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육왕태자법익괴목인연경(阿育王太子法益壞目因緣經)-2
이 칙서를 보는 대로
봉인(封印)을 살핀 다음
법익을 붙잡아서
두 눈을 빼도록 하라.
그는 나의 아들이 아니고
나는 그의 아비가 아니며
그가 다스리던 나라도
나의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은 칙서를 몰래 만들어서
정용에게 가서 보여 주며 말하기를,
왕의 도장만 갖추면
아무 것도 의심할 일이 없습니다.
이제 도장을 찍기만 하면
내일 바로 칙서를 보낼 것이니
만약에 조금이라도 더 머뭇거렸다간
발각될 일이 두렵습니다.
그러자 정용은
바로 그날로
왕을 찾아가 눈물을 흘리면서
변괴가 있었다고 거짓말하였네.
어젯밤에 자면서 꿈을 꾸었는데
매우 불길하니
장차 왕의 몸에
질병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미리 조심해서
악몽을 예방하는 것이 옳을 것이니
원컨대 이 달콤한 술을 드시어
제 마음을 기쁘게 하소서.
상서롭지 않은 징조도
능히 항복 받으실 수 있을 것이며
그 존귀함이 왕과 백성에게 미치어
길이 걱정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왕이 물어 말하기를,
꿈은 사실이 아니니
어찌 내 몸에
질병이 있도록 할 수 있겠소?
정용이 이 말을 듣더니
거듭 슬피 울면서
하늘을 향해 통곡하다가
땅바닥에 몸을 던졌네.
왕이 애틋하게 여기고 생각하기를,
내 마땅히 술을 받으리라
부인이 저러다가
목숨을 잃게 해선 안 되겠다.
이 때에 왕은 웃음을 머금고
천천히 일러 말하기를,
그대가 그렇게 하기를 원한다면
그대를 위해 그것을 마시리라.
어찌 그대로 하여금
스스로 목숨을 버리도록 할 수 있겠소.
이것은 하찮은 일이니
내 그대의 뜻을 거스르지 않겠소.
왕은 곧 술을 받아
조금 마시고 나자
얼마 안 있어 취하여 잠들어
마침내 감각도 없게 되었네.
정용이 도장을 몰래 꺼내
칙서에 찍어 봉인하니
그 때 왕의 시종들 가운데
아무도 이것을 본 자가 없었네.
왕은 마침 꿈속에서
어떤 사람이 자신의 도장을 꺼내 가는 것을 보고
소스라쳐 일어나
좌우를 둘러보고 말하였네.
이제 막 편안히 잠들어
생각이 아득히 꺼져 가는데
누군가 와서 내 몸을 건드려
정신을 산란하게 하였다.
서둘러 이것을 조사하여
헛됨이 없도록 하리니
여기에는 반드시 음모가 있어서
내 몸을 해롭게 하고자 하는 것이리라.
손에 날카로운 칼을 들고
철륜(鐵輪)을 날려
대왕의 빛나는 위엄을 떨치면서
정용에게 말하였네.
누가 너를 시켜
나의 보배 도장을 훔치게 하였느냐?
만약 자백하지 않는다면
바로 죽여 버리리라.
정용이 두려운 마음으로
무릎을 꿇고 왕에게 말하기를,
원컨대 대왕께서는 잘 살피어 주옵소서.
저는 진실로 그럴 마음이 없었습니다.
왕은 더 한층 분노하면서
거듭 말하기를,
그대 외에 달리
내 몸을 만진 사람은 없다.
이제 내 앞에서
진심으로 잘못을 자백하지 않는다면
내 마땅히 너의 몸을
두 조각 내리라.
정용이 눈물을 흘리고 울면서
무릎 꿇고 왕에게 말하기를,
이것은 꿈속의 환상이
괴이하게 나타난 것일 뿐입니다.
너무나 하찮은 가문에
외롭고 가난하고 천박한 제가
어찌 감히 대왕 앞에서
사실을 속이고 헛말을 하겠습니까?
설령 왕의 도장이 필요하다고 해도
어찌 몰래 훔치겠습니까?
