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태자서응본기경(佛說太子瑞應本起經) 01. 상권

불설태자서응본기경(佛說太子瑞應本起經)

오(吳)나라 월지(月支) 우바새 지겸(支謙) 한역 김두재 번역

불설태자서응본기경(佛說太子瑞應本起經) 01. 상권

불설태자서응본기경(佛說太子瑞應本起經) 02. 하권


불설태자서응본기경(佛說太子瑞應本起經) 01. 상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내가 스스로 숙명(宿命:과거세의 삶)을 기억해 보니 수없이 많은 겁(劫) 동안 본래 범부(凡夫)였었다. 처음 부처가 되는 도를 구한 이래로 정신(精神)이 몸을 받아 5도(道:地獄·餓鬼·修羅·人間)를 두루 돌아다녔었다.

한 몸 죽어 무너지면 다시 한 몸을 받아 나고 이렇게 죽음이 한량없었으니, 비유하면 천하의 풀과 나무를 다 베어 산가지[籌]를 만들어서 내 과거 세상의 몸을 계산한다 해도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것과 같았느니라.

대체로 하늘과 땅이 처음 시작되어 마지막까지 다한 것을 1겁이라고 하는데, 나는 그와 같이 천지가 생성(生成)되었다가 무너지는 것이 얼마나 거듭되었는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었느니라.

왜냐 하면 유독 나만이 그 근원을 돌이켜 세간 중생들에게 탐욕의 마음이 오래도록 흘러들고 그들이 애욕(愛慾)의 바다에 빠진 것을 불쌍히 여겼기 때문에 스스로 힘써 노력할 수 있었고 특별히 벗어날 수 있었다.

이러한 까닭에 태어난 세상마다 수고롭고 괴로워도 수고롭다 생각하지 아니하였고 마음을 비우고 고요함을 즐거워하였으며, 한 일도 없었고 탐욕도 없었다. 자기의 재물을 버려 보시하였고 지극한 정성으로 계율을 지켰으며, 겸손하고 몸을 낮추어 인욕(忍辱)하였고 용맹스럽게 정진(精進)하였으며, 일심으로 은미함을 생각하였고 거룩한 지혜를 배웠다. 어진 마음으로 천하의 중생을 살렸고, 고통과 재앙이 있는 중생을 불쌍하게 여겼으며, 근심과 슬픔이 있는 이를 위로하고 도왔으며, 중생들을 양육(養育)하였고 괴로움에 처한 사람을 구제해 주었으며, 모든 부처님을 받들어 섬겼고 진인(眞人)을 각별하게 존경하는 등 수없이 쌓은 공적을 이루 다 기록할 수 없느니라.

예전 어느 때에 정광(定光)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셨다. 그 때에 훌륭한 임금이 있었는데 그 이름은 제승(制勝)이었다. 그는 발마대국(鉢摩大國)을 다스리고 있었는데, 그 나라 백성들에겐 오래 살 수 있는 약이 많았으며 천하도 태평스러웠다.

그 때 나는 보살(菩薩)이었고 이름은 유동(儒童)이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슬기로웠으며, 뜻이 크고 포용력이 넓었으며, 산천[山澤]에 은거(隱居)하면서 현묘함을 지키고 선(禪)을 닦았다. 나는 그 세상에 부처님께서 계시다는 말을 듣고는 마음속으로 혼자 기뻐하면서 사슴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고 걸어서 그 나라에 들어가려고 했다.

길을 가는 도중에 한 조그만 마을이 있었는데, 그 마을에는 도사(道士:外道) 5백 명이 살고 있었다.

보살이 그곳을 지나가다가 밤새도록 도를 논하고 그 이치를 설하였더니, 그 도사의 무리들은 모두 기뻐하였다. 이별할 때가 임박해지자 5백 사람은 각각 은전(銀錢) 하나씩을 주면서 전송하였다. 보살은 그 돈을 받아 가지고 성안으로 들어갔다. 보살이 백성들을 보니 흔연히 바쁜 모습으로 도로를 평평하게 만들고 물을 뿌리고 쓸며 향을 피우고 하기에 길가는 사람에게 나아가 물었다.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을 합니까?’

행인(行人)이 대답하였다.

‘오늘 부처님께서 성안으로 들어오신다기에 그럽니다.’

보살은 크게 기뻐하면서 스스로 생각하였다.

‘매우 통쾌하구나. 이제야 부처님을 뵐 수 있게 되었구나. 마땅히 내가 원하는 것을 구해야겠다.’

조금 있다가 왕가(王家)의 딸이 그곳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그 이름은 구이(瞿夷)였다. 그녀는 물병을 옆구리에 끼고 일곱 송이의 푸른 연꽃[靑蓮華]을 가지고 있었다.

보살이 따라가며 불러서 말하였다.

‘누이여, 잠깐만 멈추시오. 은전 1백 매(枚)를 줄 터이니, 그 손에 가지고 있는 꽃을 나에게 파십시오.’

그녀가 대답하였다.

‘부처님께서 장차 성안에 들어오시면 왕께서 목욕 재계(齋戒)하고 이 꽃을 부처님께 올려야 하니 팔 수 없습니다.’

또 한 번 간청하였다.

‘누이여, 다시 한 번 말하겠는데 그 꽃을 꼭 구하고 싶습니다. 2백 아니면 3백에 파는 것도 허락할 수 없습니까?’

곧 주머니를 뒤져서 5백의 은전을 다 꺼내 주었다.

구이는 (이 꽃의 값은 아무리 높이 책정해도 몇 전에 불과한데 5백에 팔라고 하다니……)라고 생각하다가 그 은보(銀寶)를 탐하여 다섯 송이 꽃을 주고 자기에게는 두 송이만 남겨 놓았다.

그와 이별하고 돌아오면서 마음속에 의혹이 생겼다.

(그는 어떤 도사(道士)이길래 사슴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어 형체(形體)만을 겨우 가렸으면서도 은전의 보배를 아끼지 않고 다섯 송이 꽃을 얻고는 그렇게 기뻐할까? 아마도 범상치 않은 사람 같다.)
그렇게 생각하고는 곧 뒤쫓아가며 그 남자를 불러 말하였다.

‘이 꽃을 구하려고 한 이유를 진실로 나에게 말해 주십시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대에게서 그 꽃을 빼앗을 것입니다.’

보살이 돌아오며 말하였다.

‘꽃을 살 때 1백 전에서부터 시작해서 5백 전에 이르기까지 서로 흥정해서 결정한 것인데 어떻게 빼앗아 가겠다고 합니까?’

그녀가 말하였다.

‘우리 왕가 사람의 힘으로 그대의 꽃을 빼앗을 수 있습니다.’

보살이 특연(慝然)히 말하였다.

‘부처님께 이 꽃을 올리고 원하는 바를 구하려고 할 뿐입니다.’

구이가 말하였다.

‘좋습니다. 바라건대 내가 후생(後生)에 늘 그대의 아내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모습이 예쁘든 추하든 간에 서로 이별하지 않을 것이니, 반드시 마음속에 간직하였다가 부처님께 말씀해 주십시오. 지금 저는 여자라서 나약하기 때문에 부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두 송이 꽃까지 모두 맡기오니 부처님께 드리십시오.’

보살은 허락하였다.

조금 있다가 부처님께서 도착하시자 국왕과 신하와 백성들이 모두 맞이하여 배알하고 각각 이름 있는 꽃을 뿌렸으나 그 꽃들은 모두 땅에 떨어졌다. 보살이 부처님을 뵈옵고 다섯 송이 꽃을 뿌리자 모두 공중에 머물더니 부처님 위에 이르러서는 마치 뿌리가 생겨나는 듯하면서 땅에 떨어지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뒤에 두 송이 꽃을 뿌렸는데 그 또한 부처님의 양쪽 어깨 곁에 머물러 있었다.

부처님께서 지극한 뜻을 아시고 보살을 칭찬하며 말씀하셨다.

‘네가 수없이 많은 겁을 지내는 동안 배운 것이 청정하였고 마음을 항복 받아 목숨을 버렸으며, 욕심을 버리고 공(空)을 지켰고 생겨나지도 않았고 소멸되지도 않았으며, 치우침 없는 자비로 덕을 쌓고 서원을 행하였으므로 지금 이런 것을 얻었느니라.’

이로 인하여 수기를 주며 말씀하셨다.

‘너는 지금부터 이 뒤로 91겁이 되는 현겁(賢劫)이 되면 마땅히 부처가 되리니, 그 명호는 석가문(釋迦文)이라 하리라.'[천축(天竺)의 말로 석가(釋迦)는 능(能)이고, 문(文)은 유(儒))이니, 뜻으로 이름하면 능유(能儒)가 된다.]
보살이 수기의 말씀을 듣고 나서 의심이 풀리고 소망이 그쳤으며, 확연히 아무 생각도 없이 고요히 선정에 들어가 문득 청정(淸靜)하여 생겨남이 없는 법인[不起法忍:無生法忍]을 얻고는 즉시 몸을 가볍게 솟구쳐 허공에 올라가 땅에서 일곱 길쯤 떨어진 채 오르락내리락하더니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의 발에 예를 올렸다. 그러다가 땅에 습기가 있어 질척거림을 보고는 곧바로 가죽옷을 벗어 땅에 깔았지만 진흙을 덮기에는 부족하였으므로 다시 머리를 풀어 땅에 펴고는 부처님으로 하여금 그 위를 밝고 지나가시게 하였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다시 칭찬하시며 말씀하셨다.

