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천왕반야바라밀경(勝天王般若波羅蜜經) 제4권
06. 평등품(平等品)
그때 승천왕이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벗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부처님을 향하여 합장하고 머리를 숙여 발에 예배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설하신 바와 같이 법성이 평등하다고 하신 것은 무엇이 평등이며 어떤 법이 평등한 까닭에 평등이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승천왕에게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모든 법을 평등하게 보면 생기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자성이 고요함을 평등이라고 이름하고, 일체 번뇌는 허망한 분별이라 생기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자성이 고요함을 평등이라 하며, 이름과 모양의 망령된 생각[名相妄想]은 생기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자성이 고요함을 평등이라 이름하고, 모든 전도됨을 멸하여 반연하여 일어나지 않음을 평등이라 하며, 능히 반연하는[能緣] 마음이 멸하여 무명(無明)·유(有)·애(愛)가 곧 모두 고요하며[寂靜], 어리석은 애(愛)가 멸한 까닭에 나와 내 것이 일어나지 않음을 이름하여 평등이라 하고, 나와 내 것이 멸하여 명색(名色)이 고요함을 평등이라 하고, 명색이 멸한 까닭에 치우친 생각[邊見]이 생기지 않음을 평등이라 하며, 항상하다거나 단멸한다는 견해가 멸하는 까닭에 몸이라는 견해[身見]가 고요함을 평등이라 하느니라.
대왕이여, 집착하는 자와 집착하는 대상과 일체 번뇌와 선법을 막는 것은 신견을 의지해서 생기는 것이니, 보살마하살은 신견을 멸하여 모든 번뇌[使]가 다 고요하여지며 바라는 것도 쉬게 되나니, 비유하면 큰 나무라도 뿌리를 뽑으면 가지가 말라죽듯이, 또는 사람이 머리가 없으면 명근(命根)이 곧 끊어지는 것과 같이 일체 번뇌도 이와 같아서 만약 신견을 끊으면 나머지 번뇌[使]는 저절로 없어지게 되느니라.
대왕이여, 만약 사람이 모든 법에 내[我]가 없음을 관(觀)하면 집착하는 자[取]과 집착할 만한 것[可取]이 다 고요해진다.”
승천왕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무엇을 나란 견해가 생겨서 진실한 이치를 막는다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승천왕에게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5음(陰)으로 이루어진 몸에 망령되이 내가 있다고 집착하면 나란 견해가 생겨나는 것이다. 진실한 법은 자성이 평등하여 능과 소[能所 : 主客]가 없는데 나란 견해에 집착하여 서로 어긋나게 되는 까닭에 막는다[障]고 하는 것이니라.
대왕이여, 이와 같이 아견이란 안에도 있지 않고 밖에도 있지 않고, 안과 밖에도 모두 있지 않느니라. 만약 머무는 바가 없다면 고요하다 할 것이고 이것이 평등이요, 아견을 멀리 여의고 평등함을 통달하면 진실한 공관(空觀)이라 하느니라. 공하고 모양이 없고[無相] 원함이 없고[無願], 자성이 고요하여[寂靜] 생기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취하지 않고 집착하지도 않으며, 아견(我見)을 멀리 여읨을 평등이라 하느니라.
대왕이여, 나란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고 진실함도 없어서 허망한 분별이며, 법이 허망한 데서 생긴다는 것도 또한 허망이니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 이와 같은 법을 관하여 허망함을 멀리 여의니 이런 까닭에 고요하고 평등하다고 하느니라.
대왕이여, 집착하는 자와 집착할 만한 대상을 태움[燃]이라 이름하고 여의는 것을 고요함이라 하며, 혹장(惑障)을 태움이라 하고 여의는 것을 고요함이라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이 선교방편으로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여실하게 알고, 모든 번뇌를 멸하여 선한 법을 증장하고 번뇌를 끊어 없애어 생기는 것도 보지 않고 멸할 것도 보지 않는 평등이라 하느니라. 또한 바라밀을 닦아 마장(魔障)을 멀리 여의어 닦을 것을 보지 않고 여의는 것도 보지 않는 것을 평등이라 하느니라. 또한 보살은 항상 보리를 돕는 법을 인연하여 성문과 벽지불의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보리를 돕는 법에서는 성문과 연각의 다른 모양을 보지 않는 것을 평등이라 하느니라. 또한 살바야(薩婆若)를 인연하여 마음에 쉬지 않고, 항상 공의 행[空行]을 닦아 대비의 힘으로 중생을 버리지 않음을 평등이라 하느니라.
대왕이여, 보살마하살은 방편이 구족하게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곧 마음에 자재함을 인연하고 마음에 모양이 없음을 인연하여 보리를 닦아서 모양이 없음과 보리가 다름을 보지 않음을 평등이라 하느니라. 또한 마음에 원함이 없음[無願]을 인연하여 삼계(三界)를 버리지 않고, 무원과 삼계가 다름을 보지 않음을 또한 평등이라 하느니라.
몸이 부정함을 관하여 마음이 청정함에 머물고, 행(行)이 무상(無常)함을 관하여 마음은 생사에 머물되 싫어하여 여의지 않으며, 중생의 고통을 관하여 열반의 즐거움에 머물며, 법에 내[我]가 없음을 관하여 모든 중생에게 대비심을 일으키느니라. 항상 중생을 위하여 부정하다는 약(藥)을 설하되 탐욕의 병을 보지 않으며, 항상 대자(大慈)를 설하되 성냄과 분함을 보지 않고, 항상 인연을 설하나 어리석음 등이 모인 병을 보지 않으며, 무상의 약을 설하되 같은 병[等病]과 무상이 다름을 보지 않으니, 이와 같이 보살마하살은 방편의 힘으로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일체법에서 마음에 자재를 인연하고 욕심을 여의는 법을 인연하여 성문을 교화하고, 성냄을 여의는 법을 인연하여 벽지불을 교화하며, 어리석음을 여의는 법을 인연하여 보살을 교화하느니라.
일체 색을 인연하여 부처님의 모습[色] 얻기를 원하나 얻을 수 없는 까닭으로 마음에 온갖 소리를 인연하여 여래의 미묘한 음성을 얻기 원하고, 마음이 온갖 향을 인연하여 여래의 청정한 계의 향[戒香]을 얻기 원하며, 또한 마음에 온갖 맛을 인연하여 여래의 맛 가운데 제일의 대장부상(大丈夫相)을 얻기 원하고, 마음에 모든 촉감을 인연하여 여래의 부드러운 손바닥을 얻기 원하며, 마음에 모든 법을 인연하여 여래의 고요한[寂靜] 마음을 얻기 원하느니라.
