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해의보살소문정인법문경(佛說海意菩薩所問淨印法門經) 제16권
그 때 세존께서 해의보살에게 말씀하셨다.
“해의야, 보살이 만약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려면 응당 수학(修學)해야 하리니, 너희들 대사로서는 모든 시작(施作)에 있어서 빠른 말씨와 날카로운 변론만을 닦을 것이 아니라 그 말대로 실행해야 하리라.
그렇다면 보살이 그 말대로 실행하지 못함이란 무엇인가? 해의야, 이른바 보살이 비록 변재의 지혜를 갖추었다 하더라도 모든 보리의 선한 법을 쌓지 못하고서 그저 쉽게 말하기를 ‘내가 성불한 뒤엔 일체 중생을 다 불러서 널리 법 보시를 행하여 그 중생들로 하여금 법을 얻어 만족하게 하리라’고 하면서, 이 보살이 부지런히 수행하여 많이 듣지 않고 모든 보리의 선한 법도 쌓지 않아 일체 중생을 헛되이 속인다면 그것이 곧 말대로 실행하지 못하는 것이다.
해의야, 이와는 달리 어떤 보살이 말하기를 ‘내가 성불한 뒤엔 일체 중생을 다 불러서 널리 법 보시를 행하여 그 중생들로 하여금 법을 얻어 만족하게 하리라’고 하고 나서 그 보살이 과연 수학을 부지런히 하고 모든 보리의 선한 법까지도 쌓는다면, 이것이 곧 말대로 실행하는 것이니라.
해의야, 또 말대로 실행하지 못함이란, 마치 세간에 어떤 왕이나 그 신하가 온 나라안의 인민들을 다 불러서 맛있는 음식을 배부르게 먹이려는 약속을 하고서도 그에 필요한 음식을 준비하지 않아 온 나라안의 인민들을 헛되이 속였다면, 이 모든 인민들로서는 이미 그 음식에 실망하였기에 각각 다른 곳에 가서 음식을 구해 먹을 것을 생각하고서 마음으로 원망하고 꾸짖으면서 나올 것이 틀림없는 것과 같다. 해의야, 보살이 하는 일도 그와 같은지라 만약 일체 중생을 위해 제도되지 못한 자를 제도하고, 해탈하지 못한 자를 해탈하게 하고, 안온하지 못한 자를 안온하게 하고, 열반에 이르지 못한 자를 열반에 이르게 하려는 그 원(願)을 세우고서 수학을 부지런히 하지 않고 모든 보리의 선한 법도 쌓지 않는다면, 이것이 곧 말대로 실행하지 못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보살은 천상·세간의 사람들을 헛되이 속임으로써 성인들로부터 꾸지람과 버림을 받는 동시에 그 쟁송(諍訟)으로 말미암아 큰 지혜를 얻지 못하므로 필경 그의 서원을 원만히 성취할 수 없으리라. 해의야, 보살이 만약 이 얻기 어려운 최상의 큰 지혜를 발기하려면 응당 저 더 없는 대승에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하나니, 그러므로 알아 두라. 보살은 마땅히 실행하지 못하는 말로써 천상·세간의 사람들을 헛되이 속여서는 안 되느니라.
다시 해의야, 어떤 사람이 와서 설법을 청할 때에라도 보살은 곧 그에게 ‘내가 그대를 위해 이러한 법을 연설하고 이러한 법으로 교화 제도하리라’ 대답하고는, 자기의 몸뚱이를 버릴지언정 아끼지 않아야 그 보살은 일체 중생을 헛되이 속이지 않은 것이니라.
그러므로 해의야, 이러한 인연을 알아 두라.