‘너는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하여 뒤에 부처가 되고 나면 마땅히 5탁(濁) 의 세계에서 모든 하늘과 사람들을 제도하되 어렵지 않음이 틀림없이 나와 같을 것이니라.’

보살이 정광부처님을 받들어 섬기고 진 땅에 꿇어앉아 말씀드렸다.

‘계율을 받들어 행하고 법을 잘 보호하겠습니다.’

보살이 목숨을 마치자 즉시 제일천상(第一天上)에 태어나서 사천왕(四天王)이 되었으며, 그 하늘의 수명이 다하자 인간 세계에 내려와 태어나서 전륜성왕(轉輪聖王)인 비행황제(飛行皇帝)가 되니, 7보(寶)가 저절로 이르렀다. 그 7보는 첫째 금륜보(金輪寶)요, 둘째 신주보(神珠寶)이며, 셋째 감마보(紺馬寶) 주모갈(朱髦)이요, 넷째 백상보(白象寶) 주모미(朱髦尾)이며, 다섯째 옥녀보(玉女寶)요, 여섯째 현감보(賢鑒寶)이며, 일곱째 성도보(聖導寶)가 그것이다.

8만 4천 살이 지나 수명을 마치자 곧바로 위로 올라가서 제2 도리천(忉利天)에 태어나 천제석(天帝釋)이 되었다가 목숨이 다하자 또 제7 범천(梵天)에 올라가 범천왕(梵天王)이 되었다.

이와 같이 올라가서는 천제(天帝)가 되고, 내려와서는 성주(聖主)가 되기를 각각 서른여섯 번을 반복하여 한 바퀴 돌고 나면 다시 시작하고 이렇게 변화하여 때를 따라 나타나곤 하였는데, 때로는 성제(聖帝)가 되기도 하고, 혹은 유림(儒林)의 종주가 되기도 하였으며, 국사(國師)와 도사(道士)가 되는 등 곳곳마다 화현한 것을 이루 다 기록할 수 없느니라.

보살은 91겁 동안 도덕(道德)을 닦고 부처님의 뜻을 배워 십지행(十地行)을 통하였고, 일생보처(一生補處)에 있으면서 뒤에 제4 도술천(兜術天)에 태어나서 모든 천인의 스승이 되어서는 공을 이룩하고 뜻을 성취하였으며, 신비한 지혜가 한량없었느니라.

기약된 운명이 다가와 장차 인간 세계에 내려가 부처가 되어야 할 처지였으므로 천축(天竺) 가유라위국(迦維羅衛國)에 몸을 의탁하여 태어나니, 부왕의 이름은 백정(白淨)으로 총명하고 슬기로웠고 인자하고 현명하였으며, 그 부인은 묘(妙:摩耶)로서 절개 있고 의로우며 온화하고 어질었다. 가유라위는 삼천 일월(日月)과 1만 2천 천지의 중앙이었다.

부처님의 위엄과 신명이 지극히 높고도 중하시어 변두리 지역에 태어날 수는 없었다. 변두리 땅은 기울어지고 사특하기 때문에 그 중앙에 계시면서 시방을 두루 교화하여야 하므로 지나간 세계에 모든 부처님께서 태어날 때에도 모두 여기에 출현하셨느니라.

보살이 처음 태(胎) 안에 내려올 적에 화현하여 흰 코끼리를 타고 해의 정기를 이고 어머니가 낮잠을 자는 틈을 타 꿈속에 나타나 보였는데, 어머니의 오른쪽 갈비뼈를 통해 들어갔다.

부인이 꿈에서 깨어나 스스로 몸이 무거움을 느끼자 왕이 곧 큰 점쟁이를 불러다가 그 꿈을 점쳐보게 하였다. 점괘에서 말하였다.

‘도덕(道德)이 돌아갈 바인지라 대대로 그 복을 입을 것이니, 틀림없이 성자(聖子)를 잉태하였습니다.’

보살이 태 안에 계실 적에도 청정하여 냄새나고 더러움이 없으셨다.

이에 뭇 신하들과 여러 작은 나라의 왕들이 대왕의 부인이 잉태했다는 말을 듣고 모두 몰려와서 하례를 하였다. 보살이 태중(胎中)에서 외부 사람이 절하는 것을 보았는데 마치 얇은 비단을 통해서 보는 것과 같아 가만히 손으로 그들을 물리쳤다. 그들을 물리친 뜻은 사람들을 동요시키고 싶지 않아서였다.

부인이 회임(懷妊)한 때로부터 하늘에서 음식을 바쳤는데 때가 되면 저절로 꼭 음식이 이르곤 하였으니, 부인은 그것을 받아먹으면서도 그 음식이 어디서 오는지를 알지 못했다. 이런 일이 있고부터는 왕궁의 주방에서 만드는 음식은 쓰고 맵다 하면서 다시는 먹지 않았다.

4월 8일 밤 명성(明星)이 나올 때에 이르러 변화로 오른쪽 옆구리로부터 태어나 땅에 떨어지자마자 곧바로 일곱 걸음을 걷고 나서 오른손을 들고 머물러 선 채 말하였다.

‘천상천하에 오직 나만이 가장 높은 존재이다. 삼계(三界)가 다 괴로움인데 그 무엇이 즐겁겠는가?’

이 때에 천지가 크게 진동하고 궁중이 다 밝아지더니 범석(梵釋)의 천신(天神)이 공중에서 모두 내려와 모시고, 사천왕(四天王)이 영접하여 금으로 된 책상 위에 안치하고는 하늘 향을 끓인 물로 태자의 몸을 씻으니, 몸은 황금색이었으며 32상(相)을 갖추었고 광명이 투명하게 비추었다.

위로는 28천(天)에 이르고 아래로는 18지옥에 이르기까지 부처님 경계의 끝간 데까지 크게 밝지 않은 곳이 없었다.

이 날 밤에 하늘에서 상서로운 감응이 내렸는데 서른두 가지나 되었다.

첫째 대지가 크게 진동하여 언덕과 구릉이 다 평평해졌고, 둘째 길거리가 저절로 깨끗해져서 냄새나는 곳도 다시 향기로워졌으며, 셋째 나라 경계 안에 말라죽었던 나무에서 모두 꽃과 잎이 피어났고, 넷째 공원에는 저절로 기이하고 단 과실이 났으며, 다섯째 육지에 연꽃이 피었는데 그 크기가 수레바퀴와 같았고, 여섯째 땅 속에 묻히고 감추어졌던 것이 모두 저절로 튀어나왔으며, 일곱째 창고에 감추어졌던 보물이 정밀한 광명을 나타내었고, 여덟째 상자 속의 의복이 옷걸이에 걸렸으며, 아홉째 많은 시내와 만 갈래의 흐름이 고요하게 멈춘 채 맑고 맑았고, 열째 바람이 멈추고 구름이 걷혀 공중이 청명(淸明)해졌다. 열한째 하늘이 사방에 가랑비를 내려 윤택하고 향기롭게 하였고, 열두째 밝은 달 같은 신비한 구슬이 전당(殿堂)에 달려 있었으며, 열셋째 궁중에 화촉(火燭)을 다시는 쓸 필요가 없게 되었고, 열넷째 해와 달이며 별들이 모두 멈추어 운행하지 않았으며, 열다섯째 불성(沸星)이 내려와 나타나서 태자의 탄생을 모셨고, 열여섯째 제석과 범천들이 보배 일산으로 궁전 위를 가득 덮었으며, 열일곱째 팔방의 신(神)들이 보배를 가지고 와서 바쳤고, 열여덟째 하늘의 온갖 맛있는 음식이 저절로 앞에 있었으며, 열아홉째 만 개의 보배 항아리마다 감로(甘露)가 가득 담겨져 있었고, 스무째 천신(天神)이 7보(寶)로 장식된 교로거(交露車:구슬을 뒤섞어 장식하여 마치 이슬이 맺힌 듯한 수레)를 이끌고 나타났다. 스물한째 5백 마리의 흰 코끼리 새끼가 저절로 궁전 앞에 벌려 머물러 있었고, 스물두째 5백 마리의 흰 사자 새끼가 설산(雪山)에서부터 나와서 성문에 줄을 서서 머물러 있었으며, 스물셋째 하늘의 여러 채녀(婇女)들이 기녀(妓女)의 어깨 위에 나타났고, 스물넷째 여러 용왕의 딸들이 궁전을 둘러싸고 머물러 있었으며, 스물다섯째 여러 하늘의 숱한 옥녀(玉女)들이 공작 꼬리로 만든 불자(拂子)를 가지고 궁전 담장 위에 나타나 있었고, 스물여섯째 하늘의 여러 채녀들이 금병(金甁)에 향수를 가득 담아 가지고 공중에 벌려 서서 모시고 있었으며, 스물일곱째 하늘 음악이 모두 내려와 동시에 함께 울려 퍼졌고, 스물여덟째 지옥이 다 쉬어서 모진 고통이 행해지지 않았으며, 스물아홉째 독충이 숨고 길조(吉鳥)가 날며 울었고, 서른째 고기잡고 사냥하는 것과 원망과 악이 한꺼번에 자비한 마음이 되었다. 서른한째 국경 안에 아이 밴 부인들이 아이를 낳으면 모두 사내아이였고, 귀머거리·봉사·벙어리·고질병·쇠잔함 등의 온갖 질병이 모두 다 나왔고, 서른두째 나무의 신[樹神]이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 머리를 숙여 예배하고 모셨다.