또한 마음에 보시를 인연하여 좋은 상호(相好)의 모습을 성취하기를 원하며, 마음에 지계[尸羅]를 인연하여 청정한 불국토를 얻기 원하며, 마음에 인욕을 인연하여 여래의 큰 범음(梵音)의 소리와 청정하고 빛나는 몸[淨光明身]을 얻기 원하며, 마음에 정진을 인연하여 중생을 제도하고 마음에 선정을 인연하여 모든 큰 신통을 성취하기길 원하며, 마음에 반야를 인연하여 일체의 견해와 번뇌를 끊기 원하느니라. 마음에 대자(大慈)를 인연하여 평등 무애하게 모든 중생이 다 안락함을 얻기 원하고, 마음에 대비(大悲)를 인연하여 정법을 수호하길 원하며, 마음에 대희(大喜)를 인연하여 중생을 즐겁게 하는 설법을 얻기 원하고, 마음에 대사(大捨)를 인연하여 중생의 번뇌의 얽매임을 보지 않느니라.
대왕이여, 보살마하살이 방편의 힘으로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두 가지 일[事]을 보지 않는 것을 평등한 행이라 한다. 마음이 4섭법(攝法)을 인연하여 중생을 교화하고, 질투하는 허물[過]을 인연하여 재물[資財]을 버리며, 파계의 허물을 인연하여 청정한 계에 머물고, 성냄의 허물을 인연하여 인욕을 얻으며, 게으름의 허물을 인연하여 부처님의 힘을 이루고, 산란함의 허물을 인연하여 여래의 고요한 선정을 얻고, 거친 지혜[麤智]의 허물을 인연하여 여래의 무애지혜를 이루느니라.
마음에 성문과 벽지불을 인연하여 위없는 대승을 이루며, 마음에 악취를 인연하여 일체 중생을 생사에서 제도하고 구해내며, 마음에 모든 하늘을 인연하여 일체법이 다 허물어짐을 알며, 모든 중생을 인연하여 견실함이 없는 것을 아느니라. 마음에 염불함을 인연하여 도를 돕는 선정을 성취하여 얻으며, 마음에 법이 생겨남을 인연하여 모든 비밀장을 통달함을 얻으며, 마음에 사문의 도리를 생각[念僧]함을 인연하여 물러나지 아니함을 얻느니라. 마음에 버림을 생각함을 인연하여 애착이 없어지고, 마음에 계를 생각함을 인연하여 청정한 계를 얻으며, 마음에 하늘을 생각함을 인연하여 모든 하늘이 찬탄하는 불도를 이루느니라.
마음에 스스로의 몸을 인연하여 부처님의 몸을 얻고, 마음에 자기의 입을 인연하여 부처님의 입[佛口]을 얻으며, 마음에 자기 뜻을 인연하여 여래의 평등한 마음을 얻고, 마음에 유위(有爲)를 인연하여 부처님의 지혜를 이루고, 마음에 무위(無爲)를 인연하여 적정함을 얻느니라.
대왕이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한 마음 한 행이 살바야를 향하지 않고 헛되이 지남이 없으며,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모든 법을 두루 인연하되 집착하지 않는 것을 우파교사라(優波憍舍羅 : 善巧方便)라고 이름하며, 이는 모든 법을 관찰하되 보리에 향하여 나아가지 않음이 없느니라.
대왕이여, 비유하면 삼천대천세계의 대지에 생긴 모든 만물을 사람이 사용하지 않는 것이 없듯이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인연된 경계는 보리를 향하여 나아가는 데 이익 되지 않는 것이 없느니라. 비유하면 온갖 물질[色]이 4대(大)를 인연하지 않고서 이루어진 것이 없듯이 이와 같이 보살이 인연한 경계는 한 법도 보리를 향하지 않는 것이 없느니라. 왜냐 하면 보살마하살이 모든 행을 닦는 것은 다 밖의 인연으로 인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니, 간탐과 질투하는 사람으로 인하여 보살이 보시바라밀을 성취하고 은혜를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 인하여 보살이 지계[尸]바라밀을 성취하며, 악한 성질의 성내는 중생으로 인하여 보살이 인욕바라밀을 성취하고 게으른 자로 인하여 보살이 정진[毘梨耶]바라밀을 성취하며, 산란한 사람으로 인하여 보살이 선정바라밀을 성취하고 모든 어리석고 둔함으로 인하여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성취하는 것이기 때문이니라.
만약 어떤 중생이 보살을 괴롭히더라도 보살은 이로 인하여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보살이 만약 보리를 향하여 선한 법을 수행하는 자를 본다면 자기 몸을 생각하고 아들과 같은 마음을 낼 것이며, 보살마하살은 만약 사람들이 찬탄하여도 기뻐하지 않고 헐뜯어도 성내지 않으며, 고통받는 중생을 보면 대비심을 낼 것이니라. 만약 즐거워함을 본다면 크게 기뻐할[大喜] 것이요, 교화하기 어려운 흉포한 중생을 인연하면 보살은 사마타(奢摩他)의 마음을 낼 것이니라. 믿고 행하는 자를 인연하면 보살은 은혜를 아는 지혜를 얻을 것이고, 만약 악한 인연이 강하고 선한 인연이 약한 중생을 보면 보살은 옹호할 마음을 일으킬 것이며, 보살이 만약 인력(因力)이 강한 자를 보면 가지가지 방편으로 그가 가르침을 받게 할 것이니라. 보살이 만약 지혜가 열려 이치를 깨달아 뜻을 아는 중생을 보면 이 사람을 위하여 매우 깊은 법을 설하며, 지혜로운 사람에게는 보살은 차례로 설법하고, 문자에 집착한 사람에게는 그 글귀의 의미를 설하며, 만약 이미 먼저 사마타를 배운 자에게는 보살은 비파사나(毘婆舍那)를 설한다. 만약 먼저 비파사나를 배운 자가 있으면 마땅히 그를 위하여 모든 삼매를 설하며, 만약 지계에 집착한 이가 있으면 지옥을 설하고, 지계에 집착하지 않았다면 설하지 않을 것이니라.
