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천왕반야바라밀경(勝天王般若波羅蜜經) 제5권
08. 무소득품(無所得品)
그때 대중 가운데 수진지(須眞胝)보살마하살이 승천왕에게 말하였다.
“여래께서 대왕을 위하여 수기를 주셨습니까?”
승천왕이 대답하였다.
“잘 생각하십시오, 보살이여. 말하겠습니다, 선남자여. 내가 수기를 받았으나 꿈속과 같습니다.”
또 다시 물었다.
“대왕이여, 이와 같은 수기는 어떠한 법을 얻었습니까?”
대답했다.
“선남자여, 부처님께서 나에게 주신 수기는 마침내 얻은 바가 없습니다.” “얻은 바가 없다는 것은 어떤 법입니까?”
대답하였다.
“중생이라는 것과 수명ㆍ타인이라는 것ㆍ양육한다는 것ㆍ음(陰)ㆍ계(界)ㆍ입(入)을 얻지 못하며 얻은 것도 없습니다. 혹은 착함과 착하지 않음, 물듦과 청정함, 유루(有漏)와 무루, 세간과 출세간, 혹은 유위(有爲)와 무위, 혹은 생사와 열반 모두 얻는 바가 없습니다.”
또 다시 물었다.
“만약 얻는 것이 없다면 이를 수기하였다고 하는 것입니까?” “선남자여, 얻는 바가 없기 때문에 수기를 얻었다고 합니다.” “만약 대왕께서 말씀한 뜻과 같다면 두 가지 지혜가 있으니, 첫째는 얻을 바 없음이요, 둘째는 수기를 얻음입니다.” “만약 둘이 있다면 수기는 없습니다. 왜냐 하면 부처님의 지혜는 둘이 없기 때문이니, 모든 불세존(佛世尊)께서는 둘이 아닌 지혜로써 보살에게 수기를 주십니다.” “만약 지혜가 둘이 없다면 어떻게 수기를 받거나 줄 수 있습니까?” “수기를 주고받는 것은 그 한계에 두 차이가 없습니다.” “두 한계의 차이가 없다면 어떻게 수기가 있겠습니까?” “두 한계의 차이가 없음을 통달하는 것이 곧 수기가 있는 것입니다.” “대왕이여, 지금 어느 한계 안에 머물러서 수기를 받으셨습니까?” “나는 나[我]라는 한계 안에 머무르고, 중생의 한계ㆍ수명의 한계ㆍ사람의 한계에 머물러 머물러서 수기를 받았습니다.” “이 나[我]라는 한계 따위는 어디에서 구합니까?” “여래 해탈의 한계에서 구합니다.” “여래 해탈의 한계는 또 어디서 구합니까?” “무명(無明)과 존재[有]와 욕망[愛]의 한계에서 구합니다.” “무명ㆍ존재ㆍ욕망은 또 어디서 구합니까?” “끝끝내 나지 않는 경지에서 구해야 합니다.” “이 끝끝내 나지 않는 경지는 어디서 구합니까?” “이 경지는 마땅히 알음알이[知]가 없는 경지에서 구해야 합니다.” “알음알이가 없는 경지는 아는 바가 없을 것이거늘 어떻게 이런 경지를 거기에서 구하겠습니까?” “만약 아는 바가 있으면 구해도 얻을 수 없지만 아는 바가 없으므로 거기에서 구해야 합니다.” “이 경지는 말을 여의었거늘 어떻게 구하겠습니까?” “언어의 길이 끊겼으므로 구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언어의 길이 끊어졌다고 합니까?” “모든 법이 뜻에 의할지언정 말에 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뜻에 의지한다고 합니까?” “뜻이라는 모습은 볼 수 없습니다.” “무엇을 볼 수 없다고 합니까?” “분별함이 생기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의지해야 할 것이요 나도 의지하나니, 일을 두 가지로 분별하지 않는 까닭에 통달이라고 이름합니다.” “만일 뜻을 보지 못한다면 무엇을 구한다는 것입니까?” “취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지 못하는 까달게 이름을 구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법을 구할 수 있다면 이것이 구하는 것이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법을 구한다는 것은 구하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만약 구할 수 있다면 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이 법입니까?” “법은 문자도 없고 언어도 여의었습니다.” “문자와 언어를 여읜 데서 무엇이 이 법입니까?” “문자와 언어의 성품을 여의고 마음이 가는 곳이 없음을 법이라 이름하고, 모든 법성은 다 말로 할 수 없으며 그 말할 수 없다는 것도 말할 수 없습니다. 선남자여, 만약 설할 것이 있다면 이것은 허망이어서 그 가운데 진실한 법은 없는 것입니다.” “모든 부처님과 보살이 항상 말로 설명하셨는데 그렇다면 그것이 다 허망한 것입니까?” “모든 부처님과 보살들은 처음부터 마칠 때까지 한 글자도 말씀하시지 않거늘 어찌 허망하다 하겠습니까?” “만약 설한 것이 있다고 한다면 무엇이 잘못입니까?” “말한 허물입니다.” “말하면 무슨 허물이 생깁니까?” “사의(思議:생각하고 의논하는 행위)한 허물이 생깁니다.” “어떤 법이 허물이 없습니까?” “말하건 말하지 않건, 두 모양이 다르다고 보지 않으면 허물이 없습니다.” “허물은 무엇이 근본이 됩니까?” “집착하는 것이 근본입니다.” “집착은 무엇이 근본이 됩니까?” “마음으로 집착하는 것이 근본입니다.” “그 집착은 무엇이 근본입니까?” “허망한 분별이 근본입니다.” “허망한 분별은 무엇이 근본입니까?” “반연(攀緣)이 근본입니다.” “무엇을 반연합니까?” “물질ㆍ소리ㆍ냄새ㆍ맛ㆍ감촉ㆍ법을 반연합니다.” “어찌하여야 반연이 없어집니까?” “애욕과 집착을 여의면 반연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래께서 항상 말씀하시기를 모든 법이 평등하여 반연할 수 없다 하셨습니다.”
이 법을 말씀하실 때에 오천 비구가 번뇌의 티끌을 멀리 여의고 법의 눈이 맑아졌으며, 일만 이천 보살이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으며, 한량없는 끝이 없는 중생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얻었다.
