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선주의천자소문경(聖善住意天子所問經) 03. 하권

성선주의천자소문경(聖善住意天子所問經) 03. 하권

그 때 문수사리(文殊師利) 동자는 다시 선주의(善住意) 천자에게 말하였다.

“천자여, 만일 누가 내게 와서 출가를 구하면 나는 그에게 말할 것입니다. 즉 ‘그대 선남자여, 만일 계율을 받지 않으면 이것이 곧 그대의 출가이며, 만일 이렇게 하면 출가라 할 수 있다’라고.”

천자는 물었다.

“문수사리여, 무슨 뜻으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문수사리는 대답하였다.

“천자여, 부처님 말씀에 의하면 두 가지 수계(受戒)가 있습니다. 그 두 가지란, 이른바 평등한 수계와 불평등한 수계입니다. 어떤 것을 불평등한 수계라 하는가. 이른바 불평등한 타락입니다. 어떤 것이 불평등한 타락인가. 이른바 나에 집착하는 타락이요, 중생에 집착하는 타락이며, 수명에 집착하는 타락이요, 장부에 집착하는 타락이며, 단상(斷常)에 집착하는 타락이요, 사견(邪見)에 집착하는 타락이며, 탐욕·분노·우치[癡]에 집착하는 타락이며, 욕계에 집착하는 타락이며, 색계·무색계를 억념하는 번뇌의 타락입니다. 이와 같이 천자여, 나아가 일체 불선법(不善法)에 의한 타락이며, 악지식(惡知識)에 의한 타락으로서 해탈의 법을 알지 못하고 일체의 법을 취하나니, 천자여,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불평등한 수계라 합니다.

천자여, 어떤 것을 평등한 수계라 하는가. 이른바 평등한 타락입니다. 어떤 평등인가. 이른바 공(空)의 평등이요 무상(無相)의 평등이며 무원(無願)의 평등입니다. 천자여, 만일 이렇게 세 가지 해탈문(解脫門)을 증득하고 여실히 해득하면 분별하지 않을 것이요 분별함이 없으면 퇴전(退轉)하지 않을 것이니, 천자여, 이것을 평등한 수계라 합니다.

천자여, 혹은 탐욕·분노·우치를 닦거나 혹은 자신과 자신의 근본인 62견(見)을 닦거나 혹은 전도(顚倒)를 닦고 혹은 몸과 입과 뜻의 세 가지 나쁜 행과 8사(邪)와 9뇌(惱)와 10불선업도(不善業道)를 닦으면 이것을 바른 수계라 할 수 있습니다.

천자여, 비유하면 모든 종자가 다 땅을 의지해 나고 약초와 수림(樹林)이 땅을 의지해 생장하여 평등이 구족할 때 구족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처럼, 이와 같이 천자여, 이 불법(佛法) 안에서 만일 바로 수계하면 수계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천자여, 비유하면 일체 종자와 약초와 수림이 대지를 의지해 머무는 것처럼, 이와 같이 천자여, 바른 계율은 구족합니다. 왜냐 하면 계율에 머물기 때문이니, 법의 화합이 있어 저 종자와 약초와 수림이 구족히 생장하는 것과 같으면 이런 것을 평등의 구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천자여, 계율은 믿음에 의해 머뭅니다. 이와 같이 일체 보리분법은 계율을 의지해 머물기 때문에 생장이 구족합니다. 천자여, 이와 같이 과거·미래·현재의 모든 불세존과 일체 성문들은 바로 수계하였기 때문에 세 가지 해탈문(解脫門)을 증득하고 일체 희론을 다 끊어 버렸습니다. 천자여, 알아야 합니다. 이런 수계가 바른 수계요 불평등이 아닙니다.

또 천자여, 나는 저 사람과 이렇게 출가하고 이렇게 수계합니다. 즉 ‘그대 선남자는 이렇게 배우고 억념을 취하지 말라. 내가 이렇게 배우는 것이 그대의 출가이니라’고.”

천자는 물었다.

“문수사리여, 무슨 뜻으로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문수사리는 대답하였다.

“천자여, 일체 모든 법은 다 취하지 않아야 합니다. 천자여, 그대가 만일 계율을 취하면 삼계도 취하게 됩니다. 천자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어떤 것이 그 배우는 것입니까?”

천자는 대답하였다.

“이른바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12)의 구족입니다.”

문수사리는 물었다.

“천자여, 어떤 것을 바라제목차의 구족이라 합니까?”

천자는 대답하였다.

“구족이란, 몸의 구족과 입의 구족과 뜻의 구족을 말하는 것이니, 이런 것을 바라제목차의 구족이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문수사리는 물었다.

“천자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몸과 입과 뜻의 업을 짓지 않는 그 어느 것과, 과거에 짓지 않았고 현재에 짓지 않고 미래에 짓지 않을 것과 무엇이 같기에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푸르거나 누렇거나 희거나 빨갛거나 혹은 파리빛[頗梨色]이거나?”

천자는 대답하였다.

“같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문수사리는 물었다.

“천자여, 어떻게 말할 수 있습니까?”

천자는 대답하였다.

“이는 유위(有爲)가 아니므로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만일 유위가 아니라면 몸과 입과 뜻의 업을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문수사리는 물었다.

“천자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유위가 아니라도 취할 수 있겠습니까?”

천자는 대답하였다.

“문수사리여, 취할 수 없습니다.”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천자여, 내 뜻이 여기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억념하여 취 하지 마십시오. 나는 이렇게 배웁니다. 즉 천자여, 만일 훌륭한 계학(戒學)과 훌륭한 심학(心學)과 훌륭한 혜학(慧學)이면 그 학문은 실제와 같습니다. 이렇게 알아야 합니다. 즉 계율이 소득이 없으면 이것은 훌륭한 계학이요, 마음이 소득이 없으면 이것은 훌륭한 심학이며, 지혜가 소득이 없으면 이것은 훌륭한 혜학입니다. 그리고 분별하지 않는 마음과 억념하지 않는 마음마저 생기지 않는 훌륭한 마음은 곧 훌륭한 심학이요 계학이며 혜학이니, 이렇게 알아야 합니다.

천자여, 만일 마음에 얻는 바가 없으면 계율을 생각하지 않을 것이요, 계율을 생각하지 않으면 삼매에 얻는 바가 없을 것이며, 삼매에 얻는 바가 없으면 지혜에 얻는 바가 없을 것이요, 지혜에 얻는 바가 없으면 모든 의심이 없을 것이며, 일체 의심이 없으면 학문을 취하지 않을 것이요, 학문을 취하지 않으면, 이리하여 그것을 억념을 배운다 할 것입니다.

만일 억념을 배우면 그것은 아나함(阿那含)이요, 만일 아나함이면 그것은 청정이며, 만일 청정이면 그것은 화합하지 않는 것이요, 만일 화합하지 않으면 그것은 새지[漏] 않는 것이요, 만일 새지 않으면 그것은 바른 행이요, 만일 이런 행이면 색(色)과 같은 것이 없을 것이며, 만일 색과 같은 것이 없으면 그것은 허공입니다. 왜냐 하면 저 허공은 형색이 없기 때문입니다. 천자여, 만일 이렇게 배우면 그것은 배우지 않는 것이요, 만일 배우지 않으면 그것은 배운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느 곳을 배우는가. 그것은 배우는 곳이 없으며, 만일 배우는 곳이 없다면 그것은 바른 배움에 머무른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에 문수사리 동자는 다시 선주의 천자에게 말하였다.

