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우경(賢愚經) 제01권

현우경(賢愚經)

원위(元魏) 양주(涼州) 사문 혜각(慧覺) 등이
고창군(高昌郡)에서 한역

현우경(賢愚經) 제01권

01.범천청법육사품(梵天請法六事品)

02. 마하살타이신시호품(摩訶薩以身施虎品)

03. 이범지수재품(二梵志受齋品)

04. 바라내인신빈공양품(波羅人身貧供養品)

05. 해신난문선인품(海神難問船人品)

06.항가달품(恒伽達品)

07.수사제품(須闍提品)

현우경(賢愚經) 제02권

08.바사닉왕녀금강품(波斯匿王女金剛品)

09.금재인연품(金財因緣品)

10.화천인연품(華天因緣品)

11.보천인연품(寶天因緣品)

12.찬제파리품(提波梨品)

13.자력왕혈시품(慈力王血施品)

14.항육사품(降六師品)

현우경(賢愚經) 제03권

15.거타신시품(鉅身施品)

17.아수가시토품(阿輸迦施土品)

18.칠병금시품(七甁金施品)

19.차마현보품(差摩現報品)

20-1 빈녀난타품(貧女難品)

20-2.대광명왕시발도심연품(大光明王始發道心緣品)

현우경(賢愚經) 제04권

21.마하사나우바이품(摩訶斯那優婆夷品)

22.출가공덕시리필제품(出家功德尸利苾提品)

현우경(賢愚經) 제05권

23.사미수계자살품(沙彌守戒自殺品)

24.장자무이목설품(長者無耳目舌品)

25.빈인부부첩시득현보품(貧人夫婦疊施得現報品)

26.가전연교노모매빈품(迦旃延敎老母賣貧品)

27.금천품(金天品)

28.중성품(重姓品)

29.산단녕품(散檀寧品)

현우경(賢愚經) 제06권

30.월광왕두시품(月光王頭施品)

현우경(賢愚經) 제07권

31.대겁빈녕품(大劫賓寧品)

32.이기미칠자품(梨耆彌七子品)

33.설두라건녕품(設頭羅健寧品)

현우경(賢愚經) 제08권

34.개사인연품(蓋事因緣品)

35.대시서해품(大施抒海品)

현우경(賢愚經) 제09권

36.정거천청불세품(淨居天請佛洗品)

37.선사태자입해품(善事太子入海品)

현우경(賢愚經) 제10권

38.아난총지품(阿難摠持品)

39.우바사형소살품(優婆斯兄所煞品)

40.아오살부품(兒誤煞父品)

41.수달기정사품(須達起情舍品)

42.대광명시발무상심품(大光明始發無上心品)

43.늑나사야품(勒那闍耶品)

44.가비리백두품(迦毘梨百頭品)

현우경(賢愚經) 제11권

45.무뇌지만품(無惱指鬘品)

46.단니기품(檀膩品)

현우경(賢愚經) 제12권

47.사질자마두라세질품(師質子驀羅世質品)

48.단미리품(檀彌離品)

49.상호품(象護品)

50.파바리품(波婆離品)

51.이앵무문사제품(二鸚鵡聞四諦品)

52.조문비구법생천품(鳥聞比丘法生天品)

현우경(賢愚經)제13권

53. 오백안문불법생천품(五百鴈聞佛法生天品)

54.견서사자품(堅誓師子品)

55.범지시불납의득수기품(梵志施佛納衣得受記品)

56.불시기자심연품(佛始起慈心緣品)

57.정생왕품(頂生王品)

58.소만녀십자품(蘇曼女十子品)

59.바세질품(婆世躓品)

60.우파국제품(優波提品)

61.왕수중충품(汪水中虫品)

62.사미균제품(沙彌均提品)


현우경(賢愚經) 제01권

01.범천청법육사품(梵天請法六事品)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마갈국(摩竭國)의 선승도량(善勝道場)에서 비로소 부처가 되어 생각하셨다.

‘중생들은 미욱한 그물에 얽히고 삿된 소견에 빠져 교화하기 어렵구나. 내가 이 세상에 오래 살더라도 아무 이익이 없을 것이다.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드는 것만 못하리라.’

그 때 범천은 부처님의 생각을 알고 곧 하늘에서 내려와 부처님께 나아가 땅에 엎드려 발 아래 예배하고 꿇어앉아 합장하고 청하였다.

“세존이시여, 법륜(法輪)을 굴리시고 반열반(般涅槃)에 들지 마소서.”

세존께서 대답하셨다.

“범천이여, 중생들은 번뇌에 덮여 세상 쾌락을 즐기면서 지혜로운 마음이 없다. 비록 내가 세상에 살더라도 그 공(功)만 헛될 것이다. 내 생각 같아서는 열반만이 즐거울 것 같다.”

범천은 다시 땅에 엎드려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지금 법의 바다[法海]는 이미 가득 찼고 법의 깃발[法幢]은 이미 섰습니다. 중생을 인도하여 건지실 때는 바로 이 때입니다. 또 제도할 만한 중생도 적지 않은데 어찌하여 세존께서는 열반에 드시어 저 중생들로 하여금 영원히 그 보호를 잃게 하려 하십니까?
세존께서는 과거 무수한 겁에 항상 중생을 위하여 법약(法藥)을 캐어 모으실 적에 한 구절의 게송을 얻으려고 그 몸과 처자로써 구하셨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그것을 생각하지 않고 버리려 하십니까?
먼 옛날 이 염부제(閻浮提)에 수루바(修樓婆)라는 큰 나라 왕이 있어 이 세계의 8만 4천의 작은 나라들과 6만의 산천과 8천억의 촌락을 다스렸습니다. 왕에게는 2만 부인과 1만 대신이 있었습니다.

묘색왕(妙色王:수루바)은 덕의 힘이 견줄 데 없고 백성들을 잘 보호해 길러 풍요로움과 즐거움이 끝이 없었습니다. 왕은 생각하였습니다.

‘나는 지금 재물로만 중생들에게 베풀고 어떤 도의 가르침으로써 그들을 편안히 살게 하지는 못한다. 이것은 내 허물이다. 얼마나 괴로운가. 지금 견실한 법의 재물을 구해 그들을 모두 해탈케 하리라.’

그는 곧 염부제 안에 영을 내렸습니다.

‘누가 나를 위해 법을 설명해 주겠는가. 그러면 그의 소원을 들어 주리라.’ 사방으로 두루 구해 보았으나 아무도 응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왕은 매우 근심하고 슬퍼하였습니다.

그 때에 비사문왕(毘沙門王)은 이런 사정을 알고, 그를 시험해 보려고 곧 몸을 변화시켜 야차(夜叉)로 변하였습니다. 얼굴빛은 검푸르고 눈은 피처럼 붉으며 개 이빨 같은 이빨은 위로 솟고 머리털은 곤두서고 입으로는 불을 뿜으면서 궁문에 와서 말하였습니다.

‘누가 법을 듣고자 하는가. 내가 그를 위해 설하리라.’

왕은 이 말을 듣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몸소 나가 맞이하여 예배한 뒤에 높은 자리를 만들고 앉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곧 대신들을 모아 앞뒤로 둘러서서 법을 듣고자 하였습니다.

그 때 야차는 다시 왕에게 말하였습니다.

‘법을 배우기란 어려운 일이다. 어떻게 거저 그것을 들으려 하는가.’

왕은 합장하고 말하였습니다.

‘무엇이나 필요한 것은 모두 들어 주리라.’

야차는 또 말하였습니다.

‘대왕의 사랑하는 처자를 내게 주어 먹게 하면 법을 설하리라.’

그 때 대왕은 사랑하는 부인과 아들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아들을 야차에게 공양하였습니다. 야차는 그것을 받아 여럿이 보는 앞에서 먹었습니다.

그 때 여러 왕들과 관리와 신하들은 왕의 그러한 일을 보고, 괴로이 울고 땅에 뒹굴면서 그 일을 그만두도록 왕에게 호소하였습니다. 그러나 왕은 법을 위하여 결심한 마음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그 때 야차는 그 부인과 태자를 다 먹고 나서 왕을 위해 한 게송을 읊었습니다.

모든 현상은 덧없는 것이어서 
태어나는 것은 모두 다 괴로운 것을.


5음(陰)은 텅 비어 모양 없거니 
나도 없고 그리고 내 것도 없네.

이 게송을 읊자, 왕은 매우 기뻐하면서 조금도 후회하지 않고, 머리털 만한 글자로 그것을 베껴 써서 사람을 시켜 염부제 안에 돌리고 모두 외워 익히게 하였습니다.

그 때 비사문왕은 본래 형상으로 돌아와 칭송하였습니다.

‘장하고 놀랍구나.’

그의 부인과 태자는 본래처럼 살아 있었습니다.

그 때의 그 왕은 지금의 부처님이십니다. 세존께서 옛날에는 법을 위해서도 오히려 그처럼 하셨거늘 어찌하여 지금은 중생들을 버리고 일찍 열반에 드시어 그들을 구제하지 않으려 하십니까?
또 세존께서는 먼 과거 아승기겁에 이 염부제에서 큰 나라 왕이 되었는데, 이름은 건사니바리(虔闍尼婆梨)였습니다. 여러 나라와 8만 4천 촌락을 맡아 다스리시고 2만의 부인과 궁녀와 1만의 대신을 두었습니다.

그는 자비가 있어 일체를 가엾이 여겼으므로 백성들은 힘을 입었고, 곡식은 풍성하여 모두 왕의 은혜에 대해서 인자한 아버지를 우러르듯 하였습니다.

그 때 왕은 생각하였습니다.

‘나는 지금 제일 높은 왕의 지위에 있다. 백성들은 내 안에서 모두 편히살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것만으로 만족할 수가 없다. 묘하고 보배스런 법의 재물을 구해 저들을 이롭게 하리라.’

이렇게 생각하고는 사신을 보내어 영을 내려 일체에 두루 알렸습니다.

‘누가 나를 위해 이 묘한 법을 설명하겠는가. 그의 요구를 따라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은 모두 주리라.’

노도차(勞度差)라는 바라문이 궁문에 와서 말하였습니다.

‘제게 법이 있습니다.’

