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아함십보법경(長阿含十報法經) 02. 하권

장아함십보법경(長阿含十報法經) 02. 하권

첫째의 여덟 가지 법은 수행자의 근본의 행법[本行]을 증장시키고, 지혜를 얻지 못했으면 (곧 지혜를 얻게 하는) 여덟 가지 법의 인연입니다. 무엇이 여덟 가지인가? 첫 번째, 수행자가 배운 교훈과 계율에 의지하고 또 지혜로운 이와 도반에게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근본의 행법이고 지혜를 얻지 못했으면 곧 지혜를 얻게 하나니, 이것이 첫 번째 법의 인연입니다.

이미 부처님과 그 밖의 지혜로운 이와 도반에게 의지하였으면 때때로 미묘한 법과 경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근본의 행법을 증장시키고 근본 지혜를 얻지 못했으면 곧 근본 지혜를 얻게 하나니, 이것이 두 번째 법의 인연입니다.

이미 법을 들었으면 몸을 버리고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이 근본 행법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지혜를 얻지 못했으면 곧 지혜를 얻으리니, 이것이 세 번째 법의 인연입니다.

이미 법을 들었으면 정진해야 합니다. 이로부터 근본 행법을 증장시키고 지혜를 얻지 못했으면 곧 지혜를 얻으리니, 이것이 네 번째 법의 인연입니다.

마음을 지키는 데 온 힘을 다하고, 오래오래 짓고 오랫동안 좋아하며, 생각하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으면 이는 증장된 수행이니, 지혜를 얻지 못했으면 곧 지혜를 얻게 됩니다. 이것이 다섯 번째 법의 인연입니다.

들은 말과 배운 법대로 실천하면 이는 증장된 수행이니, 지혜를 얻지 못했으면 곧 지혜를 얻게 됩니다. 이것이 여섯 번째 법의 인연입니다.

법을 좋아하고 행하기를 좋아하며 자주 경을 연설하면 이는 증장된 수행이니, 지혜를 얻지 못했으면 곧 지혜를 얻게 됩니다. 이것이 일곱 번째 법의인연입니다.

5온의 늘고 줆을 알고 그 변화를 보아야 합니다. 즉, ‘이것은 색(色)이다. 이것은 색의 쌓임[色習]이다. 이로부터 색은 사라진다’고 알아야 하고, 통양(痛痒:受)ㆍ사상(思想:想)ㆍ생사(生死:行)ㆍ식(識)도 마찬가지며, ‘이것은 식(識)이다. 이로부터 식은 사라진다’고 알아야 합니다. 이는 근본 행법을 증장시키고 지혜를 얻지 못했으면 곧 지혜를 얻게 하나니, 이것이 여덟 번째 법의 인연입니다.

둘째의 여덟 가지 법은 도를 얻은 이가 실천해야 할 여덟 가지 도이니, 첫 번째는 정직한 소견이요, 두 번째는 정직한 생각이요, 세 번째는 정직한 말이요, 네 번째는 정직한 법이요, 다섯 번째는 정직한 업이요, 여섯 번째는 정직한 방편이요, 일곱 번째는 정직한 마음이요, 여덟 번째는 정직한 선정입니다.

셋째의 여덟 가지 법은 마땅히 알아야 할 세간의 여덟 가지 법이니, 첫 번째는 이로운 것이요, 두 번째는 이롭지 않은 것이요, 세 번째는 이름나는 것이요, 네 번째는 이름나지 않는 것이요, 다섯 번째는 논의함이요, 여섯 번째는 칭찬이요, 일곱 번째는 즐거운 것이요, 여덟 번째는 즐겁지 않은 것입니다.

넷째의 여덟 가지 법은 버려야 할 것들입니다. 첫 번째는 정직하지 못한 소견이요, 두 번째는 정직하지 못한 생각이요, 세 번째는 정직하지 못한 말이요, 네 번째는 정직하지 못한 법이요, 다섯 번째는 정직하지 못한 업이요, 여섯 번째는 정직하지 못한 방편이요, 일곱 번째는 정직하지 못한 마음이요, 여덟 번째는 정직하지 못한 선정입니다.

다섯째의 여덟 가지 법은 줄여야 할 것들로, 흐리멍덩하여 도에 정진하지 않는 여덟 가지입니다. 어떤 수행자는 군이나 현에 있거나 마을 또는 딴 곳에 있으면서 전례에 따라 이른 아침에 일어나서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군이나 현에 들어가 음식을 구하되 속으로 ‘많이 얻어서 마음껏 먹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녀 본 결과 마음껏 먹을 만큼 많이 얻을 수 없게 되면 곧 ‘오늘은 마음껏 먹을 만큼 많이 얻지 못했으니 몸이 파리하여 앉을 수 없다. 당연히 누워야겠다’고 생각하고는 곧 누워서 다시는 세상 벗어나는 방편을 구하지 않고, 얻어야 할 것을 얻지 않으며, 이해하여야 할 것을 이해하지않고, 스스로 알아야 할 것을 스스로 알지 못합니다. 이것이 첫 번째 흐리멍덩하여 도에 정진하지 않는 종류입니다.

어떤 수행자는 군이나 현에 있거나 마을 또는 딴 곳에 있으면서 전례에 따라 이른 아침에 일어나서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군이나 현에 들어가 음식을 구하되 속으로 ‘많이 얻어서 마음껏 먹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많이 얻어서 마음껏 먹게 되면 스스로 ‘나는 아침에 많이 얻어 많이 먹게 되었구나’고 생각하고, 곧 ‘아침에 많이 얻어서 마음껏 먹었으니 나는 몸이 무거워 다니지도 앉지도 못하겠다. 나는 누워야겠다’고 생각하고는 곧 누워서 세상 벗어나는 방편을 구하지 않고, 응당 얻어야 할 것을 얻지 않으며, 응당 이해해야 할 것을 이해하지 않고, 응당 스스로 알아야 할 것을 스스로 알지 못합니다. 이것이 두 번째 흐리멍덩하는 종류입니다.

혹 어떤 때 수행자는 나가서 도를 행해야 할 때에 곧 ‘나는 마땅히 나가서 도를 행하여야 한다. 그러나 나는 나가서 도를 행할 수 없고 가르침을 받을 수도 없다. 나는 누워야겠다’고 생각하고는 다시는 세상 벗어나는 방편을 구하지 않고, 얻어야 할 것을 얻지 않으며, 이해해야 할 것을 이해하지 않고, 스스로 알아야 할 것을 스스로 알지 못합니다. 이것이 세 번째 흐리멍덩하는 종류입니다.

혹 어떤 때 수행자는 낮에 도를 행해야 할 때에 ‘아침부터 도를 행하였으니 몸이 야윌까 염려되어 앉지도 다니지도 못하겠다. 나는 누워야겠다’고 생각하고는 곧 누워서 세상 벗어나는 방편을 구하지 않고, 얻어야 할 것을 얻지 않으며, 이해해야 할 것을 이해하지 않고, 스스로 알아 증득해야 할 것을 스스로 알아 증득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네 번째 흐리멍덩하는 종류입니다.

