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호국반야바라밀다경(仁王護國般若波羅蜜多經) 01. 상권

인왕호국반야바라밀다경(仁王護國般若波羅蜜多經)

불공(不空) 한역
번역

인왕호국반야바라밀다경(仁王護國般若波羅蜜多經) 01. 상권

인왕호국반야바라밀다경(仁王護國般若波羅蜜多經) 02. 하권


인왕호국반야바라밀다경(仁王護國般若波羅蜜多經) 01. 상권

1. 서품(序品)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취봉산(鷲峰山)에서 대비구 대중 천팔백 인과 함께 계셨다. 그들은 모두 아라한(阿羅漢)으로서 온갖 누(漏)가 다하여 다시는 번뇌가 없고, 마음이 잘 해탈하고 지혜가 잘 해탈하였으며, 9지(智)ㆍ10지(智)로 지을 것을 이미 갖추었고, 3가실관(假實觀)과 3공문관(空門觀)과 유위공덕(有爲功德)과 무위공덕(無爲功德)을 다 성취하였다.

또 비구니(比丘尼) 대중 팔백 인이 함께 있었으니, 다 아라한이었다.

또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는 보살마하살이 있었으니, 실지(實智)가 평등하여 영원히 미혹의 장애를 끊고 훌륭하고 교묘한 방편으로 큰 행원(行願)을 일으켰으며, 4섭법(攝法)으로 유정(有情)을 이롭게 하고 4무량심(無量心)으로 널리 일체를 감싸주며, 3명(明)을 거울 같이 통달하고 5신통(神通)을 얻었으며, 끝없는 보리분법(菩提分法)을 닦아 익혔고 교묘한 기예(技藝)가 모든 세간을 초월하였다. 연기하여 생기는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에 깊이 들어갔고 멸진정(滅盡定)에 마음대로 나오고 들어가며 나타내 보이는 것이 헤아리기 어려웠다. 마군[魔怨]을 꺾어 항복받고 2제(諦)를 함께 비추며, 법안(法眼)으로 널리 보아 중생의 근기를 알았으며, 4무애해(無碍解)로 두려움 없는 법[無畏法]을 연설하였으며, 10력의 미묘한 지혜[十力妙智]로 법의 소리를 우뢰처럼 울렸고 무등등(無等等)에 가까운 금강삼매(金剛三昧)를 얻었다. 이와 같은 공덕을 다 갖추었다.

또 한량없는 우바새(優婆塞) 대중과 우바이(優婆夷) 대중이 다 성제(聖諦)를 보았다.

또 한량없는 7현행(賢行)을 닦은 이가 있었으니, 4념처(念處)ㆍ4정근(正勤)ㆍ4신족(神足)ㆍ5근(根)ㆍ5력(力)ㆍ8승처(勝處)ㆍ10변처(遍處)ㆍ16심행(心行)으로 체현관(諦現觀)에 나아갔다.

또 열여섯 큰 나라의 왕이 있었으니, 바사닉(波斯匿)왕 등이 각기 여러 천만 권속과 함께 있었다. 또 6욕천(欲天)의 왕이 있었으니 석제환인(釋提桓因) 등이 그 권속인 한량없는 천자와 함께 있었고, 색계(色界) 4정려(靜慮)의 모든 대범왕(大梵王)도 권속인 한량없는 천자와 함께 하였으며, 모든 중생이 사는 세계에 변화하여 나타난 한량없는 유정(有情)인 아수라(阿修羅) 등이 여러 권속과 함께 하였다.

또 시방정토에 변화한 백억 개의 사자좌(獅子座)가 나타났는데 부처님께서 그 위에 앉아 법의 요체를 자세히 말씀하시고 계셨다. 그리고 그 하나하나의 자리 앞에 각각 한 송이 꽃이 나타났다. 이 백억의 꽃은 온갖 보배로 장엄하게 장식되었고 모든 하나하나의 꽃 위에 다시 한량없는 변화한 부처님과 한량없는 보살이 계셨으며 한량없는 사부대중[四衆]과 팔부신중[八部]도 있었다. 그 가운데 모든 부처님이 각각 반야바라밀다를 널리 설법하시어 시방 항하의 모래알만큼 많은 모든 불국토에 두루 퍼지니, 이와 같은 등의 거기에 온 모든 대중이 각각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있었다.

그 때 세존께서 초년(初年) 정월(正月) 팔일(八日)에 대적정묘삼마지(大寂靜妙三摩地)에 들어서 몸의 모든 털구멍에서 큰 광명을 놓아 시방 항하의 모래알만큼 많은 불국토를 널리 비추셨다.

이 때 욕계(欲界)의 한량없는 모든 하늘이 온갖 아름다운 꽃을 내리고 색계(色界)의 모든 하늘도 하늘의 꽃을 내리니, 온갖 색깔이 서로 섞이어 매우 사랑하고 즐거워할 만하였다.

이 때 무색계(無色界)에서도 여러 가지 향과 꽃을 내리니, 향기는 수미산(須彌山)처럼 드높았고 꽃은 수레바퀴와 같았는데, 구름처럼 내리어 대중을 두루 덮으니 널리 부처님 세계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다.

그 때 대중들이 제각기 서로 말하였다.

‘대각(大覺) 세존께서 전에 이미 우리들을 위하여 『마하반야바라밀다(摩訶般若波羅蜜多)』ㆍ『금강반야바라밀다(金剛般若波羅蜜多)』ㆍ『천왕문반야바라밀다(天王問般若波羅蜜多)』ㆍ『대품반야바라밀다(大品般若波羅蜜多)』 등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는 반야바라밀다를 설하셨는데, 오늘은 여래께서 큰 광명을 놓으시니 무슨 일을 하시려는 걸까?’

이 때 실라벌국(悉羅筏國)의 바사닉왕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지금 부처님께서 희유한 모습을 나타내시니, 반드시 진리의 비[法雨]를 내려 널리 모두를 이롭고 안락하게 하실 것이다.’

그리고는 곧 보개무구칭(寶蓋無垢稱) 등의 모든 우바새들과 사리불(舍利弗)ㆍ수보리(須菩提) 등의 여러 큰 성문(聲聞)과 미륵(彌勒)ㆍ사자후(獅子吼) 등의 여러 보살마하살에게 물었다.

“여래께서 나타내신 것은 어떤 상서로운 모습입니까?”

이 때 모든 대중 가운데서 대답할 수 있는 이가 없었다. 바사닉왕 등이 부처님의 신통력을 입어 음악을 널리 울리고 욕계와 색계의 여러 하늘은 각각 한량없는 하늘의 모든 음악을 연주하니, 소리가 삼천대천세계에 퍼졌다.

그 때 세존께서 다시 한량없는 아승기의 광명을 놓으시니, 그 빛이 여러 가지 색이었다. 그 하나하나의 빛 가운데에서 보배 연꽃이 나타나고, 그 천 개의 꽃잎이 다 금빛으로 변하였으며, 그 위에 변화한 부처님이 계시어 법의 요체를 펴서 설하셨다.