그 때에 승천왕이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부처님을 향하여 합장하고 머리를 숙여 발에 예배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선남자와 선여인 가운데 이 반야바라밀을 듣고 아직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지 못한 자는 어떻게 발심하여 다 물러나지 않는 경지를 얻으며, 항상 수승하게 증진하여 수행하면 타락하지 않게 됩니까?”
부처님께서 승천왕에게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잘 듣고 잘 생각하여라. 마땅히 왕을 위하여 말해 주리라. 선남자와 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듣고 수승하게 증진하여 수행하면 타락하여 물러남이 없을 것이다.”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듣기를 원합니다.”
부처님께서 승천왕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선남자와 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듣고 청정한 마음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내어 바른 마음을 구족하고 어진 이와 성인[賢聖]을 가까이하며, 바른 법 듣기를 좋아하고 질투와 인색함을 멀리 여의며, 항상 고요한 행을 닦고 보시하기를 좋아하며, 마음에 걸림이 없어서 온갖 더러움을 여의며, 업과 과보를 바르게 믿어 마음에 망설임이 없으며, 흑업(黑業)과 백업(白業)을 여실히 알며, 몸과 목숨을 위해서라도 끝내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을 하지 않느니라.
대왕이여, 선남자와 선여인이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면 살생을 범하거나 주지 않은 것을 가지거나 사음이나 거짓말이나 이간하는 말ㆍ험한 말ㆍ꾸민 말이나 탐내고 성내거나 삿된 견해를 멀리 여의고, 마음을 항상 10선도(善道)에 두느니라.
대왕이여, 선남자와 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방편의 힘으로 만약 사문이나 바라문을 보고 바르게 정진을 행하고, 계행이 청정하고, 들은 것이 많고 뜻을 알며, 항상 바른 생각으로 심성(心性)을 잘 조복(調伏)시켜 고요하고 산란하지 않게 하며, 입으로는 항상 고운 말을 하고 모든 악하고 착하지 못한 법을 멀리 여의며, 여러 가지 선을 닦고 익히며 스스로를 뽐내어 높은 체 하지 않고 남을 낮게 여기지도 않으며, 험한 말이나 옳지 못한 말을 하지 않으며, 생각 두는 곳을 버리지 않아 그 마음을 바르게 조절하며, 생사의 흐름[有流]을 끊어 독화살을 뽑고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생사의 어려움[有難]을 뛰어넘으면 미래의 과보[後有]를 건널 것이다.
대왕이여, 선남자와 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만약 이와 같은 보살마하살을 보면 친근하여 의지할 것이니, 이 사람이 선지식이 될 것이며 보살마하살은 방편의 힘으로 설법할 것이다. 선남자여, 보시로는 큰 부자가 될 것이고 지계(持戒)로는 하늘에 태어날 것이며, 법을 들으면 큰 지혜를 이룰 것이다.”
또 다시 말씀하셨다.
“보시를 행하면 보시의 과보가 있고, 질투를 행하면 질투의 과보가 있으며, 인욕을 행하면 인욕의 과보가 있고, 정진을 행하면 정진의 과보가 있다. 선정을 행하면 선정의 과보가 있고, 반야를 행하면 반야의 과보가 있으며 어리석음에는 어리석음의 과보가 있고, 몸으로 짓는 선행에는 선행의 과보가 있으며, 몸으로 짓는 악한 행에는 악행의 과보가 있다. 또한 입으로 짓는 선한 업에는 입의 선한 업에 대한 과보가 있고, 입으로 짓는 악한 업에는 입의 악한업에 대한 과보가 있으며, 뜻으로 짓는 선한 업에는 뜻의 선한 업에 대한 과보가 있고, 뜻으로 짓는 악한 업에는 또한 뜻의 악한 업에 대한 과보가 있다. 모든 선남자와 선여인은 마땅히 이 법에 상응하여 짓거나 짓지 말아야 한다.
만약 이와 같이 닦으면 긴 밤에 즐거움을 누릴 것이며, 이와 같이 짓지 않는다면 긴 밤에 고통을 얻을 것이다.
대왕이여, 선남자와 선여인이 이 방편의 힘으로 선지식을 친근히 하여 이와 같은 차례로 설법을 들을 때, 보살마하살이 만약 그 사람이 법의 그릇이라고 알면 마땅히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을 설할 것이니, 이른바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ㆍ무작(無作)ㆍ무생무멸(無生無滅)ㆍ나 없음[無我]ㆍ유정 없음[無衆生]ㆍ수명이 없음[無命]ㆍ남도 없음[無人]과 매우 깊은 인연법을 설한다. 이 법으로 인하여 저 법이 생기고, 이 법이 멸함으로 저 법도 따라서 멸한다. 그러므로 무명(無明)은 행(行)을 인연하고, 행은 식(識)을 인연하며, 식은 이름과 물질[名色]을 인연하고, 이름과 물질은 6입(入)을 인연하고, 6입은 촉(觸)을 인연하고, 촉은 수(受)를 인연하고, 수는 애(愛)를 인연하고, 애는 취(取)를 인연한다. 취는 유(有)를 인연하고, 유는 생(生)을 인연하며, 생은 늙고 죽고 근심하고 슬퍼하며 고뇌함을 인연하니, 무명이 멸하면 행이 멸하고, 행이 멸하면 식이 멸하고, 식이 멸하면 명색이 멸하고, 명색이 멸하면 6입이 멸하며, 6입이 멸하면 촉이 멸하고, 촉이 멸하면 수가 멸하고, 수가 멸하면 애가 멸하고, 애가 멸하면 취가 멸하고, 취가 멸하면 유가 멸하고, 유가 멸하면 생이 멸하고, 생이 멸하면 늙고 죽고 근심하고 슬퍼하며 고뇌함이 멸하게 된다.
대왕이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방편의 힘으로 이와 같은 설법을 하니, 진실한 가운데는 하나의 법도 생기고 멸할 것이 없다. 무슨 까닭인가? 세간의 모든 법은 모두가 인연으로 생기니 내가 짓는 것도 없고 오직 인연이 화합함이요, 하나도 진실한 법이 없으니 생기고 멸함을 받는다는 것은 허망하게 분별함이라 3계(界) 안에는 거짓 이름만이 있을 뿐이요, 업의 번뇌를 따라서 과보를 받기 때문이다.