혹 어떤 때 수행자는 응당 수행하기를 좋아해야 할 것인데도 ‘나는 응당 수행하기를 좋아해야겠지만 나는 수행할 수도 없고 가르침을 받을 수도 없다. 나는 잠깐 누워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세상 벗어나는 방편을 구하지 않고, 따라야 할 것을 따르지 않으며, 응당 이해해야 할 것을 이해하지 않고, 스스로 알아 증득해야 할 것을 스스로 알아 증득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다섯 번째 흐리멍덩한 종류입니다.

혹 어떤 때 수행자는 ‘나는 아침부터 도를 행하여 이미 몸이 피곤해 앉아있을 수 없다. 나는 누워야겠다’고 생각하고는 곧 누워서 세상 벗어나는 방편을 구하지 않고, 얻어야 할 것을 얻지 않으며, 이해해야 할 것을 이해하지 않고, 스스로 알아 증득해야 할 것을 스스로 알아 증득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여섯 번째 흐리멍덩하는 종류입니다.

혹 어떤 때 수행자는 병이 들면 ‘나는 이미 병으로 고통받고 있고 몸이 야위어 다니지도 앉지도 못하겠다. 나는 누워야겠다’고 생각하고는 곧 누워서 세상 벗어나는 방편을 구하지 않고, 얻어야 할 것을 얻지 않으며, 이해해야 할 것을 이해하지 않고, 스스로 알아 증득해야 할 것을 스스로 알아 증득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일곱 번째 흐리멍덩하는 종류입니다.

혹 어떤 때 수행자는 마침 병에서 일어나게 되면 오래지 않아 곧 ‘나는 이제 겨우 병석에서 일어났다. 몸이 야위어 다니거나 앉을 수 없으니 나는 누워야겠다’고 생각하고는 곧 누워서 세상 벗어나는 방편을 구하지 않고, 얻어야 할 것을 얻지 않으며, 이해해야 할 것을 이해하지 않고, 스스로 알아 증득해야 할 것을 스스로 알아 증득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여덟 번째 흐리멍덩하는 종류입니다.

여섯째의 여덟 가지 법은 도를 증가하는 여덟 가지 정진하는 방편의 도입니다. 어떤 때 수행자는 군이나 현 또는 마을이나 딴 곳에 있으면서 전례에 따라 이른 아침에 일어나서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군이나 현에 들어가 음식을 구하면서 속으로 ‘마땅히 많이 얻어서 먹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많이 얻지 못하여 많이 먹지 못하게 되더라도 스스로 ‘나는 아침에 많이 얻어 먹지는 못했으나 몸이 가뿐하여 다니고 앉을 수 있다. 나는 방편을 지어 얻지 못한 것을 얻도록 하고 이해하지 못한 것을 이해하도록 하고 스스로 알지 못한 것을 스스로 알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첫 번째 정진하는 방편입니다.

혹 어떤 때 수행자는 군이나 현에 있거나 마을 또는 딴 곳에 있으면서 전례에 따라 이른 아침에 일어나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군이나 현에 들어가 음식을 구하면서 속으로 ‘마땅히 많이 얻어 먹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곧 많이 얻어 먹고는 ‘아침에 많이 얻어 먹어서 몸에 힘이 있고 앞으로 나아가며 앉고 다닐 수 있다. 나는 방편을 구하여 얻지 못한 것을 얻고, 이해하지못한 것을 이해하며, 스스로 알지 못한 것을 스스로 알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두 번째 정진하는 방편입니다.

혹 어떤 때 수행자는 나가야 할 때를 당해서 ‘나는 마땅히 나가야 하는데 몸이 나갈 수도 없고 또한 가르침을 받을 수도 없다. 나는 이제 가르침에 따라 방편을 구하고 스스로 도를 수행하는 방편을 지어 얻지 못한 것을 얻도록 하고, 이해하지 못한 것을 이해하도록 하며, 스스로 알지 못한 것을 스스로 알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세 번째 정진하는 방편입니다.

혹 어떤 때 수행자는 도를 행하고 나서는 ‘나는 도를 행한 이래로 스스로 도를 행하지 못하였고 가르침을 받들어 섬기지 못하였다. 나는 내가 범한 것들을 밝히고 방편을 써서 얻지 못한 것을 얻고, 이해하지 못한 것을 이해하며, 스스로 알지 못한 것을 스스로 알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네 번째 정진하는 방편입니다.

혹 어떤 때 수행자는 마땅히 행해야 할 때에 ‘나는 수행을 하며 가르침을 이루지 못하였다. 나는 앞서 방편을 구하며 앞서 방편을 행하여 얻지 못한 것을 얻고, 이해하지 못한 것을 이해하며, 스스로 알지 못한 것을 스스로 알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다섯 번째 정진하는 방편입니다.

혹 어떤 때 수행자는 온 힘을 다해 수행하고 나서는 ‘나는 이미 온 힘을 다해 수행했지만 더 수행할 수도, 가르침을 이룰 수도 없다. 나는 범한 것을 막을 수 있으니 곧 방편을 구하여 범한 것을 막고, 얻지 못한 것을 얻으며, 이해하지 못한 것을 이해하고, 스스로 알지 못한 것을 스스로 알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여섯 번째 정진하는 방편입니다.

혹 어떤 때 수행자는 몸에 병이 들어 고통이 극심하면 곧 ‘나는 병이 들어 고통이 심하니 언젠가는 이 병으로 죽으리라. 나는 잠깐 동안에 방편의 행을 구하여 얻지 못한 것을 얻고, 이해하지 못한 것을 이해하며, 스스로 알지 못한 것을 스스로 알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일곱 번째 정진하는 방편입니다.

혹 어떤 때 수행자는 마침 병에서 일어나게 되면 오래지 않아 곧 ‘몸이 이제 겨우 병석에서 일어났는데 병이 다시 올까 두렵다. 이제 나는 앞서 방편의 행을 구하리라’고 생각하고는 곧 앞서 방편의 행을 구하여 얻지 못한 것을 얻고, 이해하지 못한 것을 이해하며, 스스로 알지 못한 것을 스스로 압니다. 이것이 여덟 번째 정진하는 방편입니다.

일곱째 여덟 가지 법은 받기 어려운 여덟 가지 해탈입니다. 혹 어떤 때 수행자는 안으로 색(色)을 생각하고 밖으로 색을 관찰하여 색에 있는 몇 가지 예쁨과 추함을 자유로이 알고 자유로이 보며, 뜻과 생각에도 역시 있는 것처럼 여깁니다. 이것이 첫 번째 해탈입니다.

혹 어떤 때 도를 수행하는 자는 안으로 물질을 생각하고 밖으로 물질을 봅니다. 이것이 두 번째 해탈입니다.