만약 듣는 것에 집착한 자에게는 생각하고 닦는 것을 설하고, 삼매에 집착하는 자에게는 반야를 설하며, 만약 아란야(阿蘭若)를 즐겨하면 마땅히 마음에 멀리 여의는 법을 설할 것이니라.
만약 부처님의 공덕 듣는 것을 즐기는 이가 있으면 성지(聖智)를 설하며, 탐욕하는 자에게는 그것이 깨끗하지 않다는 법을, 성내는 사람에게는 자비의 법을, 어리석은 자에게는 인연에서 생기는 법을, 균등하게 쌓아온 자에게는 여러 가지 법을 설하되, 혹은 부정(不淨)함을 설하고 혹은 자비를 설하며 혹은 인연을 설하여 중생을 고르게 교화[調化]하여 청정한 지계·선정·지혜를 설한다. 마땅히 불승(佛乘)에 들어와서 교화를 받는 자에게는 차례로 모든 바라밀을 설하고, 마땅히 억누르고 꺾으며 교화를 받아야 할 자는 먼저 그 기를 꺾은 후에 설법하며, 갖가지 말로 교화를 받아야 할 자는 마땅히 인연의 비유로 설하여 그들이 이해하게 할 것이니라. 마땅히 깊은 법으로 교화를 받아야 할 자는 반야바라밀과 방편의 힘과 남도 없고 나도 없고 모든 법의 모양도 없음을 설하며, 집착하고 있는 중생에게는 공의 법을 설하고 각관(覺觀)이 많은 중생에게는 모양이 없는 것을, 유위(有爲)에 즐겁게 집착한 자에게 서원이 없는 것을 설하느니라.
음(陰 : 蘊)에 집착한 중생에게는 허깨비와 같다는 것을, 계(界)에 집착한 중생에게는 없다는 것을, 입(入)에 집착한 중생에게는 꿈과 같다는 것을, 욕계(欲界)에 집착한 중생에게는 치성(熾盛)함을 설할 것이다. 만약 색계(色界)에 집착한 이에게는 행의 고통[行苦]을 설하고, 무색계(無色界)에 집착한 이에게는 행의 무상함을 설하며, 교화하기 어려운 중생에게는 성스러운 종족[聖種]을 칭찬하고, 교화하기 쉬운 중생에게는 모든 선정과 한량없는 마음을 설한다. 만약 하늘에 태어난다는 말을 듣고 교화를 받아야 할 자에게는 즐거 움[樂]을 설하고 성문의 법으로 교화를 받아야 할 자에게는 모든 진리[諦]를 설하고, 벽지불의 법으로 교화를 받아야 할 자에게는 인연법을 설하며, 보살의 법으로 교화를 받아야 할 자에게는 청정한 마음과 대비의 법을 설하느니라. 보살의 법을 수행하면 마땅히 공덕과 지혜를 설하고, 아비발치(阿鞞跋致 : 불퇴전)의 모든 보살들에게는 마땅히 청정불국토를 설하며, 일생보처(一生補處) 보살에게는 마땅히 도량을 장엄하는 것을 설하고, 부처님의 설법으로 교화를 받아야 할 자에게는 서로 이어서 차례로 설할 것이니라.
대왕이여, 보살마하살이 청정반야바라밀을 행하면 방편의 힘으로 모든 자재를 얻어 이익 되게 설법하며 헛되이 지남이 없다.”
이 보살의 자재한 법문을 설할 때 대중 가운데 삼만의 하늘과 사람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고 오천의 보살들이 무생법인을 얻었다. 그리고 세존이 흔연히 미소 지으시니 모든 부처님의 법이 그러한 것이다. 혹은 미소 지을 때 면문(面門)에서 곧 청·황·적·백·자(紫)·파리색(頗梨色)으로 빛나는 여러 가지 큰 광명을 놓아 한량없고 끝없는 세계를 두루 비추어 위로 아가니타(阿迦尼吒 : 색구경천)에까지 이르렀다가 도로 부처님 처소에 돌아와서 오른쪽으로 세 번 돌고 부처님의 이마로 따라 들어갔다.
그때 대지(大智) 사리불이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머리를 숙여 발에 예배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부처님 여래께서는 큰 인연이 없으면 이런 희유하고 상서로운 모습을 나타내지 않으시는데, 세존께서는 지금 이런 광명을 놓으시어 시방의 무량세계를 두루 비추시니 어떤 인연입니까? 원하옵건대 세존께서 설하여 주소서.”
그때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이 승천왕은 과거 한량없고 끝이 없는 아승기겁에 여러 부처님의 처소에서 많은 바라밀을 수행하여 모든 보살을 위하여 이와 같은 바라밀을 호지(護持)하여 미래세에 한량없는 백천 아승기겁을 지나 위없는 보리의 자량(資糧)을 성취할 것이며 그런 뒤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니, 이 부처님의 이름은 공덕장엄(功德莊嚴)여래·응공·정변지·명행족·선서·세간 해·무상사·조어장부·천인사·불·세존이시며, 나라 이름은 엄정(嚴淨)이고, 겁의 이름은 청정(淸淨)이라 할 것이다. 그 땅은 풍요하고 백성이 안락하고 순수한 보살들이며 그 나라는 다 칠보로 장엄하였으니, 말하자면 금·은·유리·파리(頗梨 : 水晶)·마노·자거·진주 등이니라. 이러한 칠보로 꾸며서 그 땅을 이루었으며, 평탄하기가 손바닥과 같고 향과 꽃과 부드러운 풀로 장엄하게 꾸미고, 모든 산이나 언덕·흙무더기나 가시가 없으며, 온갖 당기·번기·일산 등으로 장엄하였고, 성의 이름은 난복(難伏)이며 칠보 그물을 펼쳐 그 위에 덮었고, 누각에는 방울을 달았으며, 밤낮 여섯 때 동안 모든 하늘이 공중에서 하늘의 음악을 울리며 온갖 하늘의 향과 하늘의 아름다운 꽃을 흩뜨릴 것이니, 그 땅의 백성은 즐거움과 기뻐함이 타화천보다 더 뛰어날 것이니라.
사람과 하늘은 막힘없이 왕래하고 3악도(惡道)도 없으며, 그 땅의 중생은 오직 부처님의 지혜만 구할 뿐 이승(二乘)이란 이름도 없고, 그 부처님 세존께서는 모든 높은 수행을 하는 보살마하살을 위하여 청정한 법을 설하시며, 한량없고 끝없는 보살이 권속을 파계하거나 삿되게 행하여 집착하지 않으며, 눈먼 이나 애꾸눈이나 귀머거리나 벙어리나 곱추나 벌거벗은 모양이나 모든 육체[根]에 부족함이 있는 자가 없고, 모두 다 스물여덟 가지 상(相)을 구족하여 그 몸을 장엄할 것이니라.