왕은 그 말을 듣고 매우 기뻐하면서 곧 나가 맞이하여 예배하고는 좋은 자리를 펴서 앉게 한 뒤에 좌우와 함께 합장하고 말하였습니다.

‘원컨대, 대사는 이 어리석은 것을 가엾이 여기시고 묘법(妙法)을 설명하여 그것을 듣고 알게 하소서.’

노도차는 다시 말하였습니다.

‘제 지혜는 먼 곳에서 구한 것이라 공부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거저 그것을 들으려 하십니까?’

왕은 대답하였습니다.

‘무엇이나 필요한 것을 말씀하시면 모두 공급하겠습니다.’

노도차는 말하였습니다.

‘대왕이 지금 그 몸을 쪼개어 천 개의 등불을 켜서 공양하면 그 법을 설하겠습니다.’

왕은 그 말을 듣고 못내 기뻐하여 곧 신하를 보내어 하루 8만 리를 달리는 코끼리에 태워 온 염부제에 알렸습니다.

‘건사니바리왕은 지금부터 이레 뒤에 법을 위하여 그 몸을 쪼개어 천 개의 등불을 켤 것이다.’

여러 작은 나라의 왕들과 모든 백성들은 이 말을 듣고 근심하면서 모두 왕에게 나아가 예배하고 아뢰었습니다.

‘지금 이 세계에서 목숨을 가진 중생들이 대왕을 의지해 사는 것은, 마치 장님이 길잡이를 의지하고 어린애가 어머니를 의지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한데 왕이 돌아가시면 저희들은 누구를 의지하겠습니까? 만일 그 몸을 쪼개어 천 개의 등불을 켜신다면 반드시 나라가 온전치 못할 것입니다. 어떻게그 바라문 한 사람 때문에 이 세계의 일체 중생을 버리려 하십니까?’

그 때 그 궁중에 있던 2만의 부인과 5백의 태자와 1만 대신들도 모두 합장하고 그와 같이 호소하였습니다.

왕은 대답하였습니다.

‘너희들은 부디 나의 위없는 도의 마음[無上道心]을 꺾지 말라. 나는 그렇게 함으로써 맹세코 부처가 될 것이요, 부처가 된 뒤에는 반드시 너희들을 먼저 제도하리라.’

백성들은 왕의 뜻이 바른 줄 알면서도 괴로이 울면서 땅에 쓰러졌습니다. 그러나 왕은 그 뜻을 고치지 않고, 바라문에게 말하였습니다.

‘지금 내 몸을 쪼개어 천 개의 등불을 켜소서.’

바라문은 곧 왕의 살을 쪼개고 기름 심지를 박았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기절하였다가 다시 살아나서 땅에 쓰러지니, 마치 큰 산이 무너지는 것과 같았습니다.

왕은 다시 아뢰었습니다.

‘원컨대 대사는 나를 가엾이 여겨 먼저 설법하소서. 그리고 등불을 붙이소서. 혹 내 목숨이 먼저 끊어져 법을 듣지 못할까 합니다.’

노도차는 곧 다음 게송으로 법을 외웠습니다.

온갖 존재는 다 없어지나니 
높은 것은 반드시 무너지든가 
만나면 언젠가 떠나게 되며 
태어난 이는 모두 다 죽고 만다네.

이 게송을 마치고는 곧 불을 붙였습니다.

그 때 왕은 매우 기뻐하면서 조금도 후회하는 마음이 없이 스스로 서원을 세웠습니다.

‘나는 지금 법을 구하여 불도(佛道)를 성취할 것이다. 부처가 된 뒤에는 지혜의 광명으로 중생들의 결박과 어두움을 비추어 깨닫게 할 것이다.’

이렇게 서원하자 천지는 크게 진동하여 정거천(淨居天)에까지 이르러서그 궁전이 모두 흔들렸습니다. 그들은 모두 내려다보다가 보살이 법공양을 짓는데 그 몸을 허물어뜨리면서 목숨을 돌아보지 않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모두 허공을 덮고 내려오면서 슬피 울었는데, 눈물이 마치 쏟아지는 비와 같았습니다.

그리고 하늘꽃[天華]을 뿌려 공양하였습니다.

그 때 제석천은 왕 앞에 내려와 갖가지로 칭송하면서 물었습니다.

‘대왕은 지금 고통이 매우 심할 것입니다. 혹 마음에 후회하는 일은 없습니까?’

왕은 대답하였습니다.

‘없습니다.’

제석은 다시 물었습니다.

‘지금 왕의 몸을 보니 벌벌 떨면서 편치 못합니다. 후회가 없다고 스스로 말하지만 누가 그것을 믿겠습니까?’

왕은 다시 서원을 세웠습니다.

‘만일 내가 처음부터 지금까지 마음으로 후회하지 않았거든, 내 몸의 상처가 당장 낫게 하소서.’

이렇게 말하자 몸은 이내 회복되었습니다.

그 때의 그 왕은 바로 지금의 부처님이십니다. 세존께서 옛날에 그처럼 고통을 받으면서 법을 구한 것은 모두 중생을 위한 것으로서 지금은 다 성취되었는데, 어찌하여 저희들을 버리고 열반에 드시어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영원히 큰 법의 광명을 잃게 하려 하십니까?
또 세존께서는 지나간 세상에 염부제에서 큰 나라 왕이 되었는데, 이름은 비릉갈리(毘楞竭梨)였고, 여러 나라와 8만 4천의 촌락을 맡아 다스리시고, 2만의 부인과 궁녀와 5백의 태자와 1만의 대신을 두었습니다. 왕은 큰 자비가 있어 백성을 자식처럼 보살폈습니다.

그 때 왕은 마음으로 바른 법을 좋아하여 곧 신하를 보내어 온 나라에 영을 내렸습니다.

‘누가 나를 위해 바른 법을 말해 주겠는가. 나는 그 요구를 따라 필요한 것을 모두 공급하리라.’

그 때 노도차라는 바라문이 궁문에 와서 말하였습니다.

‘제게 큰 법이 있습니다. 누가 듣고자 하면 저는 설하겠습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면서 몸소 나가 맞이하여 머리를 발에 대어 예배하고 안부를 물은 뒤에, 큰 궁전으로 모시고 가서 좋은 자리에 앉게 하고는 합장하고 말하였습니다.

‘원컨대 대사는 나를 위해 설법하소서.’

노도차는 말하였습니다.

‘제가 아는 법은 사방을 돌아다니면서 배운 것으로서 여러 해 동안 수고한 것입니다. 대왕은 어떻게 거저 그것을 들으려 하십니까?’

왕은 합장하고 말하였습니다.

‘분부하시면 일체 필요한 것을 대사께 바치고 아까워하지 않겠습니다.’

그는 곧 말하였습니다.

‘만일 왕의 몸에 천 개의 쇠못을 치게 하면 설법하겠습니다.’

왕은 곧 ‘좋습니다. 지금부터 이레 뒤에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 그 왕은 곧 사람을 보내어 하루 8만 리를 달리는 코끼리를 타고 온 염부제 안에 두루 알렸습니다.

‘지금부터 이레 뒤에 비릉갈리 대왕의 몸에 천 개의 쇠못을 치게 하리라.’

신하들은 그 말을 듣고 구름처럼 모여서 왕에게 아뢰었습니다.

‘저희들은 사방 멀리 있으면서 왕의 은덕을 입고 모두 편히 살아갑니다. 원컨대 대왕께서는 저희들을 위하여 그 몸에 천 개의 쇠못을 치게 하지 마소서.’

궁중에 왕후·궁녀·태자·대신들이 모두 모여 한꺼번에 왕에게 호소하였습니다.

‘원컨대 대왕께서는 저희들을 생각하시고, 한 사람 때문에 목숨을 마쳐 천하의 일체 중생들을 버리지 마소서.’

왕은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오랫동안 태어나고 죽는 동안에 수없이 몸을 버렸었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 때문에 버렸으니, 그 백골을 헤아리면 수미산보다 높을 것이요,
머리를 베어 흘린 피는 다섯 강물보다 많을 것이며, 울면서 흘린 눈물은 네 바닷물보다 많을 것이다. 이런 갖가지 일이 있었지마는 그것은 헛되이 목숨만 버린 것이요, 일찍이 법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지금 내 몸에 쇠못을 치게 함으로써 불도를 구하는 것이니, 부처가 된 뒤에는 지혜의 날카로운 칼로 너희들 번뇌의 병을 끊어 버릴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내 도심(道心)을 막으려 하는가.’

여러 사람들은 잠자코 말이 없었습니다.

이에 왕은 바라문에게 말하였습니다.

‘원컨대 대사는 은혜를 베풀어 먼저 설법하신 뒤에 못을 치소서. 혹 내 목숨이 먼저 끊어져 법을 듣지 못할까 합니다.’

그 때 노도차는 곧 다음 게송을 말하였습니다.

일체는 모두 덧없는 것이어서 
태어나는 것은 모두 다 괴로운 것을.


모든 법은 공하여 실체가 없거니 
그것은 진실로 내 것이 아니네.

이런 게송을 마치고는 곧 그 몸에 천 개의 쇠못을 쳤습니다.

여러 작은 나라의 왕과 신하들과 대중들이 땅에 쓰러지는 것이 마치 큰 산이 무너지는 것 같았고, 땅에 뒹굴고 울면서 사방을 분별하지 못하였습니다.

그 때 천지는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는데, 욕색(欲色)의 여러 하늘들이 그 이유를 괴상히 여겨 모두 내려왔다가, 보살이 법을 위해 그 몸을 상하게 하고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는 한꺼번에 울어, 그 눈물이 쏟아지는 비와 같았습니다. 그리고 하늘 꽃을 뿌려 공양하였습니다.

그 때 제석천은 왕 앞에 나와 물었습니다.

‘대왕이 지금 용맹정진하면서 고통을 싫어하지 않는 것은 법을 위해서입니다. 무엇을 구하려 하십니까, 제석천이나 전륜왕이 되려 하십니까, 마왕(魔王)이나 범왕(梵王)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왕은 대답하였습니다.

‘내가 하는 일은 삼계의 갚음을 받는 즐거움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공덕으로써 불도를 구하는 것입니다.’

천제(天帝)는 다시 물었습니다.

