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력입인법문경(信力入印法門經) 제3권
“그리고 또 문수사리여, 보살마하살은 다섯 가지의 법이 있어서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다. 그 다섯 가지란 어떤 것인가?
첫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보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보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보시라고 한 것은 이른바 들었던 법과 같이 그대로 설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이 생기는 것을 말한다. ‘내가 이미 애어(愛語)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애어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애어라고 한 것은 이른바 마음이 음식을 위해서 법을 설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셋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이익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이익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익이라 한 것은 이른바 모든 중생을 가르쳐서 그 중생들로 하여금 이를 수지(受持)하여 읽고 외우게 하되, 피곤하거나 싫증나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넷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같이 일함[同事]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같이 일함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같이 일함이라고 한 것은 보시가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대승(大乘) 에 머물게 하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보리의 마음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보리의 마음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보리의 마음이라고 한 것은 모든 법으로 하여금 항상 머물게 하고 단멸하지 않게 하기 때문이며, 욕심(欲心)ㆍ발정진심(發精進心)ㆍ섭취심(攝取心)ㆍ정수행심(正修行心)을 생기게 하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이것을 다섯 가지 법이라고 한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다섯 가지 법을 얻기 때문에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또 문수사리여, 보살마하살은 다섯 가지의 법이 있어서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다. 그 다섯 가지란 어떤 것인가?
첫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이치에 막힘이 없음[義無礙]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이치에 막힘이 없음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치에 막힘이 없다고 한 것은 이른바 여실한 법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둘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법에 막힘이 없음[法無礙]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법에 막힘이 없음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법에 막힘이 없다고 한 것은 모든 불법(佛法)의 지혜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셋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말에 막힘이 없음[辭無礙]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말에 막힘이 없음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말에 막힘이 없다고 한 것은 모든 문자와 명칭과 소리의 지혜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넷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즐겨 설함에 막힘이 없음[樂說無礙]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즐겨 설함에 막힘이 없음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즐겨 설함에 막힘이 없다고 한 것은 모든 법과 글과 구절의 차별 방편의 지혜 에 들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장애가 없는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장애가 없는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장애가 없는 지혜라고 한 것은 이른바 모든 불법을 설하되 쉼이 없는 지혜이기 때문이며, 한 구절의 법을 가없는 겁(劫) 동안 주지(住持) 연설(演說)하여도 마음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이것을 다섯 가지 법이라고 한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다섯 가지 법을 얻기 때문에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또 문수사리여, 보살마하살은 다섯 가지의 법이 있어서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다. 그 다섯 가지란 어떤 것인가?
첫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모든 중생을 교화함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모든 중생을 교화함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모든 중생을 교화한다고 한 것은 능히 모든 중생의 번뇌에 물듬[煩惱染]을 참아내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며, 번뇌에 물듬이란 이른바 몸과 마음을 모두 핍박하는 고뇌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아무런 잃어버림이 없음[無諸失]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아무런 잃어버림이 없음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아무런 잃어버림이 없다고 한 것은 이른바 모든 선근을 잃어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마음이 서로 접촉하지 않음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마음이 서로 접촉하지 않음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마음이 서로 접촉하지 않는다고 한 것은 이른바 모든 선근을 잃어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넷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정진(精進)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정진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정진이라고 한 것은 이른바 모든 선법(善法)을 만족하게 하기 때문이며, 모든 불선(不善)한 법을 멀리 여의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자심(慈心)으로 모든 중생을 관찰함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자심으로 모든 중생을 관찰함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자심으로 모든 중생을 관찰한다고 한 것은 모든 중생에 대하여 평등한 마음을 가지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이것을 다섯 가지 법이라고 한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다섯 가지 법을 얻기 때문에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또 문수사리여, 보살마하살은 다섯 가지의 법이 있어서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다. 그 다섯 가지란 어떤 것인가?