내가 기억하건대, 과거세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는 그 아승지 겁의 이전에 불괴신(不壞身)이란 어떤 사자 수왕(獸王)이 깊은 산 바위굴 속에 있었는데, 항상 인자한 마음을 닦아 일체 중생을 보호하고 풀잎과 꽃 열매만으로 먹이를 삼아 왔다. 그런데 때마침 그 바위굴 속에 암컷과 수컷의 두 원숭이가 살고 있었는데 새끼 두 마리를 낳아 길러오다가 바깥으로 나갈 일이 생겨서 그 두 마리 새끼를 사자 수왕에게 맡겨 수호해 줄 것을 부탁하고는 다른 곳으로 떠났다. 그 때 이견(利見)이란 어떤 독수리 왕[鷲王]이 공중을 날아다니다가 홀연히 땅에 내려와서 원숭이 새끼를 잡아채고서 공중을 돌고 있었다. 그 때 사자 왕이 그 원숭이 새끼가 잡혀가는 것을 보고 독수리 왕에게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어 호소하였다.
부디 독수리 왕이여, 나를 알거든
이 원숭이 새끼를 살려주오.
내가 탈 없이 수호해 줄 것을 약속했으니
채어가더라도 해치지는 마오.
그 때 독수리 왕도 게송을 읊어 사자 왕에게 대답하였다.
사자 왕이 몸을 버릴 수 있다면
나도 두 원숭이 새끼를 놓아주겠지만
이것을 먹이 삼아 공중에 있는 내가
먹이 없이 공중에서 무엇하겠소?
사자 왕이 다시 게송을 읊어 호소하였다.
나의 몸을 그대의 먹이로 바치겠으니
이제 빨리 두 원숭이를 놓아주오.
보리를 이룩하는 것만이 나의 원이므로
슬기로운 자는 허망한 말을 하지 않는다오
이에 사자 왕이 게송을 읊고 나서 그 깊은 마음을 더욱 굳게 하여 과연 허망하지 않게 곧 그 몸을 버리려고 하자, 그 때 이것을 보게 된 독수리 왕은 전에 없던 일이라고 감탄하면서 다음의 게송으로 대답하였노라.
세간 사람은 자기 생명을 연장하려 하는데
그대만이 남을 위해 몸을 버리겠다 하니
내가 이제 두 원숭이 새끼를 놓아주어
그대로 하여금 오래 살아 법행을 닦게 하겠소.
해의야, 너는 이제 알아 두라. 그 때의 불괴신(不壞身) 사자왕은 다른 사 람이 아닌 바로 나의 전신이었고, 수컷 원숭이는 대가섭(大迦葉)의 전신이었으며, 암컷 원숭이는 현호(賢護) 비구니의 전신이었고, 두 원숭이 새끼는 지금의 라후라(羅睺羅)와 아난(阿難)의 전신이었으며, 이견(利見)이란 독수리 왕은 선애(善愛) 비구의 전신이었다. 이것을 알아 두라. 보살마하살로서는 차라리 자기의 몸을 버릴지언정 끝까지 다른 이를 위해 보호할 것을 버리지 않아야 하니, 그 말대로 원만히 실행함이란 바로 이러한 것이니라.
다시 해의야, 그 말대로 실행하는 분명한 모습을 드러냄이란 어떤 것인가? 이른바 보살이 말대로 보시하되 곧 일체의 소유를 다 버리는 것이 그 실행하는 분명한 모습을 드러냄이며, 말대로 계율을 지키되 곧 일체의 계율과 두타(頭陀)의 공덕을 성취하는 것이 그 실행하는 분명한 모습을 드러냄이고, 말대로 인욕하되 곧 성내고 미워하는 모든 과실을 다 끊어버리는 것이 그 실행하는 분명한 모습을 드러냄이고, 말대로 정진하되 곧 모든 선한 법을 부지런히 구하여 수습(修習)하는 것이 그 실행하는 분명한 모습을 드러냄이고, 말대로 선정에 들되 곧 모든 선정·해탈과 삼매문을 다 닦는 것이 그 실행하는 분명한 모습을 드러냄이고, 말대로 지혜를 얻되 곧 모든 장구(章句)를 분별하여 선교한 지혜와 결정된 변재를 일으키는 것이 그 실행하는 분명한 모습을 드러냄이니, 이것을 요약하여 말하자면, 보살이 그 말대로 일체의 불선한 법을 끊어 버리고 일체의 선한 법을 부지런히 구해 수습하는 것이 곧 실행하는 분명한 모습을 드러냄이라.
