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겁경(賢劫經) 제3권
09. 문지품(聞持品)
부처님께서 희왕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것이 듣고서 지니는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곤궁한 재액에 빠져 스스로 벗어나지 못하는 중생을 보고는 법 보시를 펼쳐서 자기를 조복시켜 재보를 이루게 하고 다른 사람들까지 듣게 한다면 이것이 바로 진정한 보시이며, 항상 공덕의 근본과 뭇 착한 계행을 자신이 먼저 실행하고 나서 다른 사람에게 권하니 듣고서 지니지는 못하더라도 큰 재부(財富)를 이루게 한다면 이것이 바로 지계이며, 훌륭한 설법을 듣고는 뭇 고통들을 참아낼 수 있어서 괴롭게 여기지 않으며 설령 보살이 범지(梵志)로 몸을 바꾸어 어리석은 사람을 따라 듣더라도 12년 동안 수행하여 위없는 큰 도를 일으켜 세워서 태어날 곳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인욕이며, 정진하기 위해 가업을 버릴지라도 이것을 어렵게 여기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진정한 정진이며, 덧없음[無常]을 알더라도 인연법을 듣고는 게으르거나 그만두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선정이며, 스승 없이 배웠더라도 모든 미움과 사랑에 대하여 평등한 방편을 쓴다면 이것이 바로 지혜이니, 이 여섯 가지가 듣고서 지니는 도무극이니라.
어떤 것이 생사를 멀리하기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은혜로운 시주에게 생사 없는 법의 지혜를 얻게 한다면 이것이 바로 보시이며, 모든 행동 을 끝없는 대비에 의지한다면 이것이 바로 지계이며, 부드럽고 화락한 마음으로 넓은 서원을 권유한다면 이것이 바로 인욕이며, 널리 듣고서 일체를 베푼다면 이것이 바로 정진이며, 설령 마음이 고요하다 하더라도 더하여 ‘나 없음’의 경지에까지 이른다면 이것이 바로 선정이며, 모든 부하 권속들에게 참음과 화합할 것을 가르쳐서 선정을 널리 성스럽게 한다면 이것이 바로 지혜이니, 이 여섯 가지가 생사를 멀리하기 위한 도무극이니라.
어떤 것이 끊음이 없음을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보시하되 4은(恩)을 일으켜 세워서 위액(危厄)을 구제한摸?이것이 바로 진정한 보시이며, 몸과 입과 마음을 잘 거느려서 항상 삼가한다면 이것이 바로 지계이며, 사람의 마땅한 도리로서 몸과 마음을 화동(和同)하게 하여 법인(法忍)을 얻어서 네 가지 일[四事]이 업(業)과 화합하게 한다면 이것이 바로 인욕이며, 4의단(意斷)을 부지런히 닦아 중도에 그만 두지 않고 모두 이것을 배움으로 말미암아 지극한 진리를 세운다면 이것이 바로 정진이며, 그 마음이 고요하여 4의지(意止)를 얻는다면 이것이 바로 선정이며, 성스러운 밝은 지혜로 4제(諦)를 닦아 다시 거짓됨이 없다면 이것이 바로 지혜이니, 이 여섯 가지가 끊음이 없음을 위한 도무극이니라.
어떤 것이 욕락(欲樂)이 아주 익음을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베풀어주고도 아까워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보시이며, 열어 교화한 공덕으로 공(空)해탈문을 본다면 이것이 바로 지계이며, 지극한 공덕으로 가르치고 교화하며 금계(禁戒)로 업을 행함에 있어 마음을 그 위에 내어서 중생들을 열어 제도하여 이 계율을 드러내고 참음으로 뜻을 따라 빼어남이 있어서 다른 사람과 화합함을 받아낼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인욕이며, 법(法)을 쓰되 모든 품(品)의 가르침을 때에 따라 열어 교화한다면 이것이 바로 정진이며, 마땅한 때를 분명히 알아 자비심을 받들어 행하되 네 가지 평등한 뜻[四等意]으로 다른 고락(苦樂)을 끊는다면 이것이 바로 선정이며, 중생들을 가르치고자 한다면 모든 것을 법에 응하여 가엾이 여기는 마음으로 보호하고 그 적당한 때를 잃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지혜이니, 이 여섯 가지가 욕락이 아주 익음을 위한 도무극이니라.
어떤 것이 선정을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보시하되 곳곳에서 바라는 것을 어기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진정한 보시이며, 삼가하는 마음으로 옳지 않은 일들을 모두 버린다면 이것이 바로 지계이며, 어질고 화락하여 모든 법이 스스로 그러해서 참음과 화합하는 경지에 들어간다면 이것이 바로 인욕이며, 한 가지 마음으로 부지런히 닦고 잘 생각해서 처소를 다 흩어버리고 모든 잘못을 없애버린다면 이것이 바로 정진이며, 전일한 마음으로 내버려야 할 것들을 듣되 몸과 입과 마음을 편안히 하여 모든 지혜와 밝음을 계승한다면 이것이 바로 선정이며, 욕심을 제거하기 위해 성인의 밝은 덕으로 뭇 더러운 행들을 없애버린다면 이것이 바로 지혜이니, 이 여섯 가지를 선정을 위한 도무극이라고 하느니라.
어떤 것이 신통(神通)을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등을 보시하여 그 과보로 천안(天眼)의 꿰뚫어 볼 수 있는 신통을 얻는다면 이것이 바로 진정한 보시이며, 금계를 받들고 정성껏 경전을 듣되 허물거나 범하는 일이 없어서 천이(天耳)의 귀밝음을 이룬다면 이것이 바로 지계이며, 어질고 화락하여 두 마음이 없음으로 서로 권유하고 도와서 도의(道意)를 내게 한다면 이것이 바로 인욕이며, 과거 생의 일을 알고 기억하는 숙명통(宿命通)을 성취하여 자연스러운 신통으로 중생들을 위해 세간에 있으면서 공덕을 쌓아 태어날 때마다 스스로 극복한다면 이것이 바로 정진이며, 신통을 얻어 몸을 마음대로 끝없이 변화시킬 수 있더라도 모든 알음알이의 집착을 버리고 평등한 삼매에 든다면 이것이 바로 선정이며, 이 은혜의 인연의 과보로 지혜로운 신통을 얻어 뭇 더러움을 소멸하고 그 삼매로 인하여 성인의 밝은 지혜를 궁구하여 펼친다면 이것이 바로 모든 번뇌를 다한 지혜이니, 이 여섯 가지를 신통을 위한 도무극이라고 하느니라.
어떤 것이 기뻐함을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은혜를 베풀되 그 마음이 기뻐서 후회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보시이며, 금계를 독실히 믿고 지켜서 착한 공덕을 이룬다면 이것이 바로 지계이며, 부드럽고 화락함으로 부끄럽게 여길 줄 아는 마음을 성취하여 거칠거나 사나운 자를 보복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인욕이며, 부지런히 닦아서 성내거나 원망하는 마음이 없고 자신을 보호하는 동시에 다른 사람을 편안하게 해서 번뇌를 갖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정진이며, 고요함을 즐거워하고 그 마음이 청정하여 뭇 탐욕들을 끊을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선정이며, 은혜를 베풀었더라도 마음에 의지하는 것이 없고 도법(道法)을 받들어 행하여서 과보를 바라는 마음을 쉬며 지혜를 관찰하여 깨닫고자 하는 뜻을 받아 이미 선택하고 난 뒤에는 좇아서 닦을 뿐 다시 다른 바램은 없으며 뒤바뀐 생각에 머물지 않아 해치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지혜이니, 이 여섯 가지가 기뻐함을 위한 도무극이니라.
어떤 것이 옹호하길 권하기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보시하더라도 마음에 집착하는 것이 없고 평등법(平等法)을 받들어서 헛된 생각을 품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진정한 보시이며, 삼가하여 모든 깨달음의 의미를 가까이 하고 마음으로 정진을 받아들여 번뇌를 품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지계이며, 행함에 잡생각이 없어서 마음과 뜻이 밝게 드러나고 안팎이 편안하여 모든 탐욕을 버린다면 이것이 바로 인욕이며, 일삼음이 있음을 분명하게 알고 일삼음이 없음을 관찰하여 마음이 그 두 가지에 머물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정진이며, 전일한 마음으로 세력을 관찰하여 고요히 정진함으로써 이르는 곳마다 일체의 우두머리가 된다면 이것이 바로 선정이며, 성인의 밝은 지혜를 믿어 도의(道義)를 좇아 닦고 끝없이 가엾게 여겨서 나머지 사람들을 열어 교화한다면 이것이 바로 지혜이니, 이 여섯 가지가 옹호하길 권하기 위한 도무극이니라.
어떤 것이 삿된 소견을 지닌 자에게 권유하기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번잡한 모든 외도들의 배움 안에 있으면서 그 제사 지내는 곳[祠祀]에 들어가 그 뜻에 따르면서 열어 교화하되 마치 수람범지(隨藍梵志)가 복덕의 업을 일으킨 것처럼 한다면 이것이 바로 보시이며, 뒤바뀐 계율로 뭇 도적들이 모여들면 도적이 되도록 이끌어서 그 행을 드러내어 이 인연으로 교화하여 제도하니 이것이 바로 지계이며, 잡다한 여러 가지 괴롭히는 행동으로 와서 집적이더라도 근심하거나 싫어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인욕이며, 베풀어 줄 것이 있어서 세속에 들어가더라도 번뇌에 물들지 않고 선정의 뜻을 널리 펼친다면 이것이 바로 정진이며, 전일한 마음을 일으켜서 어두운 가운데 노닐더라도 이것을 즐거워하고 즐거워할 것이 없는 것을 즐거워하되 법으로 즐겁게 한다면 이것이 바로 선정이며, 범지(梵志)의 형상으로 중생들을 교화하고자 하되 그들이 따르는 것을 좇아서 행하고 가르친다면 이것이 바로 지혜이니, 이 여섯 가지가 삿된 소견을 지닌 자에게 권유하기 위한 도무극이니라.
어떤 것이 바른 소견을 권유하기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세간의 풍속[習俗]에 들어가 법의 가르침을 베풀되 보시로 복을 얻고 지계로 천상에 태어나는 그 하는 일의 선악에 따라 모두 과보가 있어 이것으로 구제한다면 이것이 바로 보시이며, 부처님과 보살이 없는 세간에서라도 일찍이 나쁜 벗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았다면 이것이 바로 지계이며, 보살의 청정하고 선명하며 흠 없음이 마치 설산에서 자라는 좋은 나무 같아서 일찍이 모든 하늘과 귀신 용들이 그 안에서 노닐었으니 이것이 바로 인욕이며, 받들어 부지런히 닦아서 나와 남이란 생각을 제거하되 마치 장사꾼이 멀리 여행할 때에 모든 것을 갖추듯이 한다면 이것이 바로 정진이며, 지혜로 네 가지 선정을 닦되 치우치게 두둔하는 것이 없다면 이것이 바로 선정이며, 성인의 밝은 지혜로 일체의 중생들을 가엾이 여겨 그들의 모자람을 도와주되 마치 근본을 배우는 옛날의 가르침과 같이 하나의 게송으로 8만 4천의 나라와 고을을 훈계한다면 이것이 바로 지혜이니, 이 여섯 가지를 바른 소견을 권유하기 위한 도무극이라고 하느니라.