“천자여, 나는 저 사람을 위해 출가하는 법과 수계하는 법에 의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대 선남자여, 일체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의 신심 있는 단월(檀越)이 그대에게 음식을 줄 때, 〈이 음식은 소화하기 어렵다, 이것은 소화할 수 있다〉라고 그대 마음에 생각하지 않거나 분별을 내지 않으면 그대 계율은 깨끗하다.'”

천자는 물었다.

“문수사리여, 무슨 뜻으로 그렇게 말합니까?”

문수사리는 대답하였다.

“천자여, 만일 주는 자와 받는 자가 그 재물을 취하여 그렇게 분별하면 나[我]가 깨끗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취하거나 즐기거나 깨끗이 하거나 얻는 바가 있으면 그 사람은 깨끗하고, 만일 마음에 억념하면 그 사람은 깨끗하며, 만일 마음으로 분별하면 그 사람은 깨끗합니다.

천자여, 만일 다시 취하지 않고 즐기지 않으며 깨끗이 하지 않고 혹은 얻는 바가 없거나 억념이 없거나 분별하지 않으면 어찌 그를 깨끗하다 하겠습니까? 왜냐 하면 마침내는 깨끗하기 때문입니다.

천자여, 만일 취하거나 즐기거나 얻는 바가 있거나 억념하고 분별하여 깨끗한 믿음의 음식을 얻으면 그는 범부요 아라한이 아닙니다. 왜냐 하면 범부는 취하고 즐기는 마음에 얻는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억념하고 분별하며 나라고 하는 분별을 취하면 이 사람은 나와 함께 분별하므로 그는 깨끗하다 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것을 깨끗함이라 하는가. 범부의 행은 3유(有)의 생을 취하나 그들은 이렇게 깨끗합니다.

천자여, 아라한은 다시 조그만 물건도 없으면서 다른 몸의 행이 있으나 다른 몸을 취하지 않고 또 바꿔 나지도 않는데 어디 깨끗함이 있겠습니까. 당신은 저 보시에서 세 가지 원정(圓淨)을 취하십시오. 천자여, 어떤 것을 세 가지 원정이라 하는가. 이른바 주는 자와 받는 자와 또 그 재물을 얻을 수 없는 것이니, 이것을 세 가지 원정이라 합니다. 만일 이렇게 깨끗하면 그는 다시 깨끗하지 않습니다. 천자여, 내 뜻이 여기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만일 일체 삼천대천세계의 신심 있는 단월이 당신에게 음식을 줄 때 깨끗함을 생각하지 않으면 그 세계 중의 복밭[福田]이라 할 수 있으니, 그는 잘 출가한 것이다.'”

그 때 문수사리 동자는 다시 선주의 천자에게 말하였다.

“천자여, 나는 그 사람에게 출가의 법과 수계의 법에 의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대 선남자는 아란야에서 자지 말고, 취락에 머물지 말며, 취락을 가까이 하지 말고 취락을 멀리하지도 말며, 혼자 있지 말고 걸식하지 말며, 초청하는 음식을 먹지 말고 분소의(糞掃衣)를 입지 말며, 장자의 집에서 발우나 3의(衣)를 취하지 말고 맨땅에 앉지 말며, 욕심이 적지 않고 만족할 줄을 모르며 항상 족함을 알지 말고, 멀리 떠나는 행을 행하지 않으며 나무 밑에 머물지 말고 방안에서 자지 말며, 남은 밥[殘宿食]13)을 먹지 말고 소밀(蘇蜜)을 먹지 말라. 만일 그대 선남자가 이렇게 일체 두타(頭陀)의 공덕을 모으는 이런 법을 능히 행하더라도 그 행을 억념하지 말라. 왜냐 하면 그것은 교만한 사람이 행하는 그와 같은 모양의 행이기 때문이다.'”

천자여, 만일 ‘나는 분소의를 입는다, 나는 걸식한다, 나는 나무 밑에 앉는다, 나는 남은 밥[殘食]을 좋아한다, 나는 적은 욕심을 좋아한다, 나는 지족(知足)을 좋아한다, 나는 아랸야에 산다, 나는 맨땅에 앉는다, 나는 잘 두타한다, 나는 남을 위해 설법한다’라고 한다면, 천자여, 알아야 합니다. 바른 행법이 아닌 데서 이런 법이 생깁니다. 왜냐 하면 이런 분별 없는 사람은 나[我]도 얻지 못하거늘 하물며 두타 공덕에서 소득이 있겠는가. 만일 소득이 있다 한다면 그것은 근거 없는 일입니다.

이와 같이 천자여, 만일 이 두타 공덕을 화합해 수행하면서도 마음에 억념하지 않고 마음에 분별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두타를 말할 수 있다고 나는 말합니다. 왜냐 하면 천자여, 만일 비구가 탐욕을 떨어 없애고, 분노를 떨어 없애며, 우치를 떨어 없애고, 삼계를 떨어 없애고, 안팎의 6입(入)을 떨어 없애면 그 사람은 이와 같은 떨어 없앰을 떨어 없앨 수 있다고 나는 말할 것입니다. 만일 그가 두타행을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으며, 닦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으면서 집착하지 않는 것도 아니면 그 사람은 두타행을 말할 수 있다고 나는 말합니다.

또 천자여, 나는 저 출가하는 사람을 위해 이렇게 수계하고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대 선남자여, 만일 이렇게 알면, 그것은 4제(諦)를 아는 것이 아니요, 4념처(念處)를 닦는 것이 아니며, 4정근(正勤)을 닦는 것이 아니요, 4여의신족(如意神足)을 닦는 것이 아니며, 5근(根)을 닦는 것이 아니요, 5력(力)을 닦는 것이 아니며, 7각분(覺分)을 닦는 것이 아니요, 8성도분(聖道分)을 닦는 것이 아니며, 37보리분법(菩提分法)을 닦는 것이 아니요, 3해탈문을 증득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 하면 천자여, 이렇게 나지 않는 상(相)을 알아서 닦지도 아니하고 증득하지도 않는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 하면 증득하는 염처(念處)를 내지 않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천자여, 어떻게 염처가 아니며 바르지 않은 관찰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일체 모든 법을 염처라 할 수 있는가? 천자여, 만일 비구가 욕계에도 머물지 않고 색계에도 머물지 않으며 무색계에도 머물지 않으면 이런 비구는 4념처에 머물러 닦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닦는 것을 닦지 않는 것과 같다 하는가? 자기도 닦지 않고 남도 닦게 하지 않으면, 이렇게 닦는 이를 닦는 사람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차례로 나아가 37보리분도 그런 것인 줄 알아야 합니다.

이와 같이 천자여, 어떤 것을 비구의 좌선(坐禪)이라 하는가. 선사(禪師)는 일체의 법에 아무 얻는 바가 없고 그는 억념이 없습니다. 만일 억념이 없으면 그는 닦지 않는 것이요, 만일 닦지 않으면 그는 증득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천자여, 무슨 인연으로 명설(名說)만이 있는가. 이른바 37보리분법이니, 그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뜻이 인연을 좋아하여 이 이름을 내었고, 한 상도 상이 없음을 이렇게 말합니다. 혹은 말하거나 말하지 않거나 모두가 곧 이름이며, 아는 모든 것은 다 얻음이 없는 것이니 이것이 진실로 아는 것이며, 만일 참으로 앎이 있으면 37보리분법도 모두가 아무 얻음이 없는 것입니다.”

천자는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이른바 선사(禪師)란 어떤 비구를 선사라 할 수 있습니까?”

