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육왕태자법익괴목인연경(阿育王太子法益壞目因緣經)-1
부진(符秦) 천축(天竺) 삼장 담마난제(曇摩難提) 한역 박용길 번역
아육왕태자법익괴목인연경(阿育王太子法益壞目因緣經)-1
아육왕태자법익괴목인연경(阿育王太子法益壞目因緣經)-2
아육왕태자법익괴목인연경(阿育王太子法益壞目因緣經)-3
아육왕태자법익괴목인연경(阿育王太子法益壞目因緣經)-4
아육왕태자법익괴목인연경(阿育王太子法益壞目因緣經)-1
인간이 죽음과 삶에 놓여
뒤얽히며 내려온 지 오래이라
죄를 익힌 식심(識心)이 깊어지면
그를 따라 괴로움과 혼란이 일어나네.
음욕은 병(病)이 되어
반드시 격렬한 파랑을 일으키니
마치 강물이 폭포수로 흘러넘치는 것처럼
상처 입고 손해 봄이 있게 되네.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을 다잡아
생각으로 헤아림이 분명하며
맑고 의젓하게 자신을 지켜
모든 악의 근원을 훌륭히 다스리네.
스물한 가지 번뇌[結]는
사람의 마음을 더럽히고 물들여
모든 것을 잃게 하고
급기야 제멋대로 행동하게 하네.
모두 마음을 하나로 모아
내 얘기를 들으라,
아육왕의 아들이
눈을 잃게 된 내력을.
소문은 변방의 여덟 표지판을 지나
온 나라 안에 두루 퍼졌으니
많은 사람들이 너무 뜻밖이라
놀라고 두려워하지 않는 이가 없었네.
거룩한 왕 아육(阿育)은
중앙에서 온 세계를 통일하였으니
염부제(閻浮提)를 다스림에
그 명을 따르지 않는 이 없었네.
또한 왕이 자식을 얻었는데
얼굴이 단정하고
날 때부터 훌륭한 상호를 갖추어
왕위를 잇기에 충분하였네.
눈빛은 맑고 또렷하여
마치 천제(天帝)의 모습과 같았으니
왕은 이런 남다른 생김새를 보고
그 기쁨이 한량없었네.
서둘러 여러 신하들과
사문(沙門)과 도사(道士)들을 불러
몸소 아이를 품어 보이고선
그 모습을 살피도록 하였네.
아울러 여러 신하들에게 영을 내려
아이의 이름을 짓게 하기를,
세상 사람들이 드높이 칭송하고
그 명성이 온 세계에 두루하게 하라.
여러 신하들이 머리를 조아리고
왕의 명을 받들어 말하기를,
왕께서 이처럼 귀한 왕자를 얻으시니
세상에 드문 일입니다.
정법으로 나라를 다스리신 덕분에
하늘에서 이런 신인(神人)을 내려주셨으니
이제 그 이름 지으라 하시니
법익이라 부르겠습니다.
그 이유는
왕께서 만드신 법이 잘 정비되어 있어서
이 법으로 백성을 가르치심에
도리에 어긋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희들은 바로 이런 이유로
법에 의한 진실한 아들이기에
거룩한 아들이라 부르며
법익이라 부르겠습니다.
눈은 마치 연꽃과 같아
보는 사람마다 기뻐하고
바라볼 때마다 모두 황홀해 하니
마치 하늘의 제석천왕 같습니다.
말씨는 또렷하여
느리거나 빠르지도 않으며
천성은 부드러워
졸렬하거나 난폭하지 않습니다.
이 이름의 덕스러움은
이루 다 열거할 수 없으며
이제 다시 호(號)를 붙인다면
천안(天眼)이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아육왕은
끔찍이 받들고 사랑하면서
수시로 보살피고 돌보아
아무런 허물도 없도록 하였네.
왕은 항상 다른 사람을 보내어
속속들이 사정을 살피게 하였고
왕자에게 별 탈이 없다는 것을 알고서야
비로소 식사를 하였네.
몸소 법익을 안고
하루 종일 즐겁게 놀았으니
애틋한 마음과 사랑스러운 감동 뿐
자나 깨나 싫지가 않았네.
법익에게 말하기를,
너는 어떤 복을 지었기에
이런 눈을 얻었느냐?
마치 우담바라꽃 같구나.