혹 어떤 때 수행자는 청정히 해탈한 것을 몸으로 느낍니다. 이것이 세 번째의 해탈입니다.

모든 색(色)을 벗어나 성냄을 없애고 어떤 생각도 생각하지 않으며 바라는 것 없이 공(空)을 받아들이고 공을 행하면 이것은 네 번째의 해탈입니다.

모든 공을 벗어나 바라는 것 없이 식(識)을 받아들이고, 모든 식을 벗어나 인식하는 바 없이 유불용(有不用:無所有)을 받아들이면 이것이 다섯 번째 해탈입니다.

모든 무소유(無所有), 즉 불용(不用)을 벗어나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닌 것[無有想亦非無有想]을 받아들이면 이것이 여섯 번째 해탈입니다.

모든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닌 행을 벗어나면 이것이 일곱 번째 해탈입니다.

지각[想]과 사고[思]가 멸한 것을 몸으로 느끼면 이것이 여덟 번째 해탈입니다.

여덟째의 여덟 가지 법은 여덟 가지 대인(大人)의 생각입니다. 무엇이 여덟 가지인가? 첫 번째, 도법(道法)을 생각한다는 것은 욕심이 적은 것이요, 욕심 많은 것이 아닙니다.

두 번째, 도법을 닦는다는 것은 만족할 줄 아는 것이니, 만족을 모르면 도법이 있을 수 없습니다.

세 번째, 도법을 닦는다는 것은 받아 수행하는 것이니, 받아 수행하지 않으면 도법이 있을 수 없습니다.

네 번째, 도법을 닦는다는 것은 정진하는 것이니, 정진하지 않으면 도법이 있을 수 없습니다.

다섯 번째, 도법을 닦는다는 것은 뜻을 지키는 것이니, 뜻을 지키지 않으면 도법이 있을 수 없습니다.

여섯 번째, 도법을 닦는다는 것은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이니, 마음을 안정시키지 못하면 도법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일곱 번째, 도법을 닦는다는 것은 지혜로운 것이니, 지혜롭지 않으면 도법이 있을 수 없습니다.

여덟 번째, 도법을 닦는다는 것은 가정의 즐거움을 없애는 것입니다. 가정이 없으면 즐거움이 없지만 함께 어울려 살게 되면 가정의 즐거움이 있게 됩니다. 함께 어울려 살게 되면 도법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여덟 가지 대인의 생각입니다.

아홉 번째, 여덟 가지 법은 마땅히 알아야 할 여덟 가지 법입니다.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안으로 색(色)을 생각하고 밖으로 색을 보아 색에 있는 몇 가지 단정함과 단정하지 않음을 자재롭게 알고 또 자재롭게 보며 뜻으로 생각하면 이것이 첫 번째 자재함입니다.

안으로 색을 생각하고 밖으로 색을 보아 색에 있는 한량없는 여러 가지 면들을 자재롭게 알고 자재롭게 보면, 이와 같은 생각은 두 번째 자재함입니다.

안으로 색에 대한 생각이 없고 밖으로 색을 보아 색에 있는 몇 가지 단정함과 단정하지 않음을 자재롭게 알고 자재롭게 보면, 이와 같은 생각은 세 번째 자재함입니다.

안으로 색을 생각하지 않고 밖으로 색을 보아 색에 있는 한량 없는 단정함과 단정하지 않음을 자재롭게 알고 자재롭게 보면, 이와 같은 생각은 네 번째 자재함입니다.

다음은 안으로 색에 대한 생각을 하고 밖으로 파란 빛깔에 파란 것이 분명하며 파랗게 보이는 파란 색, 마치 파란 빛깔에 파란 것이 분명하며 파랗게 보이는 욱(郁)이라는 꽃의 파랑과 같은 그런 색을 봅니다. 이와 같이 안으로 색에 대한 생각을 하고 밖으로 파란 빛깔에 파란 것이 분명하고 파랗게 보이는 파란 색을 보면, 이와 같은 생각은 다섯 번째 자재함입니다.

다음은 안으로 색에 대한 생각을 하고 밖으로 노란 빛깔에 노란 것이 분명하며 노랗게 보이는 노란 색, 마치 노란 빛깔에 노란 것이 분명하며 노랗게 보이는 가니(加尼)꽃이나 아주 밝은 빛깔의 옷의 노랑과 같은 그런 색을 봅니다. 이와 같이 안으로 색에 대한 생각을 하고 밖으로 노란 빛깔에 노란 것이 분명하며 노랗게 보이는 노란 색을 보면, 이와 같은 생각은 여섯 번째 자재함입니다.

다음은 안으로 색에 대한 생각을 하고 밖으로 붉은 빛깔에 붉은 것이 분명하며 붉게 보이는 붉은 색, 마치 붉은 빛깔에 붉은 것이 분명하며 붉게 보이는 붉은 빛깔의 꽃[絳色華]이나 아주 붉은 빛깔의 옷의 빨강과 같은 그런 색을 봅니다. 이와 같이 수행자는 안으로 색에 대한 생각을 하고 밖으로 붉은 빛깔에 붉은 것이 분명하며 붉게 보이는 빨간 색을 보며, 이와 같이 색에 있는 것을 자재롭게 알고 자재롭게 봅니다. 이와 같은 생각이 일곱 번째 자재함입니다.

다음은 안으로 색에 대한 생각을 하고 밖으로 하얀 빛깔에 흰 것이 분명하며 하얗게 보이는 하얀 색, 마치 하얀 빛깔에 흰 것이 분명하며 하얗게 보이는 샛별이나 흰 옷의 하양과 같은 그런 색을 봅니다. 이와 같이 수행자는 안으로 색에 대한 생각을 하고 밖으로 하얀 빛깔에 흰 것이 분명하며 하얗게 보이는 하얀 색을 보며, 이와 같이 색에 있는 것을 자재롭게 알고 자재롭게 봅니다. 이와 같은 생각이 있으면 이는 여덟 번째 자재함입니다.

열째의 여덟 가지 법은 때때로 알고 스스로 알아야 할 것인, 집착 없는 수행자의 여덟 가지 힘입니다. 집착 없는 수행자는 애욕을 마치 불과 같이 봅니다. 이와 같이 보아 알고 이와 같이 분명히 보아서 애욕과 애욕에 대한 생각을 떠나 보내고 지혜로운 마음으로 다시는 집착하지 않습니다. 집착하지 않는 이것이 첫 번째 힘입니다.

4의지(意止)의 행을 이미 구족하여 집착하는 바 없는 이것이 두 번째 힘입니다.

4의단(意斷)의 행을 이미 구족한 이것이 세 번째 힘입니다.

4선족(禪足:如意足)의 행을 이미 구족한 이것이 네 번째 힘입니다.

5근(根)의 행을 이미 구족한 이것이 다섯 번째 힘입니다.

5력(力)의 행을 이미 구족한 이것이 여섯 번째 힘입니다.

