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세왕수결경(阿闍世王授決經)
서진(西晉) 법거(法炬) 한역권영대 번역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라열기국(羅閱祇國)의 기사굴산(耆闍崛山)에 계셨는데, 그때 아사세왕(阿闍世王)은 부처님을 청해서 공양하기를 마쳤고, 부처님께서는 기원정사(祇洹精舍)로 돌아오셨다.
왕은 기바(祇婆)와 의논하였다.
“오늘 부처님을 청하여 공양을 끝마쳤으니 다시 마땅히 할 것이 없느냐?”
기바는 말했다.
“오로지 등(燈)을 많이 다는 것뿐입니다.”
그리하여 왕은 곧 명령하여 백 곡(斛)의 삼기름[麻油膏]을 갖추어서는 궁문에서부터 기원정사에 이르기까지 등을 설치하였다.
그때 어떤 가난한 노모가 늘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께 공양하려고 하였으나 재물[資財]이 없었는데, 왕이 그러한 공덕을 짓는 것을 보고 곧 감격하여, 돌아다니면서 2전(錢)을 구걸해서 그것을 가지고 기름을 파는 곳에 갔다.
기름집 주인은 말하였다.
“노모는 매우 빈곤하여 2전을 구걸하였는데 왜 밥을 사먹지 아니하고 그것으로 기름을 삽니까?”
노모는 대답하였다.
“나는 들으니 부처님을 만나기 어렵기는 백 겁에 한 번이라 하온데, 나는 다행히 부처님 세상을 만났으면서도 공양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왕께서 큰 공덕을 지은 것이 높고 높기 한량없음을 보고는 감격했습니다. 나는 비록 매우 가난하지마는 하나의 등이라도 밝히려는 것은 뒷세상의 뿌리[根本]를 위한 것입니다.”
이에 기름집 주인은 그의 지극한 뜻을 알고서 2전엔 2홉을 주어야 맞는데 특별히 3홉을 주었다.
노모는 곧 부처님의 앞에 가서 불을 켜고 마음으로 ‘이 기름은 밤을 밝히기에 반도에 되지 않겠구나’고 생각하고 곧 서원하기를, ‘만약 내가 후세에 부처님처럼 도를 얻는다면 기름은 밤을 새워 타올라도 광명이 시들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하고는 절하고 물러갔다.
왕궁의 등은 혹 꺼지기도 하고 혹 닳기도 하였으니 비록 사람을 두어 관리를 하였지만 항상 모두 보존하지는 못하였는데, 노모가 밝힌 등만은 광명이 특히 밝아서 모든 등보다 뛰어났고 밤새도록 커지지 않았으며 기름도 닳지 않고 이튿날 아침까지 갔다. 이에 노모는 다시 앞에 나와서 절하고 손을 합장하고 섰다.
부처님께서 목련에게 이르셨다.
“날이 이미 밝았으니 모든 등을 꺼라.”
목련이 지시를 받들어 모든 등을 차례로 꺼서 다른 등은 다 꺼졌으나, 오직 그 노모의 한 등만은 세 번이나 꺼도 꺼지지 아니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곧 그것을 끄기 위해 가사를 들어 부채질하였으나 불빛은 더욱 밝아졌다. 다시 위신력으로 폭풍[藍風]을 일으켜서 등을 끄려고 하였으나, 노모의 등은 더욱 치성하여 위로 범천(梵天)을 비추고 옆으로 삼천대천세계를 비추어서, 그 빛이 모든 곳에 나타났다.
부처님께서 목련에게 말씀하셨다.
“그만두어라, 그만두어라. 그것은 내세 부처님의 광명의 공덕이니, 너의 위신력으로 꺼질 것이 아니다. 이 노모는 전생에서 180억 부처님께 공양하기를 마치고, 부처님께 경법으로 힘써서 가르침으로써 인민을 교화하라는 수결[決]을 받았는데, 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을 닦지 아니했으므로 지금 빈궁하여 재보(財寶)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30겁 후에는 공덕이 차서 부처님이 될 것이니, 이름은 수미등광(須彌燈光) 여래ㆍ지진(至眞)이며, 그 세계엔해와 달이 없고 사람의 몸속에서 큰 광명을 발산하며, 집안에 있는 온갖 보배의 광명이 서로 비추어 마치 도리천(忉利天)과 같으리라.”
노모는 수결을 듣고 환희하여 즉시 사뿐히 허공에 몸을 솟구쳐 올라 땅에서 180길[丈]이나 솟았다가 내려와서 절하고 물러갔다.
왕이 이를 듣고 기바에게 물었다.