그 부처님의 수명은 팔 소겁(小劫)이며 사람과 하늘의 무리는 중간에 일찍 죽는 자가 없다. 선남자여, 그 부처님 세존께서는 이와 같은 한량없는 공덕이 있어서 만약 설법하시고자 하면 먼저 광명을 놓아서 국토를 비춤에 그 모든 보살은 이 빛을 만나는 것으로 세존께서 장차 설법하실 것을 알고 모두 마땅히 나아가서 듣고자 하느니라.
그러면 모든 하늘은 세존을 위하여 백 유순(由旬)의 높이에 사자좌를 펴고 여러 가지로 장엄하게 꾸미고 한량없이 공양하며, 세존께서는 자리에 오르시어 대중을 위하여 설법하심에 그 모든 보살은 근기가 총명하고 영리하여 한 번 들으면 깨달아 이해하며 나와 내 것이 없게 된다. 음식과 양식은 생각만 하면 곧 얻을 것이니라.”
이와 같이 승천왕에게 수기(授記) 법문을 설할 때, 대중 가운데 오만의 하늘 사람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고 다 미래에 그 국토에 태어나기를 원하였다.
승천왕은 부처님 세존께서 그를 위하여 수기하심을 듣고 대단히 기뻐하며, 미증유함을 얻어 허공에 칠 다라수(多羅樹) 정도의 높이로 뛰었으며, 삼천대천세계는 여섯 가지로 진동하고 모든 하늘의 악기는 치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울렸으며, 온갖 하늘 꽃이 뿌려져서 부처님과 승천왕에게 공양하니, 이때 승천왕이 공중에서 내려와 얼굴을 숙여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았다.
07. 현상품(現相品)
그때 대지(大智) 문수사리가 승천왕에게 물었다.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 법의 성품을 통달하여 도량에 앉아 법륜을 굴리는데 무슨 인연으로 먼저 고행을 닦아 악마를 항복합니까?”
승천왕이 사리불에게 대답하였다.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함에는 실로 고행이라는 것은 없으나 외도를 항복받기 위한 까닭에 그것을 나타내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천마는 실로 허물어버리지 못하니, 이는 욕계의 주인인 까닭으로 항복시키는 모습을 보여서 모든 중생을 교화합니다.
사리불이여, 외도는 스스로 고행이 제일이라 말하므로 보살이 고행을 나타내 보여서 그들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사리불이여, 혹 어떤 중생은 다만 보살이 한쪽 무릎을 꿇고 서있는 것을 보며, 혹은 보살이 두 손을 들고 서있는 것을 보고, 혹은 보살이 태양을 보고 서있는 것을 보며, 혹은 보살이 다섯 가지 불로 몸을 태움을 보고, 혹은 보살이 몸을 거꾸로 서있는 것을 봅니다. 혹은 보살이 가시자리에 눕는 것을 보고, 혹은 쇠똥 속에 눕고, 혹은 모난 돌에 앉으며, 혹은 또 땅에 눕고, 혹은 널판에 눕는 것을 보며, 혹은 절구 위에 눕고, 혹은 먼지 속에 눕고, 혹은 널조각 옷[板衣]을 입고, 혹은 가시 옷[莣衣]을 입고, 혹은 풀옷을 입고, 혹은 나무껍질 옷을 입고, 혹은 다시 벌거벗은 모습을 보고, 혹은 허름한 옷을 입고, 혹은 얼굴이 항상 해를 향하여 해를 따라 움직이며, 혹은 피의 열매[稗子]를 먹고, 혹은 보리[麥]를 먹는 것을 보며 혹은 풀뿌리와 여러 가지 잡나무 잎을 먹으며, 열매를 먹고 꽃도 먹고, 혹은 마[薯蕷]도 먹고, 혹은 토란을 먹는 것을 보며, 혹은 연뿌리를 먹는 것을 봅니다.
혹은 육 일에 한 번 먹고, 혹은 콩을 먹는 것을 보며, 혹은 대두(大豆)를 먹고, 혹은 볶은 곡식[炒穀]을 먹으며, 혹은 마(麻)를 먹는 것을 보며, 혹은 쌀을 먹는 것을 보며, 혹은 물만 마시고 하루를 지나는 것을 보며, 혹은 보살이 한 방울의 연유를 먹고 하루를 지남을 보며, 혹은 한 방울의 꿀이나 혹은 한 방울의 우유, 혹은 먹지도 않고, 혹은 깊이 잠든 것을 보는 것입니다.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가지가지로 고행함을 나타내 보이며 육 년 고행 가운데 한 가지 일도 빼지 않습니다. 보살은 실제로는 이와 같은 고행이 없으나 중생에게 있는 것처럼 보여 주어 모든 중생이 마땅히 고행으로써 생사의 고통을 해탈함[度脫]을 얻음으로 이들을 위하는 까닭에 그것을 보이니, 육십 나유타(那由他) 사람이 삼승에 안주함입니다.
사리불이여, 다시 하늘 사람이 숙세의 선근으로 대승을 깊이 즐기어, 곧 보살이 칠보의 대(台)에 앉아서 움직이지 않고, 기뻐 웃는 얼굴[面門]로 삼매[三昧 : 定]에 들어가서 이와 같이 6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선정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사리불이여, 다시 어떤 중생이 깊이 대승을 즐겨서 듣고자 하면 곧 보살이 단정하게 앉아서 설법하는 모습을 봅니다.
사리불이여, 이 보살마하살은 방편의 힘으로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대비로써 일체 중생을 교화하여 제도함에 천마와 모든 외도를 항복받으며, 이미 육 년을 지나 선정에서 일어나서 세상법에 수순하여 니련선하(尼連禪河)에 나아가 목욕하고 나와서 강가에 서 있으니, 백 마리의 젖소를 이끌며 소를 치는 여인이 그 중 한 마리 소를 이끌어다 우유를 짜서 죽을 만들어 보살에게 받들어 올렸습니다.
