왕에게 보내었다. 거기에 파바가리가 눈을 찌른 사정과 그 동안 지낸 곳과 고생하던 여러 가지 일을 적어 기러기 목에 매었다. 기러기는 곧 날아갔다.

그 때 이사발왕에게 한 딸이 있었다. 뛰어나게 단정하고 아름다워 세상에 드물었다. 왕은 매우 사랑하고 소중히 여겨 그 뜻을 거스리지 않았다.

어느 때 그 딸은 왕에게 하직하고, 동산에 나가 놀기를 청하였다. 왕은 가기를 허락하였다.

딸은 동산에 이르러 태자 가량나가리를 보았다. 머리털은 흐트러지고 얼굴에는 때가 흐르며, 눈은 장님으로 해진 옷을 입고 나무 사이에 앉아 있었다. 처녀는 그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고 마음이 쓸려 그 곁을 떠나지 않고 나란히 앉아 이야기하였다.

밥 때가 되어 왕은 사람을 보내어 딸을 불렀다. 딸은 그 사람을 돌려보내어 왕에게 아뢰었다.

‘밥을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먹겠습니다.’

곧 밥을 보내 왔다. 처녀는 태자에게 말하였다.

‘나는 당신과 한자리에 앉아 먹고 싶습니다.’

태자는 대답하였다.

‘나는 거지요, 당신은 왕의 딸인데, 어떻게 같이 먹을 수 있습니까? 만일 왕이 들으신다면 내게 큰 죄를 주실 것입니다.’

그 처녀는 간절히 태자에게 말하였다.

‘만일 당신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나도 먹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되풀이하면서 독촉하기를 마지 않아 마침내 같이 먹었다. 처녀의 말은 갈수록 정다웠고 마음이 차츰 끌려 잠깐도 눈을 떼지 않았다.

해가 저물어 왕은 사람을 보내어 딸을 불렀다. 딸은 그 사람을 돌려보내면서 왕에게 아뢰었다.

‘저는 이 동산지기의 아내 되기를 원하고, 이 밖의 다른 어떤 국왕이나 태자도 필요 없습니다. 저는 지금 알뜰한 마음으로 간절하기 이와 같습니다. 원컨대 부왕께서는 저의 뜻을 거스리지 마소서.’

사신은 돌아가 이 사정을 자세히 왕에게 아뢰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그 정을 어길 수 없어 혼자 개탄하였다.

‘이것은 큰 괴변이다. 내 딸이 이처럼 못났구나. 일찍이 보개대왕(寶鎧大王)이 그 첫째 태자 가량나가리를 위하여 혼인을 청해 왔는데, 지금 그 태자가 바다에 들어가 돌아오지 못한다 하여 저 거지의 아내가 되려고 하는구나. 이것은 우리 왕가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나는 장차 머리를 덮어 싸고 어디 가서 숨어야 하는가.’

이렇게 말하고 왕은 다시 사람을 보내어 딸을 불렀다. 그러나 딸의 말은 처음과 같아서 그 먹은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그 때 왕은 딸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뜻을 어기지 못하고, 그들을 모두 궁중으로 데리고 와서 결혼을 시켜 부부를 만들었다.

며칠이 지났다. 그 아내는 언제나 낮에 나가 저물녘에야 돌아왔다. 태자는 이상히 여겨 아내에게 물었다.

‘당신 말대로 우리는 부부가 되었소. 그런데 당신은 새벽에 나가 저물녘에야 돌아오면서 마음이 내게 없으니 다른 뜻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오?’

아내는 스스로 맹세하였다.

‘나는 지금 한마음으로 당신을 높이 받들 뿐, 털끝만큼도 다른 뜻이 없습니다. 만일 내 말이 진실로 그러하고 지극한 정성이 헛되지 않는다면, 당신의 한쪽 눈이라도 회복시켜 본래와 같이 되게 할 것입니다.’

이렇게 맹세하자, 그의 한쪽 눈은 곧 본래와 같이 회복되었다.

아내는 태자에게 물었다.

‘당신 부모님은 어느 나라에 계십니까?’

태자는 대답하였다.

