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률사 부례랑
『삼국유사』에 백률사 대비관음상의 영험과 관련된 설화가 다음과 같이 전한다.
692년(효소왕 1)에 국선(國仙)이 된 부례랑(夫禮郞)은 693년 3월에 화랑의 무리를 거느리고 강릉 지방에 이르렀다가 말갈족에게 잡혀갔다.
일행들은 당황하여 돌아갔으나 안상(安常)만 홀로 그를 뒤쫓아 갔다. 효소왕은 이 소식을 듣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는데 그 때 상서로운 구름이 천존고(天尊庫)를 덮으므로 창고를 조사하게 했더니 현금(玄琴)과 신적(神笛)의 두 보물이 없어졌다.
5월 15일 부례랑의 부모는 백률사 관음상 앞에서 여러 날째 기도를 드리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향나무로 만든 탁자 위에 현금과 신적이 있고 부례랑과 안상 두 사람도 불상 뒤에 와 있는 것이 보였다. 부모가 놀라 물었다.
부례랑이 적에게 잡혀가서 말먹이는 사람이 되어 방목을 하고 있는데 용모가 단정한 스님이 손에 현금과 신적을 가지고 와서 위로하며, “나를 따라 오라.”고 하였다.
해변에 이르니 안상과도 만나게 되었다. 스님은 신적을 둘로 쪼개어 부례랑과 안상으로 하여금 하나씩 타게 하고 자기는 현금을 타고 하늘을 날아서 잠깐 사이에 백률사에 왔다는 것이다.
부례랑이 현금과 신적을 왕에게 바치고 이 사실을 아뢰니 왕은 백률사에 금과 은으로 만들 그릇과 마납가사를 받쳐 부처님의 은덕에 보답하였다.
이러한 영험을 볼 때 백률사는 당시 상당히 큰 사찰이었을 것으로 추정이 된다.
그러나 그 뒤의 연혁은 전하지 않고, 조선시대에 이르러 임진왜란으로 폐허화되었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 경주의 부윤 유승순이 중수한 기록이 남아 있는데 이적(異蹟)을 남긴 관음상은 그때 이미 없어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