성심으로 왕께 고한다면
어찌 얻지 못하겠습니까?
왕은 이 말을 듣고
아무 말 없이 바라만 보다가
다시 침대로 가서 잠이 들어
새벽이 될 때까지 깨어나지 않았네.
정용은 급히 영을 내려
간신인 야사로 하여
속히 사신을 보내게 하고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고 하였네.
바로 그 무렵
왕자 법익은
여러 신하들과 함께
궁궐에 모여 있었네.
즐겁게 놀면서
마음껏 기뻐하고 있었는데
마침 칙서가
석실성에 도착하였네.
왕은 부왕의 칙서가
밖에 도착해 있다는 말을 듣고
일어나 나아가 맞이하였고
무릎 꿇고 절하여 우러러 받들었네.
옆의 신하에게 주어
봉인을 열도록 한 다음
왕명의 내용을 살펴보니
지극히 엄격하고 절도 있었네.
아육왕을 칭하고는
이 땅에 대해 크게 분노하고 있으니
만약 평안히 살고 싶거든
석실성에 사는 자들은
속히 왕자를 잡아서
두 눈을 빼어내되
잠시도 머뭇거려서는 안 되니
그림자 옮겨 가듯이 시행하라.
법익이 그 내용을 듣고는
스스로 땅바닥에 몸을 내던지며
내가 부왕께
무슨 잘못을 저질렀단 말인가?
이러한 칙서를 보내시어
나의 두 눈을 뽑아버리려 하시다니
혹시나 누군가
부왕께 모함한 것은 아닐까?
여러 신하들과 백성들은
이와 같이 절박한 왕명을 듣고는
모두가 놀라 두려워하며
어찌할 바를 몰랐네.
이 얼마나 끔찍한 재앙이란 말인가?
이런 변괴를 보게 되다니
대왕이 크게 분노한다면
다시는 왕조를 이을 수 없으리라.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여러 신하들은
더러 이 일을 두고 의논하기를,
우리들이 어찌 감히
법익왕의 눈을 못 쓰게 할 수 있으리오.
법익왕이 아니었다면 어느 누가
이 무너진 나라를 일으켜 세울 수 있었으리오.
대왕의 뜻이라고는 하나
어찌 감히 두 눈을 빼내겠는가?
벼슬아치들은 함께 모여
나라의 경계를 굳게 지키고
먼 곳과 가까운 곳에 알려
다 같이 전쟁 준비를 하자.
차라리 백성이 죽고
처자식을 잃더라도
우리의 왕이
그 고통을 당하게 하진 않으리라.
급히 북을 울려서
변방의 장수들을 소집하고
칙서를 불태우고
사신을 잡아 죽이자.
아육왕은 우리의 왕이 아니고
우리도 그의 백성이 아니니
거룩하신 법익왕의 눈을 못 쓰게 하라는
그의 영을 따르지 않으리라.
이 때 법익왕은
여러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대왕의 명령을 거역하는
그런 마음을 내지 말라.
부왕의 병사들은
그 숫자를 헤아릴 수가 없고
용맹하고 굳건하기가
세상에 찾아보기 힘들 정도이다.
그대들이 비록
각기 최선을 다한다 해도
일을 이루지도 못하고
나라 전체가 망할 것이다.
나의 목숨은 어찌 지킬 것이고
누구인들 몸이 성할 것이며
나아가 부왕으로 하여금
원한만 깊어지도록 할 것이다.
차라리 육신을 손상하여
분수대로 칙명을 받으리니
어찌 내 한몸 건지자고
온 나라를 망하게 할 수 있으리오?
그대들은 다시는
이 일로 논란치 말고
속히 부왕의 명을 받들어
내 눈을 못 쓰게 하라.
무릇 성함이 있으면 쇠함이 있고
모였던 것은 흩어지기 마련이라,
이 몸이 없었다면 이런 일도 없었으리니
죽음인들 어찌 피할 수 있겠는가?
부처님께서도 말씀하지 않으셨더냐.
이 육신은 고통의 그릇이어서
항상 더러운 것이 질질 흐르고 냄새나는 것이니
하나도 욕심을 낼 것이 없다고.