이와 같이 보살이 그 말대로 정직하여 아첨하거나 속여서 허망하지 않는 것이 곧 실행이며, 그 말대로 방편을 다하여 모든 방편의 문을 열어 보이는 것이 곧 실행이며, 그 말대로 부지런하고 용감하며 게으르거나 물러나지 않는 것이 곧 실행이며, 그 말대로 깊은 마음을 더욱 굳게 하여 모든 집착을 여의고 수승한 도에 나아가는 것이 곧 실행이며, 그 말대로 서원을 세워 끝까지 모든 서원을 원만하게 성취하는 것이 곧 실행이며, 그 말대로 들어 간직하되 들은 그대로를 잘 수습(修習)하는 것이 곧 실행이며, 그 말대로 선한 행을 쌓고 모으되 몸과 마음을 게을리 하거나 지치지 않는 것이 곧 실행이며, 그 말대로 교만을 여의되 수승한 지혜를 원만하게 하는 것이 곧 실행이며, 그 말대로 계행을 쌓고 모으되 어떠한 계행에도 결함이 없는 것이 곧 실행이며, 그 말대로 초발심의 지위로부터 보살의 수승한 행을 성취하는 것이 곧 실행이며, 그 말대로 무생법인(無生法印)의 지위로부터 불퇴전(不退轉)의 지위에까지 이르는 것이 곧 실행이며, 그 말대로 일생만 지나면 부처님 지위에 후보 되는 지위로부터 보리의 도량에 나아가는 것이 곧 실행이며, 그 말대로 견고한 마음을 쌓아 일체 지혜의 과(果)를 현전에 증득하는 것이 곧 실행이며, 그 말대로 미묘한 법륜을 굴리어 3보(寶)의 종자를 끊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 곧 실행이다. 해의야, 이러한 법이 바로 보살의 말대로 실행하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말대로 실행하는 법을 말씀하실 적에 그 모임에 있던 5천의 보살이 다 생사 없는 법의 지혜를 얻었다.
그 때에 연화장엄(蓮花莊嚴)이란 한 보살이 부처님 앞에 나아가 사뢰었다.
“전에 없던 일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러 부처님께서 그 말대로 실행하셨기 때문에 모든 최상의 불법을 얻으셨으니,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를 수행하는 것이 바로 말대로 실행하는 것이겠나이다.”
부처님께서 다시 물으셨다.
“선남자여, 네가 수행하는 법을 아느냐?” “세존이시여, 제가 알고 있나이다.” “선남자여, 그렇다면 네가 그 수행의 법을 이제 잘 말해 보아라.”
연화장엄보살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세존이시여, 이른바 수행이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일체 법의 평등함을 알고는 그 평등한 법의 바른 지위에서 선교 방편의 지혜로 삼매를 취증(取證)하지 않는 것이겠나이다.”
다음엔 산왕(山王)보살이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도 수행하는 법을 잘 말할 수 있나이다.” “선남자여, 그렇다면 너의 뜻을 말하여라.”
산왕보살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세존이시여, 수행할 것이 없는 그것이 바로 수행이니, 왜냐 하면 보살은 일체의 법을 도무지 얻을 것이 없다고 관찰하기 때문입니다. 수행할 것이 있다는 그 자체가 수행이 아니므로 이 수행할 것 없는 것이 바로 올바른 수행이 겠나이다.”
다음엔 공덕광조왕(功德光照王)보살이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마음이 만약 어떤 흐름을 따라 흔들림이 있다면 어찌 수행이라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보살은 마음이 일체 법에 머물 것이 없음을 관찰하고서 그 어떠한 법에도 머물지 않아야 하나니, 만약 어떠한 법에도 머무는 것이 없다면 그것이 바로 올바른 수행이겠나이다.”
다음엔 고거왕(高炬王)보살이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아무런 즐겨할 것도 싫어할 것도 없는 것이 수행이겠나이다. 세존이시여, 보살은 일체의 법에 높음도 없고 낮음도 없기 때문에 어떠한 법을 즐겨하거나 싫어하지 않는 그것이 바로 올바른 수행이겠나이다.”