만일 반야바라밀로써 여실히 모든 법을 관찰하면 생기는 것도 없고 멸하는 것도 없으며, 짓고 받는 자도 없다. 만약 법에 짓는 것이 없으면 또한 행이 없고 곧 모든 법에 마음이 집착할 것이 없으니, 이른바 색(色)ㆍ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에 집착하지 않고, 안색식(眼色識)에 집착하지 않고 의법식(意法識)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대왕이여,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설할 것이니, 모든 법은 자성이 공하고 여의어서 취함도 없고 집착할 것도 없다 하느니라. 선남자와 선여인은 이와 같은 설법을 인연하여 곧 물러나 잃어버림이 없다.
대왕이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여러 부처님 뵈옵기를 좋아하고, 바른 법 듣기를 좋아하여 비천한 종족에 떨어지지 않고, 태어나는 곳마다 부처님을 뵈옵게 되며, 바른 법을 듣고는 승가에게 공양하고, 항상 부처님을 뵙고는 용맹하게 정진하여 바른 법 구하기에 힘을 쓰고, 유위(有爲)에 집착하지 않으며, 처자ㆍ노동ㆍ생겼다 없어지는 재물을 다 탐착하지 않고 모든 욕심에 더럽히지 않으며, 항상 바른 가르침에 의지하여 모든 부처님을 따르는 생각[佛隨念]을 닦으며, 속세를 버리고 집을 떠나서 교법대로 수행하고는 다시 남에게 말해 주며, 비록 남에게 말해 주나 보답을 바라지 않고, 법문 듣는 무리들을 보면 언제나 인자한 마음을 내고, 모든 중생에 대하여 항상 가엾이 여기는 생각을 내고, 많이 듣고 널리 배워 목숨을 아끼지 않고, 욕심을 적게 하여 만족할 줄 알고 멀리 여의는 것을 항상 즐거워하며, 다만 의리만을 취하여 말에 걸리지 않고, 설법하거나 수행하되 자기만을 위하는 일이 없고, 오직 중생을 교화하여 위없는 즐거움을 얻으니, 이른바 부처님의 지혜인 것이다.
대왕이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이와 같이 수행하여 방일(放逸)을 멀리하고, 여러 감관을 포섭해서 보호하나니, 눈으로 색(色)을 보면 색의 모양[色相]에 집착하지 않고 여실하게 이 색의 허물을 관찰할 것이며, 귀의 소리ㆍ코의 냄새ㆍ혀의 맛ㆍ몸의 감촉ㆍ뜻의 법도 그렇게 하느니라.
만일 모든 감관을 방종하게 하면 방일이라 하고, 잘 포섭해서 보호하면 방일치 않는다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자기 마음을 조화롭게 복종시키고 장차 남의 뜻도 잘 보호하면 방일치 않는다고 한다. 또 탐욕을 멀리 여의어 마음이 착한 법에 수순하고, 심사(尋伺)ㆍ성냄ㆍ어리석음 따위 착하지 못함의 근본과 몸과 입의 나쁜 업과 두 가지 삿된 생활과 그 밖의온갖 착하지 못한 일을 모두 멀리 여의면 방일치 않는다 한다.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마음으로 항상 바르게 생각하면 방일치 않는다 하느니라.
대왕이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함에는 모든 법에는 믿음이 으뜸이라 바르게 믿는 사람은 나쁜 길에 떨어지지 않고 마음에 악을 행하지 않아 성인이 칭찬한다.
대왕이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여법하게 수행하면 태어나는 곳마다 항상 부처님을 만나게 되고, 2승을 멀리 여의어 바른 길에 머물고, 큰 자유로움을 얻어 큰 일을 성취하나니, 이른바 여래의 바른 지혜의 해탈이다.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안락을 구하고자 하면 마땅히 살바야의 길을 수순하여야 한다.
대왕이여, 지금의 이 대중들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듣게 된 것은 이미 한량없는 백천만 겁에 여러 부처님들께 공양하고 착한 공덕을 닦아 모은 때문이니, 이 까닭에 부지런히 정진할지언정 게을리 하여 물러나지 말아야 하느니라.
대왕이여, 만일 하늘이나 인간들이 여러 감관을 잘 제어하여 5욕(欲)에 집착하지 않고, 세간을 멀리 여의어 세간을 벗어나는 법을 항상 닦으며, 3업(業)이 청정하여서 도에 도움이 되는 법을 익히면 이것을 방일치 않음이라 하느니라.
대왕이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닦아 바른 믿음을 구족하여 마음에 방일하지 않을 것이다.
대왕이여, 보살마하살이 바른 믿음을 갖추어 마음을 방일치 않고, 정진하여 바르게 생각하려 하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 이 생각하는 지혜에 의하여 구하려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빨리 증득하느니라.
대왕이여, 보살마하살들이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바른 믿음을 구족히 하고, 마음을 방일치 않으며, 부지런히 정진하며 바른 기억[正念]을 얻으면, 이 생각하는 지혜에 의하여 있고 없음[有無]을 아느니라. 무엇을 있다 없다 하는가? 바른 행을 닦아서 바른 해탈을 얻는다 하면 이를 있음이라 하고, 삿된 행을 닦아서 바른 해탈을 얻는다 하면 이를 없음이라 하느니라.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뜻 등은 세상의 이치에는 있다고 하나 진실한 가운데는 없다. 보살마하살이 부지런히 정진하여 닦아 보리를 얻는 것은 있다고 하고, 게으른 보살이 보리를 얻는 것은 없다고 하며, 5음(陰)이 모두가 허망한 전도(顚倒)에서 생긴다 함은 있다고 하고, 세속의 법이 모두가 인연에서 생기지 않고 자연히 생긴다 함은 없다고 하며, 물질이 무상하고 괴롭고 무너지는 법이라 함은 있다고 하고, 항상하고 즐거워서 무너지는 법이 아니라 함은 없다고 하며, 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도 그러하니라.
무명이 행을 인연한다 함은 있다고 하고, 무명을 떠나서 행이 있다 함은 없다고 하며, 행이 식을 인연하고 나아가 태어남이 죽음ㆍ죽음ㆍ걱정ㆍ한탄ㆍ괴로움ㆍ근심ㆍ번민을 인연함도 모두 그러하니라.
