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태자묘백경(佛說太子墓魄經)

불설태자묘백경(佛說太子墓魄經)

축법호(竺法護)한역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실 때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옛날에 마라내(波羅㮏)라는 왕이 있었다. 이 왕에게는 묘백이라는 태자가 있었는데, 태어날 때부터 매우 총명하였고 용모가 단정하고 깨끗하여 견줄 바가 없었다. 부모는 기이하게 여겼으나 잘 기르며 지켜보아 그가 장성하여 마땅히 이름을 날리게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태자는 입을 다물고 열세 살이 되도록 말하지 않았다. 명리를 탐하지 않아 질박하고 마음이 마치 꺼진 재와 같았으며, 생각이 마른 나무와 같았다. 눈으로는 모습을 보지 않고 귀로는 소리를 듣지 않으니, 그 모양이 벙어리나 귀머거리 장님과 같아 부모가 이를 근심하고 괴롭게 여겼다. 왕이 부인에게 말하였다.

‘이 아이가 장차 다른 나라의 웃음거리가 될 텐데 장차 어찌해야 하는가?’

부인이 왕에게 말하였다.

‘관상쟁이를 불러 상을 보게 하여 왜 말하지 않는지 알아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왕은 곧 바라문을 불러 태자의 상을 보게 하였다. 바라문이 말하였다.

‘이 아이는 세간의 사람이 아니라 형혹(熒惑)1) 이옵니다. 외모는 단정하나 속에는 재앙의 조짐을 품고 있어서 나라를 위태롭게 하고 종실을 멸하여 장 차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니 기른 것은 좋지 않습니다. 마땅히 산 채로 묻어서 죽여 버려야 합니다. 이 아이를 없애 버리지 않으면 국사(國嗣)가 끊어질 것입니다.’

그러자 왕이 부인에게 말하였다.

‘어찌해야 하오? 이제 만약 이 아이를 없애버리지 않는다면 뒤에 다시 태자를 세울 수 없을까 두렵소.’

이에 부인은 왕이 하고자 하는 대로 따랐다. 왕은 즉시 나라 안의 대신들을 불러 함께 의논 하였다. 한 신하가 말하였다.

‘사람이 없는 깊은 산으로 멀리 쫓아버림이 마땅합니다.’

또 한 신하가 말하였다.

‘깊은 물 속에 빠뜨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다른 한 신하가 말하였다.

‘오직 바라문이 한 말을 따르는 것이 마땅하니 깊은 구멍을 파서 산 채로 묻으소서.’

왕은 곧 이 신하의 말을 따라 외진(外陣)의 병사 3천여 명을 불러 땅을 파서 곳집[藏]을 만들게 하였다. 30년 분량의 자량(資糧)을 주고, 다섯 종들로 하여금 태자를 모시게 하였으며, 의복과 영락, 구슬과 보석들을 모두 태자에게 보냈다. 이에 부인이 가슴이 아파 미어지려하니 ‘나는 유독 복이 없어 아들을 낳아도 명이 짧아 이런 재앙을 만났으니 일을 멈추게 할 수 없구나’ 하고는 눈물을 흘리며 목메어 우는데 스스로를 이길 수가 없었다.

이에 다시 태자를 보내어 그가 정전(正殿) 곁에 이르니 5백 명의 부인들이 태자가 단정하고 얼굴이 잘 생겨서 견줄 것이 없음을 보고는 모두 말하였다.

‘태자는 어찌하여 말하지 않아서 생매장을 당하는가.’

5백 명의 채녀(婇女)2) 들이 단정하고 얼굴이 잘생긴 태자를 보고 모두 태자에게 예를 갖추어 말하였다.

‘어찌하여 말하지 않아서 생매장을 당하는가.’

그리고는 각기 태자를 위하여 기악(伎樂)을 연주하였다. 그러나 태자는 묵묵히 보지도 않고 듣지도 않았다. 다시 태자를 보내어 그가 외전(外殿) 곁에 이르니 5백 명의 대신(大臣)들이 태자가 단정하고 얼굴이 잘생겨서 견줄 것이 없음을 보고는 대왕 앞에 나아가 말하였다.

‘태자는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선 다시 머무르게 하면 오래지 않아 말을 할 것입니다.’

그러자 바라문이 말하였다.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왕이 할 수 없이 대신들에게 말하였다.

‘이것은 국사(國事)이니 경들이 알 바가 아니다.’

곳집이 이미 만들어졌으므로 와서 태자를 맞이하니 왕이 그 신하에게 말하였다.

‘태자를 나의 사망상거(四望象車)3) 에 태워 나라 안의 백성들이 나와서 보게 하면 마땅히 태자가 말을 할 것이다. 만약 말을 한다면 곧바로 태워서 돌아오너라.’

이에 태자를 수레에 태워 길을 찾으니 나라 안의 연로한 대신들이 모두 수레 앞을 막고 말하였다.

