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아함십보법경(長阿含十報法經) 01. 상권

장아함십보법경(長阿含十報法經)

후한 안식국삼장 안세고 한역

장아함십보법경(長阿含十報法經) 01. 상권

장아함십보법경(長阿含十報法經) 02. 하권


장아함십보법경(長阿含十報法經) 01. 상권

이와 같이 들었다.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 계셨다.

이 때 현자(賢子) 사리왈(舍利曰:舍利弗)이 여러 비구에게 설법을 듣도록 청하였다.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마지막도 좋으며, 슬기로움도 있고 교묘함도 있으며, 청정(淸淨)과 번뇌의 제멸(除滅)을 완전히 갖추어 구경(究竟)에 이르게 하는 가르침을 설하리니, 잘 들으시오.

그것은 하나에서 시작해 하나씩 증가하여 열에 이르는 법이니, 잘 듣고 마음을 기울여 마음에 새기고 진리의 말씀[如言]을 잘 들으시오.”

여러 비구들은 현자 사리왈에게 청하였다.

“듣고 싶습니다.”

사리왈이 곧 말하였다.

“하나에서 시작해 하나씩 증가하여 열에 이르는 법이 있으니, 이 모두는 무위(無爲)를 성취하게 하고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하며 모든 번뇌를 없애는 것입니다.

그 첫째의 한 가지 법은 수행자가 구경의 무위(無爲)를 이루기 위하여 행(行)을 오로지 지키는 것입니다.

둘째의 한 가지 법은 마음이 몸을 떠나지 않도록 사유(思惟)하는 것입니다.

셋째의 한 가지 법은 알아야 할 세간(世間)의 거침과 미세함입니다.

넷째의 한 가지 법은 버려야 할 교만입니다.

다섯째의 한 가지 법은 마음에 새겨야 할 근본적인 관찰[本觀]
입니다.

여섯째의 한 가지 법은 근본적인 관찰을 많이 하는 것입니다.

일곱째의 한 가지 법은 들어가기 어려운 중지하지 않는 선정[不中止定]입니다.

여덟째의 한 가지 법은 마음[意]을 그치게 만드는 것입니다.

아홉째의 한 가지 법은 모든 사람들이 음식[食]에 의지해 살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열째의 한 가지 법은 마음에 의심이 없도록 증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수행자의 열 가지 법입니다. 이것은 그르지 않고 이것은 다르지 않으며, 진실[諦]하고 여여[如]하며, 미혹되지 않고 전도되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은 여실하게 지혜로운 마음으로 관찰한 것입니다.

그리고 첫째의 두 가지 법은 수행자가 구경의 무위를 얻기 위해선 마땅히 뜻을 지니고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의 두 가지 법은 더욱 열심히 수행해야 할 지(止)와 관(觀)입니다.

셋째의 두 가지 법은 마땅히 알아야 할 명(名)과 자(字) 입니다.

넷째의 두 가지 법은 버려야 할 어리석음과 세간의 애착입니다.

다섯째의 두 가지 법은 마땅히 없애야 할 남부끄러움 없음[不愧]과 제 부끄러움 없음[不]입니다.

여섯째의 두 가지 법은 결정하기 어려운 두 가지 법인 부당함과 타당함입니다.

일곱째의 두 가지 법은 마땅히 알아야 할 타당함과 부당함입니다.

『십상경(十上經)』에는 오로관(惡露觀), 즉 육체에서 똥ㆍ오줌ㆍ침ㆍ고름ㆍ가래 등 더러운 것들이 끊임없이 흘러 나온다고 관찰하는 법으로 되어 있다. 팔리본에는 이 부분이 yoniso manasikra(이치에 맞는 의식 작용), 즉 정사유(正思惟)로 되어 있다.

여덟째의 두 가지 법은 구해야 할 진힐(盡黠)과 불부생힐(不復生黠) 입니다.

아홉째의 두 가지 법은 사람이 본래 어떤 인연으로 세간에서 고통을 받는가를 알아야 하고, 또한 어떤 인연으로 세간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되는가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열째의 두 가지 법은 응당 스스로 증득해야 할 지혜와 해탈입니다.

이것이 수행자의 20가지 법입니다. 이것은 그르지 않고 이것은 다르지 않으며, 증득함도 있고 여여하며, 미혹되지 않고 전도되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은 여실하게 지혜로운 마음으로 관찰한 것입니다.

그리고 첫째의 세 가지 법은 수행자가 구경의 무위를 얻기 위하여 지혜로운 이를 섬기고, 법과 경을 들으며, 또 마땅히 근본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둘째의 세 가지 법은 마땅히 사유해야 할 희망함[欲]과 생각[念]이 있는 선정, 희망함은 없고 생각만 있는 선정, 희망함도 없고 또 생각도 없는 선정입니다.

셋째의 세 가지 법은 알아야 할 욕유(欲有)ㆍ색유(色有)ㆍ무색유(無色有)입니다.

넷째의 세 가지 법은 버려야 할 욕애(欲愛)ㆍ색애(色愛)ㆍ무색애(無色愛)입니다.

다섯째의 세 가지 법은 버려야 할 근본적인 세 가지 악(惡)인 탐욕[貪欲惡]ㆍ성냄[瞋恚惡]ㆍ어리석음[愚癡惡]입니다.