보시하면 큰 부귀를 얻는다 함은 있다고 하고, 보시하면 빈궁하게 된다함은 없다고 하며, 청정한 지계는 좋은 길[善道]에 태어난다 함은 있다고 하고, 나쁜 길에 태어난다 함은 없다고 하며, 나아가 반야바라밀을 닦으면 성인(聖人)이 된다 함은 있다고 하고, 범부가 된다 함은 없다고 하느니라.
만약 많이 들음을 닦으면 큰 지혜를 얻는다 함은 있다고 하고, 어리석게 된다 함은 없다고 하며, 바른 생각을 닦으면 벗어날 수 있다 함은 있다고 하고, 그렇지 못하다 함은 없다고 하며, 삿된 생각을 닦으면 벗어나지 못한다 함은 있다고 하고, 벗어난다 함은 없다고 하느니라.
나와 내 것[我所]이 없어서 해탈을 얻는다 함은 있다고 하고, 나와 내 것이 있는데 해탈을 얻는다 함은 없다고 하며, 허공이 온갖 곳에 두루한다 하면 있다고 하고, 5음 가운데 나가 있다 함은 없다고 하며, 여실히 지혜를 닦으면 해탈을 얻는다 함은 있다고 하며, 삿된 지혜에 집착하면 해탈을 얻는다 함은 없다고 하며, 나라는 견해ㆍ중생이라는 견해ㆍ수명이라는 견해ㆍ사람이라는 견해를 여의면 공의 지혜를 얻는다 함은 있다고 하고, 나ㆍ중생ㆍ수명ㆍ사람이라는 견해에 집착하면 공의 지혜를 얻는다 함은 없다고 하느니라.
대왕이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이와 같이 세상에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알아서, 평등한 이치를 닦아서 모든 법이 인연에서 생겨서 세속인 까닭에 있는 줄 요달하나 항상한 소견을 일으키지 않고, 인연법의 본 성품이 모두가 공함을 잘 아나 아주 없다는 소견을 내지 않고 온갖 불법을 여실히통달하느니라.
대왕이여, 모든 부처님 여래께서는 간략히 보살들에게 네 가지 법을 말씀해 주셨다. 세간의 사문ㆍ바라문과 장수천(長壽天)은 모두 항상하다고 집착하기 때문에 그들의 집착을 깨뜨리기 위하여 행(行)은 무상하다 하셨고, 어떤 하늘과 인간들이 흔히 쾌락에 집착하므로 그들의 집착을 깨뜨리기 위하여 온갖 것은 괴롭다 하셨고, 외도들이 사견으로 몸 가운데에 나가 있다고 집착하므로 그들의 집착을 깨뜨리기 위하여 나가 없다 하셨고, 뛰어난 체 하는 이들을 위하여 열반은 고요하다 하셨느니라. 무상하다고 하신 까닭은 그들로 하여금 구경의 법을 힘써 구하게 하시기 위함이요, 괴롭다고 하신 까닭은 소원하고 구하는 생각을 멀리 여의게 하시기 위함이요, 나가 없다고 말씀하신 까닭은 공의 법문을 드러내시고자함이요, 고요하다고 말씀하신 뜻은 무상(無相)을 요달하게 하고자함이니라.
대왕이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이와 같이 배우고 닦아 모든 착한 법에서 끝내 물러나지 않고 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는 것이다.”
그때 승천왕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어떤 행을 닦아서 바른 법을 보호합니까?”
부처님께서 승천왕에게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행동이 말과 어긋나지 않고, 스승과 어른을 존중하며, 바른 법을 따르고 마음으로 부드러움을 행하며, 순수하고 질박하고 모든 근이 적정하며, 온갖 나쁜 법을 멀리 여의고 선근을 닦으면 이것이 바른 법을 보호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대왕이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몸의 업과 입의 업과 뜻의 업이 자비함을 닦고 이익과 명예를 구하지 않으며, 계율을 청정하게 지니어 온갖 견해를 멀리 여의면 이것이 바른 법을 보호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대왕이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마음으로 애욕의 행[愛行]을 따르지 않고 성내는 행을 따르지 않으며, 어리석은 행을 따르지 않고 두려운 행을 따르지 않는 것을 바른 법을 보호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대왕이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함을 닦아 익히는 것을 바른 법을 보호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대왕이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설법과 수행을 모두 들은 것과 같이 하는 것을 바른 법을 보호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대왕이여, 3세(世)의 모든 부처님께서는 바른 법을 보호하기 위하여 천왕들과 인왕(人王)들을 옹호하여 바른 법이 세간에 오래 머무르도록 하셨다. 이제 그 다라니를 말하리라.
또한 용ㆍ야차ㆍ건달바ㆍ아수라ㆍ가루라ㆍ긴나라ㆍ마후라가와 일체 중생이 다 안온함을 얻으리라.
대왕이여, 이 대신주(大神呪)는 3세의 모든 부처님께서 바른 법을 보호하기 위하여 천왕과 인왕을 옹호한 것이니 마땅히 외워 가지면 원적(怨敵)과 악난(惡難)과 마귀의 장애로 바른 법이 모두 다 소멸하려는 것을 지키리라. 모든 부처님 여래께서 바른 법이 세상에 오래 머물게 하려는 까닭에 천왕과 인왕을 보호하여 그들이 법을 보호하도록 하셨다.”
이 반야바라밀다의 신주(神呪)를 말씀하실 때에 일체 천궁과 대지ㆍ모든 산ㆍ큰 바다가 다 진동하고 대중 가운데 팔만의 중생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였다.
그때 승천왕이 칠보의 그물로 부처님 위를 덮으며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함에 어떤 법을 닦아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에서 움직이지 않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승천왕에게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함에는 걸림 없는 대자[無礙大慈]와 싫음 없는 대비[無厭大悲]를 부지런히 닦아 익히어 큰 일을 이루고, 부지런히 정진하여 공삼매(空三昧)를 배우고, 또 평등한 지혜를 부지런히 닦으며 방편 선교로 청정한 큰 지혜를 여실히 통달하며, 3세의 평등한 이치를 분명히 깨닫되 걸림이 없고, 3세의 부처님께서 행하시던 바른 도를 밟느니라. 대왕이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함에는 이와 같은 법을 닦으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에서 움직이지 않느니라.”
