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제스님과 홍각법사
담제(曇諦) 스님은 그 조상이 강거(康居)사람으로, 후한(後漢) 영제(靈帝) 때 오흥(吳興)에 옮겨와 살았다.
스님의 어머니 황씨가 낮잠을 자는데, 꿈에 한 스님이 나타나 황씨를 어머니라고 부르고, 불자(拂子) 하나와 쇠로 만든 서진(書鎭) 하나를 주었다.
황씨가 잠이 깨어 보니 그 두 가지가 자기 손에 들려 있었다.
혼자서 기이하게 여기고 남에게는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그 때부터 태기가 있어 아들을 낳으니 이가 곧 담제였다.
스님이 다섯 살 때 어머니가 불자와 서진을 보여주니까,
「그것은 진왕(泰王)이 제게 준 것입니다.」
하였다.
어머니가 물었다.
「너는 이걸 어디다 두었느냐?」
「그건 잘 기억이 안납니다.」
열 살이 되자 출가했는데, 스승을 찾아 배우는 일이 없고, 스스로 힘써서 깨달음이 크게 열렸다.
뒤에 아버지를 따라 번등(樊鄧)엘 갔다가 관중(關中)의 스님 약도인(業道人)을 만나자 갑자기 도인의 이름을 불렀다. 도인이 물었다.
「너는 어떻게 내 이름을 알고 있느냐?」
「도인은 내 수하의 사미(沙彌)었습니다. 도인이 예전에 여러 스님들을 위해 들에 나가서 나물을 뜯다가 멧돼지에게 물려 기절했었는데, 그걸 잊어 버렸습니까?」
하였다.
그런데 약도인은 전에 홍각법사(弘覺法師)의 제자가 되어 있을 때, 다른 스님들을 위해 나물을 뜯으러 갔다가 멧돼지에게 물린 일이 있었는데, 도인은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담제의 아버지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으니, 아버지는 담제가 출생하게 된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불자와 서진까지 보여주었다.
그제야 약도인은 지난 일을 깨닫고 울면서 말했다.
「저의 선사(先師)는 홍각법사였습니다. 스승께서 전에 진나라(秦)임금 요장(姚萇)에게 법화경을 강설하실 때 저는 도강(都講)이었는데, 요장이 스승께 드렸던 두 가지 물건이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그려.」
날짜를 따져 보니, 홍각법사가 입적한 날이 바로 이 두 가지 물건을 황씨부인이 받은 날이었다.
그리고 약도인은 나물 뜯던 일도 기억이 나서 더욱 슬픔이 복받쳐 올랐다.
담제스님은 뒤에 여러 나라에 유학하여 보고 들은 것을 다 기록해 두었고 법화경과 대품(大品)과 유마경(維摩經)을 각각 열 다섯번씩 강설하였는데, 송나라(宋) 원가(元嘉) 말년에 세상을 떠났다.
<高信傳·弘贊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