여섯째의 세 가지 법은 증장시켜야 할 탐욕이 없는 선근(善根)ㆍ성냄이 없는 선근ㆍ어리석음이 없는 선근입니다.

일곱째의 세 가지 법은 증득하기 어려운 상(相)이니, 곧 선정의 상[定相]ㆍ선정에 머무는 상[定止相]ㆍ선정에서 일어나는 상[定起相]입니다.

여덟째의 세 가지 법은 수행해야 할 3활향(活向:解脫門)인 공(空)삼매ㆍ무원(無願)삼매ㆍ무상(無相)삼매입니다.

아홉째의 세 가지 법은 알아야 할 3통(痛:受)인 괴로운 느낌[苦痛] 즐거운 느낌[樂痛]ㆍ즐겁지도 않고 괴롭지도 않은 느낌[不樂不苦痛]입니다.

열째의 세 가지 법은 스스로 증득해야 할 다시 더 배울 것 없는 지혜, 즉 전생을 아는 지혜ㆍ어디에 태어날지를 아는 지혜ㆍ더 이상 제거할 것이 없는 지혜입니다.

이것이 수행자의 30가지 법입니다. 이것은 그르지 않고 다르지 않으며, 진실하고 여여하며, 미혹되지 않고 전도되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은 여실하게 지혜로운 마음으로 관찰한 것입니다.

그리고 첫째의 네 가지 법은 수행자가 구경의 무위를 이루고, 천상과 인간에 태어나게 하는 4륜(輪)이니, 곧 마지막 함이 없는 것으로서 좋은 고을에 살고, 슬기로운 사람에게 의지하며, 스스로 바른 원(願)을 내고, 전생의 선근이 있는 것입니다.

둘째의 네 가지 법은 더욱 열심히 닦아야 할 4의지(意止:念處)입니다. 즉 자신의 몸을 관찰하고 남의 몸을 관찰하며 자신과 남의 몸을 관찰하되, 마음이 흩어지지 않게 하고 마음을 집중하여 세간의 어리석음과 고뇌를 벗어납니다. 통양(痛痒:受)과 마음[意]과 법(法)에 대해서도 몸을 관찰하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합니다.

셋째의 네 가지 법은 알아야 할 네 가지 음식[飯], 즉 단반(飯:段食)ㆍ낙반(樂飯:觸食)ㆍ염반(念飯:思食)ㆍ식반(識飯:識食)입니다.

넷째의 네 가지 법은 버려야 할 네 가지 결박[], 즉 애욕의 결박ㆍ마음으로 옳다고 여기는 결박ㆍ계율과 원(願)의 결박ㆍ몸을 받는 결박입니다.

다섯째의 네 가지 법은 줄여야 할 네 가지 과실[失], 즉 계(戒)의 과실ㆍ마음으로 옳다고 여기는 것의 과실ㆍ행동의 과실ㆍ업(業)의 과실입니다.

여섯째의 네 가지 법은 증장시켜야 할 네 가지 성취, 즉 계의 성취ㆍ마음으로 옳다고 여기는 것의 성취ㆍ행동의 성취ㆍ업의 성취입니다.

일곱째의 네 가지 법은 알기 어려운 4제(諦)이니, 곧 고제(苦諦)ㆍ습제(習諦:集諦)ㆍ진제(盡諦:滅諦)ㆍ수멸고제(受滅苦諦:道諦)입니다.

여덟째의 네 가지 법은 지켜야 할 네 가지 지혜[黠]이니, 곧 괴로움에 대한 지혜[苦黠]ㆍ괴로움의 쌓임에 대한 지혜[習黠]ㆍ괴로움의 사라짐에 대한 지혜[盡黠]ㆍ사라짐에 이르는 방법에 대한 지혜[道黠]입니다.

아홉째의 네 가지 법은 알아야 할 네 가지 인식[識]이니, 곧 약간의 인식[少識]ㆍ많은 인식[多識]ㆍ한량없고 소유하지도 사용하지도 않는 인식ㆍ많은 것을 알고 한량없는 것을 알며 소유하지도 사용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아는 지혜로운 인식입니다.

열째의 네 가지 법은 스스로 증득해야 할 것이니, 첫 번째는 법신(法身)을 알아야 하고, 두 번째는 법의 뜻을 알아야 하며, 세 번째는 법안(法眼)을 알아야 하고, 네 번째는 법의 지혜[法慧]를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수행자의 40가지 법입니다. 이것은 그르지 않고 이것은 다르지 않으며, 진실하고 여여하며, 미혹되지 않고 전도되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은 여실하게 지혜로운 마음으로 관찰한 것입니다.