‘태자시여, 제발 한마디만 하소서. 만약 말하지 않으면 곧 수레가 내 위로 굴러갈 것입니다.’

그러자 개미떼 같은 호위병들이 막아서고 옆으로 피하여 지나게 해서 마침내 태자를 모시고 곳집에 도착하였다.

이때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모두 태자를 따라 곳집으로 와서 곳집의 문을 막아서니 태자는 다시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그러나 개미떼 같은 호위병들이 막아서고 대장기를 든 사람이 곧 물리치니 태자가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나는 새와 달리는 짐승들이 다시 놀라 앞으로 와서 세 겹으로 둘러싸 감추고 다시 곳집의 문을 막으니 태자는 다시 또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이에 태자가 오른 손을 들고 멈춰서서 말하였다.

‘나는 정말로 말하지 않았으니 산 채로 묻히는 것이 당연하나, 내가 지금
다만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지옥에 떨어질까 두려워서이다. 내가 말하지 않았던 이유는 몸을 편안히 하고 해를 피하며 정신을 구제하고 고통을 여의고자 해서 말하지 못한다고 믿도록 하고자 한 것이었다. 그러나 속이고 거짓된 말이 나를 귀머거리·장님·벙어리라고 하였다.’

이 때 백성들이 태자의 말을 들으니, 절묘한 음색이 세상에서 듣기 드문 것으로, 길을 가던 자를 멈추게 하고, 앉아 있던 사람들을 일어나게 하였다. 이에 모두 말하였다.

‘태자는 신성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리고는 모두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은혜를 구하며 잘못을 뉘우쳐 그들의 죄를 구제받기를 원하였다. 이에 그 신하가 듣고는 기뻐 껑충껑충 뛰면서 말을 달려 대왕에게 말하였다.

‘태자께서 이미 말을 하셨습니다. 위로는 푸른 하늘에까지 사무치고 아래로는 황천에까지 사무치니 나는 새와 달리는 짐승들이 모두 와서 태자 앞에 엎드려 듣고 있습니다.’

왕은 태자가 말을 한다는 소리를 듣고 너무 기뻐 껑충껑충 뛰면서 곧 부인과 함께 사망상거(四望象車)를 타고 가서 태자를 맞이하였다. 태자가 부왕을 뒤돌아보고는 수레에서 내려 길옆으로 비켜서고는 네 번 절하고 일어나 말하였다.

‘부왕께서 피곤하게도 멀리 와서 맞이하여 주셨으나 지금 아버님께서는 자식을 이미 낳으시고 서로 버렸으니 은애(恩愛)가 이미 어그러지고 골육(骨肉)이 이미 헤어져 그 뜻이 매우 어긋났으니 듣고 뵈올 수 없습니다.’

그러자 왕이 태자에게 말하였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너는 지혜로운 사람이니 당연히 원래 미칠[及]수가 없었다. 함께 나라로 돌아가 자리를 너에게 주고 나는 스스로 물러나겠다.’

태자가 대답하였다.

‘내가 일찍이 왕이었을 때 행동에 잘못됨이 많았기 때문에 지옥에 떨어져 6만여 년 동안 삼기고 굽고 껍질을 벗기었으니 그 고통은 참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당하였으나 부모가 어찌 내 지옥 고통의 극심함을 알 것이며, 어찌 내 몸의 아픔을 나누어 가질 수 있겠습니까? 저는 지옥의 괴로움이 싫고 두려웠기 때문에 입을 다물고 13년 동안 말하지 않았으니 죄를 면하고 더러움을 제거하게 되기를 바라서였습니다. 속세 밖으로 벗어나 죄와 만나지 않고 근심을 없애고 허물에서 벗어나며, 사는 것을 마치 잠시 머무는 것처럼 생각하였으나 약함을 선택하여 도(道)를 버리고 날로 멀어질 수는 없었으니, 높이 날아올라 멀리 가서 스스로 세상을 구제하였습니다. 세간은 무상하고 황홀하여 꿈과 같으니 아내와 즐겁게 지내는 것도 잠깐일 뿐이며, 환락은 잠시 동안 있는 것이지만, 근심 고통은 오래 지속되는 것입니다.’

왕은 태자의 의지가 견고함을 알고 마침내 도를 배우도록 허락하였다. 이에 태자는 나라와 왕을 버리고 산으로 들어가 도를 구하여 선정을 사유(思惟)하였다. 그리고 목숨이 다하니 곧 도솔천 위에 태어났고 천상의 수명을 마치고는 아래로 세간에 태어나 가유리위왕이 태자가 되어 스스로 부처의 경지에 이르렀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 때의 태자 묘백이 바로 나이며, 그 때의 부왕이 바로 지금의 열두단(閱頭檀)이며, 그 때의 어머니가 지금의 마야이며, 그 때 나를 모시던 다섯 신하는 아야구린(阿若拘隣) 등이며, 그 때에 나를 산 채로 묻고자 했던 바라문은 지금의 조달이니 나와 조달은 세세토록 원한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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