다음엔 일장(日藏)보살이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약에 의지하는 것이 있다면 그 자체가 흔들리는 것이므로 의지하는 것이 없어야만 흔들림도 없는 것이니, 보살은 의지함도 없고 흔들림도 없기 때문에 일체 법에 동요되지 않는 그것이 바로 올바른 수행이겠나이다.”
다음엔 용맹심(勇猛心)보살이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마음이란 세간에서 행하고 또 세간에서 흐르게 되는 것이므로 보살이 그 일체의 마음에 무심(無心)을 얻는다면 아무런 생각이 없고 분별함도 없으리니, 그것이 바로 올바른 수행이겠나이다.”
다음엔 애견(愛見)보살이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일체의 아는 것이란 곧 괴로움이므로, 보살이 만약 그 일체의 아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곧 아는 것도 없고 취하는 것도 없으리니, 그러므로 보살이 멸진정(滅盡定)에 들지 않고서 중생을 버리지 않고 대비를 잃지 않는 그것이 바로 올바른 수행이겠나이다.”
다음엔 향상왕(香象王)보살이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저 어리석은 사람과 중생들은 무거운 짐을 지고서 5온(蘊)의 그 깊고 무거운 소견을 일으키나니, 보살이 만약 5온을 분명히 알고서 그 경쾌하고도 편리함을 얻으면 곧 무거운 짐을 버리는 것이며, 또는 모든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5온의 무거운 짐을 버리도록 선설하려면 곧 보살 자신부터 그모든 무거운 짐을 벗어나야 하므로 보살이 어떠한 법에도 실체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모든 법의 생멸없음을 분명히 아는 그것이 바로 올바른 수행이겠나이다.”
다음엔 지세(持世)보살이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이른바 수행이란 삿되거나 나쁜 소행이 아닌 바르게 행하는 것으로, 보살은 응당 바른 방편을 닦아야 하며, 바른 방편이란 일체 법의 평등한 성품을 아는 그 지혜가 허공과 같은 것이니, 그것이 바로 올바른 수행이겠나이다.”
다음엔 견고의(堅固意)보살이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이 만약 지혜의 방편을 갖춘다면 곧 생기는 가운데에서도 생기는 것이 없고 사라지는 중에서도 사라짐이 없어서 그 생멸 가운데 아무런 집착이 없으리니, 이것이 바로 올바른 수행이겠나이다.”
다음엔 길상봉왕(吉祥峯王)보살이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이 만약 모든 법의 자성(自性)이 적멸함을 관찰한다면 곧 대비의 갑옷[鎧]을 버리지 않고 부지런히 힘을 다하여 그 결과의 이익을 헛되지 않게 하리니, 이것이 바로 올바른 수행이겠나이다.”
다음엔 무애광(無礙光)보살이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약에 어떤 소행의 자취가 있다면 그것은 마군의 일이고 수행이 아니며, 어떤 소행이 없다면 머무는 것도 없어서 저 마군들이 침해할 기회를 노리지 못할 것이므로 모든 악마의 도를 초월하게 되리니, 이것이 바로 보살의 진실한 수행이겠나이다.”
다음엔 근정진(勤精進)보살이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조그마한 법이라도 즐겨 성취하려는 생각을 낸다면 힘써 힘만 허비하리니, 일체의 법은 성취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중에 어떤 지혜와 알음알이를 갖는 것도 곧 의식[意]이 없는 것이 아니므로, 보살이 일체의 법에 성취하려는 의식을 벗어나는 그것이 바로 올바른 수행이겠나이다.”
다음엔 멸악취(滅惡趣)보살이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어떤 종류가 있고 그 소행을 분별한다면 어떻게 수행이 라 하겠습니까? 종류도 없고 분별도 없는 것이 곧 수행이며, 저 종류도 분별도 없음은 마음의 자성(自性)이니, 만약 마음의 자성을 분명히 안다면 그것이 바로 진실한 수행이겠나이다.”
다음엔 선사이사(善思而思)보살이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이 일체 중생의 마음에 따라 들어가되 들어가서는 일체 중생의 마음을 요달할 뿐 무심하며, 그 중에 또 무심의 지혜에 들어간다면 그것이 바로 올바른 수행이겠나이다.”