“내가 지은 공덕은 그렇게 높은데도 부처님께서 나에게 수결을 주지 않으셨는데, 이 노모는 한 등을 켜고도 곧 이 수결을 받았으니 왜 그러한가?”
이에 기바가 말하였다.
“왕께서 지은 것은 크고 많기는 하였지마는 마음이 전일(專一)하지 못하였으니, 이 노모가 부처님께 마음을 쏟은 것만 못합니다.”
왕은 이내 다시 부처님을 청하려고 모든 동산지기[圍監]에게 명하여 각기 새벽에 좋은 꽃을 캐어 일찍이 궁궐로 가져오게 하였다. 한편 부처님께서 새벽에 기원정사를 나와서 천천히 걸어오시면서 길에서 인민들을 위해 설법하시다가 한낮이 되어서 궁문에 이르셨다. 이때 한 동산지기가 꽃을 갖고 거리에 나오다가 마침 부처님과 큰길에서 만났는데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한마음으로 환희하여 곧 갖고 있던 꽃을 모두 부처님 위에 뿌려, 꽃들은 다 부처님의 바로 머리 위에 머물러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곧 수결을 주셨다.
“너는 이미 90억 부처님께 공양하였으며, 지금부터 140겁 뒤에는 부처님이 되리니 이름은 각화여래(覺華如來)라 하리라.”
그 사람은 환희하여 사뿐히 몸을 허공으로 솟구쳤다가 내려와서 절하고는 다시 생각하기를, ‘우리의 왕은 성질이 엄하고 급한데 일부러 내게 명령하여 재계하고 부처님께 공양할 꽃을 가져오라고 하였는데, 내가 이를 모두 부처님께 올렸으니, 빈손으로 가면 반드시 나를 죽일 것이다’ 하고 지름길로 집에 돌아와 빈 꽃 상자를 문 밖에 두고 들어갔다.
그는 부인에게 말하였다.
“나는 아침에 바삐 가느라고 밥을 먹지 못하였다. 이제 왕은 나를 죽일 터이니 급히 밥을 차려주시오.”
부인은 듣고 황급하게 말하였다.
“왕께서 무엇 때문에 당신을 죽인단 말입니까?”
그는 곧 부인을 위해 본말을 이야기하였으며, 부인은 곧 나가서 부엌에서 밥을 준비하였다.
제석천왕[天帝釋]은 곧 하늘 꽃으로 빈 상자를 가득 채웠다. 부인이 밥을 갖고 돌아오다가 보니 문 밖의 빈 상자에 꽃이 전처럼 가득하였으며, 광채를 내는 모습이 평범해 보이지 않았으므로 곧 남편에게 말해주었다. 남편은 문밖을 나와서 보고 이것이 곧 하늘 꽃인 줄을 알고 마음으로 크게 기뻐하며 먹기를 중지하고 꽃을 갖고 왕궁으로 들어갔는데, 마침 왕은 부처님을 마중하는 길이어서 서로 길에서 만났다.
왕이 꽃이 매우 훌륭하여 세상에 희유한 것임을 보고는 곧 동산지기를 책문(責問)하였다.
“나의 동산은 크므로 이런 좋은 꽃이 있었는데 너는 한 번도 바치지 아니했으니, 너의 죄는 죽어 마땅하다. 알겠느냐?”
동산지기는 말했다.
“이 꽃은 대왕의 동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臣)이 아침 일찍이 꽃을 가지고 오는 길에 부처님을 만났는데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꽃을 모두 부처님께 바쳤더니, 부처님께서 저에게 수결을 주셨습니다. 저는 마땅히 죽을 줄을 알고 집에 들려 밥을 찾았는데, 조금 있다가 나와 보니 빈 상자에 이 꽃이 가득하였습니다. 이는 틀림없이 하늘의 꽃이요, 동산의 것이 아닙니다. 지금 저는 신분이 낮고 천하여서 왕의 동산지기가 되었고, 관직에 얽매여 도를 행할 수 없지마는, 이미 수결을 받았으니 죽으면 반드시 천상에 날 것입니다. 그러하면 시방불(十方佛) 앞에서 거리낄 바 없이 뜻대로 도를 행할 수 있습니다. 왕께서 만약 죽이신다고 해도 저는 이상히 여길 것이 없습니다.”
왕은 수결을 받았다는 것을 듣고 나니 부끄럽기도 하였지만 두려워서 으쓱 털이 곤두섰다. 왕은 곧 일어나 절하고 단정히 꿇어앉아 참회하였다.