‘왕은 지금 몸을 헐어 그처럼 고통스러우십니다. 과연 후회하는 마음이 없습니까?’ ‘없습니다.’ ‘지금 왕의 몸을 보니 스스로 가누지 못하는데, 후회가 없다고 말하지마는 무엇으로 증명하겠습니까?’

왕은 곧 서원을 세웠습니다.

‘만일 내가 지극한 정성으로 후회하는 마음이 없으면 지금 내 몸은 본래처럼 회복될 것이다.’

이렇게 말하자 몸은 곧 회복되었습니다. 하늘과 사람들은 한량없이 기뻐 뛰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지금 법의 바다[法海]는 가득 찼고 공덕은 모두 갖추어졌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일체 중생을 버리고 빨리 열반에 들어 설법하려 하시지 않습니까?
또 세존이시여, 먼 옛날 한량없는 아승기겁에 이 염부제에 큰 나라 왕이 있었는데, 이름이 범천왕(梵天王)이었습니다. 그 태자 이름은 담마감(曇摩鉗)이었고 그는 바른 법을 좋아해 사람을 보내어 사방으로 두루 찾았으나 마침내 얻지 못하였습니다.

그 때 태자는 법을 구하였으나 얻지 못하여 근심하고 번민하였습니다.

제석천은 그 정성이 지극함을 알고 바라문으로 변하여 궁문으로 나아가 말하였습니다.

‘나는 법을 압니다. 누구라도 그것을 듣고자 하면 설명해 주겠습니다.’

태자는 이 말을 듣고 곧 나가 맞이하여 머리를 발에 대어 예배하고는 큰 궁전으로 모시고 가 좋은 자리를 펴고 앉게 한 뒤에 합장하고 아뢰었습니다.

‘원컨대 대사는 가엾이 여겨 설법해 주소서.’

바라문은 말하였습니다.

‘배우는 일은 매우 어려워 오랫동안 스승을 찾아다녀야 얻어지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것을 거저 들으려 하십니까? 그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태자는 다시 말하였습니다.

‘대사께서 필요한 것을 분부하시면 내 몸이나 처자까지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고 드리겠습니다.’

바라문은 말하였습니다.

‘만일 지금 대왕이 깊이 열 길 되는 큰 불구덩이를 만들어 그 안에 가득히 불을 붙이고, 거기에 몸을 던져 공양하면 나는 설법하겠습니다.’

태자는 그 말대로 큰 불구덩이를 만들었습니다.

왕과 왕후·궁녀·신하들은 그 말을 듣고 안절부절하여 모두 모여 태자궁으로 나아가 태자에게 충고하고 바라문을 깨우쳤습니다.

‘원컨대 저희들을 사랑하고 가엾이 여겨 태자로 하여금 불구덩이에 들어가지 말게 하소서. 만일 필요하시다면 이 나라와 처자와 우리 몸까지라도 드리겠습니다.’

바라문은 말하였습니다.

‘나는 태자를 핍박하지 않았고 다만 그의 생각을 따른 것뿐입니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설법할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설법하지 않겠습니다.’

사람들은 그 뜻이 견고한 것을 알고 모두 잠자코 있었습니다.

왕은 곧 사자를 보내어 하루 8만 리를 달리는 코끼리를 타고 온 염부제 안에 두루 알리게 하였습니다.

‘담마감 태자는 법을 위하여 지금부터 이레 뒤에 불구덩이에 몸을 던질 것이다. 그것을 보고 싶은 자는 빨리 와서 모여라.’

여러 작은 나라의 왕들과 사방 국경 백성들은 약한 이는 부축해 가면서 구름처럼 모였습니다. 그들은 태자에게 나아가 꿇어앉아 합장하고 같은 말로 아뢰었습니다.

‘저희 신하들은 태자님을 우러러보기를 부모처럼 합니다. 만일 태자께서 불구덩이에 몸을 던지시면, 이 천하는 모두 부모를 잃고 아주 믿을 곳이 없게 될 것입니다. 저희들을 가엾이 여기시고, 한 사람을 위해 일체를 버리지 마소서.’

태자는 말하였습니다.

‘나는 오랜 옛날부터 나고 죽는 동안에 몸을 수없이 잃었다. 인간에서는 탐욕 때문에 서로 해쳤고, 천상에서는 수명이 다해 쾌락을 잃고 근심하고 괴로워하였다. 또 지옥에서는 불에 타고 끓는 물에 삶기며, 도끼·톱·창·칼·재바다[灰河]·칼산[劍樹] 속에서 하루 동안에도 헤아릴 수 없이 몸을 잃었는데, 마음과 골수에 사무치는 고통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아귀로 있을 때에는 온갖 독(毒)이 몸을 찔렀고, 축생으로 있을 때에는 뭇 입에 몸을 제공하였고, 무거운 짐을 지고 풀을 먹는 등 그 고통은 헤아리기 어려웠다.

그러나 그것은 부질없이 온갖 고통만 겪고 헛되이 신명(身命)만 버린 것으로서, 일찍이 착한 마음으로 법을 위해 한 일은 아니었다.

나는 지금 이 냄새 나고 더러운 몸을, 법을 위해 공양하려 하는데, 너희들은 어찌하여 나의 위없는 도심(道心)을 꺾으려 하는가. 내가 이 몸을 버리는 것은 불도를 구하기 위해서이다. 내가 불도를 이룬 뒤에는 너희들에게 5분법신(分法身)을 베풀어 줄 것이다.’

여러 사람들은 잠자코 있었습니다.

그 때 태자는 불구덩이 위에 서서 바라문에게 아뢰었습니다.

‘원컨대 대사는 나를 위해 설법하소서. 혹 내 목숨이 먼저 끝나 법을 듣지 못할까 합니다.’

바라문은 곧 다음 게송을 읊었습니다.

언제나 사랑하는 마음을 행해 
성내고 해치려는 생각 없애고 
슬퍼하는 마음으로 중생 돌보아 
흐르는 그 눈물 비오듯 하며 

따라 기뻐하는 마음 닦아 행하여 
내가 법을 얻은 것같이 여기고 
도의 뜻으로 중생을 보호하면 

그것이 바로 보살의 행이니라.

이 게송을 마치자, 태자는 곧 불구덩이에 몸을 던지려 하였습니다.

그 때 제석과 범천왕은 각각 그의 한 손을 붙들고 말렸습니다.

‘이 염부제 안의 모든 중생들은 모두 태자님 은혜로 각기 제 일을 즐기고 있습니다.

지금 태자께서 불구덩이에 몸을 던지면 온 천하는 그 아버지를 잃게 될 것입니다. 어찌 스스로 몸을 죽여 일체 중생을 버리려 하십니까?’

태자는 그 천왕들과 백성들에게 대답하였습니다.

‘어찌하여 나의 위없는 도심을 막으려 하는가.’

하늘과 사람들은 모두 잠자코 있었고, 태자는 곧 몸을 날려 불구덩이에 떨어졌습니다.

그 때 천지는 크게 진동하고 허공의 하늘들은 한꺼번에 울부짖어 그 눈물은 쏟아지는 비와 같았습니다. 불구덩이는 삽시간에 연못으로 변하고, 태자는 그 못 속의 연화대(蓮花臺)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늘들은 꽃을 뿌려 태자의 무릎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 때의 그 범천왕은 지금의 부왕 정반왕(淨飯王)이요, 어머니는 지금의 마야(摩耶)부인이며, 태자 담마감은 바로 지금의 세존이십니다.

세존께서 그 때에 그처럼 법을 구하신 것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지금은 그 소원이 이미 성취되었으니 마땅히 저 메마른 무리들을 적셔 주어야 하십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저들을 버리고 열반에 드심으로써 설법하지 않으려 하십니까?
또 세존이시여, 과거 한량없는 아승기겁에 파라내국(波羅國)에는 5백 명 선인(仙人)이 있었고, 그들 스승의 이름은 울다라(鬱多羅)였습니다.

그는 항상 바른 법을 사모하여 공부하려고 사방으로 그 스승을 구해 온 나라에 두루 알렸습니다.

‘누가 나를 위해 바른 법을 설해 주면, 나는 그의 요구에 따라 모두 공급하리라.’

어떤 바라문이 와서 말하였습니다.

‘나에게 바른 법이 있다. 누가 듣고자 하면 나는 설명하리라.’

그 때 그 선인 스승은 합장하고 아뢰었습니다.

‘원컨대 나를 가엾이 여겨 그 법을 설명해 주소서.’

바라문은 말하였습니다.

‘법을 배우는 일은 매우 어려워 오래 수고하여야 얻어지는 것인데 어찌하여 너는 거저 그것을 들으려 하는가. 그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그대가 만일 지성으로 법을 얻으려 하거든 마땅히 내 분부를 따르라.’

선인은 아뢰었습니다.

‘대사님 분부를 어찌 감히 거역하겠습니까.’

바라문은 말하였습니다.

‘만일 네가 지금 가죽을 벗겨 종이를 만들고 뼈를 쪼개어 붓을 만들며 피를 먹에 타서 내 법을 받아 쓴다면, 너를 위해 설법하리라.’

울다라는 이 말을 듣고 기뻐 뛰면서 불법을 위해 곧 가죽을 벗기고 뼈를 쪼개고 피를 먹에 타고는 우러러 아뢰었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 때입니다. 원컨대 빨리 설법하소서.’

바라문은 곧 다음 게송을 말하였습니다.

항상 몸의 행을 잘 단속해 
살생과 도둑질과 음행을 하지 않고 
이간질과 나쁜 말 하지 않고 
거짓말과 비단결 같은 말 하지 않으며 

마음에 온갖 욕심 탐하지 않고 
성내거나 해칠 생각 가지지 않고 
온갖 삿된 소견을 버린다면 
그것이 바로 보살의 행이니라.

이 게송을 마치자 울다라는 곧 받아 썼습니다.

그리하여 사람을 보내어 염부제 안의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을 베껴쓰게 하고 읽고 외워 그대로 수행하게 하였습니다.

그 때 세존께서는 중생을 위하여 이와 같이 법을 구하되 마음에 후회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찌하여 일체 중생을 버리고 열반에 드셔서 설법하지 않으려 하십니까?
또 세존께서는 오랜 옛날 아승기겁에 이 염부제에서 큰 나라 왕이 되었는데 이름이 시비(尸毘)였습니다. 왕이 계시는 성 이름은 제바발제(提婆拔提)로서 한량없이 풍성하고 즐거웠습니다.