이 때를 당하여 도량의 좌우가 다 아름답고 기이하지 아니함이 없었으므로 일찍이 있지 않았던 일에 찬탄하여 마지않았다.

부인이 흰 모직천으로 싸 가지고 유모에게 안아 기르게 하였으며, 아이의 이름은 실달(悉達)이라고 하였다.

왕이 부인에게 말하였다.

‘태어난 아들이 범상치 않구료. 우리 나라에 이름이 아이(阿夷)라는 도인(道人)이 있는데, 그는 나이가 백여 세나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지식이 많은데다 관상 보는 법에 밝다고 하니, 이제 함께 가서 아들의 상을 보는 것이 좋지 않겠소?’

부인이 말하였다.

‘좋습니다.’

그리고는 즉시 흰 코끼리에 엄숙하게 수레를 달아 기악을 울리며 길을 인도하게 하였다. 도인을 찾아가서는 황금과 백은(白銀) 각 한 자루씩 주었지만 도인은 그것을 받지 않았다. 도인이 모직천을 펼치고 태자의 상호를 보니 32상(相)을 갖추고 있었다. 그 32상이란, 온몸이 금색으로 되어 있었고, 정수리에 육계(肉髻)가 있었으며, 털은 감청색(紺靑色)이었고, 두 눈썹 사이에 흰 털이 나 있었으며, 목에는 햇빛 같은 빛이 있었고, 눈빛은 감색(紺色)이었으며, 위아래로 다 눈을 깜박거렸고, 입에는 마흔 개의 이가 났는데 희고 가지런하고 평평하였으며, 네모진 뺨이 수레처럼 넓은 것이었다. 혀가 길어 7합(合)이나 되었고, 사자 같은 가슴은 원만하였으며, 몸이 평평하고 반듯하였고, 팔이 길었으며, 손가락이 길었고, 발꿈치가 원만하였으며, 발바닥이 편안하고 평평하였고, 손이 안팎으로 잡을 수 있었으며, 손가락과 발가락 사이에 만망(縵網)이 있었고, 손발에 천 폭의 수레바퀴 같은 무늬가 있었으며, 음근[陰]은 말처럼 숨어 있었고, 장딴지가 사슴 같았으며, 구쇄골(鉤鎖骨)이었고, 털은 오른쪽으로 말렸으며, 하나하나의 털구멍마다 하나의 털이 나 있었고, 피부와 털이 가늘고 부드러웠으며, 먼지와 물이 묻지 않았고, 가슴엔 만(萬)자가 있는 것이었다.

아이(阿夷)는 이 모습을 보고 곧 찬탄하다가 슬피 눈물을 흘리며 말을 하지 못하였다.

왕과 부인은 두려워하며 절을 하고 물었다.

‘상서롭지 못한 것이 있습니까? 그 뜻을 일러 주시기 바랍니다.’

손을 들어 내저으며 말하였다.

‘길한 상입니다. 이롭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감히 대왕께 이런 신인(神人)을 얻으신 것에 대하여 하례드립니다. 어제 저물 무렵에 천지가 크게 진동하더니 그것이 바로 이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이제 상법(相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왕으로서 아들을 낳아 32대인상(大人相)을 갖춘 사람이 나라에 머물러 계신다면 마땅히 전륜성왕이 되어 사천하의 주인이 될 것이며, 7보가 저절로 이르고 길을 갈 때엔 곧 날아다니며, 무기를 사용하지 않아도 자연 태평해질 것이지만, 만약 천하를 좋아하지 않아서 집을 버리고 도를 닦는다면 마땅히 저절로 부처님이 되어 온갖 중생을 제도 해탈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슬픈 일은 내 나이 이미 너무 늙어 마땅히 다음 세상으로 가게 되었으므로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시는 것을 보지 못하고 또한 그 경전을 듣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에 스스로 슬퍼할 따름입니다.’

왕이 그가 상호를 잘 보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태자를 위하여 궁실(宮室)을 지었는데, 세 계절에 맞추어 각각 다른 곳에다가 궁전을 지었다. 비가 내릴 때에는 가을 집[秋殿]에서 살게 하였고, 더울 때에는 서늘한 집[凉殿]에서 살게 하였으며, 춥고 눈이 올 때에는 따뜻한 집[溫殿]에서 살게 하였다. 5백 명의 기녀(妓女)를 뽑았는데, 용모가 단정하고 너무 살찌거나 마르지도 않았으며, 키가 너무 크거나 작지도 않았고, 너무 희거나 검지도 않았으며, 재능이 출중하고 솜씨 있고 아름다운 사람만을 가려 뽑았다. 이들은 각각 몇 사람의 기녀가 가진 재능을 겸하고 있었다.

이들에게 모두 하얀 구슬과 이름 있는 보배와 영락(纓珞)으로 그 몸을 장식하게 하고는 백 명을 한 순번으로 하여 번갈아 가면서 숙소를 호위하게 하였느니라.

그 전각 앞에는 달콤한 과실나무를 죽 늘여 심어놓았고, 나무 사이에 목욕하는 못을 만들어 그 못 가운데엔 수천백 종류의 온갖 기이한 꽃과 기이한 무리의 새들을 살게 하는 등 눈부시게 꾸며서 태자의 마음을 기쁘게 하였다.

태자로 하여금 도를 배우고 싶은 생각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궁실의 담장을 굳고 단단하게 쌓고 문을 여닫는 소리가 40리까지 들리도록 만들었다.

태자가 태어나던 날에 왕가의 청의(靑衣)는 또한 창두(蒼頭:하인)를 낳았고, 마구에서는 흰 망아지와 누런 양새끼를 낳았으니, 노비의 이름은 차닉(車匿)이었고, 말 이름은 건척(揵陟)이었다.

왕이 뒤에 차닉으로 하여금 항상 태자의 시종(侍從)으로 있게 하고 백마를 타고 다니게 하였다.

태자가 태어난 지 7일 만에 그 어머니가 목숨을 마쳤는데, 천인사(天人師)를 회임한 공과 복이 컸기 때문에 도리천(忉利天)에 태어나 저절로 봉록을 받았다.

보살은 본래 어머님의 덕이 자기의 예를 받는 것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이 장차 세상을 마치려는 사람으로 인해 태어났음을 스스로 알았느니라.

태자 나이 일곱 살이 되자 배워야 할 책을 찾아 가지고 양이 끄는 수레를 타고 스승에게 나아갔다. 그 당시는 성인이 떠나신 지 너무 오래되어 책에 두 글자가 빠져 있었는데, 스승에게 여쭈어 보았더니 스승이 알지 못하였다. 그러자 도리어 자신의 뜻을 말하기도 하였다.

태자의 나이 열 살에 이르자 절묘한 재주가 더욱 드러났다. 태자의 종백부(從伯父)와 종중부(從仲父)의 아들 형제 두 사람이 있었는데, 형의 이름은 조달(調達)이었고, 동생은 난타(難陁)였다.

조달은 비록 세상에서는 뛰어난 재주가 있는 사람이었지만 자연 보살에 미치기는 어려웠다. 그런데도 스스로 교만하여 항상 질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한번은 태자에게 청하여 후원(後園)에서 놀자고 하며 과녁을 쇠북에 붙여 놓고 함께 활을 당겨 쏘아 보자고 하였다. 태자는 늘 활을 쏠 적마다 과녁에 적중하여 쇠북을 관통하였는데 두 사람은 그렇지 못하여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마음이 생겼다.

얼마의 세월이 흐른 뒤에 다시 태자에게 청하기를, 왕 앞에서 손으로 밀치기[手搏]를 하여 이기지 못하는 자에게 관정(灌頂)을 하자고 하였다. 태자는 자비하고 어질어서 비록 그들 형과 아우를 물리치기는 하였지만 그들의 몸을 아프게 하지는 않았다.

두 사람은 다시 얼마의 세월이 지난 뒤에 다시 태자에게 청하여 끄는 힘을 겨루어 보자고 하였다. 난타는 앞에서 코끼리의 코를 잡아끌어 뜰 앞까지 끌고 갔고, 조달은 힘이 장사라서 끌어당겨 코끼리를 치자, 태자는 미소를 머금은 채 천천히 코끼리 앞에 다가가서 코끼리를 번쩍 들어 담장 밖으로 내던졌는데 코끼리가 죽거나 다치지 않았다. 그러자 두 사람은 비로소 자기들이 태자만 못함을 깨달았고, 왕과 주위에서 구경하던 사람들도 더욱더 태자가 범상한 인물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태자의 나이 열네 살이 되었을 때에 왕에게 궁궐 밖으로 나아가 유람하면서 관찰하고 싶다고 아뢰자, 측근의 백관들에게 칙명을 내려 길을 안내하고 따르게 하였다.

처음에 성 동쪽 문을 나서자 천제(天帝:淨居天)는, 몸은 깡마르고 배는 불룩한 데다 문벽(門壁)에 의지한 채 천식(喘息)으로 시달리고 있는 병든 사람으로 변화하여 있었다.