어서 빨리 성안에 이렇게 알려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여
법익왕에게서
두 눈을 뽑겠느냐?
그 자에겐 이제 천만금에 해당하는
보배 목걸이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금은을 주겠노라.
나라 안의 모든 백성들이
이러한 영을 듣고
성문 앞에 모여 들었으니
바늘 하나 꽂을 자리도 없었네.
모양은 달라도 같은 곳을 향하여
한결같이 소리를 높여
하늘을 보고 땅을 치며 울면서
각기 호소하여 말하였네.
아, 어떤 고통이 이보다 더할까.
우리의 거룩한 왕을 잃게 되다니
마치 하늘의 왕궁과 같은 이곳이
어찌 무너져야 한단 말인가?
성곽도 왕궁처럼
오래지 않아 폐허가 되고
나라 안의 모든 땅도
황무지가 되겠구나.
우리 모두 함께
이웃 나라에 말을 전하세.
아육왕은
악인의 우두머리라고.
자식을 죽이고 이름을 드날리니
대체 무엇을 귀하게 여긴단 말이오.
자식도 오히려 사랑하지 않는데
백성들이 어떻게 믿고 의지하겠는가?
그 때 성안에
어떤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일찍이 왕자로부터
아주 사소한 일로 미움을 산 적이 있었네.
마침내 그는 바로 나아가서
막중한 일을 자신이 맡겠다며 말하기를,
저는 눈도 빼어 내고
목도 자를 수 있습니다.
좌우에 있던 여러 신하들이
그를 가리키며 여쭙기를,
이 사람이 스스로 밝히기를
자신이 왕의 눈을 못 쓰게 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다시 한번 깊이 살피시어
부왕의 명을 거절하시고
원하옵건대 왕께서는
이와 같이 심한 고통을 받지 마옵소서.
왕은 그 사람을 보더니
슬픔의 눈물을 흥건히 흘리며
좌우를 둘러보고
신하들에게 고하였네.
내가 이 나라에 머무른 지도
어언 12년
그 동안 허물도 많았으나
모두들 용서하시오.
가령 이제
내 눈을 못 쓰게 만드는 것을 보더라도
근심하거나 괴로워 말고
어떤 나쁜 생각도 일으키지 마시오.
모두들 제자리로 돌아가
전에 늘 해왔던 법대로 나랏일을 돌보며
정법으로 다스려
마땅한 일을 하도록 힘쓰시오.
생각을 바르게 하여
하늘의 복을 받고자 생각하고
항상 재계(齋戒)를 염두에 두어서
이것을 어기지 마시오.
왕은 보관(寶冠)과
둥글고 네모난 옥을 꿰어 만든 목걸이와
보배로 장식한 신발을 벗어
앞에 선 사람에게 주면서 말하였네.
그대는 반드시 내가
법의 근본을 생각한다는 것을 알고
눈을 하나하나 빼서
손바닥에 놓아 주시오.
그 때 그 악인은
날카로운 칼을 손에 잡고
먼저 한쪽 눈알을 빼어
왕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네.
왕은 몸소 자신의 눈알을 집어 들고
깊이 생각하기를,
이제 기억이 나는구나.
전에 스승께서 가르쳐 주셨던 것이.
이제 갑자기 마음으로 깨닫게 되니
그 뜻을 잊을 수가 없구나.
지난날 스승께서 설한 가르침은
그 이치가 진실로 깊었구나.
나에게 말씀하시기를,
눈이란 무상한 것이라 하셨으니,
스승의 가르침은 지극하였고
진실로 헛되이 꾸민 말이 아니었구나.
조용하고 은밀하게 관찰하여
무상의 뜻을 깨닫고 보니
이 눈은 오래가지 않아서
반드시 못쓰게 될 것이었구나.
눈이여, 나는 이제 너의 근본을 알지만
미혹한 세상 사람들은
모두 어리석게도 아낄 줄만 알고
이것이 공(空)인 줄은 모르는구나.