시비왕은 염부제의 8만 4천의 작은 나라와 6만의 산천과 8천억의 촌락을 다스리셨고 또 2만의 부인과 궁녀와 5백의 태자와 1만의 대신을 두었습니다. 그리고 큰 자비를 행하여 일체 중생을 가엾이 여겼습니다.

그 때 제석천은 다섯 가지 공덕이 몸에서 떠나 그 목숨이 끝나게 되자 매우 근심하고 걱정하였습니다. 비수갈마(毘首羯摩)는 그것을 보고 곧 나아가 아뢰었습니다.

‘왜 슬퍼하면서 근심하는 빛이 있습니까?’

제석은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곧 죽을 것이다. 죽을 징조가 이미 나타났다. 지금 세상에는 불법은 이미 사라지고 또 큰 보살들도 없어서 내 마음은 어디 귀의할 지를 알지 못한다. 그래서 근심하는 것이다.’

비수갈마는 아뢰었습니다.

‘지금 염부제에 큰 나라 왕이 있어 보살도(菩薩道)를 행하는데, 이름은 시비(尸毘)라 합니다. 그는 뜻이 굳고 정진하여 반드시 불도를 이룰 것입니다. 거기 가서 귀의하시면 반드시 보호하고 재앙을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제석천은 다시 말하였습니다.

‘만일 그가 보살이라면 나는 먼저 그것이 진실인가 아닌가를 시험해 보리라. 너는 비둘기로 변하라. 나는 매로 변하리라. 그래서 내가 급히 네 뒤를 쫓으면, 너는 쫓기면서 그 왕에게 가서 보호를 구하라. 그것으로 시험하면 그의 참과 거짓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비수갈마는 말하였습니다.

‘보살 대인에게는 괴로움을 주지 말고 공양을 올려야 합니다. 그런 어려운일로 핍박할 것이 아닙니다.’

그 때 제석천은 곧 다음 게송을 말하였습니다.

나도 나쁜 마음으로 그러는 것 아니다.


순금[眞金]인가 시험해 보는 것과 같나니 
그것으로 보살을 시험함으로 
진실인가 아닌가를 알 수 있네.

이 게송을 마치자, 비수갈마는 스스로 비둘기로 변하고 제석천은 매로 변하여 비둘기 뒤를 급히 쫓아 곧 잡아먹으려 하였습니다. 그 때 비둘기는 매우 두려워 대왕의 겨드랑 밑으로 날아들어 왕에게 목숨을 의지하였습니다.

매는 곧 그 뒤를 쫓아와 궁전 앞에 앉아 왕에게 말하였습니다.

‘그것은 내 밥인데 왕 곁에 와 있습니다. 빨리 내게 돌려 주십시오. 나는 매우 굶주려 있습니다.’

비시왕은 말하였습니다.

‘내 본래의 서원은 일체 중생을 제도하는 일이다. 이것은 내게 와서 의지하였다. 나는 결코 너에게 주지 않으리라.’

매는 다시 말하였습니다.

‘대왕은 지금 일체 중생을 제도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그 먹이를 뺏으면 내 목숨은 구제될 수 없습니다. 나와 같은 무리는 일체 중생에 들어가지 않습니까?’

왕은 물었습니다.

‘만일 너에게 다른 고기를 주면 너는 먹겠는가?’

매는 대답하였습니다.

‘다만 갓 죽인 더운 고기라야 먹습니다.’

왕은 생각하였습니다.

‘지금 갓 죽인 더운 고기를 구한다면 그것은 하나를 죽여 하나를 구제하는 것으로서 이치에 맞지 않다.’

왕은 다시 가만히 생각하였습니다. 내 몸을 제외하고 그 밖의 것은 모두목숨이 있는 것이다. 그들은 다 자기를 보호하고 아까워하는데…….

그리하여 곧 날카로운 칼을 가져다 자기 다리 살을 베어 그것을 매에게 주고 비둘기 목숨과 바꾸었습니다.

그 때 매는 말하였습니다.

‘왕은 시주가 되어 일체를 평등하게 보십니다. 내 비록 조그만 새이지마는 이치에는 치우침이 없습니다. 만일 그 살로 이 비둘기와 바꾸려고 하시면 저울질을 하여 편편해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왕은 곧 좌우에 명령하여 빨리 저울을 가져 오게 하여 저울 추를 가운데 달고 양쪽에 판을 두어 비둘기를 가져다 한쪽에 얹고 벤 살을 다른 한쪽에 얹었습니다. 그러나 다리 살을 다 베어도 비둘기보다 가벼웠습니다. 그래서 다시 두 팔과 두 옆구리 살을 다 베었지마는 여전히 비둘기 무게보다 모자랐습니다.

그 때 왕은 몸을 일으켜 저울판에 오르려 하였으나, 기운이 부쳐 헛디디는 바람에 땅에 쓰러져 까무러쳤다가 한참 만에야 깨어나 스스로 그 마음을 꾸짖었습니다.

‘나는 오랜 옛날부터 너(마음)에게 시달려 삼계(三界)를 윤회하면서 갖가지로 고초를 맛보았으나 아직 복을 짓지 못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정진하여 행을 세울 때요, 게으름을 피울 때가 아니다.’

이렇게 자신을 꾸짖고는 억지로 일어나 저울판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으로 기뻐하면서 스스로 잘하였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 때 천지는 여섯 가지로 진동하여 모든 하늘 궁전들이 다 흔들렸습니다. 그리고 색계(色界)의 여러 하늘은 한꺼번에 내려와 허공에서 보살이 어려운 행을 행하여 몸을 상하게 하면서 마음으로 큰 법을 기약하고 신명을 돌아보지 않는 것을 보고는 모두 한꺼번에 울어 눈물이 쏟아지는 비와 같았습니다. 그리고 하늘꽃을 내려 그것으로 공양하였습니다.

그 때 제석은 본래 형상으로 돌아와 왕 앞에 서서 말하였습니다.

‘지금, 누구도 따르기 어려운 그런 행은 무엇을 구하려 하는 것입니까? 전륜성왕이나 제석이나 마왕이 되길 원하는 것입니까, 삼계 가운데서 무엇을 구하고자 하는 것입니까?’

보살은 대답하였습니다.

‘내가 구하려고 기약하는 것은 삼계의 영화로운 즐거움이 아닙니다. 내가 짓는 복의 갚음은 불도를 구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천제는 다시 말하였습니다.

‘왕은 지금 몸을 헐어 그 고통이 골수에 사무칠 것입니다. 혹 후회하는 생각이라도 없습니까?’ ‘없습니다.’ ‘비록 없다고 말씀하시지마는 그것을 누가 알 수 있습니까? 내가 지금 왕의 몸을 보니 쉬지 않고 떨고 있으며, 말하는 기운이 끊어질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후회가 없다고 하지만 무엇으로 그것을 증명하시렵니까?’

왕은 곧 서원을 세웠습니다.

‘나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털끝만큼도 후회하지 않았으니, 내가 원하는 것은 반드시 그 결과를 얻을 것이다. 지성은 헛되지 않나니, 내 말과 같다면, 내 몸은 곧 회복되리라.’

이 서원을 마치자 몸은 곧 회복되어 전보다 더 훌륭해졌습니다.

하늘과 사람들은 일찍이 없었던 일이라 칭송하고, 기뻐 뛰면서 어쩔 줄을 몰라했습니다.

시비왕은 바로 지금의 부처님이십니다. 세존께서 옛날에는 그처럼 중생들을 위해 신명을 돌아보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법해(法海)는 이미 찼고 법기[法幢]는 이미 섰으며 법고(法鼓)는 이미 울렸고 법등[法炬]은 이미 밝았으니, 세존이시여 중생을 제도할 때는 바로 이 때입니다. 어찌하여 일체 중생을 버리고 열반에 드셔서 설법하지 않으려 하십니까?”

범천왕은 여래 앞에서 합장하고 찬탄하면서, 여래께서 전생에 중생을 위하여 법을 구한 사실 1천 가지를 설명하였다.

그 때 세존께서는 범천왕의 청을 받아들이시고, 곧 바라내국의 녹야원(鹿野苑)으로 가시어 법륜을 굴리시니, 그로 말미암아 3보(寶)가 처음으로 세상에 나타났다.

그 때 하늘과 사람·용·귀신 등 여덟 무리들은 이 말을 듣고 모두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02. 마하살타이신시호품(摩訶薩以身施虎品)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舍偉國)의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 계셨다.

세존께서는 걸식할 때가 되어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혼자 아난(阿難)을 데리고 성에 들어가 걸식하셨다.

그 때 한 노모가 있어 두 아들을 두었는데, 그들은 남의 재물을 함부로 훔쳤다. 재물 주인이 그들을 붙들어 왕에게 나아가 재판에 붙이니, 그 죄는 죽어 마땅하였다. 왕은 그들을 전타라(栴羅)에게 주어 사형장으로 끌고 가도록 했다.

그 모자 세 사람은 멀리서 세존을 보고 머리를 두드리며 애걸하였다.

“원컨대 천존(天尊)께서는 이 고액(苦厄)에서 건져 제 아들 목숨을 구하여 주소서.”

이렇게 애통하게 비는 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세존께서는 가엾이 여기시어 곧 아난을 왕에게 보내어 그들을 살려 주기를 청하였다. 왕은 부처님 분부를 받고 곧 놓아 주었다.

그들은 그 화를 벗어나자 부처님 은혜에 감격하여 한량없이 기뻐하였다.

그들은 곧 부처님께 나아가 땅에 엎드려 발 아래 예배한 뒤 합장하고 아뢰었다.

“부처님의 자비와 은혜를 입어 남은 목숨이 구제되었습니다. 원컨대 천존(天尊)께서는 저희들을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시어 제자가 되는 것을 허락하소서.”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어서 오너라, 비구여.”

그들의 수염과 머리는 저절로 떨어지고 입은 옷은 가사로 변하였다. 그들은 공경하는 마음이 솟아나고 믿음이 더욱 굳어졌다. 부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설법하셨다. 그들은 온갖 번뇌가 아주 없어지고 아라한(阿羅漢)의 도를 얻었다. 그리고 그 어머니는 법을 듣고 아나함(阿羅含)을 얻었다.