어떤 것이 소견에 머무르는 자에게 권유하기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보살은 설령 꿈속에 있더라도 마음이 인색하거나 질투하지 않고 부처님이 계시지 않더라도 다른 마음을 갖지 않으니 하물며 현재에 있어서랴. 이것이 바로 보시이며, 나쁜 죄를 만나거나 내지 몸과 목숨을 잃을지라도 금계를 범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지계이며, 태어나는 곳마다 광명이 함께하여 태어나자마자 본래부터 청정한 진리(忍)를 듣고서 이에 불도를 얻는다면 이것이 바로 인욕이며, 태어나는 곳마다 항상 도법(道法)을 널리 펼쳐서 중생들을 열어 교화하고 또한 이것으로 다른 사람들을 가르친다면 이것이 바로 정진이며, 곳곳에 태어나 도를 잘 생각해서 업을 세우고 어떤 소견을 지니되 본성의 자연스러움으로 이와 같이 한다면 이것이 바로 선정이며, 세간을 제도하거나 세간의 일을 보되 스승 없이 스스로 홀로 서서 다른 이의 가르침을 받지 않고서도 그 지혜로 지극한 정성을 다하여 몸과 입과 마음에 속임이 없다면 이것이 바로 지혜이니, 이 여섯 가지가 소견에 머무르는 자에게 권유하기 위한 도무극이니라.
어떤 것이 머물 것이 없음을 권유하기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은혜를 베풀 것을 권유해서 구제 받을 것이 있는 곤궁한 사람들을 건진다면 이것이 바로 보시이며, 몸과 마음을 삼가해서 마음으로 범하는 것이 없고 멋대로 굴지도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지계이며, 생사 없는 법의 지혜에서 물러나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인욕이며, 일체의 만물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하여 방편을 부지런히 닦되 머무는 것이 없고 이 머무는 것이 없음으로서 6도무극을 권유한다면 이것이 바로 정진이며, 안팎으로 모두 집착할 것이 없으나 중생들이 미혹되어 마음이 막혀서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나라는 생각을 계교해서 ‘나 없음’을 분명하게 알지 못하므로 그들을 위해 분별해서 말해주어 일체가 공(空)함을 알게 한다면 이것이 바로 선정이며, 성문과 연각을 버리지 않고 성인의 밝은 법으로서 일체지(一切智)에 의지한다면 이것이 바로 지혜이니, 이 여섯 가지가 머물 것이 없음을 권유하기 위한 도무극이니라.
어떤 것이 의지할 것이 없음을 권유하기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은혜로서 가호(加護)하되 일체의 삼계가 마치 정광(定光) 부처님을 뵌 것처럼 기뻐하게 한다면 이것이 바로 보시이며, 금계를 행하되 의지하는 것도 없고 구하는 것도 없다면 이것이 바로 지계이며, 설령 그 마음이 어질고 화락하며 부드럽다하더라도 일찍이 일체의 모든 법에 대하여 헛된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면 이것이 바로 인욕이며, 뭇 행을 부지런히 닦아 집착하는 것이 없다면 이것이 바로 정진이며, 선정에 들어 본 것으로 보살의 지위에 들어가 뒤바뀐 생각에 떨어지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진정한 선정이며, 성스러운 지혜로 뭇 번뇌들을 없애서 큰 도(道)로 돌아간다면 이것이 바로 지혜이니, 이 여섯 가지가 의지할 것이 없음을 권유하기 위한 도무극이니라.
어떤 것이 올바른 뜻을 권유하기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속으로 생각하기를 ‘보살이 제도할 일은 불국토를 이루어서 궁극의 경지에 이르고자 하는 것이다’라고 한다면 이것이 바로 보시이며, 그 스스로가 계행을 지켜서 세 가지 나쁜 갈래를 끊고 죄업을 짓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지계이며, 마음이 자비롭고 어질고 화락하며 과보로 얻은 상호가 단정하고 빼어나서 보고는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다면 이것이 바로 인욕이며, 부지런히 수행하되 마치 큰바다에 들어가 여의주를 얻은 것처럼 뭇 고난들을 고갈시키고 자재로운 법을 얻는다면 이것이 바로 정진이며, 전일한 마음으로 번뇌를 없애서 뜻하고 바라는 대로 이루고 얻는다면 이것이 바로 선정이며, 성스러운 밝은 지혜로 뭇 마군들을 무너뜨리고 훈화(訓化)를 일으켜 죄다 그 가르침을 따르게 한다면 이것이 바로 지혜이니, 이 여섯 가지가 올바른 뜻을 권유하기 위한 도무극이니라.
어떤 것이 참음을 권유하기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베풀어줌에 있어서 그 마음이 잠시라도 불도를 잊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진정한 보시이며, 고요한 뜻으로 지옥을 구호하되 마군도 범할 수 없고 그 법에서 돌이키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지계이며, 이치를 좇아서 바른 법을 받들어 행하고 질투하는 마음을 갖지 않기를 마치 덕광(德光)이란 왕태자(王太子)가 자재롭게 보시하되 하루는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불제자들에게 수레 코끼리 말과 40 리에 가득 찬 깃발 일산과 영락 의복 보물 따위와 무수한 꽃과 향으로 보시하고 8만 4천의 채녀(
女)들과 나라와 왕위도 버리고 심지어 손 발 귀 코 머리 눈 피부 살 팔 다리와 처자까지 버려서 다른 사람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출가하여 사문이 되서 이 바른 법을받드는 것처럼 한다면 이것이 바로 인욕이며, 뭇 계율을 받들어 어느 곳에 있더라도 부지런히 닦되 집착하는 것이 없다면 이것이 바로 정진이며, 꿈속에서 아름다운 여자들을 보더라도 탐욕을 일으키지 않으며 몸의 상호를 갖추어서 얼굴이 맑고 깨끗하다면 이것이 바로 선정이며, 성(城)에 들어가더라도 마음에 밝은 지혜를 품고 있으므로 설령 비구를 보더라도 독실한 마음으로 공경하여 조금도 다른 생각이 없다면 이것이 바로 지혜이니, 이 여섯 가지가 참음을 권유하기 위한 도무극이니라.
어떤 것이 업을 지음을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자신이 범행(梵行)을 깨끗이 닦아 다른 사람에게 권유하고 도움으로서 많은 이끗을 얻되 법이 다 사라질까 염려하여 마치 아지랑이 같은 옷으로 겨우 얼굴만 덮을 만큼 검소하고 학문과 수행이 뛰어나 부처님 몸을 나타내거나 감춤에도 자유롭고 다섯 가지의 새 꽃과 다섯 가지의 묵은 꽃을 부처님께 바친 그 과보로 도법을 일으켜 바른 법을 5백세까지 이르게 하고 상법(像法)도 또한 그와 같이 한다면 이것이 바로 보시이며, 뭇 계율로서 다른 사람의 모든 나쁜 업을 소멸시키고 그에게 부족한 것을 좇아서 구제하여 준다면 이것이 바로 지계이며, 어질고 화락함을 따르기 때문에 만약 어떤 장애가 있다면 상서로운 이로움이 없더라도 반드시 액난(厄難)에서 구제 받되 마치 장사꾼이 큰 바다를 건너다 마갈어(摩竭魚)를 만났을 때 홀연히 스물 다섯 군데의 욕지(浴池)가 나타나 그 각각에 있던 흰코끼리에 올라타고서 큰 고난을 벗어나는 것과 같으니 이것이 바로 인욕이며, 설령 천상 세계의 쾌락과 안온함을 만날지라도 옛날 무개도주(無開導主)가 그랬던 것처럼 정진하려 하거나 영묘(英妙)라는 대범천이 천제에게 권유하여 교화하고 중생들을 가르쳐서 천상에 태어나도록 한 것처럼 한다면 이것이 바로 정진이며, 여러 부처님과 보살들이 강설한 것처럼 낳는 것이 없는 지혜를 닦아 가령 중생들에게 권유하여 범천(梵天)에 태어나게 해서 광음궁(光音宮)으로부터 무상천(無想天)에까지 이르게 한다면 이것이 바로 선정이며, 성스럽고 밝은 업(業)으로 모든 세속(世俗)을 위하여 현재세의 일을 말하고 세속의 업을 건넘을 설명하여 열 가지 착한 행을 닦아 백성들을 이익 되게 하되 마치 옛날 득생(得生)이란 국왕에게 좋은 눈이 있어서 도법(道法)을 사랑하고 즐거워하여 무수한 세간에서 이 이치를 분명히 알게 하여 모든 왕들이 인자한 행을 닦고 부처님과 보살들이 열어 인도하는 것에 따라 이 말씀과 가르침으로 모든 것을 펼쳐 보였던 것처럼 한다면 이것이 바로 지혜이니, 이 여섯 가지가 업을 지음을 위한 도무극이니라.
어떤 것이 지은 업이 없음을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마음 속으로 공훈을 좋아해서 일체의 우두머리가 되어 보시할 것을 마음으로 권유하고 돕는다면 권유하고 돕는 것이 곧 집착이 될 것이나 옛날에 보살이 정광(定光) 부처님을 뵙고는 다섯 줄기의 꽃을 부처님께 뿌려 공양함으로써 심은 공덕의 뿌리로 말미암아 이러한 공훈과 도덕을 얻어 길이 헛된 생각이 없으며 법이 스러져 다할 때에 이르러서는 모두 그것에 의지하게 되는 것처럼 한다면 이것이 바로 진정한 보시이며, 배움에 정진하되 몸과 입과 마음에 끌려 방편을 쓰지 않고 어느 국토에든지 나고 죽는 곳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이 바로 지계이며, 어질고 화락함을 닦아 사모하고 즐겨하는 것이 있으나 그 고통의 뿌리를 구한다면 이것이 바로 인욕이며, 정진하는 힘으로 세속의 일을 건립하여 도법에 들도록 교화한다면 이것이 바로 진정한 정진이며, 선정을 닦아 범천(梵天)의 수명이 길고 짧음을 관찰할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진정한 선정이며, 성인의 밝은 지혜를 따라서 일찍이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음이 마치 여래일(如來日)이란 보살이 중생에 따라서 일품법(一品法)을 설하기도 하고 그 나머지 몸에 집착하는 중생들을 위해서는 여러 가지 품을 설하여서 고요한 경지에 이르러 멸도(滅度)하게 하여 훗날 바른 법에 오랫동안 머물고 나서 법이 스러져 다하는 것과 같이 한다면 이것이 바로 지혜이니, 이 여섯 가지가 지은 업이 없음을 위한 도무극이니라.
어떤 것이 남음이 있음을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옛날에 보살들이 정광(定光) 부처님 때에 공양하고 받들어서 도(道)를 이루기를 바란 것처럼 한다면 이것이 바로 보시이며, 몸과 입에 남음이 있음을 금계에 의지하여 머무르되 믿지 않는 이가 많다 하더라도 자신은 즐겨한다면 이것이 바로 지계이며, 그 성품이 어질고 화락하여 거칠거나 산만하지 않고 고요히 앉는 힘으로 돌아간다면 이것이 바로 인욕이며, 가령 부지런히 수행하는 중간에 즐거워 할 것이 있음에 의지하여 바른 진리에 이르지 않음을 바로 정진이라 하며, 선정을 사모하고 즐겨하되 ‘텅 비어 없음[空無]’을 믿어 행하여서 그것으로 즐거움을 삼는다면 이것이 바로 진정한 선정이며, 성인의 밝은 지혜를 듣고서 마음에 집착하는 것이 있거나 혹은 없거나 간에 이것을 바로 지혜라 하니, 이 여섯 가지를 남음이 있음을 위한 도무극이라고 하느니라.
어떤 것이 남음이 있음에 머물기 위한 도무극인가. 참된 도를 따르지 못하고 오히려 다른 문으로 향하는 것이니, 뜻을 공(空)한 곳에 둔 성문이나 연각의 과보에 응하는 것이니라. 불도(佛道)에 오래도록 머물지 못하고 10지의 업에 들어가서는 다시 물러나니, 그 뜻을 마땅히 알아야만 하느니라. 이것을 일러 보살이 남음이 있음을 행하는 도무극이라고 하느니라.