승천왕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어떻게 행하여야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일을 듣고 두려워하지 않고 겁내지도 않으며 놀라지도 않고 후회하지도 않습니까?”
부처님께서 승천왕에게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보살은 마땅히 반야를 구족하고 사나(闍那 : 지혜)를 구족하며 선지식을 가까이하여 깊은 법을 듣는 것을 즐거워하며, 모든 법은 다 허깨비 같음을 깨달아 알고 세상이 항상하지 않음을 깨달아 마음이 머물러 집착하지 않으니, 마치 허공과 같으며 일체의 법은 생긴 것은 반드시 멸함이 있다는 것을 아느니라.
대왕이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함에 이와 같은 법을 닦으면 여러 여래의 부사의한 일을 들어도 겁내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놀라지도 않고 후회하지도 않느니라.”
승천왕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어떻게 반야바라밀을 행하여야 온갖 곳에서 자유롭게 됩니까?”
부처님께서 승천왕에게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5신통을 닦아 걸림 없는 여러 가지 해탈문ㆍ4선(禪)ㆍ4무량심ㆍ방편ㆍ반야바라밀다를 구족하면 어디서나 자유로움을 얻느니라.”
승천왕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 어떠한 법문을 얻습니까?”
부처님께서 승천왕에게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 사나(闍那 : 지혜)문을 얻으면 영리하거나 둔한 중생의 근기에 들어가며, 반야의 문을 얻어 글귀의 뜻을 구별하고 다라니문(陀羅尼門)을 얻어 일체의 언어와 음성을 다 알며[總知], 막힘없는 문[無碍門]을 얻어 설법이 끝이 없게 되느니라.
대왕이여,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모든 문을 얻는다고 하느니라.”
승천왕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 어떠한 힘을 얻습니까?”
부처님께서 승천왕에게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고요한 힘[寂靜力]을 얻나니, 대비를 성취한 까닭이다. 정진의 힘을 얻나니, 아비발치를 성취한 까닭이다. 많이 듣는 힘을 얻나니, 큰 지혜를 성취한 까닭이다. 믿고 즐기는 힘을 얻나니, 해탈을 성취한 까닭이다. 수행의 힘을 얻나니, 벗어남을 성취한 까닭이다. 인욕의 힘을 얻나니, 중생을 애호하는 까닭이다. 보리 마음의 힘을 얻나니, 나[我]라는 견해를 끊어 없앤 까닭이다. 대비의 힘을 얻나니, 중생을 교화하여 인도하는 까닭이다. 무생법인의 힘을 얻나니, 10력(力)을 성취한 까닭이니라. 대왕이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함에 이와 같은 갖가지 힘을 얻느니라.”
이 법문을 말씀하실 때에 대중 가운데 오백 보살이 무생법인을 얻었고, 팔천 천자가 아비발치를 얻었고, 일만 이천 천자들이 번뇌를 멀리하고 때를 여의어 법의 눈이 맑아졌으며, 사만의 사람과 하늘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다.
09. 증권품(證勸品)
그때 부처님께서 승천왕에게 말씀하셨다.
“과가 헤아릴 수 없고 생각할 수도 없는 아승기의 아승기겁 세상에 부처님이 계셨으니, 이름이 공덕보왕(功德寶王) 여래ㆍ응공ㆍ정변지ㆍ명행족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조어장부ㆍ천인사ㆍ불세존이다. 그 나라의 이름은 보장엄(寶莊嚴)이고, 겁의 이름은 선관(善觀)이었다. 그 국토는 풍부하고 즐거워서 아무런 병이나 번뇌가 없었고, 인간과 하늘들이 서로 왕래하기에 아무런 걸림이 없었으며, 땅이 평평하여 손바닥 같았고, 산이나 언덕이나 둔덕이나 구덩이나 가시덤불 따위는 하나도 없었고, 온 땅 위엔 오직 보드라운 풀만이 돋았는데 보드랍고 낙낙함이 마치 공작새 털과 같았으며, 길이는 겨우 네 손가락 두께이었느니라. 여기에 발을 디디면 살짝 누웠다가 발을 들면 다시 솟아올랐느니라. 가지가지 이름의 꽃과 수마나화(須摩那花)ㆍ첨복가화(瞻蔔伽花) 및 그 밖의 갖가지 꽃들로서 두루두루 장엄하였는데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아 사계절이 조화롭고, 순수한 푸른 색의 유리로 그 땅을 이루었다. 또한 이 세계의 중생들은 심성이 잘 길들어서 3독과 번뇌가 조복되어 움직이지 않았다. 이 공덕보왕 부처님께는 성문(聲聞) 대중이 일만 이천 나유타였고 보살마하살 대중은 육십이억이 있었다. 그 때 사람들의 수명은 몹시 길어서 삼십육억 나유타였으나 그 중에는 혹 일찍 죽는 이도 있었느니라.
이 때에 무구장엄(無垢莊嚴)이라는 한 국토가 있었는데 그 성의 남북이 백이십팔 유순(由旬)이었고, 동서의 길이가 팔십 유순이었다. 십천(十千) 개의 정원이 꾸며져 있고, 십천 개의 작은 성이 빙 둘러 있었는데, 그곳 전륜성왕의 이름은 치세(治世)로서 칠보를 구족한 사천하(四天下)의 왕이었다. 일찍이 한량없는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여 깊이 선근을 심었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네 개의 정원[園苑]이 있어서 아름다운 꽃으로 장엄하였고, 공덕열의(功德悅意)라는 공작이 노닐었는데 사계절이 즐기기에 알맞았다. 성벽의 두께는 십육 유순이고, 문과 성첩[堞]과 망루[樓觀]는 다 칠보를 사용하였고, 네 개의 큰 연못이 있는데 모두 너비가 반 유순이었으며, 칠보로 언덕을 만들었고 연부단금으로 계단[階道]을 만들었으며, 그 밑바닥에는 묘하고 좋은 황금 모래가 펴 있었고, 못 안에는 8공덕수(功德水)가 가득하였으며, 보배 연꽃이 자라며, 오리ㆍ기러기ㆍ거위ㆍ학ㆍ원앙새ㆍ원숭이가 놀았고 언덕에는 여러 가지 나무를 심었으니 백단(白檀)ㆍ적단(赤檀)ㆍ시리사(尸梨沙 : 合歡樹) 등이고, 그 위에는 앵무ㆍ사리(舍利)ㆍ가조(迦鳥)가 모여 와서 놀았다.