‘당신은 늑나발미(勒那跋彌)라는 대왕의 이름을 들었는가?’ ‘들었습니다.’ ‘그가 바로 내 아버지요. 또 그 왕의 태자 가량나가리란 이름을 당신은 들었는가?’ ‘들었습니다.’ ‘내가 바로 그 사람이오.’

아내는 깜짝 놀라면서 물었다.

‘당신은 어찌하여 이처럼 고생하십니까?’

태자는 곧 그 동안의 내력을 이야기하였다. 아내는 그 말을 듣고 깊이 탄식하면서 말하였다.

‘파바가리가 당신을 해치려고 한 일은 옛날부터 오늘까지 없던 일입니다. 만일 당신이 그를 만나면 어떻게 처리하겠습니까?’

그는 대답하였다.

‘파바가리는 나를 해치려 하였지마는, 나는 그에 대해서 조금도 원한이 없소.’ ‘그 일은 믿기 어렵습니다. 그처럼 고생하셨는데 어찌 분하지 않겠습니까?’

태자는 곧 스스로 맹세하였다.

‘나는 저 파바가리에 대해서 털끝만큼도 원한이 없나니 만일 내 말이 진실하여 거짓이 아니라면 내 한쪽 눈을 회복하게 할 것이오.’

이렇게 맹세하자 금시 눈은 맑고 깨끗해졌다.

아내는 남편의 두 눈이 완전히 깨끗해서 단정하고 위엄스런 모양이, 일찍이 보지 못했던 것임을 보고는 기쁨을 이기지 못하면서 그 아버지에게 가서 아뢰었다.

‘보개왕의 태자 가량나가리를 부왕님은 아십니까?’ ‘아다뿐이겠느냐.’ ‘지금 보시겠습니까?’ ‘그가 지금 어디 있느냐?’ ‘제 남편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아버지는 웃으면서 말하였다.

‘이 애가 미쳐 제 정신이 아니구나. 가량나가리는 바다에 들어가서 돌아오지 못했는데, 장님 거지를 보고 그 사람이라 하는구나.’

딸은 다시 아뢰었다.

‘원컨대 부왕님은 가 보소서.’

왕은 곧 가서 그가 확실히 태자임을 보고, 두려워 떨었다.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뒤섞여 그 앞에 엎드려 그를 향하여 참회하였다.

‘진실로 몰랐소. 내 허물을 용서하시오.’

그리고는 태자를 데려다 국경 근처에 두고, 돌아와 ‘보개대왕의 태자 가량나가리가 저 바다에서 돌아왔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왕은 온갖 차비를 차린 뒤에 코끼리와 말을 장식하고, 여러 신하들과 함께 몸소 나아가 맞이하여 궁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많은 손님을 모은 뒤에 그 딸을 장식하고 비로소 말하였다.

‘내 딸을 그의 아내로 주고 싶다’

그 때 기러기는 그 편지를 가지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대왕은 기러기 목에 매인 편지를 끌러 읽어보고, 비로소 태자가 아직 살아 있다는 소식을 알았다. 그리고 그가 겪은 몇 가지 고생한 일도 모두 알았다.

왕과 부인은 슬프기도 기쁘기도 하였으며, 궁중 안팎은 모두 슬퍼하고 놀라고 분해 하며 성내지 않는 이가 없었다. 파바가리를 붙들어다 몸에 쇠사슬을 채워 옥에 가두고 다시 이사발왕에게 사신을 보내어 영을 내렸다.

‘태자가 그대의 나라에서 고생하고 있는데, 왜 잠자코 있으면서 와서 알리지 않는가. 이 편지가 가는 즉시 코끼리와 말로 호위하여 보내라. 만일 어기는 일이 있으면 내가 직접 가리라.’

사신은 편지를 가지고 그 나라로 갔다. 이사발왕은 그 편지를 받아 읽었다.

그 때 태자는 이사발왕에게 말하였다.

‘그 소치는 사람은 내게 은혜가 많습니다. 나는 지금 그것을 생각하여 만나보고 싶습니다. 나를 위해 사람을 보내 불러오십시오.’

왕은 곧 그를 불러왔다. 태자는 왕에게 말하였다.

‘내가 눈을 찔렸을 때에 바로 이 사람 덕을 입었습니다. 이 이는 나를 이바지하고 보호하기를 마치 자기 부모와 같이 하였습니다. 만일 왕이 나를 생각하신다면 나를 위해 그 은혜를 갚아 주십시오.’