어떤 것이 보살의 베풀음에 남음이 없음을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생사의 과보를 중생들에게 권유하고 도와주되 참고 견뎌낼 수 있는 성문 연각처럼 고요한 선정에 들어 다시는 물러나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보시이며, 금법(禁法)의 과보로 지혜를 여의고 깊이 들어갈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지계이며, 어질고 화락하여 나쁜 갈래에 떨어질까 두려워해서 수고로이 애써야할 곳에서도 마음으로 범하는 것이 없다면 이것이 바로 인욕이며, 부지런히 닦아서 마군의 업(業)을 구하되 그 경계를 소멸시켜 삿된 소견을 없애고자 한다면 이것이 바로 정진이며, 전일한 마음으로 수행을 바로 잡아 수명의 한계와 구경의 근원을 안다면 이것이 바로 선정이며, 지혜로 전생의 일을 알아내어 뭇 고통과 근심을 끊어버리고 좋은 뜻과 바램을 세운다면 이것이 바로 지혜이니라.
남음이 없음을 위한 도무극은 어떻게 도무극라는 이름을 얻었는가 하면, 이는 보살이 중생들을 좇아서 교화하기 위해 세간에서 좋아하는 것을 따르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 붙인 것이니라.
어떤 것이 밝음을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보살이 웃어른[尊長]을 받들어 보시하되 그 과보를 바라지 않고 백천 겁 동안 세간의 음식을 먹으면서도 자기 몸을 위하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진정한 보시이며, 법의 이치를 닦기 위해 보리수 밑으로 나아가서 일체의 법에 대하여 여우같은 의심을 품지 않고 이 인연으로 일체지에 이른다면 이것이 바로 지계이며, 전일한 마음으로 어떠한 법에도 집착하지 않고 이로 말미암아 일체지가 생긴다면 이것이 바로 인욕이며, 부지런히 닦아서 도의 지혜에 머물러다섯 가지 쌓임과 덮임에서 벗어나도록 교화한다면 이것이 바로 정진이며, 선정으로 가장 바른 깨달음을 이루어서 천안(天眼)을 얻어 그 전생의 일을 기억하고 지나온 시간을 본다면 이것이 바로 진정한 선정이며, 성스러운 밝은 지혜로 모든 번뇌를 다 없애고 부처님 눈(佛眼)을 얻어 모든 법에 다 통달하여 마음에 머뭇거림이 없다면 이것이 바로 지혜이니, 이 여섯 가지가 밝음을 위한 도무극이니라.
어떤 것이 밝음을 지녀 머물기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바른 법에 머물러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양하고 경전을 존재하게 한다면 이것이 바로 보시이며, 다니거나 머무는 곳마다 여래의 지혜에 들어가 몸이 밝고 입이 깨끗하여 뭇 생각들이 없다면 이것이 바로 지계이며, 유순한 계행으로 세속의 법을 가까이 하지 않고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인욕이며, 성문 연각의 업을 분명하게 알아서 뭇 번뇌들을 없애는 동시에 멸도(滅度)에 이르게 된다면 이것이 바로 정진이며, 전일한 마음으로 중생의 마음과 행동을 탐구하여 은혜로운 음성을 다한다면 이것이 바로 선정이며, 해탈을 알기 때문에 때를 놓치지 않고 성인의 밝은 지혜와 자비를 행한다면 이것이 바로 진정한 지혜이니, 이 여섯 가지가 밝음을 지녀 머물기 위한 도무극이니라.
어떤 것이 일어나 성취함을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셨을 때에 큰 재업(財業)을 이루셔서 현인과 성인들이 헤아릴 수 없는 과거 여러 부처님들의 가르침을 받았으니 이것이 바로 보시이며, 계행을 권유하고 도와서 해탈을 얻고 부처님께서 현세에 출현하시어 뭇 번뇌들을 없앤다면 이것이 바로 지계이며, 어질고 화락하여 세존의 가르침을 받고 또한 만족함을 알되 게으름 피우지 않아서 크게 행동으로 옮긴다면 이것이 바로 인욕이며, 부지런히 닦아 넓은 서원을 세워서 그 공덕으로 왕위에 있게 되더라도 마음으로 법을 어기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정진이며, 전일한 마음으로 항상 부처님을 생각하여 지극히 참됨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선정이며, 성인의 밝은 지혜로 멸도(滅度)를 권유하고 도와서 마치 부처님께서 다섯 사람의 몸과 마음을 열어 교화하신 것과 같이 한다면 이것이 바로 지혜이니, 이 여섯 가지가 일어나 성취함을 위한 도무극이니라.
어떤 것이 뜻이 어지럽지 않음을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뜻대로은혜를 행하되 도를 받들기를 서원하여 다른 사람을 교화한다면 이것이 바로 보시이며, 그 지극한 행을 따라 다른 사람을 보호하고 몸과 입과 뜻을 다스린다면 이것이 바로 지계이며, 어질고 화락함을 닦는 것이 바로 깊고도 미묘한 참음을 닦는 것이니 정법이 몰락할 때에 그 뜻이 견고하다면 이것이 바로 인욕이며, 부지런히 닦아서 도와 지혜를 품어 마음이 미혹되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정진이며, 가령 전일한 마음으로 텅 비어 아무것도 없는 경지에 들어 생각이나 바램이 없어서 마음으로 바랄 것이 없다면 이것이 바로 선정이며, 성인의 밝은 지혜로 근심스럽게 생각하고 일체를 자비로운 마음으로 구제하고자 한다면 이것이 바로 지혜이니, 이 여섯 가지가 뜻이 어지럽지 않음을 위한 도무극이니라.
어떤 것이 부처님께서 세간에 출현하실 때에 집에 있는 이들을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보시를 하되 다섯 가지 일을 일으켜야 할 것이니, 그 다섯 가지란 첫째 앉을 자리를 마련해야 하고, 둘째 말씀하실 곳을 마련해야 하며, 셋째 권속을 이루어야 하고, 넷째 법락을 성취해야 하며, 다섯째 글로 기록해야 하니 이렇게 하는 것이 진정한 보시이며, 보시를 행하되 금계를 갖추어서 범하는 것이 없다면 이것이 바로 지계이며, 어질고 화락함으로 인상(人想)을 버리고 수명을 계교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인욕이며, 부지런히 닦아서 평등한 업(業)을 받들어 도의 이치를 드러내 보인다면 이것이 바로 정진이며, 전일한 마음으로 널리 평등하게 닦되 지극한 덕을 받들어 행하여 조금도 바라는 뜻이 없다면 이것이 바로 선정이며, 지혜의 밝음으로 모든 성스러운 진리로 돌아가 통달하지 않음이 없다면 이것이 바로 지혜이니, 이 여섯 가지가 집에 있는 이들을 위한 도무극이니라.
어떤 것이 출가한 이들을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보시를 하되 마음과 합치되어 번뇌 없는 행을 이룬다면 이것이 바로 보시이며, 삼가함으로써 몸과 입을 보호해서 멸도(滅度)와 화합하게 한다면 이것이 바로 지계이며, 어질고 화락함으로 삼계(三界)를 싫어해서 집착하는 것이 없다면 이것이 바로 인욕이며, 바른 계행을 부지런히 닦아 4의지(意止)에 돌아가서 도의(道意)를 낸다면 이것이 바로 정진이며, 전일한 마음으로 네 가지 평등한 마음을 지켜 생사의 고난에서 벗어난다면 이것이 바로 선정이며, 성인의 밝은 지혜로 근심스러운 생각들을 멀리 놓아버리고 지극한 진리를 좇아 닦는다면 이것이 바로 지혜이니, 이 여섯 가지가 출가한 이들을 위한 도무극이니라.
어떤 것이 가엾이 여겨서 널리 들음을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정진하라는 가르침을 널리 펼쳐서 중생들의 곤궁함을 채워준다면 이것이 바로 보시이며, 도법(道法)을 받들기 위해 몸과 목숨을 버릴지라도 탐하거나 아까워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지계이며, 바른 법이 사라지려고 할 때에 어질고 화락함으로써 보살심을 발하여 그 적당한 때에 맞추어 스스로 목숨을 버릴지라도 바른 법을 사랑하고 옹호한다면 이것이 바로 인욕이며, 부지런히 수행하여 총지(總持)를 얻어서 항상 잊지 않고 기억한다면 이것이 바로 정진이며, 전일한 마음으로 그 마음의 몸뚱아리[體]를 이해하여 12인연이 일어나도 일으킨 바가 없다면 이것이 바로 선정이며, 지혜로 지나온 시간들을 기억하고 고요함을 좇아 닦는다면 이것이 바로 진정한 지혜이니, 이 여섯 가지가 가엾이 여겨서 널리 들음을 위한 도무극이니라.
어떤 것이 출가하여 계율을 끊지 않기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그 뜻이 소원하는 대로 다른 사람을 구제하되 법사(法師)의 명령을 받들어 행한다면 이것이 바로 보시이며, 금계를 행하여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따라서 조금의 후회도 없다면 이것이 바로 지계이며, 그 뜻이 어질고 화락(和樂)하여 남을 해치려는 마음을 품지 않고 겸손하고 공순해서 스스로 훌륭한 체 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인욕이며, 부지런히 수행하는 일에 대해 굳세고도 힘이 있어 겁이 많지 않다면 이것이 바로 정진이며, 고요한 뜻으로 7각의(覺意)를 생각하여 멀고 가까운 이치를 죄다 통달한다면 이것이 바로 선정이며, 지혜에 뜻을 두어 생사 없는 법의 지혜를 갖춘다면 이것이 바로 진정한 지혜이니, 이 여섯 가지가 출가하여 계율을 끊지 않기 위한 도무극이니라.”
윗 문장에서 12번째 폭의 처음에 있는 ‘6도무극’ 아래는 단본(丹本)에 주(注)가 달려있으니, 이르기를 “기준이 되는 문장에는 ‘불흥성도무극(佛興盛度無極)’이 빠져 있다”고 했다.
10. 신통품(神通品)
부처님께서 희왕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것이 신통에 머물기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만약 귀중한 재보를 베풀어주었더라도 탐내거나 아까워하지 않고 도법(道法)을 받들어 참된 가르침을 받는다면 이것이 바로 보시이며, 행함에 집착하는 것이 없어서 삿됨과 바름에 치우치지 않고 큰 도(道)에 뜻을 둔다면 이것이 바로 지계이며, 어질고 화락하여 여우 같은 의심을 품지 않고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인욕이며, 부지런히 수행하는데 뜻을 두고 넓은 서원을 세워서 본래의 바램을 어기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정진이며, 전일한 생각의 광명(光明)으로 비추어서 멀고 가까움에 통달한다면 이것이 바로 선정이며, 성인의 밝은 지혜를 좇음에 따라서 도의 자리[道地]에 응하여 일마다 그 인연을 굳게 받아 지닌다면 이것이 바로 지혜이니, 이 여섯 가지가 신통에 머물기 위한 도무극이니라.
어떤 것이 신통을 끊지 않기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구제할 것이 있다면 제일 먼저 여래의 정사(精舍)를 세울 것이니 이것이 바로 진정한 보시이며, 도업(道業)을 구하여서 지혜의 뿌리를 이루어 무명(無明)의 근원을 뽑아버린다면 이것이 바로 지계이며, 뜻이 어질고 화락하여 근본 구경의 맨 끝[本際]2)에 통달해서 바른 진리를 일으킨다면 이것이 바로 인욕이며, 받들어 행하고 부지런히 닦아 색상(色想)에 통달하되 아무런 생각[想]이 없다면 이것이 바로 정진이며, 전일한 마음으로 고요한 선정을 닦아 해탈문에 이른다면 이것이 바로 진정한 선정이며, 성인의 밝은 지혜를 이어받아 총지(總持)를 닦아 지니고 바른 행을 관찰하여 욕심이 없고 깨끗한 자리에 머문다면 이것이 바로 지혜이니, 이 여섯 가지가 신통을 끊지 않기 위한 도무극이니라.