부처님께서는 궁에 이르러서 공양을 마치신 뒤에 주원(呪願)하시고 가셨다.
왕은 다시 기바에게 물었다.
“내가 전에 부처님을 청해서는 노모가 수결을 받았고, 오늘 복을 베풀어서는 동산지기가 수결을 받았으니, 나 홀로만 어찌하여 아예 얻음이 없느냐? 마음이 매우 답답하니, 이젠 어떤 공덕을 지어야 하느냐?”
이에 기바가 말했다.
“왕께서는 복을 자주 베풀었지마는 다만 국고[國藏]의 재물을 썼고 인민들의 힘을 썼으며, 혹 스스로 잘난 체 하고 혹 성내었으므로, 아직 수결을 얻지 못한 것입니다. 이제 자신의 공양거리를 떼어 쓰고 영락(瓔珞)과 7보(寶) 구슬 반지를 빼서 그것으로 보배로 이루어진 꽃[寶華]을 만들고, 부인과 태자와 함께 힘을 합하여 스스로 공덕에 나아가서 한마음으로 부처님께 바치십시오. 부처님께서는 왕의 지극한 정성을 비추시어 반드시 수결을 주실 것입니다.”
이에 왕은 반찬의 수를 줄이고 고기반찬을 거두고는 밤낮으로 재계하였으며, 몸에 걸친 온갖 보배를 빼고 모아서 여러 사람들에게 주면서 꽃을 만들라고 하고는, 왕과 부인과 태자가 몸소 참여하여 만들었다. 90일이 지나서야 완성되자 왕은 칙명을 내려 수레를 단장하게 하고, 부처님께 가서 이를 바치겠다고 하였다.
곁에 있던 신하가 아뢰었다.
“듣자오니 부처님께선 구이나갈국(鳩夷那竭國)에 가셔서 이미 열반하셨다고 합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슬피 울부짖으면서 목메어 말했다.
“내가 지극한 마음으로 손수 이 보배로 이루어진 꽃을 만들었으니 부처님께서 비록 열반하셨으나, 나는 반드시 기사굴산에 가져가서 그것을 부처님의 자리에 올림으로써 나의 뜻을 아뢰겠다.”
이에 기바가 말했다.
“부처란 몸도 없고 또한 열반도 없습니다. 또한 늘 머무는 것도 아니어서 사라짐도 없고 있음도 없습니다. 오직 지극한 마음을 가진 자만이 부처님을 볼 수 있으니, 부처님께서 아무리 세간에 계시더라도 지극한 마음이 없는 이는 부처님을 보지 못합니다. 대왕의 지극한 정성이라면 비록 부처님께서 열반하셨지마는 반드시 부처님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왕은 곧 기사굴산에 이르렀다. 그는 부처님을 뵙고 슬프고 또한 기뻐서 눈물을 흘리면서 나아가 엎드려 절한 뒤 7보(寶)로 된 꽃을 갖고 나아가 부처님 위에 뿌렸다. 꽃은 바로 부처님 위에서 머문 채 보배 일산[寶蓋]으로 바뀌었다.
부처님께서는 곧 왕에게 수결을 주셨다.
“8만 겁 뒤 겁의 이름이 희관(喜觀)일 때 왕께서는 부처가 되리니, 이름은 정기소부(淨其所部)여래요, 국토의 이름은 화왕(華王)이며, 그때 인민의 수명은 40소겁(小劫)이리라.”
아사세왕의 태자 전타화리(旃陀和利)는 그때 나이 여덟 살이었는데, 아버지가 수결을 받는 것을 보고 매우 환희하여 곧 몸에 있던 온갖 보배를 풀어서 부처님 위에 흩고 말했다.
“정기소부(淨其所部)부처님 때에 저는 금륜성왕(金輪聖王)이 되어서 부처님께 공양하옵고, 그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에 저는 이어서 부처가 되게 하옵소서.”
흩어졌던 보배는 변해서 교로장막[交露帳]이 되어 바로 부처님 위를 덮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반드시 너의 원대로 왕이 부처가 되면 너는 금륜성왕이 되었다가 목숨이 끝나면 곧 도솔천에 나며, 거기서 수명이 다하면 곧 내려와서 부처가 되니라. 보살의 국토[藥王刹土]에서 교수(敎授)할 것이며, 이름은 전단(栴檀)이요, 인민의 수명과 국토는 다 정기소부 부처님 때와 같으리라.”
부처님께서 수결하시기를 마치시니, 왕과 태자 전타화리는 부처님 앞에 나아가 절하였는데, 갑자기 환해지더니 부처님 계신 곳이 보이지 아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