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육왕전(阿育王傳)제7권

아육왕전(阿育王傳)제7권

  1. 우바국다 인연③

왕이 매우 두려워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이 세 명의 왕은 마음을 합쳐 나를 치려고 한다.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

천신(天神)이 말하였다.

“당신은 천관(天冠)을 아들의 정수리 위에 씌우시고 왕위를 자식에게 물려주십시오. 5백의 역사(力士)를 거느리고 능히 항복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대군왕(大軍王)이 즉시 왕위에서 물러나 천관을 정수리에 씌워주고는 모든 것을 양위하였다. 이 아이의 이름이 난간왕(難看王)이다. 5백의 역사를 주위를 보좌하는 재상으로 삼았다. 5백의 보상(輔相)들은 각기 스스로를 장엄하였다. 갖가지 무기를 갖추고 함께 싸워서 세 명의 왕과 그의 권속들을 살해하였다. 데리고 온 병사의 무리들도 모두 없애고 다시 사미(舍彌)로 돌아와서 염부제(閻浮提)의 왕이 되었다.

이 때 화씨성(花氏城) 가운데 바라문이 있었는데, 이름이 대여(大與)였다. 많이 알고 널리 배워 모든 책에 통달하지 않는 바가 없었고 자기와 비슷한 훌륭한 가문의 여자와 결혼하여 부인으로 삼았다. 큰 복덕이 있는 사람이 당연히 이를 따라 태어나게 되었다. 아이를 가졌을 때 일체의 논사(論士)들과 함께 논의하고자 하였다.

관상을 보는 스승이 점을 치고서 말하였다.

“이 아이는 태어나면 반드시 일체의 논사들을 굴복시킬 것입니다.”

열 달을 모두 채우고 태어났는데, 모습이 단정하였다. 해가 갈수록 장성하여서는 또한 일체의 전적(典籍)에 통달하였다. 5백 명의 바라문들이 배우는 제자가 되어 그로부터 경론(經論)과 주술(呪術)을 배워 익혔다. 이와 같이 제자들이 많자 이 아이의 이름을 다제자(多弟子)라 하였다. 그러다가 곧 부모를 떠나 출가하여서 도(道)를 배웠는데, 3장(藏)의 경서(經書)들을 읽고 외우기를 모두 다하였다.

이 때 화씨성 가운데 한 명의 장자가 있었는데, 이름이 수달나(須達那)였다. 뛰어난 가문의 여자를 자기의 부인으로 삼았기에 뛰어난 인물이 마침내 이곳에서 태어나게 되었다. 아이를 가졌을 때 어머니가 한가롭고 고요한 곳에서 마음과 생각을 가지런히 하는 것을 좋아하였고, 인욕(忍辱)을 닦는 것을 매우 좋아하였다.

관상을 보는 스승이 점을 치며 말하였다.

“이는 이 아이의 뜻으로, 처음에 태어나면 이름을 수달(須達)[진(秦)나라 말로는 선의(善意)이다]이라 하십시오.”

뒤에 점점 자라서 부모를 떠나 출가하였는데, 부지런히 정진하여 아라한을 얻었다. 욕망을 적게 하고 만족함을 알았으며 아는 것이 많았으나 마음으로는 한가롭게 변방 가운데 있음을 슬퍼하였다.

향산(香山)으로 가던 중에 머무는데 대군왕의 목숨이 다하였다. 난간왕이 연모하고 괴로워하는 것이 깊어 갖가지로 공양한 다음에 탑을 세웠다.

다제자(多弟子) 삼장이 백천(百千)의 대중들을 데리고서 구사미(拘舍彌)에 가서는 법(法)을 설하였다.

난간왕은 3장(藏)의 계법을 듣고 근심을 없앨 수 있었다. 또한 부처님의 법에 대해 믿음과 공경의 마음을 얻고는 여래의 공덕을 생각하여 사문들에게 능히 무외시(無畏施)를 베풀었다.

모든 비구들에게 물었다.

“저 세 명의 사악한 왕들이 언제 부처님의 법을 훼손하고 멸할 것 같습니까?”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12년 후에 부처님의 법을 훼손하고 멸할 것 같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나는 지금 12년이 되었으니 마땅히 평등하여 차별이 없는 법회를 베풀어야겠다.”

이에 왕은 구사미(拘舍彌)에 있으면서 평등하여 차별이 없는 법회를 베풀었다. 법회 당일에 염부제에는 널리 단비가 내려 모든 곡식, 모든 나무, 모든 꽃과 과일들이 모두 성숙하게 되었다.

염부제의 사람들이 모든 스님들에게 공양하고 싶은 까닭에 구사미로 왔다. 이 때 많은 승려들은 공양과 음식·의복에 익숙해져 염송하고 경전을 읽으면서 도(道)를 행하지는 않고 단지 낮에는 속된 이야기만 하고 밤에는 잠만 잤다. 이양(利養)에 탐착하고 신체를 장엄하기 위해 좋은 옷만을 입었다. 이 때에는 즐거움을 멀리 여의는 것도 없고 적정(寂靜)의 즐거움도 없었다. 선정(禪定)의 즐거움도 없고, 지혜의 즐거움도 없었다. 오직 더러운 몸을 귀히 여겨 굳건한 실체로 여겼다.

법으로 원수를 만들었으며, 법이 아닌 것을 증장시켰으며, 법의 깃발을 기울이고 게으름의 깃발을 세우고자 하였다. 정법(淨法)을 없애고자 하고 치성한 번뇌의 불길로 법륜을 태워 없애고자 하였다. 법의 바다를 고갈시키고 법의 산을 무너뜨리고 법의 성을 부수고자 하였다. 법의 숲을 베어버리고 정혜(定慧)를 덮어버리며 정법의 영락(瓔珞)과 같은 계율을 끊어 커다란 환난을 짓고자 하였다.

천(天)·용(龍)·야차(夜叉)·건달바(乾達婆)들이 모두 싫어하고 혐오하여 말하였다.

