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천왕반야바라밀경(勝天王般若波羅蜜經) 제6권

승천왕반야바라밀경(勝天王般若波羅蜜經) 제6권

10. 술덕품(述德品)

그때 문수사리보살마하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부처님을 향하여 합장하고 머리 숙여 발에 예배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은 몇 겁 동안 반야바라밀을 행하고 얼마의 부처님께 공양하여야 이와 같이 여래께 칭송받으며,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을 승천왕과 같이 설할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문수사리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이와 같은 일은 헤아릴 수 없느니라. 만약 무수한 백천억 겁 동안 온갖 행을 닦아 익히고 선근을 심지 않았다면 이 반야바라밀이란 이름조차 듣지 못할 것이니라. 선남자야, 시방의 항하사 세계 가운데 모든 항하사의 숫자는 오히려 알 수 있지만 이 보살마하살이 몇 겁 동안 반야바라밀을 행하고, 얼마의 부처님께 공양하였는지 그 수는 알 수 없느니라.

문수사리야, 과거의 한량없고 끝이 없는 아승기 불가사의 겁에 한 부처님이 계셨으니, 이름이 다문(多聞) 여래·응공·정변지·명행족·선서·세간해·무상사·조어장부·천인사·불세존이었다. 그 나라의 이름은 일광(日光)이고, 겁의 이름은 증상(增上)으로서 다문부처님께서 모든 보살마하살을 위하여 청정법문을 설하셨느니라.

‘모든 선남자야, 부지런히 닦아 정진하여 신명(身命)을 돌아보지 말라.’

그때 모인 대중들 가운데 한 보살마하살이 있었는데, 이름이 진력(進力)이었다. 보살은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부처님을 향하여 합장하고 머리 숙여 두 발에 예배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지런히 닦아 정진하여 신명을 돌아보지 말라고 설하셨는데, 제가 부처님께서 설하신 뜻을 알기로는,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게을러야 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룰 것이니, 왜냐하면 보살마하살이 만약 부지런히 정진하면 이는 늘 생사에 머물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번뇌를 끊어 악마를 복종시키고 오래도록 생사에 머물면서 끝내 중생을 교화하지 않고 속히 열반을 증득하여 스스로 생사를 건너가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은 생사 가운데 있으면서 생사를 즐거움으로 여기되, 열반을 가지고 즐거움으로 삼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은 중생을 이롭게 하는 일을 즐거움으로 여기고, 그들이 즐거워하는 바에 따라 방편을 써서 가지가지 법을 설하여 안락을 얻게 하며, 만약 누진(漏盡)을 증득하면 일체 중생을 이익 되게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이런 까닭에 보살은 생사를 관찰하여 대비심을 일으켜 중생을 버리지 않고 본원(本願)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은 방편의 힘을 갖추어서 오래도록 생사에 머물면서 한량없고 끝이 없는 모든 부처님을 뵙고, 한량없고 끝이 없는 정법을 들으며, 또한 한량없고 끝이 없는 중생을 교화합니다. 이런 까닭에 보살마하살은 생사를 싫어하지도 않고 열반을 즐거워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만약 생사를 관하고 놀라고 두려움을 일으키면 도가 아닌[非道] 데에 떨어져서 일체 중생을 이익 되게 하지 못하며, 여래의 매우 깊은 경계를 통달하지 못할 것입니다.

무엇을 도가 아니라고 하는가? 이른바 성문과 벽지불의 지위[地]를 탐하여 즐기고 모든 중생에게 대비심(大悲心)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성문과 벽지불의 도는 보살마하살의 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즉, 성문과 연각은 생사를 두려워하며 속히 생사를 벗어날 것을 찾고 공덕의 지혜를 구족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뜻인 까닭으로 보살도가 아닙니다.’

그때 다문세존께서 진력보살마하살을 찬탄하여 말씀하셨다.

‘훌륭하도다, 훌륭하도다. 선남자야, 그대의 말과 같이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스스로 닦되 도가 아닌 것은 닦지 않느니라.’

진력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무엇이 이 보살마하살이 스스로 행하는 도입니까?’

그러자 다문세존께서 진력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은 일체 공덕지혜를 성취하여 대비(大悲)의 힘으로 중생을 버리지 않고 성문과 벽지불의 지위[地]를 멀리 여의며, 무생의 지혜[無生智]를 얻어 3계[三有]를 버리지 않고, 마음에 구하고 바라는 것이 없이 선근을 늘여가며, 방편으로 모든 바라밀을 닦아서 지혜의 힘으로 분별심을 없애고 모든 선근이 자라나 진지(盡智)를 성취한다. 또한 한량없는 공덕으로 한 법도 방편으로 나타나서[現生] 생긴 것이 없고, 한 중생도 방편으로 교화됨이 없이 일체법이 다 자성을 여의고 모든 불국토를 마치 허공과 같다고 본다. 그리하여 방편으로 불국토를 장엄하고 청정하게 함을 알며, 일체 부처님의 법신은 형상이 없으나 방편으로 상호를 장엄하게 나타내 보여서 모든 중생이 마음에 오로지 좋아함을 따라서 응하여 주는 것을 알며, 보살의 몸과 마음은 항상 여의어 고요하게 하면서 중생을 위하여 가지가지를 설법하고, 또한 방편으로 시끄럽고 어지러움을 여의고 모든 선정을 닦아 자성이 공함을 알고, 다 매우 깊은 지혜를 통달하여 방편으로 남을 위하여 설법하며, 성문과와 벽지불과를 증득하지 않고 부처님의 해탈을 구하여 보살의 일체 도의 행을 버리지 않는 것이니라.