어떤 것이 욕심에 들어가기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다른 이를 구제하되 세력을 끌어 모아 원수[怨家]를 돕는다면 이것이 바로 보시이며,자기 수행의 모자람을 알고 차례대로 힘을 따라 닦아서 큰 세력을 세운다면 이것이 바로 지계이며, 그 어질고 화락함으로써 모든 쌓임[陰]과 덮개[蓋]를 없애고 도의(道義)를 받들어 닦는다면 이것이 바로 인욕이며, 원망하는 마음을 끊되 마치 왕태자(王太子)가 맑고 깨끗함을 좋아한 것처럼 한다면 이것이 바로 정진이며, 항상 고요히 생각하여 마음을 멋대로 놓아버리지 않고 오로지 선정을 닦는다면 이것이 바로 진정한 선정이며, 성인의 밝은 지혜로 나쁜 갈래와 지옥과 생사의 고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지런히 닦고 정진하되 마치 옛날에 배우던 이들이 하던 것처럼 한다면 이것이 바로 지혜이니, 이 여섯 가지가 욕심에 들어가기 위한 도무극이니라.
어떤 것이 세움을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어진 수행자가 나쁜 갈래에서 구제하기 위해 생사에 빠져 있는 이들을 유혹해서 벗어나게 하기를 마치 정수리 모양의 과보[頂相報]3)처럼 한다면 이것이 바로 보시이며, 만약 세상에 부처님이 계시지 않더라도 받들어 수행하는 자가 뭇 사람들을 열어 교화해서 각자에게 맞는 곳을 얻게 하되 마치 옛날 마조성왕(摩調聖王)이 인자함으로 천하를 교화한 것처럼 한다면 이것이 바로 지계이며, 어질고 화락하기 때문에 성내거나 미워하지 않되 마치 찬제화(提和)4)가 손이나 발 귀 코를 끊어내더라도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았던 것처럼 한다면 이것이 바로 인욕이며, 가장 견디기 어려운 일을 부지런히 닦아서 끝내 가리거나 막히지 않되 마치 바다 속의 여의주처럼 그 요구에 따라 소원을 죄다 이룬다면 이것이 바로 정진이며, 고요한 생각을 닦되 마치 궁중에서 귀인(貴人)들을 열어 교화해서 아무도 견줄 수 없는 도의 뜻을 내게 하고 또한 사자태자(師子太子)가 바람이 풀을 마음대로 흔들 듯이 자재롭게 교칙을 내리는 것처럼 한다면 이것이 바로 선정이며, 성인의 밝은 지혜에 들어가 다른 뭇 지혜의 경계들을 죄다 버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총애를 끊지 않기를 마치 옛날 어떤 왕이 머리를 보시했던 것처럼 한다면 이것이 바로 지혜이니, 이 여섯 가지가 세움을 위한 도무극이니라.
어떤 것이 응하여 나아감을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가지고 있던 의복과 물건을 중생들에게 베풀어주되 마치 별왕(鼈王)이 바다에서 궁액(窮厄)을 구제하듯이 한다면 이것이 바로 보시이며, 법을 받들어 지니길 마치 사자(師子)가 권속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것처럼 하거나 장사꾼을 구제하듯이 한다면 이것이 바로 지계이며, 마치 어떤 사람이 왕을 해치려고 할 때에 범지(梵志)가 자기 머리를 끊어 베풀어 준 것처럼 어질고 화락하다면 이것이 바로 인욕이며, 닦아 정진하되 마치 사의(思義)라는 어떤 범지의 아들이 다섯 가지 욕심을 버리고 다른 사람을 구호하여 제도하듯이 한다면 이것이 바로 진정한 정진이며, 고요히 생각하기를 마치 아리념(阿離念)이 외도의 학문[異學]에 있으면서 제자와 다른 사람들을 구호한 것처럼 한다면 이것이 바로 선정이며, 성스럽고 밝은 일로서 셀 수 없이 많은 백천의 사람들을 열어 교화하되 마치 조왕(鳥王)이 되풀이함 없이 한 번에 구제한 것처럼 한다면 이것이 바로 지혜이니, 이 여섯 가지가 응하여 나아감을 위한 도무극이니라.
어떤 것이 중생의 과보에 응하기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세간 사람들을 가엾이 여겨 구제하되 마치 이구(離垢)보살이 중생들을 교화해서 행을 깨끗하게 한 것처럼 한다면 이것이 바로 보시이며, 지극한 행을 받들어서 범천(梵天)에 머물러 남섬부주[閻浮利] 사람들을 위해 공덕의 근본을 세워 법에 들어가게 한다면 이것이 바로 지계이며, 어질고 화락한 행으로 중생들을 가호하기 위해 몸과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되 마치 바다에서 배가 부서지는 것을 보고는 자기 몸을 희생해가면서까지 뭇 사람들을 건지듯이 한다면 이것이 바로 인욕이며, 수행에 정진하여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열어 교화해서 대부분 성취하되 마치 복사(福事)라는 도사가 바다에서 뭇 보물들을 건져 텅 빈 궤짝을 채워주듯이 한다면 이것이 바로 정진이며, 전일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가엾이 여겨 권유하고 돕되 마치 의의(意義)라는 동자가 8만 년 동안 자비심을 받들어 행하여서 중생들을 편안하게 한 것처럼 한다면 이것이 바로 선정이며, 성인의 밝은 지혜로 현세를 분명하게 알아 세간을 제도할 지혜를 갖추어서 이 지혜로 ‘텅 비어 없음’을 분명하게 깨닫되 마치 수보리(須菩提)가 공(空)을 이해하고 비유를 알아 뭇 티끌과 나뭇잎들을 죄다 분별할 수 있어서 그 권유하고 도와준 이들의 과보에 응함이 이보다 훨씬 많은 것처럼 한다면 이것이 바로 지혜이니, 이 여섯 가지가 중생의 과보에 응하기 위한 도무극이니라.
어떤 것이 과보가 없음을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그 구제함에 있어서 과보를 받지 않고 내지 멸도(滅度)하기를 마치 큰 일산이 두루 덮어 보호하는 것처럼 보살의 수행도 그와 같이 끝이 없어서 강모래처럼 많은 중생들을 제도한다면 이것이 바로 보시이며, 법행(法行)을 받들어서 모든 번뇌가 이미 다하고 물러나지 않는 지위에 이르러 거두어 들여서 널리 옹호한다면 이것이 바로 지계이며, 뜻이 어질고 화락하여 일찍이 원한이 없었기에 불도를 이룬다면 이것이 바로 인욕이며, 부지런히 닦기 위해 몸과 목숨을 버릴지라도 모든 것을 삼보에 공양한다면 이것이 바로 정진이며, 보리수 아래서 고요한 생각을 닦아 게송을 찬탄하고 법관(法觀)을 이어받아 이러한 행을 옹호한다면 이것이 바로 선정이며, 성인의 밝은 지혜를 좇아서 도혜(道慧)를 논하지 않되 마치 바다에 사화수(舍和樹) 잎의 향내가 아름다워 병을 치료하는 것처럼 보살도 이와 같아서 덕의 향내로 일체를 교화해 큰 도의 마음을 내게 한다면 이것이 바로 지혜이니, 이 여섯 가지가 과보가 없음을 위한 도무극이니라.
어떤 것이 즐거움이 없음을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마치 멸도(滅度)하듯이 중생들을 구제하되 한림(漢林)이라는 현자가 보살의 본행에 대한 전생의 비유를 분명하게 알아서 중생들을 미혹에서 구제한 것처럼 한다면 이것이 바로 보시이며, 헤아릴 수 없는 금계를 닦아서 뭇 고난들을 근심하고 싫어하여 일삼음이 없음[無爲]에 뜻과 바램을 두되 마치 옛날에 보살이 수행 정진하기를 바다에 들어가 무량한 보물을 건져내는 데에 비유한 것처럼 한다면 이것이 바로 지계이며, 어질고 화락함을 행하되 마치 가이왕(迦夷王)이 자기의 머리와 코 손 발을 잘려도 성내거나 원망하지 않았던 것처럼 한다면 이것이 바로 인욕이며, 부지런히 수행해서 가유라성[迦維羅衛]을 나와서도 아무것도 보지 않았던 이처럼 평등하기 때문에 정법에 들어가 불도를 얻는다면 이것이 바로 정진이며, 고요히 생각하여 4품(品)을 구족하고 범행을 깨끗이 닦아 자비로운 마음으로 기쁘게 옹호한다면 이것이 바로 선정이며, 지혜도무극으로도 성취하기 어려운 것을 세간에 있으면서 마음을 항상평등한 선정에 둘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지혜이니, 이 여섯 가지가 즐거움이 없음을 위한 도무극이니라.
어떤 것이 때에 맞게 나아감을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머무르는 곳에서 차례대로 은혜를 베풀어 뭇 고액과 환난을 구제한다면 이것이 바로 보시이며, 행함에 삼가하기를 마치 자라로 태어나서 그가 왕이 되었을 때 자기 몸을 보호하고 또 다른 사람을 구제하듯이 한다면 이것이 바로 지계이며, 가진 뜻이 어질고 화락하여 중생들을 가까이 해서 몸과 입을 옹호하되 마치 어진 사람이 자비와 인내를 수행하여 그의 사지를 끊더라도 해치려는 마음을 품지 않는 것처럼 한다면 이것이 바로 인욕이며, 수행을 부지런히 해서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셨을 때에는 있는 곳마다 부처님을 뵙고 여래의 평등한 삼매에 들어 일체의 행을 닦되 3천 년 동안 조금도 쉬거나 게으르지 않다면 이것이 바로 정진이며, 고요히 생각하여 비록 궁중의 채녀( 女)들 사이에 있더라도 항상 깨끗하고 흰 마음을 닦아 멋대로 굴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선정이며, 지혜를 따를 때에 생사에 있더라도 이르는 곳마다 ‘나[我]’를 옹호해서 ‘나 없음[無我]’을 분명하게 알도록 한다면 이것이 바로 지혜이니, 이 여섯 가지가 때에 맞게 나아감을 위한 도무극이니라.
어떤 것이 광명(光明)을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꾸미지 않은 꽃과 향을 여러 부처님과 보살에게 바친다면 이것이 바로 보시이며, 자신의 계행을 삼가하여 다른 사람을 가엾이 여기되 마치 나는 새가 빈 몸으로 날아갈 때에 그립거나 즐거워할 것이 없는 것처럼 한다면 이것이 바로 지계이며, 뜻이 어질고 화락하여 일체가 공(空)함을 이해해서 법의 갈무리[法藏]를 얻는다면 이것이 바로 인욕이며, 부지런히 닦은 힘으로 다리를 삼아 위액(危厄)을 구제한다면 이것이 바로 정진이며, 선정을 생각하되 아주 오랜 옛날에 처음으로 보살들이 도를 닦는데 깊이 들어가기 위해 받들어 수행했던 것처럼 한다면 이것이 바로 선정이며, 성인의 밝은 지혜를 닦아 법인(法忍)을 일으키되 마치 양동자(兩童子)가 땅처럼 굳세게 마음을 잡은 것처럼 한다면 이것이 바로 지혜이니, 이 여섯 가지가 광명을 위한 도무극이니라.