이 부처님의 광명이 널리 시방 항하의 모래알만큼 많은 모든 불국토에 인연 있는 곳에 비추니, 그 타방의 부처님 나라 가운데 동방에는 보광(普光)보살마하살, 동남방에는 연화수(蓮華手)보살마하살, 남방에는 이우(離憂)보살마하살, 서남방에는 광명(光明)보살마하살, 서방에는 행혜(行慧)보살마하살, 서북방에는 보승(寶勝)보살마하살, 북방에는 승수(勝受)보살마하살, 동북방에는 이진(離塵)보살마하살, 상방(上方)에는 희수(喜受)보살마하살,하방(下方)에는 연화승(蓮華勝)보살마하살 등의 각각 한량없는 백천 구지(俱胝)보살마하살이 모두 이곳에 와서 가지가지 향을 지니고 가지가지 꽃을 흩으며 한량없는 음악을 연주하여 여래께 공양하고, 부처님 발에 머리 숙여 예배하고 잠잠히 물러나 앉아서 합장 공경하고 일심으로 부처님을 우러러 바라보았다.

2. 관여래품(觀如來品)

그 때 세존께서 삼매에서 일어나시어 사자좌에 앉으시고는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열여섯 여러 나라 왕들이 모두 ‘세존께서 대자비로써 널리 모두를 이롭고 안락하게 하여 주시니 우리들 여러 왕은 어떻게 나라를 보호하면 될까?’라는 생각을 하는 것을 알고 있다.

선남자여, 나는 지금 먼저 모든 보살마하살을 위하여 불과(佛果)를 지키고 십지행(十地行)을 보호하는 법을 설할 것이니, 너희들은 모두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서 그것을 잘 생각하라.”

이 때 대중들과 바사닉왕 등이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 다 같이 찬탄하여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훌륭하십니다.”

그리고는 곧 한량없는 여러 가지 아름다운 보배 꽃을 흩으니, 허공에서 보배 일산으로 변하여 모든 대중을 덮어 두루하지 않는 데가 없었다.

이 때 바사닉왕이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머리 숙여 예배하고 무릎 꿇고 합장하여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어떻게 하여야 불과(佛果)를 보호하고 십지행을 지키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바사닉왕에게 말씀하셨다.

“불과를 보호하려면 모든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머물러야 한다. 일체 난생(卵生)ㆍ태생(胎生)ㆍ습생(濕生)ㆍ화생(化生)을 교화하되, 색의 모습[色相]을 보지 말고 색의 여여함[色如]를 보지 말며, 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과 나와 남의 지견(知見)과 상(常)ㆍ낙(樂)ㆍ아(我)ㆍ정(淨)과 4섭(攝)ㆍ6도(度)ㆍ2제(諦)ㆍ4제(諦)ㆍ10력(力)ㆍ4무소외(無所畏) 등 일체의 행(行) 나아가 보살과 여래도 이처럼 모양[相]을 보지 말 것이요, 여여함[如]도 보지 말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법의 성품이 곧 진실(眞實)이기 때문이니,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고 생김도 없고 멸함도 없으며 진제(眞際)와 같고 법성(法性)과 동등하며 둘도 없고 다름도 없어서 마치 허공과 같으며 온(蘊)ㆍ처(處)ㆍ계(界)의 모습에는 나도 없고 내 것도 없다.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것이다.”

바사닉왕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보살과 중생의 성품이 둘이 없다면 보살은 어떤 모양으로 중생을 교화합니까?”

부처님께서 대왕에게 말씀하셨다.

“색ㆍ상ㆍ행ㆍ식과 상ㆍ낙ㆍ아ㆍ정의 법성은 색에도 머물지 아니하고 색 아닌 것에도 머물지 아니하며, 수ㆍ상ㆍ행ㆍ식과 상ㆍ낙ㆍ아ㆍ정도 청정함에도 머물지 아니하고 청정하지 아니함에도 머물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법의 성품이 모두 다 공하기 때문이고 세제(世諦)를 말미암기 때문이고 3가(假)를 말미암기 때문이다.

일체 유정(有情)의 온ㆍ처ㆍ계의 법은 복(福)이거나 복이 아니거나 움직이지 아니하는 행[不動行] 등을 지어 인과(因果)가 다 있으며[有] 삼승(三乘)의 현성이 닦은 모든 행과 나아가 부처님의 과(果)에 이르기까지 다 있다고 이름하며 62견(見)도 있다고 이름한다. 대왕이여, 만약 이름과 모양에 집착하여 모든 법을 분별하면 6취(趣)ㆍ4생(生)ㆍ3승(乘)의 행과(行果)에서 곧 이 모든 법의 진실한 성품을 보지 못할 것이다.”

바사닉왕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모든 법의 진실한 성품은 청정하고 평등하여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닌데 지혜가 어떻게 비춥니까?”

부처님께서 대왕에게 말씀하셨다.

“지혜로 참된 성품을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니라고 비춘다. 왜냐하면 법의 성품이 공하기 때문이니, 곧 색ㆍ수ㆍ상ㆍ행ㆍ식과 12처(處)ㆍ18계(界)ㆍ사부(士夫)ㆍ6계(界)ㆍ12인연(因緣)ㆍ2제(諦)ㆍ4제(諦) 등의 일체가 다 공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법들은 생기자마자 소멸하고 존재하자마자 공하나니, 찰나찰나도 이와 같다. 왜냐하면 한 생각 가운데 구십찰나(九十刹那)가 있고 일찰나(一刹那)가 지나는 동안에 구백 번 생하고 멸하니, 모든 유위법(有爲法)은 모두 다 공하기 때문이다.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로써 모든 법을 비추어 보면 일체가 다 공하니, 내공(內空)ㆍ외공(外空)ㆍ내외공(內外空)ㆍ공공(空空)ㆍ대공(大空)ㆍ승의공(勝義空)ㆍ유위공(有爲空)ㆍ무위공(無爲空)ㆍ무시공(無始空)ㆍ필경공(畢竟空)ㆍ산공(散空)ㆍ본성공(本性空)ㆍ자상공(自相空)ㆍ일체법공(一切法空)ㆍ반야바라밀다공(般若波羅蜜多空)ㆍ인공(因空)ㆍ불과공(佛果空)ㆍ공공(空空)이 모두 공하기 때문이다.

모든 유위법은 법이 모인[法集] 까닭에 있고[有:존재], 수가 모인[受集] 까닭에 있고, 이름이 모인[名集] 까닭에 있고, 원인이 모인[因集] 까닭에 있고, 결과가 모인[果集] 까닭에 있고, 6취(趣)인 까닭에 있고 십지(十地)인 까닭에 있고 불과(佛果)인 까닭에 있으니, 일체가 다 있다.

선남자여, 만약 보살이 법의 모양[法相]에 머물러서 나라는 모습이 있고[我相] 남이라는 모습[人相]이 있고 중생(有情)의 지견(知見)이 있어 세간에 머물면 곧 보살이 아니다. 왜냐하면 일체 모든 법이 모두 다 공하기 때문이다. 만약 모든 법에서 움직이지 아니함을 얻으면 생기지도 아니하고 멸하지도 아니하고 모양도 없고 모양 없음도 없으니, 마땅히 견해를 일으키지 아니할 것이다. 왜냐하면 일체법이 다 여여[如]하기 때문이요, 모든 불(佛)ㆍ법(法)ㆍ승(僧)도 여여하기 때문이다.