그 때 아난은 눈으로 직접 이 사실을 보고 일찍이 없었던 일이라 칭송하면서 여래의 여러 가지 덕행을 찬탄한 뒤에 여쭈었다.

“저 모자 세 사람은 전생에 어떤 복을 지었기에 지금 세존을 만나 중한 죄를 면하고 열반의 안락을 얻었습니까? 또 그 한 몸으로 특별한 이익을 입었으니 얼마나 유쾌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저 세 사람은 오늘만 내 힘을 입어 살아난 것이 아니라, 과거에도 내 은혜를 입어 살게 되었느니라.”

아난은 아뢰었다.

“알고 싶습니다, 세존이시여. 과거 세상에 저 세 사람을 살리신 사실은 어떠했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오랜 옛날 아승기겁에 이 염부제에 큰 나라의 왕이 있었느니라. 이름이 마하라단낭(摩訶羅檀囊)[진(秦)나라 말로는 대보(大寶)라는 뜻이다]이었는데, 그는 무릇 작은 나라 5천을 다스리고 있었다. 또 그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다. 첫째는 이름이 마하부나녕(摩訶富那寧)이요, 둘째는 마하제바(摩訶提婆)[진(秦)나라 말로는 대천(大天)이라는 뜻이다]인데, 셋째는 마하살타(摩訶薩)였다. 그 중에도 막내 아들은 어려서부터 자비를 행하여 일체 중생을 가엾이 여겨 마지 않았다.

어느 날 왕은 신하들과 부인과 태자를 데리고 동산 구경을 나갔었다. 왕은 피로해 조금 쉬고 있었다.

세 아들은 숲 속에서 놀다가, 호랑이가 새끼 두 마리에게 젖을 먹이는데, 주림을 못 견디어 그 새끼를 도로 먹으려는 것을 보았다.

막내 아들은 두 형에게 말하였다.

‘저 호랑이는 바짝 말라 죽을 것 같습니다. 더구나 젖을 빨리고 있는데, 주림에 못 견디어 그 새끼를 잡아먹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두 형은 대답하였다.

‘그렇구나.’

아우는 다시 물었다.

‘저 호랑이는 지금 무엇을 먹을 수 있습니까?’

두 형은 대답하였다.

‘갓 죽인 더운 피나 고기라면 그 마음에 들 것이다.’

아우는 또 물었다.

‘혹 어떤 사람이 그것을 마련하고 저 목숨을 구제하여 살도록 할 수 있겠습니까?’

두 형은 대답하였다.

‘그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막내는 가만히 생각하였다.

‘나는 오랜 옛날부터 나고 죽는 동안에 수없이 몸을 버렸지마는 그것은 헛되이 버린 것이다. 탐욕 때문에, 혹은 성냄과 어리석음 때문이었고, 법을 위해서는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 복밭[福田]을 만났으니 이 몸을 두어 무엇 하겠습니까?’

이렇게 결심하고는 두 형에게 말하였다.

‘형님들은 먼저 가십시오. 나는 따로 볼일이 좀 있습니다. 곧 뒤따라가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오던 길로 달려가, 호랑이 있는 곳에 이르러 그 앞에 몸을 던졌다. 그러나 주린 호랑이는 입을 다물고 먹지 못하였다.

그 때 태자는 날카로운 나무 꼬챙이로 자기 몸을 찔러 피를 내었다. 호랑이는 그 피를 핥다가 그제야 입을 벌려 곧 그 몸을 먹었다.

두 형은 오래 기다렸으나 아우가 돌아오지 않자, 그 자취를 따라 찾아가면서 조금 전에 하던 그 말을 생각하였다.

‘반드시 그 주린 호랑이에게 몸을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는 언덕에 올라, 마하살타가 호랑이 앞에 죽어 있는 것을 보았다. 호랑이는 벌써 그것을 먹고 있었는데 피와 살이 낭자하였다.

그들은 그것을 보고 가슴을 치면서 땅에 쓰러져 기절했다가 다시 깨어났다. 울고 뒹굴며 정신을 잃고 까무러쳤다가 다시 살아나곤 하였다.

왕후는 꿈에, 세 마리 비둘기가 숲에서 놀고 있는데, 매 떼가 와서 그작은 놈을 잡아먹는 것을 보았다. 왕후는 깨어나 놀랍고 두려워 왕에게 말하였다.

‘듣건대, 옛말에 비둘기는 자손이라 합니다. 지금 작은 비둘기를 잃었으니, 우리 아이에게 어떤 불상사가 있을 것 같습니다.’

곧 사람을 보내어 사방으로 찾아보았다. 오래지 않아 두 아들이 왔다. 부모는 그들에게 물었다.

‘우리가 사랑하는 아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두 아이는 목이 메이고 가슴이 막혀 소리를 내지 못하다가 한참 만에야 말하였다.

‘호랑이가 잡아먹었습니다.’

부모는 이 말을 듣고 땅을 치고 기절하여 정신을 잃었다가 한참 만에야 깨어났다. 왕은 곧 두 아들과 부인과 궁녀들을 데리고 그 시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호랑이가 그 살을 다 먹어 해골만이 어지러이 땅에 흩어져 있었다. 어머니는 그 머리를 붙잡고 슬피 울부짖으면서 까무러쳤다가 다시 깨어나기를 오랫동안 계속하였다.

마하살타는 목숨을 마친 뒤에 도솔천(兜率天)에 태어났다. 그는 생각하였다.

‘나는 무슨 행으로 말미암아 여기 와서 이 보(報)를 받는가.’

그는 천안(天眼)으로 5취(趣)를 환하게 보고 두루 살펴보다가 전생의 자기 시체가 아직도 산 속에 있고, 그 부모가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그의 부모가 어리석고 미혹하여 너무 슬피 울다가 혹 거기서 목숨을 잃지나 않을까 하고 가엾이 여겨 ‘나는 지금 저기 가서 그 마음을 돌리도록 깨우쳐 드리리라’ 하고 생각하였다.

곧 하늘에서 내려와 공중에 머물러 갖가지 말로 그 부모를 깨우쳤다. 부모는 쳐다보고 물었다.

‘너는 어떤 귀신인가, 말해 보라.’

하늘은 대답하였다.

‘나는 바로 왕자 마하살타입니다. 나는 몸을 버려 굶주린 호랑이를 구제하였기 때문에 도솔천에 태어났습니다. 대왕이여 아소서, 모든 존재하는 법은 무(無)로 돌아가는 것을. 한번 태어나면 반드시 마침이 있는 것임을. 악을 지으면 지옥에 떨어지고, 선을 행하면 하늘에 나는 것입니다.

나고 죽음은 떳떳한 길인데 지금 대왕은 왜 홀로 근심 걱정과 번뇌의 바다에 빠져 있으면서, 스스로 깨달아 온갖 선을 부지런히 닦지 않습니까?’

부모는 대답하였다.

‘너는 큰 자비를 행하여 그 사랑이 일체 중생에 미쳤다. 그러면서〈나〉를 버리고 목숨을 마치니, 너를 생각하는 우리 마음은 한없이 슬프고 마디마디 끊어져 그 고통은 견디기 어렵구나. 너는 큰 자비를 닦으면서 어찌 그처럼 할 수 있는가.’

천인(天人)은 다시 여러 가지 묘하고 좋은 게송으로 부모에게 대답하였다. 이에 부모는 조금 깨닫게 되어 칠보로 된 함을 만들고 그 안에 뼈를 넣어 매장한 뒤에 그 위에 탑을 세웠다. 하늘은 곧 변화해 하늘로 올라가고, 왕과 대중들은 모두 궁전으로 돌아왔느니라.”

부처님께서는 이어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 때의 왕 마하라단낭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지금의 내 부왕 열두단(閱頭檀) 바로 그 분이다. 그리고 왕후는 지금의 내 어머니 마하마야(摩訶摩耶)요, 마하부나녕은 지금의 미륵(彌勒)이요, 그 둘째 태자 마하제바는 지금의 바수밀다라(婆修蜜多羅)요, 태자 마하살타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이니라. 그리고 그 때의 그 어미 호랑이는 지금의 저 노모요, 두 마리 새끼는 지금의 저 두 아들이니라.

나는 먼 옛날에도 그들의 위급한 목숨을 구제해 안전하게 하였다. 그런데 지금 내가 부처가 되어서도 그 재난을 구제하여 생사의 큰 고통 바다를 아주 떠나게 하였느니라.”

그 때 아난과 여러 대중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03. 이범지수재품(二梵志受齋品)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어떤 두 하늘은 초저녁에 부처님께 나아갔다.

그들 몸의 광명은 기원(祇洹)을 밝게 비추었는데 모두 금빛 같았다.

부처님께서는 그들에게 적당한 묘법을 연설하셨다. 그들은 마음이 열려 모두 도의 자취를 얻은 뒤에 땅에 엎드려 부처님께 예배하고 천상으로 돌아갔다.

이튿날 아침에 아난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젯밤에 와서 부처님을 뵈온 그 두 하늘은 위엄있는 모습이 두드러지고 깨끗한 광명이 빛났습니다. 그들은 옛날에 어떤 공덕을 심었기에 그런 묘한 결과를 얻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가섭여래(迦葉如來)가 열반한 뒤 그 끼친 법이 끝나려 할 때에, 어떤 두 바라문이 8재(齋)를 받들어 가졌다. 그 한 사람은 천상에 나기를 원하였고, 둘째 사람은 국왕이 되기를 원하였다.

그 첫째 사람이 자기 집에 돌아갔을 때 아내는 그를 불러 밥을 같이 먹자고 하였다. 남편은 그 아내에게 말하였다.

‘아까 부처님께 재계를 받았는데, 한낮이 지나면 음식을 먹지 않는다고 하셨소.’

아내는 다시 말하였다.

‘당신은 범지(梵志)로서 스스로 법이 있는데 무엇 때문에 이도(異道)들의 재계를 받습니까? 지금 내 말을 거스려 나와 같이 밥을 먹지 않으면 이 사실을 다른 범지들에게 일러 당신을 배척해 몰아내고 같이 모이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이 말을 듣고 겁을 내어, 곧 그 아내와 함께 때가 아닌데 밥을 먹었다. 그 두 사람은 살 만큼 살다가 각각 목숨을 마쳤다.