7각의(覺意)의 행을 이미 구족한 이것이 일곱 번째 힘입니다.

8행(行)의 행을 이미 구족한 이것이 여덟 번째 힘입니다.

이것이 수행자는 80가지 법입니다. 이것은 그르지 않고 이것은 다르지 않으며, 진실하고 여여하며, 미혹되지 않고 전도되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은 여실하게 지혜로운 마음으로 관찰한 것입니다.

그리고 첫째의 아홉 가지 법은 수행자가 흔히 행하는 아홉 가지 마음의 기쁨입니다. 무엇이 아홉 가지인가? 첫 번째는 법을 듣는 기쁨이요, 두 번째는 생각하는 기쁨이요, 세 번째는 기뻐하는 기쁨이요, 네 번째는 즐거워하는 기쁨이요, 다섯 번째는 받아 믿는 기쁨이요, 여섯 번째는 편안한 기쁨이요, 일곱 번째는 선정의 기쁨이요, 여덟 번째는 그치는 기쁨이요, 아홉 번째는 떠나는 기쁨입니다.

둘째의 아홉 가지 법은 정진하여 청정을 이루는 것입니다. 무엇이 아홉 가지인가? 첫 번째는 정진하는 해탈로 청정함을 이룸이요, 두 번째는 마음의 해탈로 청정함을 이룸이요, 세 번째는 소견으로부터 해탈하여 청정함을 이룸이요, 네 번째는 의심으로부터 해탈하여 청정함을 이룸이요, 다섯 번째는 도를 닦는 것으로 청정함을 이룸이요, 여섯 번째는 지혜로운 견해로 청정함을 이룸이요, 일곱 번째는 지혜로운 견해로 애욕을 끊는 해탈로 청정함을 이룸이요, 여덟 번째는 종자를 끊음이요, 아홉 번째는 세상을 벗어남입니다.

셋째의 아홉 가지 법은 마땅히 알아야 할 것으로, 정신이 머무르는 아홉 곳입니다. 무엇이 아홉 곳인가? 색상(色象)과 정신이 머무르는 곳으로서 한 가지가 아닌 여러 가지 몸에 여러 가지 생각이 있는 곳이 있으니, 마치 인간세계라 불리는 곳과 한 종류의 하늘과 같은 곳입니다.

이곳이 첫 번째 정신이 머무르는 곳입니다.

색상과 정신이 머무르는 곳으로서 여러 가지 몸에 똑같은 생각이 있는 곳이 있으니, 마치 의식과 수명이 극치에 이른 범천(梵天)이라고 하는 하늘과 같은 곳입니다. 이곳이 두 번째 정신이 머무르는 곳입니다.

색상과 정신이 머무르는 곳으로서 하나의 몸에 여러 가지 생각이 있는 곳이 있으니, 마치 낙명(樂明)이라고 하는 하늘과 같은 곳입니다. 이곳이 세 번째 정신이 머무르는 곳입니다.

색상과 정신이 머무르는 곳으로서 하나의 몸에 하나의 생각이 있는 곳이 있으니, 마치 변정(遍淨)이라고 하는 하늘과 같은 곳입니다. 이곳이 네 번째 정신이 머무는 곳입니다.

색상과 정신이 머무르는 곳으로서 생각을 느끼지 않고 생각을 바꾸지 않는 곳이 있으니, 마치 생각이 없는 하늘[無有想天]과 같은 곳입니다. 이곳이 다섯 번째 정신이 머무르는 곳입니다.

색상이 없이 정신이 머무르는 곳으로서, 모든 색상을 벗어나고 성냄을 없앴으나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고, 여러 가지 몸에 한량없는 허공을 수용하는 곳이 있으니, 마치 공혜(空慧)라고 하는 하늘과 같은 곳입니다. 이곳이 여섯 번째 정신이 머무르는 곳입니다.

색상이 없이 정신이 머무르는 곳으로서, 모든 허공을 다 벗어나 한량없는 식(識)의 지혜만이 행하고 마음이 그치는 곳이 있으니, 마치 식혜행(識慧行)이라고 하는 하늘과 같은 곳입니다. 이곳이 일곱 번째 정신이 머무르는 곳입니다.

색상이 없이 정신만 머무르는 곳으로서, 식에서 생긴 모든 지혜를 다 벗어나 무소유(無所有)의 지혜를 수용해 벗어나는 곳이 있으니, 마치 무소념혜(無所念慧)라고 하는 하늘과 같은 곳입니다. 이곳이 여덟 번째 정신이 머무르는 곳입니다.

색상이 없이 정신만 머무르는 곳으로서, 바람이 없는 데서 생긴 모든 지혜를 다 벗어나 생각함도 없고 또한 생각함을 떠날 수도 없는 것을 수용해 마침내 그치는 곳이 있으니, 마치 생각함도 없고 또한 생각함을 떠날 수도 없는 하늘[無有思想亦不離思想天]과 같은 곳입니다. 이곳이 아홉 번째 정신이 머무르는 곳입니다.

넷째의 아홉 가지 법은 마땅히 뽑아버려야 할 아홉 가지 결박입니다. 무엇이 아홉 가지인가? 애욕이 첫 번째 결박이요, 성냄이 두 번째 결박이요, 교만이 세 번째 결박이요, 어리석음이 네 번째 결박이요, 삿된 견해가 다섯 번째 결박이요, 의심이 여섯 번째 결박이요, 탐내는 것이 일곱 번째 결박이요, 질투가 여덟 번째 결박이요, 인색한 것이 아홉 번째 결박입니다.

다섯째의 아홉 가지 법은 마땅히 없애야 할 아홉 가지 고뇌의 근본입니다. 무엇이 아홉 가지인가? 어떤 수행자는 욕심을 부리고 나쁜 짓을 하며 불안하게 하고 침해하며, 또 다른 나쁜 짓을 생각합니다. 만일 수행자가 이것을 늘 생각하면 이것으로부터 고뇌가 생기니, 이것이 첫 번째 고뇌입니다.

어떤 수행자는 이미 나쁜 짓을 저질렀고 나쁜 짓을 하고는 불안해 하며 침해하고 나서는 또 다른 나쁜 짓도 저질렀습니다. 만일 수행자가 이것을 늘 생각하면 이것으로부터 고뇌가 생기니, 이것이 두 번째 고뇌입니다.

어떤 수행자는 뒤에 또 다시 나쁜 짓을 저지르려 하고 나쁜 짓을 저질러 불안하게 하려고 하며 침해하려 하고 또 다른 나쁜 짓을 저지르려 합니다. 만일 수행자가 이것을 늘 생각하면 이것으로부터 고뇌가 생기니, 이것이 세 번째 고뇌입니다.