왕의 내궁에는 칠십천(千)의 사람이 모습을 단정하게 하고, 보녀(寶女)를 받들어 섬기며 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향하여 발심하였다. 왕에게는 천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모두 힘이 세고 용맹하여 원수를 무찌를 수 있었고, 또 스물여덟 가지 대장부상(大丈夫相)을 갖추었는데, 이미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향하여 발심하였다.
그때 공덕보왕여래께서 한량없는 하늘ㆍ용ㆍ야차ㆍ건달바ㆍ아수라ㆍ가루라ㆍ긴나라ㆍ마후라가와 인비인들을 앞뒤에 거느리고 무구장엄 큰 성으로 들어가시려 하니, 치세성왕이 칠보와 천명의 아들과 궁인들과 함께 세존을 맞이하여 받들며 가지가지 미묘한 공양을 베풀었다.
세존과 모든 대중들은 공양을 받고 나서 다시 본래의 처소로 돌아가시고 왕은 칠보와 천명의 아들과 나인[內人]과 더불어 성을 나와서 봉송(奉送)하고 또한 곧 환궁하였다.
이때 치세왕이 홀연히 탄식하여 말하였다.
‘사람의 몸은 무상하고 부귀는 꿈과 같다. 여러 감관이 결함이 없기도 어렵거늘 하물며 여래를 만나서 묘한 법을 듣는 것이 희유하지 않으랴. 마치 우담바라꽃과 같구나.’
그러자 천 명의 아들은 부왕이 세존을 앙모하고 바른 법 듣기를 소원하는 것을 알고, 곧 우두전단(牛頭栴檀)과 칠보로 장엄한 아름다운 대(臺)를 만들었다. 그 전단 한 냥의 값은 염부제의 값과 같다. 이 대는 동서의 길이가 십 유순, 남북의 길이는 삼십 유순이었고, 사방의 큰 기둥은 뭇 보배로 장엄하였고, 천 개의 보배 바퀴가 있었다. 여러 아들들이 가지고 가서 성왕에게 바치니, 성왕이 이를 받고 칭찬하였다.
‘훌륭하다, 나의 아들들아. 이제 나는 부처님께 가서 바른 법을 들으리라.’
그러자 천 명의 아들이 대의 가운데에 사자좌를 만들어 놓고 성왕과 모든궁인을 편안하게 앉게 하니, 그 대는 네 가장자리에 비단으로 번기와 일산[蓋]을 달았고 칠보의 그물을 위에 덮었으며, 모서리에는 금방울을 달고 가지가지 꽃들, 즉 첨복가화ㆍ수마나화ㆍ우발라화ㆍ구물두화ㆍ분다리화ㆍ가마라화(迦滅華)를 대 위에 뿌리고, 값을 매길 수 없는 향을 사르고 진흙향을 바르고 가루향을 뿌렸다.
또한 천 명의 아들이 모두 함께 한 사람이 각 하나의 수레바퀴를 받들어 이 대에 올리니, 마치 큰 거위가 허공을 나는 것 같았는데 부처님께 이르러서는 고요히 움직이지 않다가 이윽고 땅에 서서히 내려왔다. 그러자 부처님 앞에 이르러 두 발에 머리를 숙여 절하고, 세존과 여러 대중을 오른쪽으로 일곱 번 돈 뒤에 한쪽에 물러섰다.
그때 성왕과 모든 궁인이 보대에서 내렸는데 왕이 보배 관을 벗으니, 궁인들은 모두 보배 신을 벗고 세존 앞에 이르러 머리를 숙여 두 발에 예배하고, 오른쪽으로 일곱 번 돌고 한쪽에 물러앉았다.
그때 보장엄왕불(寶莊嚴王佛)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성왕이여, 지금 바른 법을 듣기 위해 여기까지 온 것인가?’
그러자 치세성왕이 곧 자리에서 일어나 의복을 가지런히 정돈하고 머리로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바른 법이란 무엇입니까?’
세존께서 치세왕을 찬탄하며 말씀하셨다.
‘훌륭하도다, 훌륭하도다. 한량없는 하늘과 사람을 이익하게 하기 위하여 이런 깊은 질문을 하는구나. 여래ㆍ응공ㆍ정변지는 마땅히 대왕을 위하여 분별해 해설하리라.’
치세성왕이 곧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간절히 듣기 원합니다.’
부처님께서 치세성왕에게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일체법을 통달함을 바른 법이라 하니, 이른바 4념처(念處)ㆍ4정근(正勤)ㆍ4여의족(如意足)ㆍ5근(根)ㆍ5력(力)ㆍ7각분(覺分)ㆍ8성도분(聖道分)ㆍ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을 평등하게 통달함을 바른 법이라 이름하느니라.’
치세성왕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어떻게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대승 가운데서 항상 승진(勝進: 勝進道)을 얻어 물러나 떨어지지 않습니까?’
부처님께서 치세성왕에게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함에는 바른 믿음의 힘에 의하여 승진을 얻느니라. 무엇이 바른 믿음인가? 이른바 일체법은 나지 않고 멸하지 않아 본 성품이 고요함을 안 뒤에 바르게 행하는 사람[正行]을 항상 가까이하며, 법을 짓지 않고, 끝내 법을 만들지[造] 않으며, 마음에서 어지러움을 멀리 여의고 바른 법을 들으며, 저 이가 말하는 것을 보지 않고 내가 듣는 것을 보지 않으며, 부지런히 바른 행을 닦아 빨리 신통을 얻으며, 역량에 따라 중생을 교화하되 끝내 나는 신통이 있어서 중생을 교화하는데 저들은 나의 교화를 받는다고 보지 않는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도무지 나를 보지 않고, 중생도 보지 않아 두 곳에 평등하면 승진도를 얻어 물러나 떨어지지 않느니라.
대왕이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모든 감관을 잘 거두어서 집착함이 없게 하며, 살림 사는 기구에 대하여 무상하다는 생각을 일으키고, 법이 고요하다 하는 것과 목숨은 빌린 것과 같은 줄 아는 것이니라.