생사(生死)의 더럽고 탁한 모습은
마치 파초(芭蕉)와 같아서
몸통은 잎으로만 겹겹이 싸여 있고
속에 단단한 알맹이라고는 없다.
여기에서 지혜로운 이는 아무것도
탐할 것은 없다고 관찰하니
어찌 다시 생각을 일으켜
눈이라는 대상에 집착하겠는가?
눈은 나의 것이 아니며
지어내거나 만든 것도 아니며
거기에 내가 있는 것도 아니니
어찌 눈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어리석은 이는 의혹을 일으켜
눈의 작용에 깊이 집착하니
삶과 죽음의 어두운 바다를
길이길이 돌고 돈다.
눈이여, 이제 너를 돌려줄 터이니
영원히 서로 이별이구나.
어디에서 기원하여
나에게 눈이 주어졌는가?
마치 물 위의 거품이
잠시 나타났다가 곧 사라지는 것과 같으니
헛될 뿐 진실하지 않구나.
육안(肉眼)의 쓰임새여.
이와 같이 법익은
눈의 근원을 자세히 관찰하여
깊고 묘한 뜻을 사유하고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 되었네.
혼란을 다스려 바로 잡아
마음이 금강(金剛)과 같아졌으니
모든 잡된 생각은 고요히 사라지고
굳건한 의지로 흔들리지 않았네.
그 때 그 악인은
다시 날카로운 칼로
두 번째 눈을 빼내서
왕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네.
본래 어느 곳에서 왔는지
거듭 눈의 근원을 관찰하고는
모든 법은 적멸하여
만물이 귀화(歸化)함을 알았네.
그 자리에서 바로
천안통(天眼通)을 얻어
모든 번뇌를 여의고
저절로 도의 자리에 이르렀네.
하늘과 땅도 감동하여
여섯 가지 모습으로 진동하였고
기쁨이 마음에서 우러나와
훌륭하구나, 하고 세 번을 외쳤네.
세상의 더러운 눈을 버려
청정한 눈을 얻으니
공덕이 조금 쌓이자
내 스스로 도를 이루었음을 알겠구나.
모든 신하들은 울부짖으며
땅바닥 위에 몸을 던지고는
그 어떤 고통이 이보다 심할까?
우리는 이제 하늘같은 분을 잃었구나.
옛날에 어떤 인연을 지었으며
전생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지금 이와 같이 눈을 상하여
기왓장이나 돌멩이처럼 버림을 받으신단 말입니까?
거듭 손을 앞에 모으고
각자가 여쭙기를,
원컨대 왕께서는 불쌍히 여기시어
다시 이 땅을 다스려 주옵소서.
저희들은 함께
부왕이 계신 곳으로 가서
저희들의 뜻을 여쭙고
이 나라를 통치하도록 허락받겠습니다.
그 때 법익왕은
여러 신하들에게 감사하고 위로하기를,
모든 백성들에게 깊이 감사하며
이에 보답해야 한다는 마음이지만
육신을 못 쓰게 된 사람이
어찌 그대들의 나라를 평안케 하겠소.
마땅히 스스로 물러나야 하리니
지금 곧 이 나라를 떠나겠소.
부인과 함께
시종 하나를 거느리고
왕의 자리를 홀연히 버리고
걸어서 길을 떠나갔네.
이곳저곳의 마을과
군과 현과 나라의 수도를 두루 흘러 돌고
거친 들판과
험난한 곳을 밟고 다녔네.
한편 태자는
어려서부터 거문고를 잘 탔으니
아름다운 그 소리 맑고 묘하기가
세상에 드물 정도였네.
그 재주에 의지하여
집집마다 밥을 빌며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다니며
스스로 목숨을 연명하였네.
이와 같이 떠돌며
여러 마을과 성곽을
하나하나 지나다가
드디어 부왕이 다스리는 나라에 이르렀네.
그 때 고약한 소문이
온 나라에 떠돌기를,
아육왕이
자식의 두 눈을 못 쓰게 하였다 하네.
크고 작은 마을과 온 나라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하지 못하면서
우리들은 이제
어디로 도망가야 하리오.