첫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해치려 함이 없는 마음[不害心]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해치려 함이 없는 마음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해치려 함이 없는 마음이라고 한 것은 모든 중생을 보호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멀리 여의는 마음[遠離心]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멀리 여의는 마음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멀리 여의는 마음이라 한 것은 삼세(三世)의 모든 법이 평등함에 들기 때문이다.’ 셋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법념자심(法念慈心)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법념자심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법념자심이라고 한 것은 이른바 모든 법을 보지 않기 때문이며, 보지 않은 법[不見法]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넷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처음 공덕(功德)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처음 공덕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처음 공 덕이라고 한 것은 이른바 보리심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며, 모든 보살행을 따르기 때문이며, 모든 보살행을 따른다는 것은 이른바 대자심(大慈心)으로 모든 중생을 평등하게 섭수하기 때문이며, 모든 질투심을 항복받기 때문이며, 모든 파계(破戒)를 멀리 여의기 때문이며, 모든 성냄과 원망의 마음을 멀리 여의기 때문이며, 모든 나태한 마음을 멀리 여의기 때문이며, 모든 산란한 마음을 행하지 않기 때문이며, 모든 어리석은 마음을 멀리 여의기 때문이며, 네 가지 섭수하는 법[四攝法]으로 모든 중생을 거두어들여 교화하기 때문이며, 모든 중생에 대하여 마음이 마치 대지(大地)처럼 평등하기 때문이며, 소승의 좁고 열등한 마음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며, 모든 중생이 짓는 모든 선행(善行)을 따르기 때문이며, 대비(大悲)로 보시(布施)ㆍ지계(持戒)ㆍ인욕(忍辱)ㆍ정진(精進)ㆍ선정(禪定)ㆍ반야(般若)를 만족하기 때문이며, 모든 부처님의 수승하고 묘한 법을 섭수하기 때문이며, 모든 선업(善業)의 반야 근본을 배우기 때문이며, 항상 공덕과 지혜의 두 가지 장엄으로 수행하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희유(希有)한 상(相)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희유한 상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희유한 상이라고 한 것은 모든 법이 둘이 아닌 상[不二相]을 가졌기 때문이며, 모든 행에 대하여 자행상(自行相)이 생기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이것을 다섯 가지 법이라고 한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다섯 가지 법을 얻기 때문에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또 문수사리여, 보살마하살은 다섯 가지의 법이 있어서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다. 그 다섯 가지란 어떤 것인가?
첫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인욕(忍辱)과 유화(柔和)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인욕과 유화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인욕과 유화라 한 것은 이른바 남들이 나쁜 말로 욕하고 모욕을 하거나 좋지 않은 말로 헐뜯고 비방하여 말할 때에도 성냄과 원망의 마음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얼굴빛이 이열(怡悅:기쁨)함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얼굴빛이 이열함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얼굴빛이 이열하다고 한 것은 남들의 모든 과실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모든 법의 무사(無事)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모든 법의 무사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모든 법의 무사라고 한 것은 이른바 이는 단지 명자(名字)를 말하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무사(無事)의 체는 사(事)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사의 체는 무사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사의 체가 곧 무사이기 때문인데, 저 사의 체가 무사인 지혜에 의하여 모든 법에 사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넷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법의 주지(住持)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법의 주지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법의 주지라 한 것은 모든 법이 부동(不動)이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법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법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법이라고 한 것은 차별이 없어 머묾[住]에 의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이것을 다섯 가지의 법이라고 한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다섯 가지의 법을 얻기 때문에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또 문수사리여, 보살마하살은 다섯 가지의 법이 있어서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다. 그 다섯 가지란 어떤 것인가?
첫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지혜가 번뇌를 끊는 것도 아니고[非智慧斷煩惱] 지혜가 번뇌를 끊지 않는 것도 아님에 듦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지혜가 번뇌를 끊는 것도 아니고 지혜가 번뇌를 끊지 않는 것도 아님에 듦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지혜가 번뇌를 끊는 것도 아니고 지혜가 번뇌를 끊지 않는 것도 아님에 든다고 한 것은 이른바 지혜의 체가 곧 번뇌의 체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지혜의 체는 번뇌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번뇌의 체는 지혜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지혜의 체가 곧 번뇌의 체이며, 번뇌의 체가 곧 지혜의 체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혜가 곧장 번뇌를 끊을 수 없게 된다. 비유하자면 마치 손가락의 끝이 스스로를 접촉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지혜가 곧장 번뇌를 끊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둘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여래가 상(常)도 아니고 상이 아님도 아님에 듦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여래가 상도 아니고 상이 아님도 아님에 듦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여래가 상도 아니고 상이 아님도 아님에 든다고 한 것은 체상(體相)을 취하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부사의(不思議)한 여래의 지혜에 듦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부사의한 여래의 지혜에 듦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부사의한 여래의 지혜에 든다고 한 것은 교화가 가능한 모든 중생의 마음을 따라서 그대로 설법하여 저들을 지나치지 않기 때문이다.’ 넷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무색상(無色相)에 듦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무색상에 듦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왜냐하면 무색상의 체는 색상(色相)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색상의 체는 무색상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색상의 체가 곧 무색상이기 때문인데, 저 색상의 체가 무색상인 지혜에 의하여 모든 법에 색상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방편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방편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방편이라고 한 것은 이른바 모든 법을 섭수하고 취하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이것을 다섯 가지 법이라고 한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 은 다섯 가지의 법을 얻기 때문에 능히 초환희지를 얻어서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또 문수사리여, 보살마하살은 다섯 가지의 법이 있어서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다. 그 다섯 가지란 어떤 것인가?