“여기 모든 승려들은 선업(善業)을 닦지 않습니다. 악인(惡人)과 같아 부처님의 법을 무너뜨리고 없애고자 합니다. 항상 모든 사악함을 익히고 상서롭지 못한 일을 많이 합니다. 조그만 믿음의 마음이 있다면 삿된 견해를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모든 선근(善根)은 지금 모두 끊어져 없어졌습니다.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비로운 마음도 없습니다. 진제(眞諦)를 멀리 여의었고 법의 깃발이 무너졌습니다. 믿지 않고 조화롭지 못하여 악업을 짓기를 좋아합니다. 법률(法律)과 경을 파괴하고 출가한 무리들을 해롭게 합니다. 모든 악을 행하기를 좋아하고 교만함을 키워냅니다. 아첨과 거짓으로 사칭하기도 하고 법의 창고를 훔치기도 합니다. 부처님의 법이 없어지는 모습이 지금 모두 나타나는 것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법의 바다를 고갈시키고자 하고 여광(餘光)은 기약이 없습니다. 악법을 배운 자와 지혜가 없는 자는 반드시 부처님의 법을 멸하게 합니다. 모든 하늘이 기뻐하지 않고 옹호하지 않으면 이런 일로 말미암아 7일 뒤에 정법(正法)은 마땅히 멸하게 됩니다.”

모든 하늘[諸天]이 공중에서 지극히 고민하면서 큰 소리를 지르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여래의 정법이 7일 뒤 밤에 모든 비구가 싸우는 것으로 인해 없어질 것입니다.”

이 때 구사미에 5백 명의 우바새(優婆塞)가 있었는데, 부처님의 법을 위한 까닭에 모든 비구들에게 싸움을 끝내도록 충고하고는 모두가 괴이하다고 말하였다.

“여래의 정법이 정말로 없어져 버린다면 법의 흐름은 반드시 석사자(釋師子)의 법을 끊을 것입니다. 지금은 저 무상(無常)한 논의를 끊어야 합니다.”

그리고는 게송을 지어 말하였다.

금강(金剛)과 같은 몸과 마음
무너지고 패함이 있는데
하물며 위태하고 해지기 쉬운 몸과 마음
당연히 파괴되지 않겠는가?

일체의 보고 들은 법
그 성품은 스스로 마멸되는 것
안온하게 시간 가는 것을 좋아하니
독하고 악한 힘은 이미 도달하였네.

지혜로운 자가 있어 모두 없애도
모든 세상의 악은 자주 드러나고
부처님의 모습이 반드시 없어지면
세간은 어둡고 암울하네.

더러움이 없는 법이 날로 몰락하면
커다란 어둠의 고통이 장차 이르게 되고
세존(世尊)이 구한 법이 사라지게 되면
선악을 누가 알 것인가?

만일 모든 선(善)을 알지 못하면
해탈의 올바른 핵심과
인천(人天)의 도를
어찌 알 수 있다고 하겠는가?

만일 모든 악(惡)을 알지 못하면
어찌 여읨을 얻었다고 할까?
불법(佛法)은 밝은 등불과 같아
모든 선(善)을 닦고 나아가게 하네.

불법(佛法)이 세상에 있다면
복전(福田)이 헤아릴 수 없이 많고
불법이 없어졌다면
복전을 짓는 것이 많지 않네.

나는 굳건하지 못한 재물을
마땅히 굳건한 법으로 바꾸어야 하는데
오늘에 이르러서 보니
불법의 없어짐이 어찌 이리 빠른가?

구사미에 5백 개의 승방사(僧坊寺)가 있었다. 마침 포살(布薩)을 행할 때 모든 우바새들이 모두 갑작스런 바쁜 일로 갈 수가 없었다.

향산(香山) 가운데 이름이 수다라(修多羅)라고 하는 아라한이 있었는데, 염부제에서 많은 승려들이 어느 곳에서 포살을 하는지 살펴보았다. 곧 이 부처님의 제자들이 모두 구사미에 모여서 포살을 하고 있음을 알았다. 많은 승려들이 이미 모이자, 이 때 승가가 유나(維那)를 보내 말하였다 “지금 시방의 승려들이 화합하여 포살하고자 합니다.”

이 때 삼장(三藏) 비구가 많은 제자를 거느리고 가장 상좌(上座)로 있었는데, 모든 승려들에게 말하였다.

“시방에 있는 세존의 제자들은 모두 이곳에 모였다. 이와 같은 대중 속에서 내가 상좌가 되었지만 나는 이미 다문(多聞)으로 피안에 이르렀으나 오히려 부처님의 계율을 능히 갖추어 지니지를 못했다. 지금 이 무리들 가운데 계를 지닌 비구로서 누가 마땅히 계율을 설하겠는가?
오늘 15일은 지극히 즐거운 날이다. 일월(日月)이 분명하고 많은 승려들 모두가 계율을 설하는 까닭으로 모두 화합하기 때문이다.”

현재 염부제의 사문 석자(釋子)가 모두 와서 모인 것은 이것이 최후의 모임이었다.

“이 가운데 누가 능히 석사자(釋師子)의 계(戒)를 지니고 있는가?”

수다라가 일어나 합장하고 상좌의 앞으로 나아가 이렇게 말하였다.

“포살을 하는 데 제가 계를 설하고자 합니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사리불·목건련이 지니고 있던 계율같이 저도 지금 계율을 지니고 있으니, 단지 계율을 설하기를 원하옵니다.”

삼장의 제자로서 이름이 억가도(噫伽度)라는 이는 사악하고 자비심이 없어 싫어하고 질투하는 마음으로 날이 예리한 칼로 수다라를 살해하였다.

이 때 이름이 낙면(樂面)이라는 야차가 있어 이렇게 말하였다.

“염부제 안에 유일하게 한 명의 아라한이 있었는데, 어찌 이를 살해하였는가?”

그리고는 금강저(金剛杵)로 억가도의 머리를 쳐서 일곱 조각으로 부숴버렸다.

그리고는 수다라의 제자가 다시 삼장을 살해하니, 이후로 부처님의 법이 더욱 멸하게 되었다.

이 때 커다란 지진이 일어나 큰 별이 떨어지고 사방에서 화재가 일어났다. 모든 하늘의 공중에서는 경쇠를 쳐서 소리를 잃어버렸고 사방에서는 연기가 솟아올랐다. 10만의 모든 하늘이 공중에서 눈물을 흘렸다.