남녀노소가 함께
마주 보고 슬피 울면서 말하기를,
태자가 부왕에게
무슨 죄를 지었단 말인가?
저 악인은 어찌
손이 끊어져 못쓰게 되지도 않고
우리의 거룩한 왕을 데려다가
두 눈을 못 쓰게 하였나.
그러자 왕자 법익이
백성들에게 고하기를,
부왕께서는 잘못이 없으니
세상 사람들은 원망하지 말라.
이것은 내 전생의 업으로
지금 그 과보를 받는 것이니
이러한 인연은 오래된 것으로
금생만 보아서는 안 되오.
이 때 아육왕은
높은 누각 위에서
정용과 함께
누워 자고 있었네.
왕자 법익은
마구간 안에서 쉬면서
밤새도록 즐거이 노래하고
거문고를 타며 혼자 즐기고 있었네.
왕이 마침 거문고 소리를 듣고
탄식하면서 언뜻 의심하기를,
여러 음들이 조화롭고 아름답기가
마치 우리 법익을 보는 듯하구나.
누가 거문고를 타기에
소리가 예까지 울려오는가?
혹시 이는
우리 법익이 아닐까?
정용이 답하기를,
저 사람은 왕자가 아니라
눈 없는 사람으로
걸식하며 혼자 살아가는 자입니다.
건타월국은
마치 하늘의 제석천왕이 사는 궁전인 듯하며
왕자가 서쪽 지방을 다스리는 것은
마치 햇빛이 구름을 뚫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 왕께서는 일어나셔서
내전으로 드시어 정무에 임하소서.
모든 신하들이 모여서
대왕님을 뵙고자 하나이다.
정용은 이로써 왕으로 하여금
생각을 다른 곳에 두도록 하니
무서운 재앙이 자신의 몸에 미치리라는
두려움이 가라앉지를 않았네.
왕은 다시
거문고 타는 소리를 듣더니
문득 소스라쳐 일어나
들려오는 소리를 자세히 살피었네.
좌우를 둘러보며 말하기를,
이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고
바로 나의 아들이
이곳에 온 것이다.
왕은 곧 정용을 꾸짖어 물리치더니
여러 말 필요 없이
속히 이 사람을 데려와
나에게 보여 주도록 하라.
신하를 보내어 불러오게 하니
왕이 있는 곳으로 함께 오는데
왕이 멀리서 왕자를 알아보고는
땅바닥 위에 몸을 던졌네.
하늘을 향해 울부짖고 원망하다가
생각이 일시에 뒤엉켜 버렸으니
창백한 모습으로 비통에 젖어
마치 불에 덴 듯 하였네.
여러 신하들이 물을 뿌린 다음
부축하여 일으켜 앉히고는
왕관과 의관을 바로잡아 주니
왕이 물어 말하였네.
누가 내 아들의 눈을 못 쓰게 하여
이토록 괴롭게 한단 말인가?
나의 심장과 간을 도려내는 듯하니
다시 원래의 눈으로 되돌려 놓아라.
전에는 천신의 눈[天眼)같더니
이제 이처럼 끔찍한 재앙을 만나다니
아육왕은 슬픔에 목이 메 숨이 넘어가
잠시 죽은 듯하다가 다시 살아났네.
다시 왕관을 집어
땅바닥에 내던지고
머리를 산발하여
대왕의 위엄을 내던져 버렸네.
보배로 만든 목걸이는
여기저기에 흩어졌고
손에는 날카로운 칼을 잡고
좌우에 외쳤네.
나는 이제 반드시
천하를 멸하리니
늙은이든 젊은이든
나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리라.
석실성에 사는 자들은
모조리 씹어 먹고
모든 백성들은
똑같이 눈을 빼내리라.
건타월국을
황무지로 만들 것이니
이들은 내 자식의 청정한 눈을
못쓰게 만든 일에 관련된 자들이다.
또한 반드시 이렇게 해치리니
내가 거하고 있는 이 나라 사람은
남자와 여자를 묻지 않고
모두 눈을 빼내리라.
그리하여 쇠바퀴 살에 던져 넣고
공중에서 빙빙 돌려
염부주 안의
형체를 가진 모든 것을 죽이리라.