왕은 매우 기뻐하여 곧 훌륭한 의복과 코끼리·말·수레와 농토와 집과 금·은의 보물과 남녀의 종과 하인 관리하는 소까지 모두 그에게 주었다. 그는 매우 기뻐하였다. 뜻밖의 일로써 그는 부하고 귀하게 되어 목숨을 마치도록 안락하게 되었다.

왕은 사신을 돌려보내면서 그 동안의 사정을 자세히 아뢰었다.

‘태자님이 여기 계신 줄은 참으로 몰랐습니다. 그 동안 고생하신 일은 황공하게 생각합니다. 태자님은 지금 눈을 도로 얻었고, 또 신의 딸을 바쳐 태자님의 아내로 삼게 하였습니다. 온갖 차비를 장엄하여 신이 스스로 호위하여 보내겠습니다.’

곧 명령하여 5백 마리 흰 코끼리를 금·은으로 장식하여 극히 화려하게 차리고, 5백 명 소년을 뽑아 태자를 모시게 하였다. 또 얼굴이 단정하고 재능이 묘한 5백 명 시녀를 뽑아 갖가지 보물로 장식하고, 5백 대 수레를 보물로 장식하여 아주 화려하게 차리어 그 딸을 보내었다.

그리고 이사발왕은 여러 신하와 수백천 대의 수레를 거느리고 그들을 모셔 보낼 때, 노래와 풍류에 앞뒤로 둘러싸여 한량없이 경사스럽게 길을 따라 나아갔다.

그 때 그 사신은 본국으로 돌아갔다. 대왕은 그 편지를 받아 보고 더욱 기뻐하면서 곧 여러 왕들에게 명령하여 모두 모이게 하였다. 그리고 코끼리와 말을 장식하여 신하들과 관리들과 부인과 궁녀들에게 앞뒤로 호위되어, 몸소 태자를 맞이하러 국경까지 나갔다.

그 때 태자는 멀리서 그 부왕을 보고 수레에서 내려 걸어 나아가 땅에 엎드려 예배하고 부모에게 문안 드렸다. 그 부모도 수레에서 내려와 서로 껴안았다. 이별한 지 오랜 만에 아들과 만난 것을 생각하니 슬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였다. 여러 왕과 신민들도 그 정경을 보니 기쁘고 감개한 정을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이야기를 간단히 마치고 수레를 돌려 돌아갈 때에 종을 치고 북을 울리며 온갖 풍류를 잡히고, 기뻐하고 경축하면서 앞뒤로 호위되어 성을 향해 돌아왔다.

성문에 이르러 태자는 왕에게 아뢰었다.

‘파바가리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왕은 대답하였다.

‘그런 악인은 천하가 용서하지 않는다. 나도 차마 볼 수 없어 벌써 옥중에 가둬 두었다.’

태자는 아뢰었다.

‘이제 놓아 주십시오.’ ‘그 죄가 너무 중하여 가둬 두는 것도 시원치 않은데 내어 주겠느냐?’ ‘만일 파바가리를 놓아 주지 않으시면 저는 결코 성에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왕은 곧 명령하여 놓아 주라 하였다. 그는 옥을 벗어나 태자에게 와서 태자를 보았다. 태자는 그를 껴안고 그의 마음을 위로하였다. 그리고 나서 성으로 들어가 궁에 이르렀다.

그 때 그 부모와 여러 왕과 신민과 남녀노소들은 태자가 원수 보기를 갓난아기 보는 것과 같이 함을 보았다. 그리고 ‘저 파바가리가 그의 눈을 찔렀건마는 그는 털끝만큼도 원한이 없다’ 하고, 공경하고 사랑하기를 이전보다 배로 더하였다. 일체 대중들은 모두 찬탄하면서 말하였다.

‘참으로 놀랍고 장하다. 천상·인간에 견줄 이 없다.’

태자는 궁중에 돌아간 뒤로 파바가리와 친하게 지냈고, 간절한 정과 사랑하는 마음은 옛날과 다름 없었다. 태자는 천천히 그에게 물었다.

‘그 구슬은 지금 어디 있는가?’

파바가리는 말하였다.

‘돌아올 때에 어느 땅 속에 묻어 두었습니다.’