부처님이 세상에 계실 때 야차가 부처님을 뵙고는 오체투지하고 얼굴을 땅으로 내리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지금 이후로는 부처님의 법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비니(毘尼)도 들을 수 없고 계율(戒律)도 들을 수가 없습니다. 법의 다리는 이미 무너졌고 법의 흐름은 단절되었습니다. 법의 바다는 말라버렸고 법의 산은 무너져 버렸습니다. 법의 절[寺]은 쇠진하였고 법의 행(行)도 끊어졌습니다. 법의 창고[法藏]도 무너졌고 법의 감로의 맛도 고갈되었습니다. 능히 설법할 수 있는 자들도 모두 사라졌고, 좌선을 가르쳐 줄 사람도 역시 사라졌습니다.”

부처님의 어머니인 마하마야(摩訶摩耶)가 하늘로부터 아래로 내려왔다. 슬픔의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오호라, 괴이하도다. 나의 아들이 3아승기겁(阿僧祗劫)에 걸쳐서 모은 법이 오늘에 이르러 없어지게 되는구나. 내 아들을 따르는 무리들 가운데 능히 사자후(師子吼)를 할 만한 사람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용맹하고 위엄이 있어 마군(魔軍)을 물리칠 수 있는 자가 지금 어디에 있단 말인가? 법신(法身)을 쫓아 태어난 자 또한 어느 곳으로 가버렸는가? 납의를 입고 한가로이 머무는 자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능히 불법(佛法)을 지니고 있는 자는 다시 어느 곳으로 갔는가? 모든 선(善)과 뛰어난 법이 중생으로부터 멀어지고 염부제(閻浮提)에서는 장엄(莊嚴)하는 일만을 좋아하니, 모든 것이 다 없어진 상태가 월식(月蝕)과 같도다. 법시(法施)·무외시(無畏施)·재시(財施)·신계시(信戒施)·인욕(忍辱) 등의 이와 같이 모든 뛰어난 보시가 모두 어디에 있는가?”

이와 같이 비통해 하고서 천상(天上)으로 되돌아갔다.

5백 명의 우바새(優婆塞)들이 법이 다했다는 말을 듣고 구사미(拘舍彌)에서 나와 승방(僧房)이 있는 곳에 이르러 양손을 높이 들고 가슴으로부터 나오는 슬픔과 괴로움의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어찌 이렇게 괴이하게 되었는가, 어찌 이렇게 괴롭게 되었는가?”

그리고는 게송을 설하였다.

좋은 말이 영원히 떠나가고
큰 악과 재해만이 세상에 남으니
누가 나에게 계(戒)를 전하며
누구에게 법의 말씀을 듣겠는가.

어리석음이 세계에 두루 하고
큰 밝음이 모두 없어지면
세간은 큰 암흑이며
모든 악업에 집착하느니라.

세상을 보니 모두 사슴과 같아
싫어하고 여의는 모습이 없고
부처님의 말씀은 모두 없어졌으니
모두가 청정한 업(業)을 버리는구나.

큰 죽음이 이미 도달하였고
모두가 악도(惡道)에 떨어지는구나.

세간은 허공과 같아
모두 별과 달에서 멀어지네.

벌들이 오지 않는 꽃과 같이
구지라(拘枳羅) 없는 숲과 같이
염정(念定)과 지혜
10력(力)의 세존법이
지금 모두 없어져 무너진다면
중생들은 무엇을 믿을 것인가.

이 때 구사미(拘舍彌)의 왕이 삼장(三藏) 비구와 수다라(修多羅) 아라한이 모두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근심하고 괴로워하고 화를 내어 모든 도인(道人)을 살해하고 탑과 사찰을 파괴하였다.

부처님께서 사천대왕(四天大王)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마땅히 불법이 다할 때까지 옹호하여야 한다.”

사천대왕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오직 가르침을 받들겠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고는 다시 천상(天上)으로 돌아갔다.

11. 아육왕현보인연(阿育王現報因緣)

옛날 아서가왕(阿恕伽王) 때에 사자국(師子國)의 임금이 다섯 매(枚)의 여의보주(如意寶珠)를 공물로 바쳤다.

왕은 보주를 얻자 곧 한 매를 부처님의 탑에 보시하였고 두 번째 것은 보리수탑에 보시하였으며 세 번째 보주는 전법륜탑(轉法輪塔)에 보시하였고 네 번째는 부처님의 열반탑에 보시하였다. 나머지 한 개의 보주(寶珠)는 모든 부인들에게 보시하고 싶었으나, 만약 한 명에게 주었을 경우 나머지 사람들이 서운해 하는 것이 두려웠다.

아서가왕은 사람을 보내 궁으로 들어오라고 말하면서 영락(瓔珞)의 의복이 가장 뛰어난 사람에게 마땅히 이 보주를 주겠다고 하였다.

모든 부인들이 다 스스로 있는 힘을 다해 좋은 영락의 의복을 구하고자 하였다.

오직 한 명의 작은 부인이 있었는데 이름이 수사치(須闍哆)였다. 부처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계율로 된 영락의 의복을 가장 최고로 하였다. 이렇게 생각하고는 8계(戒)를 수지하고 순수한 백의(白衣)를 입었다.

아서가왕이 차례로 영락으로 치장한 옷을 입은 후비(后妃)들을 살펴보니, 모든 부인들이 각기 기예와 음악으로 스스로 즐거워하는 것이 보였다.

수사치 부인이 있는 곳에 이르렀는데, 그 무리들이 모두 말없이 고요하였고 용모와 의관은 가지런히 정리되었으며 깨끗한 백의(白衣)를 입은 것이 보였다.

왕의 마음에서 자연스럽게 깊은 공경이 생겨났다. 또 그 무리들 가운데에 법을 설하는 자리가 있자, 곧바로 예경하고 말하였다.

“모든 부인들은 다 좋은 옷을 입고 기예와 음악을 스스로 갖췄는데, 너희들은 어찌하여 조용하게 머물고 있느냐?”

부인이 왕에게 대답하였다.

“부처님께서는 부끄러움이 있는 것으로 좋은 옷을 삼으셨습니다. 계(戒)로써 뛰어난 영락을 삼으셨고, 법의 소리로써 기예와 음악으로 삼으셨습니다. 저희들 모두는 8계를 수지하는 것으로 마땅히 영락으로 삼았기에 각자가 부끄러움의 흰 옷을 입었고, 다시 서로 법을 설함으로써 음악을 삼습니다.”

왕이 이 말을 듣고 흔연히 기뻐하면서 다시 말하였다.