선남자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도라 하느니라.’

문수사리야, 진력보살은 다문세존을 따라 보살의 행할 경계의 설법을 듣고 미증유함을 얻어 부처님께 아뢰었다.

‘희유합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설하신 바를 제가 알기로는 보살마하살은 방편을 구족하여 모든 법이 그의 도가 아님이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비유하면 허공이 일체의 물질을 수용하여 받아들임과 같이 보살도 이와 같이 방편을 구족하여 행하는 도로써 일체법을 섭수합니다.

또 허공과 같이 산의 나무와 약초·과일나무·향나무가 그로 인하여 자라나듯이 모든 만물은 허공에 물들지도 않고, 또한 청정하게 하지도 못하며 성내지도 않고 또 기뻐하지도 않으니, 이와 같이 보살마하살은 방편반야바라밀이 있어서 일체법을 인연하여, 만약 범부의 법이나 혹은 배우는 사람의 법이나 벽지불의 법이나 혹은 보살의 법이나 혹은 여래의 법이 모두 바로 도임을 아는 것입니다. 무슨 까닭인가? 보살마하살은 모두를 통달한 까닭입니다. 또 비유하면 불이 만약 나무와 대나무·풀을 만나면 더욱 치성하여 물러남이 없으며, 이들 풀과 나무는 모두 불을 더욱 거세게하여 그 빛을 더하는 것과 같이 모든 법도 다 이 보살마하살의 도를 돕는 것입니다. 비유하면 금강과 같아 자체가 단단하고 조밀하여 칼로도 쪼개지 못하고, 불로도 태우지 못하며 물로도 문드러지게 하지 못하며, 독으로도 해치지 못하는 것처럼 보살마하살의 방편의 지혜는 성문과 연각 및 모든 외도와 일체의 번뇌로 무너뜨리지 못합니다.

세존이시여, 물을 맑게 하는 구슬을 혼탁한 물에 넣어두면 맑게 하듯이 보살마하살의 반야바라밀의 구슬은 일체 중생의 번뇌를 다 청정하게 합니다.

세존이시여, 비유하면 미묘한 약과 보배구슬[妙藥寶珠]은 독약과 함께 있을 수 없어서 온갖 독을 없애버리는 것과 같이,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의 방편을 행하면 일체 번뇌가 함께하지 못하여 다 끊겨 없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이런 인연으로 모든 법은 다 바로 보살마하살의 도입니다.’

문수사리야, 진력보살이 이와 같이 법문을 설할 때 대중 가운데 팔천 보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였고, 이백 보살이 무생법인을 얻었느니라.

문수사리야, 과거 다문부처님 처소의 진력보살이 지금의 이 승천왕이니라.”

그때 문수사리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무엇을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견고한 힘을 얻어 정법을 옹호한다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문수사리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은 차라리 신명(身命)을 버릴지라도 정법은 버리지않고 남이 낮추어 공손하게 하여도 교만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며, 하잘것없는 사람이 치욕스럽게 굴어도 그 마음을 참는다. 기갈 든 중생에게는 가장 좋은 음식으로 은혜를 베풀고 액난이 있는 자에게는 두려움 없는 보시를 하며, 질병이 있는 자는 법답게 치료하고 빈궁한 중생에게는 재물과 보배가 풍요하게 하여주고, 모든 부처님의 탑에는 흰 재[白灰]의 진흙을 바르며 험한 일은 곧 가리워 주고 좋은 일은 빛나게 드러내며, 고뇌하는 중생에게는 안락함을 베풀어주느니라.

문수사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며 이와 같은 행을 닦아 견고한 힘을 얻어 정법을 옹호하는 것이니라.”

문수사리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함에 어떻게 그 마음을 조화롭게 복종시킵니까?”

부처님께서 문수사리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함에는 남의 일에 함부로 하지 않고, 생각은 먼저 하고 행동은 뒤에 하며, 심성을 곧게 길들여 아첨과 왜곡된 행을 여의며, 스스로를 자랑하여 높이지 않고 뜻은 항상 부드럽게 하느니라.

문수사리야,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행하여 마음을 길들여 복종시키느니라.”

문수사리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이와 같은 행을 닦으면 마땅히 어느 세계[道]에 태어납니까?”

부처님께서 문수사리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 혹은 하늘에 태어나고 혹은 사람으로 태어나느니라. 만약 하늘에 태어나면 제석이 되어 세상에 출현하신 부처님을 만날 것이고, 혹은 사바국토의 주인인 대범왕(大梵王)이 되어 세상에 출현하신 부처님을 만날 것이며, 사람으로 태어나면 전륜성왕이나 장자·거사가 되어 세상에 출현하신 부처님을 만날 것이니라.