그리고 첫째의 다섯 가지 법은 수행자가 구경의 무위를 얻기 위해 닦는 5단의(斷意)이니,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도를 수행하는 제자는 도에 대한 믿음이 있고 선근이 있어 인욕선인(忍辱仙人)처럼 누구도 그를 파괴할 수 없으니, 하늘이나 악마나 범천, 또는 그 밖의 세간이겠습니까? 또 숨기는 것도 없고 꾸미는 것도 없이 참되고 바르며, 몸으로 행할 일이 있으면 뜻을 도에 두고 지혜롭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몸도 또한 병이 없도록 편안하고 쾌적하게 하며, 마땅히 지켜야 할 바대로 충실하게 수행하며, 몸을 크게 춥게 하지도 않고 크게 덥게 하지도 않으며, 성내지 않고 때 맞추어 생활하여 먹은 음식을 잘 소화시키고 몸을 편안하고 조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정진하는 행을 일으키고 또 정진의 방편을 살펴서 훌륭한 법을 확고히 증득하고 뜻으로는 방편을 버리지 않으며, 차라리 살ㆍ힘줄ㆍ뼈와 온몸이 없어질지언정 정진을 중지하지 않는 것입니다. 반드시 증득해야 할 행(行)은 지혜를 써서 기멸(起滅:生滅)에서 벗어나는 길을 증득하는 것이요, 반드시 싫어하지 않아야 할 행은 곧장 괴로움을 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섯 가지 단의(斷意)입니다. 둘째의 다섯 가지 법은 더욱 열심히 닦아야 할 덕(德)인 다섯 가지 정(定)입니다. 도를 닦는 제자는 자기 몸을 스스로 지켜 기쁨을 얻고 (그 기쁨에) 몸을 담궈 적시며, 스스로 즐거움을 지켜 기쁨에 도달하지 못하는 곳이 온몸 어디에도 없게 합니다. 비유하면 지혜로 목욕하는 자와 지혜로 목욕하는 제자와 같습니다. 제자는 나무통이나 가마솥 같은 그릇에 조두(澡豆:세탁제)를 물에 풉니다. 그리고 물에 풀고 섞어 조두가 때에 붙게 하면 때를 충분히 적시기 때문에 안팎으로 때에 붙어서 다시는 흩어지지 않습니다. 도를 수행하는 이도 그와 같아서 그 몸을 스스로 지키고 사랑하여 즐거움을 내고, 적시고 화합하여 서로 가까이하고 서로 붙게 하면 스스로 즐거움을 지키기 때문에 즐거움이 붙지 않는 곳이 온몸 어디에도 없게 됩니다. 도를 닦는 제자들이여, 이것이 다섯 가지 정의 첫 번째 행입니다.

또 도를 지닌 제자는 그 몸이 이미 즐거워져서 몸이 적시어지면 기쁨을 확고히 해 도달하지 못하는 곳이 온몸 어디에도 없게 합니다. 비유컨대 언덕의 샘물 못과 같습니다. 샘물은 위에서 나온 것도 아니고 동쪽에서 온 것도 아니며, 또 서쪽에서 온 것도 아니고 북쪽에서 온 것도 아닙니다. 오직 샘에서 풍부하게 솟아나는 물, 촉촉히 솟아나 샘을 가득 채우는 물이 샘을 적셔, 시원한 물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어느 한 곳도 없게 하는 것입니다. 도를 닦는 제자들의 행도 그와 같아서 이 몸의 확고한 즐거움으로 몸을 적셔 확고한 즐거움이 미치지 않는 곳 없이 온몸에 두루하게 합니다. 도를 닦는 제자들이여, 이것이 다섯 가지 정의 두 번째 행입니다.

또 도를 지닌 제자는 그 몸이 사랑함에도 집착하지 않고 즐거움에도 집착 하지 않으며 서로 연해서 서로 핍박하는 모양에 이르러 온몸이 두루 즐거워하지 않는 데에 도달합니다. 비유컨대 연꽃이 물 속에서 생겨 물 속에서 자라 뿌리ㆍ줄기ㆍ잎에 이르기까지 모두 차가운 물에 두루 적시어짐과 같습니다. 도를 닦는 제자도 그와 같아서 그 몸을 사랑함과 즐거워함 없음으로 적셔 사랑함과 즐거워함 없음이 온몸에 두루하게 합니다. 도를 닦는 제자들이여, 이것이 다섯 가지 정의 세 번째 행입니다.

또 도를 지닌 제자는 그 몸이 뜻을 청정히 하고 없애 버리고 나서 행을 배우고 행을 이루어, 뜻을 청정히 하고 뜻을 없앰이 도달하지 못하는 곳이 온몸 어디에도 없게 합니다. 비유컨대 네 종성과 네 종성의 아들을 여덟 길[丈]이나 아홉 길 되는 흰 모포로 머리부터 발까지 온몸을 싸면 흰 모포나 깨끗한 모포에 싸이지 않는 곳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도를 닦는 제자도 그와 같아서 그 몸이 뜻을 청정히 하고 뜻을 없애고 나서, 행함이 있으면 이미 뜻이 청정해지고 뜻이 없어지지 않은 곳이 온몸 어디에도 없게 합니다. 도를 닦는 제자들이여, 이것이 다섯 가지 정의 네 번째 행입니다.

또 도를 지닌 제자는 몸[身]을 감수(感受)하여 진리를 관찰하고 나서 충분히 생각하고 충분히 지속하며 충분히 감수합니다. 비유컨대 선 사람이 앉은 사람을 관찰하고 앉은 사람이 누운 사람을 관찰하는 것과 같습니다. 도를 닦는 제자의 행도 그와 같아서 행(行)과 상(相)과 사유(思惟)를 감수하여 충분히 감수하고, 충분히 감수함으로써 충분히 생각하고 충분히 실행하며 충분히 감수합니다. 도를 닦는 제자들이여, 다섯 가지 정의 다섯 번째 행입니다.

셋째의 다섯 가지 법은 마땅히 알아야 할 다섯 가지 종(種:蘊)이니, 첫 번째는 물질의 종[色受種:色取蘊], 두 번째는 느낌의 종[痛受種:受取蘊], 세 번째는 생각의 종[想受種:想取蘊], 네 번째는 지어감의 종[行受種:行取蘊], 다섯 번째는 의식의 종[識受種:識取蘊]입니다.