혹시 왕궁 안의 정원에 나가거나
나라 안을 여행할 때면
언제나 장수가 지키도록 하여
걱정거리가 없도록 하였네.
모든 남자와 여자들이
천안(天眼)을 보고 나선
모두가 헛된 생각을 일으켜
사랑하고픈 욕망을 품었네.
왕은 타고난 성품이
여색(女色)을 지나치게 좋아하였으니
왕궁 안의 모든 시녀들은
그 모습이 천신의 왕비 같았네.
왕의 부인(婦人)들은 모두
속으론 자태(姿態)를 갖추고
외양은 품위 있고 아름답고 애교 있어
행동거지 어느 하나도 흐트러짐이 없었네.
왕의 대부인(大夫人)은
이름이 정용(淨容)이었으니
밤낮으로 기회를 보아
천안과 정을 통하고자 하였네.
나는 어느 날에나
이 소원이 이루어져
천안과 더불어
한가롭고 아늑한 곳에서 함께 노닐 수 있을까?
내 뜻대로 이루어만 진다면
하늘의 왕궁도 부럽지 않고
곧바로 죽더라도
세상에 아무런 여한이 없으리.
어느 날 태자는
맑은 새벽에 일찍 일어나
대부인의 처소로 와서
무릎을 꿇어 절하고 문안을 드렸네.
서둘러 일어나셔서
힘드시더라도 산책 좀 하옵소서.
아울러 달콤한
석류[吉祥之菓]를 올렸네.
부인은 태자를 보고 나서
욕정이 무섭게 타올랐고
문득 말하기를, 너는 예전엔
나와 함께 놀지 않았느냐.
이전엔 나의 소원을 모두 들어 주고
부모 자식간의 정을 지극히 하였으니
지금도 너와 내가 함께 즐긴다면
역시 좋지 않겠느냐?
천안이 이 말을 듣고
손으로 뿌리치고 나서
혼자 속으로 생각하기를,
괴롭구나, 이러한 말씀을 하시다니.
그 어떤 재앙이 이보다 심할까?
쓰라린 고통이 가슴을 꿰뚫는구나.
길러 주신 은혜가 무겁다고 하지만
어찌 그런 일을 받아들일 수 있으리오.
천천히 물러 나와
다시 왔던 길을 따라
자신의 거처로 돌아와서는
조용히 자신을 가다듬었네.
한편 정용은 자신의 소원을 거부하는 것을 보고
또한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되자
가슴을 치고 탄식하고는
해를 끼칠 생각을 일으켰네.
머리를 쑥대강이처럼 헝클어뜨리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분노에 휩싸였으니
마치 나찰귀(羅刹鬼) 같았네.
저 놈이 어찌
나에게 이런 치욕을 줄 수 있단 말인가?
내 반드시 방법을 찾아
두 눈을 뽑아 버리리라.
그리하여 온 나라 사람들로 하여금
왕자를 보거나 듣고 싶어 하는 이가 없게 하리니
도대체 어느 남자나 여자가
그 꼴을 보려 하겠는가?
그 때 한 신하가 있었으니
그 이름은 야사(耶奢)였고
부왕의 신임이 두터운 까닭에
온 백성이 그 위세에 굴복하였네.
나라의 명절이 시작되어
축하를 드리러 왕궁에 들어가
왕을 뵙고 손을 모아 겸양의 뜻을 표하니
마치 옛날의 훌륭한 예절을 보는 듯하였네.
왕자가 보고서는
손으로 머리를 치고는 말하기를,
상서롭지 못한 응대를 하는구나.
감히 내 앞에 서다니.
속히 네 본자리로 돌아가고
이 자리에 더 이상 머뭇거리지 말라.
나는 이제 조정에 들어가
거룩하신 왕에게 경하(慶賀)를 올리리라.
야사는 찾아 와서 손을 잡고는
거짓으로 거듭 존경을 표하기를,
원컨대 왕자님께선
끝없는 장수를 누리소서.
조금 전 그 존귀하신 손으로
신의 머리를 치셨으니
부드럽고 연약하신 몸에
흠이라도 나진 않으셨습니까?
웃음을 머금고 천천히 말하면서
겉으로는 기쁨을 드러냈지만
속으로는 분하고 성내는 마음을 일으켰으니
마치 뱀이 독을 품은 것과 같았네.