문수사리야, 보살마하살은 마음을 길들여 이와 같이 태어나게 되느니라.”

문수사리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바른 믿음[正信]은 어떤 법에서 흘러나옵니까?”

부처님께서 문수사리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바른 믿음은 선지식을 얻음으로써 흘러나오느니라.” “세존이시여, 보시는 어떤 법에서 흘러나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큰 부자에게서 흘러나오느니라.” “세존이시여, 많이 듣는 것은 어떤 법에서 흘러나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반야바라밀에서 흘러나오느니라.” “세존이시여, 지계는 어떤 법에서 흘러나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일체의 선한 도에서 흘러나오느니라.” “세존이시여, 인욕은 어떤 법에서 흘러나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중생을 받아들이는 데서 흘러나오느니라.” “세존이시여, 정진은 어떤 법에서 흘러나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부처님의 법을 성취함에서 흘러나오느니라.” “세존이시여, 사유(思惟)함은 어떤 법에서 흘러나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고요함[寂靜 : 열반]에서 흘러나오느니라.” “세존이시여, 반야는 어떤 법에서 흘러나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반야는 일체 번뇌를 여읨에서 흘러나오느니라.” “세존이시여, 법을 듣는 것은 어떤 법에서 흘러나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의심의 그물을 멀리 여읨에서 흘러나오느니라.” “세존이시여, 여법(如法)하게 여쭙는 것은 어떤 법에서 흘러나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결정된 지혜에서 흘러나오느니라.” “세존이시여, 고요함[寂靜]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어떤 법에서 흘러나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정과 모든 신통에서 흘러나오느니라.” “세존이시여, 바르게 닦는 것은 어떤 법에서 흘러나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싫어하여 여의는 도에서 흘러나오느니라.” “세존이시여, 무상(無常)하다는 말은 어떤 법에서 흘러나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포섭하여 보호하는 것이 없는 데서 흘러나오느니라.” “세존이시여, 괴롭다[苦]는 말은 어떤 법에서 흘러나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열반[無生]에서 흘러나오느니라.” “내가 없다[無我]는 말은 어떤 법에서 흘러나옵니까?” “나와 내 것이라는 생각을 멸하는 것에서 흘러나오느니라.” “세존이시여, 공이라는 말은 어떤 법에서 흘러나옵니까?” “고요함에서 흘러나오느니라.” “세존이시여, 바른 생각[正念]은 어떤 법에서 흘러나옵니까?” “부처님의 바른 견해[聖正見]에서 흘러나오느니라.” “세존이시여, 부처님의 마음을 여읨은 어떤 법에서 흘러나옵니까?” “신통삼매에서 흘러나오느니라.” “세존이시여, 성자의 도[聖道]는 어떤 법에서 흘러나옵니까?” “성과(聖果 : 보리·열반)에서 흘러나오느니라.” “세존이시여, 믿음의 즐거움[信樂]은 어떤 법에서 흘러나옵니까?” “모든 해탈을 성취함에서 흘러나오느니라.”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태어나심[佛生]은 어떤 법에서 흘러나옵니까?” “일체의 보리를 돕는 법[助道法]에서 흘러나오느니라.”

그때 승천왕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무엇을 부처님의 태어나심이라 합니까?”

부처님께서 승천왕에게 말씀하셨다.

“보리심을 발하는 것과 같으니라.” “세존이시여, 무엇을 보리심을 발한다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대비심(大悲心)이 생기는 것과 같으니라.” “세존이시여, 무엇을 대비심이 생긴다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일체 중생을 버리지 않는 것이니라.” “세존이시여, 무엇을 일체 중생을 버리지 않는다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3보(寶)를 버리지 않는 것과 같으니라.” “세존이시여, 누가 3보를 버리지 않는 이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번뇌가 없는 자이니라.”

그때 승천왕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희유합니다, 세존이시여. 희유합니다, 수가타(修伽陀 : 善逝)시여.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비밀하고 매우 깊고 미묘하고 항상 일체의 법이 공하고 생겨남[無生]이 없고 멸함도 없는 고요함을 설하시되 닦는 선악의 과보를 깨뜨리지 않고 끝났다든가 항상 있다라는 생각[斷常見]을 멀리 여읩니다.

세존이시여, 세계 가운데 많은 중생이 이와 같은 법을 듣고 어찌 바르게 믿고 공경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헐뜯고 비방하는 마음을 내겠습니까?
세존이시여, 이들 중생들은 과거세의 선업으로 인하여 사람의 몸을 받았으나 악지식(惡知識)을 가까이한 까닭에 이와 같은 매우 깊은 법을 믿지 못하고, 곧 외롭게 과거의 선법을 등진 것입니다. 모든 부처님 세존의 깊고 귀중한 은덕은 설령 자기 몸의 살을 베어 피를 흘리면서 여래께 공양하여도 그 은덕을 갚지 못하는 까닭으로 우리들이 오늘날 선근을 더욱 길러서 큰 법의 즐거움을 얻고 대자재에 머물겠습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함에 마땅히 부처님의 은덕을 알고 선지식을 가까이하며 마땅히 부처님의 행을 배워서 불과(佛果 : 보리·열반)를 얻도록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법을 설할 때 대중 가운데 이만 오천 보살이 무생법인을 얻었고, 사만 오천의 사람과 하늘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였으며 일만 이천의 천자가 번뇌를 멀리하고 때를 여의어 법의 눈이 청정함을 얻었다.