넷째의 다섯 가지 법은 마땅히 버려야 할 5개(蓋)이니, 첫 번째는 애욕의 덮개, 두 번째는 성냄의 덮개, 세 번째는 수면의 덮개, 네 번째는 희롱과 즐김의 덮개, 다섯 번째는 후회와 의심의 덮개입니다.

다섯째의 다섯 가지 법은 마땅히 줄여야 할 다섯 가지 마음의 못[釘]입니다. 만일 배우는 이가 도(道)를 믿지 않고 의심하여 (자신을) 낮추지 않고 (도를) 옳다고 하지 않으며 (도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것은 마음의 첫 번째 못을 뽑아버리지 못한 것입니다. 도의 가르침[道法]과 교훈[敎誡:戒]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며, 또 만일 배우는 자가 도의 무리[道散:僧]에 있으면서 명예가 있는 자, 지혜로운 자, 같이 배우는 자들에게 나쁜 말을 하고 흩고 괴롭힐 생각만 한다면 (이것은 마음의 못을 뽑아버리지 못한 것입니다.) 만일 도와 명망이 있는 자, 지혜로운 자, 같이 배우는 자가 있을 때 그에게 나쁜 말을 하고 흩고 괴롭힐 생각만 한다면 이것은 다섯 번째 마음의 못을 뽑아버리지 못한 것입니다.

여섯째 다섯 가지 법은 마땅히 증장시켜야 할 5근(根)이니, 첫 번째는 믿음의 뿌리[信根], 두 번째는 정진의 뿌리[精進根], 세 번째는 뜻의 뿌리[意根], 네 번째는 정의 뿌리[定根], 다섯 번째는 지혜의 뿌리[慧根]입니다.

일곱째 다섯 가지 법은 해탈을 얻게 하는 다섯 가지 행으로, 이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만일 도를 닦는 제자라면 도를 열심히 배워 애욕(愛欲)을 생각하지 않으며, 마음이 애욕에 집착하지 않고, 마음이 애욕을 좋게 여기지도 않으며, 마음이 애욕을 그치려 하지 않고, 마음이 애욕을 넘어서려 하지도 않습니다. 그 (애욕의) 마음을 오그라트리고 그 마음을 싫어하며, 그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그 마음을 사용하지 않으며, 그 마음의 더러움을 제거하여 나쁘지 않게 합니다. 비유컨대 닭의 털이나 힘줄이 불에 들어가면 곧 오그라들고 쭈그러져서 다시 펼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도를 본 제자가 마음을 굳건히 하여 애욕을 생각하지 않아 곧 애욕을 부리지 않고 곧 애욕을 좋게 여기지도 않으면, 마음은 애욕에 떨어지지 않고 마음은 곧 오그라듭니다. 마음이 곧 오그라들고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면 문득 도를 생각하는 것도 벗어나게 됩니다. 애욕의 행위에서 이미 벗어난 뒤에는 (애욕의) 마음이 생기건 (애욕을 버리려는) 마음이 굳건하건 마음이 바로 마음이 아니어서 그 마음에서 벗어나고 그 마음에서 해탈하게 됩니다. 따라서 그 (애욕의) 마음을 오그라트리려 하지도 않고, 그 (애욕의) 마음을 싫어하지도 않으며, 그 (애욕의) 마음을 일으키더라도 장애될 것이 없고 사용할 것이 없어 그 마음은 편안하나니, 이는 마음으로 행하고 열심히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만일 다시 애욕의 인연으로부터 근심과 괴로움의 번뇌가 생기더라도, 생각[念]한 뒤에 그것을 해탈하고 쉬며 집착하지 않고 벗어나 다시는 그런 인연으로 감수[痛痒]를 일으키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수행자는 애욕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성냄[瞋恚]과 성냄 아님ㆍ침해[侵]와 침해 아님ㆍ물질[色]과 물질 아닌 것에 있어서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도를 닦는 제자가 마음을 굳건히 해 다시는 몸[身]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마음을 굳건히 해 몸을 생각하지 않은 뒤에는 곧 몸을 탐내지 않고, 몸을 좋게 여기지 않고, 몸에 머무르지 않게되며, 마음이 애욕에 떨어지지 않게 되고 문득 마음 일으키는 것을 싫어하게 됩니다.

도를 닦는 제자들이여, 마치 닭의 털이나 힘줄이 불에 들어가면 곧 오그라들고 쭈그러져서 다시는 펼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도를 닦는 제자도 그와 같아서 이미 견해가 굳건해지면 다시는 몸을 생각하지 않으며, 마음이 몸을 좋게 여기지도 않고, 마음이 몸에 집착하지도 않으며, 마음이 넘어서려 하지도 않습니다. 마음은 그 마음을 오그라트리고 그 마음을 싫어하여 일으키지 않습니다. 스스로 일어나는 것을 지키고 나쁜 짓을 그치며, 나쁜 것에 대해서는 무위(無爲)를 생각하고, 몸을 제도하려 하고 몸을 벗어나기를 생각하며, 하건 하지 않건 권도(勸道)를 생각하고 옳은 것을 생각하며, 그치려고 생각하고 건너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그 마음을 오그라트리려 하지도 않고 그 마음을 싫어하지도 않지만 그 마음은 생각을 펴더라도 장애될 것이 없고 사용할 것이 없어 그 마음은 안온하나니, 이는 행으로부터 잘 행했기 때문이니라.