첫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다함 없는 공덕[無盡功德]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다함 없는 공덕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다함 없는 공덕이라고 한 것은 이른바 모든 선근(善根)을 보리(菩提)에 회향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지혜의 공덕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지혜의 공덕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지혜의 공덕이라 한 것은 모든 법이 공(空)임을 믿기 때문이다.’ 셋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선업(善業)의 근본인 반야법(般若法)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선업의 근본인 반야법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선업의 근본인 반야법이라 한 것은 이른바 자신이 백법(白法:깨끗한 법)에 머물기 때문이며, 선업의 근본인 반야법이라 한 것은 남들로 하여금 반야법에 머물게 하기 때문이다.’ 넷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삼매(三昧)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삼매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삼매라고 한 것은 적멸정(寂滅定)의 삼매이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만족한 마음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만족한 마음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만족한 마음이라고 한 것은 모든 일의 지음[作]에 들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이것을 다섯 가지 법이라고 한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다섯 가지의 법을 얻기 때문에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없는 안온함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또 문수사리여, 보살마하살은 다섯 가지의 법이 있어서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다. 그 다섯 가지란 어떤 것인가?
첫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중도(中道)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중도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중도의 지혜라고 한 것은 이른바 궁극의 청정한 지혜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중도의 체는 가장자리[邊]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가장자리의 체는 중도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인데, 이는 가장자리의 체가 곧 중도의 체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모든 법의 무상(無常)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모든 법의 무상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모든 법의 무상이라고 한 것은 이른바 모든 법은 가운데[中]가 있고 가장자리가 있음을 말하는 것인데, 이 때문에 모든 법에 가운데가 있고 가장자리가 있게 된다. 왜냐하면 유위(有爲)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인데, 가운데가 있고 가장자리가 있는 체는 유위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유위의 체는 가운데가 있고 가장자리가 있는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모든 법이 상(常)임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모든 법이 상임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모든 법이 상이라고 한 것은 이른바 모든 법은 가운데가 없고 가장자리가 없기 때문인데, 이 때문에 모든 법은 가운데가 없고 가장자리가 없게 된다. 왜냐하면 무위(無爲)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인데, 가운데가 없고 가장자리가 없는 체는 무위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무위의 체는 가운데가 없고 가장자리가 없는 체와 다르지 않으며, 가운데가 없고 가장자리가 없는 것은 이른바 항상 청정하여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넷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훌륭하게 부처님을 공양함[勝供養佛]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훌륭하게 부처님을 공양함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훌륭하게 부처님을 공양함이라고 한 것은 이른바 현재의 부처님을 공양하기 때문이며, 대승(大乘)의 모든 보살을 믿어서 잘 공양 공경하고 청하여 묻고 법을 들으며, 능력과 분수에 따라 음식과 침구 등을 받들어 베풀어 주시어 대승에 머물도록 하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모든 법의 무위(無爲)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모든 법의 무위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모든 법이 무위라 한 것은 유위의 구(句)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무위의 체는 유위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유위의 체는 무위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유위의 체가 곧 무위이기 때문인데, 저 유위의 체가 무위인 지혜에 의하여 모든 법이 무위가 되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이것을 다섯 가지 법이라고 한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다섯 가지의 법을 얻기 때문에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또 문수사리여, 보살마하살은 다섯 가지의 법이 있어서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다. 그 다섯 가지란 어떤 것인가?