어떤 것이 한량없는 빛을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훌륭한 방편으로 구제하되 부처님의 큰 광명을 이룩한 과보로 무수한 불국토에 두루하게 된다면 이것이 바로 보시이며, 부지런히 닦아서 생사 없는 법의 지혜를 얻도록 권유하고 돕는다면 이것이 바로 지계이며, 어질고 화락한 이가 법상(法相)을 권유하고 돕되 아무런 집착이 없다면 이것이 바로 인욕이며, 정밀하게 닦아서 공법(空法)을 받들어 행하되 큰 도를 권유하고 도와서 이 ‘텅 비어 없음[空無]’으로 돌아간다면 이것이 바로 정진이며, 선정으로 중생들을 돕고 교화하되 항상 게으르거나 그만 두지 않아서 그들로 하여금 물러나지 않도록 한다면 이것이 바로 진정한 선정이며, 성인의 밝은 지혜를 닦아 제8지(第八地)에 머물러서 있는 곳마다 권유하고 교화해 은혜를 입지 않는 것이 없다면 이것이 바로 지혜이니, 이 여섯 가지가 한량없는 빛을 위한 도무극이니라.
어떤 것이 과보의 편안한 빛을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마군의 길에 이르더라도 목숨이 끝날 때가 되면 그 공덕의 과보에 응하되 마치 도솔천에서 홀연히 내려와 아귀를 열어 교화해서 굶주림의 재액을 제거하듯이 한다면 이것이 바로 보시이며, 마군의 길을 항복시켜서 자비를 베풀어 얽매인 몸을 풀어주고 죄액(罪厄)에서 벗어나게 하기를 마치 옛날 어떤 국왕의 태자 수뢰(須賴)가 고통과 근심에서 벗어나듯이 한다면 이것이 바로 지계이며, 그 행이 어질고 화락하여 고기들 속에 있게 되었을 때 그 몸뚱이를 자라나 악어에게 뜯어 먹힐지라도 편안하게 여긴다면 이것이 바로 인욕이며, 부지런히 수행해서 여러 옥녀(玉女)들이 겁나고 위태롭고 가난한 처지에 있음을 가엾이 여겨 구제한다면 이것이 바로 정진이며, 고요한 생각을 닦아 질병이 많은 겁(劫)에 있으면서 약으로 치료하여 주되 마치 옛날 어떤 동자가 길이 이익이 되는 일을 하고자 다섯 머리로 염부제의 모든 삿되고 나쁜 것을 구제하듯이 한다면 이것이 바로 선정이며, 이러한 성인의 밝은 지혜로 일체를 구제하기를 마치 옛날 이야기에 5백 장사꾼들이 5백 옥녀와 다른 모든 옥녀들로 도사에게 나아가 5억의 사람들을 보호하되 한 마음으로 둘러쌌던 것처럼 한다면 이것이 바로 지혜이니, 이 여섯 가지가 과보의 편안한 빛을 위한 도무극이니라.
어떤 것이 되돌아오지 않음을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기왕 구제함에 있어서 성문과 연각의 업을 즐겨하지 않고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를 바라여 구한다면 이것이 바로 보시이며, 삼가하여 받들어서 지극한 이치를 관찰하되 게으르거나 그만 두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지계이며, 어질고 화락함을 좇아 구경에까지 통달하되 중도에 원한을 품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인욕이며, 덕행을 준수해서 방편을 잡아 멋대로 굴지 않도록 구제하여 준다면 이것이 바로 정진이며, 선정을 닦아 장구(章句)를 밝게 드러내어 미혹되거나 심란하지 않다면 이것이 바로 진정한 선정이며, 성인의 밝은 지혜로 일곱째 물러나지 않는 지위에 이르러 머문다면 이것이 바로 지혜이니, 이 여섯 가지가 되돌아오지 않음을 위한 도무극이니라.
어떤 것이 재미있게 놀기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베풀어줌에 있어서 교화하기 어려운 중생을 열어 도의 뜻을 내게 한다면 이것이 바로 보시이며, 수행으로 기르되 부처님께서 세간에 계실 때에는 그 과보를 설하여 벗어나게 하기를 마치 옛날 세수(勢首) 태자가 중생들을 위액(危厄)에서 구제하듯이 한다면 이것이 바로 지계이며, 어질고 화락함을 닦되 어떤 공훈 있는 국왕이 만민을 편안하고 화락하게 한 것처럼 자기의 몸도 편안하고 다른 사람도 또한 편안하며 일체가 두루 편안하므로 내 몸도 또한 편안하다면 이것이 바로 인욕이며, 부지런히 수행해서 총지(總持)를 얻어 변재(辯才)가 이루 헤아릴 수 없다면 이것이 바로 정진이며, 선정을 익혀 권유하고 도와서 이 공덕의 과보로 중생들을 편안하게 한다면 이것이 바로 진정한 선정이며, 성인의 밝은 지혜로 여섯째 머무는 지위[六住地]에서 유순한 법인(法忍)으로 물러나지 않는 지위[不退轉]에 이른다면 이것이 바로 지혜이니, 이 여섯 가지가 재미있게 놀기 위한 도무극이니라.
어떤 것이 곱고 산뜻함을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베풀어줌에 있어서 의지하거나 치우침이 없고 또한 중생들에게 갚음을 바라지도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보시이며, 삼가하여 닦아서 항상 돈독한 믿음을 갖고 7각분(覺分)을 품고 와서 모든 깨닫지 못한 것들을 깨닫는다면 이것이 바로 지계이며, 어질고 화락함을 닦아 자비로운 마음으로 중생들을 생각하되 그 몸을 탐하지 않고 목숨 또한 아까워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인욕이며, 그 뜻을 부지런히 닦아 모든 법을 가려 뽑고 지극한 행을 합쳐 모아 모든 깨달음의 뜻을 이룬다면 이것이 바로 정진이며, 고요히 생각하여 다른 상념(想念)이 없고 멋대로 굴지도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선정이며, 성인의 밝은 지혜로 불도(佛道)를 이루어 일체를 건진다면 이것이 바로 지혜이니, 이 여섯 가지가 곱고 산뜻함을 위한 도무극이니라.
어떤 것이 세간의 법을 이루기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구제해줌으로서 과보가 무수히 많아 길이 편안함을 이루어 다시 뭇 환란들이 없다면 이것이 바로 보시이며, 삼가해서 도법(道法)을 구하여 여덟 가지 바른 업으로 평등한 지혜에 이른다면 이것이 바로 지계이며, 어질고 화락함을 생각하여 도의 이치를 의심하지 않고 인연의 그물[羅網] 끊어버린다면 이것이 바로 인욕이며, 부지런히 수행하여 현재의 법에서 길이 편안함을 얻는다면 이것이 바로 정진이며, 고요한 생각으로 근본 수행에 정진하여 적멸한 삼매에 든다면 이것이 바로 선정이며, 성인의 밝은 지혜를 좇아서 할 일을 이미 마치고도 4의지(意止)를 계속한다면 이것이 바로 지혜이니, 이 여섯 가지가 세간의 법을 이루기 위한 도무극이니라.
어떤 것이 세속을 깨끗하게 하기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그 행하는 것으로 삼천세계를 구제하되 처음부터 끝까지 다른 마음이 없다면 이것이 바로 보시이며, 처음 태어날 때로부터 생사에 헤매 다니는 삼계의 중생들을 모두 다 편안하게 한다면 이것이 바로 지계이며, 처음 발심한 이래로 백성들을 교화하되 이를 수 없는 곳에까지 이르러 처하지 않는 곳이 없다면 이것이 바로 인욕이며, 삼천세계의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정진하여 멸도(滅度)하게 하되 마치 처음 발심하여 출가한 이가 그 배우려는 마음을 감당하기 어려운 것처럼 한다면 이것이 바로 정진이며, 이른바 고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은 모든 중생들에게 그 뜻을 거두어들여 오로지 경법(經法)만을 생각해 멋대로 굴지 않도록 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진정한 선정이며, 성인의 밝은 지혜로 지옥에 이르러 나쁜 갈래에 떨어지는 위액(危厄)을 구제하고 입으로는 경의 도리를 강론하여 법전(法典)을 얻는다면 이것이 바로 지혜이니, 이 여섯 가지가 세속을 깨끗하게 하기 위한 도무극이니라.
어떤 것이 종성(種姓)을 이루기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구호하는 자가 권속들이 화합하여 끝없이 큰 재물을 이루게 한다면 이것이 바로 보시이며, 삼가하여 행하여서 권속들의 화합을 이루어 죄의 재앙이 없다면 이것이 바로 지계이며, 어질고 화락함을 닦아 모든 권속들이 각각 스스로 편안 하여 파괴하는 자가 없다면 이것이 바로 인욕이며, 부지런히 닦음으로써 권속들로 하여금 함부로 멋대로 굴지 않으며 각각 할 일이 있어서 뜻 가짐을 충실하게 한다면 이것이 바로 정진이며, 고요한 생각을 지켜 만약 성내고 싸우는 일이 있더라도 모두 화합하게 해서 밝은 권속을 이룬다면 이것이 바로 선정이며, 성인의 밝은 지혜를 닦음으로써 일체의 권속들에게 모두 지혜의 밝음이 있어 어둠에 가리움이 없다면 이것이 바로 지혜이니, 이 여섯 가지가 종성을 이루기 위한 도무극이니라.
어떤 것이 줄곧 권속을 이루기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5백 년 동안 열어 교화하고 권유하여 가르쳐서 모여 있던 대중들로 하여금 다 도의 마음을 내게 한다면 이것이 바로 보시이며, 삼가 받들어서 모두 화합하게 하여 무수한 무리들이 싸우지 않음이 마치 부처님의 권속들과 같다면 이것이 바로 지계이며, 어질고 화락하여 끝도 없고 셀 수도 없는 중생들의 갈무리[藏]가 되대 마치 옛날 마갈(摩竭)이란 큰 물고기가 바닷물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받아들일 수 있으면서도 저 우물 속의 작은 물고기와 짝이 되어 다닌 것처럼 한다면 이것이 바로 인욕이며, 부지런히 닦아서 뭇 사람들을 옹호하여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제거하되 마치 바닷속 명월주(明月珠)의 갈무리가 때에 맞추어 물을 없애는 것처럼 한다면 이것이 바로 정진이며, 고요한 생각을 수행하되 마치 아리념(阿離念)이 외도들의 미묘한 술법을 두루 배웠으나 중생들을 매우 가엾이 여겨 권유하고 교화해서 범천(梵天)에 태어난 것과 같이 한다면 이것이 바로 선정이며, 성인의 밝은 지혜를 좇아 닦아서 모두를 불쌍하고 애처롭게 여기되 마치 수보리가 어떤 사람이 사슴왕을 잡아들임으로써 그의 5백 권속들이 궁액(窮厄)에 빠지게 됨을 보고는 모두 벗어나게 하는 동시에 천하의 모든 중생들을 교화시켜 10선(善)을 세우게 한 것처럼 한다면 이것이 바로 지혜이니, 이 여섯 가지가 줄곧 권속을 이루기 위한 도무극이니라.