“내가 먼저 지시한 것이 있다. 가장 뛰어난 영락의 의복을 입은 자에게 마땅히 이 보주(寶珠)를 주겠다고 하였는데, 지금 그대가 제일이니 제일인 그대에게 보주를 주리라.”

모든 부인들이 보주를 얻는 것을 본 뒤에는 모두가 서로 8계(戒)를 배워 수지하였다.

옛날에 아서가왕(阿恕伽王)이 항상 많은 승려들을 궁에 들어오도록 초청하여서 음식을 공양하였다. 이 때 한 명의 비구가 있었는데 이름이 우발라(優癖)였다. 나이가 어렸으나 성장하면서 용모가 단정하고 빼어났으며, 입에서 우발라 연꽃 향기가 났다. 왕은 스스로 물을 나르고 아래에서 음식을 먹고는 이 도인(道人)이 입에서 우발라 연꽃 향기가 난다는 소문을 듣고 왕은 즉시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비구는 나이가 어리고 단정하고 입안에 향기를 머금고 있다. 장차 우리 궁인들의 마음을 움직이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왕이 이 때 물로 입을 헹구라고 하였다. 그러자 입에서는 두 배나 향기가 났다.

왕이 물었다.

“멀거나 가깝거나 이런 향기를 머금을 수 있는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과거에 부처님이 계셨는데 명호는 가섭(迦葉)이었습니다. 당시 사람의 수명은 2만 세였고, 저는 그 때 높은 자리에 있는 법사(法師)였습니다. 불법을 찬탄한 까닭에 49억 년 동안 인천(人天)에 태어났고, 3도(塗)와 8난(難)에 떨어지지 않았으며, 입 안에서는 항상 이와 같은 향기가 났습니다.”

이야기를 다 들은 왕은 기쁜 마음이 생겨서 더욱 공경하는 예(禮)를 올리고서 돌아갔다.

옛날에 아서가왕이 도인(道人)으로 하여금 법을 설하게 하였을 때, 대나무를 세워 막을 쳐서는 부녀자들로 하여금 법문을 듣게 하였다.

이 때 법사가 모든 부녀자들을 위해 법문을 설하였는데, 항상 시론(施論)·계론(戒論)·생천(生天)의 이야기를 하였다.

한 명의 부녀자가 있었는데 왕의 법칙을 어기고 천막에서 나와 법사의 앞으로 나아가서 법사에게 물었다.

“여래이신 대각(大覺)께서는 보리수 밑에서 모든 법을 깨달으실 때 시계(施戒)만을 깨달으셨습니까? 아니면 다른 법들도 깨달으셨습니까?”

법사가 대답하였다.

“불각(佛覺)께서는 ‘일체의 유루법(有漏法)이 모두 괴로움이며 오히려 철이 융합된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이 고통의 인(因)은 습(習)으로부터 생겨나니, 독이 든 나무와 같습니다. 8정도(正道)를 닦아 괴로움의 습(習)을 없애야 합니다.”

이 여인이 이 말을 듣고 수다원(須陀洹)의 도를 얻었다. 칼로 목을 감싸고 왕이 있는 곳에 당도해서 왕에게 말하였다.

“저는 오늘 왕의 엄중한 법을 어겼습니다. 원하옵건대 왕께서는 법으로써 저를 다스려 주십시오.”

왕이 물었다.

“너는 어떠한 일을 범하였는가?”

여인이 대답하였다.

“저는 왕께서 도인(道人)이 있는 곳에 가까이 가지 말라는 금계를 어겼습니다. 비유하건대 목마른 소가 죽음을 피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저는 실제로 부처님의 법에 목말라 했습니다. 이런 까닭에 무모하게 나아가 법을 들었습니다.”

왕이 물었다.

“너는 법을 듣고 조금이라도 얻은 바가 있는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법을 얻어 네 가지 진리[四眞諦]를 보고 음(陰)·입(入)·계(界)를 이해하였으며, 또한 모든 대(大 : 4대)가 다 무아(無我)인 것을 알아 법안(法眼)을 얻었습니다.”

왕이 이 말을 듣고 뛸 듯이 기뻐하면서 예(禮)를 갖추고 영(令)을 내려 말하였다.

“지금 이후로는 장막으로 가리고 듣지 말라. 법을 듣기를 좋아하는 자는 법사가 있는 곳에 가깝게 가서 면전에서 법을 들어라.”

그리고 찬탄하여 말했다.

“기이하다. 우리 궁궐 안에 인보(人寶)가 출현했구나. 이런 인연으로 법을 들으면 큰 이익이 있음을 알겠도다.”

옛날에 아서가왕이 일곱 살의 사미를 보고는 으슥한 곳으로 데려가서 예(禮)를 갖추고 사미에게 말하였다.

“사람의 도리로서 당신에게 예를 올린 것이 아닙니다.”

이 때 사미 앞에 조병(澡甁)이 하나 있었다. 사미는 즉시 조병의 입구를 따라 그 속으로 들어갔다가 본래대로 나와서 말하였다.

“왕께서는 삼가 사람의 도리로써 사미가 조병에 들어갔다가 다시 본래대로 나왔다고 하지 마십시오.”

왕이 즉시 사미에게 말하였다.

“내가 사람의 도리를 나타내고자 말한 것을 다시 감추지 않겠다.”

이런 까닭에 모든 경전에 말하였다.

“사미는 비록 작으나 또한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되며, 왕자가 비록 작으나 또한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며, 용의 새끼가 비록 작으나 또한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

사미가 비록 작으나 능히 사람을 제도할 수 있으며, 왕자가 비록 작으나 능히 사람을 죽일 수 있고, 용 새끼가 비록 작으나 능히 구름을 일으켜 비를 내릴 수 있으며 번개와 벼락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은 것이라 하더라도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

옛날에 아서가왕이 3보를 깊이 믿어 항상 부처님과 법과 승가 대중에게 공양을 올렸다.

모든 바라문들이 모두 다 질투심을 내어 함께 모여서 옛것을 잘 아는 5백 명을 선발하였다. 모두 4위타전(圍陀典)을 외울 수 있으며, 천문(天文)·지리(地理)에 두루 통달하지 않음이 없었다.

서로 모여 의논하여 말하였다.