성스러운 지혜[聖智]가 앞에 나타나는 최초의 한 생각에 팔만 사천 바라밀다를 구족함을 환희지(歡喜地)라 하고 번뇌가 다하여 해탈하도록 실어서 운반하는 것을 승(乘)이라 하며 움직이는 모양이 멸할 때를 금강정(金剛定)이라 하며, 체(體)와 상(相)이 평등한 것을 일체지지(一切智智)라 한다.

대왕이여, 이 반야바라밀다의 문장과 구절은 백 부처님ㆍ천 부처님ㆍ백천 만억 일체 모든 부처님께서 같이 설하신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항하의 모래알만큼 많은 삼천대천세계 가운데 있는 가득찬 칠보로써 보시하고 대천세계 일체 유정이 다 아라한과(果)를 얻게 할지라도, 어떤 사람이 이 경 가운데에서 한 생각 깨끗한 믿음을 일으키는 것만 못하니, 하물며 한 구절이라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해설하여 주는 자이겠는가? 왜냐하면 반야바라밀다는 문자의 성품을 여의고 문자의 모양이 없으며 법도 아니요 법 아님도 아니기 때문이다. 반야가 공한 까닭에 보살도 공하다. 왜냐하면 십지(十地) 가운데는 지(地)마다 모두 시생(始生)ㆍ주생(住生)ㆍ종생(終生)이 있으니 이 30생(生)이 다 공하고 일체지지도 다 공하기 때문이다.

대왕이여, 만약 보살이 경계를 보고 지혜를 보고 설함을 보고 수(受:감수)를 보면 곧 성인의 견해가 아니고 범부(凡夫)의 견해이다. 유정의 과보는 삼계가 허망하여 욕계(欲界)의 분별로 짓는 모든 업(業)과 색계(色界)의 4정려정(靜慮定)에서 짓는 업과 무색계 4공정(空定)에서 일으키는 업 등, 3유(有)의 업과(業果) 일체가 공하며 삼계의 근본인 무명(無名)도 공하다.

성현의 지위의 모든 지(地)와 무루(無漏)와 생멸(生滅)과 삼계 가운데 남은 무명의 습기[無明習]와 변화하는 과보도 다 공하고, 등각(等覺)보살이 얻은 금강정(金剛定:금강삼매)과 이사(二死)의 인과(因果)도 공하고 일체지(一切智)도 공하며, 부처님의 위없는 깨달음이신 원만한 종지(種智)와 택멸(擇滅)ㆍ비택멸(非擇滅)과 진실로 청정한 법계와 성품과 모양이 평등하게 작용하는 것도 공하다.

선남자여, 만약 반야바라밀다를 닦고 익혀 설하고 듣는 자가 있다면 비유하면 요술장이가 설한 것도 없고 들을 것도 없음과 같다. 법이 법의 성품과 같아 마치 허공과 같으며 일체법도 다 같다. 대왕이여, 보살마하살은 불과(佛果)를 보호함을 이와 같이 하여야 한다.”

그 때 세존께서 바사닉왕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어떤 모양으로 여래를 보는가?”

바사닉왕이 아뢰었다.

“몸의 실상을 보나니, 부처님도 그렇게 봅니다. 전제(前際)도 없고 후제(後際)도 없고 중제(中際)도 없어서 삼제(三際)에 머물지 아니하고 삼제를 여의지 아니하며, 5온(蘊)에 머물지 아니하고 5온을 여의지도 아니하며, 4대(大)에 머물지 아니하고 4대를 여의지도 아니하며, 6처(處)에 머물지 아니하고 6처를 여의지도 아니하며, 3계(界)에 머물지 아니하고 3계를 여의지도 아니하며, 방향에 머물지 아니하고 방향을 여의지도 아니하며, 명(明)과 무명(無明)이 같아 하나도 아니요 다르지도 아니하며, 이것도 아니요 저것도 아니며, 깨끗하지도 아니하고 더럽지도 아니하며, 유위(有爲)도 아니요 무위(無爲)도 아니며, 자기의 모양도 없고 남의 모양도 없으며, 이름도 없고 모양도 없으며, 강함도 없고 약함도 없으며, 보일 것도 없고 설할 것도 없으며, 베풀 것도 없고 아낄 것도 없으며, 계를 지킬 것도 아니요 범할 것도 아니며, 참을 것도 아니요 성낼 것도 아니며, 정진할 것도 아니요 게으를 것도 아니요, 적정할 것도 아니요 산란할 것도 아니며, 지혜도 아니요 어리석음도 아니며, 오는 것도 아니요 가는 것도 아니며, 들어오는 것도 아니요 나가는 것도 아니요, 복밭[福田]도 아니요 복밭이 아님도 아니며, 모양도 아니요 모양 없는 것도 아니며, 가지는 것도 아니요 버리는 것도 아니며, 큰 것도 아니요 작은 것도 아니며, 보는 것도 아니요 듣는 것도 아니며, 깨닫는 것도 아니요 아는 것도 아닙니다. 마음의 작용이 사라지고 말의 길이 끊어져서 진제(眞際) 와 같고 법성(法性)과 동등하니, 저는 이러한 모양으로써 여래를 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그대의 말과 같다. 모든 부처님ㆍ여래의 힘과 두려움 없음 등의 항하의 모래알만큼 많은 공덕과 모든 불공법(不共法)들은 모두 다 이와 같으니, 반야바라밀다를 닦는 자는 응당히 이와 같이 볼 것이며, 만약 다르게 보는 자는 삿되게 본다고 한다.”

이 법을 설할 때 한량없는 대중이 법안(法眼)이 청정해짐을 얻었다.

3. 보살행품(菩薩行品)

그 때 바사닉왕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십지의 행[十地行]을 보호하는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어떻게 수행하고 어떻게 중생을 교화하며 또 어떤 모양으로 머물러 관찰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대왕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보살마하살은 5인(忍)의 법에 의해서 수행해야 할 것이다. 이른바 복인(伏忍)ㆍ신인(信忍)ㆍ순인(順忍)ㆍ무생인(無生忍)인데, 모두 상ㆍ중ㆍ하가 있고 적멸인(寂滅忍)에도 상ㆍ하가 있다. 이것을 보살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한다고 한다.

선남자여, 처음 복인(伏忍)의 위치에서 습종성(習種性)을 일으켜 십주행(十住行)을 닦는다. 처음 발심한 모습은 항하의 모래알만큼 많은 중생이 있어서 불ㆍ법ㆍ승을 보고 10신(信)을 일으키니, 이른바 믿는 마음[信心]ㆍ생각하는 마음[念心]ㆍ정진하는 마음[精進心]ㆍ지혜의 마음[慧心]ㆍ선정의 마음[定心]ㆍ물러나지 않는 마음[不退心]ㆍ계를 지키는 마음[戒心]ㆍ서원을 세우는 마음[願心]ㆍ법을 보호하는 마음[護法心]ㆍ회향하는 마음[廻向心]이다. 이 열 가지 마음을 갖추면 능히 적은 부분으로도 모든 중생을 교화하고 이승(二乘)의 일체 선(禪)의 경지를 뛰어넘나니, 이것이 보살의 처음 마음을 길러서 성태(聖胎)가 되는 것이다.