문수사리는 대답하였다.

“천자여, 선사는 모든 법을 한결같이 생각합니다. 즉 이른바 나지 않는 것을 생각하나니, 만일 이렇게 알면 선사라 할 수 있으며, 나아가 조그만 법도 취함이 없으면 선사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법을 취하지 않는가. 이른바 이세상과 저 세상을 취하지 않고 삼계를 취하지 않으며, 나아가 모든 법을 다 취하지 않습니다. 이른바 모든 법에 다 중생이 없는데 이렇게 취하지 않으면 선사라 할 수 있습니다. 천자여, 저 선사가 만일 조그만 법도 취함이 없으면서 취하거나 취하지 않음이 아니면 이런 뜻으로 선사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설법하자 그 회중의 한량없는 백천 중생들은 다 의심을 내어 말하였다.

“무엇이라, 무엇이라? 어떤 것을 취함이라 하며, 어떤 것을 취하지 않음이라 하는가? 여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세 가지 해탈문을 알아야 열반을 증득하고 37보리분법을 닦아야 열반을 증득한다’라고 하셨다. 그런데 이 문수사리 동자는 보리분법을 막아야 열반을 증득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문수사리 동자의 말과 여래의 말씀이 상응하지 않는 것인가?”

그 때 문수사리 동자는 저 비구들 마음에 의심이 생긴 줄을 알고 곧 장로 사리불에게 물었다.

“대덕(大德) 사리불이여, 여래께서 당신을 지혜 제일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믿습니까? 대덕 사리불이여, 언제 욕심이 없는 법에서 어떤 법을 증득함이 있습니까? 대덕이여, 당신은 왜 4제(諦)를 증득하고 37보리분법을 닦으며 세 가지 해탈문을 증득하지 않습니까?”

장로 사리불이 말하였다.

“문수사리여, 나아가 조그만 법도 얻을 것이 없습니다. 닦거나 증득하거나 알거나 얻거나 말입니다. 왜냐 하면 일체 법은 취하지도 않고 나지도 않으며 무기공(無記空)의 증득이요, 불공공(不空空)의 증득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설법했을 때 3천 비구들은 모든 법을 받지 않고 번뇌가 다해 마음의 해탈을 얻었다.

그 때 선주의 천자가 문수사리 동자를 찬탄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장하고 장하십니다. 문수사리여, 이지혜(利智慧)의 사람은 이렇게 매우 깊은 공인(空忍)을 잘 설명했습니다.”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천자여, 이지(利智)가 아니요, 일체 모도(毛道) 범부가 이지(利智)입니다. 왜냐 하면 모도(毛道) 범부는 이지와 같은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지인가. 지옥의 이지, 축생(畜生)의 이지, 아귀(餓鬼)의 이지, 염마라왕(閻魔羅王) 세간의 이지, 삼계의 이지 등 이런 이지를 이지라 할 수 있는 것으로서 전생의 모든 유위(有爲)의 행을 알지 못합니다. 천자여, 모도 범부의 탐욕의 이지와 분노의 이지와 우치의 이지는 성문(聲聞)이 아니요 연각(緣覺)이나 인(忍)을 얻은 보살이 아닙니다. 이와 같이 천자여, 그것은 우치의 이지이니, 이렇게 알아야 합니다.”

천자는 물었다.

“문수사리여, 당신은 희론을 하는 것이 아닙니까?”

문수사리는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천자는 물었다.

“남의 말을 배웠습니까?”

문수사리는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천자는 물었다.

“말뿐입니까?”

문수사리는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천자여. 나는 말을 취했습니다.”

천자는 물었다.

“문수사리여, 무슨 뜻으로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문수사리는 대답하였다.

“천자여, 만일 보살이 한 글자 한 글귀에 대해 그 글자에 흔들리지 않고 그 글귀의 뜻에 흔들리지 않으면 차례로 도를 물어 여실히 알 것입니다. 그리하여 공을 알지 못하고 떠남을 알지 못하면서도 실체가 없음을 알고 나지 않음을 여실하게 알며, 만일 알지 못하면 그것은 앎이 아니요 해득함이 아니며, 받음이 아니요 지음이 아니니, 그러므로 오직 말과 글귀뿐이라 한 것입니다.”

그 때 세존께서 문수사리 동자를 찬탄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문수사리여. 그대는 지금 다라니(陀羅尼)14)를 얻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있다.”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제가 다라니를 얻은 것이 아닙니다. 왜냐 하면 세존이시여, 만일 우치한 사람이 다라니를 얻었으면 그것은 부처님이나 보살의 다라니를 얻은 것이 아닙니다. 왜냐 하면 세존이시여, 우치한 범부들이 다라니를 얻었다면 어떤 법을 얻었겠습니까? 이른바 나를 얻고 중생을 얻고 수명을 얻고 장부를 얻고 단(斷)을 얻고 상(常)을 얻고 탐욕과 분노와 우치를 얻고 무명(無明)과 유애(有愛)와 5음(陰)인 자신과 18계와 안팎의 6입(入)을 얻고 분별과 분별하지 않음과 분별 없음과 분별하지 않는 행을 볼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세존이시여, 우치한 범부는 다라니를 얻되 상을 취하기 때문에 그것은 분별과 분별하지 않음과 분별 없음과 분별하지 않는 행일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세존이시여, 우치한 사람은 다라니를 얻습니다. 왜냐 하면 만일 우치한 사람이 얻으면 그것은 부처님의 얻음이 아니요 성문의 얻음이 아니며 연각의 얻음이 아니요 보살의 얻음이 아니기 때문이며, 이런 것을 우치한 사람이 다라니를 얻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 하면 저 우치한 사람은 허망한 마음으로 취하고 부처님과 성문·연각·보살의 취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때 선주의 천자가 문수사리 동자에게 말하였다.

“문수사리여, 만일 당신이 다라니를 얻지 못했다면 무엇 때문에 그리 우둔합니까?”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천자여. 나는 실로 우둔합니다. 왜냐 하면 그 행이 우둔한 사람은 여래도 성문도 연각도 보살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천자여, 만일 우둔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곧 우치한 범부입니다. 왜냐 하면 장애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치한 사람은 마음에 우둔하고 영리함을 탐착하여 수다원의 장애의행도 오히려 마음에 탐착한다고 말하거늘 하물며 우치한 범부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천자여, 나는 우둔하여 다라니를 얻지 못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 하면 나아가 조그만 물건도 나는 얻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 때 그 회중의 5백 비구는 이 법문을 듣고도 믿지 못하고 크게 두려워하여 그를 버리고 떠났는데, 자신들은 머지 않아서 큰 지옥에 떨어지게 되었다.

그 때 존자 사리불이 문수사리 동자에게 말하였다.

“문수사리여, 이 모임의 대중을 관찰한 뒤에 설법하십시오. 당신이 이렇게 매우 깊은 법문을 말하므로 이 회중의 5백 비구들은 매우 깊은 이 법문을 듣고도 믿지 못하고 크게 두려워하여 버리고 갔는데 그들은 장차 큰 지옥에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대덕 사리불이여, 당신은 분별하지 마십시오. 내지 지옥에 떨어질 조그만 물건도 없습니다. 왜냐 하면 일체 법이 다 생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덕 사리불이여, 당신은 내게 말하기를 이 모임의 대중을 관찰한 뒤에 설법하라고 했습니다. 대덕 사리불이여, 만일 선남자·선여인이 아견(我見)과 중생견(衆生見)과 수명견(壽命見)과 장부견(丈夫見)을 의지한다면, 비록 항하의 모래같이 많은 부처님 여래·응공·정변지 및 비구승에게 일체 낙구(樂具)를 공양하되 목숨이 다하도록 공양하더라도, 만일 내가 말하는 이같이 알기 어렵고 매우 깊은 법문을 듣는다면 일체 세간이 능히 믿지 못할 것이니, 이른바 공(空)·무상(無相)·무원(無願)·적정(寂靜)과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중생과 수명과 장부가 없고, 나가 없고 항상됨이 없으며 괴롭고 공한 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를 버리고 받아들이지 아니하여 지옥에 빨리 떨어집니다.