어떤 것이 권속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두 개의 혀로 이간질함을 버려서 말이 항상 지극히 정성스러워 환란과 공덕을 다투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보시이며, 언제나 인자한 마음을 지녀 남을 위해(危害)하지 않으므로 그 이름이 멀리까지 들리어 모두가 공경하고 사랑한다면 이것이 바로 지계이며, 이른바 어질고 화락함으로써 항상 평등한 마음을 갖고 중생들에게 자비를 베풀되 치우치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인욕이며, 의복과 음식을 위해 정진하여 닦지 않고 오직 도법(道法)으로서 중생들을 열어 교화한다면 이것이 바로 진정한 정진이며, 그 뜻을 고요한 생각에 두어 총지(總持)의 무량한 변재(辯才)를 얻는다면 이것이 바로 선정이며, 성인의 밝은 지혜로 해탈을 얻어 모든 얽매임을 풀어 거리낌을 없앤다면 이것이 바로 진정한 지혜이니, 이 여섯 가지가 권속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한 도무극이니라.
어떤 것이 더러움을 제거하고 깨끗함을 가져오기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만약 축나서 잃어버린 것이 있다면 공덕을 더하게 하여 모든 질병을 치료해서 널리 안온하게 한다면 이것이 바로 보시이며, 가리움과 거리낌이 있어 스스로 제도할 수 없을 때에 그들을 구호해서 마음을 열게 한다면 이것이 바로 지계이며, 스승과 웃어른에게 꾸지람을 듣더라도 공양하고 공경하여 의지해서 성내거나 원한을 품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인욕이며, 부지런히 닦음으로서 태(胎) 안에 있을 때부터 마음이 올발라 중생의 병을 치료하고 나아가서 비구 비구니 청신사 청신녀들을 보호하고 열어 교화한다면 이것이 바로 정진이며, 어머니의 질병에 자식으로서 돌보고 심부름하며 모든 모자라는 의약과 음식을 제공하듯이 한다면 이것이 바로 선정이며, 성인의 밝은 지혜로 무수한 중생들을 위하여 그들의 여우같은 의심을 끊어서 각각 위없는 참된 이치를 통달하게 한다면 이것이 바로 지혜이니, 이 여섯 가지가 더러움을 제거하고 깨끗함을 가져오기 위한 도무극이니라.
어떤 것이 정토를 관찰하기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항상 인자한 마음을 지녀서 중생에게 해를 입히려는 눈으로 보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보시이며, 아무런 거리낌이 없고 쌓임[陰]과 덮임[蓋]도 없어서 오직 삼가하는 마음으로 생각한다면 이것이 바로 지계이며, 그 성품이 어질고 화락하여 원수를 보고도 마치 갓난아이처럼 생각해 해칠 마음을 품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인욕이며, 신통을 원만히 갖추어서 안팎으로 가리움이 없고 시방을 보살펴 교화하되 도중에 그치거나 게으름 피우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정진이며, 청정한 수행으로 천안(天眼)을 장엄하여 일체에 대한 다섯 갈래의 생사를 본다면 이것이 바로 선정이며, 무수한 세간에 그 뜻을 부드럽고 화락하게 하고 말씨를 온화하고 아름답게 하여 모든 성인의 슬기를 분별한다면 이것이 바로 지혜이니, 이 여섯 가지가 정토를 관찰하기 위한 도무극이니라.
어떤 것이 마음에 잊음이 없음을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스스로 마음을 조복하여 삿된 소견에 따르지 않고 모든 환난에서 벗어나 빈궁과 재액에 떨어지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보시의 과보이며, 금계를 원만히 갖추어 지킴으로써 삼보를 끊지 않고 도의 가르침을 융성하게 일으켜서 모자라는 중생들을 교화함은 바로 금계의 과보이며, 이른바 어질고 화락함으로써 마음의 수행을 편안하고 부드럽게 하고 몸은 비록 고통을 만났더라도 들은 것이 많기 때문에 뭇 환난을 참아 견디기를 마치 수뢰태자(須賴太子)에게 어떤 사람이 와서 해독을 가하더라도 원망하는 마음을 갖지 않았던 것처럼 한다면 이것이 바로 인욕의 과보이며, 수행을 부지런히 함으로써 자기의 마음을 조복시켜 게으름의 함정을 벗어나고 다른 사람까지 옹호하여 위액(危厄)에 빠지지 않게 해서 길이 안온하게 하는 것은 바로 정진의 과보이며, 그 고요한 생각으로 방자한 행동을 버리고 탐욕 없는 적정(寂定)을 받드는 것은 바로 선정의 과보이며, 성인의 밝은 지혜로 머무는 위의(威儀)와 예절의 법을 지켜 마음이 공양하는 모든 이끗에 의지하거나 치우치지 않고 법보시를 더하여 어둡고 어리석은 중생들을 제도함은 바로 지혜의 과보이니, 이 여섯 가지가 마음에 잊음이 없음을 위한 도무극이니라.”
11. 32상품(相品)
부처님께서 희왕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것이 진리가 머물기 편한 평평한 발바닥을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두루 평지로부터 발을 들고 앞으로 나아가면서도 삼매를 추모함은 바로 보시의 과보이며, 편안함을 건립하여 뭇 사람들을 권유하고 교화해서 다시는 번뇌 때문에 다치지 않아 처음부터 끝까지 걱정이 없음은 바로 지계의 과보이며, 어떤 사람도 움직일 수 없고 그 마음에 원한을 일으키지 않아 얼굴빛이 온화하고 기뻐함은 바로 인욕의 과보이며, 그 뜻을 세워 보살의 법을 받들되 수고롭게 여기지 않고 똑바로 나아가 물러나지 않음은 바로 정진의 과보이며, 위없는 바른 진리를 나타내 즐겨하되 중생을 안온하게 하고 그 이치를 부연하여 고요히 생각함은 이 선정의 과보이며, 그 과보에 응함을 설하여 태어나는 곳마다 항상 모든 부처님을 뵙고 큰 도를 받음은 바로 지혜의 과보이니, 이 여섯 가지를 진리가 머물기 편한 평평한 발바닥을 위한 도무극이라고 하느니라.
어떤 것이 손바닥에 천 개의 수레바퀴 무늬를 갖추기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가지고 있는 모든 재물들을 갖가지 종류의 수레바퀴처럼 두루 보시하여 천 개의 수레바퀴 모습을 이룩함은 바로 보시의 과보이며, 각각 특이하고 빼어난 좋은 모습으로 몸이 그 안에 있으면서 파괴됨이 없음은 바로 지계의 과보이며, 다른 품(品)의 갖가지 향을 피우더라도 거기에 마음이 집착되지 않고 더하거나 덜하는 생각이 없음은 바로 인욕의 과보이며, 부지런히 닦는 자가 그 뜻을 굳게 지니길 마치 어떤 술사(術師)가 큰 병을 잡거나 뗏목을 띄워서 강물을 건넘으로써 모든 권속들을 안전하게 하는 것처럼 함은 바로 정진의 과보이며, 광명을 놓아 멀고 가까운 곳을 널리 빛내는 한편 시방에 통달하여 다 자재로움을 얻게 함은 바로 선정의 과보이며, 큰 광명을 떨쳐 모두 그 은혜를 입음으로써 죄다 성인의 밝은 지혜를 얻어 뭇 어둠을 없애버림은 바로 지혜의 과보이니, 이 여섯 가지가 손바닥에 천 개의 수레바퀴 무늬를 갖추기 위한 도무극이니라.
어떤 것이 살결이 보드랍고 곱기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문자를 베끼는 것이 편안하거나 무서워할 일은 아니지만 이것으로 모든 중생들을 열어 교화해서 죄와 복을 보여줌은 바로 보시의 과보이며, 그 언교(言敎)에 의지하여 진정한 이치를 우러러 받들되 허위를 일삼지 않고 참된 뜻을 품어 옴은 바로 지계의 과보이며, 뭇 공덕들의 근본을 갖추어 미묘한 신명(神明)을 가져오되 마음이 일어나거나 꺼지지 않음은 바로 인욕의 과보이며, 뭇 악의 허물들을 살펴 초월해서 보살들의 모습을 이룩하여 교화 인도함은 바로 정진의 과보이며, 성내거나 원망하는 일이 없이 공훈을 이룩하여 화락한 얼굴빛으로 법을 즐겨해 기뻐 날뛰면서도 마음에 집착이 없음은 바로 선정의 과보이며, 생사에 있어서는 태어나는 곳마다 편안하고 화락하여 중생들의 어리석고 어두움을 교화함은 바로 지혜의 과보이니, 이 여섯 가지가 살결이 보드랍고 곱기 위한 도무극이니라.
어떤 것이 발바닥이 평평함을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발바닥이 평평하여 다니기에 편하고 발바닥에 밟히는 벌레와 거미도 길이 편안함은 바로 보시의 과보이며, 그 발을 들 때에 아무런 염려가 없고 어디를 다녀도 법을 범하는 일이 없어 그 마음이 어질고 화락함은 바로 지계의 과보이며, 발을 들 때에 가장 조용하고 안온하여 급작스럽거나 당황하지 않음은 바로 정진의 과보이며, 그 발을 들 때에 넓은 복을 이룩함이 마치 허공과 같아 중생들을 구제함은 바로 선정의 과보이며, 그 발 밑이 원만함으로써 공덕이 왕성하여 끝이 없음은 바로 지혜의 과보이니, 이 여섯 가지가 발바닥이 평평함을 위한 도무극이니라.
어떤 것이 손가락이 길기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그 손가락이 길고 보기 좋은 것은 전생에 이룩한 공덕에 의하여 굽거나 더러움이 없는 것이니 이것은 모두 베풀음에 대한 보응의 공덕이라 바로 보시의 과보이며, 그 손가락이 가늘게 보기 좋아서 길이가 서로 걸맞아 어지럽지 않음은 전생의 수행 공덕으로 말미암아서 이니 바로 지계의 과보이며, 이 공덕에 걸맞게 손가락이 길면서 가지런하고 보드라우면서 미묘함은 바로 인욕의 과보이며, 덕행이 어울려 있는 그 길고도 미묘한 손가락이 점점 가늘고 매끄러워 더러움이 없고 무늬가 있음은 바로 정진의 과보이며, 손가락이 길고도 상서로워서 보는 이마다 다 기뻐하여 이익을 얻음은 바로 선정의 과보이며, 그 손가락이 빛나고 윤택하면서 차례대로 화순(和順)하여 가지런하고 어지럽지 않음은 바로 지혜의 과보이니, 이 여섯 가지가 손가락이 길기 위한 도무극이니라.
어떤 것이 손과 발에 그물 같은 막[縵]이 있기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손과 발이 고루 평평하여 사이에 그물 같은 막이 있는 것은 전생 때에 보시를 하되 만족하게 주었기 때문이니 바로 보시의 과보이며, 그 손가락 발가락이 바르고 안온하여 바르지 않은 것이 없어서 보는 이의 마음이 기쁜 것은 바로 지계의 과보이며, 손과 발에 흠이 없고 청정하여 지극히 미묘한 것은 본래의 행이 어질고 화락하기 때문이니 바로 인욕의 과보이며, 부처님의 손과 발이 붉은 빛이 도는 금색이어서 흙먼지를 용납하지 않는 것은 전생에 부지런히 수행하여 게으르지 않았기 때문이니 바로 정진의 과보이며, 손 발이 부드러워서 더럽거나 억센 데가 없고 매우 좋은 광채와 윤택함이 있음은 바로 선정의 과보이며, 그 손 발이 보통보다 뛰어나게 깨끗하고 빛나고 밝음으로써 보는 이가 다 기뻐함은 바로 지혜의 과보이니, 이 여섯 가지가 손과 발에 그물 같은 막이 있기 위한 도무극이니라.