태자는 물었다.

‘이는 어떤 사람인가?’

그 종이 대답하였다.

‘병이 든 사람입니다.’ ‘어떤 것을 병이라고 하는가?’ ‘대체로 병이라고 하는 것은 모두가 풍한(風寒)으로 말미암는데, 더러는 열이 나고 더러는 한기가 생겨납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틀림없이 음식을 절제하지 못했거나 자고 일어나는 시간이 일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병에 걸리는 것입니다.’

태자가 말했다.

‘얼마나 괴롭겠는가? 나는 부귀(富貴)한 속에서 살고 있어서 음식도 입에 꼭 맞지만, 또한 절제하지 못한다면 이런 병이 들 터이니, 이 사람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즉시 수레를 돌려 돌아와서는 슬픈 마음으로 생각하였다.

‘인생이 다 이런 걱정이 있는데 어찌 호강한다고 해서 유독 면할 수 있겠는가?’

그러면서 마침내 걱정이 되어 음식도 먹지 않고, 스스로 이 병을 물리칠 수 없음을 생각하였다.

왕이 그 종에게 물었다.

‘태자가 성문을 나가 유람하고 왔는데 어찌하여 즐거워하지 않는가?’

대답하였다.

‘병이 든 사람을 만나보고 그 때문에 저렇게 기뻐하지 않습니다.’

왕이 곧바로 5백 명의 기녀를 더 늘려서 밤낮 없이 즐겁게 하였다. 그리고도 왕은 마음에 근심 걱정이 생겨 혹시라도 태자가 도를 배우겠다고나 하지 않을까 두려워하였다.

수년이 지나 태자는 우울한 마음이 조금 나아지자 다시 왕에게 아뢰었다.

‘폐쇄된 궁중에서 오랜 세월을 지내다 보니 성 밖에 나가서 유람하고 싶은 생각이 일어납니다.’

왕이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미리 온 나라에 칙명을 내려 태자가 나가는 길에 질병에 걸린 사람이 없게 하고, 또한 길가에 깨끗지 못한 것이 없도록 지시하였다.

태자가 수레를 타고 남쪽 성문을 나가자 천제(天帝)가 다시 변화하여 늙은 사람이 되었는데, 머리는 허옇고 등은 굽었으며 지팡이를 짚고 간신히 걸어갔다.

태자가 물었다.

‘이는 무엇하는 사람인가?’

그 종이 대답하였다.

‘늙은 사람입니다.’ ‘어떤 것을 늙었다고 말하는가?’ ‘나이가 자꾸 들어 근기가 성숙해지면 몸이 변하고 얼굴 모습도 쇠약해져서 음식이 잘 소화되지 않고 기력이 허약하고 적어지며 앉고 일어나는 데에도 고통이 극심해지고 남은 목숨도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늙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태자가 말하였다.

‘무슨 즐거움이 있겠는가? 일월이 흘러가서 시간이 바뀌고 세월이 옮겨가면 봄에는 온갖 물질이 생겨났다가 가을과 겨울엔 말라죽으니, 늙음이 다다르는 것도 번개처럼 빠르다. 이 몸을 어찌 족히 믿을 수 있으리.’

수레를 돌려 돌아와서는 고민스럽게 생각하였다.

(인생의 장성함이 오래지 않아서 늙고 병들면 그 고통을 참기 어렵다. 나 또한 오래 살 수 없을 것이니, 천하가 어쩌면 이렇게도 고통스럽단 말인가?)
또 근심하면서 음식을 먹지 않으니, 왕이 밖에 내보낸 것을 후회하면서 다시 5백 명의 기녀를 더 늘려서 그를 즐겁게 해 주도록 하였다.

몇 해가 지나 조금 나아지자 태자는 다시 성 밖에 나가 유람하려고 하였다.

왕이 말하였다.

‘네가 늘 성 밖을 나가 유람하고 돌아오면 그 때마다 즐거워하기는커녕 오직 근심만 생겨 자꾸만 수척해지면서 왜 또 나가려고 하느냐?’

태자가 말하였다.

‘그 때는 그런 괴로움을 생각해서 그랬습니다마는 이제는 나이가 많아 좀 나아졌습니다.’

왕이 온 나라에 칙명을 내려 늙고 병든 사람이 없게 하고 도로 가에 있는 모든 깨끗하지 못한 것들을 없애도록 하였다.

태자가 수레를 타고 서쪽 성문을 나가니 천제가 다시 변화하여 죽은 사람이 되었는데, 집안 남녀들이 번기[幡]를 들고 수레를 따라가면서 울고 통곡하면서 수레를 전송하고 있었다.

태자가 또 물었다.

‘이는 또 무엇 하는 사람인가?’

그 종이 대답하였다.

‘죽은 사람입니다.’ ‘어떤 것을 죽었다고 말하는가?’ ‘죽음이란 다했다는 말인데, 수명에 길고 짧음이 있어서 복이 다하면 목숨을 마치게 되어 기운이 끊어지고 신령이 떠나 버리면 이 형체는 사라져 없어지므로 그런 까닭에 죽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마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태자가 말하였다.

‘대체로 죽음이란 고통스럽구나. 정신이 너무도 피곤하다. 사람이 태어나면 마땅히 이러한 늙고 병들고 죽는 괴로움이 있어서 그 사이에 번민하지 않을 수 없는데도 사람들은 왜 따라 나아가면서도 또한 괴로워하지 않는 것일까? 내가 죽은 사람을 보았을 때 형체가 무너지고 몸이 변화하였는데 신령만은 멸하여 사라지지 않고 행한 선악(善惡)을 따라 화(禍)와 복(福)이 저절로 따르나니, 부귀란 일정함이 없고 몸은 위태로운 성곽과 같다. 그런 까닭에 성인들께서 항상 몸을 걱정하였거만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것을 보호하면서 죽음에 다다라도 싫어함이 없구나. 나도 또한 죽고 나서 다시 생(生)을 받아 5도(道)를 왕래하지 않을 수 없을 터이니, 내 정신이 피곤하구나.’

수레를 돌이켜 돌아와서는 고민하며 생각하였다.

‘천하가 모두 이런 세 가지 고통을 지니고 있구나.’

이렇게 생각하자 근심이 되어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왕이 더욱 좋아하지 않으면서 말하였다.

‘이 나라가 온통 다 너의 소유이니 마땅히 백성과 물상[物]을 다스려야 할 터인데, 어째서 먼 훗날을 염려하여 스스로를 피곤하게 하고 괴로워하느냐?’

다시 5백 명의 기녀를 늘려서 그를 즐겁게 하도록 하였다.

태자의 나이 열일곱 살이 되자 왕이 비(妃)를 맞아들이기 위하여 온 나라에 이름 있다는 여인 수천 명을 살펴보았으나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더니, 가장 마지막에 한 여인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구이(瞿夷)였다. 단정한 데다 인상이 좋고 깨끗하여 천하 제일이었으며, 어질고 재주가 남보다 뛰어나고 예의를 다 갖추었으니, 이는 바로 과거 세상에 꽃을 팔았던 여인이었다.

태자는 여자를 비록 맞아들기는 하였으나 아무리 오래되어도 접촉하지 않았다. 부인은 정욕(情欲)이 생겨 남편을 가까이하고 싶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자 태자가 말하였다.

‘항상 좋은 꽃을 구해다가 우리 사이에 두고 함께 본다면 어찌 좋지 않겠는가?’

구이가 곧 좋은 꽃을 갖추어 놓고 다시 태자를 가까이하려고 하였다.

그러자 태자가 말하였다.

‘이 꽃에서 진액이 나와 책상과 자리를 더럽히고 있구나.’

얼마쯤 지나자 다시 말하였다.

‘품질 좋은 흰 털방석을 구해다가 우리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서로 본다면 또한 좋지 않겠는가?’

부인이 곧 털방석을 갖추어 놓고 다시 태자를 가까이할 뜻을 가졌다.

그러자 태자가 말하였다.

‘부인에게도 더러운 것이 있어서 틀림없이 이 털방석을 더럽힐 것이오.’

그러자 부인은 감히 접근하지 못했다. 옆에서 모시고 있던 여인들이 모두 태자가 남자 구실을 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태자는 손가락으로 태자비의 배를 가리키며 말하였다.

‘지금부터 6년이 지난 뒤에 부인은 반드시 사내아이를 낳을 것이오.’

마침내 태자비는 임신하게 되었다.

이에 태자는 다시 성 밖을 유람하겠다고 아뢰고는 성 북쪽 문을 나아가니, 천제(天帝)가 다시 변화하여 사문(沙門)이 되었는데 법복(法服)을 입고 발우를 가지고 땅을 보면서 걸어갔다.

태자가 물었다.

‘이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그 종이 말하였다.

‘사문입니다.’ ‘무엇을 사문이라고 말하는가?’ ‘대개 들은 바에 의하면 사문은 도를 닦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집과 처자를 버리고 애욕(愛慾)을 버려 6정(情)을 끊고 계율을 지키며 작위[爲]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 도는 청정하므로 한마음을 증득한 사람은 곧 온갖 삿됨이 사 라진다고 합니다.