어떤 수행자에게는 친한 이 가운데 수행자에게 욕심을 부리는 그런 이도 있습니다. 그 친한 이는 나쁜 욕심을 부리고, 나쁜 욕심을 부려 불안하게 하며, 침해를 가하려고 하고 다른 나쁜 짓도 하려고 합니다. 만일 수행자가 이것을 늘 생각한다면 이것으로부터 고뇌가 생기니, 이것이 네 번째 고뇌입니다.

어떤 수행자에게는 이미 나쁜 짓을 하였고, 이미 불안하게 하였으며, 이미 침해하였고, 이미 다른 나쁜 짓도 한 적이 있는 그런 친한 이도 있습니다. 만일 수행자가 이것을 늘 생각한다면 이것으로부터 고뇌가 생기니, 이것이 다섯 번째 고뇌입니다.

어떤 수행자에는 뒤에 수행자에게 다시 탐욕을 부리려는 친한 이도 있습니다. 친한 이는 나쁜 짓으로 불안하게 하려 하고, 침해하려 하며, 다른 나쁜 짓을 저지르려 합니다. 만일 수행자가 이것을 늘 생각한다면 이것으로부터 고뇌가 생기니, 이것이 여섯 번째 고뇌입니다.

어떤 수행자에게는 두렵고 서로 편치 않은 사이인데도 도우려는 자가 있습니다. 그는 두렵고 편치 않은 사이인데도 편안함을 주려 하고, 침해를 풀어주려 하며, 다른 나쁜 짓을 하려 하지 않습니다. 만일 수행자가 늘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한다면 이것으로부터 고뇌가 생기니, 이것이 일곱 번째 고뇌입니다.

어떤 수행자에게는 두렵고 편치 않은 사이인데도 수행자를 도우려는 자가 있습니다. 그는 서로 편치 않은 사이인데도 편안함을 주었고, 이미 침해를 풀어주었으며, 또 다른 나쁜 짓도 하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만일 수행자가 이것을 늘 못마땅하게 생각한다면 이것으로부터 고뇌가 생기니, 이것이 여덟 번째 고뇌입니다.

어떤 수행자에게는 두렵고 서로 편치 않은 사이인데도 수행자를 위해 주는 자가 있습니다. 그는 두렵고 서로 편치 않은 사이인데도 이미 돕고 이미 편안케 하였으며 침해와 다른 나쁜 짓도 풀어 주었습니다. 수행자가 늘 이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이것은 편치 않은 관계에 있는 저 자를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으로부터 고뇌가 생기니, 이것이 아홉 번째 고뇌입니다.

여섯째의 아홉 가지 법은 마땅히 사유하여 없애야 할 아홉 가지 마음의 고뇌입니다. 무엇이 아홉 가지인가? 때로 수행자는 ‘이 사람은 나를 망치고 나를 다른 이의 소유가 되게 하며 나에게 안락이 없게 하고 나를 편치 못하게 하는, 그런 나쁜 짓을 이미 나에게 했다’고 하며 이러한 나쁜 고뇌의 마음을 가집니다. 만일 수행자가 이것을 늘 생각한다면 이것이 그 첫 번째입니다.

때로 수행자는 ‘이 사람은 나를 망치고 나를 남의 소유가 되게 하며 나에게 안락이 없게 하고 나를 편치 못하게 하는, 그런 나쁜 짓을 현재 나에게 하고 있다’고 하며 나쁜 고뇌의 마음을 가집니다. 만일 수행자가 이것을 늘 생각한다면 이것이 그 두 번째입니다.

때로 수행자는 ‘이 사람은 나를 망치고 나를 남의 소유가 되게 하며 나에게 안락이 없게 하고 나를 편치 못하게 하는, 그런 나쁜 짓을 마침내 나에게 할 것이다’고 하며 나쁜 고뇌의 마음을 가집니다. 만일 수행자가 이것을 늘 생각한다면 이것이 그 세 번째입니다.

때로 수행자는 어떤 때 ‘나는 친한 이를 망치고 그를 남의 소유가 되게 하며 안락이 없게 하고 편치 못하게 하는, 그런 나쁜 짓을 이미 하였다’고 생각하며 나쁜 고뇌의 마음을 가집니다. 만일 수행자가 이것을 늘 생각한다면 이것이 그 네 번째입니다.

때로 수행자는 어떤 때 ‘나는 친한 이를 망치고 그를 남의 소유가 되게 하며 안락이 없게 하고 편치 못하게 하는, 그런 나쁜 짓을 현재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나쁜 고뇌의 마음을 가집니다. 만일 수행자가 이것을 늘 생각한다면 이것이 그 다섯 번째입니다.

때로 수행자는 어떤 때 ‘나는 친한 이를 망치고 남의 소유가 되게 하며 안락이 없게 하고 편치 못하게 하는, 그런 나쁜 짓을 마침내 저지를 것이다’고 생각하며 나쁜 고뇌의 마음을 가집니다. 만일 수행자가 이것을 늘 생각한다면 이것이 그 여섯 번째입니다.

때로 수행자는 ‘나는 서로 편치 않은 자에게는 나는 나쁜 생각을 하고 편안하지 못하게 하며 불길하게 되기를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나의 원수를 이롭게 하고 편안하게 하며 즐겁게 하고 편케 하는, 그런 짓을 이미 하였다’고 생각하며 이런 고뇌하는 마음을 가집니다. 만일 수행자가 이것을 늘 생각한다면 이것이 그 일곱 번째입니다.

때로 수행자는 ‘나는 서로 편치 않은 자에게는 나는 나쁜 생각을 하고 편안하지 못하게 하며 불길하게 되기를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나의 원수를 이롭게 하고 편안하게 하며 즐겁게 하고 편케 하는, 그런 짓을 현재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고뇌하는 마음을 가집니다. 수행자가 이것을 늘 생각한다면 이것이 그 여덟 번째입니다.

때로 수행자가 ‘나는 서로 편치 않은 자에게는 나는 나쁜 생각을 하고 편안하지 못하게 하며 불길하게 되기를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나의 원수를 이롭게 하고 편안하게 하며 즐겁게 하고 편케 하는, 그런 짓을 하려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고뇌하는 마음을 가집니다. 수행자가 이것을 늘 생각한다면 이것이 그 아홉 번째입니다.

일곱째의 아홉 가지 법은 받기 어려운 아홉 가지 의지하여 머무름[依住]입니다. 무엇이 아홉 가지인가? 수행자가 믿음을 얻어 의지하여 머무르고 나쁜 것을 능히 버리고 좋은 것을 받으면 이것이 첫 번째 의지하여 머무름입니다.

만일 수행자가 마음을 수행에 두고 수행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버리면 이것이 두 번째 의지하여 머무름입니다.

만일 수행자가 정진을 일으켜 정진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을 버리면 이것이 세 번째 의지하여 머무름입니다.

만일 수행자가 조용한 곳에서 스스로 지키고 지키지 않는 것을 버리면 이것이 네 번째 의지하여 머무름입니다.

만일 수행자가 감당할 수 있는 것에 의지하여 머무르고 이와 같이 의지하여 머무른 뒤에 바르게 생각하고 헤아리면 이것이 다섯 번째 의지하여 머무름입니다.