어떤 것이 무릎이 평평함을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그 무릎이바르면서 점차로 위가 둥글어 매우 특이하고 덕행이 뛰어나 보는 이마다 모두 존경함은 바로 보시의 과보이며, 그 무릎이 편안하고 조화를 이루어서 서로 꺾이거나 부딪히지 않음은 바로 지계의 과보이며, 손 발과 무릎 사이의 거리가 지나치게 멀거나 가깝지 않아 동작에 한결같음이 있는 것은 바로 인욕의 과보이며, 인자한 걸음걸이로 발을 들되 편안하고도 조용하여 망설이지 않음은 바로 정진의 과보이며, 평정(平正)을 잘 닦아 치우침과 삿됨이 없이 항상 고요함은 바로 선정의 과보이며, 보는 이마다 그 분명한 모습을 다 기뻐함은 바로 지혜의 과보이니, 이 여섯 가지가 무릎이 평평함을 위한 도무극이니라.
어떤 것이 고요함의 갈무리[寂藏]를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그 고요함의 갈무리가 편안하고 화락하여 광채가 빛나되 몸 밖으로 나타나지 않음은 바로 보시의 과보이며, 고요함의 갈무리가 맑고도 윤택해서 모두 공덕을 입게 됨은 바로 지계의 과보이며, 그 털이 오른편으로 돌아가되 각각 가지런하여 어지럽지 않음은 바로 인욕의 과보이며, 그 공덕이 거룩하여 이르는 곳마다 뭇 사람을 변화시킴은 바로 정진의 과보이며, 그 광명을 놓아 비추지 않는 것이 없어서 모두 안온하게 함은 바로 선정의 과보이며, 다른 사람이 이 상서로운 조짐을 보고 다 위없는 성인의 밝은 지혜를 느끼게 하는 것은 바로 지혜의 과보이니, 이 여섯 가지가 고요함의 갈무리를 위한 도무극이니라.
어떤 것이 배꼽이 깊음을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그 수행이 날마다 나아가서 점점 깊은 경지에 이르러 이에 큰 도에 뜻을 두는 것은 바로 보시의 과보이며, 그 위신(威神)의 덕이 청정함으로써 마음에 두려움이 없고 고난을 느끼지 않음은 바로 지계의 과보이며, 마음가짐이 부드럽고 윤택하여 깊은 평화에 이르는 것은 바로 인욕의 과보이며, 그 행이 구족하여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음은 바로 정진의 과보이며, 마치 좋은 꽃처럼 부드럽고 안온하여 전일한 마음이 혼미하지 않음은 바로 선정의 과보이며, 그 배꼽에 결함이 없음으로써 길이 일체를 이롭게 하되 더하거나 덜함이 없는 것은 바로 지혜의 과보이니, 이 여섯 가지가 배꼽이 깊음을 위한 도무극이니라.
어떤 것이 구멍마다 낱낱이 털이 남을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그 털이 위로 솟고 오른편으로 쓸려 맑으면서 바르고 뭉쳐 있지 않는 것은 바로 보시의 과보이며, 그 털이 검푸르고 윤기가 흘러서 보는 이마다 기뻐함은 바로 지계의 과보이며, 털이 부드럽고 가늘고 매끄러우면서 빛나는 것은 바로 인욕의 과보이며, 그 빛깔이 윤택하여 더러움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바로 정진의 과보이며, 털의 빛깔이 부드럽고 보기 좋으며 각각 오른편으로 돌아가는 것은 바로 선정의 과보이며, 그 털이 각각 독립되어 엉클어지거나 서로 마찰되지 않고 모두 가지런함은 바로 지혜의 과보이니, 이 여섯 가지가 구멍마다 낱낱이 털이 남을 위한 도무극이니라.
어떤 것이 붉은 빛이 도는 금색(金色)을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그 빛깔이 불 속의 금과 같음은 바로 보시의 과보이며, 그 부드럽고 윤택한 빛깔이 더럽거나 거칠지 않음은 바로 지계의 과보이며, 아무런 흠 없이 청정하여 그 빛깔이 해나 달보다 더 빛남은 바로 인욕의 과보이며, 그 광명이 멀고 가까운 곳을 두루 비춤은 바로 정진의 과보이며, 때와 티끌이 없이 청명한 빛깔을 나타냄은 바로 선정의 과보이며, 그 광명이 미묘하고 빛깔이 평화스러움은 바로 지혜의 과보이니, 이 여섯 가지가 붉은 빛이 도는 금색을 위한 도무극이니라.
어떤 것이 사자의 가슴 같음을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그 몸매가 원만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음은 바로 보시의 과보이며, 그 몸이 한창때라 미묘하고 좋으며 우뚝한 덕이 있는 것은 바로 지계의 과보이며, 몸이 굳세고 강하여 함부로 집적거리는 자가 없는 것은 바로 인욕의 과보이며, 뭇 사람들이 우러러 볼수록 더욱더 보고 싶어하는 것은 바로 정진의 과보이며, 그 몸이 크고도 넓어서 마치 미치기 어려운 듯 함은 바로 선정의 과보이며, 몸이 금강(金剛)처럼 견고하여 파괴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지혜의 과보이니, 이 여섯 가지가 사자의 가슴 같음을 위한 도무극이니라.
어떤 것이 항상 훌륭한 등급을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그 몸의 소행이 구족하고 충만한 것은 바로 보시의 과보이며, 누구도 미치지 못할 만치 높아서 상서로움이 가득한 것은 바로 지계의 과보이며, 단정하고 뛰어나게 좋아서 보는 이마다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은 바로 인욕의 과보이며, 그 계행과 덕업이 평등하고도 원만한 것은 바로 정진의 과보이며, 그 상호를 살펴보건대 마치 찬란한 보배의 빛깔 같고 또 환쟁이[師工]가 그린 좋은 그림과 같은 것은 바로 선정의 과보이며, 부드럽고 윤택한 광명이 청정하여 티가 없는 것은 바로 지혜의 과보이니, 이 여섯 가지가 항상 훌륭한 등급을 위한 도무극이니라.
어떤 것이 팔이 긴 과보를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그 몸의 향내가 끊임이 없어서 모든 곳에 널리 들림은 바로 보시의 과보이며, 몸이 곧아서 바르고 단정하므로 움직일 수 없는 것은 바로 지계의 과보이며, 평화롭고 조용하면서도 견고하여 굴하지 않는 한편 그 마음이 조화를 이룸은 바로 인욕의 과보이며, 스스로 편 그 팔의 길이가 보통 사람들보다 뛰어나게 다름은 바로 정진의 과보이며, 걸음걸이가 조용하고 팔의 길이가 무릎 아래까지 내려와서 하늘 사람들까지 받들어 공경함은 바로 선정의 과보이며, 몸의 부드럽고 윤택한 광명을 나타내어 일체를 밝게 비춤은 바로 지혜의 과보이니, 이 여섯 가지가 팔이 긴 과보를 위한 도무극이니라.
어떤 것이 편편한 넓적다리를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몸의 넓적다리가 고르고 아름다워서 마음이 따라서 인자하고 뜻이 화락함은 바로 보시의 과보이며, 우뚝하고도 평탄한 그 모습을 누구도 견제할 이 없어 항상 자재로움은 바로 지계의 과보이며, 모든 것을 잘 분별하여 이르는 곳마다 아무런 환난 없이 편안함은 바로 인욕의 과보이며, 온 몸이 가지런하게 바르고 팔 다리가 모두 원만함은 바로 정진의 과보이며, 위의(威儀)의 광명이 높고 높아서 그 정수리의 모양을 볼 수 없는 것은 바로 선정의 과보이며, 모든 중생들이 우러러 뵙고는 사랑하고 존경하지 않는 이가 없음은 바로 지혜의 과보이니, 이 여섯 가지가 편편한 넓적다리를 위한 도무극이니라.
어떤 것이 머릿골[腦]이 충만함을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점점 깨달음이 원만해져서 공덕을 성취함은 바로 보시의 과보이며, 마음 자리가 견고하면서도 항상 평화스럽고 안락함은 바로 지계의 과보이며, 밝은 구슬처럼 깨끗하여도 스스로 훌륭한 체하지 않음은 바로 인욕의 과보이며, 평등한 마음으로 수행하되 게으르거나 그만두지 않음은 바로 정진의 과보이며, 몸과 입이 부드럽고 화락하여 그 마음이 안온한 것은 바로 선정의 과보이며, 한없이 온화하고 누그러워도 헐뜯어 무너뜨릴 수 있는 자가 없는 것은 바로 지혜의 과보이니, 이 여섯 가지가 머릿골이 충만함을 위한 도무극이니라.
어떤 것이 대구[鉤]와 자물쇠[鎖] 같음을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중생에게 구하는 것이 있음을 보면 항상 기뻐함은 바로 보시의 과보이며, 깨달음의 기쁨으로서 통달하지 못한 중생들을 점차로 깨우쳐 주는 것은 바로 지계의 과보이며, 그 각자의 덕을 널리 화동(和同)하여 서로 도법에 잘 의지해 행을 이룩함은 바로 인욕의 과보이며, 설법할 때에 모두 잠잠히 함께 듣고서 평등하게 받아 받들어 행하는 것은 바로 정진의 과보이며, 그 검푸른 광명이 찬란하게 멀리 비춤은 바로 선정의 과보이며, 세간의 일체 궁액에 얽매인 중생들로 하여금 스스로 해탈하게 함으로써 아무리 보아도 싫증나지 않는 것은 바로 지혜의 과보이니, 이 여섯 가지가 대구와 자물쇠 같음을 위한 도무극이니라.
어떤 것이 어금니가 희고 깨끗함을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이가 매우 희고 깨끗하며 고르게 나서 성글지 않음은 바로 보시의 과보이며, 부드럽고 윤이 나며 흰 빛깔이 좋아서 조금도 얼룩진 데가 없음은 바로 지계의 과보이며, 차례대로 가지런한 이가 마치 흰 연꽃처럼 고르고 안온함은 바로 인욕의 과보이며, 이가 단단하고 흴 뿐이지 검은 빛이 섞이지 않음은 바로 정진의 과보이며, 베풂을 건립해서 위태로움이 없이 널리 편안하게 하는 것은 바로 선정의 과보이며, 몸에서 윤택하고 부드러운 광명이 나와 그 빛을 보는 이마다 만족할 줄 모르고 더 보려고 하는 것은 바로 지혜이니, 이 여섯 가지가 어금니가 희고 깨끗함을 위한 도무극이니라.
어떤 것이 이가 고르고 가지런함을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아랫니가 가지런하여 어긋나거나 기울지 않음은 바로 보시의 과보이며, 위 아랫니가 다 부드럽고 윤택하여 거칠지 않음은 바로 지계의 과보이며, 차례대로 치밀하여 사이에 다른 것이 끼임이 없는 것은 바로 인욕의 과보이며, 그 이가 높거나 낮은 것이 없이 고루 박혀 있음은 바로 정진의 과보이며, 이가 헐거나 깨지지 않고 견고하면서 보기 좋은 것은 바로 선정의 과보이며, 아랫니는 바로 솟고 윗니는 바로 내려와 안온하고도 견고하여 보는 이마다 기뻐함은 바로 지혜의 과보이니, 이 여섯 가지가 이가 고르고 가지런함을 위한 도무극이니라.
어떤 것이 40개의 이빨을 가지기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그 40개의 이가 다 원만하여 빠진 것 없이 고르고 바름은 바로 보시의 과보이며, 이가 어긋나거나 기울지 않고 마치 수면(水面)처럼 가지런한 것은 바로 지계의 과보이며, 이가 특수하여 보통 사람들과 같지 않은 것은 바로 인욕의 과보이며, 이가 매끄러워서 사이에 끼이는 것이 없고 고르게 박혀 성글지 않음은 바로 정진의 과보이며, 이의 생긴 모양이 상서로워서 보는 이마다 다 이롭게 되는 것은 바로 정진의 과보이며, 이가 매우 굳게 박혀 있어 흔들리지 않으므로 사람의 뜻을 즐겁게 하는 것은 바로 지혜의 과보이니, 이 여섯 가지가 40개의 이빨을 가지기 위한 도무극이니라.