또 성종성(性種性)보살은 열 가지 바라밀을 수행하여 열 가지 대치(對治)하는 법을 일으키니, 이른바 신(身)ㆍ수(受)ㆍ심(心)ㆍ법(法)은 부정(不淨)하고 괴로움이며 무상(無常)하고 무아(無我)라고 관찰하여 탐(貪)ㆍ진(瞋)ㆍ치(癡)의 세 가지 선하지 못한 뿌리를 다스리고, 보시ㆍ자비ㆍ지혜의 세 가지 선한 뿌리를 일으키고 삼세의 과거 원인의 인[因忍]ㆍ현재 원인과 결과의 인[因果忍]ㆍ미래 결과의 인[果忍]을 관찰하니, 이 위치의 보살은 널리 중생을 이롭게 하며 나라는 견해와 남이라는 견해와 중생이라는 등의 생각을 뛰어 넘어서 외도의 전도된 생각으로는 능히 허물지 못한다.

또 도종성(道種性)의 보살은 10회향(回向)을 닦아 10인심(忍心)을 일으키나니, 이른바 색(色)ㆍ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의 5온을 관찰하여 계인(戒忍)ㆍ정인(定忍)ㆍ혜인(慧忍)ㆍ해탈인(解脫忍)ㆍ해탈지견인(解脫知見忍)을 얻고 삼계의 인과를 관찰하여 공인(空忍)ㆍ무상인(無想忍)ㆍ무원인(無願忍)을 얻고, 2제(諦)의 거짓과 진실[假實]과 모든 법의 무상(無常)함을 관찰하여 무상인(無常忍)을 얻고 일체법이 공함을 관찰하여 무생인(無生忍)을 얻으니, 이 위치의 보살은 전륜왕(轉輪王)이 되어 널리 일체 중생을 교화하고 이롭게 할 것이다.

또 신인(信忍)의 보살은 환희지(歡喜地)ㆍ이구지(離垢地)ㆍ발광지(發光地)에 이른 보살이니, 색번뇌(色煩惱)의 결박인 세 가지 장애를 끊고, 보시ㆍ애어(愛語)ㆍ이행(利行)ㆍ동사(同事)의 4섭법(攝法)을 행하고, 자무량심(慈無量心)ㆍ비(悲)무량심ㆍ희(喜)무량심ㆍ사(捨)무량심의 4무량심(無量心)을 닦고, 네 가지 넓은 서원을 갖추어 모든 번뇌를 끊고, 부처님의 지견을 닦아 항상 중생을 교화하며, 무상각(無上覺)을 이루어 공해탈문ㆍ무상(無相)해탈문ㆍ무원(無願)해탈문의 3해탈문(解脫門)에 머문다.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초발심에서 일체지(一切智)에 이르기까지 모든 행의 근본이니, 일체중생을 이익하고 안락하게 한다.

또 순인(順忍)의 보살은 염혜지(焰慧地)ㆍ난승지(難勝地)ㆍ현전지(現前地)에 이른 보살이니, 심번뇌(心煩惱)의 결박인 세 가지 장애를 끊고 한 몸으로 시방에 억(億) 부처님 세계를 두루 다니며 말할 수 없는 신통변화를 나타내어 중생을 이익하고 안락하게 한다.

또 무생인(無生忍)의 보살은 원행지(遠行地)ㆍ부동지(不動地)ㆍ선혜지(善慧地)에 이른 보살이니, 물질[色]과 마음[心]의 습기(習氣)인 세 가지 장애를 끊고, 말할 수 없는 몸을 나타내 보여서 일체중생의 유(類)를 따라 이익하게 한다.

또 적멸인(寂滅忍)이라는 것은 부처님과 보살은 같이 이 인(忍)에 의지하니, 금강유정(金剛喩定)이 하인(下忍)의 지위에 머물면 보살이라 이름하고 상인(上忍)에 이르면 일체지라 하며, 승의제(勝義諦)를 관찰하여 무명의 모양[無明相]을 끊으면 이것을 등각(等覺)이라 한다. 일상(一相)과 무상(無相)이 평등하여 둘이 아니며 제 십일의 일체지지(一切智地)가 되나니,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니며, 맑고 청정하여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으며, 항상 머물러서 변하지 않고, 진제(眞際)와 같고 법성(法性)이 평등하며, 인연 없는 대비[無緣大悲]로 항상 중생을 교화하며 일체지의 수레[乘]를 타고 와서 삼계를 교화한다.

선남자여, 모든 중생 각 부류[類]의 모든 번뇌는 이십이 근(根)의 업(業)의 이숙과(異熟果)로 삼계를 벗어나지 못하며, 모든 부처님의 응신(應身)ㆍ화신(化身)ㆍ법신(法身)이 인도하여 보이는 것도 또한 이를 벗어나지 못한다.

만약 삼계 밖에 달리 다시 하나의 중생세계가 있다고 말한다면, 곧 이것은 외도의 『대유경(大有經)』의 설이다.

대왕이여, 내가 항상 모든 중생에게 말하였다. 다만 삼계의 무명(無明)을 끊어 다한 자를 곧 부처라 이름하고, 자성이 청정한 것을 본각성(本覺性)이라 이름하니, 곧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일체지지(一切智智)이며, 이것을 얻음으로 말미암아 중생의 근본이 되며, 또한 이것은 모든 부처님과 보살의 행의 근본이 되니, 이것이 보살이 본래 수행하는 5인법(忍法) 가운데 14인(忍)이다.”

부처님께서 대왕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앞서 묻기를 ‘보살은 어떻게 중생을 교화합니까’라고 했는데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와 같이 교화해야 하니, 처음 일지(一地)에서부터 마지막 일지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행한 곳과 부처님께서 행한 곳이 일체지견이기 때문이다.