혼자 몰래 생각하기를,
내 반드시 이 원수를 갚으리니
왕자의 오른쪽 팔을 절단 내지 못하면
끝내 세상에 나서지 않으리.
야사는 무릎 꿇어 인사를 마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고
이 일을 마음에 새겼다가
정용에게 고해 바쳤네.
정용도 마주 대하여 말하기를,
경(卿)께서도 나의 말을 들어보시오.
나도 역시 궂은일을 당하였으니
부끄러워 차마 말할 수도 없구려.
그가 자행한 치욕을
어찌 용서할 수 있으리오.
몸을 갈가리 베어버린다 해도
끝내 용서할 수 없을 것이오.
야사여, 이는 마치
물 속에서 불이 일어나
산과 들을 태우고
성곽과 마을을 불태우는 것과 같소.
모든 사람들이 이것을 본다면
놀라고 괴이하게 여기지 않음이 없으리니
여러 신하들도 마주 보고
함께 의논하여 이렇게 말할 거요.
오늘 점괘는 어찌하여
물 속에서 불이 일어난다 하였을까?
물은 능히 불을 끌 수 있는데
물에서 불이 생겨나다니.
이제 이 왕자도
비유하자면 그와 같으니
그 왕자를 만났을 때
마치 물에서 불길이 치솟는 것 같았소.
내 마음에 지어왔던 모든 공덕을
한꺼번에 태워버렸으니
전에는 태자가 두렵지 않았는데
요즘은 태자가 두렵고 꺼려지는구려.
나는 항상 긴 밤 내내
이런 생각들을 했었소.
내 이제 나이가 들고 쇠약하니
아들의 힘을 빌려야만 하리라.
그런데 오히려 나를 끌어 잡고 욕보이기를
마치 창녀 희롱하듯 하였으니
이 일을 그대에게도 숨긴다면
대체 누구에게 호소해야 옳겠소?
야사가 말하기를,
허물과 죄는 마땅히 처벌받아야 하온데
마마를 무너뜨리고 저를 욕보였으니
되갚아 줄 적당한 기회를 궁리해야 합니다.
반드시 계책을 세우고
방법을 찾음이 마땅하오니
두 눈을 뽑아버리지 못한다면
이는 앙갚음이 아닙니다.
그 때 어떤 아라한이 있었으니
그 이름은 선념(善念)이며
천안도 스승으로 받들고
모든 백성들도 존경하였네.
진인(眞人)이 선정에 들어
도력으로 살펴보니
왕자는 나중에 반드시
인연의 업보를 받게 되어 있었네.
자주 깨우쳐 주고
진리를 자세히 설명하여
뭇 생명의 변화를 알게 하고
만물은 공(空)으로 돌아감을 알게 했네.
왕자와 더불어 말하기를
빛깔은 있는 것도 아니고
있다느니 없다느니 할 만한 것도 또한 없으며
없다는 것 역시 없다고 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소리는 밖에서 일어난 자극을
귀를 거쳐 안에서 분간하는 것이며
냄새는 제 맘대로 이리저리 떠다니는데
코가 이를 받아 들여 분간합니다.
온갖 맛은 입을 거치면서
혀의 능력을 증가시키며
몸은 부드럽고 섬세한 것을 탐하고
의식은 대상[法]을 인식함에 만족할 줄 모릅니다.
대상이 있으면 역시 실제로 있다고 여기고
대상이 없으면 역시 실제로 없다고 여기나
이와 같이 있느니 없느니 하는 것은 있지 않고
없다는 것마저 없다는 것도 또한 없습니다.
마치 물거품이 모인 것과 같아
반드시 무너져 없어지게 되니
눈도 또한 변함없는 주인이 없어서
오랫동안 보존할 수가 없습니다.
마치 물 위의 거품 같아
모였다가는 흩어져 사라져 버리니
반드시 깊이 살펴보소서.
어느 것도 제자리에 있지 않고 변화합니다.
눈이란 것도 변하여
생겨났다가 쇠약해지기를 멈추지 않으니
반드시 스스로 노력하여
천안(天眼)을 구하도록 하십시오.
천안이란 것은
부수거나 무너뜨릴 수가 없으며
조금씩 그것에 가까워지면
아무런 근심도 없게 됩니다.