만일 몸의 인연으로부터 죄와 괴로움과 근심이 생기더라도, 죄와 괴로움과 근심이 인연으로 생긴 뒤에 이로부터 벗어나고 그쳐 집착하지 않고 넘어서며, 다시는 이런 인연으로부터 감수[痛]를 일으키지 않습니다. 도를 닦는 제자는 이와 같이 몸으로부터 벗어나게 됩니다.

여덟째의 다섯 가지 법은 도를 일으키는 다섯 가지 지혜로운 선정입니다. ‘도덕을 갖춘 자는 집착하는 바가 없으며 받들어 따르는 것도 없다’고 하면, 이는 첫 번째 지혜가 안에서 저절로 생긴 것입니다. ‘이 정(定)은 보통 사람은 이루지 못하고 지혜로운 자만 될 수 있다’고 하면, 이것은 두 번째 지혜가 안에서 생긴 것입니다. ‘이 정은 한결같아야 이루어지고 이에 의지해 도의 행을 얻는다’고 하면, 이것은 세 번째 지혜가 안에서 생긴 것입니다. ‘이 정은 기쁜 견해에 이르게 하고 느낌도 또한 좋다’고 하면 이것은 네 번째 지혜가 안에서 생긴 것입니다. ‘그 정(定)으로부터 마음대로 앉고 마음대로 일어날 수 있는 것이 이 정이다’고 하면, 이것은 다섯 번째 지혜가 안에서 생긴 것입니다.

아홉째의 다섯 가지 법은 마땅히 알아야 할 다섯 가지 해탈입니다. 만일학자가, 도인이 경을 말하면 도인에게 듣고, 또 지혜로운 사람이 말하면 그 지혜로운 사람에게서 들으며, 또는 같은 도반에게서 듣고는 그 들은 대로 법과 이치와 행을 알고, 법을 이해하고는 곧 이치를 알며, 이치를 알고는 곧 받아들이고, 받아들이고 나서는 곧 기뻐하며, 기뻐하고는 몸이 즐겁고, 즐겁고 나서는 곧 마음이 안정되며, 마음이 안정되고 나서는 사실대로 알고 사실대로 보며, 사실대로 알고 보고 나서는 곧 물리치고 쓰지 않으며, 쓰지 않고는 곧 집착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는 곧 해탈을 얻는다면, 이것이 수행자의 첫 번째 해탈입니다.

이미 머무름을 얻은 어떤 수행자는 바른 뜻[正意]을 얻지 못했다가 곧 바른 뜻을 얻고, 선정의 마음[定意]을 얻지 못했다고 선정의 마음을 얻으며, 결박을 풀지 못했다가 결박을 풀고, 함이 없음[無爲]을 얻지 못했다가 곧 함이 없음을 이룹니다. 혹 때로 부처님께서 경을 연설하시지 않고, 지혜로운 이와 같은 도반들이 또한 경을 연설하지 않더라도 그는 들은 대로 받은 대로 곧 외우고 읽나니, 이것이 수행자의 두 번째 해탈입니다.

또한 혹 때로 부처님께서 경을 연설하시지 않고 지혜로운 자들과 도반들도 경을 연설하지 않으면 다만 들은 법대로 받은 법대로 배우는 이들에게 갖추어 말해 주나니, 이것이 수행자의 세 번째 해탈입니다.

혹 때로 부처님께서 경을 연설하시지 않더라도 배우는 이는 다만 듣고 받은 법대로 혼자 어느 곳에서 생각하여, 법을 듣고 받은 그대로 갖추어 외우고 읽으며 곧 그 이치를 이해하고 그 법을 이해하나니, 이것이 수행자의 네 번째 해탈입니다.

혹은 들은 대로 하지 않고 받은 대로도 하지 않으며, 또한 생각하지도 않고 다만 행에 따라 한결같은 정(定)의 모양을 취하여 충분히 느끼고[受] 충분히 생각하며[念] 충분히 행하기도 합니다. 그는 정의 모양을 받아들여 충분히 느끼고 충분히 생각하며 충분히 행하고 나서는 익숙해짐에 따라 곧 법다워지고, 곧 이치대로 이해하며, 곧 법대로 이해하게 됩니다. 이치대로 이해하고 법대로 이해하고 나서는 곧 생(生)을 옳게 여기고, 생을 옳게 여기고 나서는 곧 생(生)을 가엾이 여기며, 생을 가엾이 여기고 나서는 곧 몸이 즐거워지고 몸으로 즐거움을 느끼게 됩니다. 즐겁고 나서는 곧 그치고 곧 사실대로 알고 사실대로 보며 곧 뉘우칩니다. 뉘우치고 나서는 곧 욕심내지 않고, 욕심내지 않은 뒤에는 곧 해탈을 얻습니다. 이것이 수행자의 다섯 번째 해탈입니다. 만일 도를 닦는 수행자가 이 그침[止]을 얻고 이 행(行)을 얻는다면, 그는 그 마음이 그침을 얻지 못했으면 곧 그치게 되고, 마음이 안정되지 못했으면 곧 안정되게 되며, 결박이 없어지지 못했으면 곧 없어지게 되고, 세상을 벗어나 무위의 도를 얻지 못했으면 곧 세상을 벗어나 무위의 도를 얻게 됩니다.