부왕은 눈물을 흘리며
왕자에게 묻기를,
누가 너의 눈을 못 쓰게 하여
이 지경이 되었느냐?
내 심장과 간장을
마디마디 잘라 내는 듯하구나.
이 광경을 지켜 본 수없이 많은 사람들은
애통해 하고 가엾이 여기지 않는 이가 없었네.
왕자가 이윽고 대답하기를,
칙서가 왕궁으로부터 오니
영이 엄정하고 절실하여
놀라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원컨대 부왕께서는
석실성의 사람들을 원망하지 마옵소서.
그 사람들은 어질고 화목하여
아무런 허물도 없습니다.
단지 이 몸이 복이 적어서
이러한 재앙을 자초했을 뿐이니
이 모두가 전생에서 비롯한
선하지 않은 업의 과보입니다.
당시 석실성의 신하들은 칙서를 보고
모두가 분한 마음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육왕은 어찌하여
이처럼 어질지 못한 일을 저질렀을까?
염부제 땅은
참으로 무자비하구나.
어떻게 이 왕자를 해치려는
그런 마음을 낸단 말인가?
우리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은
함께 모여서
나라 안에 고하여
전쟁에 쓸 장비를 단단히 갖추도록 하자.
차라리 이 나라를 잃고
형벌을 받을지언정
왕자로 하여금
이와 같은 치욕을 받게 할 순 없다.
칙서를 불태우고
사신을 죽인 다음
석실성 안에
급히 북을 울려 알리자.
그는 우리의 왕이 아니고
우리는 그의 신하가 아니니
참으로 왕자의 눈을
감히 못쓰게 할 수는 없다.
제가 그곳 사람들에게
깨우쳐 주며 말하기를,
부왕의 영을 거역하는
그런 생각을 품지 말라.
어찌 부왕에 대해
반역하는 마음을 내리오.
옛날부터 지금까지
흥하고 쇠하는 것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오.
곧바로 존엄하신 명을 수행하여
엄교(嚴敎)를 따라야 할 것이니
머뭇거리고 지체하여
칙서의 명을 거역할 순 없다 하였습니다.
그 나라 백성들은 모두 어리석어
참과 거짓을 알지 못하고 한 일이니
원컨대 부왕께서는 용서하는 마음을 베푸시어
분노가 미치지 않도록 하소서.
대왕께서는 정신을 가다듬고
부처님의 말씀을 헤아리소서.
인욕은 큰 힘이 있어
능히 온갖 원망을 이길 수 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즉시 분노를 떨쳐 내고
저들의 허물을 파헤치지 마옵시며,
저의 눈 때문에
살해하려는 마음을 일으키진 마옵소서.
지옥의 고통을 주고
짓밟아 쓰라린 고초를 주면
그 죄의 과보를 고스란히 받게 되니
이 아들이 바로 그러했음을 되뇌소서.
만일 백성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시며
본원(本願)을 헤아리는 분이시라면
어찌 자식의 몸을 빙자하여
백성을 죽일 수 있겠습니까?
온 국토의 남녀와
모든 백성들이
한결같이 두려움에 떨고 있으니
원컨대 이제 관대하게 용서하소서.
바로 그 때
왕자를 가르쳤던 스승은
많은 비구들을 거느리고
성에 들어와 걸식하고 있었네.
손에는 발우를 들고
가사를 바로 여미고
나란히 서서
점차 왕궁 문에 가까이 다가왔네.
아육이 멀리서 그 모습을 보고
슬픔의 눈물을 흥건히 흘리며
바로 일어나 앞에 나가 맞이하고는
무릎을 꿇어 예를 올리면서 물었네.
지난날 존자(尊者)의 제자였던
법익 왕자가
이제 재앙을 맞아
두 눈을 못 쓰게 되었습니다.
그 슬픔으로 마음에 상처를 입어
애절함을 이겨내기가 어려우니
원컨대 존자께서는 살피시어
법의 약으로 치료해 주십시오.