자주 세속의 일을 잊고
설법을 들으러 다니며
선지식(善知識)을 가까이 하여
함께 교분을 나누십시오.
설법을 듣고 생각을 깨치면
마음의 눈이 청정해질 것이며
다시 훌륭한 도반을 의지하면
아라한의 경지에 이를 것입니다.
마음을 모아 부처님을 생각하며
법보를 사유하며
거룩한 스님들을 공경하여 받들며
스승과 웃어른들께도 그리해야 합니다.
마음을 쉽사리 움직이지 않으면
곧 크게 성취하여
움직임이 없는 경지에 머무르게 되리니
이런 이는 바로 참된 부처님의 자손입니다.
법익은 이 말을 듣고
기쁨과 슬픔이 엇갈리는 가운데 생각하기를,
이 말씀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이니
어떤 일도 홀로 일어나지 않는 법이다.
어찌해서 지금 스승께서는
사람의 육신을 들어
특별히 눈의 무상함을 깊이 명심하도록
은근히 다짐을 주시는 걸까?
마땅히 가르침을 잘 지켜
빈틈없이 행할 일이니
어찌 감히 경솔히 하여
훌륭하신 스승님의 가르침을 어길 것인가?
당시 그 무렵
염부제 안에
보살이 전생에 수행을 위해
목숨을 바친 곳이 있었네.
그 이름은 석실(石室)로
항상 왕이 잘 다스리더니
우연히 나라가 무너지고
왕 역시 죽기에 이르렀네.
나라 안의 여러 신하들과
늙고 젊은 백성들은
함께 몰려왔네,
아육왕이 계신 곳으로.
절을 하며 우러러 뵙고
두 손을 모아 말하기를,
거룩하신 대왕님이시여,
부디 번성하시고 만수무강하옵소서.
저희 석실국은 무너지고
왕은 자리를 버리고 돌아가셨으니
원컨대 대리인을 보내 주시어
버림받은 백성들을 다스려 주십시오.
아육왕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야사에게 말하기를,
서둘러 대리인을 보내야 하겠거늘
누가 그곳을 다스리기에 마땅할까?
그곳의 백성들은 억세고 강건하니
모름지기 이것을 감당할 만한 자라야지
평범한 자에게
그 땅을 맡겨서는 안 될 것이오.
야사가 혼자 생각하기를,
이제 드디어 때가 왔다.
반드시 왕자인 법익을 보내어
그곳을 다스리게 하자.
야사는 즉시 무릎을 꿇어 예를 올린 다음
왕에게 말하기를,
원컨대 허락하고 들어 주소서,
미천한 신이 아뢰는 말씀을.
건타월국(乾陀越國)은
즐겁기가 하늘의 궁전과 같으니
원컨대 왕자님을 보내시어
버려진 백성들을 다스리게 하옵소서.
이는 곧 그 나라 사람들에겐
대왕의 지극하신 감응을 만남이요,
또한 대왕님의 위엄을
멀리 온 세계에 떨침이 될 것입니다.
부왕(父王)은 이 말을 듣고
문득 크게 성내면서,
예끼, 어리석은 말을 하는구나.
어찌 그 말을 듣고 내가 좋아할 수 있겠느냐?
그대는 이 나라의 주인도 아니고
또한 백성을 다스리는 자도 아닌데
대체 어떤 힘을 가졌기에
나의 자식을 보내려 하는가?
어찌하여 너의 혀는
갈래갈래 찢어지지도 않고
감히 귀한 내 아들을
보내자고 말하느냐?
지금 너의 무거운 죄는
두 번 죽어 마땅하나
스스로 자신의 허물을 바로 잡으면
나의 손을 더럽히지는 않으리라.
지금부터 죽을 때까지
거듭해서 자신을 타이르고 뉘우쳐
신중히 행동하여 경의 가족들을 돌보고
천명을 누릴 수 있도록 하라.
만약 내 자식의 이름을
다시 일컫는 자가 있다면
내 몸소 칼을 잡고
그들의 목을 베리라.
만약 다시 내 앞에서
내 자식의 이름을 거론하는 자가 있다면
반드시 산 채로 혀를 뽑아
내가 이것을 먹을 것이다.
설령 나의 자식이
지난날 너와 원수를 맺었더라도
그것은 단지 과거에 지은
인연에 따른 결과이리라.