첫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모든 법을 보기 어려움[難見一切法]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모든 법을 보기 어려움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모든 법을 보기 어렵다고 한 것은 모든 법의 인연의 체를 말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모든 법을 알기 어려움[難知一切法]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모든 법을 알기 어려움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모든 법을 알기 어렵다고 한 것은 심념(心念)에는 실체가 없다는 것을 관(觀)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모든 법을 깨치기 어려움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모든 법을 깨치기 어려움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모든 법을 깨치기 어렵다고 한 것은 모든 법의 깨침과 깨치는 바가 평등하기 때문이다.’ 넷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모든 법을 더럽히지 않음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모든 법을 더럽히지 않음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모든 법을 더럽히지 않는다고 한 것은 언제나 청정하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모든 법이 다함이 없음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모든 법이 다함이 없음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모든 법이 다함이 없다고 한 것은 비유할 체가 없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이것을 다섯 가지 법이라고 한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다섯 가지의 법을 얻기 때문에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또 문수사리여, 보살마하살은 다섯 가지의 법이 있어서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다. 그 다섯 가지란 어떤 것인가?
첫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모든 법이 허물어지지 않음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모든 법이 허물어지지 않음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모든 법이 허물어지지 않는다고 한 것은 삼세(三世)의 모든 법이 평등함에 들어가기 때문이며, 모든 법이 법을 여의지 않기 때문이며, 차별하지 않는 법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4성제(聖諦)가 차별이 없음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4성제가 차별이 없음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4성제가 차별이 없다고 한 것은 네 가지의 성제가 차별이 없기 때문이며, 네 가지 거룩한 진리[四聖諦]에 차별이 없다고 한 것은 항상 청정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무명의 연행(緣行)이 차별이 없음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무명의 연행이 차별이 없음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무명의 연행이 차별이 없다고 한 것은 이른바 무명이 곧 연행(緣行)임을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무명의 인(因)에는 연(緣)의 행(行)이 있다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무명의 인에 연의 행이 있다는 것과 다르다면 응당 인(因)이 없이 모든 행(行)이 있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명의 인에 모든 행의 과(果)가 있는 것과 다르지 않으니, 이와 같은 인과(因果)의 이치는 본래가 청정하기 때문이다.’ 넷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모든 법이 상(常)임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모든 법이 상임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모든 법이 상이라고 한 것은 이른바 무상의 체가 곧 상의 체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상의 체는 무상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무상의 체는 상의 체와 다르지 않으니, 이는 무상의 체가 곧 상의 체이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여래의 불생불멸(不生不滅)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여래의 불생불멸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여래의 불생불멸이라 한 것은 이른바 대치(對治)할 법이 없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마치 허공이 생기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 것과 같은 것으로, 허공에는 끝도 없고 중심도 없기 때문이다. 인(因)을 관찰하여 그 위나 중간이나 아래를 보고 이것은 바늘구멍만한 허공이고, 이것은 병목[甁孔]만한 허공이며, 이것은 한량없는 구멍의 허공이라고 하지만 허공은 위나 중간이나 아래가 없으니, 이는 생기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기 때문이다. 허공은 분별하지 않아서 분별이 없으며, 허공은 있는 그대로의 것으로 분별이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일들을 볼 수 있는 것은 불공법(不共法)과 상응하여 보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이처럼 여래ㆍ응공(應供)ㆍ정변지(正遍智)는 생기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며 중심도 없고 끝도 없다. 그런데 모든 중생은 위와 중간과 아래가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중심도 없고 끝도 없는 마음에 의해서 이와 같은 일들을 보고 이것은 성문승(聲聞乘)이고 이것은 벽지불승(辟支佛乘)이며 이것은 불승(佛乘)이라고 하는 것이다. 모든 중생들은 능히 이를 받 거나 사용할 수 있다. 여래는 무분별로 분별을 여의니, 자연히 분별이 없게 된다. 이와 같은 일들을 짓는 것은 불공법과 상응하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비유하자면 마치 햇빛과 같은데, 햇빛이 비치는 곳에서는 갖가지 그림자를 볼 수 있지만 그 햇빛은 분별되는 것이 아니며 분별을 여읜 것인데, 이는 불공법과 상응하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이와 같이 여래ㆍ응공ㆍ정변지는 중생들의 마음에 의탁해서 지혜의 차별과 갖가지 견해를 관한다. 그러나 여래는 무분별로 분별을 여의므로 자연히 분별이 없게 된다. 이와 같은 여러 일들이 현현(現現)하는 것은 불공법과 상응하기 때문에 모든 승(乘)이 없으며 대승도 없다.