열째의 다섯 가지 법은 스스로 증득하여 아는 것이니, 첫 번째는 불학(不學:無學)의 음(陰)이요, 두 번째는 불학의 계(戒)요, 세 번째는 불학의 정(定)이요, 네 번째는 불학의 혜(慧)요, 다섯 번째는 불학의 세상을 벗어난 해탈(解脫) 입니다.

이것이 배우는 이의 쉰 가지 법입니다. 이것은 그른 것이 아니며 이것은 다른 것이 아니며, 진실하고 여여하며, 미혹되지 않고 전도되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은 여실하게 지혜로운 마음으로 관찰한 것입니다.

그리고 첫째의 여섯 가지 법은 마지막 함이 없음인 것으로서 특수하고 중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몸의 행동[身行]을 고르게 하여 부처님이나 지혜로운 이나 같은 도반과 같이 머무는 것, 이 법은 특수하고 중하게 여겨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서 사랑과 존경이 생겨나게 되고, 마음으로 옳게 여겨 사랑과 존경이 생겨나게 되면 남들과 모여 있을 적에 다투거나 시비하지 않게 되고, 언제든지 정을 행하고 인욕을 닦게 됩니다. 또 입으로 하는 말[口言]과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心行]을 고르게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진 계율을 범하지 말고 파하지 말며 느슨하게 지니거나 숨기지도 말고 잃어버리지도 말아야 하니, 이는 도가 있는 자들이 갖추어야 할 행입니다. 이와 같은 무리들도 계를 행하는 이들이고 나도 계를 지키는 자이니 마땅히 지혜로운 이, 같은 도반들과 같이 하여야 합니다. 싫어하는 것을 벗어나기를 구하는 자들은 바로 고통을 없앱니다. 이런 무리처럼 나도 또한 이와 같은 무리이니 지혜로운 이, 같은 도반들과 같이 하여야 합니다. 이 법은 특수하고 중하게 여겨야 할 것입다. 또 만일 법에 따라 얻은 이익이 있으면 그 얻은 것은 모두 발우에 있는데, 이와 같은 이익을 당연히 같은 도반들과 함께 하고 혼자만 가지거나 숨기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이 법은 특수하고 중하게 여겨야 할 것이니, 이로부터 사랑과 존경과 옳게 여기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사랑과 존경과 옳게 여기는 마음이 생겨 실천하고 나면 합하고 모이더라도 다투거나 시비하지 않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정을 행하며 이로부터 인욕을 얻게 됩니다.

둘째의 여섯 가지 법은 보호하여야 할 6공거(共居)입니다. 눈으로 색(色)을 보더라도 기뻐하지 않고 또 싫어하지도 않으며 다만 관찰하여 마음대로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귀ㆍ코ㆍ입ㆍ몸도 또한 마찬가지이며, 의식으로 법을 알더라도 또한 기뻐하지 않고 성내지도 않으며 다만 관찰하고 그쳐 마음으로 잊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의 여섯 가지 법은 알아야 할 6내입(內入)이니, 눈[眼內入]과 귀ㆍ코ㆍ입ㆍ몸ㆍ의식[意內入]입니다.

넷째의 여섯 가지 법은 버려야 할 여섯 가지 애착이니, 눈의 애착과 귀ㆍ코ㆍ입ㆍ몸ㆍ의식의 애착입니다.

다섯째의 여섯 가지 법은 줄여야 할 여섯 가지 공경하지 않음이니, 첫 번째는 부처님을 공경하지 아니함이요, 두 번째는 법을 공경하지 아니함이요, 세 번째는 같은 도반을 공경하지 아니함이요, 네 번째는 계를 공경하지 아니함이요, 다섯 번째는 나쁜 말을 함이요, 여섯 번째는 악지식(惡知識)입니다.

여섯째의 여섯 가지 법은 증장시켜야 할 여섯 가지 공경함이니, 첫 번째는 부처님을 공경함이요, 두 번째는 법을 공경함이요, 세 번째는 같은 도반을 공경함이요, 네 번째는 계를 공경함이요, 다섯 번째는 좋은 말을 함이요, 여섯 번째는 선지식(善知識)입니다.

일곱째의 여섯 가지 법은 세상을 벗어났다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여섯 가지 행(行)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나는 평등한 마음과 선정의 마음을 벌써 행하였고 이미 소유하였다’고 하면서 또 ‘그러나 나의 마음 속 성냄은 아직 풀리지 않았다’고 한다면, 곧 그에게 이렇게 대답하여야 합니다.

‘그런 말을 마라. 왜냐 하면 그런 일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평등한 마음과 선정의 마음을 이미 행하고 이미 일으키고 이미 소유했다면 어찌 성냄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건 있을 수 없다. 왜냐 하면 평등한 마음과 선정의 마음이 있으면 성냄을 없애기 때문이다.’

두 번째, 만일 어떤 수행자가 ‘나는 자비한 마음과 선정의 마음을 이미 짓고 행하고 지녔지만 죽이려는 뜻만은 없애지 못했다’고 한다면 그에게 이렇게 대답해야 합니다.