다시 육억의 하늘·용·야차·건달바가 각각 음식을 가지고 와서 받들어 올리며 이와 같이 말하였습니다. ‘대사(大士 : 보살)여, 나의 공양을 받아주시오. 정사(正士 : 보살)여, 나의 공양을 받아주시오’ 함에 보살은 다 받으나 저 소치는 여인과 하늘·용·야차는 각각 서로 보지 못하며, 하나하나의 하늘들은 각각 보살이 홀로 그 음식을 받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사리불이여, 이들 중생은 공양을 받는 것을 봄으로 인하여 도의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보살은 그것을 나타내 보이나 이 보살은 실로 목욕하거나 공양을 받지 않았습니다.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함에 방편의 힘으로 도량에 나아가 수행하는 것을 나타내 보인 것입니다.
이때 묘지(妙地)라고 하는 지거 천자(地居天子)가 있으니, 모든 천신들과 같이 이 대지를 쓸고 온갖 아름다운 꽃을 뿌리며 여러 가지 향수를 가지고 뿌려서 씻어내었습니다. 삼천대천세계의 수미산 아래 모든 하늘의 대중과 사천왕천(四天王天)이 여러 가지 하늘의 꽃을 내리고, 삼십삼천 및 야마천(夜摩天)이 공중에서 여러 가지 음악을 울리며 찬탄하고, 도솔타천(兜率陀天)의 산도솔타왕은 칠보의 그물로 세계를 펴서 덮었는데 네 모서리에는 다 염부단금(閻浮檀金)으로 방울을 달았으며, 온갖 보배를 모두 내리어 보살에게 공양하였습니다. 화락(化樂)의 모든 하늘의 선화왕(善化王)은 염부단금으로 그물을 펼쳐 세계를 덮고, 모든 음악을 울리며 가지가지 꽃을 내려 보살에게 공양하였으며, 타화자재의 모든 천자는 또한 모든 하늘·용·야차·건달바·아수라·가루라·긴나라·마후라가·사람과 사람 아닌 듯한 이들과 각각 가지가지 공양을 베풀었습니다. 자재천자(自在天子)와 사바세계 주인인 대범천왕(大梵天王)은 이미 보살이 도량에 나아가는 것을 보고 곧 모든 범천(梵天)에게 말하기를, ‘선남자여, 그대들은 마땅히 알라. 이와 같은 보살마하살은 견고하고 큰 몸으로 스스로 장엄하고, 본래 서원을 어기지 않으며, 마음에 게을러 싫어함이 없고, 일체 보살은 행이 다 만족하여 한량없는 중생을 교화함에 통달하였다. 또한 모든 지(地)에서 다 자재를 얻어서 모든 중생에게 그 마음이 청정하여 근성을 잘 알며, 모든 마의 일을 넘어서 여래의 매우 깊은 비밀장[密藏]을 통달하였다. 일체 선근은 밖의 인연을 따르는 것이 아니요 한량없는 모든 부처님께서 옹호하시는 바라, 능히 중생을 위하여 해탈문을 열어 주시며, 대장도사(大將導師)는 모든 마를 꺾어 항복하고 대천세계에 홀로 용맹하다. 법의 약을 잘 베풀어 큰 의왕(醫王)이 되며 법왕의 자리[位]를 수기 받아[灌頂] 해탈하여 지혜의 광명을 놓으며, 세간의 여덟 가지 법[八法 : 八風]에 능 히 물들지 않아 큰 연꽃과 같고, 일체 모든 다라니를 통달하여 깊은 바다와 같이 안주(安住)하며, 움직이지 않으니 수미산과 같으며, 지혜가 청정하여 번뇌[垢穢]가 없고, 마니주와 같이 일체법에 자재함을 얻어 범행이 청정하다’ 하였습니다.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닦아 방편의 힘으로 도량에 나아가 수행하며 악마를 항복받고자 보리수 아래 앉아서 10력(力)과 4무외(無畏)와 18불공법(不共法)을 성취하여 큰 법륜을 굴리어 사자후(師子吼)를 지어서 법을 보시하여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다 포만하게 하며, 중생의 법의 눈을 청정하게 하고자 하여 위없는 정법으로 외도를 항복받으며, 모든 부처님의 본원(本願)을 성취하심을 보이고자 일체법에 자재를 얻는 것입니다.
선남자여, 그대들은 가서 보살에게 공양하십시오.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방편력으로써 도량에 나아가 수행하는 것을 나타내 보이며, 발바닥에 천 폭(輻)의 수레바퀴 모양을 나타내고, 미묘한 광명으로 일체 지옥·축생·아귀가 이 광명을 만나면 모든 고통을 여의고 안락함을 얻으며, 용궁을 비출 때 가리가(加梨加)용왕이 있어 이 광명을 만나 곧 모든 용에게 말하기를 ‘이 금색빛이 용궁을 비추어 너희들의 몸과 마음을 안락하게 할 것이다. 내가 과거에 일찍이 이러한 모습을 보고 나서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셨다. 그런데 지금 이 광명이 옛날과 다름이 없다. 그러니 반드시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실 것이다. 가지가지 태우는 향·바르는 향·가루향·금·은·진주·자거·마노·산호·백옥·꽃과 번기[幡]와 당기[幢]와 일산[蓋]을 준비하고 모든 음악을 울리며, 보살의 궁중으로 가서 좋은 물건을 모두 공양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때 가리가용왕과 모든 권속이 널리 큰 구름을 이루어 향기로운 비를 내리고 모든 음악을 울리며, 보살에게 나아가 공양하고 보살의 오른쪽으로 돌며 찬탄하여 말하기를 ‘금색 광명으로 사람을 기쁘게 하니 반드시 가장 훌륭하신 부처님께서 나신 것이다. 가지가지 보배로 대지를 장엄하니 이로 인하여 땅에 생겨난 모든 초목은 다 변하여 보배가 될 것이며, 강과 하천은 다 고요하여 풍랑이 일어나는 소리가 없으니, 이와 같은 상서로움으로 미루어 보건대 부처님께서 나오심이 틀림없도다. 제석과 범천, 해와 달의 광명이 제빛을 내지 못하고 악도가 청정하여지니 부처님께서 나오심이 틀림없도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어려서 부모를 잃었다가 나이가 장성하여 불현듯 도로 만나면 마음이 매우 기뻐하듯, 일체 세간이 부처님께서 세상에 일어나심을 보는 것도 이와 같도다. 우리들은 이미 과거 여러 부처님 세존께 공양하며, 지금 사람 가운데 사자이신 법왕을 만났으니, 곧 우리가 태어남이 헛되이 지나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함에 방편의 힘으로 풀을 거두어 깔고, 앉을 때도 보리수를 오른쪽으로 일곱 번 돌고 바른 생각으로 단정히 앉으니 하열한 중생이 이와 같은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사리불이여, 다시 높게 수행하는 여러 큰 보살이 있어서 팔만 사천 천자가 온갖 보배를 모아서 팔만 사천의 큰 사자좌를 만들고 칠보 그물을 펴서 그 위에 덮었으며 네 모서리에는 금방울을 곳곳에 달아놓고 꽃과 번기와 당기·일산·화려한 비단을 벌려 놓았음을 보았습니다.