다음엔 적의(寂意)보살이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근적(近寂)도 수행이고 근적 아닌 것도 수행이므로 보살은 그 대적(大寂)·변적(遍寂)·근적(近寂)에 있어서 모든 마음의 반연됨이 더하거나 덜하거나 다 조작이 없어야 하리니, 그 더하고 덜함을 여의어서 평등하게 깨닫는다면 그것이 바로 올바른 수행이겠나이다.”
다음엔 도사(導師)보살이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이 그 선근을 발기하는 것이 바른 수행이므로 만약에 성취하는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곧 선근을 발기하는 것이 아니리니, 왜냐 하면 보살이 복된 행을 발기함은 바로 슬기로운 행을 발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복이 평등하기 때문에 지혜가 평등하고 지혜가 평등하기 때문에 복이 평등하고 복과 지혜가 다 평등하기 때문에 보리가 평등하고 보리가 평등하기 때문에 일체의 법이 평등한 것이니, 이것이 바로 올바른 수행이겠나이다.”
다음엔 희희왕(嬉戱王)보살이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일체의 법을 분별하지 않는 것이 곧 수행이니, 보살이 만약 일체의 법을 요달하여 그 법계를 널리 포섭하되 어떠한 법에도 이합(離合)하는 일이 없다면 그것이 바로 올바른 수행이겠나이다.”
다음엔 선사의(善思義)보살이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법은 이치에 의지하고 문자(文字)에 의지하지 않나니, 보살이 만약 그 이치를 분명히 깨달아서 곧 8만 4천의 법문을 지혜로써 받아 지니고 읽어 외우고 해설하되 그러면서도 그 말할 수 없는 진실한 이치 가운데 흔들리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올바른 수행이겠나이다.”
다음엔 청정의(淸淨意)보살이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마음을 깊고 견고하게 하는 것이 곧 수행이니, 보살이 그 깊고 견고한 마음을 구족함은 어떤 말로써 표현하는 것이 아니고 최상의 도를 얻음이니, 다만 그 진실한 바른 도를 닦되 진실한 바른 도가 가는 곳도 없고 오는 곳도 없는 것임을 관찰해야만 그것이 바로 올바른 수행이겠나이다.”
다음엔 필경무구사유(畢竟無垢思惟)보살이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마치 때[垢] 있는 옷은 빨아 깨끗하게 하지만, 때 없는 옷은 그 누구도 빨 필요가 없는 것처럼 보살의 하는 일도 그와 같아서, 그 본래의 청정한 마음을 여실히 사찰하여 청정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때가 되는 번뇌를 씻어 청정하게 함이니, 보살이 만약 그와 같이 청정하게 한다면 그것이 바로 진실한 수행이겠나이다.”
마지막으로 해의보살이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이 그 착한 벗들에게 섭수(攝受) 된다면 조금만 신고(辛苦)를 겪어도 곧 바른 행을 이룩하리니, 왜냐 하면 보살의 힘이 모든 마사(魔事)를 초월하지 못하면 그는 나쁜 벗들에게 섭수되고, 모든 마사를 초월할 힘이 있으면 그는 착한 벗들에게 섭수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보살이 만약 모든 마사를 초월하려면 응당 착한 벗들을 가까이 하여 받들어 섬겨야 하리니, 보살이 그 착한 벗들에게 섭수되므로 해서 곧 조그마한 신고를 겪어도 바른 행을 이룩할 수 있겠나이다.”
그 때 세존께서 해의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네가 마사(魔事)를 아느냐?” “세존이시여, 제가 마사를 알고 있나이다.” “그렇다면 네 아는 대로 설명하여 모든 보살로 하여금 듣고 난 뒤에 곧 마사와 외도를 굴복시키고 초월하여 빨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과위를 증득하게 하여라.”
이에 해의보살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께서 분부하신 그대로 제가 마사를 설명하겠사오니, 원컨대 세존께서 위신(威神)을 세워 주옵소서.