11. 현화품(現化品)

그때 선사유(善思惟)보살마하살이 승천왕에게 물었다.

“여래께서 지으신 화신불이 다시 화현하신 것입니까?”

그러자 승천왕이 선사유보살에게 말하였다.

“이제 세존을 대하여 증명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변화하신 부처님은 다시 항하강 모래수와 같이 한량없는 부처님으로 변화하여 가지가지 모습과 신통설법으로 중생을 이익하게 합니다.

선남자야, 모든 부처님께서는 숙세의 원력이 청정한 까닭으로 이와 같은 것입니다.”

선사유보살이 승천왕에게 말하였다.

“대왕이여, 모든 부처님께서는 숙세원력이 청정하여 매우 깊은 법을 설하셨습니다. 대왕이여, 부처님의 신통력으로 이 반야바라밀이 세간에 오래 머물러서 숨어 없어지지 않게 되기를 청합니다.”

승천왕이 선사유보살에게 말하셨다.

“선남자야, 반야바라밀은 모든 부처님께서 가호[護持]하시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문자로 설한 반야바라밀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문자는 생기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숨어 없어짐도 없으며, 글자에 나타난 뜻도 생기지도 않고 다하지도 않으며 숨어 없어짐이 없습니다.

선남자야, 모든 부처님 여래의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도 숨어 없어지지 아니합니다. 왜냐 하면 법은 생겨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법이 생김이 없다면 이것은 멸함이 없는 것이며, 이것은 여래 비밀의 가르침이라 만약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시거나 나오시지 않더라도 성품과 모양은 항상 머물러 있어 이것을 법계라 이름하며, 또한 여여(如如)하다고 합니다. 이름과 실제가 다르지 않고 인연에 수순하여 거슬러 어기지 아니하니 이것을 정법이라 하며 그 성품이 항상 머물러 있어 숨어 없어짐이 없습니다.”

선사유보살이 승천왕에게 말하였다.

“대왕이여, 정법을 옹호할 사람은 바로 어떤 사람입니까?”

승천왕이 선사유보살에게 대답하였다.

“선남자야, 만약 일체법을 어기거나 거스르지 않는 이를 정법을 옹호한다고 할 것입니다. 무슨 까닭인가? 다투어 토론함이 없고 도리를 어기지 않으면 정법을 옹호한다 하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도리를 어기지 않는다 합니까?” “문자에 순종하고 도리를 어기지 않으며 다투어 토론하지 않으면 정법을 옹호한다 합니다. 무슨 까닭인가? 세간의 범부는 다 모든 견해에 집착하지만 도리에 순종하는 자는 항상 공을 설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까닭으로 세간에는 다투어 토론함을 일으키나니, 이와 같이 범부는 존재하는 법[有法]을 사랑하고 존중하며, 도리에 순종하는 자는 이것을 가벼이 여깁니다. 또한 세간은 존재[有]를 설하면서 항상하고[常] 즐거우며[樂] 나[我]가 있고 청정하다[淨]고 하며, 도리에 순종하는 자는 무상(無常)이요 고(苦)요 부정(不淨)함이요 나가 없다고 말합니다. 이런 까닭으로 세간에서 다투어 토론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선남자야, 일체 범부는 세간의 흐름에 순종하고, 도리에 순종하는 자는 세간의 흐름을 거역합니다. 이런 까닭에 세간은 다투어 토론을 일으킵니다.

일체 범부는 음(陰)·계(界)·입(入)에 집착하고, 도리에 순종하는 자는 일체법은 어느 것도 집착할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런 까닭에 세간은 다투어 토론을 일으킵니다.

선남자야, 세상을 수순하는 자는 도리를 행하지 않고 도리에 순종하는 자는 세상과 서로 어긋나는 것입니다.”

선사유보살이 승천왕에게 말하였다.

“대왕이여, 지금은 어떤 법을 취합니까?”

승천왕이 선사유보살에게 말하였다.

“나는 사람을 취하지도 않고, 법을 취하지도 않습니다.”

보살이 물었다.

“어떻게 취하지 않습니까?”

승천왕이 대답하였다.

“나는 중생을 여의고 법을 여읨도 여의었으며 이 여읜다는 것도 얻지 못하며 과거·미래·현재를 여의고, 여의었다는 것도 얻지 못합니다.

모든 부처님을 여의기도 하고 모든 부처님을 여의지 않기도 하며, 불국토를 여의기도하고 불국토를 여의지 않기도 하며, 법을 여의기도 하고 법을 여의지 않기도 합니다.

선남자야, 이와 같은 행을 도리에 순종하여 취함도 없고 취하지 않음도 없다고 합니다.”

그러자 선사유보살이 승천왕을 찬탄하였다.

“훌륭하십니다, 대사(大士)여. 훌륭하십니다, 정사(正士)여. 이와 같이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은 취할 것도 없고 집착할 것도 없고, 이름도 없고 글자도 없고, 모든 희론을 멸하고 분별하거나 사유함도 여의었다고 설하였습니다.”