그때 보살은 이 팔만 사천의 자리에 두루 하여 하나하나의 자리마다 다 앉았으나 모든 천자는 각기 서로가 보지 못하고 각각 서로 말하되 ‘보살이 홀로 우리의 자리에 앉아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었다’라고 하였다. 이 인연으로 마음에 환희심이 생겨 미증유함을 얻어 다 아비발치를 얻는 것입니다.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 방편의 힘으로 곧 미간의 백호상(白毫相)에서 광명을 놓아 모든 마귀의 궁전을 비추니, 삼천대천세계 모든 마귀의 궁전이 다 광명을 잃었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마귀들은 각각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어떤 인연으로 모든 우리들의 궁전에 광명이 나타나지 않는 것인가? 어찌 보살이 도량에 앉아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함이 아니겠는가?’하며 함께 관찰하니 보살이 보리수 아래 도량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모든 악마들은 자기 궁전에서 마귀의 군사[魔軍]를 모아 한량없는 천억 가지의 색깔·가지가지 형상·가지가지 모습·가지가지 얼굴을 하고, 가지가지 막대기를 잡고, 가지가지 당(幢)·번(幡)을 갖고 가지가지 음성으로 말하기를, ‘만약 듣는 자가 있으면 귀·코·입에서 모두 피가 흘러내리리라’고 하였다. 보살이 이때 대비의 힘으로 마군의 무리들이 소리가 나오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사리불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한 방편의 힘입니다.
사리불이여,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방편의 힘으로 한량없는 억겁으로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와 자·비·희·사의 염처(念處)와 정근(正勤 : 四正勤)·신족(神足)·근(根 : 五根)·역(力 : 五力)·각도(覺道 : 七覺支)·사마타(奢摩他)·비바사나(毘婆舍那)·삼명(三明)·해탈(解脫 : 八解脫) 등을 행하며, 몸은 금색을 띠고 오른팔로 이마에서 시작하여 온 몸을 두루 만지며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고뇌하는 중생을 내가 건져내려고 대비를 일으키리라.’
그러자 마왕을 비롯하여 모든 권속이 보살의 말을 듣고 곧 엎드렸습니다. 보살마하살이 대비의 힘으로 모든 마귀의 무리들이 공중의 소리를 듣게 하였습니다. ‘너희들은 지계하는 힘이 있는 신인[仙]에 귀의하라. 그는 두려움 없음[無畏]을 베풀어 일체 중생을 구호하느니라.’ 마귀와 권속들이 이 소리를 듣고 나서 오히려 땅에 엎드려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원하옵건대 정사(正士)·대사(大士)여, 우리들의 생명을 구제하여 주소서.’
사리불이여, 그때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방편의 힘으로 큰 광명을 놓으니, 그 빛을 받은 자는 다 두려움을 여의게 됩니다. 마귀와 권속은 이 신통력을 보고 기쁨과 두려움의 두 가지 일이 교차하였습니다.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함에 혹 어떤 중생은 이 마귀를 항복시키는 것을 봅니다. 또 다시 어떤 사람은 이 일을 보지 못하며, 혹은 어떤 중생은 다만 보살이 풀을 깔고 앉는 것만을 보고, 혹은 보살이 큰 사자 보대(寶臺)에 앉아 있는 것을 보며, 혹은 보살이 땅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혹은 공중에 자연히 사자좌에 보살이 편안히 앉아 있는 것을 보며, 혹은 어떤 중생은 아설타(阿說他 : 無罪樹)나무를 보리수라 하는 것을 봅니다. 혹은 파리질다라(波利質多羅)나무를 보며, 혹은 온갖 보배가 합하여 보리수가 되는 것을 보며, 혹은 어떤 중생은 칠 다라수(多羅樹) 정도가 되는 보리수를 보며, 혹은 어떤 중생은 팔만 사천 유순이나 되는 보리수와 높이가 사만 이천 유순이나 되는 사자좌를 보며, 혹은 어떤 중생은 멀리서 보살이 공중에서 유희하는 것을 보며, 혹은 보살이 보리수에 앉아 있는 것을 봅니다.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함에 방편의 힘으로 이와 같은 가지가지의 신통변화를 나타내 보여서 중생을 교화하여 제도하는 것입니다.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방편의 힘으로 도량에 앉아 있는 모습을 나타내니 시방의 항하사 세계에 한량없고 끝이 없는 보살마하살이 다 모여와서 공중에 머물러 이런 소리를 내어 말합니다.
‘보살이 안락하고 기쁘게 위로[安慰]하니 훌륭합니다. 속히 용맹정진하면 대길상사(大吉祥事)가 있으리니 두려워 마십시오. 마음을 금강과 같이 하면 신통에 유희하여 중생을 이익 되게 하고 일념 사이에 일체지가 나타날 것입니다.’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이 도량에 앉을 때 마귀가 와서 어지럽게 하여도 또한 성을 내지 않으면 일 찰나의 마음이 반야바라밀과 상응하여 아는 바를 깨달아 통달하지 못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사리불이여, 이때 시방 항하사 세계 모든 부처님 여래께서 이구동성으로 찬탄하여 말씀하셨습니다.
‘훌륭하도다, 대사(大士)여. 자연지(自然智)·평등지(平等智)·무사지(無師智)·대비장엄(大悲莊嚴)을 모두 통달하리라.’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방편의 힘으로 이와 같은 가지가지를 나타내 보이니, 혹은 어떤 중생은 이 보살이 지금 처음 도를 이루는 것을 보며, 혹은 보살이 오랜 옛날에 성도하신 것을 보며, 혹은 한 세계의 사천왕이 발우를 드리는 것을 보며, 혹은 시방 항하사 세계의 사천왕이 발우를 드리는 것을 봅니다.