대덕 사리불이여, 만일 선남자·선여인이 매우 깊어 알기 어려운 법을 듣고 그것을 버리고 받아들이지 않아서 지옥에 나거나, 그 지옥에서 다시 나오더라도 아견(我見)을 의지하면, 비록 항하의 모래같이 많은 모든 부처님 여래·응공·정변지님께 공양하여도 매우 깊은 이 법은 듣지 못할 것입니다.”

그 때 세존께서는 문수사리 동자를 찬탄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문수사리여, 그렇다, 그렇다. 그대 말과 같다. 문수사리여, 저 모든 여래께서 이 세간에 나와 이 법문을 듣는 것도 그럴 것이요, 수다원과(須陀洹果)를 증득한 사람이 이 법문을 듣는 것도 그럴 것이며, 사다함과(斯陀含果)를 증득한 사람이 이 법문을 듣는 것도 그럴 것이며, 아나함과(阿那含果)를 증득한 사람이 이 법문을 듣는 것도 그럴 것이며, 아라한 법(阿羅漢法)을 증득한 사람이 이 법문을 듣는 것도 그럴 것이다. 왜냐 하면 나를 의지하지 않고 이 법문을 증득하고 이 법을 증득할 때에도 얻는 바가 없기 때문이니라.”

그 때 세존께서는 존자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사리불이여, 이 모든 비구들은 지옥에서 빨리 나와 열반을 증득하리니, 그것은 저 우치한 범부들이 마음에 얻는 바가 있고 견해의 의심에 떨어져 여래께 공양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리불이여, 이와 같이 그 사람은 이 인연으로 열반을 얻고 다른 사람은 해탈을 빨리 얻지 못할 것이다. 왜냐 하면 이 매우 깊은 법을 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리불이여, 선남자·선여인이 만일 이 매우 깊은 법문을 듣되 귀에 한 번 스치기만 하면, 비록 믿고 받아들이지 않아 지옥에 떨어졌더라도 빨리 해탈하리니, 의혹에 떨어지지 않고 얻는 바가 없기 때문이니라.”

그 때 선주의 천자가 문수사리 동자에게 말하였다.

“문수사리여, 당신은 나와 함께 범행(梵行)을 같이하고 싶습니까?”

문수사리 동자는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천자여. 나는 당신과 범행을 같이하고 싶습니다. 당신의 범행은 범행을 취하지 않고 범행을 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천자가 물었다.

“문수사리여, 무슨 뜻으로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문수사리는 대답하였다.

“천자여, 만일 그것을 취한다면 행한다고 말할 수 있지만 만일 취하지 않는다면 그가 하는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천자여, 만일 범행을 얻는다면 그는 행이 있지만 만일 얻는 바가 없다면 그가 하는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천자가 물었다.

“문수사리여, 당신의 이 범행은 무엇을 하기 위해서입니까?”

문수사리 동자는 대답하였다.

“나는 범행을 행하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이 범행(梵行)은 범(梵)도 아니요 행(行)도 아니며 나도 아니요 범행(梵行)도 아니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나는 범행을 행한다 할 수 있습니다.”

천자는 찬탄하였다.

“장하고 장하십니다. 문수사리는 이와 같이 막힘이 없는 변재로 원하는 대로 말하십니다.”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내게는 장애가 있는데 어떻게 막힘이 없는 변재로 원하는 대로 말한다고 하십니까? 왜냐 하면 일체에 나가 있고 내 것이 있으면 그것은 다 분별이 있는 것이요, 모든 분별이 있는 것은 다 장애가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때 문수사리 동자가 다시 선주의 천자에게 말하였다.

“천자여, 만일 천자가 나와 범행을 같이하려면 당신은 일체 모든 중생의 목숨을 끊되 무기도 쥐지 말고 칼이나 흙덩이도 잡지 말고 막대기 따위도 잡지 마십시오. 그래야 나는 당신과 범행을 같이할 것입니다.”

천자는 물었다.

“문수사리여, 무슨 뜻으로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문수사리는 물었다.

“천자여, 이른바 중생이라 말하는데 중생이란 어떤 것이라 생각합니까?”

천자는 대답하였다.

“문수사리여, 이른바 중생이라 말하는데 중생이란, 나아가 오직 문자인 것을 생각으로 취한 것뿐입니다.”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천자여. 나를 취하는 생각을 죽이고, 목숨을 취하는 생각을 죽이며, 장부를 취하는 생각을 죽이십시오.”

천자는 물었다.

“당신은 무엇으로 목숨을 취하는 생각을 죽입니까?”

문수사리는 대답하였다.

“천자여, 지혜의 무기로 죽입니다. 저 지혜의 무기는 잡아 죽이되 알지 못
하며 베되 알지 못합니다. 천자여, 알아야 합니다. 저 지혜로 나라는 생각을 죽이고 중생이라는 생각을 죽이면 이것을 일체 중생을 죽임이라 하며, 그래야만 나는 당신과 범행을 같이할 것입니다.”

그 때 문수사리 동자는 다시 선주의 천자에게 말하였다.

“천자님, 만일 천자가 10불선업도(不善業道)를 모아 행하면 일체 염분(染分)의 평등행은 이 정분(淨分)의 평등이 아닙니다. 그래야만 나는 당신과 범행을 같이할 것입니다.”

천자는 물었다.

“문수사리여, 무슨 뜻으로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문수사리는 대답하였다.

“천자여, 만일 이 염분(染分)의 평등이 저 정분(淨分)의 평등행이 되면 나는 당신과 범행을 같이할 것입니다. 천자여,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떤 것이 염분의 평등입니까?”

천자는 대답하였다.

“짓지 않고 탐하지 않는 것입니다.”

문수사리는 물었다.

“천자여, 정분(淨分)이란 어떤 법입니까?”

천자는 대답하였다.

“법성(法性)과 법계(法界)와 진여(眞如)·실제(實際)·3해탈문 등 이것이 정분입니다.”

문수사리는 물었다.

“천자여, 당신은 다시 법계를 막을 수 있습니까?”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천자여. 이런 의미에서 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즉 만일 당신의 염분 평등이 정분의 평등행이 아니라면 나는 당신과 범행을 같이할 것입니다.”

그 때 문수사리의 동자가 다시 선주의 천자에게 말하였다.

“천자여, 만일 천자가 처음으로 마음을 일으켜 사람을 죽이려 할 때 당신은 자신의 머리를 먼저 때리겠습니까? 그래야 나는 당신과 범행을 같이할 것입니다.”

천자는 물었다.

“문수사리여, 무슨 뜻으로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문수사리는 대답하였다.

“천자여, 이른바 죽임이란 그 무슨 말입니까? 또 어떤 것을 죽이는 것입니까? 천자여, 알아야 합니다. 죽인다고 하는 말은, 탐욕·분노·우치·아만·질투·거짓·아첨·취상(取相)·상수(想受) 등을 죽이는 것이니, 이것을 죽임이라 합니다.”