그때 대중 가운데 현덕(賢德)이라는 한 천자가 있었다. 그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부처님을 향하여 합장하고 머리를 숙여 발에 예배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승천왕이 말한 바와 같은 분별이 없다는 것은 어떤 법입니까?”

부처님께서 현덕천자에게 말씀하셨다.

“분별이 없다는 법은 고요함[寂靜]이다. 무슨 까닭인가? 취한다고 하는 것도 취할 것이 없으며[取可取無] 나와 내 것을 여의어 일으키지 않고 쉬지도 않는 이것을 분별이 없는 법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로써 이와 같이 보는 자는 정법을 옹호하되, 옹호하는 자와 옹호되는 것을 보지 않느니라.”

이러한 법을 설할 때 대중 가운데 십천(十千) 비구가 마음에 해탈을 얻고 일천 천자가 번뇌를 멀리하고 때를 여의어 법의 눈이 청정함을 얻었다.

그때 선사유보살이 승천왕에게 물었다.

“어떤 변재가 이와 같은 매우 깊은 법을 설합니까?”

승천왕이 선사유보살에게 대답하였다.

“선남자야, 일체 번뇌의 습성이 없는 자가 얻은 변재가 이와 같이 설하며, 언어의 도를 넘어서서 이름으로 나타낼 수 없는 제일의(第一義)의 지혜라서 이와 같은 변재로 이것을 설합니다.”

그러자 선사유보살은 현덕천자에게 물었다.

“선남자야, 무엇을 무생법(無生法) 가운데서 변재로 설한다고 합니까?”

현덕천자가 선사유보살에게 대답하였다.

“보살마하살은 생겨남도 없고 멸함도 없는 법 가운데 머물지 않으며, 곧 변재도 없이 매우 깊은 법을 설합니다. 무슨 까닭인가? 희론을 멀리 여의어 인연되는 것도 보지 않고, 인연하는 자도 보지 않으며 마음에 머무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까닭으로 설하며 사람과 법에 머물지 않고 이것 저것에 머물지 않으며, 오직 청정한 제일의제(第一義諦)에 머뭅니다. 이런 까닭으로 설하는 것입니다.”

그때 선사유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현덕천자는 매우 희유하여 깊은 법을 통달하여 변재가 끝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선사유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이 현덕천자는 묘희(妙喜)세계 부동(不動)부처님의 처소에서 이 사바(娑婆)세계에 오셔서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을 받아 듣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선사유보살에게 말씀하셨다.

“현덕천자는 이미 과거 한량없는 백천억 겁에 다라니문(陀羅尼門)을 닦아 익혔고, 겁이 다하도록 설법하고 또한 다하여 마칠 것이 없느니라.”

선사유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무엇이 다라니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이른바 중법불입다라니(衆法不入陀羅尼)이다.

선남자야, 이 다라니는 모든 문자를 넘어서서 말로는 들어가지 못하고, 마음으로 헤아리지 못하며 안팎의 온갖 법으로 모두 얻지 못한다.

선남자야, 조그마한 법도 여기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중법불입다라니라 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이 법은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없고 또한 나가고 들어옴도 없으며, 하나의 문자도 밖에서 들어오는 것이 없고 또한 한 자도이 법에서 나감이 없으며, 또 한 자도 이 법 가운데 머무름이 없고 또한 문자를 같이 서로 보는 것도 없으며, 또한 법과 법 아님을 분별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이 모든 문자로 설함도 덜하지도 않고 설하지 않아도 더함이 없으며 본래부터 만들어 일으킨 것도 없고 허물어 없어지는 것도 없느니라.

선남자야, 문자와 같이 마음도 그러하며, 마음과 일체가 같아 법도 이와 같나니, 무슨 까닭인가? 법은 언어를 여의었고 또한 사량(思量)도 여의었으며 본래 생기고 멸함이 없기 때문이니라. 그런 까닭에 나가고 들어옴도 없으니, 이것을 중법불입다라니라 하느니라.

이 법문을 통달하는 자는 변재가 끝이 없을 것이니, 무슨 까닭인가? 끊어지지도 않고 다함도 없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야, 허공에 들어가는 자는 이 다라니문에 들어갈 수 있느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은 이 다라니문을 통달하여 마음에 청정함을 얻고 몸과 입도 그러하느니라.

행한 바는 이치에 부합하고 반야는 견고하며 일체의 온갖 마가 어지럽힐 수 없고, 일체 외도는 감히 보지 못하며 일체 번뇌가 허물지 못하고, 몸의 힘을 성취하며 마음에 겁약(怯弱)함을 여읜다. 설한 것이 다함이 없어 매우 깊은 일체의 성스러운 진리[聖諦]를 베풀며, 다문(多聞)의 지혜는 마치 큰 바다와 같고 삼매에 안주하니, 비유하면 수미산과 같고 대중 가운데 처하되 두려움이 없고 사자의 왕과 같으며 세상법에 물들지 않음이 저 연꽃과 같으니라.

