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점사 53불

유점사 53불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 문수보살은 다른 큰 스님들과 함께 두루 돌아다니면서 법문을 설하였다.

여러 대중이 부처님을 뵈옵지 못한 것을 개탄하므로 문수보살은 금으로 불상(佛像)을 조성케 하여 그중 부처님의 모습을 많은 53존을 골랐다.

다시금 큰 철로 종을 만들어 사실을 기록한글과 함께 53존 불상을 종속에 모시고 쇠 덮개로 종을 덮고는 잘 뜨게 하여가지고 바다에 띄웠다.

문수보살은

「석가모니의 얼을 담은 화신인 53불이시여, 인연 있는 나라에 닿으셔서 널리 불법을 펴시옵소서.」

하고 빌었다.

천룡(天龍)이 이것을 호위하고 『월시국』(지금의 사말간트라지방)에 이르니 국왕은 부처님의 존상을 뵈옵고 기쁘게 생각하며 절을 지어 모시었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그 절에 불이 났는데, 왕은 꿈속에서,

「떠나야겠으니 만류를 하지 마라.」

는 말을 듣고 애석함이 비할 데 없었으나 다시금 백금으로 포장하여 바다에 도로 띄워 배송하였다.

오랜 세월동안 원거리 항해를 하며 바다를 지나 마침내 신라의 안창현(安昌縣 · 지금의 강원도 간성)에 닿았다.

그 고장의 현재(縣宰), 노춘(慮春)이란 두 사람이 이 소식을 듣고 달려가니 이미53불은 떠났는데, 이상하게도 초목이 금강산 쪽으로 향해 쏠려 있고 큰 물건이 밀려간 자국이 완연하였으므로 그 흔적을 따라 30리쯤 나아갔더니 문득 종소리가 들리는지라 그 곳을 찾아가니 경치 좋은 못이 있는데 종(鍾)은 누릅나무에 걸려 있었고 불상은 못가에 늘어않아 있었다.

밝은 날인데도 아름다운 구름이 펼쳐 있었고 향기가 그윽하였는지라 노춘 현재 두 사람은 그 부처님들께 무수히 합장배례하고 그 곳에다 절을 지어 53불을 모시었으니 유점사(楡岾寺)가 바로 그 절이다.

때는 신라 남해왕 원년이라 중국에서 처음 지었다는 백마사(白馬寺)보다 63년 앞지른 셈이 되는 것이다. 지금도 유점사에는53불이 월시국에 잠시 머물렀던 인연으로 하여 『월시왕자』라는 사당이 있고,

새 떼가땅을 쪼아서 팟다고 하여 『조탁정』이라는 물도 있다.

<韓國寺訓全書·三國遺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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