대왕이여,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은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대승 가운데서 방일하지 않느니라.
대왕이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함에 꿈속에서도 오히려 보리의 마음을 잃지 않고 중생들을 교화하여 불도를 닦게 하고, 모든 선근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며, 부처님의 신통력을 보고는 환희하고 찬탄하느니라.
대왕이여,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은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빠르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오. 이런 까닭에 대왕이여, 마땅히 부지런히 정진해서 방일한 생각을 내지 마오. 만일 보살마하살들이 법을 구하려 한다면 5욕에 집착하지 말아야 하느니라.
대왕이여, 일체 범부는 5욕을 싫어함이 없지만 성지(聖智)를 얻는 자는 버릴 수 있소. 사람의 몸은 무상하고 수명 또한 짧으니, 이런 까닭에 대왕이여,
마땅히 세간을 여의고 출세의 도를 구해야 하느니라.
대왕이여, 지금 여래에게 공양하고 얻은 선근을 네 가지 일에 회향할 것이니, 자재함이 다하지 않고, 법이 다하지 않고, 지혜가 다하지 않고, 변재가 다하지 않는 것이오. 이 네 가지 회향은 반야바라밀다와 동일한 것이어서 모두가 다함이 없느니라.
대왕이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함에는 마땅히 몸ㆍ입ㆍ뜻의 계를 깨끗이 닦아 가져야 하니, 무슨 까닭인가? 듣는 생각하고 닦기 위한 까닭이니라. 방편의 힘으로 중생을 교화하고, 반야의 힘으로 뭇 마군을 항복시키며, 원력을 성취하여 행하매 말과 어긋나지 않느니라.”
치세전륜왕이 이와 같은 부처님의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의 설법을 듣고 마음에 환희심을 얻고 미증유함을 얻어 곧 보배관에 있는 영락을 풀어서 여래께 공양하고 사천하(四天下)를 부처님께 바치면서 이와 같이 서원하였다.
‘항상 범행을 닦고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을 배운 뒤에는 결정한 마음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나아가리라.’
왕궁의 여인들도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모두가 기쁜 마음을 내고, 보리의 마음을 일으키어 상의와 보배 영락을 풀어 여래께 바치었다. 치세성왕은 보배 대(臺)를 부처님께 바치고서 출가하기를 원하였다.
그러자 공덕장엄왕불께서 치세성왕을 찬탄하며 말씀하셨다.
‘훌륭하도다, 훌륭하도다. 대왕이여, 지금 행하신 것이 옛날의 서원과 어긋나지 않도다.
대왕이여,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ㆍ지혜를 부지런히 닦으시오. 과거의 부처님들도 이 법을 닦으신 까닭에 불도를 이루었고, 미래의 부처님들도 이 법을 닦아 마땅히 성불하실 것이오.’
치세성왕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보시를 수행하는 것과 반야바라밀은 다릅니까?’
부처님께서 치세성왕에게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이른 바 보시란 반야바라밀이 없다면 그저 보시의 이름만 있을 뿐이니 바라밀이 아니다. 반야바라밀다 때문에 보시바라밀이라는 이름을 얻는 것이니라. 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ㆍ지혜도 이와 같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반야바라밀의 성품이 평등한 까닭이요 공덕으로 장엄한 까닭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법을 연설하실 때에 치세성왕이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다.”
부처님께서 승천왕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함에 마땅히 저 왕과 같이 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의 치세전륜성왕은 곧 연등불(然燈佛)이고, 왕의 천 아들은 바로 현겁(賢劫)의 천 부처님이니라.”
승천왕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배우고 닦아야 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도를 이룹니까?”
부처님께서 승천왕에게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을 행하여 대자(大慈)를 닦고 익히어 모든 중생이 고뇌의 마음을 일으키지 않게 하고, 부지런히 수행하여 바라밀ㆍ4섭사(攝事)ㆍ4무량심(無量心)ㆍ조보리법(助菩提法)을 구족하고, 신통과 우파교사라(優波憍舍羅)를 닦아 배우면 온갖 착한 법이 만족히 닦아지지 않는 것이 없으리라. 이와 같이 수행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속히 성취하리라.
대왕이여, 보리의 도라 함은 곧 믿음의 마음과 청정한 마음과 거짓되고 굽음을 여읜 마음과 평등함을 행하는 마음과 두려움 없음을 베푸는 마음으로서 중생들이 모두 와서 의지하게 하느니라. 부지런하게 보시를 행하면 과보가 다함이 없고, 청정한 계율을 잘 지키면 걸림이 없고, 인욕을 닦으면 성냄이 없고, 부지런히 정진하면 수행이 쉽게 이루어진다.
선정이 있으면 산란한 마음이 일어나지 않고, 반야를 갖추면 잘 통달하고, 대비(大悲)가 있는 까닭에 끝내 물러남이 없고, 대희(大喜)가 있는 까닭에 남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대사(大捨)를 수행하면 분별을 일으키지 않고, 3독이 없는 까닭에 온갖 가시덤불[棘刺]을 여의고, 색ㆍ성ㆍ향ㆍ미ㆍ촉에 집착하지 않는 까닭에 온갖 희론을 떠나고, 번뇌가 없는 까닭에 원수를 멀리 여의고, 이승(二乘)의 생각을 버리므로 그 마음이 광대하고, 일체지를 갖추었으 므로 뭇 보배를 내느니라.
대왕이여, 보살마하살 가운데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이와 같이 배우는 이는 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리라.”
승천왕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 어떤 형체와 모습을 나타내어 중생을 교화합니까?”