사리불이여, 보살이 이때 중생을 제도하는 까닭에 많은 발우를 받아 손바닥 가운데 쌓아서 합하며 하나로 만들었으나 그 모든 천왕들은 각각 서로 보지 못하고 다 말하였습니다.
‘세존께서 오직 나의 발우를 쓰시는구나.’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방편의 힘으로 이런 일을 나타내 보이는 것입니다. 이 법문을 설할 때 대중 가운데 삼만의 보살마하살이 무생법인을 얻고 삼만 육천 보살이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물러나지 않으며, 팔만의 사람과 하늘이 번뇌[塵]를 멀리하고 때[垢]를 여의어 법의 눈이 맑아지고 한량없고 끝이 없는 중생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셨습니다.
사리불이여, 다시 육만 천자가 먼저 와서 공양을 올리니 과거의 원력(願力)이 보살이 성도함과 같아 ‘반드시 먼저 우리들의 공양을 받아주소서’ 하고 원하였습니다.
이때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의 방편의 힘으로 법륜을 굴리는 것을 나타내 보이려 하는데, 사바세계의 주인[主]인 시기(尸棄)범왕이 육십팔만 범천과 함께 세존의 처소에 와서 머리 숙여 발에 예배하고 오른쪽으로 일곱 번 돌고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오직 원하옵건대 대비시여, 위없는 법륜을 굴려 주소서. 오직 원하옵건대 대비시여, 위없는 법륜을 굴려 주소서.’
그러자 곧 높이가 사만 이천 유순이나 되는 큰 사자좌가 나타나서 가지가지로 장엄하니, 견고하고 안온하였습니다. 시방의 한량없는 석제환인(釋提桓因)이 다 여래의 사자좌를 위하여 또한 이와 같이 하였습니다.
이때 보살이 신통력으로 하나하나의 모든 하늘에 각각 보살이 그 자리 위에 앉아서 법륜을 굴리심을 보게 하였습니다. 보살마하살은 이미 이 자리에 앉으니 시방의 한량없고 끝이 없는 세계가 다 진동하고 큰 광명을 놓아 곧 끝없는 경계의 삼매에 들어가니, 시방 항하사 세계의 일체 중생이 3악도에서 받는 고통이 사라지고 곧 안락을 얻고 다 3독(毒)을 여의어 각각 모습이 마치 모자(母子) 사이와 같아 다시는 악한 마음이 없었습니다.
이때 삼천대천세계는 간격이 없이 한 털구멍과 같았으며 하늘·용·야차·건달바·아수라·가루라·긴나라·마후라가·사람과 사람 아닌 이들이 다 그 가운데 가득하였습니다.
만약 어떤 중생이 마땅히 괴로움의 법[苦法]으로 교화를 받을 자에게는 부처님께서 설하신 고(苦)의 법을 들려주고, 마땅히 무아(無我)·공(空)·적정(寂靜)·이무상(離無常)도 다 또한 이와 같습니다. 마땅히 환술과 같은 법으로 교화를 받을 자는 환술과 같은 것을 설함을 들으며, 마땅히 꿈속이나 물 가운데 달과 같고 그림자 같고 메아리와 같다고 하는 것도 다 또한 이와 같습니다. 마땅히 공·무상(無相)·무원(無願)으로 교화를 받을 자는 곧 부처님께서 설하신 공·무상·무원의 법을 들으며, 혹은 여래께서 일체법은 인연을 따라 생겼다고 설함을 듣고, 혹은 모든 음(陰 : 蘊)을 설함을 듣고, 혹은 모든 계(界)를 설함을 듣고, 혹은 모든 입(入 : 處)을 설함을 듣고, 혹은 고의 소리[苦聲]를 설하신 것을 듣습니다. 혹은 집의 소리[集聲]를 설하신 것을 듣고, 혹은 도의 소리[道聲]를 설하신 것을 듣고, 혹은 염처(念處)를 설함을 듣고, 혹은 정근(正勤)을 설함을 듣고, 혹은 신족통[神足]을 설함을 듣고, 혹은 근(根)을 설함을 듣고, 혹은 역(力)을 설하신 것을 듣고, 혹은 각(覺)을 설하신 것을 듣고, 혹은 도를 설하신 것을 듣고, 혹 사마타를 설하신 것을 듣고, 혹은 비파사나를 설하심을 듣고 혹은 벽지불의 법을 설하신 것을 듣고, 혹은 대승법을 설하심을 듣습니다.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방편의 힘으로 가지가지 법륜을 굴림을 나타내 보여서 한량없는 중생이 그 근성을 따라 기쁘고 이익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때 사리불이 승천왕에게 물었다.
“보살마하살이 방편의 힘으로 행한 반야바라밀의 매우 깊은 경계는 알기 어렵고 생각하기 어렵고 들어가기 어렵습니까?”
그러자 승천왕이 사리불에게 답하였다.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한 훌륭한 일의 공덕은 내가 지금 말한 바에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백천만억분에서 나아가 산수로 비유하여도 또한 하나에도 미치지 못하고 오직 여래만이 이를 설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지금 적은 부분을 설한 것은 다 여래의 위엄과 신령스러운 힘을 받은 것입니다. 즉, 모든 부처님 경계의 일생보처(一生補處) 보살마하살도 오히려 다 설명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다른 보살이겠습니까.
