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자법화경을 써서 아버지를 구한 청진대사

금자법화경을 써서 아버지를 구한 청진대사

조선 고종(高宗) ·17년(서기 1880) 가을, 전라남도 순천군(順天郡) 조계산(曹溪山) 선암사(仙巖寺)의 김경운(金擎雲)스님이 손청진(孫正眞)대사의 청탁으로 통도사(通度寺) 백련암(白蓮庵)에서 순금을 갈아 아교에 개어서 법화경 7권을 베껴 쓰게 되었다.

그런데 이 법화경을 베껴 쓰게 된 것은, 정진대사의 아버지가 지옥의 고통에서 구원해 달라는 소청에 의한 것이었다. 정진대사는 울산(蔚山) 손유상(孫悠庠)의 아들인데, 아버지가 돌아간 뒤에 집안이 망하여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고 출가하여, 10년 동안을 부지런히 독경과 참선에 힘썼다.

어느 날 밤 꿈에 한 노승이 나타나서 정진대사를 데리고 바다 가운데 있는 무인도에 들어가 대사를 남겨두고 사라졌다. 끝이 없는 바다를 망연히 바라보며 외로이 서 있노라니까, 초라한 옷차림을 한 웬 노인이 나타나서 물었다.

「대사는 어디서 오셨소? 」

「범어사에서 왔습니다. 」

「대사의 고향은 어디요? 그리고 출가하기 전의 이름은 무엇이오? 」

「고향은 울산이고 이름은 아무개입니다. 」

「그럼 네가 바로 내 아들이로구나. 선악의 업보라는 것은 자기가 지어 자기가 받는 것이니라. 이 곳은 염부제란 나라인데, 이 나라 동쪽에 요사지옥이라는 지옥이 있다. 내가 그 지옥에 빠져 무수한 뱀들에게 시달리고 있다. 그 고통을 어떻게 말로 다 형용할 수 있겠느냐? 내 들으니 소주자사(蘇州刺史)로 있던 정익수(鄧益壽)라는 중국사람은 천상계에 태어났는데, 그는 벼슬아치로 있을 때 지은 죄가 많았지마는, 그의 아들 정태을(鄧太乙)이 죽은 아버지를 위해 법화경을 1천 번을 독송하고 그 공덕으로 천상계에 태어났다고 한다. 그러니 너는 나를 위해 법화경 한 질을 써서 1만 번만 독송하면, 내가 괴로움을 벗어나 즐거움을 얻어서 천상락을 받을 것 같으니 그렇게 해 보도록 하여라. 」

하고 말을 마치자 사라져버렸다. 정진대사는 꿈을 깨어서도 아버지의 부탁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였다. 그러나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비구라, 법화경 한 질을 베껴 쓸 비용이 없었다. 대사는 모든 부처님의 본원(本願)이 많은 외로운 영혼을 구원해 주는 일이라, 널리 시주동참을 얻어서 법화경을 조성하여 여러 사람의 인연을 맺어 주는 것도 좋은 일이라 생각하고, 어머니와 함께 시주 받기를 3년, 마침내 글씨 잘 쓰기로 이름난 김경운 스님을 청 해다가 법화경을 조성하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검은 비단에 금니(金泥)로 글씨를 살아 있는 족제비 꼬리의 털을 베어서 붓을 만들어 글씨를 써야만 글자가 똑똑하게 잘 써진다는 것이었다.

경운스님은 산 족제비를 구할 길이 망연하여 애를 태우고 있는데, 어느 날 난데없이 커다란 족제비 한 마리가 조실방에 뛰어들어 사람을 보고도 달아날 생각을 않고 가만히 엎드려 있었다.

스님이 시자를 시켜 그 족제비의 꼬리털을 잘라내니, 그제야 족제비는 달아났다. 이리하여 금자 법화경 한 질이 순조롭게 조성되었다. 회향재(廻向齋)까지 무사히 올렸다.

그날 밤 정진대사와 어머니의 꿈에 아버지가 나타나 화사한 웃음을 지으면서,

「너와 같은 효자를 두어, 법화경을 베껴 써서 봉안하고 또 천도재(鳶度齋)까지 올려준 공덕으로 나는 천상락을 받아 하늘로 올라간다. 」

하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그 뒤 정진대사는 항상 법화경을 독송하고 강설하였다.

<통도사지>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항목은 *(으)로 표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