왕이 되기를 원한 사람은 재계를 온전히 가졌기 때문에 왕으로 태어났고, 천상에 나기를 원한 사람은 재계를 깨뜨렸기 때문에 용으로 태어났다.

그 때 어떤 사람은 왕의 동산지기가 되어 갖가지 과실을 왕에게 보내 드렸다. 그는 어느 날 우물 속에서 이상한 벚[] 한 개를 얻었는데 빛깔과 향기가 매우 아름다웠다. 그는 곧 생각하였다.

‘내가 드나들 때마다 이 문지기한데 거절을 당했다. 이것을 그에게 주리라.’

생각대로 그 문지기에게 주어 문지기는 그것을 받았다.

문지기는 생각하였다.

‘내가 일을 통하러 갈 때에는 항상 저 내시한테 걸린다. 이것을 그에게 주리라.’

그 벚을 내시한테 주었다.

이렇게 하여 그 벚은 왕후에게까지 올라갔고 왕후는 그것을 왕에게 바쳤다. 왕이 그것을 먹어 보니 매우 달고 맛있었다. 왕은 왕후에게 물었다.

‘이것을 어디서 구했는가?’

왕후는 곧 사실대로 대답하였다. 거기서 다시 캐어나가 동산지기에게까지 이르렀다. 왕은 동산지기를 불러 물었다.

‘내 동산 안에 이런 아름다운 과실이 있는데 왜 내게는 바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주는가?’

이에 동산지기는 그 내력을 사실대로 아뢰었다. 왕은 다시 명령하였다.

‘지금부터는 이 벚을 끊이지 말고 늘 보내도록 하라.’

동산지기는 아뢰었다.

‘이 벚은 종자가 없습니다. 이것은 우물 속에서 얻은 것입니다. 칙사를 아무리 보내셔도 마련할 도리가 없습니다.’

왕은 다시 명령하였다.

‘만일 그것을 구하지 못하면 네 목을 베리라.’

동산지기는 물러나서 동산으로 돌아가 근심하고 번민하다가 소리를 내어 크게 울었다.

그 때 어떤 용이 그 우는 소리를 듣고 사람 몸으로 변해 와서 물었다.

‘너는 무슨 일로 그처럼 슬피 우는가?’

동산지기는 자초지종을 말하였다.

그러자 용은 물로 들어가 아름다운 과실을 수북이 금반에 바쳐 가지고 나와 이 사람에게 주면서 말하였다.

‘이 과실을 가지고 가서 왕에게 바치고, 내 뜻을 이렇게 전하라.

(나와 왕은 본래부터 친한 친구였다. 옛날 세상에 있을 때에는 둘이 다 범지로서 8관재법(關齋法)을 받들어 각각 소원이 있었다. 왕은 계율을 온전히 가졌기 때문에 인간의 왕이 되었고 내 계율은 온전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용으로 태어났다. 나는 지금 재계를 받들어 닦아 이 몸을 버리려고 한다. 그래서 8관재법을 찾는다. 그것을 구해 내게 보내라. 만일 내 말을 어기면 나는 네 나라를 뒤엎어 큰 바다로 만들겠다).’

이에 동산지기는 그 과실을 왕에게 올리고 곧 용이 부탁한 사실을 설명하였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매우 걱정하였다. 왜냐 하면 그 때에는 세상에 불법이 없고 또 8관재문(關齋文)은 다 없어져 구할 수 없었으며, 만일 그 뜻을 듣지 않으면 큰 해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 일만 생각하느라고 근심하였던 것이다.

왕에게는 가장 공경하고 존중하는 신하가 있었다. 왕은 그에게 말하였다.

‘신룡(神龍)이 내게 재법(齋法)을 요구하니, 그대는 그것을 내게 구해다오.’

대신은 대답하였다.

‘지금 세상에는 불법이 없는데 어떻게 구하겠습니까?’

왕은 다시 명령하였다.

‘만일 그대가 그것을 구하지 못하면 나는 그대를 죽이리라. 대신은 이 말을 듣고 매우 낙담하면서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그 대신에게는 늙은 아버지가 있었다. 아들이 밖에서 올 때에는 항상 화한 얼굴과 즐거운 빛으로 그 아버지의 마음을 위로하였는데, 그 날은 그 아들 얼굴빛이 평상시와 다른 것을 보고 아들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

대신은 그 아버지에게 자세한 사실을 설명하였다. 그 아버지는 말하였다.

‘우리 집 기둥에서 늘 광명이 나타난다. 시험삼아 부수어 보아라. 혹 이상한 물건이 있을지 모르니.’

아들은 아버지 분부를 받고, 다른 사람을 시켜 기둥을 베어 쪼개어 거기서 경책 두 권을 얻었다. 하나는 『12인연경(因緣經)』이요, 다른 하나는 『8관재문(關齋文)』이었다.

대신은 그것을 가져다 왕에게 바쳤다. 왕은 못내 기뻐하여 어쩔 줄을 모르면서 곧 그 경책을 금반 위에 바쳐 용에게 가져다 주었다.

용은 그 경책을 받고는 몹시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많은 보배를 왕에게 보내었다.

그리고 용은 8관재계(關齋戒)를 받들어 가져 부지런히 수행하여 목숨을 마친 뒤에는 천궁(天宮)에 났다. 또 그 왕도 다시 재법을 받들어 닦고 목숨이 다해 천상에 나서 함께 같은 곳에 있느니라.

어젯밤에 그들이 함께 와서 법의 교화를 받고는 이내 수다원과(須洹果)를 얻어 3도[途:세 가지 나쁜 길]을 떠나 인간과 천상의 길에 노니는 것이니, 지금부터는 반드시 열반을 얻을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때 여러 대중들은 모두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04. 바라내인신빈공양품(波羅人身貧供養品)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그 나라의 어떤 장자는 아들을 낳았는데, 얼굴은 단정하고 낳은 지 며칠 안 되어 말을 하였다.

그는 그 부모에게 물었다.

“세존께서 계십니까?”

부모는 대답하였다.

“아직 계신다.”

다시 물었다.

“존자 사리불(舍利弗)과 아난께서도 다 계십니까?” “암, 계시고 말고.”

부모는 그 아들이 태어나자 마자 말하는 것을 보고, 사람이 아니라고 하여 매우 괴상히 여긴 까닭에 부처님께 여쭈어 보았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 아이는 복이 있다. 괴상히 여길 건 없다.”

부모는 기뻐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는 또 아뢰었다.

“원컨대 양친께서는 저를 위해 부처님과 스님들을 청해 주소서.”

부모는 말하였다.

“부처님과 스님들을 청하려면 공양거리가 필요한데 갑자기 마련할 수 없지 않니?”

아이는 아뢰었다.

“집을 깨끗이 쓸고 자리를 장엄하되, 높은 자리 세 개만 만들어 놓으면 백 가지 맛난 음식은 저절로 올 것입니다. 또 제 전생의 어머니는 지금 파라내국에 살아 계십니다. 저를 위해 청해 주소서.”

부모는 그 말을 따라 사람을 시켜 코끼리를 타고 달려가 불러오게 하였다. 그리고 높은 자리 세 개를 만들었다. 이유는 첫째는 여래를 위한 것이요, 둘째는 전생 어머니를 위한 것이며, 셋째는 현재의 어머니를 위한 것이었다.

부처님과 스님들이 집에 들어와 차례로 좌정(坐定)하자 맛나고 아름다운 음식이 저절로 풍족해졌다.

부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설법하셨다. 그 아버지와 두 어머니와 온 집안 노소들은 법문을 듣고 기뻐하면서 모두 초과(初果)를 얻었다.

그 아이는 차츰 자라서는 부모를 하직하고, 집을 떠나 바른 업을 알뜰히 닦고 아라한이 되었다.

아난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그 사람은 전생에 어떤 공덕을 심었기에 부귀한 집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말을 하고 또 도를 배워 신통을 얻게 되었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 사람은 전생에 바라내의 어떤 장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 아버지가죽은 뒤에 집안 살림은 점점 줄어들어 매우 빈궁하게 되었으므로 부처님 세상을 만났으나 공양할 것이 없었다. 그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기쁘지 않고 편치 않았다.

그래서 그만 양반의 성을 버리고 나그네가 되어 돈 1천 냥을 구하기 위해 1년 동안 돌아다녔다.

어떤 장자가 물었다.

‘너는 장가를 가려고 하는가?’

그는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돈은 어디에 쓰려는가?’ ‘부처님과 스님들을 공양하려 합니다.’

장자는 물었다.

‘만일 부처님을 청하고자 한다면 나는 너에게 돈을 줄 것이다. 그리고 우리 집에서 공양하라.’

그는 승낙하고 곧 음식을 차려 부처님과 스님들을 공양하였다. 그 인연으로 해서 목숨을 마친 뒤에는 장자의 집에 태어났고, 또 지금 부처를 청해 법을 듣고 도를 얻었느니라.”

부처님께서는 이어 말씀하셨다.

“과거의 그 가난한 사람은 지금의 이 장자의 아들 사문이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때 여러 대중들은 모두 기뻐하면서 받들어 행하였다.

05. 해신난문선인품(海神難問船人品)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그 나라에는 5백 명의 상인이 보배를 캐러 바다로 들어가면서 서로 의논하였다.

“지혜로운 사람을 구해 길잡이로 삼자.”

그들은 곧 열다섯 가지 계율을 가지는 어떤 우바새(優婆塞)를 청해 큰 바다로 함께 들어갔다. 바다 복판에 이르렀을 때 바다 신[海神]이 어떤 야차로 몸을 변하였다. 그 형체는 추악하고 빛깔은 검푸르며 입에는 긴 어금니가 나고 머리 위는 불타고 있었다.

그가 와서 배를 붙잡고 상인에게 물었다.

“이 세상에 나보다 더 두려운 것이 있는가?”

그 현명한 이는 대답하였다.

“너보다 몇 배나 더 두려운 것이 있다.”

바다 신은 다시 물었다.

“그것은 어떤 것인가?”

현명한 이는 대답하였다.