사리불이여, 모든 부처님의 경계는 고요하고 말이 없어 분별없는 지혜[無分別智]로 알 바입니다.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이 모든 부처님의 경계에 들어가고자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 수능엄(首楞嚴)삼매·여환(如幻)삼매·금강유(金剛喩)삼매·금강삼매·부동의(不動意)삼매·변통달(遍通達)삼매·불연경계(不緣境界)삼매·사자자재(師子自在)삼매·삼매왕삼매·공덕장엄(功德莊嚴)삼매·적정의(寂靜意)삼매·초출(超出)삼매·무착(無著)삼매·장엄왕(莊嚴王)삼매·무등등(無等等)삼매·등각(等覺)삼매·정각(正覺)삼매·열의(悅意)삼매·환희삼매·청정삼매·화염(火焰)삼매·광명삼매·난승(難勝)삼매·상현전(常現前)삼매·불상근(不相近)삼매·무생(無生)삼매·통달삼매·최승(最勝)삼매·과마계(過魔界)삼매·일체지의(一切智意)삼매·당상(幢相)삼매·대비(大悲)삼매·환희(歡喜)삼매·애념(愛念)삼매·불견법(不見法)삼매를 배워야 합니다.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방편의 힘으로 이와 같은 한량없고 끝이 없는 백천억 항하사 수의 모든 삼매를 통달하고 나서, 곧 모든 부처님의 경계에 들어가 그 마음이 안온하고 공포가 전혀 없어 사자의 왕과 같이 짐승을 두려워하지 않고 잡는 것과 같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은 모든 삼매를 닦고 나서 지나온 곳이 다 두려움이 없었고, 그 앞에는 하나의 원적(怨敵)도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방편의 힘으로 마음에 인연된 것이 없고, 또한 머무는 곳도 없기 때문입니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무색계(無色界)에 태어나서 팔만 사천 겁 가운데 오직 한 식[唯一識]뿐이요, 머무는 곳도 없고 또한 인연되는 곳도 없는 것과 같습니다.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함도 이와 같아 마음에 머무는 곳이 없고, 또한 인연하는 곳도 없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마음이 가지 않으니 갈 곳도 없고[無行處], 마음이 생각이 없으니 생각할 곳도 없으며, 마음이 인연이 없으니 인연할 곳도 없고, 마음이 집착이 없으니 집착할 곳도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마음이 어지러움이 없으니 어지러운 곳이 없고, 마음이 높고 낮음이 없으니 마음이 수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어기어 거스르지 않고 기뻐하지도 않으며, 근심하지도 않고 분별함도 없고 분별을 여의며, 사마타와 비파사나를 여의고 마음이 지혜를 따르지 않으며, 마음이 스스로 머물지 않고 또한 다른 데도 머물지 않기 때문입니다. 눈에 머물러 의지하지 않고 귀·코·혀·몸·뜻에도 머물지 않으며, 색(色)에 머물지 않고 소리·향기·맛·감촉·법에 머물지 않으며, 마음이 안에도 있지 않고 또한 밖에도 있지 않으며, 마음이 법에도 인연하지 않고 마음이 지혜에도 인연하지 않으며, 과거에도 머물지 않고 미래와 현재에도 머물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함에 한 법도 취하지 않으며, 일체법에 지견이 걸림이 없습니다. 마음이 청정하게 행하는 까닭에 일체법을 봄에 모든 때가 없고 본다는 모습[見相]도 갖지 않으며, 보되 분별하지도 않고 모든 희론을 여읩니다.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의 반야바라밀은 육안(肉眼)과 상응하지 않고 천안(天眼)과도 상응하지도 않으며, 혜안(慧眼)·법안(法眼)·불안(佛眼)과 다 상응하지 않습니다. 천이(天耳)와 상응하지 않고 타심지(他心智)와도 상응하지 않으며, 숙명지(宿命智)와도 상응하지 않고 신통지(神通智)·누진지(漏盡智)와도 상응하지 않습니다.
사리불이여, 이 반야바라밀은 일체법과 상응하지 않으며, 상응하지 않음도 아닙니다.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방편의 힘으로 일체법에서 평등한 지혜를 얻으며, 모든 중생의 마음이 가는 것을 관하여 일체의 더럽고 깨끗함을 다 여실히 알고, 10력(力)과 4무애(無碍)와 18불공법(不共法)과 부처님의 일체지를 모두 생각하여 잃지 않도록 합니다.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함에 공용(功用)의 마음이 없이, 또한 일체법에 마음과 뜻과 알음알이[識]가 없이 항상 고요한 삼매 가운데 있으면서 삼매를 버리지 않고, 중생을 교화하며 베풀어 불사(佛事)를 일으키어 휴식함이 없으며, 모든 부처님 법에서 막힘없는 지혜를 얻되 마음에 물들어 집착함이 없습니다.
사리불이여, 비유하면 변화한 부처님이 다시 변화하여 부처님이 되어서 그가 교화한 것에 마음과 뜻과 알음알이가 없으며, 몸과 몸의 업[身業]이 없으며 입과 입의 업이 없으며 마음과 마음의 업[心業]이 없이, 베풀어 일체의 불사를 일으켜 중생을 이익 되게 합니다. 무슨 까닭인가? 부처님의 신통력 때문입니다.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따라 교화함도 이와 같아 몸과 몸의 업이 없고 입과 입의 업이 없으며 뜻과 뜻의 업이 없고, 공용(功用 : 공들임)의 마음이 없이 항상 불사를 일으켜 중생을 이익 되게 합니다. 무슨 까닭인가?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일체법을 통달함이 마치 허깨비 [幻相]와 같아 마음으로 분별할 수 없으므로 모든 중생은 항상 설법을 듣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지혜가 이와 같아 유위(有爲)에 머물지 않고, 무위(無爲)에도 머물지 않으며, 모든 음(陰)에 머물지 않고, 계(界)에도 머물지 않으며, 안과 밖에도 머물지 않습니다. 선한 법과 선하지 않은 법에도 머물지 않고, 세간과 출세간에도 머물지 않으며, 더럽혀지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습니다. 유루(有漏)에 머물지 않고 무루(無漏)에도 머물지 않으며, 과거·미래·현재에도 머물지 않고, 수연멸(數緣滅 : 열반)에도 머물지 않으며 수연멸이 아님에도 머물지 않습니다.
사리불이여, 이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되 마음에 머무는 바가 없이 모든 법을 통달하며, 무애의 지혜[無碍智]와 공용이 없는 힘으로 중생을 위하여 설하며 항상 고요함[寂靜]에 있으면서 교화하는 일에 휴식함이 없습니다.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숙원(宿願)이 강한 까닭으로 공용(功用)의 마음이 없이 사람들을 위하여 설법합니다.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의 방편의 힘 때문에 모든 두려움이 없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집금강신(執金剛神)이 항상 수호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걷거나 서있거나 앉았거나 누워 있거나 항상 멀리하지 않습니다.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이 깊은 반야바라밀의 설법을 듣고 마음에 두려워하지도 않고, 놀라지도 않으며 의심하지도 않고 후회하지도 않으니, 이 사람은 이미 수기를 얻었음을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무슨 까닭인가? 반야바라밀을 믿고 받아서 부처님의 경계와 가깝기 때문입니다. 이 일심은 곧 모든 부처님의 법을 통달하며, 부처님 법을 통달한 까닭에 중생을 이익 되게 하되 중생과 부처님의 법이 다르다는 것을 보지 않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이치가 둘이 없는 까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