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조사와 명학동지
이조시대에 경상도 동래군 금정산(金井山) 범어사(梵魚寺)에 명학(明學)이란 스님이 있었다.
그는 사판승(事判僧)으로 절 방앗간 소임을 맡아보고 또 사중의 전답 관리의 책임을 도맡아서 수천석이 넘는 사중재산을 관리하였다.
그의 근면으로 사중재산도 많이 늘었지만, 자기도 보수 받는 것을 근검저축하고, 늘 방앗간에서 벼를 찧고, 쌀을 아껴 땅에 떨어져서 사람의 발밑에 밟힌 쌀을 주워 모은 것도 적지 않았다.
이렇게 모은 쌀을 장리쌀로 놓아서 당대 천석을 추수하는 부자중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돈을 주고 아무 내용 없는 이름뿐인 동지(同知)라는 벼슬을 사서 행세하였으므로 남들이 명학동지(明學同知)라고 불렀었다.
그러나 그 스님은 학문과 지식은 없었으나 마음이 너그럽고 인자하며 또 보사(保寺)를 잘 하였기 때문에 공심이 장하다고 원근에서 칭송이 자자하였다.
그에게 상좌가 많아서 백여명의 권속을 거느리게 되었으므로 이 절 안에서는 큰 세력을 잡고 주관노릇을 하게 되었다.
그에게는 이 많은 권속 가운데 영원(靈元)이란 상좌가 있었는데, 그는 참선 공부만하는 수좌(首座)로서 재산 욕심을 초월한 사람이라 운수납자(雲水納子)로 명산대찰을 찾아서 선방에 들어가 참선공부를 많이 하여 한 소식을 얻을 만하게 되었다.
그래서 명학동지도 그를 기특하게 생각하고 항상 말끝마다,
「나는 상좌가 백여명이 되어도 쓸만한 상좌는 우리 영원이 하나밖에 없을거야…」
하고 칭찬하였다.
어쩌다가 영원이 찾아오면,
「내가 나이가 많아 언제 죽을지 모르니 내가 죽거든 자네가 천도나 잘하여주게…」
하고 부탁하기도 하였다.
운수납자로 다니던 영원수자는 금강산 장안사 뒤 옛날 영원조사(靈源祖師)가 계시던 영원암에서 참선공부를 하고 있었다.
어느 해 여름인데, 선정에 들어있자니까 그 앞에 시왕봉(十王峯)이 늘어선 남혈봉(南穴峯) 밑에서 죄인을 다스리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듯 울려나왔다.
살펴보니 염라대왕이 좌정하고 판관 녹사가 늘어서 있는데,
「이번에는 범어사 명학동지를 잡아 오너라.」
한 즉 지옥사자가
「네이…」
하고 대답하더니, 이번에는
「범어사의 명학동지를 잡아들였소.」
하고 명학동지를 끌어내어 뜰 앞에 꿇어 앉힌다.
염라대왕이 문초하기를
「네가 범어사에서 살던 명학동지냐?」
「네, 그렇습니다. 제가 명학동지 옳습니다.」
「너는 일찍이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으면 계행을 잘 지키고 참선공부나 염불 공부를 하여 도를 하여
도를 닦아야 할 것이어늘 어찌하여 상구보리(上求普提)와 하화중생(下化衆生)을 망각하고 재산만 탐하다가 죄를 짓고 이런 곳으로 들어 왔느냐?」
「저는 공부는 비록 못하였으나 죄를 지은 일은 없습니다.」
「네가 중이 되어서 재물을 모아 천석꾼 부자가 되었는데 죄가 없다고 하느냐?」
「그것은 제가 재물을 모으는데 재미를 붙여서 쓸 것을 아니쓰고 먹을 것을 먹지 않고 모은 것이지,
남을 못살게 하거나 망하게 하여 부자가 된 것이 아니옵기로 저는 죄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놈 잔소리 마라. 너는 부처님이 설하신 5계와 10계를 범한 죄인이니라. 살생을 하지 말라는 것이 첫째 불살생(不殺生)계인데, 너는 쌀 곡간에 쥐가 많이 들끓는다고 고양이를 수 십마리씩 키워서 쥐를 잡아먹게 하고, 도둑질을 말라는 것이 둘째의 불투도(不渝盜)계인데, 너는 쌀을 모두 주워 네 자루에 담아 네 것으로 삼았다.
여자를 관계하지 말라는 것이 셋째의 불사음(不邪淫) 계인데, 너는 예쁜 여자를 보면 탐을 내고 술집 주모에게 쌀을 주고 간음을 하였다.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것이 넷째의 불망어(不妄語)계인데, 너는 사중건물 중수때 시주 받은 많은 금액을 권선책에 적어놓고, 부득이 내기는 내되, 내기가 싫어서 질질 끌며 쓸 때에 쓰지 못하게 때를 어기었으니 이는 불망어(不妄語)계를 어기었다.
술을 마시지 말라는 것이 다섯째의 불음주(不飮酒)계이거늘, 너는 술을 곡차라고 마시었으니, 너는 이와 같은 가장 중대한 5계를 범한 죄인이 아니냐!」
계속해서 말하기를
「그리고 중의 신분으로 높고 넓은 평상에 앉지 말며 눕지도 말라는 것인데, 너는 그것을 어기었으니 여섯째 계를 범하였고, 중은 비단옷을 입지 말고 중은 몸을 꾸미지 말라는 것인데 너는 그것을 범했으니 일곱째 계를 파했다.