죽임을 다 말한 뒤에 또 말하였다.

“천자여, 알아야 합니다. 만일 어떤 선사(禪師)가 탐욕심을 내었다가 그것을 버리고 적정(寂靜)하게 하고 적멸(寂滅)하게 하면, 그것을 공(空)이요 소유가 없고 선(善)이 아니고 취하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천자여, 욕심의 생멸을 생각해 통달하며, 이런 마음이 어디서 생기고 어디서 멸하며, 어디가 즐겁고 어떤 법이 즐겁겠습니까? 이렇게 관찰하면 탐심이 얻는 바가 없으니 어디가 즐거움이며, 얻는 바 없으니 어떤 법이 즐겁겠습니까? 그것도 얻는 바가 없는데 만일 얻는 바가 없으면 그것은 취하지 않는 것이요, 만일 취하지 않으면 그것은 버리지 않는 것이며, 만일 버리지 않으면 그것은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는 것입니다. 이래야 욕심을 떠난 적멸이라 할 수 있으며, 이래서 나아가 마음도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천자여,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법을 죽이는 것은 살리는 것이며, 이는 곧 죽이는 것입니다. 이래야 처음으로 마음을 일으켜 사람을 죽이려 할 때 머리를 먼저 때리는 것이라 할 수 있나니, 이것을 죽임이라 합니다. 내 뜻이 여기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 때 문수사리 동자는 다시 선주의 천자에게 말하였다.

“천자여, 만일 당신 천자가 부처님을 물들이지 않고 법과 승을 물들이지 않으면 그래야 나는 당신과 범행을 같이할 것입니다.”

천자는 물었다.

“문수사리여, 무슨 뜻으로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문수사리는 물었다.

“천자여, 이른바 부처님을 당신은 어떻게 아십니까?”

천자는 대답하였다.

“문수사리여, 진여법계와 같은 것을 부처님이라 합니다.”

문수사리는 물었다.

“천자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당신은 진여법계를 물들일 수 있습니까?”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내 뜻이 여기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당신이 부처님을 물들이지 않으면 나는 당신과 범행을 같이할 것입니다.” “또 천자여, 이른바 법을 당신은 어떻게 해석합니까?”

천자는 대답하였다.

“문수사리여, 이것은 욕심을 떠나는 법이니 이것을 법이라 합니다.”

문수사리는 물었다.

“천자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저 욕심을 떠나는 법을 당신은 물들일 수 있습니까?”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내 뜻이 여기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당신이 법을 물들이지 못하면, 나는 당신과 범행을 같이할 수 있습니다. 또 천자여, 이른바 승(僧)을 당신은 어떻게 해석하십니까?”

천자는 대답하였다.

“무위(無爲)이기 때문에 승이라 하는데 성스러운 성문승(聲聞僧)은 무위승(無爲僧)이니 그렇기 때문에 승이라 말합니다.”

문수사리는 물었다.

“천자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저 무위승을 당신은 물들일 수 있습니까?”

대답하였다.

“안 됩니다.”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내 뜻이 여기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당신이 승을 물들이지 못하면 나는 당신과 범행을 같이할 것입니다.

천자여, 만일 사람이 부처님을 얻으면 그는 부처님을 물들이는 것이요, 만일 사람이 법을 얻으면 그는 법을 물들이는 것이며, 만일 사람이 승을 얻으면 그는 승을 물들이는 것입니다. 천자여, 만일 부처님을 얻지 않으면 이와 같이 그는 부처님을 물들이지 않는 것이요, 만일 법을 얻지 않으면 이와 같이 그는 법을 물들이지 않는 것이며, 만일 승을 얻지 않으면 이와 같이 그는 승을 물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부처님과 법과 승은 그 사람이 얻는 것이니, 그러므로 물들이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천자여, 만일 사람이 부처님을 사랑하고 법을 사랑하며 승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부처님을 물들이고 법을 물들이며 승을 물들이는 것입니다. 만일 부처님을 얻지 않으면 그는 부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니 부처님을 물들이지 않는 것이요, 만일 법을 얻지 않으면 그는 법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니 법을 물들이지 않는 것이며, 만일 승을 얻지 않으면 그는 승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니 승을 물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천자여, 만일 염착(染著)하지 않으면 이것은 탐욕의 글귀요 이것은 합하지 않는 글귀이며, 이것은 보이는 글귀요 이것은 실로 생각하지 않는 글귀이며, 실하지 않은 글귀요 실로 결정하지 않은 글귀이며, 욕심을 떠나지 않은 글귀이니, 그러므로 욕심을 떠난 적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천자여, 내 뜻이 여기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부처님을 물들이지 않고 법과 승을 물들이지 않으면, 그래야만 나는 당신과 범행을 같이할 것입니다.”

그 때 선주의 천자가 문수사리 동자에게 말하였다.

“매우 희유합니다, 문수사리여. 당신은 그렇게 매우 깊은 법을 잘 말했습니다. 나는 은혜를 갚아야 하겠습니다.”

문수사리는 대답하였다.

“천자여, 당신은 은혜를 갚지 마십시오.”

천자는 물었다.

“내가 지금 어떻게 은혜를 갚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문수사리는 대답하였다.

“천자여, 당신은 은혜를 갚지 마십시오. 그렇습니다, 천자여. 당신이 은혜를 갚지 않는 것이 곧 은혜를 갚는 것입니다.”

천자는 물었다.

“문수사리여, 당신은 은혜를 갚지 않습니까?”

문수사리는 대답하였다.

“천자여, 그렇습니다. 내가 은혜를 갚지 않는 것은 내가 은혜를 갚은 것이 아닙니다.”

천자는 물었다.

“문수사리여, 당신은 무슨 뜻으로 그렇게 말합니까?”

문수사리는 대답하였다.

“천자여, 우치한 사람은 다른 법을 짓고, 우치한 사람은 다른 견해를 지으며, 우치한 사람은 다른 행을 짓습니다. 다른 법과 행과 견해를 짓기 때문에 은혜를 갚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천자여, 아십시오. 이것은 바른 행의 선남자가 아니며, 나아가 조금 짓거나 혹은 짓거나 짓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갚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불세존의 평등한 설법과 같습니다. 이른바 일체 법은 다 짓지 않으며 지을 수도 없는 것으로서 마음이 평등하면 다르게 취하지도 않고 다르게 짓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갚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천자는 물었다.

“문수사리여, 당신은 어떤 법에 머물러 이렇게 말합니까? 인(忍)에 머물러 말하는 것입니까, 법에 머물러 말하는 것입니까?”

문수사리는 대답하였다.

“천자여, 인도 아니요 법도 아닙니다.”

천자는 물었다.

“문수사리여, 어디 머물러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문수사리는 물었다.

“천자여, 허깨비 사람의 몸이 어디에 머무릅니까?”

천자는 물었다.

“어디에 또 허깨비 사람의 머무름이 있습니까?”

문수사리는 대답하였다.

“진(眞)인 것처럼, 머무르는 것처럼 저 허깨비 사람은 그와 같이 머무릅니다. 천자여, 아십시오. 만일 어디에 머문다고 그렇게 말한다면 왜 어떤 인과 어떤 법인지를 묻습니까? 천자여, 아십시오. 인이란 오직 이름이 있을 뿐이요, 이름은 머무르는 곳이 없으며, 법은 이동하지 않고 분별하지 않으며, 또 처소도 없는 것입니다. 천자여, ‘일체 중생이 어디 머무는가? 저기 머문다’라고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왜냐 하면 부처님 말씀과 같이 진여인 듯이 머물고 일체 중생도 그와 같이 머무릅니다. 진여는 움직이지 않기에 진여이며, 일체 중생의 진여와 여래의 진여는 둘이 아닌 진여요 다르지 않은 진여입니다.”