중생을 이익 되게 함은 마치 비유하면 대지와 같고 모든 더러운 때를 씻음을 비유하면 큰 물과 같다. 세간을 성숙시킴이 바야흐로 큰 불과 같으며, 맑고 시원함이 평등하게 중생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이 비유하면 달과 같고,모든 어둠을 깨뜨림은 태양에 비유되느니라.

번뇌의 원수를 꺾는 것을 용건(勇健)하다 하고, 심성을 길들여 복종시킴은 큰 용과 같으며 진동하는 법의 우레 소리는 큰 구름에 비유된다. 온갖 법을 널리 쏟아 내림은 비유하면 큰 비와 같으며 모든 중생을 위하여 번뇌의 병을 없애줌은 병을 잘 고치는 의사와 같고, 법으로 세상을 다스림은 비유하면 국왕과 같으니라.

중생을 보호하고 정법을 옹호함은 사천왕과 같고, 사람과 하늘 가운데 재물[財富]이 가장 으뜸됨을 비유하면 제석과 같으며, 마음에 자재를 얻음을 비유하면 대범왕이 자유롭게 사바세계를 통솔하는 것과 같고, 몸이 걸림 없음은 가루라(伽婁羅)새와 같다. 중생에게 가르쳐 보임은 세간의 아버지와 같고, 법의 보배가 나옴은 비사문(毘沙門)왕에게서 온갖 보배가 나오는 것과 같으니라. 공덕지혜의 장엄한 것을 중생이 보면 이익 되지 않음이 없어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 칭찬하시는 바요, 일체 천중들이다 옹호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이 중법불입다라니를 얻으면 여러 가지에 자재로워지며 중생을 이익하게 하고 방편의 설법이 다함이 없으며, 마음이 피곤함이 없고 명리를 구하지 않는다. 또한 법의 보시가 평등하여 질투함이 없고, 지계가 청정하여 몸과 입과 뜻에 영원히 허물됨이 없으며, 인욕이 청정하여 모든 성냄의 고통을 여의고, 정진이 청정하여 짓는 바를 갖추어 세우며, 선정이 청정하여 마음을 잘 길들여 복종시키고, 반야가 청정하여 다 의심하여 막힘이 없느니라.

또 4무량심(無量心)을 구족하여 마치 범왕(梵王)과 같으며, 모든 삼매와 삼마발제(三摩跋提)를 행하여 세간의 가장 으뜸인 무상도(無上道)를 닦고, 모든 공덕과 일체지혜를 갖추어 관정의 지위[灌頂位 : 성불의 지위]를 받느니라.”

이러한 다라니 법문을 설할 때 대중 가운데 육만 사천 보살이 물러나지 않는 지위[不退轉]를 얻었고 삼만 보살이 무생법인을 얻었으며 이만의 사람과 하늘이 번뇌[塵]를 멀리하고 때[垢]를 여의어 법의 눈이 청정함을 얻고 한량없고 끝이 없는 사람과 하늘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발하였다.

12. 다라니품(陀羅尼品)

그때 문수사리보살마하살이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벗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부처님을 향하여 합장하고 머리 숙여 발에 예배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희유합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설하신 대로 보살마하살이 이 중법불입다라니를 얻으면 이루는 공덕은 한량없고 끝이 없겠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문수사리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이와 같은 공덕은 가령 여래가 백천 년을 설하여도 다하지 못하는 것이니라.”

그때 대중 가운데 적정의(寂靜意)라는 이가 문수사리보살에게 물었다.

“보살마하살이 이 다라니를 얻으면 부처님 세존께서 찬탄하실 것이니 이와 같은 사람은 큰 이익을 잘 얻어서 스스로도 행하고 남도 교화하여 다 공하지 않겠습니다.”

그때 문수사리보살이 적정의보살마하살에게 대답하였다.

“선남자야, 제일의(第一義) 가운데는 칭찬할 법이 없고 색도 없고 모양도 없다. 색이 없는데 무엇이 있어서 찬탄하며, 찬탄할 것이 없는데 무엇을 기뻐할 것인가?”

적정의보살이 문수사리보살에게 말하였다.

“예컨대 내가 부처님께서 수다라(修多羅) 가운데서 일체법은 나와 내 것이 없고 기뻐함도 없고, 성냄도 없으며, 이 법은 평등하여 보살이 마땅히 배워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비유하면 대지가 물 위에 머물러 있는 것과 같아 만약 샘이나 연못을 판다면 곧 쓸 물을 얻으나 우물을 파지 않는 자는 그것을 이루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성지(聖智)의 경계는 일체법에 두루 하여 만약 부지런히 닦으면 반야와 방편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나 닦지 않는 자야 어떻게 얻으리오. 이런 까닭에 보살이 보리를 구하고자 하면 게으르지 않고 부지런히 정진하여 닦으면 이와 같은 법이 곧 앞에 나타날 것입니다.