“아서가왕은 일체의 모든 공양을 머리를 깎은 사람들에게만 베풀고 우리들과 같은 숙구(宿舊)에게는 일찍이 베풀어 본 적이 없다. 마땅히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뜻을 돌려야 한다.”

어느 주문을 잘 외는 바라문이 있었는데, 모든 바라문들에게 말하였다.

“모든 현인(賢人)들은 단지 제 뒤를 따르기만 하십시오. 7일 뒤에 제가 주력으로 마혜수라가 되어서 몸을 날려 왕궁의 문 앞에 다다를 것입니다. 당신들은 모두 걸어서 제 뒤를 쫓아오시면 됩니다. 제가 능히 크게 공양을 베풀게 하여 당신들이 모두 얻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바라문들이 모두 그렇게 하겠다고 하였다. 7일째가 되자, 주문을 잘하는 바라문은 자신의 몸에 주문을 외워 마혜수라가 되었다. 그래서 허공을 날아 왕궁의 문 위에 이르렀고, 모든 바라문들 또한 모두 이를 쫓아서 왕궁의 문 위에 이르렀다.

사람을 보내 왕에게 아뢰었다.

“허공에 마혜수라가 있는데, 499명의 바라문들을 거느리고 허공으로부터 내려왔습니다. 지금 문 밖에 있습니다. 나머지 바라문들은 땅에 서 있으면서 왕을 뵙고자 합니다.”

아서가왕이 사신을 불러 앞으로 오게 하였다. 곧 부르니, 들어와서 양쪽 행랑 위에 앉았다.

왕이 작은 자리에서 서로 안부를 묻고는 그에게 말하였다.

“마혜수라께서 어떻게 뜻을 굽혀 일부러 찾아오셨습니까? 무언가 바라는 것이 있습니까?”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음식을 바랍니다.”

즉시 부엌에 명령하여 5백 가지의 음식을 들고 앞에 갖다가 놓았다. 마혜수라 등이 손으로 밀치면서 말하였다.

“내가 태어난 이래 이와 같은 음식은 일찍이 먹어보지 못하였다.”

아서가왕이 대답하였다.

“먼저 미리 약속하지 않아서 어떤 음식을 좋아하시는지 몰랐습니다.”

마혜수라 등이 모두 같은 소리로 말하였다.

“우리들이 먹는 음식은 머리를 깎은 사람들이다.”

아서가왕이 즉시 한 신하를 불러 명하였다.

“너는 계두말사(鷄頭末寺)에 가서 존자 야사(耶奢)께 아뢰어라. ‘왕궁 안에 5백 명의 바라문(婆羅門)이 있는데 하나는 스스로 마혜수라라고 칭하니, 이들이 사람인지 사악한 나찰(那刹)인지를 알 수 없습니다. 이러한 까닭에 청하여 묻고자 하오니, 아사리께서는 오셔서 저를 위해 물리쳐 주십시오’라고 하여라.”

사신으로 하여금 가게 하였는데, 사신은 삿된 소견을 지닌 바라문의 제자였으므로 승가 대중 가운데 가서 왕이 말한 바와 같이 말하지 않고 많은 승려들에게 이와 같이 말하였다.

“아서가왕(阿恕伽王)과 5백 명의 바라문이 있는데 용모는 사람과 비슷하고 나찰과 비슷하다고 합니다.”

이렇게 말하였다.

“당신들 사문들을 먹으려고 합니다.”

상좌인 야사(耶奢)가 즉시 유나에게 말하여 건추를 울려 승려들을 모으고는 일어나서 많은 승려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나이는 많으나, 승가 대중을 위해 마땅히 이 일을 하겠습니다. 승가 대중을 안온하게 하고 불법을 호지(護持)하리니, 내가 가는 것을 허락해 주시오.”

두 번째 상좌가 말하였다.

“상좌께서는 가셔서는 안 됩니다. 저의 신분으로는 능히 감당할 수 없지만, 제가 가겠습니다.”

세 번째 사람이 말하였다.

“두 번째 상좌께서는 가셔서는 안 됩니다. 바로 제가 가겠습니다.”

이와 같이 전개되어 사미에 이르게 되었다. 16만 8천의 승려들 가운데 가장 어린 일곱 살의 사미가 많은 승려들 가운데 일어나 무릎을 꿇고 합장하면서 말하였다.

“일체의 모든 큰스님들께서 움직이시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습니다. 제가 아직 나이가 어려 불법을 보호하고 지키기가 적당하지 않습니다만, 원하옵건대 대중 스님들께서는 반드시 제가 갈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상좌인 야사가 매우 기뻐하여 손으로 사미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하였다.

“네가 가는 것이 마땅하겠다.”

그런데 사신이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가니, 아서가왕이 말하였다.

“어찌 오는 사람이 없는가?”

사신이 대답하였다.

“계속해서 옮겨지다가 지금 가장 어린 사미가 오고 있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윗분들이 부끄러워하는 까닭에 아랫사람으로 하여금 와서 상대하게 하였구나.”

아서가왕은 사미가 왔다는 소리를 듣고 즉시 문을 나가 맞이하여 이 사미를 임금의 자리 위에 앉도록 하였다. 그러자 모든 바라문들이 모두 크게 화를 내었다.

“아서가왕이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여 우리들처럼 덕이 뛰어난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일어나 맞이하지 않고 이 어린아이를 위해서는 몸소 나아가 맞이하는구나.”

사미가 왕에게 물었다.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왕이 대답하였다.

“이 마혜수라(摩醯首羅)가 아사리(阿闍梨)를 먹고자 합니다. 아사리께서는 음식이 되든지 음식이 되지 않든지 뜻대로 하소서.”

사미가 말하였다.

“저는 나이가 어립니다. 일찍 오느라 식사를 하지 못했습니다. 왕께서 먼저 저에게 먹을 것을 베풀어 주신 다음에 제가 당연히 저들의 음식이 되겠습니다.”

왕이 즉시 명령을 내려 부엌의 책임자로 하여금 음식을 들고 와서 주게 하니, 한 가지 음식을 전부 다 먹었다.

이와 같이 5백 가지의 음식을 들고 와서 주자, 모두 먹었다.

왕이 다음과 같이 물었다.

“만족하십니까?”

사미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왕이 다시 부엌에 명을 내렸다.

“나머지 남아 있는 음식을 모두 들고 와서 드리도록 하라.”

그러자 사미가 순식간에 모두를 먹어버렸다.