일심(一心)의 도란 나한(羅漢)을 말하는 것으로 나한은 진인(眞人)입니다. 소리와 물질이 더럽힐 수 없고 영화로운 자리로도 굴복시킬 수 없어서 움직이기 어렵기가 마치 땅과 같습니다. 이미 근심과 괴로움을 면하였으므로 존망(存亡:生死)에 자재롭습니다.’

태자가 말하였다.

‘훌륭하다. 이것만이 통쾌한 것이구나.’

즉시 수레를 돌려 돌아와서는 생각을 가지런하게 하고 음식을 먹지 않았다. 도의 청정함을 염(念)하면서 집에 있는 것은 적절치 않은 일이요, 마땅히 산택(山澤)에 살면서 정(精)을 닦고 선(禪)을 행해야 하겠다고 결심했다.

구이가 마음에 의혹이 생겨 태자가 집을 떠나고 싶어하는 것을 알고는 앉으나 서나 그의 곁을 잠시도 떠나지 않았다.

태자 나이 열아홉 살이 되던 해 4월 8일 밤 천(天)이 창가에서 합장하고 아뢰었다.

‘이 때야말로 집을 떠날 시기입니다.’

태자가 하늘을 우러러 대답하였다.

‘나를 압박하며 모시며 호위하고 있으니 가고 싶어도 마음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자 천신(天神)이 즉시 그의 아내와 여러 기녀의 무리들을 피곤하게 만들어 모두 잠을 자게 하였다.

태자가 천천히 일어나서 아내의 숨소리를 듣고 숱한 기녀들을 바라보니, 모두가 나무 인형과 같아 온갖 마디마다 비어 있어 마치 파초(芭蕉) 속과 같았다. 그 가운데에는 머리를 풀어헤친 채로 북에 기대어 있기도 하였고, 거문고에 몸을 맡겨 엎드려 있기도 하였으며, 서로서로 베개삼아 누워 있기도 하였고, 팔·다리를 땅에 드리우고 있기도 하였으며, 코를 흘리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으며, 입에서 침이 질질 흐르기도 하였다.

거문고·비파·아쟁·피리 등 악기가 종횡으로 울려 퍼지자 푸른 해오라기와 원앙하며 경비하는 무리들이 모두 다 순순히 혼미해져 자리에 누웠다.

태자가 두루 살펴보고 그 아내를 다시 살펴보았더니, 그의 형체에는 털과 손톱·발톱·골수·뇌(腦)·뼈·이·촉루(觸髏)·피부·살·힘줄·맥박·기름·피·심장·허파·지라·콩팥·간·쓸개·소장·대장·밥통·똥·오줌·눈물이며 침 따위가 다 갖추어 보였는데, 바깥은 가죽주머니가 되어 그 가운데에 냄새나는 것이 담겨져 있어서 무엇 하나도 기특한 것이 없는데, 억지로 향을 쪼이고 꽃과 채색으로 꾸민 것이, 비유하면 마치 빌린 물건은 도로 꼭 갚아야 하는 것과 같아서 역시 오래도록 계교할 수 없었다.

(백 년밖에 되지 않는 목숨을 누운 채 그 절반을 소비하고, 게다가 근심과 걱정이 많아서 그 즐거움은 얼마 되지 않는데 음탕한 짓을 하면서 덕을 무너뜨려 사람들로 하여금 어리석게 만드는구나. 저런 것들은 여러 부처님이나 별각진인(別覺眞人:緣覺)들이 칭찬하고 찬양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탐냄과 음욕이 늙게 만들고, 성내고 분해함이 병을 이룩하며, 어리석음이 죽음에 이르게 하니, 이 세 가지를 없앤다면 비로소 도를 얻을 수 있으리라 하였다.)
일심으로 이런 생각을 하고 나서 문득 일어나 불성(沸星)을 쳐다보니 밤이 이미 태반이나 지났는지라 여러 천들이 공중에서 합장하고 태자가 떠날 것을 권하였다.

즉시 차닉(車匿)을 불러 말에 안장을 하게 하고는 천천히 다가가서 치마를 걷고 말에 올라타고 정원에서 배회하면서 (문을 열면 틀림없이 큰 소리가 날 것인데……) 하고 생각하였다. 천왕 유섬(維睒)이 오래전부터 그런 뜻을 알고는 즉시 귀신을 시켜 말의 발을 받쳐들고 아울러 차닉까지 접촉하여 궁성(宮城)을 넘어서 왕의 밭가에 있는 염부수(閻浮樹) 밑에 이르렀다.

이튿날 궁중에서는 소동이 일어났다. 태자가 어디를 갔는지 알지 못해서 천 승(乘) 만 기(騎)가 줄을 지어 찾아 나섰다. 왕도 태자를 찾다가 스스로 밭가에 이르러 멀리 태자가 나무 밑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햇빛이 눈부시게 빛나고 뜨거워지자 나무가 가지를 굽혀 그늘을 만들어 그의 몸을 따라다니며 가려 주었다. 왕이 놀라 두려워하며 마침내 그가 신(神)임을 깨닫고 자신도 모르게 말에서 내려 예를 올리니, 태자도 또한 즉시 앞으로 나아가 절하며 말하였다.

‘저는 남의 자식이 되었으나 일찍이 나라를 벗어나기를 바랐었는데 이제야 마음에 꼭 맞는 곳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대왕께서는 어찌 이곳까지 오셨습니까? 바라건대 부디 환국하십시오. 이제 제가 세속을 떠나고자 한 이유는 스스로 깨달은 것이 있기 때문이니, 은애(恩愛)는 꿈과 같으므로 집에서의 기쁘고 즐거움을 다 버린 것입니다. 또 탐욕(貪欲)은 감옥이 되어 면하여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그런 까닭에 말하기를, (욕심의 그물이 스스로를 가리고 애욕의 일산이 스스로를 덮어 자신이 감옥에 얽매인 것이 마치 물고기가 통발에 들어간 것과 같으며, 또한 늙고 죽음이 틈을 노리는 것이 마치 송아지가 어미의 젖을 찾는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늘 이런 것 때문에 일찍이 스스로 깨닫고 자연(自然)을 찾아서 숱한 괴로움을 제거하고 아직 해탈하지 못한 모든 이들을 제도하기를 원했으며, 아직 깨닫지 못한 모든 이들을 제가 깨닫게 하기를 원했습니다. 편안하지 못한 모든 이들을 제가 편안하게 하기를 원했고, 도를 보지 못한 이로 하여금 도를 얻게 하려고 서원했기 때문에 산에 들어가고자 했던 것이니, 이는 제가 바라는 소원이었습니다. 도를 증득하고서야 마땅히 돌아갈 것입니다. 이런 맹서를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왕은 태자의 의지가 견고하다는 것을 알고는 망연히 할 말을 잊고 문득 스스로 궁성으로 돌아와 구이에게 말하였다.

‘내 아들의 마음이 청백(淸白)하여 움직이기 어렵기가 마치 땅과 같더라. 부귀를 좋아하지 않고 천하를 흠모하지 않으며, 오직 도를 닦는 일만이 내 아들이 하고 싶은 일로서 꼭 도를 이룩하고서야 돌아오겠다고 스스로 약속했느니라.’

그 때 태자는 나뭇가지를 부여잡고 밭을 갈고 있는 사람이 땅을 개간하자 벌레가 튀어나왔는데 까마귀가 따라가 그것을 쪼아먹는 것을 보았다.

‘슬픈 일이구나. 중생들이 물고기의 비늘처럼 줄지어 늘어서서 서로 잡아먹고 있으니, 저 어질지 못한 자들이 서로 해침이 너무도 심하구나. 죽어서 악도(惡道)에 떨어지니 구출하기가 진실로 어렵구나. 온갖 하늘 세계가 아무리 즐겁다 해도 그 또한 항상한 것이 아니구나. 복이 다하면 두렵고 죄를 지어도 역시 두려우니, 화복(禍福)이 서로 이어져서 생사(生死)가 더욱 오래 이어지는구나. 인간 세계를 관찰해 보니 위로 이십팔천(二十八天)에 이르기까지는 지극히 귀한 곳이지만 도가 없이 모두 지옥과 문을 마주하고 있으며,3악도(惡道)에 들어가면 온갖 가지로 심한 고통을 받으니, 환락(歡樂)은 잠시일 뿐이고, 근심과 두려움은 늘어나서 길어지기만 하니, 천지 사이에 어느 하나도 기특한 것이 없다. 나는 다시는 욕애의 의혹에 빠지지 않으리라.’

그렇게 생각하고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말을 타고 차닉을 데리고 수십 리를 가다가 홀연히 5도(道)의 주인을 보았는데, 그 이름은 피식(賁識:五道神名)이었다. 혼자서 가장 굳세고 강하게 보였는데 왼쪽에는 활을 잡고 오른쪽에는 화살을 잡았으며, 허리에는 예리한 칼을 차고서 3도(道)의 거리에 머물러 있었는데, 그 세 가지 세계는, 첫째 천도(天道)요, 둘째 인도(人道)이며, 셋째 3악도(惡道)였다.

이는 이른바 죽은 사람의 혼령이 꼭 지나가다가 보는 곳이었다. 태자가 그곳에 이르러 물었다.

‘어느 길로 따라가는 것이 좋습니까?’

피식이 몹시도 두려워하면서 활을 내던지고 화살을 놓고 칼을 풀어 버리고는 위축된 모습으로 우물쭈물하면서 천도(天道)를 보이며 말하였다.