문수사리여, 이것을 다섯 가지 법이라고 한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다섯 가지의 법을 얻기 때문에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또 문수사리여, 보살마하살은 다섯 가지의 법이 있어서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다. 그 다섯 가지란 어떤 것인가?
첫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모든 중생을 위해 모든 번뇌를 여읨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모든 중생을 위해 모든 번뇌를 여읨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모든 중생을 위해 모든 번뇌를 여읜다고 한 것은 몸과 마음을 두루하는 법문(法門)의 밝음 때문이다.’ 둘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반야문(般若門)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반야문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반야문이라는 것은 네 가지 법에 의해 생긴 이름이다. 어떤 것들을 네 가지라고 하는가? 믿음과 방일(放逸)하지 않음과 바른 마음[直心]과 증상(增上)하는 마음인데, 이것을 네 가지 법이라고 한다. 모든 보살들이 법명문(法明門)의 반야를 얻어서 성취하며, 법명문의 반야에 의지하여 모든 보살마하살이 모든 악도(惡道)를 여의기 때문이다.’ 셋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지명문(智明門)의 반야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지명문의 반야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지명문의 반야라는 것은 네 가지의 법에 의해 생긴 이름이다. 어떤 것들을 네 가지라고 하는가? 공덕과 신공(信空)과 해탈과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보리의 마음에 머물게 하는 것이며, 이것을 네 가지 법이라고 한다. 모든 보살들이 지명문의 반야를 얻어서 성취하며, 저 지명문의 반야에 의지하여 모든 보살마하살이 모든 마업(魔業)을 끊어버리기 때문이다.’ 넷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보시의 마음[施心]이 다함이 없는 수행의 반야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보시의 마음이 다함이 없는 수행의 반야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보시의 마음이 다함이 없는 수행의 반야라 한 것은 능히 인색하고 질투하는 중생들을 교화하여 성취하게 하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금계의 마음[戒心]이 다함이 없는 수행의 반야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금계의 마음이 다함이 없는 수행의 반야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금계의 마음이 다함이 없는 수행의 반야라 한 것은 능히 계율을 깨뜨린 중생을 교화하여 청정하게 하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이것을 다섯 가지 법이라고 한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다섯 가지의 법을 행하기 때문에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또 문수사리여, 보살마하살은 다섯 가지의 법이 있어서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다. 그 다섯 가지란 어떤 것인가?
첫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적정(寂靜)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적정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적정이라고 한 것은 몸과 마음을 여의기 때문이며, 모든 선근을 일으키는 데 있어서 겁약(怯弱)하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유위법(有爲法)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유위법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유위법이라고 한 것은, 모든 법이 공(空)도 아니고 공 아님도 아니며, 전도(顚倒)도 아니고 전도 아님도 아니며, 증상(增上)도 아니고 증상 아님도 아니며, 일[事]도 아니고 일 아님도 아니며, 유위도 아니고 무위도 아니며, 모양[相]도 아니고 모양 아님도 아니며, 의지함도 아니고 의지하지 않음도 아니며, 둘도 아니고 둘 아님도 아니며, 멸함도 아니고 멸함 아님도 아니며, 취함도 아니고 취함 아님도 아님을 말하며, 이러한 곳에 드는 것을 유위법의 체라고 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무위법(無爲法)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무위법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무위법이라고 한 것은 곧 이들 모든 법들이 차별이 없고 마음이 일지 않으며, 전도가 아니고 분별하지 않고 분별을 여의는데, 이것을 무위법의 체라고 하기 때문이다.’ 넷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정견(正見)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정견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정견이라고 한 것은 둘이면서 둘이 아닌 모양[二不二相]에 들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둘 아님[不二]의 체가 둘[二]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둘의 체가 둘 아님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둘의 체가 곧 둘 아님이기 때문인데, 만약 능히 이와 같이 둘이면서 둘 아님에 들 수 있다면 이것을 정견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성냄이 없는 마음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성냄이 없는 마음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성냄이 없는 마음이라 한 것은 안온한 일[事]이기 때문이며 모든 중생이 얻어서 들어가는 업(業)이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이것을 다섯 가지 법이라고 한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다섯 가지의 법을 얻기 때문에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또 문수사리여, 보살마하살은 다섯 가지의 법이 있어서 능히 초환 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다. 그 다섯 가지란 어떤 것인가?