선남자야, 맹인으로 태어나면 빛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이 번뇌는 모든 중생을 눈멀게 하여 법을 보지 못하며, 눈 있는 사람도 밖에 빛이 없으면 색을 보지 못하듯 수행하는 사람도 이와 같아 비록 지혜가 있어도 선지식이 없으면 법을 보지 못합니다. 천안(天眼)이 있으면 밖의 빛을 빌리지 않아도 스스로 물질을 보듯이 보살마하살이 법의 흐름[法流]에 들어가면 자연히 승진도(勝進道)에 나아가니 태(胎) 안에 있는 것과 같이 나날이 자라나되 스스로 보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보살마하살이 부지런히 정진하면 스스로 보지 못하여도 온갖 행이 자라나서 일체 불법을 성취합니다. 비유하면 설산(雪山)에 약나무의 왕이 있어서 마르지도 않고 꺾이지도 않는 것과 같이 보살마하살이 부지런히 정진하여 닦으면 일체의 여러 가지 행이 물러서지도 않고 잃어버리지도 않습니다. 비유하면 전륜성왕이 세상에 나타나면 칠보를 갖추는 것과 같이 보살마하살이 보리심을 발하면 일곱 가지 법의 보배를 갖추는 것입니다. 즉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와 방편의 힘입니다.

또 전륜성왕이 사천하를 노닐되 모든 중생에게 대해 그 마음이 평등하듯이 보살마하살의 4섭법으로 중생을 이익하게 하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또 전륜성왕이 있는 곳에는 다투어 송사하는 일이 없는 것과 같이 보살마하살의 여실한 설법에는 다투어 토론함이 없으니, 비유하면 삼천대천세계가 처음 이루어짐에 수미산왕과 대해가 있는 것과 같이 보살도 그러하여, 만약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면 반야와 대비가 있으니, 비유하면 해가 떠오르면 높은 산부터 먼저 비추는 것과 같이, 보살마하살이 반야의 횃불을 얻으면 선근이 성숙하여 높이 수행하는 보살에게 먼저 비칩니다. 비유하면 대지는 일체의 짐을 지고 있으되, 꽃·과일·산나무·풀·약초가 다 평등하듯이 보살마하살이 이 다라니문을 얻으면 모든 중생에 대해 그 마음이 평등해집니다.”

그때 세존께서 적정의보살마하살을 찬탄하여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네가 설한 바와 같으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이 다라니문을 얻으면 무릇 설한 바 한 문장과 한 글자도 부처님의 말씀이 아닌 것이 없느니라. 선남자야, 이 설한 법은 색·성·향·미·촉·법을 여의었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세상의 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함도 없고 끝도 없고 일체에 들어가서 몸과 마음이 가볍고 편리하여 설령 백천 부처님 앞에서 설하는 것도 겁약하지 않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이 보살마하살은 부처님께서 머물러 계신 힘을 얻은 까닭으로 마음에 집착한 것이 없고 나에게 집착하지도 않으며, 중생에 집착하지도 않고 법에도 집착하지 않으며, 청정한 법계·청정한 미래·청정한 실제로써 법이 다함이 없고 글자가 다함이 없고 설법이 다함이 없음을 얻어서 환희심이 생기니, 반야를 얻은 까닭이요 사나(闍那)를 얻는 까닭이며, 의심의 그물이 없는 까닭이니라.”

이러한 다라니 법문을 설할 때 대중 가운데 팔천 보살이 중법불입다라니를 얻었고, 일만 이천 보살이 물러나지 않는 지위를 얻었으며, 오천 보살이 무생법인을 얻었고, 일만 육천 천자가 번뇌를 멀리하고 때를 여의어 법의 눈이 천정함을 얻었으며, 한량없고 끝이 없는 중생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발하였다.

그때 세존께서 적정의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이 다라니는 온갖 마귀를 조복하고, 모든 외도와 법을 미워하고 질투하는 사람을 깨뜨리고, 번뇌의 불을 꺼버리며 반야의 등불을 밝혀서 법사를 옹호하여 열반에 이르게 하고 자기의 마음을 길들여 복종시켜 밖의 중생을 잘 교화하며, 몸의 위의가 아름다워 보는 자마다 환희하게 한다. 또한 바르게 수행하는 사람을 위하여 평등함을 설법하며, 여실하게 중생의 근성을 관찰하여 앞서지도 않고 뒤에 따르지도 않느니라.”

이러한 법을 설할 때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수미산과 대해가 다 진동하고, 모든 하늘이 만다라화·마하만다라화·만수사화·마하만수사화·우발라화·구물두화·분다리화·가마라화 등의 꽃비를 내리며, 모든 하늘의 공중에서 여러 가지 음악이 연주하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울렸다.

이때 세존께서 적정의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과거세에 한량없고 끝이 없으며 헤아릴 수 없고 헤아리지도 못하는 겁에 세상에 출현하신 부처님이 계셨으니, 이름이 보월(寶月) 여래·응공·정변지·명행족·선서·세간해·무상사·조어장부·천인사·불세존이었다. 그 나라 이름은 무훼(無毁)였고, 겁의 이름은 환희(歡喜)였으며, 성문 제자가 삼십이억 명이고 보살마하살은 다시 숫자로 헤아릴 수 없었다. 이 부처님께서 성도하실 때 고행과 천마를 항복하는 것은 없었다.

그때 그 대중 가운데 보공덕(寶功德)이라는 보살이 있는데 변재가 교묘하여 가지가지로 설법하므로 그때 대중들이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지 말고 세상에 머물러 계시기를 청하였다.