만약 보살마하살이 백 부처님 나라에 머물며 섬부주(贍部洲)의 전륜성왕이 되어 백법의 명문[百法明門]을 닦아 단(檀:布施)바라밀로써 평등심에 머물며 사천하(四天下)의 일체 중생을 교화하거나, 혹은 보살마하살이 천 부처님 세계에 머물며 도리천왕(忉利天王)이 되어 천법의 명문[千法明門]을 닦아 10선도(善道)를 설하여 일체 중생을 교화하거나, 혹은 보살마하살이 만 부처님 세계에 머물며 야마천왕(夜摩天王)이 되어 만법의 명문[萬法明門]을 닦아 4선정(禪定)에 의하여 일체 중생을 교화하거나, 혹은 보살마하살이 억 부처님 세계에 머물며 도솔천왕[覩史多天王]이 되어 억법의 명문[億法明門]을 닦아 보리분법(菩提分法)을 행하여 일체 중생을 교화하거나, 혹은 보살마하살이 백억 부처님 세계에 머물며 화락천왕(化樂天王)이 되어 백억법의 명문을 닦아 이제사제(二諦四諦)로 일체 중생을 교화하거나, 혹은보살마하살이 천억 부처님 세계에 머물며 타화자재천왕(他化自在天王)이 되어 천억법의 명문을 닦아 12인연의 지혜로써 일체 중생을 교화하거나, 혹은 보살마하살이 만억 부처님 세계에 머물며 초선천의 범왕[初禪梵王]이 되어 만억법의 명문을 닦아 선량하고 교묘한 방편으로 일체중생을 교화하거나, 혹은 보살마하살이 백만 미진수의 부처님 세계에 머물며 제이선천의 범왕이 되어 백만 미진수 법의 명문을 닦아 원지(願智)의 신통으로 일체 중생을 교화하거나, 혹은 보살마하살이 백만억 아승기 미진수 부처님 세계에 머물며 제삼선천의 범왕이 되어서 백만억 아승기 미진수법의 명문을 닦아 4무애지(無碍智)로 일체 중생을 교화하거나, 혹은 보살마하살이 이루 다 말로 할 수 없는 부처님 세계에 머물며 제사선천의 대범천왕[四禪天大梵天王]이 되어 삼계의 왕이 되어 이루 다 말로 할 수 없는 법의 명문[不可說不可說法明門]을 닦아 이진삼매(理盡三昧)를 얻어 부처님이 행한 곳[行處]과 같이 삼계의 근원을 다하여 널리 중생을 이롭게 함이 부처님 경계와 같이 한다.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모든 왕의 몸으로 나타나 교화하고 인도하는 일이다. 시방 여래도 이와 같아 위없는 깨달음을 증득하여 항상 법계를 두루하여 중생을 이롭고 안락하게 한다.”

그 때 일체 대중이 곧 자리에서 일어나 말할 수 없이 많은 꽃을 흩고 말할 수 없이 많은 향을 사루며 여래에게 공양하고 공경하고 찬탄하였다.

그 때 바사닉왕이 곧 부처님 앞에서 게송으로 찬탄하였다.

세존 도사(導師)께서는 금강의 몸이시라 
마음 고요히 법륜 굴리시어 
8변(辯)의 원음(圓音) 열어 펴시니 
그 때 도(道) 얻은 대중 백만억이네.



하늘과 사람 함께 출리행(出離行) 닦아 
능히 일체의 보살도를 익히고 
5인(忍) 공덕의 법문 
십사 보살이 능히 자세히 깨달았도다.


3현(賢)의 인중행(忍中行)은 
오직 부처님 한 사람만이 근원을 다하고 
불법의 온갖 바다 삼보의 창고에는 
한량없는 공덕 그 가운데 있네.



10선(善)의 보살 큰 마음 일으켜 
길이 삼계의 고통 바다 여의고 
중ㆍ하품의 선(善)은 좁쌀왕[粟散王]이며 
상품(上品)의 10선은 철륜왕(鐵輪王)이다.



습종성(習種性)의 동륜왕(銅輪王)은 이천하(二天下)왕이요 
성종성(性種性)의 은륜왕(銀輪王)은 삼천하(三天下)왕이요 
도종성(道種性)의 견고한 덕은 전륜왕이며 
칠보의 금륜왕(金輪王)은 사천하왕이다.



복인(伏忍) 성태(聖胎)의 삼십 인은 
10주(住)ㆍ10행(行)ㆍ10회향(回向)으로 
삼세의 모든 부처님 이 가운데서 배우니 
이 복인에서 생겨나지 않음이 없네.



일체 보살행의 근본이 되니 
이런 까닭에 발심하여 믿기 어려우나 
만약 신심 얻으면 물러나지 않고 
정진하여 무생인(無生忍)의 초지(初地)에 들며 

나와 남 평등히 교화하여 이롭게 하니 
이것을 초발심 보살이라 하고 
환희지 보살인 전륜왕은 
처음 2제(諦)가 평등한 이치를 본다네.


많은 나라를 거닐며 중생을 교화하고 
청정한 보시로 많은 중생 이익하게 하며 
반야의 이치 깨달으면 머문다[住] 하고 
머물러 덕행 생기면 지(地)라 하네.



초주(初住)에서 일심으로 온갖 덕 갖추고 
승의제(勝義諦) 가운데 움직이지 않으며 
이구지 보살인 도리왕은 
6취(趣)의 천 국토에 얼굴 나타내네.



지계 청정하며 모두 다 원만하여 
영원히 잘못 범하는 모든 과실 여의고 
모양 없고 인연 없는 진실한 성품 
체도 없고[無體] 생김도 없어 둘을 비출 것 없네.



발광지 보살인 야마왕은 
일만 불국토에 가서 나투시며 
능히 잘 삼마지(三摩地)에 통달하여 
3명(明)을 갖추어 숨고 나타냄이 자유롭네.



환희(歡喜)ㆍ이구(離垢)ㆍ발광(發光)지의 보살은 
능히 물질에 얽힌 모든 번뇌 없애고 
자세히 모든 신업(身業)과 구업(口業)을 관찰함에 
법성이 청정하여 다 원만히 비추네.



염혜지 보살 크게 정진하고 
도솔천왕은 억의 나라 노닐며 
진실의 지혜 적멸하나 방편지로써 
무생(無生)의 이치 통달하여 공(空)과 유(有)를 비추네.



난승지 보살은 평등의 이치 얻고 
화락천왕은 백억 나라에 노닐며 
두 가지 모양 없는 공의 진리로 
6취에 빠짐없이 두루 나투네.



현전지 보살인 자재왕 
인연하여 생한 모습에 둘이 없음을 비추어 보고 
승의지(勝義智) 광명 능히 두루 가득하여 
천억 국토 노닐면서 중생 교화하시네.



염혜(焰慧)ㆍ난승(難勝)ㆍ현전(現前)지의 보살은 
세 가지 장애인 미혹한 마음의 번뇌 능히 끊고 
공의 지혜 고요히 인연 없음 관하여 
도리어 마음 공한 무량경계 비추네.



원행지 보살은 초선천의 왕이 되어 
무상(無相) 무생인(無生忍)에 머물면서 
교묘한 방편으로 다 평등하게 
항상 만억 국토 중생 교화하시네.



부동(不動)의 법류지(法流地)에 들면 
영원히 생사의 분단(分段) 없이 모든 존재 뛰어넘어 
항상 승의제(勝義諦)로 둘 없음을 비추니 
스물한 생(生)의 공적한 행이네.



도법에 순종하여 애(愛)와 무명(無明)의 습기[習]를 
원행지 보살은 홀로 능히 끊고 
부동지 보살 이선천(二禪天) 왕은 
변역신(變易身)을 얻어 항상 자재로워 
능히 백만억 미진 세계에서 
그들의 모양 따라 중생 교화하시며 
삼세의 무량겁 다 알아서 
제일의(第一義)에서 움직이지 않도다.



선혜지 보살 삼선천의 왕은 
능히 천 항하사(恒河沙)에 일시에 몸 나투며 
항상 무위(無爲)의 공적한 행으로 
항하사 부처님 법장(法藏) 한 생각에 깨쳤네.



법운지 보살인 사선천의 왕은 
억 항하사 세계의 많은 중생 교화하고 
비로소 금강정(金剛定)에 들어 일체를 요달하고 
스물아홉 생(生)을 영원히 건넜네.