그 때 선주의 천자는 문수사리 동자에게 말하였다.

“문수사리여, 사문나(沙門那)라고 말하는데 사문나란 무엇을 말합니까?”

문수사리는 대답하였다.

“천자여, 이른바 사문(沙門)도 아니요 바라문(婆羅門)도 아닙니다. 왜냐 하면 천자여, 만일 욕계에도 집착하지 않고 색계에도 집착하지 않으며 무색계에도 집착하지 않으면 그를 사문이라 한다고 나는 말합니다. 천자여, 만일 눈이 새지 않고[不漏] 귀가 새지 않으며, 코가 새지 않고 혀가 새지 않으며, 몸이 새지 않고 뜻이 새지 않으면 그를 사문이라 한다고 나는 말합니다.

천자여, 만일 의지하지 않으면 의지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의지하는 곳이 아니면 의지하는 곳이 아니라고 말하면 그를 사문이라고 나는 말합니다. 천자여, 만일 탐하고 즐기는 마음이 조금도 없고, 오는 곳이 조금도 없으며, 상하지 않고 상함이 없으면 그를 사문이라 한다고 나는 말합니다. 이런 글귀와 말이 사문이 아니면 바라문도 아닙니다.”

그 때 그 회중에 다섯 보살이 있었다. 그들은 4선처(禪處)를 얻었고 5신통을 얻었었다. 그 때 그 보살들은 삼매에 의하여 앉고 삼매에 의하여 일어나면서도 법인(法忍)은 얻지 못했었다.

그 때 그 보살들은 가만히 생각했다. 즉 그들은 전생에 어머니를 죽이고 아버지를 죽였으며 나한(羅漢)을 죽였었다. 그 남은 업을 생각하면 그 때문에 마음이 뜨거워져 매우 깊은 법인을 얻지 못하고 깨쳐 들어가지도 못하며, 또한 마음을 보존하지도 못하고 나[我]에 의해 분별하며, 그 죄를 생각하고 마음에 버리지 못하여 그 때문에 매우 깊은 법인을 얻지 못하였다.

그 때 세존께서는 그 보살들의 마음을 열어 줄 수 있음을 아시고 그 위신의 힘을 문수사리 동자에게 입혀 주셨다. 그래서 문수사리 동자는 부처님의 신력을 받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왼쪽 어깨의 옷을 여미고는 오른손에 칼을 잡고 예리하게 갈아 부처님을 향해 빨리 달려갔다.

그 때 세존께서는 문수사리 동자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거기 서거라, 그대는 거기 서거라. 문수사리여, 나는 벌써 누구에게서 아주 죽임을 당했다. 왜냐 하면 문수사리여, 벌써 오래 전에 언제인가 어떤 사람이 나를 죽일 마음을 내었었다. 그가 만일 죽일 마음을 내었으면 그것은 곧 나를 죽인 것이다.”

그 때 저 다섯 보살은 이렇게 생각했다.

‘모든 법은 허깨비와 같아서 나도 아니요 중생도 아니며, 수명도 아니요 장부도 아니며, 사람도 아니요 마나바(摩那婆:정행인)도 아니며, 어머니도 아니요 아버지도 아니며, 아라한도 아니요 부처님도 아니며, 법도 아니요 승도 아니며, 이 역죄(逆罪)도 아니요 역죄를 지은 사람도 없다. 왜냐 하면 지금 이 문수사리 동자는 지혜로 깊이 알고, 자세한 마음으로 생각하며, 총명하고 지혜로워 모든 부처님의 칭찬을 받고, 매우 깊은 법인을 얻었으며, 이미 과거의 한량없는 억 나유타 백천 부처님께 공양하였다.

문수사리는 과거 모든 부처님께 갖가지로 공양하고, 자재한 지혜로 일체 모든 법을 잘 통달하여 그 법대로 잘 설명하고 여실히 말하면서 여래를 공양하였다. 그는 예리한 칼을 잡고 부처님을 향해 빨리 달려갔다. 부처님께서는 〈멈추어라, 멈추어라. 문수사리여, 나는 이미 죽여지고 아주 죽여졌다〉라고 하셨다. 만일 조금이라도 법이 있어 화합해 모이면 결정코 부처님이라 하고 법이라 하며 승이라 하며, 어머니라 하고 아버지라 하며 아라한이라 하며, 취할 역죄가 있으면 떠날 수 없다. 그러나 그 법은 실체가 없고 있는 것이 아니며, 여(如)가 아니요 실(實)이 아니며, 나지도 않고 일어나지도 않으며, 공으로서 허깨비의 변화와 같다. 그러므로 이 법에는 죄를 얻는 사람도 없고 얻을 죄도 없다.’

이렇게 생각하고 잘 알았다. 그 다섯 보살은 이렇게 잘 알고는 곧 무생법인을 얻었으며, 그 법인을 얻고는 기뻐 뛰면서 허공에 오르되 땅에서 멀지 않은 7다라수(多羅樹) 높이에서 게송으로 말했다.

모든 법은 허깨비 같은데 
다 분별에서 일어난다.


이것은 결정코 있는 것 아니거니 
모든 법은 다 공이다.



마음은 실로 분별하지 못해 
어리석게도 나라는 생각을 가진다.


과거 세상 생각하면 
어떤 악업 지었던가.



과거에 일찍이 
부모님 좋은 복밭 죽이고 
나한 비구 죽이는 등 
극히 중한 악업 지었다.



그 악업의 과보로 
나는 고뇌를 받을 것인데 
지금 선인(善人)에게서 
법을 듣고 의심과 회한을 없앴다.



마음에 회한(悔恨)을 버리지 않고 
큰 이름 가진 이 생각하면서 
법계(法界)를 깨달아 아나니 
어디엔들 번뇌 없겠는가.



부처님의 교묘한 방편 
그 방편을 아시는 모니(牟尼) 
어떤 방편의 힘으로 
중생의 의심과 회한 깨끗이 하랴.



모든 법은 공하고 실체가 없어 
부처님도 아니요 법도 승도 아니며 
부모도 얻을 수 없고 
아라한도 또한 없다.



조그만 법의 죽임도 없고 
조그만 법의 타락도 없이 
모든 법의 평등한 상은 
저 평등과 같이 머문다.



문수는 큰 지혜로 
이런 법을 이미 깨닫고 
예리한 칼을 손에 잡고는 
여래 향해 빨리 달렸다.



예리한 칼과 또 부처님 
그 둘은 다른 상 없어 
생(生)도 아니요 실(實)도 아니거니 
여기에는 사람의 죽이는 일 없네.

이 칼을 잡은 법문을 말씀하셨을 때 시방의 항하의 모래와 같은 모든 부처 님 세계가 여섯 종류로 진동하고 대지가 크게 동요하며 세계가 다 일어났다.