첫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바라밀의 도에 듦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바라밀의 도에 듦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바라밀의 도에 든다고 한 것은 이른바 방편으로 반야를 섭취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모든 불가(佛家)에 태어남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모든 불가에 태어남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모든 불가에 태어난다고 한 것은 공덕 장엄과 지혜 장엄을 이르기 때문이다. 셋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보리의 마음을 발함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보리의 마음을 발함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보리의 마음을 발한다고 한 것은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마음에 머무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를 통해 모든 법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넷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반야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반야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반야라고 한 것은 이른바 유위와 무위의 법은 서로 차별이 없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방편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방편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방편이라고 한 것은 이른바 모든 법을 섭수하여 취하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이것을 다섯 가지 법이라고 한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다섯 가지의 법을 얻기 때문에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또 문수사리여, 보살마하살은 다섯 가지의 법이 있어서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다. 그 다섯 가지란 어떤 것인가?
첫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장애가 있는 행[有障礙行]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장애가 있는 행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장애가 있는 행이라 한 것은 다섯 가지 바라밀을 이르기 때문이다.’ 둘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장애가 없는 행[無障礙行]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장애가 없는 행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장애가 없는 행이라고 한 것은 반야바라밀을 이르기 때문이다.’ 셋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번뇌가 있는 행[有漏行]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번뇌가 있는 행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번뇌가 있는 행이라고 한 것은 모든 법행(法行)을 보기 때문이다.’ 넷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번뇌가 없는 행[無漏行]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번뇌가 없는 행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번뇌가 없는 행이라고 한 것은 이른바 모든 법행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한량이 있는 행[有量行]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한량이 있는 행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한량이 있는 행이라고 한 것은 이른바 모든 심상(心相)이 있음에 머무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이것을 다섯 가지 법이라고 한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다섯 가지의 법을 얻기 때문에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문수사리여, 보살마하살은 다섯 가지의 법이 있어서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다. 그 다섯 가지란 어떤 것인가?
첫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한량이 없는 행[無量行]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한량이 없는 행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한량이 없는 행이라 한 것은 이른바 모든 심상(心相)이 없는 행(行)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한량이 있는 지혜[有量智]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한량이 있는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한량이 있는 지혜라고 한 것은 이른바 음(陰)ㆍ계(界)ㆍ입(入)을 관찰하여 인연이 모인 시처(是處)와 비처(非處)에 있어서의 방편상(方便相)을 관찰하는 지혜이기 때문이다.’ 셋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한량없는 지음의 지혜[無量作智]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한량없는 지음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한량없는 지음의 지혜라고 한 것은 지음이 없는 심행의 처소[無作心行處所]이기 때문이다.’ 넷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변제가 있음[有邊]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변제가 있음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변제가 있다고 한 것은 다섯 바라밀을 이르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변제가 없음[無邊]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변제가 없음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변제가 없다고 한 것은 이른바 반야(般若)바라밀이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이것을 다섯 가지 법이라고 한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다섯 가지의 법을 얻기 때문에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또 문수사리여, 보살마하살은 다섯 가지의 법이 있어서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다. 그 다섯 가지란 어떤 것인가?
첫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자신이 능히 적정(寂靜)함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자신이 능히 적정함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 어나는 것이다. 자신이 능히 적정해질 수 있다고 한 것은 이른바 무아(無我)의 법을 관찰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몸과 마음이 적정함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몸과 마음이 적정함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몸과 마음이 적정하다고 한 것은 이른바 모든 중생을 교화하여 피곤하고 지침이 없게 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직심의 청정함[直心淸淨]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직심의 청정함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직심의 청정함이라 한 것은 이른바 모든 중생을 관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넷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모든 중생을 관찰함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모든 중생을 관찰함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모든 중생을 관찰한다고 한 것은 이른바 모든 중생을 관찰하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모든 중생이 평등한 공덕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모든 중생이 평등한 공덕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모든 중생이 평등한 공덕이라 한 것은 다섯 공덕의 바라밀을 이르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이것을 다섯 가지 법이라고 한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다섯 가지의 법을 얻기 때문에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또 문수사리여, 보살마하살은 다섯 가지의 법이 있어서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다. 그 다섯 가지란 어떤 것인가?
