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사 창건설화

성주사 창건설화

성주사 창건설화는 두가지가 전해온다.

첫번째 설화는 9세기 통일신라는 왜적의 침입으로 인한 피해가 무척 많았다. 특히 동·남해안 지대에 왜구의 피해가 극심하였는데 827년에도 왜적이 배를 타고 대규모로 신라를 공격해 왔다.

왕이 근심하며 방책을 강구하였으나 5일이 지나도록 어찌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날 밤 꿈에 한 신인(神人)이 나타나 말하기를,

“지리산에 무염이라는 승려가 있으니 그를 불러 물어보면 해결책을 줄 것이다.”

하였다.

이에 왕은 바로 사람을 보내어 무염 스님을 모시고 오도록 하였다. 무염 스님은 왕의 고민을 듣고는, 쾌히 왜병을 격퇴하겠다고 말하였다.

스님이 들고 다니던 석장(錫杖)을 산 위에 꽂고 왼손으로 자신의 배를 치니 천지가 진동하는 우뢰와 같은 소리가 났다. 그리고는 어디선가 철갑을 두른 신병(神兵)들이 나타나 산 주위에 포진하였다.

이것을 본 왜적은 놀라 혼비백산해서 도망가 버렸다. 왕은 이 소식을 듣고 매우 기뻐 스님을 왕사(王師)로 모시고, 은혜를 갚기 위하여 밭 360결(結)과 노비 100호(戶)를 내려서 성주사를 창건하였다. 그리고 성인이 머무는 곳이라 하여 절 이름을 성주사라 했다.

두번째 설화는

가야시대 장유화상(長有和尙) 창건설화 인데, 가야불교의 인도직수입설(불교남방전래설)을 주장하는 것이다.

가락국의 시조인 김수로왕의 부인 허황후가 인도 아유타국에서 오면서 함께 온 사촌오빠 장유화상(허보욱)이 기거하도록 김수로왕이 창건한 가야 시대 고찰이라는 것이다.

김수로왕과 허황후 사이에 난 아들 중에서 일곱 명이 모두 불모산(佛母山)으로 들어가 스님이 되었는데 당시에 창건되었으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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