현재에 이르러선
몸과 입과 마음으로
이제 모든 것을 용서해야 하니
지난날의 잘못을 마음에 새겨두지 말라.
그 때 야사는 증오의 마음을 품고는
목숨도 돌보지 않고
다시 왕 앞에 무릎을 꿇어 예를 올린 다음
거듭 자신의 심정을 아뢰었다.
훌륭하십니다. 대왕님이시여,
원컨대 대왕님의 위신력으로
신중히 생각하셔서
나라를 혼란에 빠트리지 마옵소서.
서쪽에 위치한 그곳의 백성들은
본성이 완고하고
항상 싸우고 다투며
군사를 일으켜 정복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잘 교화하여
인심을 부드럽게 받아들인다면
여러 신하들이 화목할 것이니
어찌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건타월국에는
진기한 물건과 보물이 가득하며
박학다식하고 훌륭한 인재가 많아
해결하지 못하는 일이 없습니다.
또한 석실성(石室城)은
지금까지도 그 명예가 결코 식지 않는
그 옛날 화영왕(花瓔王)이
다스리던 곳입니다.
뒤쪽 정원에 있는 연못에는
금연화(金蓮花)가 피는데
은으로 된 잎에 보배로 된 줄기이니
그 가치가 염부제와 맞먹습니다.
그 성은 위엄을 갖추어
신령스런 덕이 한량없으니
이는 보통 사람이
다스릴 만한 나라가 아닙니다.
그 나라가 비록 서쪽 변방에 있지만
이로운 일이 풍요롭고 많으니
원컨대 대왕님께서는 잘 살피시어
저의 보잘것없는 말을 소홀히 여기지 마옵소서.
이러한 까닭으로 거듭 여쭙는 것이니
나라의 일이 막중한데
어찌 감히 제멋대로 생각하여
왕자님을 보내자고 하겠습니까?
왕자님은 본성이 영리하고 슬기로우며
모든 법을 두루 아시며
병사를 이끌고 전쟁하는 계략을
모두 갖추어 능숙하게 익혔습니다.
설사 그런 나라라고 할지라도
왕자님과 마주치는 자들은
칼과 창을 쓰지 않아도
저절로 항복할 것입니다.
말씨는 부드럽고 온화하여
거칠거나 사납지 않으며
본성이 관대하고 어질어
탐욕스럽거나 인색하지 않으십니다.
술을 지나치게 먹지 않고
여색을 자제하며
인정이 많아 차별 없이 사랑하며
나라를 다스림에는 아첨을 싫어합니다.
만약 이러한 덕이 없다면
신이 어찌 감히
듣기 거북한 말씀을 여쭙겠습니까?
원컨대 제 때에 맞추어 허락하옵소서.
왕은 모름지기 한 가지에 전념해야 하니
어찌 두 가지 걱정을 모두 만족하실 수 있겠습니까?
비록 귀하신 왕자님이지만
석실국을 위하는 일임을 헤아리소서.
지금 제 때에 대책을 세우시지 않는다면
나중에 반드시 근심이 있을 것이니
일을 미리 염려하지 않는다면
그르침이 이와 같을 것입니다.
왕이 이 말을 듣고는
마치 음식을 먹다가 막힌 것 같았으니
목을 넘기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토할 수도 없었네.
야사가 속이는 줄을
깨닫지 못하고
나방이 불 속으로 뛰어들 듯
미처 나중의 일은 살펴보지 못했네.
그 때에 아육왕은
눈물을 떨구며 명하기를,
법익을 보내
그곳을 맡아 다스리게 하라 하였네.
가까운 신하들 수만 명이
저절로 메아리처럼 응했으니
훌륭한 보물들을
왕궁의 정원에 쌓아 놓았네.
아육왕은 몸소
손에 왕관을 들고
법익의 머리에 씌워 주면서
고하여 말하였네.
훌륭하구나. 새로운 왕이여,
길하여 이롭지 않은 일이 없을 것이니
항상 나의 혈육만이
이 자리에 오르도록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종을 치고 북을 울리며
춤추고 악기를 타며
화려한 무늬의 깃발을 내걸었으니
그 종류가 수천 가지였네.
온 나라 안에
두루 펄럭이지 않는 곳이 없었으며
8유순(由旬) 안에는
백성들로 가득 찼네.
