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의 말세 우물
세조가 왕위에 오르고 몇 해가 지난 어느 해 여름 오랜 가뭄으로 산하 대지는 타는 듯 메말랐다.
더위가 어찌나 기승을 부렸던지 한낮이면 사람은 물론 짐승들도 밖에 나오질 못했다.
그리던 어느 날 한 스님이 지금의 충청북도 사곡리 마을을 지나며 우물을 찾았다.
더위에 먼 길을 오느라 갈증이 심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스님의 눈엔 우물이 보이질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스님은 어느 집 사립문을 밀고 들어섰다.
「주인 계시니까 ? 지나가는 객승 목이 말라 물 한 그릇 얻어 마실까 합니다. 」
「대청마루에 잠깐 앉아 계세요 곧 물을 길 어 올리겠습니다. 」
주인 아낙은 길어다 놓은 물이 없다며 물동이를 이고 밖으로 나갔다.
스님은 아낙의 마음 씀이 고마워 대청마루에 않아 땀을 식히고 있었다.
그러나 물 길러간 아낙은 몇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이상하게 생각한 스님은 목마른 것도 바쁜 길도 잊은 채 호기심이 생겨 아낙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저녁 무렵, 아낙은 얼마나 결음을 재촉했는지 숨을 몰아쉬며 한손으로 구슬땀을 닦으면서 물동이를 이고 왔다. 「스님,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
아낙은 공손히 물을 떠 올렸다.
우선 시원한 물을 마신 스님은 궁금증을 풀양으로 아낙에게 물었다.
「거 샘이 먼가 보군요.』
「이 마을엔 샘이 없사옵니다. 여기서 10리쯤 가서 길어온 물이옵니다.」
아낙의 수고를 치하한 스님은 무슨 생각에선지 짚고 온 지팡이로 마당을 세 번 두들겨 보았다.
『과연 이 마을은 물이 귀하겠구려. 마을 땅이 층층이 암반으로 덥혀 있으니 원‥‥그러나 걱정 마시오. 내 주인 아주머니의 은공에 보답키 위해 좋은 우물 하나를 선사하고 가리다.」
이 말을 남긴 스님은 그 집을 나와 마을구석구석을 살핀다.
동네 한복판에 이르러 스님은 큰 바위에 다가서서 역시 지팡이를 들어 세 번 두들기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우물을 파다가 도승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청년들에 게 일렀다.
「이 바위를 파시오.」
「스님, 여기는 바위가 아닙니까? 물이 나을 리 만무합니다. 」
청년들이 믿기 어렵다는 듯 말했으나 스님의 표정은 태연자약할 뿐 아니라 엄숙하기까지 했다.
「자, 어서 여길 파시오. 겨울이면 더운물이 솟아날 것이고 여름이면 냉차 같은 시원한 물이 나을 것 입니다. 뿐 아니라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고 장마 져도 넘치지 않을 것이오.』
청년들은 도승의 말에 위압당한 듯 어안이 벙벙했다.
이때 한 청년이 앞으로 나서더니 스님의 말씀을 믿고 한번 파보자고 제의 했다.
장정들이 밤낮으로 사흘을 파도 물줄기는 보이질 많았다.
스님은 계속 팔 것을 명했고, 청년들은 내친걸음이니 시키는 대로 했다.
닷새쯤 봤을 때다 바위틈 속에서 샘이 솟기 시작했다 밝고 깨끗한 물이 콸콸 흘러 금방 한길 우물 깊이를 채웠다.
청년들은 기쁨을 감출 수 없어 서로 부여안고 울고 춤을 쳤다. 샘물이 솟는다는 소문에 온 마을이 뒤집혔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우물 구경하러 모여 들었고 물을 마시며 기매했다.
그들에겐 생명의 샘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 모습을 아무 표정 없이 지켜보던 스님이 입을 열었다.
「자, 조용히 하고 소승의 말을 들으세요. 앞으로 이 우물은 넘치거나 줄어드는 일이 없을 것이나 무슨 변이 있는 날에는 나라에 큰 변이 있을 것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스님은 들은 체도 않고 말을 이었다.
「지난날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 임금을 폐하고 왕위에 올랐지만, 만약 이 우물이 넘치는 날에는 그보다 몇 배 더 큰 변란이 일어 날 것 입니다. 」
「스님, 이 우물이 그렇게 무서운 우물이면 차라리 지난날처럼 10리 밖 개울물을 길어다 먹고 살겠습니다. 」
「너무 걱정들 마시오. 이 우물이 세 번 넘치는 날이면 이 세상은 말세가 되니까, 그 때 여러분은 이 마을을 떠나시오.」
이 말을 남긴 스님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표연히 자취를 감췄다.
마을 사람들은 기쁘기도 했지만 한편 으로 두려움도 없지 않았다.
이들은 모이기만 하면 비슷한 말을 주고받았다.
『평생 숙원인 우물이 생기긴 했네만· 」
「과연 기이한 일일세 그려.」
「그 도승 말을 너무 염려할 것 없으이.」그러나
「우물이 세 번만 넘치면 말세가 온다.」
는 소문은 차츰 널리 퍼져나갔다.
「과연 우물이 넘칠 것인가.」
사람들의 입에서 화제가 되는 동안 세월은 어느덧 몇 년이 지났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물 길러 나간 아낙하나가 우물가에서 기절을 했다.
우물이 철철 넘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말은 삽시간에 이웃 마을까지 퍼졌다. 사람들은 무슨 변이 일어날지 몰라 안절부절 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왜구가 쳐들어 왔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이 난이 곧 임진왜란 이었다.
또 한번 이 우물이 넘친 것은 1950년 6월 25일. 그날도 이 우물은 새벽부터 철철 넘치고 있었다 한다. 6 · 25의 민족적 비극을 알리기 위한 우물의 충정이었다고 마을사람들은 지금도 말하고 있다. 아무 일 없이 정량을 유지한 채 조용히 샘솟고 있는 이 우물이 과연 또 넘칠 것인가.
그리고 스님의 예언대로 세상의 종말이 올 것인가. 약 50호의 농가가 평화롭게 살고 있는 충북 증평군 증평읍 사곡리 마을의 말세우물. 아무리 많이 퍼 써도, 또 가물거나 장마가 들어도 한결같이 줄지도 늘지도 않은 채 그 깊이만큼의 정량을 유지하고 마을 사람들의 식수가 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 우물이 지닌 전설을 자랑처럼 아끼며 부처님 받들듯 위한다고 한다.
한 스님의 신통력과 예언은 후세인들에게 신비의 전설로써 뿐 아니라 자비의 뜻과 삶의 정도를 일깨워 주고 있다.
<한국불교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