첫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인색하고 질투하는 마음[慳嫉心]을 항복시킴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인색하고 질투하는 마음을 항복시킴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인색하고 질투하는 마음을 항복시킨다고 한 것은 능히 모든 내외(內外)의 사물을 버리기 때문이다.’ 둘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아첨하지 않음[不諂曲]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아첨하지 않음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아첨하지 않는다고 한 것은 모든 중생에 대하여 평등한 마음을 갖기 때문이다.’ 셋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부처님께 공양함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부처님께 공양함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부처님께 공양함이라고 한 것은 이른바 의지(依止)하고 공양하며 주지하여 능히 모든 부처님의 출세법(出世法)을 생출(生出)하기 때문이며, 다시 능히 설법하는 것을 성취하기 때문이며, 저 부처님과 보살들께 공양하기 때문이다.’ 넷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여래지행(如來智行)에 공양함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여래지행에 공양함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여래지행에 공양한다고 한 것은 중생을 위해 모두가 불퇴전(不退轉)의 법에 머물게 하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심구행(心口行)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심구행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심구행이라 한 것은 중생들로 하여금 입과 마음[口心]의 허물을 여의고 청정을 얻게 하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이것을 다섯 가지 법이라고 한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다섯 가지의 법을 얻기 때문에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또 문수사리여, 보살마하살은 다섯 가지의 법이 있어서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 것이다. 그 다섯 가지란 어떤 것인가?
첫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마업(魔業)을 보지 않고 불업(佛業)에 머묾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마업(魔業)을 보지 않고 불업(佛業)에 머묾에 머물도록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마업을 보지 않고 불업에 머문다고 한 것은 마업을 보지 않고 중생을 교화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모든 부처님 여래가 항상하다는 믿음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모든 부처님 여래가 항상하다는 믿음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모든 부처님 여래의 항상함을 믿는다고 한 것은 모든 부처님은 언제나 차별이 없기 때문이다.’ 셋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모든 부처님 여래가 항구(恒久)하다는 믿음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모든 부처님 여래가 항구하다는 믿음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모든 부처님 여래의 항구함을 믿는다고 한 것은 모든 부처님 여래는 항상 쉼 없이 모든 부처님 행[佛行]을 짓는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넷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모든 부처님 여래가 청정하다는 믿음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모든 부처님 여래가 청정하다는 믿음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모든 부처님 여래의 청정함을 믿는다고 한 것은 이른바 불공(不空)의 봄[見]과 들음[聞]과 생각[念] 때문이다.’ 다섯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모든 부처님 여래가 나[我]라는 믿음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모든 부처님 여래가 나라는 믿음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모든 부처님 여래가 나라는 것을 믿는다고 한 것은 모든 여래의 몸에는 변제가 없기 때문이며, 몸에 변제가 없다고 한 것은 여래의 무변신(無邊身)을 설명하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이것을 다섯 가지 법이라고 한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다섯 가지의 법을 얻기 때문에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또 문수사리여, 보살마하살은 다섯 가지의 법이 있어서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다. 그 다섯 가지란 어떤 것인가?
첫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안온한 일[安隱事]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안온한 일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안온한 일이라고 한 것은 이른바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자기의 몸과 마음을 괴롭히는 일로부터 보호하도록 하기 때문이며, 능히 괴로움을 낳는 어떤 작은 법도 받아들이지 않음이 없고 능히 즐거움을 낳는 어떠한 작은 법도 버리지 않음이 없기 때문이다.’ 둘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모든 법이 모양이 없음[無相]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모든 법이 모양이 없음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모든 법이 모양이 없다고 한 것은 모양의 체가 없다[無相體]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양의 체가 없다는 것을 취하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부처님께 귀의함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부처님께 귀의함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부처님께 귀의한다고 한 것은 이른바 모든 악행을 짓지 않기 때문이다.’ 넷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법에 귀의함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법에 귀의함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법에 귀의한다고 한 것은 법의 인연이 모인 것에 귀의하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승(僧)에 귀의함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승에 귀의함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승에 귀의한다고 한 것은 이른바 애증(愛憎)의 마음을 멀리 여의기 때문이며, 이른바 보살에게 이와 같은 마음이 생긴다는 말이다. 내가 이미 보리의 마음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보리의 마음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보리의 마음이란 불가사의한 지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이것을 다섯 가지 법이라고 한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다섯 가지의 법을 얻기 때문에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없는 안온함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또 문수사리여, 모든 보살마하살은 다섯 가지의 법이 있어서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다. 그 다섯 가지란 어떤 것인가?