그 아라한이 대답하기를,
모든 것이 무상하여 백 번을 변화하니
이것은 옛날의 일에서 유래하였지
현재에 갑자기 닥친 일은 아닙니다.
거느린 비구들을 살펴보고는
곧 그 앞에 자리를 잡고 앉으며
왕에게 말하기를, 사람을 불러
법익을 이리 오도록 하십시오.
부왕이 몸소 안으로 들어가
손을 잡고 인도해 나오니
지켜보던 몇 만이나 되는 사람들 모두
마음 아파하지 않는 이 없었네.
왕자는 존자의 발에 이마를 대어 예를 올리고
강물과 같이 눈물을 흘리면서
슬픔과 분노로 목이 맨 채
겸손히 자신을 낮추어 말하였네.
옛날에 스승님께서는 제게
여래의 진실한 말씀을 가르치시기를,
눈이란 무상하며
또한 견고하지 않다.
이 뜻을 사유하길
깊고 그윽이 하여야 하니
육신의 눈은 더럽고 탁하여
믿을 만한 것이 못된다.
마치 물거품과 같으며
햇빛에 빛나는 이슬과 같으며
물 위에 뜬 거품과 같으며
거울에 비친 모습과 같고 태양의 움직임과 같다.
속 빈 파초 둥치와 같으며
봄날 아지랑이와 같아
허깨비처럼 진실하지 않으니 지혜로운 이라면 버려야 할 것이요,
어찌 욕심을 낼 것인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 아육왕은
존자의 앞에 무릎 꿇고 말하기를,
원컨대 지극한 도리를 설해 주시어
다시 한번 진리를 볼 수 있게 하소서.
이 슬픔과 분노를
모두 씻어 내어 맑고 고요하게 하시고
헤매고 떠도는 무리들로 하여금
진리로 돌아가게 하옵소서.
존귀한 가르침을 사유하여
평안히 무위(無爲)에 머물러서
장차 돌아오는 세상에서는
전생의 업의 근원을 알도록 해 주십시오.
아라한은 자리에서 일어나
왕자에게로 가서
하얀 빛깔의 보자기를 집어
법익의 머리에 씌웠네.
왕자의 친어머니인
월광(月光) 부인도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을 모으고 꿇어앉았네.
몸소 향로를 들고는
온 사방 여러 나라의
방향과 경계를 향하여
온갖 이름난 향을 살라 올렸네.
하늘과 땅의 모든 신들과
존귀하고 힘센 귀신들의 왕이시여,
빠짐없이 이곳으로 모이셔서
지성으로 서원하는 것을 증명하옵소서.
우리 법익 왕자의
두 눈을 되찾게 하고자 하니
모든 신들께서는 증명하시어,
이 지극한 정성에 감응하옵소서.
여덟 부류의 귀신들이
즉시 메아리처럼 응하여
사방에서 모여드니
허공에 빈틈이 없었네.
다시 왕자에게 이르기를,
그대는 진심으로 원을 세워
부처님과 법과
존경하는 스승님께 귀의하라.
과거의 모든 부처님들과
이제 여기에 온 모든 이들에게도
스스로 목숨을 다해 귀의하여
존경하는 마음을 일으켜라.
모든 현인들께서는 저의
진실한 서원을 들으시고
두 눈을 바꾸어 집착함이 없는
청정한 눈을 얻게 하소서.
저는 득도 이후로
끝내 먼저 밥을 먹지 않았고
반드시 다른 사람을 앞서 제도하고
그 다음에 밥을 먹었습니다.
기억하건대 저는 옛날에
모든 부처님들을 받들어 섬겼으니
식(式)부처님과 유위(維衛)부처님과
비사(毘舍)부처님이십니다.
얼마 되진 않았지만
고운 무늬의 비단으로 만든 꽃 일산(日傘)과
춤과 음악으로
공양을 드렸습니다.
또한 등불을 밝혀
존귀한 광명을 이어가도록 했으니
이러한 덕을 인연으로 하여
다시 눈을 돌려주십시오.
옛날에 식(式)부처님께도
이런 서원을 발하였으니
눈 없는 모든 이들을
내 마땅히 치료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