적멸인(寂滅忍) 가운데 하인(下忍)을 관하여 
한 번 바뀌어 묘각(妙覺)의 무등등(無等等)되시고 
부동(不動)ㆍ선혜(善慧)ㆍ법운(法雲)지의 보살은 
앞에 있던 무명의 습기 다 없애고 

무명의 습기 모양은 식(識)과 함께 유전하나 
2제(諦)의 이치 원만하여 다하지 않음이 없고 
바른 깨달음은 상(相)이 없이 법계(法界)에 두루하니 
서른 생(生) 다하여 지혜 원만하도다.



고요히 무위(無爲)의 참된 해탈 비추니 
대비(大悲)로 나투심이 비할 데 없고 
고요히 움직이지 않고 항상 안온하니, 
광명 두루 비춰 더 비출 곳 없네.



3현(賢)ㆍ10성(聖)도 과보에 머무나 
금강의 근원에 오르면 항상 움직이지 않으리.



여래 3업(業)의 덕 한량없으시니 
모든 중생을 따라 같이 연민하시네.


법왕(法王)은 위없는 사람 중에 큰 나무시니 
널리 대중에게 무량한 광명을 드리우네.



입으로 항상 설하심에 의미 없는 것 없고 
마음의 지혜 적멸하여 무연(無緣) 중생 비추시네.


사람 중의 사자(師子) 연설하시니 
매우 깊은 글의 뜻 일찍이 없었네.



중생 세계 다 진동하니 
대중 환희하여 다 이익 입었네.


세존께서 십사(十四) 왕 훌륭히 설하시니 
그러므로 저희들 머리 숙여 절합니다.

그 때 백만억 항하사 같은 대중들이 부처님 세존과 바사닉왕이 설한 14인(忍)의 무량공덕을 듣고 큰 법의 이익을 얻었으며, 법을 듣고 깨달아 무생인(無生忍)을 얻어 바른 자리[正位]에 들어갔다.

그 때 세존께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이 바사닉왕은 이미 과거 십천겁(十千劫) 전에 용광왕(龍光王) 부처님 법 가운데에서 사지(四地) 보살이었고 나는 팔지(八地) 보살이었는데, 지금 나의 앞에서 큰 사자후(獅子吼)를 하니, 참으로 그러하다. 그대의 설함과 같다. 진실한 뜻을 얻은 것은 불가사의하니 오직 부처님과 부처님만이 이 일을 아신다.

선남자여, 이 14인(忍)은 모든 부처님의 법신이요 모든 보살의 행이며, 생각하여 의논할 수 없고 헤아려 말할 수도 없다. 일체 모든 부처님은 다 반야바라밀다 가운데서 생겨나서 반야바라밀다 가운데서 교화하고 반야바라밀다 가운데서 멸한다. 그러나 진실로 모든 부처님은 생(生)하였으나 생한 바도 없고, 교화하였으되 교화한 바도 없고, 멸(滅)하였으나 멸한 바도 없으며, 제일이요 둘도 없으며, 모양도 아니요[非相] 모양 없음도 아니며, 자기도 없고 남도 없으며, 옴도 없고 감도 없으니, 허공과 같기 때문이다.

선남자여, 일체 중생의 성품은 생하고 멸함이 없고 모든 법은 모임으로 말미암아 환화(幻化)처럼 온(蘊)ㆍ처(處)ㆍ계(界)의 모양이 있으며 모임[合]도 없고 흩어짐[散]도 없으니, 법은 법성(法性)과 같아 고요하고 공하기 때문이다. 일체 중생은 자성이 청정하여 지은 모든 행이 얽매임[縛]도 없고 풀림[解]도 없으며, 인(因)도 아니고 과(果)도 아니고 인과가 아님도 아니며, 행으로 받는 모든 고통은 번뇌장(煩惱障)과 소지장(所知障) 때문이다. 나라는 모양ㆍ남이라는 모양ㆍ알고 보고 받아들이는 것 모두가 공한 까닭으로 법의 경계도 공하다. 공함[空]과 모양 없음[無相]과 짓지 않음[無作:無願]은 거꾸로 된 생각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환화(幻化)에도 순종하지 아니하여 6취(趣)라는 모양도 없고 4생(生)이라는 모습도 없고 삼보(三寶)라는 모습도 없으니, 허공과 같기 때문이다.

선남자여, 매우 깊은 반야는 아는 것도 없고 보는 것도 없고 행함도 아니요 인연할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고 받아들임도 없는 것으로서 바로 머물러 관찰하면 비추는 모양[照相]이 없나니, 이렇게 도를 행하는 자는 허공과 같기 때문이다.

법의 모양이 이와 같아 얻을 것이 있는 마음이나 얻을 것이 없는 마음을 다 얻지 못하니, 이런 까닭으로 반야는 5온과 상즉(相卽)한 것도 아니요 5온과 상리(相離)한 것도 아니며, 중생과 상즉한 것도 아니요 중생과 상리한 것도 아니며, 경계와 상즉한 것도 아니요 경계와 상리한 것도 아니며, 수행과 지혜[行解]와 상리한 것도 아니요 수행과 지혜와 상리한 것도 아니니, 이와 같은 등의 모양을 생각하여 헤아릴 수 없다. 이런 까닭에 모든 보살마하살이 닦는 모든 행은 아직 구경에 이르지 못하였으되 그 가운데서 행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은 환화(幻化)와 같다고 알아서 모양에 머무는 것이 없이[無住相] 그 가운데서 교화한다. 그러므로 14인(忍)은 생각으로 헤아릴 수없다.

선남자여, 그대가 지금 설한 이 공덕의 창고[藏]는 일체 중생에게 큰 이익이 있다. 가령 한량없는 항하의 모래알만큼 많은 십지 보살이 설한 이 공덕의 백천억 분이니, 바다의 물 한방울과 같다. 삼세의 모든 부처님은 여실히 능히 아시며 일체 현성이 다 칭찬하신다. 이런 까닭에 내가 지금 간략히 공덕의 일부분만 설하는 것이다.

선남자여, 이 14인은 시방세계의 과거ㆍ현재 일체 보살이 수행하는 바요, 일체 모든 부처님께서 나타내 보이신 바이니, 미래 모든 부처님과 보살마하살 또한 이와 같다.

만약 보살이 이 문을 따르지 아니하고 일체지를 얻는다는 이런 이치는 없다. 왜냐 하면 모든 부처님과 보살은 다른 길이 없기 때문이다.

선남자여, 만약 어떤 사람이 이 주인(住忍)ㆍ행인(行忍)ㆍ회향인(回向忍)ㆍ환희인(歡喜忍)ㆍ이구인(離垢忍)ㆍ발광인(發光忍)ㆍ염혜인(焰慧忍)ㆍ난승인(難勝忍)ㆍ현전인(現前忍)ㆍ원행인(遠行忍)ㆍ부동인(不動忍)ㆍ선혜인(善慧忍)ㆍ법운인(法雲忍)ㆍ정각인(正覺忍)을 듣고 능히 한 생각 청정한 믿음을 일으키는 자는, 이 사람은 백 겁 천 겁, 한량없고 끝이 없는 항하의 모래알만큼 많은 겁의 일체 고난을 뛰어넘어 악도[惡趣]에 태어나지 아니하고 오래지 않아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다.”