부처님께서 승천왕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형체와 모습을 나타내 보이는 데는 일정한 모양이 없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모든 중생의 마음이 좋아하는 것을 따라서 곧 보살의 형체와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이 혹은 금 빛, 혹은 은 빛, 혹은 파리(頗梨) 빛, 혹은 유리 빛, 혹은 마노 빛, 혹은 자거(車渠) 빛, 혹은 진주 빛, 혹은 푸른 빛ㆍ누런 빛ㆍ붉은 빛ㆍ흰 빛, 혹은 해 빛ㆍ달 빛ㆍ불 빛, 혹은 제석(帝釋)의 빛, 혹은 범왕(梵王)의 빛, 혹은 서리[霜] 빛, 혹은 자황(雌黃) 빛, 혹은 주단(朱丹) 빛, 혹은 첨복가꽃 빛, 혹은 수마나(須摩那)꽃 빛, 혹은 파리사가(婆利師迦)꽃 빛, 혹은 파두마(波頭摩)꽃 빛, 혹은 구물두(拘勿頭)꽃 빛, 혹은 분다리(分陀利)꽃 빛, 혹은 공덕천(功德天) 빛, 혹은 거위[鵝]나 공작새의 빛, 혹은 산호 빛, 혹은 여의주 빛 혹은 허공계 빛을 나타내 보이고 하늘은 하늘로 보이고 사람은 사람으로 보이느니라.
대왕이여, 시방 항하사 세계 가운데 일체 중생의 형체와 모양대로 보살마하살은 다 이와 같이 나타낸다. 무슨 까닭인가?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함에 한 중생도 버리지 않는 까닭에 두루 거두어들이는 것이니라. 왜냐 하면 일체 중생의 마음이 제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살이 갖가지로 나타내느니라. 즉 이 보살마하살은 지난 세상에 큰 원력이 있어 모든 중생의 마음에 좋게 보이는 바를 따르니 그러므로 교화를 받는 자가 좋게 보고자 하는 몸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니라.
대왕이여, 깨끗한 거울 속에 본래는 그림자가 없으나 바깥 물체의 좋고 나쁨에 따라 갖가지로 나타내지만 이 거울은 내가 여러 가지 물체와 빛깔을 나타낸다고 분별하지 않는 것같이,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도 이와 같아 공용 없는 마음[功用心]으로 중생들이 즐거워함에 따라 나타내되 내가 몸을 나타낸다고 분별하지 않느니라.
대왕이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한 자리에서 모든 청중을 따라 혹은 보살이 설법함을 나타내고, 혹은 부처님이 설법함을 나타내고, 혹은 벽지불이 설법함을 나타내고, 혹은 성문이 설법함을 나타내고, 혹은 제석을 나타내고, 혹은 범왕을 나타내고, 혹은 마혜수라(摩醯首羅琵瑟拏)를 나타내고, 혹은 위뉴천(圍紐天 : 나라연천)을 나타내고, 혹은 사천왕을 나타내고, 혹은 전륜성왕을 나타내고, 혹은 사문을 나타내고, 혹은 바라문을 나타내고, 혹은 찰리를 나타내고, 혹은 비사수타(毘舍首陀 : 商人ㆍ農夫)를 나타내고, 혹은 거사를 나타내고, 혹은 정자를 나타내고, 혹은 보대(寶臺) 가운데 앉은 것을 나타내고, 혹은 땅 위를 걷는 것을 나타내고, 혹은 허공에 나는 것을 나타내고, 혹은 설법하는 것을 나타내고, 혹은 삼매에 든 것을 나타내느니라.
대왕이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며 하나의 형상 및 하나의 위의로 나타내 보이지 않는 것이 없느니라.
대왕이여, 반야바라밀은 마치 허공과 같아서 형상도 없고 모양도 없이 일체처에 두루한다. 비유하면 허공이 온갖 희론을 여읜 것과 같이 반야바라밀도 이와 같아 모든 언어를 초과하며, 또 허공은 세간이 수용하는 바인 것같이 반야바라밀은 온갖 성인과 범부가 모두 같이 수용하며, 또 허공이 모든 분별을 여읜 것같이 반야바라밀도 분별의 마음이 없으며, 또 허공이 온갖 물질[色]을 용납하는 것같이 반야바라밀도 온갖 불법을 용납하며, 또 허공이 뭇 물질을 나타내는 것같이 반야바라밀도 온갖 불법을 나타내며, 또 허공에 온갖 초목과 뭇 약초의 꽃과 열매들이 의지해서 자라는 것과 같이 반야바라밀에는 온갖 선근이 의지해서 자라며, 또 허공이 항상함이 아니고, 아주 없음이 아니고 말로 표현하는 법이 아닌 것같이 반야바라밀도 항상함이 아니요, 아주 없음이 아니요, 온갖 언어를 여의었느니라.
대왕이여, 세간의 사문ㆍ바라문ㆍ제석ㆍ범왕들도 반야바라밀을 헤아릴 수 없느니라.
대왕이여, 반야바라밀은 한 구절도 비유할 수가 없다. 만약 어떤 선남자ㆍ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신봉해 받아들이면 그로 인해 얻는 공덕은 헤아릴 수 없느니라. 만약 이 공덕이 형체와 모습이 있다면 허공계[空界]도 다 용납할 수 없으리라. 무슨 까닭인가? 반야바라밀은 세간과 출세간의 온갖 착한 법을 내기 때문이니, 혹은 사람과 혹은 하늘, 혹은 천왕ㆍ인왕(人王)ㆍ수다원향(須陀洹向)ㆍ수다원과(果)에서부터 아라한향ㆍ아라한과ㆍ벽지불도ㆍ보살의 10지(地)ㆍ10바라밀과 모든 부처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ㆍ일체종지ㆍ10력(力)ㆍ4무소외(無所畏)ㆍ18불공법(不共法) 따위가 모두 반야바라밀에서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이니라.”
이 법문을 말씀하실 때에 대중 가운데 오만 보살마하살이 물러나지 아니함을 얻었고, 일만 오천 천자가 무생법인을 얻었고, 일만 이천 하늘 사람이 번뇌를 멀리하고 때를 여의어 법의 눈이 청정함을 얻었고, 항하사 수의 중생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였으며, 모든 하늘이 공중에서 갖가지 음악을 연주하였는데 악기가 치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울렸고, 갖가지 하늘 꽃을 뿌려 여래의 반야바라밀에 공양하였고, 하늘ㆍ용ㆍ야차ㆍ건달바ㆍ아수라ㆍ가루라ㆍ긴나라ㆍ마후라가ㆍ사람과 사람 아닌 이들이 갖가지 꽃과 보물을 흩어 세존과 반야바라밀에 공양하며 이구동성으로 일시에 찬탄하였다.
“훌륭하십니다, 훌륭하십니다, 명쾌하게 반야바라밀을 연설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