만일 수행자가 한 법을 버리면 이것이 여섯 번째 의지하여 머무름입니다.

한 법을 버리고 나서 곧 한 법을 깨달으면 이것이 일곱 번째 의지하여 머무름입니다.

한 법을 깨닫고 나서 곧 한 법을 받으면 이것이 여덟 번째 의지하여 머무름입니다.

한 법을 받고 나서 한 법을 행하면 이것이 아홉 번째 의지하여 머무름입니다.

여덟째의 아홉 가지 법은 일으켜야 할 9차제정(次第定)입니다. 무엇이 아홉 가지인가? 마음이 그치는 초선(初禪)이 첫 번째 정이요, 초선으로부터 2선(禪)의 끝까지가 두 번째 정이요, 2선으로부터 3선의 끝까지가 세 번째 정이요, 3선으로부터 4선의 끝까지가 네 번째 정이요, 4선으로부터 공의 정[空定]까지가 다섯 번째 정이요, 공에서 벗어나 식(識)까지가 여섯 번째 정이요, 식에서부터 벗어나 욕심이 없는 데[無有欲]까지가 일곱 번째 정이요, 욕심 없는 데에서 벗어나 생각이 없는 데[無有思想]까지가 여덟 번째 정이요, 생각이 없는 데서 벗어나 멸도(滅度)하는 데까지가 아홉 번째 정입니다.

아홉째 아홉 가지 법은 마땅히 알아야 할 아홉 가지 적당치 않은 때입니다. 이 때는 사람이 수행할 수도 없고 수행이 이룩될 수도 없습니다. 무엇이 아홉 가지인가? 첫 번째는 사람이 혹 지옥에 있어서 죄를 다 끝내지 못하였을 때에는 응당 도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두 번째는 혹 축생에 있어서 죄를 다 끝내지 못했을 때에는 응당 도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세 번째는 혹 아귀에 있어서 죄를 다 끝내지 못했을 때에는 응당 도를 얻 지 못할 것입니다.

네 번째는 혹 장수천(長壽天)에 있어서 복이 다하지 못했을 때에는 응당 도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다섯 번째는 혹 법과 이치를 알지 못하는 곳에 있어서 말해주는 이가 없고 받아듣지 못했을 때에는 응당 도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여섯 번째는 혹 귀가 먹어서 들을 수 없고 받을 수 없으면 응당 도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일곱 번째는 혹 벙어리가 되어 받아 지닐 수 없고 외우고 말할 수 없으면 응당 도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여덟 번째는 혹 들었더라도 받아들이지 못하면 응당 도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아홉 번째는 혹 총명하지 못하여 경을 말해주어도 마음이 열리지 못하면 응당 도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열째의 아홉 가지 법은 멸함이 없는 것을 스스로 증득하여 아는 것입니다. 무엇이 아홉 가지인가? 첫 번째는 이름[名]과 물질[色]이 없어짐이요, 두 번째는 여섯 감관[六入]이 없어짐이요, 세 번째는 닿임[更受:觸]이 없어짐이요, 네 번째는 느낌[痛:受]이 없어짐이요, 다섯 번째는 애욕이 없어짐이요, 여섯 번째는 집착[受:取]이 없어짐이요, 일곱 번째는 존재[有]가 없어짐이요, 여덟 번째는 태어남이 없어짐이요, 아홉 번째는 늙고 죽음이 없어짐입니다.

이것이 수행자의 90가지 법입니다. 이것은 그르지 않고 이것은 다르지 않으며, 진실하고 여여하며, 미혹되지 않고 전도되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은 여실하게 지혜로운 마음으로 관찰한 것입니다.

그리고 첫째의 열 가지 법은 도를 불어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능히 수호하는 법이고 구제하는 법입니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첫 번째는 만일 여래로부터 배운 도가 있는 제자가 믿음에 따라 근본이 성립된다면 사문ㆍ바라문ㆍ하늘ㆍ악마ㆍ범천이나 다른 세간(世間)의 어느 누구도 그를 파괴하지 못할 것입니다.

두 번째는 계행을 청정히 하여 계율을 지키고 가야할 곳을 잘 알아서 죄를 보는 대로 두려워하며 배운 가르침대로 보아야 합니다.

세 번째는 지혜로운 자와 알고 지내고 지혜로운 자를 따르며 지혜로운 자를 서로 찾아가야 합니다.

네 번째는 혼자 앉아서 사유하고, 행동함에는 둘을 제어해야 하나니 몸을 제어하고 마음을 제어해야 합니다.

다섯 번째는 정진하는 행을 지녀 넉넉한 힘을 가지고 온 힘을 쏟아 행하며 방편인 깨끗한 법을 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여섯 번째는 마음을 최고의 상태로 잘 지켜 마음으로 미묘하게 오래전에 일어난 일과 말해진 것을 능히 기억하고 그 뜻을 잘 알아야 합니다.

일곱 번째는 지혜로운 행을 닦아 나고 멸하는 지혜[生滅慧]로부터 도를 얻은 자는 모든 의심을 없애고 괴로움을 무너뜨려 없애는 일만 해야 합니다.

여덟 번째는 좋은 말을 받아 지니고 좋은 법의 말대로 따라 행해야 합니다.

아홉 번째는 법 듣기를 좋아하고 법의 행 듣기를 좋아하며 자주 설법하기를 좋아해야 합니다.

열 번째는 같이 배우는 이를 위하여 함께 일하고 정진할 수 있어야 하며 몸소 도와야 합니다.

이것이 열 가지 구제하는 법이니, 이 뒤부터 믿음과 계율과 지혜로 단속하고 혼자 앉아서 사유해야 합니다. 수행자가 지혜로운 마음으로 정진하고, 좋은 말씀을 받아 경을 연설하며, 몸과 하는 일을 꼭 같게 하여 그치지 않으면 이것을 구제함이라 합니다.

둘째 열 가지 법은 실천해야 할 열 가지 바른 행입니다. 무엇이 바른 행인가? 첫 번째는 바른 소견이니, 곧 삿된 소견을 없앨 수 있고, 또 삿된 소견을 인연하여 생긴 하나가 아닌 여러 가지 나쁜 행을 즉시 녹여 없앨 수 있으며, 또한 바른 소견을 인연하여 나타난 하나가 아닌 여러 가지 좋은 법을 따라 행하고 갖추어 행하게 합니다.

두 번째는 바른 사유이니 삿된 사유를 녹여 없애고, 또 삿된 사유를 인연하여 생긴 하나가 아닌 여러 가지 나쁜 행을 즉시 녹여 없앨 수 있으며, 또한 바른 사유를 인연하여 나타난 하나가 아닌 여러 가지 좋은 법을 따라 행하고갖추어 행하게 합니다.