‘이 길로 따라가시는 것이 좋습니다.’

수십 리를 더 가다가 사냥을 하고 있던 두 사람을 만났다. 태자가 스스로 생각했다.

(내가 이미 집을 버리고 이 산택(山澤)에 와 있으면서 범인(凡人)들처럼 보배 옷을 입는 것은 욕심의 태도가 남아 있는 것이라서 옳은 것이 아니다.)
그리고는 곧바로 보배 갖옷을 벗어 사냥꾼에게 주고 사슴 가죽옷으로 바꾸어 입고는 앞에 이르러 말을 차닉에게 주어 끌고 돌아가게 하였다.

차닉이 꿇어앉아 말하였다.

‘지금 대천(大天)을 따라왔으니 혼자만 돌아가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태자가 말하였다.

‘너는 빨리 돌아가라. 돌아가서 대왕과 집에 두고 온 내 아내에게 사과의 말을 아뢰어라. 이제 나는 함이 없는 큰 도[無爲大道]를 구하고 있으니, 나 때문에 근심하지 말라고 아뢰어라.’

그리고는 곧바로 보배로 만든 갓과 입었던 옷을 벗어서 모두 차닉에게 건네주었다.

그 때 백마(白馬)가 무릎을 꿇고 발을 핥으면서 연달아 구슬 같은 눈물을 흘리니, 차닉도 슬피 울었다. 길을 따라가면서 울다가 태자를 돌아보니, 태자는 이미 사슴 가죽으로 만든 옷을 갈아입고 떠나가고 있었다.

차닉은 말을 끌고 걸어서 돌아왔다. 그러자 궁도(宮都) 안팎이 슬퍼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구이가 통곡하면서 스스로 궁전 아래 몸을 던지며 말하였다.

‘내가 태자가 돌아오기를 목마른 사람이 물을 마시고 싶어하는 것처럼 바랐는데, 이제 너 혼자서 말만 끌고 빈손으로 돌아왔구나.’

앞으로 나아가 말의 목을 끌어안고 태자가 있는 곳을 물었다.

차닉이 말하였다.

‘태자께서 대왕과 집에 두고 온 아내에게 사과하라 하면서 이제 함이 없는 큰 도를 구하고 있으니, 나 때문에 근심하지 말라고 전하라 하였습니다.’

구이가 통곡하며 말하였다.

‘이 얼마나 기구한 운명인가? 살아서나 죽어서나 내가 하늘처럼 여기시던 분이신데 지금 어디쯤에 계시는가? 마땅히 어떻게 해야 다시 찾을 수 있겠는가?’

말의 등을 어루만지면서 말하였다.

‘태자께서 너를 타고 나가셨는데 너는 어째서 혼자만 돌아왔느냐?’

온 나라 인민들이 흐느껴 울지 않는 이가 없었다. 왕도 마음속으로 매우 슬퍼하며,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구이를 타일러 말하였다.

‘내 아들이 깨달은 것은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이 진실로 큰 걱정거리라는 것이니, 이는 신인(神人)이다. 태자가 태어나던 날에 상제(上帝)가 친히 내려왔고 온갖 신령들이 시위(侍衛)하고 있었으며, 부서(符瑞)의 빛나는 모습이 세상에서 보던 것이 아니었느니라.

아이(阿夷)도 관상을 보고 말하기를, (만약 이 천하를 좋아하지 않아서 집을 버리고 출가하여 도를 닦는다면 틀림없이 자연히 부처가 되어 장차 만 백성을 제도하여 해탈시킬 것이다)고 하였으니, 이제 집을 나가 도를 배우는 것은 곧 자연적인 일일 것이다.’

왕은 구이의 마음을 풀어 주려고 하다가 또한 스스로 감격하여 곧 나라 가 운데 호걸이며 어진 사람을 뽑아 수천 명을 얻어 그 가운데서 자손을 많이 둔 사람 다섯 명을 가려내어 그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집에 있으면서 아들을 기르고 손자를 안으며 혼자서만 즐거워하는가? 나에겐 아들 하나가 있어서 일찍이 문을 나서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하루아침에 나를 버리고 멀리 떠나 깊은 산 속 계곡을 건너고 험난하고 막힌 길을 들어가서 길흉의 어려움과 추위와 더위, 목마르고 배고픔을 겪고 있으니, 그 누가 그것을 알 수 있겠는가? 경들 다섯 사람은 각각 한 자식을 보내서 따라가 찾아내어 반드시 따라다니며 모시게 하시오. 만일 중도에서 포기하고 돌아오는 이가 있으면 내가 너희 족속(族屬)들을 멸할 것이오.’

그 때에 아야구린(阿若拘隣) 등 다섯 사람이 명을 받고 태자를 찾아 깊은 산 속에 이르러 따라다니면서 수년 동안 모셨으나 태자는 그들과 말도 하지 않고 스스로 여여함을 수용하였다. 그 다섯 사람은 높은 산을 오르고 물을 건너며 깊은 산 속을 헤매고 다닌 까닭에 괴로워하며 말하였다.

‘이 사람은 미친 사람이다. 어찌 다니는 길이 있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만약 버려두고 되돌아가면 왕이 우리 집안을 멸하리니 여기에서 사는 것이 낫겠다.’

이렇게 말하고는 다섯 사람은 그곳에 머물게 되었는데 그곳엔 샘물이 있었고 단 과일이 모자람이 없었다.

태자는 스스로 길을 떠나 명산(名山)을 넘고 넘어 마갈(摩竭) 국경을 지나갔는데, 병사왕(甁沙王)이 사냥을 나왔다가 멀리서 태자가 산천[山澤] 중에 다니는 것을 보고 즉시 나이 많고 점잖은 여러 대신들과 함께 따라가서 말하였다.

‘태자께선 탄생할 적에 기이한 일이 많았고 형상이 빛났으므로 장차 사천하에 임금이 되면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되어 4해가 화목하고 신비로운 보배가 이르기를 바랐어야 할 터인데, 어째서 천위(天位)를 버리고 스스로 산과 늪을 나다니십니까? 틀림없이 특별한 견해가 있으실 터이니 그 뜻이 무엇인지 듣고 싶습니다.’

태자가 대답하였다.

‘내가 본 천지의 인물은 출생(出生)하면 죽음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심한 고통이 세 가지가 있으니, 그것은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인데 이것을 여읠 수 없었습니다. 이 몸을 헤아려 보니 고통의 그릇에 불과하여 근심스럽고 두려움이 한량없이 많았습니다.

만약 높고 사랑 받는 지위에 있게 되면 교만하고 방탕한 마음이 생겨 쾌락할 생각에만 몰두하게 되어 천하가 근심을 입게 될 터이므로 나는 이것을 싫어하여 산으로 들어가서 그 뜻을 닦으려고 하였습니다.’

늙고 점잖은 여러 대신들이 말하였다.

‘대체로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세상의 일상적인 일인데 혼자만이 그런 것을 미리 근심하여 마침내 훌륭한 이름을 버리고 몰래 숨어 잠적해 살면서 그 형체를 수고롭게 하고 있으니 그 또한 어려운 일이 아닙니까?’

태자가 대답하였다.

‘제군들의 말과 같이 미리 근심한다는 말은 부당합니다. 나로 하여금 왕이 되게 한다면 늙음이 닥치고 병이 이르러 만약 장차 죽음이 임박했을 때에 나를 대신해서 이런 곤액을 받을 사람이 어찌 있겠습니까? 가령 대신할 사람이 없다면 어찌 근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 천하에 아무리 사랑스런 아비와 효도하는 자식이 있어서 사랑이 골수(骨髓)에 사무친다 하더라도 병들어 죽을 때에 이르러서 서로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이와 같은 거짓 몸에 괴로움이 다가오는 날에는 아무리 높은 지위에 있고 육친(六親)이 곁에 있으며, 가령 맹인(盲人)을 시켜 촛불을 켜놓고 빈다고 해도 눈이 없는 사람에게서 무슨 이익이 있기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중생들의 행위를 살펴보니 온갖 것은 덧없고 모든 것이 변화하는 것으로서 참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즐거움은 적고 괴로움만 많아서 이 몸뚱이는 이미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세간은 허무한 것이라서 오래도록 살기가 어렵습니다. 모든 물질은 생겨나면 죽음이 있고 일은 이룩되면 무너짐이 있으며, 편안하면 위태로움이 있고 얻으면 잃음이 있어서 온갖 물질은 어지럽고 혼란하여 장차는 모두 공(空)으로 돌아가고 맙니다.

정신은 형체는 없지만 조급한 데다 탁하고 밝지 못해서 작용에 의하여 죽고 태어나는 위험을 이룩하는데 다만 한 번만 받을 뿐만 아니라 오직 탐욕을 부리다가 탐욕이 가려 어리석은 그물이 되어 나고 죽는 물에 빠져서도 깨달아 알지 못합니다.

그런 까닭에 나는 일심으로 네 가지 공(空)하고 청정함을 생각하여 색(色)에서 벗어나고 성냄을 멸하고 구하던 것을 끊고 공을 생각하여 전적으로 주장하는 것도 없고 편벽되게 결정함도 없으니, 이것은 장차 그 근원을 돌이켜서 그 근본에 돌아가려는 것으로서 비로소 그 뿌리에서 벗어나려는 것입니다. 내가 소원하는 것을 증득하는 것만이 곧 크게 편안할 수 있는 길입니다.’

