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이 지극하여 보살을 만나다

정성이 지극하여 보살을 만나다

허운(虛雲)선사는 근대 불문(近代佛門)에 이름난 스님 이었다.

어려서 어머니를 여읜 것이 한이 돼 부모의 은덕을 갚으려고 오대산에 참배하기로 원을 세웠다.

광서(光緖) 8년(1882) 9월 1일 남해(南海)의 보타산 법화암을 떠나서, 향로를 받들고 세 걸음마다 한번씩 절하면서 오대산까지 가기로 하였다.

멀고먼 길을 걸어서 이듬해 섣달에 황하의 철사 나루에 다다랐다.

나루를 건너 언덕에 올랐으나 날은 저물고 사방에 인가는 없어 갈 곳이 없었는데 길가에 다행히 헛간이 있어서 들어가 의지하였다.

방은 춥고 눈은 퍼부어 날이 샐 무렵에는 유리 세계로 변하였는데 눈은 한 자가 넘게 쌓였고 길을 분간할 수 없으며, 왕래하는 사람도 없어 방향조차 찾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쭈그리고 않아서 염불을 하였으나, 추위와 굶주림은 점점 심했다.

헛간은 사방에 가리운 것이 없으므로 한곳에 꼬부리고 엎드렸더니, 눈은 퍼붓고 추위는 점점 심했다.

배는 더욱 고파서 실 같은 목숨을 겨우 부지하면서 이렇게 삼일을 지나니, 굶주리고 얼어서 꼼짝할 수가 없었고, 눈이 그치고 볕이 났으나 병이 심하여 일어날 수도 없었다.

홀연히 나타난 걸인이 선사가 눈 속에 누운 것을 보고, 누구냐고 물었으나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얼어붙은 줄을 알고 눈을 헤치고 헛간에 덮었던 풀을 내려 불을 피우고 쪼이니,

따뜻한 기운이 돌며 깨어나고,

또 기장쌀로 죽을 쑤어 먹이니 다시 살아났다.

걸인이 선사께 물었다.

『스님은 어디서 옵니까? 남해에서 옵니다.』

『어디로 가십니까?』

『오대산에 참배하러 갑니다. 그런데 당신은 누구요.』

『문길(文吉)이오.』

『어디로 가시오?』

『오대산에서 오는데 장안(長安)으로 갑니다.』

『오대산에서 온다니 사중(寺中)을 여러 번 다니었소?』

『나를 아는 이가 많지요.』

걸인은 날이 샌 뒤에 기장 죽을 쑤려고 솥에 눈을 퍼부으면서 물었다.

『남해에도 이련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없으면 무엇을 먹나요?』

『물을 먹지요.』

솥의 눈이 녹은 뒤에 걸인은 솔에 있는 물을 가리키면서 물었다.

『이것은 무엇이오?』

선사는 대답이 없었다.

그 뒤에 선사는 전과 같이 절을 하면서 길을 걸어서 그 이듬해에 회경부(懷慶府)에 이르렀다.

길가에서 자다가 그 날 밤에 복통을 심하게 앓았다.

속병까지 걸려서 설사와 이질을 앓으면서도 이튿날 간신히 길을 걸어 황사령(黃沙嶺)에 이르렀다.

다시 행보를 할 수가 없어서 영상에 있는 성황당에서 밤을 새우며, 음식을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하고 하루에 수십 번을 설사하니 일어날 기운이 없었고, 산마루인지라 왕래하는 사람도 없어 눈을 감고 죽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밤이 깊었는데 문득 서쪽 담장 밀에 불을 피우는 사람이 있는 것을 애달았다.

자세히 보니 문길이었다.

너무 기뻐서

『여보시오!』하고 불렀더니,

문길도 알아보고

『웬일이오, 당신 어째서 여기 있습니까?』

하면서 약을 내어 먹이고, 똥물에 더러워진 옷을 빨아주고 기장 죽을 쑤어서 먹게 하니,

몇 날 지나 병은 좀 차도가 있었다.

선사가 문길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디서 옵니까?』

『장안에서 옵니다.』

『어디로 가겠소?』

『오대산으로 가는 길이오.』

『나는 병이 아직 쾌차하지 못하고, 또 절을 하면서 가는 터이니, 당신을 따라갈 수가 없구려.』

『당신은 지난 섣달부터 오늘까지 겨우 여기 왔구려!

절하면서 걷는 길이라 많이 걷지 못하니 언제 오대산까지 가겠소.

게다가 병까지 걸려서 몸은 쇠약한데 아직도 길이 머니 도달하기 어려울 것이오.

여기서 오대산을 향하여 예배만 하여도 마찬가지니 갈 것은 없지 않소?』

『당신이 나를 염려하는 성의는 고맙소마는, 나는 나서부터 어머니를 뵙지 못하였고, 어머니는 나를 낳고 돌아가셨으며, 아버지는 나를 외아들로 두었으나, 나는 아버지를 버리고 도망하였으며, 아버지는 도망한 나를 위하여 벼슬을 사양하시고 오래 살지도 못하셨으니, 하늘이 무너지는 듯 망극하기 수 십 년 되었소. 그래서 서원을 세우고 오대산에 가서 보살께 예경하고. 보살의 가피를 입어 돌아가신 부모의 영혼이 이고득락(離苦得樂)하기를 발원할 것이니, 가다가 죽더라도 죽은 혼이라도 오대산까지 가서 나의 소원을 달성하려 합니다.』

『당신의 효성은 하늘도 감동하겠소. 대단히 고마운 일이오. 나는 지금 오대산으로 가는 길이지만 바쁠 것은 없소. 내가 당신의 짐을 지고 갈 터이니, 당신은 절을 하면서 오시오.』

선사는 감사히 생각하고 동행하여 태곡(太谷)의 이상사(離相寺)까지 갔다가 그 절에 있는 스님들의 괄시를 받았다.

문길이

『여기서는 오대산이 멀지 많습니다. 내가 먼저 갈 터이니, 당신은 천천히 오시오. 짐은 져다줄 사람이 있을 것이오.』

하며 먼저 떠났다.

그 뒤에 분주(粉州)를 지나려는데 호남성(湖南省)에 산다는 군인이 현통사(顯通寺)까지 짐을 실어다 주었다. 선사가 현통사에 가서 문길의 있는 곳을 물어 보았으나 아는 사람이 없었고, 후에 어떤 노승이 합장하며 하는 말이 「아마 문수보살의 화현일 것이라.」했다.

선사는 그 말을 듣고 두 번 절하였고,

두 번이나 죽게 되었을 적에 보살의 화현을 만나 살아나서 오대산 참배의 서원을 성취한 일을 생각하고 감격하기 이를 데 없었다.

<문수성행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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