갑옷을 입힌 코끼리와 말이
각각 8만 4천이며,
금은을 섞어 장식한 것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네.
깃털로 장식한 마차가
8만 4천이요,
보병의 무리
또한 8만 4천이었네.
마치 하늘의 제석천왕처럼
후원을 떠나 출발하였으니
아름다운 여인들과 거느린 무리들을 보라
세상에 무엇이 이보다 더 즐거우리오.
이와 같이 하여 왕자는
그 지역에 이르러
석실성에 들어가니
앞뒤로 따르는 무리가 헤아릴 수 없었네.
왕이 이르는 곳마다
만민(萬民)들이 경축을 외치며
마음껏 즐거워하였으니
마치 도리천 같았네.
성안의 거리와 마을마다
화려한 무늬의 깃발을 내걸었으며
땅바닥에는 향을 우려낸 물을 뿌려
두루 향내음이 나지 않는 곳이 없었네.
그 때 왕 법익이
백성들에게 고하기를,
그대들은 성심껏
나를 존중하여 주는구나.
앞으로 7일 동안은
각자 맡은 일을 쉬도록 하라.
내 마땅히 그대들에게
재물과 보물을 내리리라.
내가 궁중에서 즐기듯이
다섯 가지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고
마음껏 놀기를
밤낮으로 싫증나지 않을 때까지 하라.
내가 이제 그대들에게 주는 것은
무엇이든 그대들의 바람대로일 것이니
가령 빚을 졌다면
빚을 갚을 재물을 내어 줄 것이다.
가령 재산을 모두 잃고 지위가 떨어져
남의 노비가 되었다면
재물과 비단을 나누어 주어
노역에서 벗어나게 해 주리라.
성안에 사는 모든 백성들은
남자건 여자건 어른이건 아이건
널리 착한 행동을 익히도록 만들어
원한을 품는 일이 없도록 하리라.
또한 외곽에 있는 제후국에도
나의 교시를 선양할 것이니
6년 동안은
공물을 받지 않도록 하리라.
가령 홀몸으로 궁핍하거나
더없이 가난하여 곤궁한 자는
역시 내가 재물을 베풀어
궁핍하지 않도록 하리라.
누구든지 능히 스스로 닦아
죽이거나 도둑질 할 마음이 없으면
나는 반드시 그를 존경하기를
마치 왕인 나와 같이 할 것이다.
그 때 왕 법익은
다시 영을 내려 말하기를,
보름마다 사흘씩 재일(齋日)이 있으니
이 같은 날은 만나기가 어려우니라.
남녀가 서로 권하여
게으름 피우지 말고
여덟 가지 청정한 계와
여래의 재법(齋法)을 받들어 지켜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몸은 억겁(億劫)을 지나야만 받을 수 있으니
8재계(齋戒)를 지킴에 등한히 말고
전도(顚倒)된 법을 멀리하라.
바다에 떠다니는 널빤지 구멍에
눈 먼 거북이 요행히 고개를 내민 것과 같으니
이런 비유로 표현할 수 있으리라.
사람 몸 받기 어려움을.
그대들은 이미 사람의 과보를 받았으니
교만한 마음을 내지 말라.
사람이 누리는 5욕락(慾樂)은
환상이고 거짓이며 진실하지 않느니라.
하늘에 나는 복을 지으면 반드시
도리천궁(忉利天宮)의
칠보전당(七寶殿堂)에 태어나
감로(甘露)를 먹게 되리라.
모든 것을 바라는 대로 얻고
하늘의 복을 누릴 것이니
마땅히 보름 동안마다
세 번씩 있는 재일을 받들어 지키라.
그 때 석실국의 왕은
가르쳐 뉘우치도록 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니
온 나라에 풍년이 들고
백성들은 편안하였네.
그곳의 어떤 남녀들은
왕을 만나고 나서
목숨이 다한 뒤에
모두 천상에 태어났네.
한편 대왕 아육은
사신에게 묻기를,
법익의 다스림이
법도에 맞던가, 안 맞던가?
나라 안의 모든 백성들은
한결같이 복종하는가, 안 하는가?
경은 지금 바로 소상히 말하여
궁금함이 없도록 하라.
사신은 기뻐하면서
아육왕 앞에 고하기를,
대왕님이시여 만수무강하시어
만백성의 의지가 되어 주소서.