왕이 물었다.

“만족하십니까.”

사미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만족되지 않습니다. 기갈이 전과 같습니다.”

부엌의 책임자가 왕에게로 와서 음식이 모두 떨어졌다고 하였다. 왕이 말하였다.

“창고 가운데 보릿가루와 말린 밥 등 마른 음식 모두를 들고 오라.”

모두 가지고 오자 순식간에 전부 먹어 버렸다. 왕이 물었다.

“만족하십니까.”

사미가 대답하였다.

“아직 만족되지 않습니다.”

왕이 대답하였다.

“음식이 모두 떨어졌습니다. 이젠 남아 있는 음식이 없습니다.”

사미가 말하였다.

“가장 낮은 바라문을 나에게 데리고 오면 즉시 먹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즉시 삼켜 버렸다. 이와 같이 하여 499명의 바라문들을 모두 다 먹었다.

마혜수라가 크게 놀라 두려워하면서 허공으로 날아오르자, 사미가 곧바로 자리 위로 손을 뻗쳐 허공으로 쫓아가서는 머리를 잡고 다시 다 먹었다. 왕이 곧 삼키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면서 말하기를, ‘바라문을 삼켰으니 곧 다시 나를 삼키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

사미가 왕의 마음속 생각을 알고는 곧바로 왕에게 말하였다.

“왕께서는 부처님 법의 단월(檀越)이시니, 끝내 훼손되지 않을 것입니다.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다시 왕에게 말하였다.

“왕께서는 함께 계두말사에 가실 수 있으십니까?”

왕이 말하였다.

“아사리께서 저를 데리고 하늘 위나 땅 속에 가신다고 해도 어느 곳이든 당연히 따르겠습니다.”

사미가 즉시 왕과 함께 계두말사에 이르렀다. 왕은 사미가 아침에 먹은 음식을 여러 대중스님들이 모두 나누어 먹는 것을 보았다. 먹힌 5백 명의 바라문들은 모두 머리를 깎고 법의(法衣)를 입고서 모든 승려들의 아래인 끝자리에 앉아 있었다. 처음으로 먹힌 자는 가장 윗자리의 상좌였고 마혜수라는 가장 끝에 있었다. 5백 명의 사람들은 왕과 사미를 보고 심히 부끄러워하였다.

‘우리들은 이 사미의 싸움 상대도 되지 않거늘 하물며 어찌 여러 대중들과 함께 힘을 겨룰 수 있겠는가? 그것은 화로의 재속에서 빼어난 고니의 털과 같고, 모기가 금시조와 날아서 빠르고 늦음을 겨루는 것과 같고, 작은 토끼가 사자왕과 그 위력을 다투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은 비교는 스스로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5백 명의 바라문들이 마음으로 부끄러움이 생기자, 수다원(須陀洹)의 도를 얻었다.

옛날에 아서가왕(阿恕伽王)이 출가한 사람을 보고 크고 작음을 묻지 않고 모두에게 예배하였다. 삿된 견해를 지니고 있는 신하들은 그러한 행위를 괴이하게 생각하였다.

‘만약 오래되어 큰 덕이 있는 자를 보면 예배하고 공경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어리고 작아 덕이 없으면 어찌 번잡스럽게 자신을 굽혀 예경하는가?’

어떤 때 염부제에 이름이 성덕(聖德)인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스스로 고귀하면서 어찌 예경을 하는가?” 하고 말하였다. 이 말이 돌고 돌아 왕이 듣게 되었다. 왕이 이를 듣고서 모든 군신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살생은 하지 말고 말이나 소, 혹은 여러 짐승의 머리를 각각 하나씩 구하도록 명령하였다. 그런데 오직 야사(耶奢) 대신에게만은 스스로 죽은 사람의 머리 하나를 구하여 시장에서 그것을 팔도록 명령하였다. 일체의 모든 머리는 모두 팔 수가 있었으나 오직 사람의 머리만은 팔 수가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말하였다.

“팔리는 머리는 보통 모두 팔 수 있었습니다만 오직 사람의 머리만은 유독 팔 수가 없습니다.”

왕이 물었다.

“어째서 팔 수가 없었는가? 일체의 사물 가운데 어떤 것이 존귀한가?”

모든 신하들이 대답하였다.

“오직 사람이 가장 존귀합니다.”

왕이 말하였다.

“사람이 가장 귀하다면 마땅히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는데 어째서 팔 수 없다는 것인가?”

모든 신하들이 대답하였다.

“사람이 살아 있을 때는 비록 존귀하나 죽으면 가장 천하게 되어 사람의 머리를 오히려 보려고도 하지 않는데, 하물며 그것을 사려는 자가 있겠습니까?”

왕이 물었다.

“모든 것이 천하게 되는가? 아니면 오직 이 머리만 천하게 되는가?”

대답하였다.

“모든 것이 천해집니다.”

왕이 말하였다.

“만일 모든 사람들의 머리가 모두 천해진다면 지금 나의 머리도 역시 천하게 되는가?”

이 때 야사가 두려워서 감히 대답하지 못하였다.

왕이 말하였다 “야사는 바로 진실하게 나에게 대답하라.”

야사가 대답하였다.

“실제로 왕의 말씀과 같습니다. 실제 그와 다르지 않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나의 머리가 이와 다르지 않다면 너는 어찌 나를 막아서 예배하지 못하게 하는가? 네가 만약 나의 진실한 선지식[知識]이라면 마땅히 나에게 예배를 권해야 할 것이다. 어떠한 인연으로 내가 스스로 예(禮)를 짓는데 네가 비웃는가? 나는 지금 머리가 있는 것에는 마땅히 공경하고 예배해야겠다. 만일 나와 친한 선지식이 있다면 나의 머리를 잡아당겨 곧게 했으며, 마땅히 나에게 예를 올리기를 권하여서 나로 하여금 장래에 모든 천신과 성현의 뛰어난 머리를 얻도록 하였을 것이다.”

옛날에 아서가왕이 많은 승려들에게 공양하였다. 이 때 궁중에 비천한 여자 노예가 한 명 있었다. 왕이 지은 복을 보고는 과거에 자기가 지은 업을 스스로 책망하였는데, 마음이 즐겁지 못하자 이와 같이 생각하였다.