세존이시여, 이른바 마사의 종류가 열 두 가지 있으니, 그 열 두 가지란, 보살이 보시바라밀다를 행할 때에 자신이 애중하지 않던 물건을 혜사(惠捨)했다고 해서 그 마음이 좋고 내가 애중하던 물건을 혜사했다고 해서 그 마음이 좋지 않거나, 남이 좋아하지 않는 물건인데도 굳이 주고 남이 좋아하는 물건인데도 주지 않거나, 또는 그 보시하는 물건에 갖가지 생각을 일으키고 베풀어주는 사람에게 갖가지 생각을 일으킨다면, 이것이 보살로서 보시를 행할 때의 첫째 마사입니다.
보살이 다시 계율바라밀다를 행할 때에 저 선한 법과 올바른 계행을 구족하여 자신이 조그마한 죄라도 매우 두렵게 여겨, 스스로가 깨끗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계행을 굳게 지키는 그러한 사문과 바라문을 보고는 곧 그를 가까이 여 존중히 받들되, 그와 달리 파계한 사람을 보고는 꾸짖고 헐뜯고 성내는 동시에 그 앞에서 자신의 계덕(戒德)을 믿고 다른 사람을 비방한다면, 이것이 보살로서 계율을 행할 때의 둘째 마사입니다.
보살이 다시 인욕바라밀다를 행할 때에 그 인욕의 행을 성취하려 하되 몸은 참을 수 있어도 말을 참지 못하거나, 마음으로는 미워하고 성내면서도 어떤 세력 있는 사람에겐 참고 열약(劣弱)한 사람에겐 참지 못하거나, 또 세력 있는 사람 앞에서는 참는 힘을 나타내 보이고 열약한 사람 앞에서는 성내는 모습을 나타낸다면, 그러한 참음과 그러한 못 참음이라면 어떠한 처지엔 참을 수 있고 어떠한 처지엔 참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참아야 할 처지에 거만한 마음을 내거나 참아야 할 처지에 참지 못하고서도 빨리 참회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보살로서 인욕을 행할 때의 셋째 마사입니다.
보살이 다시 정진바라밀다를 행할 때에 그 정진을 발기하여 성문승과 연각승의 사람을 교화 제도하고 또 대승의 사람을 교화 제도하되 다만 성문·연각승의 사람들을 위해 계속 설법할 뿐 도로 대승의 법으로써 저 어리석은 사람들을 교화한다면[이 문단 아래 상당한 누락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범본에 상고하여도 다한 해의보살의 열두 가지 마사 설명 중에 위의 세 문단과 다음 문단 절반이 있을 뿐, 나머지 여덟 문단은 없으며, 또 부처님의 말씀하신 열 가지 파마법문(跛魔法門) 중에도 마지막의 네 문단이 있을 뿐 위의 여섯 문단은 없다. 이미 범본에 누락된 것이므로 지금 와서 보충할 방법이 없다.]
이것이 여섯째의 파마법문(破魔法門)이니라.
다시 해의야, 모든 법의 자성(自性)은 더러움이 없으므로 그 더러움 없는 모습으로 더러움에 물든 중생들을 교화 제도하나니, 이것이 일곱째의 파마법문이다. 또 모든 법의 자성은 생멸이 없으므로, 그 생멸 없는 모습으로 중생들을 위해 나고 생로병사를 끊는 그 법을 선설하나니, 이것이 여덟째의 파마법문이니라.
또 모든 법의 자성은 차별 없는 동일한 맛[味]이므로 그 차별 없는 동일한 모습으로 3승(乘)을 세워 각각 설법하되 중생들로 하여금 대승의 즐거움을 버리지 않게 하나니, 이것이 아홉째의 파마법문이니라.
또 보살의 마음과 뜻은 모든 것에 의지하거나 집착함이 없으면서도 큰 보리심만은 언제나 잊어버리지 않고, 모든 발기를 다 여의면서도 일체 중생을 해탈하게 하려는 그 마음만은 버리지 않고, 모든 행을 다 초월하면서도 보리의 수승한 행만은 성취하나니, 이것이 열째의 파마법문이니라.
해의야, 이러한 열 가지 파마법문을 보살이 만약 부지런히 수습(修習)한다면 곧 일체의 마사(魔事)를 초월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