‘그런 말을 마라. 왜냐 하면 자비한 마음과 선정의 마음을 이미 행하고 이미 짓고 이미 지녔다면 어찌 죽이려는 뜻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건 있을 수 없다. 왜냐 하면 자비한 마음과 선정의 마음이 있으면 죽이려는 뜻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세 번째, 어떤 학자가 ‘나는 기뻐하는 마음과 평등한 선정의 마음을 이미 행하고 이미 지었고 이미 지녔지만 뜻만은 그치지 못하고 옳지도 못하다’고 한다면 그에게 이렇게 대답해야 합니다.

‘그런 말을 마라. 왜냐 하면 그런 일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미 평등한 마음과 선정의 마음이 있어서 이미 행하고 이미 증가하였고 이미 지녔다면 어찌 안정되지 못하고 옳지 못할 수 있겠는가? 그런 일은 없나니, 왜냐 하면 평등한 마음과 선정의 마음은 옳지 못함과 불안정을 없애기 때문이다.’

네 번째, 어떤 학자가 ‘나는 관찰과 선정의 마음을 이미 행하고 이미 짓고 이미 지녔지만 애욕과 성냄만은 제거하지 못했다’고 한다면 그에게 이렇게 대답해야 합니다.

‘그런 말을 마라. 왜냐 하면 이미 관찰과 선정의 마음이 있다면 곧 애욕과 성냄은 없어지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 만일 수행자가 ‘나는 의심이 없지만 다만 마음대로 못한다’고 한다면, 그에게 이렇게 대답해야 합니다.

‘그런 말을 마라. 왜냐 하면 법을 알면 의심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여섯 번째, 어떤 수행자가 ‘이미 선정의 마음을 얻어 이미 만족했으나 마음만은 생각과 의식에 머무른다’고 한다면, 그에게 이렇게 대답해야 합니다.

‘그런 말을 마라. 그건 있을 수 없다. 또 (선정의 마음을 얻어 생각하는 바가 없이 이미 만족했는데 또 마음이 생각과 의식을 행한다)는 그런 생각도말 것이니, 그건 있을 수 없다. 왜냐 하면 마음이 이미 해탈한 이는 다시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덟째의 여섯 가지 법은 마땅히 가져야 할 여섯 가지 생각[念]이니, 첫 번째는 부처님을 생각함이요, 두 번째는 법을 생각함이요, 세 번째는 같은 도반을 생각함이요, 네 번째는 계를 생각함이요, 다섯 번째는 보시를 생각함이요, 여섯 번째는 하늘을 생각함입니다.

아홉째의 여섯 가지 법은 마땅히 알아야 할 여섯 가지 한량없음[無量]이니, 첫 번째는 보는 것이 한량없음이요, 두 번째는 듣는 것이 한량없음이요,세 번째는 이익이 한량없음이요, 네 번째는 계행이 한량없음이요, 다섯 번째는 일이 한량없음이요, 여섯 번째는 생각이 한량없음입니다.

열째의 여섯 가지 법은 증득하면 저절로 알게 되는 여섯 가지 앎[知]이니, 첫 번째는 신통[神足]이요, 두 번째는 모든 것을 들음[徹聽]이요, 세 번째는 사람의 마음을 앎이요, 네 번째는 과거 어디에서 왔는지 그 유래를 앎이요, 다섯 번째는 어느 곳에 가 태어날 것인지를 앎이요, 여섯 번째는 번뇌가 다함을 아는 것입니다.

이것이 수행자의 60가지 법입니다. 이것은 그른 것이 아니고 이것은 다른 것이 아니며, 진실하고 여여하며, 미혹되지 않고 전도되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은 여실하게 지혜로운 마음으로 관찰한 것입니다.

그리고 첫째의 일곱 가지 법은 수행자를 구경의 무위에 이르게 하는 일곱 가지 보배이니, 첫 번째는 믿음의 보배요, 두 번째는 계의 보배요, 세 번째는 남에 대하여 부끄러워하는 보배요, 네 번째는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보배요, 다섯 번째는 학식의 보배요, 여섯 번째는 보시함의 보배요, 일곱 번째는 지혜의 보배입니다.

둘째의 일곱 가지 법은 행하여야 할 일곱 가지의 각의(覺意:覺分, 覺支)니, 첫 번째는 생각하는 각의[意覺意:念覺支]요, 두 번째는 법을 분별하는 각의[分別法覺意:擇法覺支]요, 세 번째는 정진하는 각의[精進覺意]요, 네 번째는 기뻐하는 각의[可覺意:喜覺支]요, 다섯 번째는 제거하는 각의[猗覺意:除覺支]요, 여섯 번째는 선정의 각의[定覺意]요, 일곱 번째는 보호하는 각의[護覺意:捨覺支]입니다.

셋째의 일곱 가지 법은 마땅히 알아야 할 일곱 가지 세계[有]이니, 첫 번째는 좋지 못한 세계(지옥)요, 두 번째는 축생의 세계요, 세 번째는 아귀의 세계요, 네 번째는 인간의 세계요, 다섯 번째는 천신의 세계요, 여섯 번째는 행(行:業)의 세계요, 일곱 번째는 중유(中有:中陰)의 세계입니다.

넷째의 일곱 가지 법은 버려야 할 일곱 가지 결박[結]이니, 첫 번째는 애욕의 결박이요, 두 번째는 옮지 못함의 결박이요, 세 번째는 즐거움의 결박이요, 네 번째는 스스로 교만함의 결박이요, 다섯 번째는 삿됨의 결박이요, 여섯 번째는 어리석음의 결박이요, 일곱 번째는 의심의 결박입니다.