‘왕의 복은 다시 점점 증가하고 나의 죄는 점점 많아질 것이다. 왜냐하면 왕은 과거에 몸으로 복을 닦고 지금 부귀를 얻었지만, 오늘 거듭 지어서 장래에는 더욱 깊어질 것이다.

나는 과거에 몸으로 죄를 지어 지금 비천한 하인이 되었다. 오늘도 복을 닦음이 없어 장래에도 더욱 천해질 것이니 언제 벗어남을 기약할 수 있을까?’

그 때 승가 대중이 공양을 마쳤다. 그런데 이 여자는 분뇨를 청소하던 중에 동전 한 개를 얻게 되었는데, 이 동전 한 개를 곧바로 많은 승려들에게 보시하자 마음에 기쁨이 생겨났다. 그 뒤 오래지 않아 병을 얻어 목숨이 다하자, 왕의 부인에게서 태어나게 되었다. 뱃속에서 열 달을 다 채우고 한 여자아이 로 태어나니, 용모가 단정하고 매우 뛰어났다. 그러나 그 오른손은 나이 다섯 살이 되도록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부인이 왕에게 아뢰었다.

“태어난 아이가 한쪽 손을 꽉 쥐고 있습니다.”

왕이 앞에 불러다 놓고 손을 비벼주자 손이 곧 펴졌는데, 손에 커다란 금화 한 개가 있었다. 그런데 가져가면 다시 생겨나서 이런 일이 끝이 없었다.

왕이 두려워하며 이를 야사에게 물었다.

“이 아이는 과거에 몸으로 어떠한 복덕을 지었기에 손 안에 금화를 가지고 태어난 것인가?”

야사가 대답하였다.

“이 아이는 과거에 왕의 궁인(宮人)이었는데, 왕궁에서 분뇨를 청소하다 동전 한 개를 주워 이를 승가 대중에 보시하였었습니다. 이러한 인연으로 왕궁에 태어날 수 있었고, 승가 대중에 보시한 인연으로 아무리 새도 바닥이 나지 않는 금화를 손에 쥐고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옛날에 아서가왕이 창고에 보관하고 있던 여의주를 한 개 잃어버렸다.

옛날 아사세왕(阿闍世王)의 보배 갑옷 일갑(一甲) 위에 문자가 있었는데, 아사세왕이 이 구슬 위에 문자가 있음을 보고 이렇게 말하였다.

“멀지 않은 장래에 빈궁한 아서가왕이 있을 것이다.”

왕이 이 말을 듣고 극도로 화를 내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아사세왕은 한 나라의 왕이 되었지만, 나는 염부제의 왕이거늘 어찌 나에게 빈궁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지혜로운 신하가 대답하였다.

“구슬의 능력을 시험해 보십시오.”

왕은 즉시 사람을 보내 구슬의 능력을 시험하였다. 구슬을 지니고 있는 자는 능히 무엇이든 벨 수 있어 도무지 가까이 접근할 수가 없었다. 몸에 부스럼이 있어도 구슬을 잡으면 즉시 쾌유되었다. 추울 때에는 따뜻함을 얻을 수 있었다. 날씨가 맑은 것도 이 구슬의 능력 때문이었다. 능히 독을 먹어도 자연스럽게 소화되었다. 더러운 물 가운데 넣으면 30리에 이르는 더러운 물들이 자연적으로 깨끗하게 되었다. 왕의 창고에 보관중인 구슬이 여러 가지였으나 이 같은 능력이 있는 구슬은 없었다.

왕이 생각하였다.

‘오직 내가 실제로 빈궁하구나. 저 아사세왕은 이 보배스런 갑옷을 지니고 있으면서 오직 일갑(一甲)이 없는 것에 머무는 덕량(德量)이 이와 같구나.

먼저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 사람의 복덕이 깊고 많았는데, 나의 얇은 복덕이 부처님 뒤에 태어나게 했음을 마땅히 알아야겠다.’

옛날에 아서가왕(阿恕伽王)이 상좌(上座) 야사(耶奢)로 하여금 존자 빈두로(賓頭盧)를 청하도록 하였다.

야사가 왕에게 말했다.

“지극히 향기가 좋은 낙소(酪酥)를 좋아합니다.”

존자 빈두로가 8만 4천의 아라한을 데리고 일시에 도달했다. 승려들이 모여 좌정하자, 왕이 손수 물로 손을 닦고 손수 음식을 돌렸다.

존자 빈두로와 함께 순수한 소(酥)를 얇게 하여 먹었다. 왕이 존자에게 말하였다 “소(酥)의 성향이 소화하기 어려운데 병나지 않겠습니까?”

존자가 대답하였다.

“걱정할 것 없습니다. 왜냐하면 부처님이 세상에 계실 때의 물과 오늘의 소(酥)는 기력이 똑같습니다. 저희의 몸은 그 때의 몸입니다. 이러한 까닭에 지금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왕이 물었다.

“어떠한 연유로 이렇게 되었습니까?”

존자 빈두로가 손을 펴서 땅을 지르니 밑으로 4만 2천 리에 이르렀다. 땅의 거름을 잡아 왕에게 보이면서 말하였다.

“오늘의 사람들이 복이 없음과 많은 일들은 모두 땅으로 유입(流入)됩니다. 이러한 인연으로 인해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사람들의 복덕이 깊고 많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옛날 아서가왕 때 태사(太史)가 점치면서 이와 같이 말하였다.

“왕에게 쇠락해질 상(相)이 있습니다.”

왕이 태사에게 물었다.

“어찌해야 재앙을 물리칠 수 있겠는가?”

태사가 대답하였다.

“오직 복덕을 닦아야만 재앙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왕은 즉시 8만 4천의 탑을 조성하여 모든 공덕을 지었다.

왕이 태사에게 물었다 “나쁜 상(相)이 없어지지 않았는가?”

태사가 대답하였다.

“아직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다시 존자 야사에게 물었다.

“어떻게 해야 없앨 수 있겠습니까?”

존자가 대답하였다.

“왕께서는 스스로 복을 닦으시나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까닭에 이 복은 가벼운 것입니다. 모든 이들에게 권해서 함께 복을 닦으시면 이 정성이 관대하고 넓어 복의 씨앗 또한 무거워져서 재난을 물리칠 수 있고 해로움을 제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즉시 허름한 옷을 입고 모든 사람들에게 물건을 내어서 복을 지으라고 권하다가 한 가난한 여인의 집에 다다랐다.