이 때 십억의 이름이 같은 허공장(虛空藏)보살마하살과 한량없고 수없이 모인 모든 대중이 뛸듯이 기뻐하였고 부처님의 위신력을 입어 널리 시방의 항하의 모래알만큼 많은 모든 부처님께서 각각의 도량에서 14인(忍)을 설하심을 뵙고는 ‘우리 세존께서 설하신 바와 다름이 없다’라고 하고는 각각 환희하며 설하심과 같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였다.

그 때 세존께서 바사닉왕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먼저 ‘다시 어떤 모습으로 머물러서 관찰하옵니까?’라고 물었는데,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자신의 환화(幻化)로 된 몸으로써 남을 환화라고 보아서 바로 평등함에 머물러 남과 내가 없다고 이와 같이 관찰해야 한다. 이와 같이 관찰하여야 중생을 교화하여 이익되게 하여야 한다. 그러나 모든 중생은 오랜 세월에 처음 찰나의 식(識)이 나무나 돌과는 달라서 나면서 더럽고 깨끗함을 얻어서 각각 스스로 능히 한량없고 수없는 더럽고 깨끗함을 식의 근본으로 삼았다. 최초에 말할 수 없는 찰나에서 나아가 금강(金剛)이 되는 마지막 찰나에 이르기까지 말할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식이 있어서 모든 유정(有情)의 색(色)ㆍ심(心) 두 법이 생겼는데, 색은 색온(色蘊)이라 하고 심은 4온(蘊)이라 이름하니, 다 성품을 적취(積聚)하고 있고 진실을 가려 덮고 있다.

대왕이여, 이 하나의 색법(色法)은 한량없는 색을 생하니, 눈이 얻으면 색(色)이 되고 귀가 얻으면 소리가 되고 코가 얻으면 냄새가 되고 혀가 얻으면 맛이 되고 몸이 얻으면 촉감이 된다. 견고함을 지닌 것을 땅이라 하고 윤택한 것을 물이라 하고 따뜻한 성품을 불이라 하고 가볍게 움직이는 것을 바람이라 한다.

5식(識)이 생기는 곳을 5색근(色根)이라 하니, 이와 같이 전전하여 한 색[一色]과 한 마음[一心]이 생겨 말할 수 없고 한량없는 색심(色心)이 생기지만, 다 환(幻)과 같다.

선남자여, 유정이 받는 것은 세속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있다거나 없다거나 하는 것은 다만 유정의 망상과 생각으로 생기는 것이니, 업을 짓고 과보를 받는 것은 다 세속의 진리[世諦]이다. 삼계 6취(趣)의 일체 유정인 바라문(婆羅門)ㆍ찰제리(刹帝利)ㆍ비사(毘舍)ㆍ수다라(首陀羅), 나와 남, 지견(知見), 색법(色法)ㆍ심법(心法)이 꿈 속에서 보는 것과 같다.

선남자여, 일체 모든 이름은 다 거짓으로 시설해 놓은 것이다. 부처님께서 아직 세상에 나오시기 전에는 세상의 진리[世諦]는 환(幻)과 같은 법이라 이름도 없고 뜻도 없고 또한 몸[體]도 모양도 없으며 삼계의 이름, 선악의 과보, 6취의 이름자도 없었는데 모든 부처님께서 출현하시어 유정을 위하는 까닭에 3계ㆍ6취ㆍ염정(染淨) 등의 한량없는 이름자를 설하셨다. 이와 같이 일체는 소리의 메아리와 같아 모든 법이 상속하여 생각생각이 멈추지 아니하고 찰나찰나가 같지도 아니하고 다르지도 아니하며, 급속히 일어나고 급속히 멸하며 끊어지지도 아니하고 항상 있지도 아니하니, 모든 유위법(有爲法)은 아지랑이와 같기 때문이다. 모든 법은 서로 상대하여 있는 것이니, 이른바 색계(色界)ㆍ안계(眼界)ㆍ안식계(眼識界)와 나아가 법계(法界)ㆍ의계(意界)ㆍ의식계(意識界)에 이르기까지 마치 번갯불과 같아 일정하게 서로 상대하여 일어나지 아니하니, 있는 것과 없는 것, 같고 다른 것이 두 개의 달과 같아 모든 법은 인연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온ㆍ처ㆍ계의 법은 물 위의 거품과 같으니, 모든 법은 인연으로 이루어지고 일체 유정은 구시인과(俱時因果)와 이시인과(異時因果)로 이루어지며 삼세의 선악은 공중의 구름 같다.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은 분별함이 없고 피차의 모양도 없고 나와 남의 모양도 없는데 머물러서 항상 교화하여 이롭게 행하되 교화하여 이롭게 하는 모양이 없다. 이런 까닭에 마땅히 알라. 범부는 식(識)이 때묻어서 허망함에 물들고 집착하게 되어 모양[相]에 얽매어 있지만 보살은 비추어 봄에 환(幻)과 같음을 안다. 몸[體]과 모양[相]이 없고 다만 허공에 꽃과 같으니, 이것이 보살마하살은 나와 남을 이롭게 하는 데 머물러서 여실하게 관찰하는 것이다.”

이 법을 설할 때 모임 가운데 한량없는 사람ㆍ하늘ㆍ대중이 복인(伏忍)과 공무생인(空無生忍)을 얻었으며 일지(一地)ㆍ지 나아가 십지에 이르기까지 한량없는 보살이 일생보처(一生補處)를 얻었다.

4. 이제품(二諦品)

그 때 바사닉왕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승의제(勝義諦) 가운데 세속제(世俗諦)가 있습니까? 만약 없다고 말씀하시면 지혜가 마땅히 둘이 아니요 만약 있다고 말씀하시면 지혜가 마땅히 하나가 아닐 것입니다. 하나와 둘의 뜻 그 일은 어떠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그대는 과거 용광왕(龍光王)부처님 법 가운데서 이미 이 뜻을 물었다. 내가 지금 설하지 아니하면 그대는 지금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설하지 아니하면 들을 수 없으리니, 이것이 곧 하나의 뜻, 둘의 뜻이다. 그대는 지금 자세히 들으라. 마땅히 그대를 위하여 설할 것이다.”

그 때 세존께서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모양 없는 승의제(勝義諦)는 
몸[體]은 나와 남이 지은 것 아니요 
인연은 환(幻)이 있는 것 같아 
또한 나와 남이 지은 것 아니니라.



법의 성품은 본래 성품이 없고 
승의제의 공함도 같아 
모든 존재[有]는 환(幻)으로 있는 법 
세 가지 거짓[三假]이 모여 거짓으로 있네.



없도다 없도다 진리[諦]는 실로 없네.


적멸한 열반의 공[勝義空] 
모든 법 인연으로 있는 것 
있고 없는 뜻도 이와 같다네.



있고 없는 것 본래 스스로 둘이라 
비유하면 소의 두 뿔 같아 
지혜[解]로 비추어 보면 둘이 없나니, 
이제(二諦) 항상 가깝지 않네.



마음 알면 둘 없는 것 볼 수 있나니 
둘을 구해도 얻지 못한다.


이제가 하나라 말하지 말라.


하나도 또한 얻지 못하리.



