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흥사 창건설화
신라 흥덕왕 41년에 왜구 10만 여명이 부산과 제포(웅천)에 침범하여 나라가 어지러웠다. 왕이 크게 근심하며 신하들을 모아 대책을 논의했으나 아무도 현명한 방책을 말하지 못하였다.
근심 속에서 나날을 보내던 왕에게, 어느날 한 신령이 현몽하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왕의 나라 지리산중에 무염(無染)이라는 한 스님이 있으니, 금산(金山) 보개여래(寶蓋如來)이 후신으로 불가사의한 신력이 있어서 늘 천신들을 거느리고 있다.
가히 나라를 복되게 하고 세상을 구제할 인물이니라. 또 서남쪽에 불모산이 있으니 산명수려(山明秀麗)하여 상서로운 구름이 항상 떠 있어 진리를 닦을 사람이 찾을 만한 곳이로다.”
이에 왕은 예사로운 징조가 아니라 여기고 사람을 불러 무염스님을 모셔오도록 하였다. 명을 받은 스님은 불모산 철마봉(鐵馬峰)에 올라가 금으로 된 석장을 고갯마루에 꽂고 왼손으로 배를 두드리니 그 소리가 마치 포성처럼 진동하였다.
이때 갑자기 금갑(禁甲)을 두른 신장(神將)이 나타나 산을 둘러싸니, 이를 본 왜구들이 기겁하여 두려움에 떨며 물러갔다.
왕은 크게 기뻐하여 무염스님을 국사에 봉하고 평장사(平章事) 유춘우(柳春雨)를 시켜 그 은혜에 보답토록 하였다.
즉 구천동 관남리(官南里)에 절을 지어 성흥사라 하고, 토지 360결과 노비 100호(戶)를 하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