어떤 것이 넓고 긴 혀를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보살이 되었을 때 경전의 설법을 듣고 그 지극하신 말씀을 선택함은 바로 보시의 과보이며, 혓바닥의 더러움을 제거하고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되 입을 깨끗이 하여 그 이치를 펼치는 것은 바로 지계의 과보이며, 입으로 하는 말이 언제나 평등하여 치우치지 않음은 바로 인욕의 과보이며, 혀가 매우 넓고도 길며 연꽃 같은 광명이 밝게 빛나는 것은 바로 정진의 과보이며, 그 생김새가 미묘하여 각각 특별하고 다른 것은 바로 선정의 과보이며, 혀가 마치 백 개의 이파리 같고 기이한 빛깔이 멀리까지 비추는 것은 바로 지혜의 과보이니, 이 여섯 가지가 넓고 긴 혀를 위한 도무극이니라.
어떤 것이 맑고 깨끗한 음성[梵聲]의 과보를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보살도를 행하기 위해 경전을 선포하되 높은 소리로 외쳐 뭇 사람들로 하여금 분명히 듣고서 의심을 없애게 하는 것은 바로 보시의 과보이며, 음성이 매우 사랑스러워 듣는 이마다 다 기뻐하는 것은 지계의 과보이며, 갖가지 음성으로 각각의 이치를 선포함은 바로 인욕의 과보이며, 전에 없던 음성으로 그 조화로움에 아무도 미칠 수 없음은 바로 정진의 과보이며, 음성이 항상 조화롭고 말씨가 안온하여 끊어짐이 없는 것은 바로 선정의 과보이며, 모든 음성이 슬픔과 기쁨을 화합하여 뭇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바로 지혜의 과보이니, 이 여섯 가지가 맑고 깨끗한 음성의 과보를 위한 도무극이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희왕아, 장차 몸과 마음을 순조롭게 하여 항상 평화롭고 안락하게 하는 것은 바로 보시의 과보이며, 몸소 몸과 입과 마음의 평정을 닦아 고요하고 편안한 경지에 드는 것은 바로 지계의 과보이며, 열 가지 착한 일을 일으켜서 뜻을 하늘사람에 두고 도업(道業)을 행하게 한다면 이것이 바로 인욕의 과보이며, 온갖 교훈으로 모임의 대중들을 열어 교화해서 조금도 잘못을 범하지 않는 것은 바로 정진의 과보이며, 자비롭고 화락한 음성으로 부드럽게 중생들에게 고함은 바로 선정의 과보이며, 그 음성으로 법을 펼쳐 교화시켜 뭇 여우같은 의심들을 결정지어 깨달아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는 것은 바로 지혜의 과보이니, 이것이 이른바 여섯 가지가 일이니라.
어떤 것이 맛 중에 가장 좋은 맛을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모든 공양하는 음식의 맛이 특수하여 뭇 사람들의 뜻에 맞음은 바로 보시의 과보이며, 베풀어주는 음식들이 안전하고 상쾌하여 아무런 걱정이 없음은 바로 지계의 과보이며, 받는 이와 베푸는 이의 마음이 다 한 가지로 합쳐져서 다툼이 없음은 바로 인욕의 과보이며, 베풀어주는 공양 거리가 많거나 적거나 간에 공평하게 하여 몸에 질병이 없도록 하는 것은 바로 정진의 과보이며, 음식이 매우 달고 맛있어서 더러운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은 바로 선정의 과보이며, 뜨겁거나 차갑지 않아 그 맛의 좋고 부드러움이 입에 맞는 것은 바로 지혜의 과보이니, 이 여섯 가지가 맛 중에 가장 좋은 맛을 위한 도무극이니라.
어떤 것이 사자 같은 뺨을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사자의 모습처럼 그 등이 넓고 편편하여 삼계를 홀로 다님은 바로 보시의 과보이며, 윤택한 광명과 미묘한 빛깔이 마치 연꽃 같고 걸음걸이가 사자와 같음은 바로 지계의 과보이며, 사자처럼 앞으로 나아가되 두려움이나 어려울 것이 없음은 바로 인욕의 과보이며, 큰 신통이 높고도 높아 거룩하고도 빼어남을 나타내는 것은 바로 정진의 과보이며, 그 밖의 모든 설법이 듣는 이를 즐겁게 함으로써 일체 중생들의 존경을 받는 것은 바로 선정의 과보이며, 그 눈으로 본 이는 스스로 귀의하지 않음이 없어서 기뻐하는 낯빛으로 공덕을 받들어 존경하되 싫증냄이 없음은 바로 지혜의 과보이니, 이 여섯 가지가 사자 같은 뺨을 위한 도무극이니라.
어떤 것이 눈이 소와 같고 달과 같음을 머금어 오기 위한 도무극의 여섯가지 일인가. 그 눈이 마치 초승달처럼 가늘고 미묘하면서 길게 뻗어 보기에 좋은 것은 바로 보시의 과보이며, 그 눈이 분명하고 또렷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것은 바로 지계의 과보이며, 그 눈의 광명이 부드럽고 곱고 선명하여 견줄 데 없이 뛰어남은 바로 인욕의 과보이며, 얼굴이 비겁하거나 연약하지 않고 윤택한 광명이 넘치는 것은 바로 정진의 과보이며, 미묘하고 좋은 얼굴빛과 둥글고 바른 몸 모양이 마치 해가 처음 돋을 때 같음은 바로 선정의 과보이며, 광명이 해와 달처럼 팔방을 비추어서 위아래의 모든 어두움을 물리침은 바로 지혜의 과보이니, 이 여섯 가지가 눈이 소와 같고 달과 같음을 위한 도무극이니라.
어떤 것이 눈동자가 검푸른 빛을 띄기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만약 부처님을 뵌다면 마음이 기뻐서 오롯한 마음으로 귀의하여 존경하는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바로 보시의 과보이며, 눈으로 무엇을 보더라도 눈동자가 고요해서 하나도 바르지 않음이 없는 것은 바로 지계의 과보이며, 눈동자가 미묘하고도 보기 좋아 나무랄 데가 없으므로 멀거나 가깝거나 간에 모두 다 조복시키는 것은 바로 인욕의 과보이며, 눈길이 미치는 곳에는 다치거나 해함이 없고 많은 이익을 보태주는 것은 바로 정진의 과보이며, 멀리 깊은 이치를 보아 모든 맺힌 것을 풀어냄은 바로 선정의 과보이며, 바라봄에 싫증냄이 없고 한량이 없으면서 평등하게 보는 것은 바로 지혜의 과보이니, 이 여섯 가지가 눈동자가 검푸른 빛을 띄기 위한 도무극이니라.
어떤 것이 코가 앵무새 같음을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코가 앵무새 같이 높으면서도 평평하고 바르고도 미묘함은 바로 보시의 과보이며, 항상 고요하여 삿됨이나 그릇됨이 없는 것은 바로 지계의 과보이며, 코가 보기 좋고 윤택하여 마치 밝은 구슬처럼 빛나는 것은 바로 인욕의 과보이며, 부드러우면서도 자세하고 어질고도 온화한 위의를 받들어 우러르지 않는 이가 없음은 바로 정진의 과보이며, 뭇 사람들이 보고는 공경하고 사랑하기를 그치지 않되 그러고도 만족하지 않음은 바로 선정의 과보이며, 온갖 생각을 버림으로써 의지하는 곳이 없고 어떤 향도 두지 않되 도(道)로써 향을 삼음은 바로 지혜의 과보이니, 이 여섯 가지를 코가 앵무새 같음을 위한 도무극이라고 하느니라.
어떤 것이 정수리가 상투 모양이기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그 상투가 둥글면서 자연스럽게 솟아올라 광명이 밝게 빛나는 것은 바로 보시의 과보이며, 상투의 머리카락이 검푸른 빛을 띄며 한량없이 빛나고 각각 오른편으로 돌아가는 것은 바로 지계의 과보이며, 상투의 빛나는 광명이 끝없이 비춤은 바로 인욕의 과보이며, 살상투가 충만하여 삿되거나 그릇됨이 없고 그 위의가 안정됨은 바로 정진의 과보이며, 매끄럽게 돌아가서 서로 어울리어 끊어짐이 없되 한데 뒤섞여 엉클어지지 않음은 바로 선정의 과보이며, 광명을 떨치어 끝없이 비춤은 바로 지혜의 과보이니, 이 여섯 가지를 정수리가 상투 모양이기 위한 도무극이라고 하느니라.
어떤 것이 여래의 살상투를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털에서 생기는 푸른 빛깔이 더없이 검푸러서 매끄럽고 빛나기가 유리의 광명보다 더한 것은 바로 보시의 과보이며, 머리털이 오른편으로 돌아가되 각각 그 뿌리를 따라서 서로 의지하지 않음은 바로 지계의 과보이며, 그 몸이 청정하여 마치 연꽃이 진흙물에 더럽혀지지 않는 것처럼 먼지나 때가 붙지 않음은 바로 인욕의 과보이며, 32개의 위아래의 모든 하늘들도 정수리를 볼 수 없는 것은 바로 정진의 과보이며, 삼계의 중생들이 죄다 그 위덕(威德)이 멀리까지 나타남을 즐겨보지 않음이 없는 것은 바로 선정의 과보이며, 말씀이 하늘에서 내리는 비 같아 더럽힐 수 없고 깨끗하기가 허공과 같으며또 어떤 것이 덜어 없애는[蠲除]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옛날 가이라위(迦夷羅衛) 국토에 두루 돌아다니면서 7년 동안 교화하여 그들의 궁액과 죄업을 죄다 없애고 환난을 제거함은 보시의 과보이고, 삼계에 돌아다니지만 온갖 더러운 번뇌[垢]에 물들지 않음은 지계의 과보이며, 방편으로 3독(毒)을 소멸시키는데 아무런 마음이 나지 않음은 인욕의 과보이고, 중생의 생사와 죄복(罪福)을 관찰하여 자비로운 마음으로 평등하게 베풂은 정진의 과보이고 그 환난에 벗어나기 위해 고요한 생각을 분별함으로써 8정도[八品]에 이르러 잊어버리지 않음은 선정의 과보이며, 영원히 망상을 없애고 탐욕을 끊어 무명의 해악을 소멸하고 도의 지혜를 일으켜 모든 법을 허망하게 여기지 않는 마음을 제거하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지혜 도무극을 받들어 행함은 지혜의 과보이니, 이것이 여섯 가지 일이니라.
음성은 우레와 같은 것은 바로 지혜의 과보이니, 이 여섯 가지가 여래의 살상투를 위한 도무극이니라.
어떤 것이 나가 노니는 걸음걸이를 위한 도무극의 여섯 가지 일인가. 홀로 걸어 나가도 아무런 걸림이 없음은 바로 보시의 과보이며, 오롯하지 못한 마음을 버리고 불제자답게 넓고도 편안한 뜻을 행함은 바로 지계의 과보이며, 무앙수(無央數)의 하늘들이 가서 뵙고 받들어 공경하여 땅에 엎드려 스스로 귀의함은 바로 인욕의 과보이며, 자기를 지킬 뿐 눈에 아무런 집착이 없음은 바로 정진의 과보이며, 용감하여 높은 곳에서 노닐어 신족(神足)이 끝이 없음은 바로 선정의 과보이며,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아까워하지 않고 베풀어서 도의 가르침을 널리 펼치는 것은 바로 지혜의 과보이니, 이 여섯 가지가 나가 노니는 걸음걸이를 위한 도무극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