세 번째는 바른 말이니 삿된 말을 녹여 없애고, 또한 삿된 말을 인연하여 생긴 하나가 아닌 여러 가지 나쁜 행을 즉시 녹여 없앨 수 있으며, 또한 바른 말을 인연하여 나타난 하나가 아닌 여러 가지 좋은 법을 따라 행하고 갖추어 행하게 합니다.

네 번째는 바른 행동이니 삿된 행동을 녹여 없애고, 또 삿된 행동을 인연하여 생긴 하나가 아닌 여러 가지 나쁜 행을 즉시 녹여 없앨 수 있으며, 또한 바른 행동을 인연하여 나타난 하나가 아닌 여러 가지 좋은 법을 따라 행하고 갖추어 행하게 합니다.

다섯 번째는 바른 업이니 삿된 업을 녹여 없애고, 또 삿된 업을 인연하여 생긴 하나가 아닌 여러 가지 나쁜 행을 즉시 녹여 없앨 수 있으며, 또한 바른 업을 인연하여 나타난 하나가 아닌 여러 가지 좋은 법을 따라 행하고 갖추어 행하게 합니다.

여섯 번째는 바른 방편이니 삿된 방편을 녹여 없애고, 또 삿된 방편을 인연하여 생긴 하나가 아닌 여러 가지 나쁜 행을 즉시 녹여 없앨 수 있으며, 또한 바른 방편을 인연하여 나타난 하나가 아닌 여러 가지 좋은 법을 따라 행하고 갖추어 행하게 합니다.

일곱 번째는 바른 기억이니 삿된 기억을 녹여 없애고, 또 삿된 기억을 인연하여 생긴 하나가 아닌 여러 가지 나쁜 행을 즉시 녹여 없앨 수 있으며, 또한 바른 기억을 인연하여 나타난 하나가 아닌 여러 가지 좋은 법을 따라 행하고 갖추어 행하게 합니다.

여덟 번째는 바른 선정이니 삿된 선정을 녹여 없애고, 또 삿된 선정을 인연하여 생긴 하나가 아닌 여러 가지 나쁜 행을 즉시 녹여 없앨 수 있으며, 또한 바른 선정을 인연하여 나타난 하나가 아닌 여러 가지 좋은 법을 따라 행하고 갖추어 행하게 합니다.

아홉 번째는 바른 해탈이니 삿된 해탈을 녹여 없애고, 또 삿된 해탈을 인연하여 생긴 하나가 아닌 여러 가지 나쁜 행을 즉시 녹여 없앨 수 있으며, 또한 바른 해탈을 인연하여 나타난 하나가 아닌 여러 가지 좋은 법을 따라 행하고 갖추어 행하게 합니다.

열 번째는 바른 지혜니 삿된 지혜를 녹여 없애고, 또 삿된 지혜를 인연하여 생긴 하나가 아닌 여러 가지 나쁜 행을 즉시 녹여 없앨 수 있으며, 또한 바른 지혜를 인연하여 나타난 하나가 아닌 여러 가지 좋은 법을 따라 행하고 갖추어 행하게 합니다.

셋째의 열 가지 법은 마땅히 분명히 알아야 할 안팎의 열 가지 색입(色入)이니, 무엇이 열 가지인가? 첫 번째는 눈[眼入]이요, 두 번째는 빛깔[色入]이요, 세 번째는 귀[耳入]요, 네 번째는 소리[聲入]요, 다섯 번째는 코[鼻入]요, 여섯 번째는 냄새[香入]요, 일곱 번째는 혀[舌入]요, 여덟 번째는 맛[味入]이요, 아홉 번째는 몸[身入]이요, 열 번째는 거칠고 고움[麤細]입니다.

넷째의 열 가지 법은 버려야 할 열 가지 안팎의 덮개[蓋]이니, 무엇이 열 가지인가? 첫 번째는 안의 욕심의 덮개요, 두 번째는 밖의 욕심의 덮개이니, 이것이 갖추어지면 이로 인하여 지혜가 없어지고 또 이해도 없게 되며, 또한 함이 없음[無爲]으로 세상을 벗어나지도 못하게 됩니다.

세 번째는 성냄이요, 네 번째는 성내는 모양입니다. 성내더라도 또한 덮개이고 성내는 모양을 보이더라도 역시 덮개이니, 이것이 갖추어지면 지혜를 이루지 못하고, 또 이해를 이루지 못하며, 또한 함이 없음으로 세상을 벗어나지도 못합니다.

다섯 번째는 수면(睡眠)이요, 여섯 번째는 어둠입니다. 수면도 덮개이고 어둠도 역시 덮개이니, 이것이 갖추어지면 이로 인하여 지혜를 이루지 못하고, 또 이해를 이루지 못하며, 또한 함이 없음으로 세상을 벗어나지도 못합니다.

일곱 번째는 고뇌요, 여덟 번째는 의심입니다. 고뇌도 덮개이고 의심도 역시 덮개이니, 이것이 갖추어지면 이로 인하여 지혜를 이루지 못하고, 또 이해를 이루지 못하며, 또한 함이 없음으로 세상을 벗어나지도 못합니다.

아홉 번째는 혹 청정한 법에 대해 의심함이요, 열 번째는 혹 나쁜 법에 대해 의심함입니다. 설령 청정한 법에 대해 의심하더라도 덮개이고 나쁜 법에 대해 의심하더라도 역시 덮개이니, 이것이 갖추어지면 이로 인하여 지혜를 이루지 못하고, 또 이해를 이루지 못하며, 또한 함이 없음으로 세상을 벗어나지도 못합니다.

다섯째의 열 가지 법은 줄여야 할 열 가지 나쁜 행이니, 무엇이 열 가지인가? 첫 번째는 죽임이요, 두 번째는 도적질이요, 세 번째는 음행이요, 네 번째는 이간질이요, 다섯 번째는 허망한 말을 함이요, 여섯 번째는 추악한 말을 함이요, 일곱 번째는 꾸미는 말을 함이요, 여덟 번째는 어리석음이요, 아홉 번째는 성냄이요, 열 번째는 삿된 소견입니다.

여섯째의 열 가지 법은 많이 행하여야 할 열 가지 깨끗한 행이니, 무엇이 열 가지인가? 첫 번째는 죽이는 짓을 떠나 죽이는 짓을 그침이요, 두 번째는 도적질을 떠나 도적질을 그침이요, 세 번째는 음행을 떠나 음행을 그침이요, 네 번째는 이간질하는 말을 떠나 이간질하는 말을 그침이요, 다섯 번째는 허망한 말을 떠나 허망한 말을 그침이요, 여섯 번째는 추악한 말을 떠나 추악한 말을 그침이요, 일곱 번째는 꾸미는 말을 떠나 꾸미는 말을 그침이요, 여덟 번째는 어리석음을 떠나 어리석음을 그침이요, 아홉 번째는 성냄을 떠나 성냄을 그침이요, 열 번째는 삿된 소견을 떠나 삿된 소견을 그치는 것입니다.