깨달으면 항상 스스로 하나이지만 
제(諦)에는 언제나 스스로 둘이니 

이 하나와 둘을 깨달아 알면 
진실로 승의제에 들어가리라.



세상 진리[世諦] 환화(幻化)가 일어난 것을 
비유하면 허공의 꽃과 같고 
그림자 같고 털수레[毛輪]같아 
인연으로 말미암아 환(幻)이 있는 것.



환화(幻化)로 된 것이 환화를 보니, 
어리석은 이는 진리[幻諦]라 하고 
환사(幻師)가 환법(幻法)보면 
진리[諦]나 환이 모두 없다네.



만약 이 같은 법 요달하면 
곧 하나와 둘의 뜻에서 해탈하느니라.


일체법에 두루하여 
마땅히 이와 같이 관(觀)할 것이니라.

대왕이여, 보살마하살은 승의제에 머물러서 모든 유정을 교화하나니, 부처님과 유정은 하나이며 둘이 아니다. 왜냐하면 중생과 보리 이 둘은 다 공하기 때문이다. 중생이 공함으로 보리가 공함을 얻고 보리가 공함으로 중생이 공함을 얻으니 일체법이 공하며 공도 공하다. 왜냐하면 반야는 모양이 없고 2제(諦)도 다 공하기 때문이니, 이른바 무명에서부터 일체지에 이르기까지 자기의 모양도 없고 남이라는 모양도 없으며 제일의(第一義) 견해에서는 보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 수행하면 가지어 집착하지 아니할 것이요 만약 수행하지 아니하여도 또한 가지고 집착하지 아니할 것이며, 수행하지 않거나 수행하지 아니하지 않아도 또한 가지고 집착하지 아니할 것이니 일체법에 다 가지고 집착하지 아니할 것이다. 보살이 아직 성불하지 아니하였을 때 보리를 번뇌로 삼고 보살이 성불한 때에는 번뇌를 보리로 삼는다. 왜냐하면 제일의에는 둘이 없기 때문이고, 모든 부처님 여래에게는 일체법이 다 같기 때문이다.”

바사닉왕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시방의 모든 부처님과 일체 보살은 어떻게 문자를 여의지 아니하고 실상(實相)을 행합니까?”

부처님께서 대왕에게 말씀하셨다.

“문자란 계경(契經)ㆍ응송(應頌)ㆍ기별(記別)ㆍ풍송(諷誦)ㆍ자설(自說)ㆍ연기(緣起)ㆍ비유(譬喩)ㆍ본사(本事)ㆍ본생(本生)ㆍ방광(方廣)ㆍ희유(希有)ㆍ논의(論議) 등이니, 펴서 설하는 음성과 언어ㆍ문자ㆍ글귀가 있는 것이다. 일체가 다 같이 실상이 아님이 없으나 만약 문자의 모양만을 취하는 자는 곧 실상이 아니다.

대왕이여, 실상을 닦는다는 것은 문자를 닦는 것과 같다. 실상은 곧 이 모든 부처님 지혜의 어머니요 일체 유정의 근본이 되는 지혜의 어머니이니, 이것이 곧 일체지의 체(體)다. 모든 부처님께서 아직 성불하지 아니하였을 때는 마땅히 부처님의 지혜의 어머니가 되고 모든 부처님께서 이미 성불하면 곧 일체지가 되니, 얻지 못하였을 때는 성품이 되고 얻고 나면 지혜가 된다. 삼승(三乘)의 반야는 생기지도 아니하고 멸하지도 아니하며 자성은 항상 머물러서 일체 유정은 이것을 깨달음의 성품으로 삼는다. 만약 보살이 문자에 집착하지 아니하고 문자를 여의지도 아니하면 문자의 모양[文字相]이 없기도 하며 문자가 없는 것도 아니다. 능히 이와 같이 닦되 닦는다는 모양[修相]을 보지 않으면, 이것이 곧 문자를 닦는 것이라고 이름한다. 그래서 능히 반야의 참된 성품을 얻나니, 이것이 반야바라밀다이다.

대왕이여, 보살마하살은 불과(佛果)를 보호하고 십지행(十地行)을 보호하니, 유정을 보호하며 교화함이 이와 같다.”

바사닉왕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참된 성품은 이 하나이나 유정의 품성의 종류와 근기의 행함[根行]은 한량없으니 법문은 한 가지입니까, 한량이 없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법문은 한 가지가 아니요 또한 한량없는 것도 아니다.

무슨 까닭인가? 모든 유정은 물질[色法]과 마음[心法]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5취온(取蘊)의 모양, 나와 남, 지견(知見) 등, 가지가지 근기의 행과 품성의 종류는 끝이 없고 법문은 근기를 따르므로 또한 한량이 없다. 이 모든 법의 성품은 모양도 아니요 모양이 없는 것도 아니다.

만약 보살이 모든 중생을 따라서 하나로 보거나 둘로 보면 이것은 곧 하나나 둘의 뜻을 보지 못함이니, 하나와 둘이 하나도 아니요 둘도 아님을 깨달아 알면, 곧 승의제(勝義諦)요, 하나와 둘에 집착하여 있다거나 없다거나 하면 곧 세속제(世俗諦)이다. 이런 까닭에 법문은 하나도 아니요 둘도 아니다.

대왕이여, 일체 모든 부처님은 반야바라밀다를 설하였으며 나도 지금 반야바라밀다를 설하니, 둘도 없고 다름도 없다. 그대들 대중이 받아 가지고 읽고 외우고 설한 것과 같이 수행하면 곧 모든 부처님의 법을 받아 가지는 것이 된다.

대왕이여, 이 반야바라밀다의 공덕은 한량없나니, 만약 항하의 모래알만큼 많은 말할 수 없는 모든 부처님이 계셔서, 이 한분 한분의 부처님께서 한량없고 말할 수 없는 중생을 교화하면, 이 한사람 한사람의 중생이 다 성불하니, 이 모든 부처님들이 다시 한량없고 말할 수 없는 중생을 교화하여도 또한 다 성불할 것이다. 이 모든 부처님들이 설하신 반야바라밀다는 한량없고 말할 수 없는 나유타(那庾多) 억의 게송이 있는데 말로써 다할 수 없으며 모든 게송 가운데에서 한 게송을 취하여 천 개로 나누고 다시 천 개로 나누어서 그 중 한 구절의 뜻의 공덕을 설하는 것도 오히려 끝이 없는데 어찌 하물며 이와 같은 한량없는 구절이 가진 공덕이겠는가? 만약 어떤 사람이 능히 이 경 가운데에서 한 생각 청정한 믿음을 일으키면 이 사람은 곧 백 겁ㆍ천 겁ㆍ백천만 겁의 생사의 고난을 뛰어넘는데, 하물며 베껴 쓰고 받아 가지고 읽고 외우고 남을 위하여 해설하여 얻는 공덕이겠는가? 이는 곧 시방의 모든 부처님과 같아 다름이 없으니, 이 사람은 모든 부처님께서 보호하고 생각하여 주시니 오래지 않아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룰 것을 알라.”

이 법을 설할 때 십억 인이 3공인(空忍)을 얻었고 백만억 인이 대공인(大空忍)을 얻었고 한량없는 보살이 십지(十地)에 머묾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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