그 때 그 시방 모든 부처님 세계의 모든 불세존께서는 다 현재의 현재 목숨으로 현재에 계셨다. 그 부처님의 시자들은 각각 그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누구의 위력이 이 대지를 동요시켜 세계가 다 일어납니까?”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사바(娑婆)라는 부처님 세계가 있고, 거기 석가모니 여래·응공[應]·정변지(正遍知)라는 부처님께서 계시면서 대중을 위해 설법하신다. 그 사바세계에 문수사리라는 동자 보살마하살이 있는데, 그는 보리의 도에서 물러나지 않게 되어 예리한 쇠칼과 지혜의 쇠칼을 들고 부처님을 향해 빨리 달려갔으나 다른 보살들을 깨우치기 위해서이다. 그는 자재한 힘이 있고 제 능력을 아는데, 이 인연으로 대지를 진동시킨 것이다.”

그 때 세존께서는 지혜의 쇠칼에 의해 여여(如如)의 법을 연설하시어 셀 수 없이 많은 중생들로 하여금 눈이 깨끗하고 마음이 풀리며 인(忍)이 생겨 보리를 행하고자 하게 하셨다. 그리고 세존께서는 주지(住持)의 힘으로, 그 회중에서 처음으로 미소한 선근을 발기하고 허망하게 분별하며 갖가지로 분별하는 중생들을 주지하고 옹호하여 그들로 하여금 쇠칼을 보지 못하고 여기서 연설하는 칼을 잡는 법문을 듣지 못하게 하였다.

그 때 장로 사리불이 문수사리 동자에게 말하였다.

“문수사리여, 당신은 지극히 악한 생사의 업을 지었습니다. 당신은 의사(醫師)를 죽이려 하였습니다. 만일 이 업이 성숙하면 어디서 그 과보를 받을 것입니까?”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대덕 사리불이여, 지은 모든 악업은 내가 나면서부터가 아닙니다. 그러니 이 행이 어디서 성숙할지 모릅니다. 대덕 사리불이여, 어디서 허깨비 사람의 허깨비로 변화한 업이 성숙하기에 그렇게 내 업이 성숙하는 것입니까? 왜냐 하면 허깨비 사람은 분별을 내지 않고 허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대덕 사리불이여, 일체 모든 법은 다 허깨비의 변화와 같은 것입니다.

또 대덕 사리불이여, 나는 지금 당신에게 묻겠습니다. 당신은 뜻한 대로 대답하십시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당신에게 있는 쇠칼을 얻을 수 있습니까?”

대답하였다.

“없습니다.” “당신에게 있는 악업을 얻을 수 있습니까?”

대답하였다.

“없습니다.” “그 과보를 얻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대덕 사리불이여, 만일 쇠칼도 없고 업도 없고 과보도 없다면 어느 업이 성숙하겠습니까?”

그 때 존자 사리불이 말하였다.

“문수사리여, 무슨 뜻으로 그렇게 말합니까?”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나아가 조그만 업보도 성숙할 것이 없습니다. 왜냐 하면 일체 법에는 업도 없고 과보도 없고 업보의 익음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 때 시방세계에서 거기 온 모든 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원하옵나니 세존이시여, 그 위신의 힘을 저 문수사리 동자에게 입혀 저희가 이 부처님 세계에 온 것처럼 시방 모든 부처님 세계에 가서 이렇게 설법하게 하소서.”

그 때 문수사리 동자가 저 보살마하살에게 말하였다.

“당신네 선남자들은 각각 부처님 세계를 관찰해 보십시오.”

그 때 저 보살마하살들은 두루 각각 시방의 제 부처님 세계를 관찰하다가 각각 제 부처님 세계의 문수사리 동자의 음성을 듣고, 각각 문수사리 동자가 그 부처님 앞에 서서 모든 대중을 위해 이 법문을 연설하며, 거기에 각각 선주의 천자가 있어 이 법문을 묻고 각각 모든 보살이 모여 있으며, 거기에 모든 천자가 있는 것을 보았다. 이렇게 다 보고는 미증유를 얻어 모두 찬탄하였다.

“희유하고 희유하다. 지금 이 문수사리 동자는 이 부처님 세계에 안주하여움직이지 않으면서 모든 곳에 두루 나타나 모두가 보게 하는구나.”

그 때 문수사리 동자는 저 보살들을 위해 말하였다.

“선남자들이여, 비유하면 요술쟁이가 요술을 잘 배워 그 앉은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갖가지 색을 보이는 것처럼, 이와 같이 보살도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의 요술을 잘 배워 요술과 같은 법 가운데서 나아가 일체 모든 부처님 세계를 마음대로 억념하여 다 나타냅니다. 왜냐 하면 일체 모든 법이 다 요술과 같기 때문이니 이렇게 알아야 합니다.”

그 때 세존께서 문수사리 동자에게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모든 여래께서 세상에 나오시는 것처럼 이 법문을 듣는 것도 그와 같고, 사람이 수다원과(須陀洹果)를 증득하는 것처럼 이 법문을 듣는 것도 그와 같으며, 사람이 사다함과(斯陀含果)를 증득하는 것처럼 이 법문을 듣는 것도 그와 같고, 사람이 아나함과(阿那含果)를 증득하는 것처럼 이 법문을 듣는 것도 그와 같고, 사람이 아라한 법(阿羅漢法)을 증득하는 것처럼 이 법문을 듣는 것도 그와 같고, 이 법문을 듣고 마음에 신해(信解)를 내어 보리(菩提)에 앉는 것처럼 이 법문을 듣는 것도 그와 같으니라.”

문수사리 동자가 아뢰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공(空)과 같고 평등과 같으며, 무상(無相)과 같고 평등과 같으며, 무원(無願)과 같고 평등과 같으며, 진여(眞如)와 같고 평등과 같으며, 법계(法界)와 같고 평등과 같으며, 실제(實際)와 같고 평등과 같으며, 평등과 같고 평등과 같으며, 해탈과 같고 평등과 같으며, 원리(遠離)와 같고 평등과 같습니다.”

그 때 문수사리 동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원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이 법문을 보호하여 후세 말세 50년 때에 염부제(閻浮提)에 널리 행하고 퍼져 선남자·선여인들로 하여금 다 듣게 하소서.”

그 때 삼천대천세계의 일체 하늘 사람들의 북은 소리를 냈고, 일체 꽃나무는 다 무성하여 갖가지 꽃을 피웠으며, 이 삼천대천세계는 다 진동하면서 큰 광명을 놓아 세계를 두루 채우고 해와 달빛을 가려 다 나타나지 못하게 하였다. 64억 백천의 모든 하늘은 기뻐 뛰면서 희유한 마음을 냈고, 허공에 머물러 하늘의 꽃과 향을 비처럼 내렸고, 가루향과 바르는 향을 비처럼 내렸으며, 하늘의 기악을 울리면서 모두가 합장하고 같은 소리를 외쳤다.

“가장 훌륭하고 묘한 이런 법과 기묘하고 훌륭한 법을 잘 연설하였다. 지금 문수사리 동자가 이 법문을 연설하여 우리들이 들었는데 이 세계에서 인간에 나게 되어 법륜을 굴림을 다시 본다. 만일 어떤 중생이 이 법문을 듣고 잘 신해하여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으면 이 사람은 반드시 조그만 공덕으로 오지 않았을 것이며, 어떤 중생이 과거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였으면 이 매우 깊은 법문을 듣고도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 때 문수사리 동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지금 상서로운 상이 나타난 것은 이 경의 법문이 주지(住持)하고 멸하지 않아 후세 50년 때에 이 염부제에 널리 행해 퍼질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렇다, 문수사리여. 지금 상서로운 현상을 보면 이 경의 법문이 주지하여 멸하지 않을 것이다.”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실로 주지(住持)되어 이 법문이 세상에 오래 머물게 하소서.”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만일 세 가지 해탈문으로 열반을 증득한다는 이것이 실로 진실한 말이라면 이 경의 법문이 후세 말세 50년 때에 염부제에 널리 행해 퍼진다는 이것도 실로 진실한 말이니라.”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만일 세존께서 나도 아니요 중생도 아니며, 수명도 아니요 장부도 아니며, 사람도 마나바(摩那婆:淨行人)도 아니며, 더러움도 아니요 깨끗함도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이것이 실로 진실한 말이라면, 이 경의 법문이 후세 말세 50년 때에 이 염부제에 널리 행해 퍼진다는 이것도 실로 진실한 말일 것입니다.