첫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몸[身]에 차별이 없음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몸에 차별이 없음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몸에 차별이 없다고 한 것은 모든 법상(法相)을 뛰어넘기 때문이다.’ 둘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믿음[信]에 차별이 없음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믿음에 차별이 없음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믿음에 차별이 없다고 한 것은 모든 업과 과보를 믿기 때문이다.’ 셋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삼마발제(三摩跋提:선정)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삼마발제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삼마발제의 지혜라고 한 것은 이른바 체(體)에 들어가는 지혜를 관찰하기 때문이다.’ 넷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법에 차별이 없음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법에 차별이 없음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법에 차별이 없다고 한 것은 법의 수행을 말하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선지식(善知識)이 차별이 없음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선지식에 차별이 없음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선지식에 차별이 없다고 한 것은 이른바 모든 선지식을 속이지 않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이것을 다섯 가지 법이라고 한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다섯 가지의 법을 얻기 때문에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또 문수사리여, 보살마하살은 다섯 가지의 법이 있어서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다. 그 다섯 가지란 어떤 것인가?
첫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법을 순응하여 따름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법을 순응하여 따르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법을 순응하여 따른다고 한 것은 모든 법에 대하여 여실히 수행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참괴행(慚愧行)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참괴행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참괴행이라고 한 것은 몸ㆍ입ㆍ뜻의 업(業)이 선행(善行)을 닦기 때문이다.’ 셋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애심(愛心)을 여읨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을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애심을 여읨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애심을 여읜다고 한 것은 이른바 능히 아직 생기지 않은 선법(善法)을 생기게 하기 때문이다.’ 넷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성내는 마음을 여읨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성내는 마음을 여읨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성내는 마음을 여읜다고 한 것은 이른바 이미 생긴 선법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자기 몸과 남의 몸의 선근(善根)을 방어하여 보호함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자기 몸과 남의 몸의 선근을 방어하여 보호함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자기 몸의 선근을 방어하여 보호한다고 한 것은 보호하여 업의 짓는 바[所作]에 들게 하기 때문이며, 남의 몸의 선근을 방어하여 보호한다고 한 것은 보호하여 대자대비(大慈大悲)에 머물게 하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이것을 다섯 가지 법이라고 한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다섯 가지의 법을 얻기 때문에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또 문수사리여, 보살마하살은 다섯 가지의 법이 있어서 능히 초환 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다. 그 다섯 가지란 어떤 것인가?
첫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걸림이 없는 해탈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걸림이 없는 해탈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걸림이 없는 해탈의 지혜라고 한 것은 청정과 둘이 아니기[非二淸淨] 때문이다.’ 둘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모든 법이 인연으로 생긴다는 믿음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모든 법이 인연으로 생긴다는 믿음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모든 법이 인연으로 생김을 믿는다고 한 것은 모든 인연법의 체는 생기는 것이 아님을 보기 때문이다.’ 셋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모든 법이 주처(住處)가 없음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모든 법이 주처가 없음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모든 법이 주처가 없다고 한 것은 모든 법은 시방 세계의 차별적인 곳이 없기 때문이다.’ 넷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모든 부처님 여래가 마치 허공과 같음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모든 부처님 여래가 마치 허공과 같음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모든 부처님 여래가 마치 허공과 같다고 한 것은 부처님은 차별이 없고 의지(依止)함이 없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모든 부처님 여래가 심(心)과 의(意)와 의식(意識)을 여읨을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모든 부처님 여래가 심과 의와 의식을 여읨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모든 부처님 여래가 심과 의와 의식을 여읜다고 한 것은 모든 부처님이 자연지(自然智)에 이르러서 무장애지(無障礙智)를 얻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이것을 다섯 가지 지혜라고 한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다섯 가지 지혜를 얻기 때문에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