거룩하신 법익왕은
기력이 강건하며
항상 정법으로
서쪽 지방에 사랑을 베풀어 교화하고 계십니다.
석실성 안은
마치 하늘나라 제석천의 궁전과 같으며
왕은 그 중앙에서 다스리니
마치 하늘나라의 제석천왕과 같습니다.
건타월국은
토양이 기름지고 백성이 번성하며
행동은 진실하여
헛된 거짓이 없습니다.
살인이나 도둑질을 하지 않고
정법을 순순히 따르면서
모든 백성들이
한량없이 경축하고 찬탄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원컨대 대왕님께서는
만수무강하시어
저희들이 성군(聖君)의 덕을 입어
제각기 편안을 누릴 수 있도록 하옵소서.
아육왕이 이 말을 듣고는
그 경사스러움을 기뻐하고 즐거워하였으며
부드럽고 기쁜 얼굴빛으로
야사에게 말하였네.
내가 이제 큰 이익을 얻고
치덕(治德)을 실현하게 되었으니
이는 법익 왕자가
바른 이치로 나라를 다스린 까닭이다.
예의와 금령(禁令)으로 백성을 이끌며
은혜와 화합으로 인도하니
모든 백성들이
받들어 모시지 않음이 없구나.
이제 마땅히 나라를 나누어
염부제 땅 가운데
절반은 내가 취하고
절반은 아들에게 주리라.
나의 아들 법익으로 하여금
오랫동안 장수하면서
지금과 다름없이
백성들을 다스리도록 할 것이다.
인더스강[新頭河]의 바깥쪽
사가국(娑伽國)에서부터
건타월성(乾陀越城)과
오특(烏特)의 여러 마을
검부(劍浮)와 안식(安息)과
강거(康居)와 오손(烏孫)과
구자(龜茲)와 우전(于闐)과
중국[秦土]에 이르기까지
이 염부제의 절반을
법익에게 주어서
백성들을 잘 다스리고
그 이름을 후세까지 드날리도록 할 것이다.
사자(師子)와 담라(曇羅)와
마갈(摩竭)과 금근(金根)과
유야(維耶)와 사위(舍衛)와
나형(裸形)과 수이(垂耳)
설산(雪山)의 북쪽에서
바닷가에 이르는 곳까지는
내가 몸소 가르치고 다스려서
끝이 없도록 할 것이다.
야사는 이 말을 듣는 순간
마치 독화살에 맞은 듯했으니
겉으로는 거짓 웃음을 지었으나
속으로는 분한 마음을 품었네.
바로 무릎을 꿇고 여쭙기를,
대왕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지금 즉시 영을 전하되
감히 늦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는 몰래 혼자
지난날의 괴로웠던 일을 생각하니
세 가지 독한 마음이 융성하여
목숨도 돌아보지 않게 되었네.
지난날 나의 머리를 쳤으니
그 아픔을 잊기가 어렵구나.
지금 원수를 갚지 않으면
언제 다시 갚을 것인가.
이렇게 생각하고는 곧바로 물러나와
자신의 거처로 돌아와서
은밀히 측근을 보내
정용에게 모든 것을 말하였네.
정용이 이 말을 듣고
야사에게 이르기를,
서둘러 칙서(勅勅書)를 꾸며
왕위를 빼앗고 형벌을 가하도록 하시오.
아무도 밖에서 엿보아
이 사실을 듣거나 보아서는 안 되니
만약 이 사실이 드러나면
우리 두 사람 모두 죽게 될 것이오.
야사가 말하기를,
칙서를 꾸미기는 쉬우나
오직 왕의 도장을 써서
칙서를 봉해야만 합니다.
정용이 답하여 말하기를,
도장을 쓸 일이 나도 걱정이지만
이제 반드시 함께 노력한다면
해내지 못할까 어찌 근심하리오.
부디 부탁을 받고 갈 만한 사람을
잘 생각하시어
경솔하게 행동하거나
사실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하시오.
그 때 야사는
왕명을 사칭하여
칙서를 마음대로 꾸미고
헛된 말을 가득히 늘어놓았네.
석실국을 가볍게 속여서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들 것처럼 하였으며
아육왕의 이름으로
석실국에 대해 분노를 표현했네.
만약 그곳에서 편안히 살기를 바란다면
염부제 땅의 백성들은
속히 나의 명을 따르고
어기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