병사왕이 매우 기뻐하며 말하였다.

‘거룩하십니다. 보살의 절묘한 뜻은 세간에서는 가질 수 없는 생각입니다. 틀림없이 불도(佛道)를 증득하실 터이오니, 바라건대 그렇게 되시거든 부디 먼저 저를 제도하여 주십시오.’

태자는 말 없이 길을 떠났다. 니련선하(尼連禪河)를 건너려 하자 천신(天神)이 물을 막아 강물이 잠시 마르게 하였다. 태자가 물을 건너 수십 리쯤 가다가 세 범지(梵志)를 만났다. 그들은 각각 제자들과 함께 시냇가에 집을 짓고 살고 있었다. 그곳을 지나는데 그들은 도에 대해 질문하면서 스스로 말하였다.

‘우리들은 범천(梵天)을 섬기는데 해와 달을 받들어 섬기면서 날마다 불을 모신 사당에서 수행하고 오직 물로 씻어 깨끗이 할 뿐입니다.’

보살이 대답하였다.

‘그런 까닭에 나고 죽는 길에서 헤매는 것입니다. 물은 항상 가득 차 있는 것이 아니요, 불도 오래도록 뜨거운 것이 아니며, 해가 뜨면 옮겨가고 달도 차면 기울어지기 마련입니다. 도(道)란 청허(淸虛)함에 있나니, 물로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을 불쌍히 여기며 떠나갔다. 길을 가면서 자애[慈]의 마음을 일으켜 ‘중생들은 늙고 너무도 어리석어 질병과 죽어 없어지는 아픔을 면하지 못함을 두루 염려하여 그런 중생들로 하여금 해탈케 하리라’는 오직 이 한 생각뿐이었고, 자비[悲]의 마음을 일으켜 일체 중생들이 모두 다 배고파하고 목말라 하며 추위에 떨고 더위에 시달리며 득실(得失)과 허물과 가난의 근심이 있음을 불쌍하게 여겨 그들로 하여금 안온하게 하려는 오직 이 한마음뿐이었으며, 기뻐하는[喜] 마음을 일으켜서 모든 세간이 다 근심·괴로움·두려움· 무서움을 만나는 걱정이 있음을 염려하여 그들로 하여금 편안하게 하려는 오직 이 한마음뿐이었고, 보호[護]하는 마음을 일으켜서 5도(道)와 8난(難)의 생(生)을 받은 이들을 제도하려 하였고, 어리석고 가려서 몽매하고 어두워 바른 도를 보지 못하는 이들을 제도하여 그들로 하여금 무위(無爲)의 도를 증득하게 하려는 오직 이 한마음뿐이었다.

그리하여 선함을 얻고도 기뻐하지 않고 악함을 만나서도 근심하지 않았으며, 세간의 여덟 가지 일인 이로움·쇠함·헐뜯음·칭찬·칭송·나무람·괴로움·즐거움을 버려 기울거나 동요하지 않았다.

이미 깊은 산 속을 두루 다니다가 고요하고 한적한 곳에 이르러 패다(貝多)나무를 바라보니 사방이 청정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스스로 다음과 같이 생각하였다.

(내가 이미 집을 버리고 이 산천에 있으니, 또한 머리를 범인(凡人)의 뜻과 같이 장식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 아니다. 빗질하고 목욕하여 깨끗이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면 곧 청정한 계율과 바른 정혜(定慧)와 해도지견(解度知見:解脫知見)의 뜻을 잃게 될 것이니, 이것은 도의 순수함이 아니며 청정한 행동을 더럽히는 것이다. 마땅히 사문이 되어 보살법(菩薩法)을 수행해야겠다.)
그러자 천신(天神)이 체도(剃刀:머리 깎는 칼)를 받들고 왔는데 머리카락과 수염이 저절로 떨어지니, 천신은 그것을 받아 가지고 갔다.

보살은 곧 마른 풀을 주워서 땅에 깔고 바르게 앉아 손을 마주잡고 눈을 감고 일심으로 맹서하여 말하였다.

‘나의 이 기골(肌骨)이 마르고 썩는 한이 있더라도 부처가 되지 않고서는 끝내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뒤로 천신이 음식을 진상하였으나 한 끼니도 즐겨 받지 않으셨다. 하늘이 보살의 좌우 주변에 참깨와 쌀이 저절로 나오게 하였지만 하루에 참깨 한 알과 쌀 한 톨만으로 겨우 정기(精氣)를 이어나가며 단정히 앉아 6년 동안 수행에 전념하다 보니, 형체는 마를 대로 말라 피골(皮骨)이 서로 맞닿았다. 깊이 사색하고 맑고 고요히 수행에 전념하고 적묵(寂黙)하게 일심으로 안반(安般:數息觀)을 생각하고, 1수(數)·2수(隨)·3지(止)·4관(觀)·5 환(還)·6정(淨)을 닦고, 12문(門)에 뜻을 두어 12문을 해탈하고서도 뜻을 분산(分散)함이 없었다.

미묘한 이치를 깨달아 탐욕의 악법(惡法)을 버려서 다시는 5개(蓋:五蘊)가 없고, 5욕(欲)을 받아들이지 않아 갖가지 악(惡)이 저절로 사라지고 생각하고 헤아림[念計]이 분명해졌으며, 생각하고 보는 것에 작용 없는 것이 비유하면 마치 건장한 사람이 원수의 집안을 이겨내는 것과 같아서 마음이 이미 깨끗해졌으니, 첫 번째 선행[一禪行]을 성취함이니라.

마음이 저절로 열리고 이해하여 정욕(情欲)의 마음을 물리치고 악이 없게 하되, 악이 있으면 고쳐 나가며 다시는 계탁(計度)하여 보지 않아서 기억과 생각이 이미 사라져 없어지니, 비유하면 마치 산꼭대기에 있는 샘에서 물이 저절로 솟아나와 가득 차면 밖으로 넘쳐흘러서 계곡에 비가 와서 생긴 웅덩이의 물이 반연하여 들어올 수 없는 것과 같이 편안한 마음으로 하나만을 지키고 흔연(欣然)히 옮겨가지 않나니, 두 번째 선행(禪行)을 성취함이니라.

또 기뻐하는 마음을 버리고 오직 음욕이 없는 것만을 보아서 밖의 좋고 나쁜 모든 것들이 하나도 들어오지 못하고 안에서도 일어나지 않아 마음은 바르게 되고 몸은 편안해지나니, 비유하면 마치 연꽃의 뿌리가 물 속에 있어서 꽃이 아직 피어나지 않았을 적에 뿌리와 줄기, 가지와 잎사귀는 물에 젖어 있는 것과 같아서 청정한 것으로 참됨을 보나니, 세 번째 선행을 성취함이니라.

괴롭거나 즐거운 마음을 버리고 근심하거나 기뻐하는 생각이 없어서 마음이 선(善)을 의지하지도 않고 또한 악(惡)에 붙지도 않아 올바른 가운데 있나니, 비유하면 마치 사람이 깨끗하게 목욕을 하고 나서 깨끗하고 좋은 흰 털방석을 깔아 놓고 안팎을 모두 깨끗하게 하며, 겉과 안이 때가 없으면 천식(喘息)이 저절로 소멸되고 적연(寂然)히 변함이 없는 것과 같나니, 네 번째 선행을 성취함이니라.

비유하면 마치 도자기를 굽는 집에서 진흙을 고루 섞어 부드럽게 반죽할 때 그 가운데에는 모래나 자갈이 없으므로 무슨 그릇이라도 만드는 것과 같아서 정밀하게 나아가고 열어 펼쳐서 능하지 아니한 바가 없으며, 이미 정의(定意)를 증득하여 대비(大悲)를 버리지 않고 지혜와 방편으로써 긴요하고 절묘한 이치를 연구하여 밝히며 37도품(道品)의 행(行)을 통하였나니, 이른바 4의지(意止)·4의단(意斷)·4신족념(神足念)·5근(根)·5력(力)·7각(覺)·8도(道:八正道)이다. 이런 것들은 한 차례 두루 수행하고 나서 다시 시작하여 더러운 번뇌가 없이 마음은 3향(向)에 있고, 한결같이 공을 향하되 그런 생각이 사라져 흩어지지 않으며, 집착함도 없고 버려둠도 없어서 이 두 가지로 지향하는 생각이 없으므로 마음이 안정되어 동요하지 않고 좋고 나쁜 것을 생각하지 않게 될 것이며, 3향도 바라지 않고 삼계를 좋아하지 않게 될 것이니, 다시는 생사의 고통을 받지 않고 문득 3활(活)을 증득할 것이다. 첫째는 탐욕(貪欲)을 여의는 것이요, 둘째는 진에(瞋恚)를 여의는 것이며, 셋째는 우치(愚癡)를 여의는 것이라서 다시는 걸림이 없도록 할 것이다.’

그 때 여섯 번째 하늘인 화응성천(化應聲天:他化自在天)의 천마왕(天魔王)이, 보살이 청정하여 아무 욕심이 없고 정밀하게 생각하되 게을리 하지 않아서 마음속으로 번민하므로 먹는 음식도 달갑지 않고 기악(伎樂)도 즐거워하지 않는 것을 보고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사람이 도를 성취하면 틀림없이 나를 크게 이기게 될 것이다. 이 사람이 부처가 되기 전에 그가 도를 닦으려는 마음을 꼭 무너뜨려야겠다.)
마왕의 아들 살타(薩陁)가 아버지 앞에 나아가 간하여 말하였다.

