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자법화경을 보고 마음을 고친 장만복

금자법화경을 보고 마음을 고친 장만복

장만복(張萬福)이라는 사람이 정관(貞觀) 연중(서기 627~647)에 낙주자사(洛州刺史)가 되었다.

성품이 거칠고 포악하여 도무지성 실 하지 못했다.

그는 부임해 가자 물었다

「관내에 덕행이 높은 중이 있느냐? 」

「예, 묘지(妙智)라는 한 여승이 있는데, 수행에 매우 정진하고, 또 법화경 한 질을 만들어 법과 같이 받아 가지고 공양하고 있어서, 그 명칭이 이 지방에 자자합니다. 」

하고 대 답했다.

만복은 시험 삼아 사람을 보내서 그 법화경을 가져다 보려고 했다. 그러나 스님은 이를 거절하고 주지 않았다. 사군(使君, 자사를 일컬음)이 법을 보호하지 않고, 또 재계(齋戒)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만복이 크게 노하여 다시 사람을 보내 억지로 요구했다.

스님은 더 거절할 수가 없어서 법화경을 내어주었다.

만복은 법화경을 얻기는 했으나 끝내 손도 씻지 않고 경을 펴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누런 종이였고 글자는 한 자도 없었다. 만복은 크게 노하여,

「그 요망한 할망구가 이럴 수가 있느냐? 」

하고, 곧 좌우에 명하여 스님을 잡아 오라고 했다. 시자가 스님에게 가서 말했다.

「스님의 경전에 글자가 한 자도 없어서 자사께서 크게 노하여 스님을 잡아 오라고 하셨습니다. 」

스님은 두려워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시자를 따라 자사의 관아에 이르러 문안으로 들어서니, 두 금강신이 금강저를 두 손으로 받들어 스님에게 드리는 형상을 하고 있었다. 스님은 저옥이 마음이 놓였다.

바로 안으로 들어가 자사의 앞으로 나아가자, 법화경이 허공으로 올라가 글자가 모두 금자로 나타났다. 자사는 스님이 이르자마자 금강신과 금자로 글자가 나타난 법화경이 허공으로 올라가 떠 있음을 보고, 놀라고 두려워서 급히 대청 아래로 달려 내려가 스님 앞으로 가서 슬피 울며 예배하고 사죄 참회하였다.

만복이 스님에게, 그 법화경을 만든 내력을 물으니 스님은,

「경을 만들 생각을 하고는 먼저 산중에 닥나무를 심고 늘 향수 물을 주어 잘 자라게 했습니다. 그리하여 닥나무가 크게 자란다음 진흙에 향수를 섞어서 종이 뜨는 집을 짓고, 닥나무껍질을 벗겨서 법식대로 향수로 깨끗하게 해가지고 직공을 고용하여 종이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능히 법을 보호할 수 있는 사람을 수소문하여 모집했더니, 수를 네 댓살쯤 된 강남(양자강 남쪽) 사람이 모집에 응해 와서 법화경을 베껴 쓰게 했는데, 우선 진흙에 향수를 섞어서 청청하게 집을 새로 짓고, 서생(書生)은 사경을시작하기 전에 49일 동안 재계를 한 다음 새로 지은 깨끗한 옷을 입고서야 비로소 쓰기 시작하였고, 외출했을 때에는 돌아와서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에 다시 썼습니다. 쓸 때에는 소승이 손에 향로를 들고 그 앞에 꿇어앉아 서생을 공양했습니다.

법화경은 이처럼 조금도 모자람이 없이 정성을 다하여 완성한 것입니다. 그리고 승니(崙尼), 남녀 네 종류의 옷을 각각 10 벌씩 만들어 두고 경전을 빌리러 오는 사람이 있으면 미리 이레 동안 목욕 재계하게 하고 새 옷을 주어 입게 한 다음에야 경전을 주었습니다. 이렇게 공경하면 영원히 훼손되지 않을 것입니다. 」

스님의 법화경에 대한 지극한 정성을 들은 자사 장만복은 마침내 마음을 돌려 신심을 일으키고, 법화경 1 천질을 만들 것을 발원하여 널리 사방에 공양하고, 자기도 법화경을 받아 가져 게으름이 없었다.

임기가 차서 자사가 돌아간 뒤에도 사람들을 법화경 신봉에 정성을 다했다.

<弘贊傳 第十>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항목은 *(으)로 표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