이 때 여인은 오직 한 장의 담요로 몸을 가리고 있었는데 복을 지으라는 소리를 듣고 마음에서 기쁨이 솟아났다. 곧바로 집안으로 들어가 담요를 벗어 주었다.

왕이 말하였다.

“어찌 스스로 나와서 주지 않는 것입니까?”

여인이 대답하였다.

“오직 이 담요만으로 몸을 가렸기 때문에 지금 벗어서 보시하면 알몸이 드러나므로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왕이 이 말을 듣고 일찍이 없었던 일이라 하며 찬탄하였다. 궁중으로 돌아와서 모든 부인으로 하여금 아름다운 구슬로 치장된 의복을 입고 가서 이 여인을 맞이하여 자매로 삼기를 청하고 매우 큰 마을을 봉(封)하였다.

보시 공덕의 보답이 이와 같아 이 과보를 뒤에 받은 것이다.

옛날에 아서가왕이 두루 행하며 복을 짓고자 하였을 때 부부 두 사람이 있는 가난한 집에 이르렀는데, 그들은 거칠고 해진 옷으로 대강 신체를 가렸을 뿐이었다. 아서가왕이 백성을 불쌍히 여겨 복을 얻을 수 있게 하기 위해 함께 모임을 갖자고 권하였다. 가난한 부부의 마음에 자책감이 들었다.

‘내가 전생에 탐욕과 인색함으로 말미암아 지금 빈궁하게 되었다. 오늘에는 재물이 없는데 어떻게 복을 닦을 수 있을까?’

부부가 의논하여 말하였다.

“우리들은 마땅히 몸을 재료로 삼읍시다. 복을 짓는 일은 만나기 어려우니 재물을 얻어 나누어 준다면 어찌 기쁘지 않겠소?”

부부가 서로를 이끌며 부잣집에 나아가서 말하였다.

“저에게 일곱 개의 금화를 주십시오. 저희가 7일이 지나도 만약 갚지 못한다면 저와 제 집사람은 당신의 노비가 되겠습니다.”

장자는 듣고 기뻐하면서 일곱 개의 금화를 주었다. 이 때 부부는 이 금화를 넣어서 권화자(權化者)에게 주었다.

권화자가 물었다.

“당신은 어느 곳에서 이 돈을 얻어서 나누어 주는 것입니까?”

부부가 대답하였다.

“가난하고 신분이 낮아 금전적 재물이 없으므로 다행히 복전(福田)을 만나도 복을 닦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유한 장자를 찾아가 몸을 잡히고 돈을 빌렸습니다. 만약 그 기한이 지나면 우리 부부 두 사람은 노비가 되겠다고 하였습니다.”

권화자가 말하였다.

“이와 같이 몸을 잡히고 돈을 빌린다는 것은 심히 어려운 일인데 어찌 보시에 쓰려 하는가?”

가난한 사람이 대답하였다.

“전생에 복을 짓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날 이 가난의 괴로움을 받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 노력해서 빌려서라도 보시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연으로 원하옵건대 장래의 몸은 반드시 부귀와 즐거움을 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왕이 궁중에 돌아와서 스스로 구슬로 치장하여 만든 의복과 타는 말, 그리고 또한 모든 부인들이 지니고 있는 구슬로 치장하여 만든 옷들을 그 사람에게 주고 큰 마을을 주었다.

아서가왕이 이와 같은 권화를 짓자 복과 악의 모습이 즉시 사라졌다.

옛날에 아서가왕이 아사세왕이 가지고 있는 사리를 갖고자 하였다. 아사세왕이 항하 가운데에 큰 철로 된 칼을 만들어서 이를 물에서 회전시켰기에 사리가 있는 곳에 도착하여 갖가지 방편으로 취하려 하였으나 능히 얻을 수 없었다.

연화(蓮花) 비구에게 물었다.

“어찌하면 얻을 수 있겠습니까?”

비구가 대답하였다.

“수천 곡(斛)의 능금을 가운데로 던지면 회전을 멈출 수가 있습니다.”

이 말을 굳게 믿고서 능금을 물 가운데로 던졌다. 마침 모퉁이에 한 개의 능금이 떨어졌는데, 그 능금이 기관의 구멍으로 떨어져서 칼의 회전이 멈추고 다시는 돌지 않았다.

그러나 큰 용왕이 지키고 있어 도무지 얻을 수가 없었다.

이 때 왕이 물었다.

“어떻게 해야 얻을 수 있습니까?” “용왕의 복이 수승하므로 가히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왕이 물었다.

“어떻게 그 복이 수승함을 알 수 있겠습니까?” “금으로 용의 모습과 왕의 모습을 만들어 이를 저울에 달아 보면 무거운 쪽이 복이 수승한 것입니다.”

즉시 저울로 달아 보니 용의 모습이 두 배나 무거웠다. 왕이 이 일을 보고는 부지런히 복을 닦았다. 복을 닦고 나서 다시 상(像)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다시 그 무게를 재어 보니 왕의 형상과 용의 형상의 무게가 똑같았다. 왕이 다시 복을 닦고 다시 형상을 만들어서 무게를 재어 보니 왕의 형상이 더 무거웠다.

왕은 자신의 형상이 더 무거움을 알고는 모든 군대를 이끌고 물가에 이르렀다. 그러자 용왕이 스스로 나와서 갖가지 보물을 헌상하였다.

왕이 용에게 말하였다.

“아사세왕이 나에게 사리를 남겨주셨다. 나는 지금 그것을 갖고자 한다.”

용왕은 스스로 그 위력이 상대되지 않음을 알고 왕을 모시고 사리가 있는 곳에 이르러서 문을 열고 사리를 주었다. 그리고 아사세왕이 만든 유등(油燈)도 주고자 하였다. 사리가 밖으로 나오자 등도 또한 모두 꺼졌다. 왕이 괴이하게 여기고 연화(蓮花) 비구에게 물었다.

“어찌하여 아사세왕은, 유등을 만들 때 사리를 취하고자 하면 곧 꺼지게 하였는가?”

존자가 대답하였다.

“그 때 계산을 잘 하는 사람이 있어 100년 동안에 기름이 얼마나 쓰이는지를 계산해서 그 같은 양만을 사용한 까닭에 지금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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