또 중은 노래하지 말고 춤추지 말라는 것인데 너는 생일날과 환갑·진갑을 차리던 날 속인과 더불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으니 여덟째 계를 범했고,
또 중은 금은전보(金銀錢寶) 등의 재산을 모으지 말라는 것인데 너는 그것을 범했으니 아홉째 계를 파했고, 중은 저녁밥을 먹지 말고 오후불식(午後不食)을 하고 소 짐승을 소작인에게 의뢰하여 기르고 또 팔아서 돈벌이를 행하였으니 열째 계를 파하였나니, 너는 이렇게 5계와 10계를 모조리 범하고 파하였는데 어찌 죄가 없다고 하겠느냐!」
「저는 재산을 모은 것은 보사중(保寺中)하고 행자선(行慈善)을 하려는 것이었고 그 다음에 자질구레한 죄는 짓기도 하고, 아니 범한 것도 같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이놈, 그래도 자백을 아니하고 버티는 것이냐!」
「버티고 불복하려는 것이 아니오라 사실상 그렇습니다.」
「여봐라, 업경대(業鏡臺)를 가져오너라. 업경대의 심판을 보여 주자!」
하고 염라대왕이 업경대에 비추니 소소역력하게 하나도 빠짐없이 스크린에 나타나듯이 명학동지의 행장이 그림같이 나타났다.
이것을 본 명학동지는 머리를 숙였다.
「네가 지금 똑똑하게 다 보았겠지. 이래도 딴 말을 하겠느냐!」
「할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네가 중이었던 것을 감안해서 무서운 지옥은 보내지 아니하고 황사망의 구렁이 털을 씌워서 금사굴로 보내는 것이니, 들어가서 한 천년 엎디어서 반성하여 보아라.」
고 하였다.
이때에 명학동지는
「우리상좌 영원의 말만 들었어도 이렇게는 되지 아니 하였을 것인데. 내가 듣지 않았기 때문에 금사망을 쓰게 되었구나. 영원아, 영원아, 네가 나를 천도하여다오.」
이러한 소리가 영원대사의 귓전에 쟁쟁하게 들려왔다.
이때 영원수좌는 곧 시왕봉(十王峯)아래 금사굴(金蛇窟) 앞에 가서 염불과 독경을 하여주고 장안사 영원암을 떠가서 범어사에 갔더니, 명학동지의 49재날이 되어서 상좌도 백 여명이 모이고 본사 스님과 인근 각사의 스님네들이 모인외, 전답작인까지 수백명이 모여서 법석거리고 있었다.
다른 상좌들은 영원대사를 보고,
「초상 때는 오지 않더니 49일이 지나면 재산 분배 문제가 생길터이니, 논마지기나 타 볼까하고 왔군…」
하고 빈정거렸다.
영원대사는 그런 소리는 듣는둥 마는둥하고 쌀을 구하여 멀겋게 죽을 쑤어 큰 그릇에 담아 창고로 가서 문을 열고 볏섬과 쌀섬과 돈 항아리 사이에 놓고,
「스님, 스님. 나오셔서 죽을 잡수시옵서.」
하였더니 큰 기둥 같은 누런 구렁이가 나온다.
나의 이 공양을 받으소서
어찌 아난의 공양과 다르리까.
주린 창자를 채우소서.
업화가 금방 서늘하리라.
탐·진·치의 삼독을 버리고
항상 불·법·승에게 귀의 하소서
생각 생각에 보리심만 가지면
가는 곳 마다 안락하리라.
이렇게 외우고 축원하니 구렁이가 죽을 먹었다.
구렁이가 먹기를 다한 뒤에 영원수좌는
「스님, 스님. 생전에 재물을 탐하여 3보를 외면하고 계행을 지키지 않고 인과(因果)를 불신하시더니 이 모양이 되었구려.이 법식을 자시고 축원을 들었거든 곧 속히 해탈하여 벗으시옵소서!」
하였더니, 구렁이가 광문 밖으로 기어 나와 머리를 층대 돌에 짓찧어서 죽었다.
그런데 구렁이 밑에서 파랑새가 나오더니, 그대로 날아가는 것이었다.
영원수좌가 놓치지 않고 뒤쫓아가니 어떤 촌가의 전씨(全氏)집 안방으로 들어간다.
이튿날 영원수좌가 그 전씨 집에 가서 말하기를
「당신네가 열 달만 지나면 귀동자를 낳을 것이고, 아이가 7세만 되거든 나를 주어 산에 들어가서 도를 닦게 하시오. 그러면 7년 후에 다시오리다.」
하고 다시 금강산 영원암으로 갔다. 7년 후에 어린애를 데리고 영원암으로 갔다.
여기서 참선법을 가르쳤는데, 한 방편을 써서 문창호지에 바늘구멍을 하나 뚫어 놓고 어린이에게 말하되
「이 문창호지의 바늘구멍으로 큰 황소가 들어올터이니, 그 황소가 들어올 때까지 바늘구멍만 내다보고 일심으로 황소를 생각하여라.」
하였다.
그랬더니 어느 날 어린아이가 깜짝 놀라며,
「황소가 바늘구멍으로 막 들어옵니다.」
고 부르짖는 것이었다. 그 아이는 도를 통해서 숙명통(宿明通)을 얻었던 것이다.
그래서 영원수좌를 보고 말하되
「스님이 내 전생에 나의 상좌였구려! 그런데 이제는 스님이 나의 스님이 되고, 내가 스님의 어린상좌가 되었군요.」
「그렇다. 이것이 불교에서 서로 바꿔지는 인과라는 것이다. 다행한 일이다.」
하고 영원수좌는 7세동자를 꽉 끌어안고 빰을 대고 문질렀다. 참으로 희안한 일이다.
두 스승 상좌가 전생일을 얘기하며 웃었다.
그리고 이 두 사좌(師佐)는 같은 도인으로서 오래도록 금강산에 있으면서 수도정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