‘보살은 청정함을 닦아서 삼계에서는 견줄 이가 없을 정도로 자연 신통(神通)을 증득하였으므로 숱한 범천(梵天)들과 여러 하늘들 억백(億百)이 모두 가서 예를 올리고 모시고 있으니, 이 사람은 천왕(天王:父王)으로서는 마땅히 막고 무너뜨릴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악을 일으켜 스스로 복을 없애는 일을 하지 마십시오.’

마왕은 그 말을 듣지 않고 세 옥녀(玉女)를 불렀다. 첫째 딸의 이름은 욕비(欲妃)이고, 둘째 딸의 이름은 열피(悅彼)이며, 셋째 딸의 이름은 쾌관(快觀)이었는데, 그들을 시켜 보살에게 가서 그의 뜻을 무너뜨리라고 명하였다.

세 딸이 모두 비단옷을 입고 하늘의 이름 있는 향을 먹고 영락(瓔珞)과 보배 구슬로 지극히 요염하게 꾸미고서 솜씨 있고 애교 있는 말로 그의 뜻을 혼란하게 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보살은 마음이 깨끗하기가 유리구슬과 같아서 도저히 더럽힐 수가없었다. 그러자 세 딸이 다시 아뢰었다.

‘보살께서는 인덕(仁德)이 지중(至重)하시기 때문에 여러 하늘에서 공경하는 대상입니다. 그런 까닭에 마땅히 공양을 받을 만하시므로 하늘에서 저희들을 바친 것입니다. 저희들은 아름답고 깨끗하며 나이도 한창 왕성한 때이니, 천녀(天女)들이 제아무리 단정하다 하나 저희들보다 뛰어난 이가 없을 것입니다. 바라옵건대 부디 새벽에 일어나시고 저녁에 주무실 때에 측근에서 공양을 올리고 모실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보살이 대답하였다.

‘너희들은 숙세(宿世)에 복을 지어서 하늘 나라의 몸을 받았으나 오직 무상(無常)함을 생각하지 않고 요염하고 아리따운 행동을 하는데, 형상이 제아무리 아름답다 하여도 마음이 단정하지 못하니, 비유하면 마치 좋은 그림을 그려 만든 병에 냄새나고, 독기 있는 물질을 담은 것과 같으니, 장차 스스로를 무너뜨리게 될 것이다. 무엇이 그리 기이하다 하겠느냐? 복은 오래도록 간직하기 어려운 것이다. 음탕하고 악하여 착하지 못한 일만 하다가 스스로 그 근본을 잃고 나면 죽어서 틀림없이 3악도(惡道)에 떨어져 새나 짐승의 몸을 받아 아무리 벗어나려고 해도 면하기 어렵게 될 것이니라.

너희들은 남의 올바른 생각을 혼란하게 하려고 하니 이것은 청정한 마음씨가 아니니라. 가죽 주머니에 똥을 담아 가지고 와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이냐? 어서 떠나가거라. 나는 너희들이 필요하지 않느니라.’

그러자 그 세 여인은 늙은 할미로 변하여 스스로 회복할 수가 없었다.

마왕은 더욱 분노하여 다시 모든 귀신들을 불러들이니, 모두 합하여 1억 8천만 무리가 되었다. 마왕은 이들을 모두 사자·곰·호랑이·물소·코끼리·용·소·말·개·돼지·원숭이의 모습으로 변화시키니, 이루 다 칭언(稱言)할 수가 없었다.

어떤 것은 벌레의 머리에 사람의 몸이기도 하였고, 도롱이나 뱀의 몸에 자라나 거북의 머리이기도 하였으며, 눈이 여섯인 것도 있었고, 혹 목은 하나인데 머리는 여럿이기도 하였으며, 이와 어금니, 손톱이 날카롭기도 하였고, 산을 메고 있거나 불을 뿜어내기도 하였으며, 천둥과 번개로 사방을 뒤흔들기도 하였고, 창과 칼을 잡고 있기도 하였다.

그러나 보살은 마음이 인자하여 놀라지도 않고 무서워하지도 않아서 털끝 하나도 움직이지 않았다. 도리어 환한 얼굴은 더욱 좋아 보였다. 그러자 귀신의 병사들은 모두 물러나 흩어져서는 감히 접근하지 못하였다.

마왕은 스스로 앞으로 나아가 부처님과 서로 따지기 위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비구여, 무엇을 구하려고 나무 밑에 앉아 있으며
숲 속의 사나운 짐승 사이에서 즐거워하시오?
구름 일어 두렵고 고요하고 깜깜할 적에
천마(天魔) 둘러싸니 놀랍지도 않소?

예부터 참된 도 있었나니 부처님께서 수행하셔서
편안하고 담담하여 두려움 없고 밝지 못함 없앴으며
최승(最勝)의 성안에 법을 가득 간직해 두었나니
나도 이 자리를 구하여 마왕(魔王)을 결단내리.

그대가 마땅히 왕이 되어 금륜(金輪) 굴리면
7보가 절로 오고 사방을 다스릴 것이요,
받게 될 5욕락(欲樂) 비할 데 없을 테니
이곳엔 도 없으니 어서 일어나 궁성으로 들어가시오.

내가 보니 애욕의 왕성함은 뜨거운 구리를 삼키는 일
나라를 침 뱉듯이 버려 탐낸 적이 없으며
왕이 되어도 늙고 죽는 근심이 있었기에
이익 없는 이런 일 버렸으니 거짓말 하지 마라.

어째서 숲에 앉아 큰소리 치면서
나라와 재물 지위 버리고서 공한(空閑)만을 지킵니까?
나와 4부(部) 군대 보이지도 않소?
상병(象兵)·마병(馬兵)·보병(步兵)이 1억 8천이 됩니다.

원숭이와 사자의 얼굴들이며
호랑이·코뿔소·독사·돼지·귀신의 모습을 나타내어
모두들 칼 잡고 창을 들고서
날뛰고 소리 치며 공중에 가득하오.

가령 다시 억·해(垓)의 귀신이 무기 갖추어
마군 되어 너와 같이 여기로 모여 와서
화살·칼·불의 공격 비바람 같다 해도
먼저 부처 되지 않고서는 끝끝내 일어나지 않으리라.

마귀도 본래 소원이 있어 나더러 물러가라 하지만
나에게도 스스로 맹서 있으니 헛되이 돌아가지 않으리.

지금 너의 복지(福地) 어찌 부처만 하겠는가?
여기에서 누가 이길는지 알 수 있으리.

나는 일찍이 종신토록 흔쾌히 보시했었기에
6천(天)을 맡은 마왕이 되었으니
비구는 나의 과거세 복 지음을 알겠지만은
자칭해서 한량없다 한들 그 누가 증명하리.

나는 먼 옛날 행원(行願)으로 정광(定光)부처님께
석가문(釋迦文)이란 부처가 되리라고 수기 받았기에
성내거나 두려운 생각 다했으므로 여기에 앉았으니
마음이 안정되어 반드시 깨달아 너희 군대 부수리라.

내가 받들어 모신 부처님 많고 많으며
재물·보배·옷·음식까지 늘 남에게 보시했으며
착한 계율로 쌓은 덕 땅보다 두터우니
이 때문에 생각 벗고 환난(患難)이 없어졌네.

보살이 곧 지혜의 힘으로써
손을 펴 땅 만지며 이것이 나를 알리라 하자
그 때에 넓은 땅 크게 진동하여
마군과 그 관속 거꾸로 떨어졌네.

악마 왕 대패하여 이익 잃음 슬퍼하며
정신 없이 물러나 쭈그리고 앉아 앞 땅을 그으니
그 아들도 밝아져서 마음으로 깨닫고서
즉시 귀의하고 잘못을 뉘우쳤네.

내 다시는 병기(兵器)를 사용하지 아니하고
자비심 고루 행해 마왕 원한 물리쳤네.

세상에선 병기 써서 사람 마음 움직이나
나만은 너희들에게 평등으로 대하리라.

상마(象馬)를 길들일 때 비록 이미 길들여졌더라도
이 다음에 옛 태도 다시 생겨날 줄 알지마는
만약 잘 길들여 불성(佛性)처럼만 된다면야
이미 부처님 말씀 같아 어질지 않음 없으리라.

해(垓)의 하늘 부처 뵙고 마군중(魔軍衆) 사로잡아
안내로 길들이고 생각 없으니 원수 절로 항복하네.

여러 하늘 기뻐하며 꽃 받들고 모였으니
비법(非法)의 왕 무너지고 법왕께서 이기셨네.

본래부터 평등한 마음과 지혜의 힘을 좇아
지혜의 힘으로 즉시에 불길함을 물리쳤네.

원수들을 항복 받아 제자 되게 하셨으니
네 가지 평등도를 증득한 이께 예배합니다.

얼굴은 만월(滿月) 같고 모습[色]은 조용한데
시방에 퍼진 이름 그 덕이 산과 같네.

불상(佛像) 모습 구해 봐도 견줄 길이 없어
마땅히 이 세상 건진 선인께 머리 숙여 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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