태자는 사람을 시켜 가서 찾게 하였으나 찾지 못하였다. 태자는 그와 함께 가서 구슬을 찾아내어 모두 거두어 가지고 궁으로 돌아와 5백 개 구슬을 여러 왕들에게 주어 각각 하나씩 가지게 하고, 남은 여의주는 자기가 가졌다.

태자는 그 구슬을 손에 쥐고 빌면서 원하였다.

‘만일 이것이 진실로 여의주라면 우리 부모가 앉은 곳에는 일곱 가지 보배로 된 자리가 있게 하고, 머리 위에는 일곱 가지 보배로 된 큰 일산이 있게 하라.’

이렇게 말을 마치자 모두 그 말대로 되었다. 그는 다시 그 구슬을 쥐고 빌면서 원하였다.

‘우리 부모 궁전 안의 모든 창고와 여러 왕과 그 신하들의 모든 창고에서 전날 내가 그것을 가지고 보시하였던 보물을 모두 도로 채워라.’

그리고는 구슬을 가지고 사방을 향해 돌자, 그 모든 창고들은 충만해졌다. 다시 여러 신하들에게 명령하여 여러 나라에 영을 내렸다.

‘가량나가리 태자는 이레 뒤에 일곱 가지 보배를 천하에 쏟으리라.’

곧 영을 내려 모두 다 듣고 알게 하였다. 이에 태자는 향탕(香湯)에 목욕하고 큰 깃대를 세워 그 꼭대기에 구슬을 두고는 깨끗한 새 옷을 입고 손에 향로를 들고 사방을 향해 예배하면서 축원하였다.

‘만일 이것이 진실로 여의주라면 모든 필요한 것을 두루 쏟아라.’

이렇게 축원을 마치자, 사방에 구름과 안개가 끼이고 곧 바람이 불어 똥 같은 더러운 물건을 불어 없애니, 그 밖의 다른 더러운 것도 모두 저절로 없어졌다. 다음에는 물을 내려 티끌을 적시고, 다음에는 온갖 맛을 가진 갖가지 음식과 다섯 가지 곡식과 의복을 차례로 내리고, 다음에는 일곱 가지 보배를 내려 천하를 가득 채웠다. 그러자 인민들은 한량없이 칭찬하고 경축하면서 그 보배들을 보기를 기왓장이나 돌처럼 보았다.

그 때 태자는 천하에 두루 영을 내렸다.

‘너희들은 이제 몸을 기르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얻어 조금도 모자람이 없다. 만일 이러한 은혜를 느껴 안다면, 마땅히 몸과 뜻을 잘 단속하여 열 가지 착한 길을 닦아야 할 것이다.’

그 때 온 염부제 안에서 태자의 끝없는 보시에 감사하는 사람들은 그 영을 듣고는, 모두 마음을 가다듬어 열 가지 착한 일을 받들어 행하고 어떤 악도 범하지 않아 목숨을 마친 뒤에는 모두 천상에 났느니라.”

부처님께서는 이어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알고 싶으냐? 그 때의 가량나가리 태자는 지금의 이 내 몸이요, 그 아버지 늑나발미는 지금의 내 아버지 정반왕이며, 어머니는 현재의 내 어머니 마하마야요, 이사발왕은 지금의 마하가섭이며, 그 아내는 지금의 저 구이(瞿夷)요, 그 파바가리는 지금의 제바달다이니라.

염부제 사람으로서 내 은혜를 입은 사람은, 내가 처음으로 도를 얻었을 때에 8만의 여러 하늘들과 또 내 제자들이요, 수기를 받은 사람도 바로 그 사람들이니라.

아난이여, 나는 그 때에도 저 제바달다의 해침을 받아 말 못할 고통을 겪었지마는, 그래도 나는 자비로운 마음으로 그를 사랑하고 가엾이 여겼다. 하물며 지금 나는 불도를 이루어 번뇌를 모두 없애고 자비를 널리 펴는데 저에게 조그만 해를 입었다 하여 어찌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지 않겠는가.”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거기 모인 대중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부처님께서 중생을 위하여 그런 고통을 겪으면서도 물러나거나 그만두지 않으신 은혜에 감격하여 찬탄하였다.

“일찍이 없었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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