일곱째의 열 가지 법은 받아 깨닫기 어려운 열 가지 도덕적 삶이니, 무엇이 열 가지인가? 첫 번째는 자기를 위하여 다섯 가지[五種]를 버림이요, 두 번째는 여섯 가지 바른 도덕을 닦음이요, 세 번째는 하나를 지킴이요, 네 번째는 넷에 의지함이요, 다섯 번째는 스스로 이해하고 다시 이해하기를 기다리지 아니함이요, 여섯 번째는 자기를 위하여 구하는 것을 버림이요, 일곱 번째는 구함이 이미 청정해짐이요, 여덟 번째는 몸의 업이 이미 그침이요, 아홉 번째는 입의 업이 이미 그침이요, 열 번째는 뜻의 업이 이미 그침입니다. 마음이 최고의 해탈하는 지혜와 해탈하는 행을 구족하면 으뜸가는 사람이라 합니다.

여덟째의 열 가지 법은 구경에 이르게 하는 열 가지 두루하는 선정이니, 무엇이 열 가지인가? 첫 번째는 비구에 있어서 땅이 위와 아래에 널리 두루하여 둘이 아니며 한량없음이요, 두 번째는 수행하는 비구에 있어서 물이 위와 아래에 널리 두루하여 둘이 아니며 한량없음이요, 세 번째는 수행하는 비구에 있어서 불이 위와 아래에 널리 두루하여 둘이 아니며 한량없음이요, 넷째는 수행하는 비구에 있어서 바람이 위와 아래에 널리 두루하여 둘이 아니며 한량없음이요, 다섯 번째는 수행하는 비구에 있어서 푸른 것이 위와 아래에 널리 두루하여 한량없음이요, 여섯 번째는 수행하는 비구에 있어서 노란 것이 위와 아래에 널리 두루하여 둘이 아니며 한량없음이요, 일곱 번째는 수행하는 비구에 있어서 붉은 것이 위와 아래에 널리 두루하여 둘이 아니며 한량없음이요, 여덟 번째는 수행하는 비구에 있어서 흰 것이 위와 아래에 널리 두루하여 둘이 아니며 한량없음이요, 아홉 번째는 수행하는 비구에 있어서 허공이 위와 아래에 널리 두루하여 둘이 아니며 한량없음이요, 열 번째는 수행하는 비구에 있어서 의식[識]이 위와 아래에 널리 두루하여 둘이 아니며 한량없음입니다.

아홉째의 열 가지 법은 부처님의 열 가지 힘이니, 무엇이 열 가지 힘인가? 첫 번째, 부처님께서는 갖가지 이치에 대해 사실대로 아시니, 당연함과 당연하지 않음을 아시고 이치와 이치 아님에 대해서도 사실 그대로 아십니다. 지혜의 행으로부터 스스로 아시니 이것이 첫 번째 힘입니다.

두 번째, 부처님께서는 과거ㆍ미래ㆍ현재에서 지은 죄와 원인이 되는 종자와 그 재앙을 있는 그대로 아시니, 이것이 두 번째 힘입니다.

세 번째, 부처님께서는 온갖 곳에서 겪은 일을 사실 그대로 아시니, 자기의 분별하는 지혜의 행으로 이것을 아십니다. 이것이 세 번째 힘입니다.

네 번째, 부처님께서는 번뇌를 버리고 해탈하여 선정에 들며, 또한 선정에서 이것은 속박이라고 알고 이것은 해탈이라고 아시며, 또 이로 인하여 선정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아십니다. 이것이 네 번째 힘입니다.

다섯 번째 부처님께서는 원하는 대로 다른 집안이나 다른 집안이나 다른 사람을 사실 그대로 아십니다. 이것이 다섯 번째 힘입니다.

여섯 번째, 부처님께서는 온갖 한량없는 여러 가지 천하의 행(行)을 이와 같이 아시나니, 이것이 여섯 번째 힘입니다.

일곱 번째, 부처님께서는 다른 사람의 근기가 온전한지 온전하지 못한지를 사실 그대로 아시니, 이것이 일곱 번째 힘입니다.

여덟 번째, 부처님께서는 한량없는 분별을 맨 처음부터 나중에 스스로 기억하는 것까지 사실 그대로 아시니, 이것이 여덟 번째 힘입니다.

아홉 번째, 부처님께서는 천안(天眼)이 이미 청정하기가 인간보다 뛰어나서 사람들이 가고 오며 나고 죽는 것을 그대로 아십니다. 이것이 아홉 번째 힘입니다.

열 번째, 부처님께서는 이미 결박을 다하여 번뇌의 결박이 없으며, 마음이 이미 해탈하고 지혜로써 해탈하여 스스로의 지혜로 증득한 법을 보시며, 또 수(受)가 다하고 생(生)이 끝나며 행할 바를 이미 만족하였음을 알고, 다시는 세간에 왕래하지 않고 이미 세상을 벗어났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아십니다. 이것이 열 번째 힘입니다.

열째의 열 가지 법은 스스로 증득하여 열 가지 배움이 만족한 것을 알아서 다시는 배우지 않는 것이니, 무엇이 열 가지인가? 첫 번째는 바른 견해가 이미 만족하여 다시는 정직한 견해를 배우지 아니함이요, 두 번째는 바른 사유와 계교가 이미 만족하여 다시는 바른 사유와 계교를 배우지 아니함이요, 세 번째는 바른 말이 이미 만족하여 다시는 바른 말을 배우지 아니함이요, 네 번째는 바른 행이 이미 만족하여 다시는 바른 행을 배우지 아니함이요, 다섯 번째는 바른 업이 이미 만족하여 다시는 바른 업을 배우지 아니함이요, 여섯 번째는 바른 방편이 이미 만족하여 다시는 바른 방편을 배우지 아니함이요, 일곱 번째는 바른 기억이 이미 만족하여서 다시는 바른 기억을 배우지 아니함이요, 여덟 번째는 바른 선정이 이미 만족하여 다시는 바른 선정을 배우지 아니함이요, 아홉 번째는 바른 해탈[度世]이 이미 만족하여 다시는 바른 해탈을 배우지 아니함이요, 열 번째는 바른 지혜가 이미 만족하여 다시는 바른 지혜를 배우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배우는 수행자의 100가지 법입니다.

100가지로 말한 이 법은 그르지 않고 다르지 않으며, 진실하고 여여하며, 미혹되지 않고 전도되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은 여실하게 지혜로운 마음으로 관찰한 것입니다.

앞에서 말한 것은 배우는 자들이 들어야 할 설법으로서, 처음 말도 청청하고 중간의 말도 또한 청정하며 마지막 끝내는 말도 역시 청정합니다. 이로움도 있고 좋음도 있으며 청정함과 구경의 해탈을 구족한 행들을 이미 드러냈으니, 이것을 10보법(報法)이라 말합니다. 이는 앞에서와 같이 말해야 하기 때문에 이렇게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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