그때 보공덕보살이 대중에게 말하였다.

“여래 세존께서는 태어나심도 없고 멸하심도 없는데, 어떻게 열반에 드시지 말기를 청하는가?
만약 허공이 열반에 든다면 여래는 이에 열반에 드실 것이요, 만약 실제(實際)·진여(眞如)·법계(法界)·부사의계(不思議界)가 열반에 든다면 여래도 이에 열반에 드실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여래의 법은 이루어진 것도 없고 허물어지는 것도 없으며, 더럽혀지는 것도 없고 청정함도 없으며, 세상에 있고 세상을 벗어나고, 작용함이 있거나[有爲] 작용함이 없는[無爲] 것이 아니요, 끝나는 것도 아니요 항상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가령 한 입에 열 개의 혀가 있다면 이 하나하나의 혀에서 다시 백 개의 혀가 생기고, 이 하나하나의 혀에서 다시 천 개의 혀가 생겨도, 또한 여래의 이루어지고 허물어짐을 설하지 못할 것이다.”

보공덕보살이 이러한 법을 설할 때 팔만 육천 보살이 물러나지 않는 지위를 얻었고, 칠천 보살이 무변공덕(無邊功德)다라니·열의(悅意)다라니·무애(無碍)다라니·환희(歡喜)다라니·대비(大悲)다라니·월애(月愛)다라니·월광(月光)다라니·일애(日愛)다라니·일광(日光)다라니·수미산(須彌山)다라니·대해(大海)다라니·덕왕(德王)다라니를 얻었으며, 삼만 육천의 사람 하늘이 번뇌를 멀리 하고 때를 여의어 청정한 법의 눈을 얻었다.

부처님께서 적정의보살에게 말씀하셨다.

“그때 보공덕보살이 어찌 다른 사람이겠는가? 바로 너의 몸이니라. 이 인연으로 네가 이 다라니문을 설하는 것이니라.”

그때 문수사리보살이 게송으로 말하였다.

총지(摠持)는 미묘한 약 같아 
뭇 의혹의 병을 치료하고 
저 하늘의 감로수와 같아 
얻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으리.

그러자 공덕화왕(功德華王)보살이 게송으로 말하였다.

총지는 문자가 없으나 
문자는 총지를 나타내네.


반야와 대비(大悲)의 힘으로 
말과 문자의 설함을 여의리.

그때 산도솔타(珊琓率陀)천왕이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부처님을 향하여 합장하고 머리 숙여 발에 예배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부처님 여래께서는 불가사의하고 모든 부처님의 설법도 불가사의하며 모든 큰 보살의 행하는 바와 설하시는 바도 불가사의합니다. 우리들 모든 하늘은 숙세에 선근이 깊고 두터워서 여래를 만나 이 법을 설함을 듣고 가지가지 하늘의 모든 보배 꽃·하늘 꽃·하늘 향을 부처님 여래께 흩뿌려서 공양합니다.”

그때 세존께서 산도솔타천왕에게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무릇 부처님 여래께 공양하고자 하는 자는 마땅히 세 가지 법을 닦아야 한다. 말하자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고 정법을 보호하며 지니고[護持] 들은 바와 같이 수행하는 것이다.

대왕이여, 만약 이 세 가지 법을 수행하면 이 사람은 여래께 공양하였다 할 것이다.

대왕이여, 임시로 여래의 수명이 일 겁이라 하고, 그 동안에 세상에 머물러 있으면서 이러한 공양으로 받는 복의 과보를 설하여도 다함이 없다. 이런 까닭에 대왕이여, 만약 여래께 공양하고자 하는 자가 이 세 가지 법을 갖추면 공양이라 이름한다.

대왕이여, 만약 여래의 하나의 4구게(句偈)라도 보호하여 지니면, 이 사람은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부처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옹호하는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모든 부처님 여래께서는 다 법을 따라서 태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법을 공양하는 자는 참된 공양[眞供養]이라 이름한다. 여기에는 일체 재물이 미치지 못하니, 법공양이란 모든 공양 가운데 가장 제일인 것이다.”

그때 세존께서 산도솔타천왕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생각하건대 과거 한량없고 끝이 없는 아승기의 아승기겁 수로 보살도를 행할 때 허공 중에서 모든 하늘이 게송을 설하는 것을 들었다.

하늘 사람은 큰 보배창고를 멀리 여의나니 
왕·도적·물·불로 인하여 모두 잃는다.


백천만 겁에도 법은 듣기 어렵고 
들어도 갖지 못하고 베풀지 못하네.



도심(道心)의 근본은 중생 교화라 
여실히 수행하면 마음은 고요하리.


나와 남 이롭게 마음 평등해 
이와 같은 수행이 부처님 공양일세.

대왕이여, 내가 지난 옛날 처음 이 게송을 듣고 곧 남을 위하여 설하자 팔천의 사람이 아뇩다라삼먁보리심을 발하였다. 이런 까닭으로 대왕이여, 법공양이 가장 제일이다. 왜냐 하면 모든 부처님께서는 법을 따라서 태어나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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