“세상의 어리석은 사람은 온갖 나쁜 죄를 짓되, 살생하고 도둑질하며 음탕하여 절도가 없고, 거짓말·이간질·나쁜 말·꾸미는 말을 하고, 탐욕·성냄과 삿된 소견에 빠져 있다가 죽어서는 지옥에 떨어져 만 가지로 고통을 받는다.

즉 옥졸 아방(阿傍)은 여러 죄인을 붙들어다 갖가지로 다스리되, 칼로 베기도 하고 수레로 몸을 찢기도 하며 몸을 부수어 수천 조각을 내기도 하고, 절구에 찧기도 하며 혹은 갈기도 한다. 칼산·칼나무·불 수레·끓는 솥·찬얼음·끓는 똥 등 이러한 고통을 모두 갖추어 받으면서 수천만 년을 지낸다. 이런 것이 너보다 더 두려우니라.”

바다 신은 붙잡았던 배를 놓고는 형체를 숨기고 떠났다.

배가 몇 리를 더 나아갔을 때, 바다 신은 다시 한 사람으로 변하였다. 형체는 바짝 말라 힘줄과 뼈가 서로 이어졌다. 그것은 또 와서 배를 붙잡고 사람에게 물었다.

“이 세상에 여윈 것으로서 나보다 더한 것이 있는가?”

현명한 이는 대답하였다.

“너보다 더 여윈 것이 또 있다.” “누가 더한가?” “어떤 어리석은 사람은 심성이 매우 나빠, 아끼고 탐하며 질투하여 보시할모른다. 그가 죽어서 아귀에 떨어지면 몸은 산처럼 크고 목구멍은 바늘귀 같으며, 머리털은 길어 흐트러지고 몸은 새까만데, 수천 년 동안 물과 곡식을 모른다. 그런 것들의 형상은 너보다 더 여위었느니라.”

바다 신은 붙잡았던 배를 놓고 이내 사라져 나타나지 않았다.

배가 몇 리를 더 나아갔을 때 바다 신은 다시 얼굴이 아주 단정한 한 사람으로 변하였다. 그는 와서 배를 붙잡고 상인들에게 물었다.

“사람으로서 아름답고 묘하기가 나와 같은 이가 있는가?”

현명한 이는 대답하였다.

“너보다 백천만 배나 더 훌륭한 이가 있다.” “누가 나보다 훌륭한가?” “세상의 지혜로운 사람은 온갖 선을 받들어 행하고 항상 몸과 말과 뜻의 업을 청정하게 하며, 3보(寶)를 믿고 공경하여 때를 따라 공양한다. 그는 목숨을 마치고 천상에 나는데, 얼굴은 희고 깨끗하여 단정하기 짝이 없어 너보다 수천 배나 훌륭하다. 너를 거기에 비하면 그것은 마치 애꾸눈 원숭이를 저 아름다운 여자에 견주는 것과 같으니라.”

바다 신은 물 한 모금을 떠서 쥐고 물었다.

“이 한 모금 물이 많은가, 바닷물이 많은가?”

현명한 이는 대답하였다.

“한 모금 물이 많으니라.”

바다 신은 다시 물었다.

“네가 지금 한 말은 진실인가?”

현명한 이는 대답하였다.

“그 말은 진실이요, 거짓이 아니다. 왜냐 하면 바닷물이 아무리 많아도 반드시 마를 때가 있다. 겁(劫)이 끝나려 할 때, 해 두 개가 한꺼번에 나타나면 우물과 못물은 모두 마른다. 해 세 개가 날 때에는 작은 강물이 모두 마르고, 해 네 개가 날 때에는 큰 강과 바닷물이 다 마르며, 해 다섯 개가 날 때에는 큰 바다가 점점 줄고, 해 여섯 개가 날 때에는 그 삼분의 이가 줄며, 해 일곱 개가 날 때에는 바닷물이 전부 없어지고 수미산이 무너지며, 밑으로 금강지(金剛地)의 살피[際]에까지 이르러 모두 다 타고 만다.

그러나 만일 어떤 사람이 믿는 마음으로 한 모금 물을 부처님께 공양하거나, 스님에게 보시하거나 부모를 받들거나 빈궁한 이를 구제하거나 혹은 짐승에게 주면 그 공덕은 겁을 지나더라도 다하지 않는다. 이로써 보더라도 바닷물은 적고 한 모금 물이 많은 줄을 알 수 있느니라.”

바다 신은 못내 기뻐하면서 곧 온갖 보배를 현명한 이에게 주고, 또 묘한 보배를 주며 부처님과 스님들에게 보시하게 하였다.

그 때 여러 상인들은 곧 그 현명한 이와 함께 보배를 풍족하게 캐가지고 본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현명한 이와 5백 상인들은 모두 부처님께 나아가 땅에 엎드려 부처님 발에 예배한 뒤에 제각기 그 보물과 또 바다 신이 준 것을 가지고 부처님과 스님들에게 바쳤다. 그리고 모두 꿇어앉아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원컨대 제자가 되어 청정한 교화를 받겠습니다.”

부처님께서 곧 말씀하셨다.

“어서 오너라, 비구여.”

그러자 수염과 머리털은 저절로 떨어지고 가사가 그 몸에 입혀졌다.

부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에 맞게 설법하셨다. 그들은 곧 마음이 열리고 깨닫게 되어 온갖 욕심이 모두 깨끗해지고 아라한을 얻었다.

그 때 거기 모인 대중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모두 매우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06.항가달품(恒伽達品)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나열기(羅閱祇)의 죽원정사(竹園精舍)에 계셨다.

그 때 그 나라에는 어떤 정승이 있었다. 그 집은 큰 부자였으나 아들이 없었다.

그 때 항하(恒河)가에 마니발라(摩尼跋羅)라는 천사(天祠)가 있었는데, 온 나라 사람들이 모두 공경하고 받들었다.

그 때 그 정승은 그 사당에 나아가 빌었다.

“저는 아들이 없습니다. 듣건대 천신님은 공덕이 한량없어 중생들을 구호하고 능히 그 소원을 들어 주신다 하기에 이제 일부러 와서 귀의합니다.

만일 이 원을 들어 주어 아들 하나를 주시면, 금·은으로 천신님의 몸을 장식하고 유명한 향을 이 사당에 바르겠습니다. 그러나 만일 영험이 없으면 사당을 부숴 버리고 당신 몸에 똥칠을 하겠습니다.”

어떤 천신은 이 말을 듣고 가만히 생각하였다.

‘이 사람은 호걸이요 부자며 또 세력이 많아 보통 인물이 아니다. 그는 아들을 얻고자 하나 나는 덕이 적어 그 원을 풀어 줄 수가 없다. 만일 그 원을 이뤄 주지 않으면 반드시 큰 변을 당할 것이다.’

이에 그 천신은 다시 마니발라에게 가서 아뢰었고, 마니발라는 그 힘이 미치지 못하여 비사문왕에게 가서 이 사실을 아뢰었다. 비사문은 말하였다.

“내 힘으로도 그가 아들을 가지게 할 수 없으니 천제(天帝)께 나아가 그 원을 풀어 주도록 하리라.”

비사문왕은 곧 하늘로 올라가 제석에게 아뢰었다.

“저의 신하 마니발라는 근일에 제게 와서 말하였습니다. 왕사성(王舍城)에 있는 어떤 정승은 아들을 얻기 위해서 원을 세우되, 만일 소원을 이루게 되면 곱으로 공양을 더할 것이요, 소원을 어기면 제 사당을 부수고 욕을 보이리라 합니다. 그는 사람됨이 호걸답고 사나워 반드시 그렇게 할 것입니다. 바라건대 천왕은 그로 하여금 아들을 두게 해 주소서.”

제석은 대답하였다.

“그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므로 어떤 인연을 찾아야 할 것이다.”

어떤 하늘이 있는데 다섯 가지 덕이 그 몸에서 떠나 곧 목숨을 마치게 되었다. 제석은 그에게 말하였다.

“그대 목숨은 곧 끝나게 되었다. 저 정승 집에 태어나기를 발원하라.”

천자는 대답하였다.

“저는 출가하여 바른 행을 닦으려고 합니다. 만일 저 높고 호강스런 집에 태어나면 속세를 떠나기는 극히 어려울 것입니다. 중류(中流) 집에 태어나고자 하면 뜻한 바를 성취하지 못할 것입니다.”

제석은 다시 권하였다.

“그저 거기 가서 태어나도록 하라. 만일 도를 배우고자 한다면 내가 도와 주리라.”

천자는 목숨을 마치고 내려와 정승 집에 수태되었다. 그는 세상에 나오자 얼굴이 매우 단정하였다. 정승은 관상쟁이를 불러 그 이름을 지으라 하였다. 관상쟁이는 물었다.

“본래 어디서 이 아기를 구해 얻었습니까?”

정승은 대답하였다.

“전에 항하의 천신에게 빌어 얻었다.”

그래서 곧 이름을 항가달(恒伽達)이라 하였다. 그는 차차 자라나자 도법(道法)에 뜻이 있어 그 부모에게 아뢰어 출가하기를 청하였다.

부모는 말하였다.

“우리는 지금 부귀하고 산업이 풍성하다. 아들이라야 너 하나뿐이다. 우리 가업을 이어 맡아 편히 살도록 하라.”

그리하여 아버지는 끝내 들어 주지 않았다.

아들은 제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자 매우 낙망하여 곧 몸을 버리고 다시 평범한 집에 태어나려고 하였다. 거기서 집을 떠나기는 아주 쉬우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는 몰래 집을 나가 높은 바위에서 스스로 떨어졌다. 그러나 땅에 떨어져 있었지마는 아무 데도 다친 데가 없었다. 다시 강으로 나가 물 속에 몸을 던졌다. 그러나 물에서 도리어 밀려 나와 아무 고통이 없었다. 또 독약을 먹었으나 독 기운이 돌지 않아 죽을 길이 없었다.

그는 가만히 생각하였다.

‘관법(官法)을 범해 왕의 손에 죽으리라.’

마침 왕의 부인과 궁녀들이 나와 동산 연못으로 가서 목욕하면서 모두 옷을 벗어 숲 사이에 둔 것을 보았다. 그는 몰래 숲 속으로 들어가 그 옷을 안고 나왔다. 문지기가 그것을 보고 붙들고 가서 아사세왕(阿闍世王)에게 아뢰었다.