다섯째의 일곱 가지 법은 없애야 할 나쁜 사람의 일곱 가지 법이니, 첫 번째는 믿지 않음이요, 두 번째는 남에게 부끄러워함이 없음이요, 세 번째는 스스로 부끄러워함이 없음이요, 네 번째는 정진하지 아니함이요, 다섯 번째는 잊는 것이요, 여섯 번째는 선정[定]이 없음이요, 일곱 번째는 지혜가 없음입니다.

여섯째의 일곱 가지 법은 지혜를 증장시키는 슬기로운 이의 일곱 가지 법이니, 첫 번째는 믿음이요, 두 번째는 남에게 부끄러워함이요, 세 번째는 스스로 부끄러워함이요, 네 번째는 정진할 마음을 냄이요, 다섯 번째는 뜻을 지킴이요, 여섯 번째는 선정이요, 일곱 번째는 지혜입니다.

일곱째의 일곱 가지 법은 느껴 알기 어려운 일곱 가지 식이 머무르는 곳[識止處]입니다. 형상이 있는 몸에 서로 다른 몸과 다른 모양이 있는 곳, 이를테면 인간 혹은 천상과 같은 곳이니, 이것이 첫 번째 식이 머무르는 곳입니다.

형상이 있는 몇 가지 종류의 몸에 같은 생각을 하는 곳, 이를테면 하늘 위의 하늘로서 범천이라 이름하는 높은 세계와 같은 곳이니, 이것이 두 번째 식이 머무르는 곳입니다.

형상이 있는 세계에 있고 같은 몸에 같은 생각을 하는 곳, 이를테면 자명천(自明天)과 같은 곳이니, 이것이 세 번째 식이 머무르는 곳입니다.

형상이 없는 세계에서 수행하는 이가 일체의 형상을 벗어나 성내는 생각을 없애고 한량이 없는 행(行)으로 머무는 곳, 이를테면 공천(空天)과 같은 곳이니, 이것이 네 번째 식이 머무르는 곳입니다.

형상이 없는 세계에서 수행하는 이가 일체 공으로부터 벗어나 한량이 없는 식(識)을 지으며 머무는 곳, 이를테면 식천(識天)과 같은 곳이니, 이것이 다섯 번째 식이 머무르는 곳입니다.

형상이 있지 않은 세계에서 수행하는 이가 생각이 있지 않고 또한 생각을 여읜 것도 아닌 것, 이를테면 무상천(無想天)과 같은 곳이니, 이것이 일곱 번째 식이 머무르는 곳입니다.

여덟째의 일곱 가지 법은 확고한 마음이 생기도록 실천해야 할 것이니, 첫 번째는 바른 견해, 두 번째는 바른 생각, 세 번째는 바른 말, 네 번째는 바른 법, 다섯 번째는 바른 업, 여섯 번째는 바른 방편, 일곱 번째는 바른 마음입니다.

아홉째의 일곱 가지 법은 마땅히 알아야 할 일곱 가지의 현재 은혜입니다. 첫 번째, 도를 수행하는 이가 부처님에게 뜻을 두어 도의 근본을 믿고 들어가 머무르면 사문ㆍ바라문ㆍ하늘ㆍ악마ㆍ범천 그외 세간의 수행자들이 그를 파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계를 지니는 이로서 계율을 지키고 계를 보호하여 나가건 들어가건 언제나 죽을 죄 짓는 것을 두려워하여 계를 지니며 계를 배우는 것입니다. 세 번째, 좋은 선지식과 좋은 도반이 있고 스스로 잘 귀의함이 있는 것입니다. 네 번째, 함께하는 사람 없이 혼자 있더라도 행동과 몸과 뜻을 다 잘 다스리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 정진하는 행을 유지하고 굳게 정진하며 도법(道法)과 방편을 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여섯 번째, ‘차라리 몸과 살과 힘줄과 뼈와 사지가 무너질지언정 응당 행해야 할 것에는 정진하리라’고 마음먹는 것입니다. 일곱 번째, 우러러보는 이, 굳게 행하는 이, 방편을 버리지 않는 이는 도법의 행을 응당 얻어야 할 것이니, 얻지 못했으면 정진을 중지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마음을 지키는 행과 훌륭한 마음을 지속하는 행을 스스로 오래도록 실천하고, 오래도록 말하며, 오래도록 마음에 잊지 않는 것입니다. 또 일곱 번째는 지혜를 생각하는 행으로 나고 멸하는 것을 알고 지혜로운 마음을 얻는 것이니, 이것이 일곱 가지 현재 은혜입니다.

열째의 일곱 가지 법은 마땅히 증득해야 할 것들이니, 첫 번째는 법이 있음이요, 두 번째는 이해가 있음이요, 세 번째는 때를 앎이요, 네 번째는 만족할 줄을 앎이요, 다섯 번째는 자기 몸을 앎이요, 여섯 번째는 대중을 앎이요, 일곱 번째는 사람의 전과 후를 앎입니다. 이것이 수행자의 70가지 법입니다. 이는 그른 것이 아니고, 이는 다른 것이 아니며, 진실하고 여여하며, 미혹되지 않고 전도되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은 여실하게 지혜로운 마음으로 관찰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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