만일 세존께서 말씀하시는 탐욕·분노·우치도 아니며, 이름도 아니요 색도 아니며, 인(因)도 아니요 견(見)도 아니며, 유(有)도 아니요 유식(有識)도 아니며, 신(身)도 아니요 신기(身記)도 아니며, 심(心)도 아니요 심기(心記)도 아니며, 억(憶)도 아니요 억념(憶念)도 아니며, 처(處)도 아니요 처행(處行)도 아니며, 색(色)도 아니요 수(受)도 아니며, 상(想)도 아니요 행(行)도 아니요 식(識)도 아니며, 눈도 아니요 빛깔도 아니며, 귀도 아니요 소리도 아니며, 코도 아니요 냄새도 아니며, 혀도 아니요 맛도 아니며, 몸도 아니요 감촉도 아니며, 뜻도 아니요 법도 아니며, 욕계도 아니요 색계도 아니요 무색계도 아니며, 단(斷)도 아니요 상(常)도 아니라는 이것이 실로 진실한 말이라면, 이 경의 법문이 후세 말세 50년 때에 염부제에 널리 행해 퍼진다는 이것도 실로 진실한 말일 것입니다.

만일 세존께서 말씀하시는 수다원(須陀洹)도 아니요 수다원과(須陀洹果)도 아니며, 사다함(斯陀含)도 아니요 사다함과도 아니며, 아나함(阿那含)도 아니요 아나함과도 아니며, 아라한(阿羅漢)도 아니요 아라한의 법도 아니며, 벽지불(辟支佛)도 아니요 벽지불의 법도 아니며, 여래도 아니요 여래의 법도 아니며, 10력(力)도 아니요 무외(無畏)도 아니며, 상(常)도 아니요 식(識)도 아니며, 공(空)도 아니요 무상(無相)도 아니요 무원(無願)도 아니며, 무욕(無欲)도 아니요 본성도 아니며, 득(得)도 아니요 증(證)도 아니며, 집(集)도 아니요 명(明)도 아니며 해탈도 아니요, 피안(彼岸)도 아니요 중간도 아니요 차안(此岸)도 아니며, 열반도 아니요 명(名)도 아니요 무기(無記)도 아니라는 이것이 실로 진실한 말이라면, 이 경의 법문이 후세 말세 50년 때에 염부제에 널리 행해 퍼진다는 이것도 실로 진실한 말일 것입니다.

만일 세존께서 말씀하신 대로 실로 사람이 없으면 상응하고 상응하지 않으며 모이지 않고 흩어지지 않는다는 이것이 실로 진실한 말이라면, 이 경의 법문이 후세 말세 50년 때에 염부제에 널리 행해 퍼진다는 이것이 실로 진실한 말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전에 여래·응공·정변지께서 과거에 이미 말씀하신 대로 중생이 해탈할 수 있는 조그만 법도 없으며, 얻을 열반도 없고, 중생도 없으며 법의 생김도 없고 법의 멸함도 없으며, 잃음도 아니요 움직임도 없다고 과거에 말씀하신 것과 같이 미래와 현재에도 그렇게 말씀하시는 이것이 실로 진실이라면, 이 경의 법문이 후세 말세 50년 때에 염부제에널리 행해 퍼진다는 이것도 실로 진실한 말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이 법을 말함에 있어서 조그만 법도 말함이 없고, 말도 아니요 말함도 아니며, 말로 말함도 아니요 필경의 말함도 아니며, 미래에 대한 말함도 아니요 현재의 말함도 아니며, 메아리 소리의 말함도 아니요 자주자주 말함도 아니며, 이 법을 말함도 아니요, 한 자의 말함도 없으며, 이 법의 말함도 없고 현재에 듣는 사람도 없으며, 미래에 듣는 사람도 없고, 해탈을 얻는 사람도 없다는 이것이 실로 진실한 말이라면, 이 경의 법문이 후세 말세 50년 때에 염부제에 널리 행해 퍼진다는 이것도 실로 진실한 말일 것입니다.

만일 세존께서 이 계율을 말씀하시되, 계율도 아니요 계율의 과(果)도 아니며, 삼매도 아니요 삼매의 곳도 아니며, 반야도 아니요 반야의 근본 지혜도 아니며, 해탈도 아니요 해탈의 지혜도 아니라는 이것이 실로 진실한 말이라면, 이 경의 법문이 후세 말세 50년 때에 염부제에 널리 행해 퍼진다는 이것도 실로 진실한 말일 것입니다.

만일 세존께서 말씀하신 대로 보살의 법 안에서는, 보시의 버림도 아니요 계율의 수호도 아니며, 인욕의 닦아 모음도 아니요 정진의 일으킴도 아니며, 선정의 결정도 아니요 반야의 행도 아니며 ,보리를 구함도 아니요 실행의 구름[轉]도 아니며, 보리를 얻음도 아니요 힘을 얻음도 아니며, 무외(無畏)를 얻음도 아니요 근(根)도 아니며, 정(正)도 아니요 법륜을 굴림도 아니며, 중생을 해탈시킴도 아니요, 말로 말함도 아니라는 이것이 실로 진실이라면, 이 경의 법문이 후세 말세 50년 때에 염부제에 널리 행해 퍼진다는 이것도 실로 진실한 말일 것입니다.”

이렇게 설법할 때 삼천대천세계가 여섯 종류로 진동하였다.

그 때 미륵 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으로 이 세계가 이렇게 크게 진동하나이까?”

세존께서는 곧 미륵 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미륵이여, 그대는 그런 말을 말아라. 신심이 적은 중생들이 그 말을 들으면 이해하지 못하고 곧 두려움을 낼 것이다.”

미륵 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말씀해 주시면 많은 사람들이 힘을 얻고 이익이 많으며 하늘과 사람들을 안락하게 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미륵이여, 과거에 이미 74억 나유타 백천의 모든 부처님께서 여기서 이 법문을 말씀하셨고, 문수사리 동자 보살과 선주의(善住意) 천자가 서로 문답하고 논의하였느니라.”

미륵 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문수사리 동자 보살과 선주의 천자가 이 법문을 들은 지는 얼마나 오래되었으며, 어느 부처님에게서 이 법문을 들었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미륵이여, 먼 과거 7아승기 백천 겁 전에 보화사자유보승공덕집(普華師子遊步勝功德集) 여래·응공·정변지라는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셨는데, 이 선남자들은 그 때 그 부처님에게서 이 법문을 들었느니라.”

이렇게 설법하실 때, 항하의 모래같이 많은 중생들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을 내었고, 저 2억15) 인은 불퇴인(不退忍)을 얻었으며, 또 2억 인은 번뇌를 떠나 법안(法眼)을 얻었다.

세존께서 이 법문을 마치시자 모든 비구와 문수사리 동자 보살과 선주의 천자 및 모든 하늘·사람·아수라·건달바 등이 부처님 말씀을 듣고 모두가 크게 기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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