왕은 그 말을 듣고 매우 성을 내어 곧 활을 잡아 손수 쏘았다. 그러나 화 도로 왕을 향해 돌아왔다. 이렇게 세 번이나 되풀이 하였으나 그를 맞히지 못하였다. 왕은 겁이 나서 활을 던지고 그에게 물었다.

“너는 하늘이냐, 용이냐, 귀신이냐?”

항가달은 대답하였다.

“제게 한 가지 소원을 들어 주시면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들어 주리니, 어서 말해 보라.” “저는 하늘도 아니요 용이나 귀신도 아닙니다. 저는 왕사국의 정승의 아들입니다. 저는 집을 떠나려 하였으나 부모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고 다른 곳에 태어나려고 하여 바위에서 떨어지기도 하고 강에 몸을 던지기도 하였으며 독약을 마시기도 하였으나 죽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왕의 법을 범해 죽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그러나 왕이 지금 해치려 하였으나 해쳐지지 않았습니다. 사정은 이러합니다. 얼마나 딱한 일입니까? 원컨대 가엾이 여겨 제게 도를 닦게 하소서.”

왕은 곧 말하였다.

“네가 출가하여 거룩한 도 닦기를 허락한다.”

그리고는 그를 데리고 부처님께 나아가 지금까지의 내력을 아뢰었다.

여래께서 그에게 사문되기를 허락하시자 가사가 저절로 그 몸에 입혀져 비구가 되었다.

부처님께서는 그를 위해 설법하셨다. 그는 마음이 환히 열려 아라한의 도를 이루고, 3명(明) 6통(通)과 8해탈(解脫)을 갖추었다.

아사세왕은 곧 부처님께 여쭈었다.

“이 항가달은 전생에 어떤 선한 일을 하였기에 산에서 떨어져도 죽지 않고, 물에 몸을 던져도 빠지지 않으며, 독약을 먹어도 고통이 없고, 활을 쏘아도 다치지 않으며 더구나 성인을 만나 생사를 건너게 되었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오랜 과거 세상에 바라내(波羅)라는 나라가 있었고, 그 나라 왕의 이름은 범마달(梵摩達)이었다. 왕이 여러 궁녀들을 데리고 숲 속에서 놀 때 궁녀들은 소리를 높여 노래를 불렀다.

밖에서 어떤 사람이 높은 소리로 화답하였다. 왕은 그 소리를 듣고 곧 성을 내고 질투하여 사람을 보내어 그를 붙들어다 죽이라고 명령하였다.

그 때 어떤 대신이 밖에서 오다가 그 사람이 붙들려 오는 것을 보고 좌우에 물었다.

‘무슨 일로 그러느냐?’

그 곁의 사람은 그 사정을 자세히 이야기하였다. 대신은 말하였다.

‘우선 멈추고 내가 왕을 뵈옵기를 기다려라.’

대신은 들어가 왕에게 아뢰었다.

‘저 사람의 죄는 그리 중한 것이 아닌데 왜 죽이려 하십니까? 비록 그 소리에 화답하였으나 얼굴은 보지 않았습니다. 교제하였거나 간음한 일이 없사오니, 가엾이 여겨 그 생명을 살려 주소서.’

왕은 그 말을 거스릴 수 없어 용서하여 죽이지 않았다. 그는 죽음에서 벗어나게 되자, 그 대신을 받들어 섬기되 그 정성이 변하지 않았다.

이렇게 받들며 여러 해를 지내다가 그는 스스로 생각하였다.

‘음욕이 사람을 해치는 것은 칼보다 더 날카롭다. 내가 지금 이런 액을 당하는 것도 다 음욕 때문이다.’

그는 곧 대신에게 청하였다.

‘제가 출가하여 도 닦는 것을 허락하소서.’

대신은 대답하였다.

‘만류할 수 없구나. 공부해서 도를 이루거든 돌아와 다시 만나자.’

그는 산으로 들어가 묘한 이치를 알뜰히 생각하고 정신이 열려 벽지불(辟支佛)이 되었다.

그는 다시 성으로 돌아와 대신의 집으로 갔다. 대신은 매우 기뻐하면서 청해서 공양하고, 맛있는 음식과 깨끗한 옷 따위의 네 가지 일에 모자람이 없게 하였다.

그 때 벽지불은 허공에서 신통 변화를 나타내었다. 즉 몸에서 물과 불을 내고 큰 광명을 놓았다. 대신은 그것을 보고 한량없이 기뻐하면서 곧 서원을 세웠다.

‘내 은혜로 말미암아 목숨이 구제되었습니다. 나로 하여금 태어나는 세상마다 부귀하고 오래 살며, 뛰어나고 특별하기를 수천만 배나 되도록 하고,내 지혜와 덕이 서로 같게 하소서.”

부처님께서는 이어 왕에게 말씀하셨다.

“그 때 한 사람을 구원해 살려 도를 얻게 한 대신은 바로 지금의 항가달이다. 그는 그 인연으로 태어나는 곳마다 일찍 죽지 않았고 지금 나를 만나 아라한을 이루게 되었느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거기 모인 대중들은 모두 믿고 공경하고 기뻐하면서 받들어 행하였다.

07.수사제품(須闍提品)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나열기의 죽원정사에 계셨다. 부처님께서는 아난과 함께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성에 들어가 걸식하셨다.

어떤 늙은 부부가 있었는데, 그들은 두 눈이 모두 멀고 가난하고 외로우며 의지할 곳이 없어 성문 밑에서 살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외아들이 있었는데,나이는 일곱 살이었다. 항상 구걸하여 부모를 봉양하는데, 과실이나 나물을 얻으면 좋고 맛난 것은 부모에게 공양하고, 그 나머지로서 시거나 떫거나 냄새 나고 나쁜 것은 자신이 먹었다.

그 때 아난은 그 아이가 나이는 비록 어리나, 부모에게 공경하고 효순하는 것을 보고 마음 속으로 매우 사랑하였다.

부처님께서는 걸식을 마치고 절에 돌아와 대중들을 위해 경법(經法)을 연설하셨다.

그 때 아난은 꿇어앉아 합장하고 부처님 앞에 나아가 아뢰었다.

“아까 부처님을 모시고 성에 들어가 걸식할 때에, 눈먼 부모는 성문 밑에 사는데, 그 어린 아들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사방으로 다니면서 물건을 구걸하여 밥이나 나물이나 과실을 얻으면 그 맛나고 좋은 것은 먼저 부모에게 공양하고, 부스러기나 냄새나고 아주 나쁜 것은 자신이 먹으면서 날마다 그렇게 하였습니다. 참으로 사랑하고 공경할 만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집을 떠난[出家] 이나 집에 있는 이가 효도하는 마음으로 부모를 공양하면 그 공덕은 특별하고 뛰어나 헤아리기 어렵느니라. 왜냐 하면 나도 오랜 과거를 기억하건대, 효도하는 마음으로 부모를 공양하고 심지어 살을 베어 부모님의 위급한 액을 구제한 일이 있었다. 그래서 그 공덕으로 위로는 천제가 되었고 밑으로는 성왕이 되었으며, 나아가 부처가 되어 삼계에서 뛰어난 것도 다 그 복 때문이니라.”

아난은 여쭈었다.

“알고 싶습니다. 세존께서 과거 세상에 부모에게 효도하여 신명을 아끼지 않으시고 몸의 살을 베어 부모의 위급한 목숨을 구제하신 그 사실은 어떠하셨는지.”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자세히 듣고 잘 기억하라. 내가 설명하리라.” “예, 잘 듣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옛날 무량 무수한 아승기겁에 이 염부제에 나라가 있었는데, 이름이 특차시리(特叉尸利)였고, 그 나라의 왕은 이름이 제바(提婆)였다.

그 때 그 나라 왕에게는 태자 열 명이 있어 각자 여러 나라를 다스렸고, 제일 작은 태자는 이름이 수바라제치(修婆羅提致)[진(晉)1)나라 말로는 선주(善住)라는 뜻이다]였는데, 그가 다스리는 국토가 백성들이 보기에는 가장 풍성하고 즐거웠다.

나라 말로는 선주(善住)라는 뜻이다]였는데, 그가 다스리는 국토가 백성들이 보기에는 가장 풍성하고 즐거웠다.

그 부왕 곁에는 한 대신이 있었는데, 이름이 라후(羅)였다. 그는 늘 반역할 생각을 품고 있다가 끝내 대왕을 죽였다. 대왕이 죽은 뒤에는 바로 왕이 되고, 곧 군사를 여러 나라에 보내어 여러 태자들을 죽였다.

그 제일 작은 태자는 귀신도 공경하고 있었다.

그 때 작은 태자는 경치를 구경하러 동산으로 들어갔다. 어떤 야차가 땅에서 솟아올라 꿇어앉아 아뢰었다.

‘라후 대신이 반역해 부왕을 죽이고, 다시 군사를 보내어 왕의 여러 형을 죽이고, 이제는 사람을 보내어 왕을 죽이려고 올 것입니다. 왕은 잘 생각하시어 그 화를 피해야 합니다.’

왕은 그 말을 듣자 마음이 괴롭고 두려워 그 날 밤이 되어 여러 가지로 생각하다가 도망하려 하였다.

그 때 그에게는 한 아들이 있었다. 이름이 수사제(須闍提)[진(晉)나라 말로는 선생(善生)이라는 뜻이다]였는데, 나이 일곱이 되자 단정하고 지혜로워 그 왕은 몹시 사랑하였다.

왕은 나갔다 돌아와 그 아들을 안고 슬피 울면서 탄식하였다.

그 부인은 왕이 돌아와 매우 두려워하는 것을 보고 물었다.

‘무엇 때문에 그리 초조해하고 두려워하십니까?’

왕은 대답하였다.

‘그대가 알 일이 아니다.’

부인은 붙들고 말하였다.

‘나는 지금 당신과 함께 신명을 같이하고 위험을 같이합니다. 나를 버리지 마소서. 지금 어떤 일이 있는지 알려 주십시오.’

왕은 대답하였다.

‘나는 얼마 전에 동산에 들어갔었다. 밤에 야차가 땅에서 솟아올라 꿇어앉아 내게 말하였다. 지금 라후 대신이 반역해 이미 부왕을 죽이고 또 군사를 보내어 왕의 형들을 죽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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