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천불인연경(佛說千佛因緣經)
후진(後秦)구자국삼장(龜玆國三藏) 구마라집(鳩滅什) 한역
이진영 번역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큰 비구 대중 5천 명과 함께 왕사성(王舍城)의 기사굴산(耆闍崛山)에 계셨다. 그들의 이름은 존자 아야교진여(阿若憍陳如)와 존자 우루빈라가섭(優樓頻螺迦葉)과 존자 가야가섭(伽耶迦葉)과 존자 나제가섭(那提迦葉)과 존자 마하가섭(摩訶迦葉)과 존자 사리불(舍利佛)과 존자 대목건련(大目犍連)과 존자 가전연(迦栴延)과 존자 아나율(阿那律)과 존자 아난(阿難) 등 큰 아라한(阿羅漢)으로서, 모두가 대중이 아는 바 그대로 잘 조복된 코끼리 왕처럼 해야 할 일을 이미 끝내어 3명(明)·6통(通)·8해탈(解脫)을 갖추었다. 또 8만 4천 명의 보살마하살들은 범덕(梵德)보살·정행(淨行)보살·무변행(無邊行)보살을 우두머리로 한 보살들과 발타바라(跋陀波羅)·응여무변(應與無邊) 보살을 우두머리로 한 보살들과, 다른 세계로부터 모여온 월음(月音)보살·월장(月藏)보살·묘음(妙音)보살을 우두머리로 한, 이 같은 큰 보살들이었다. 이들은 모두 오랫동안 범행(梵行)을 닦아서 안온 청정하였고, 수릉엄(首楞嚴)삼매에 머물러 8만 4천의 모든 바라밀(波羅蜜)을 구족함으로써 사바세계와 시방국토에 변화로 지은 부처님을 나타내었고, 동시에 미묘한 법 바퀴를 굴려 반열반(般涅槃)을 나타내기도 하여 기사굴산의 승선강당(昇仙講堂)에서 모두 사자후(師子吼)를 하였다.
이 여러 보살마하살들이 각각의 과거세의 인연을 말하자 그 음성이 삼천대천세계에 두루 가득하여, 하늘·용·야차·건달바·아수라·가루라·긴나라·마후라가·사람인 듯 아닌 듯한 무리 등 모든 대중이 다 함께 모였다.
그 때 세존께서 석실(石室)에서 나오시어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지금 여러 성문과 보살들이 함께 무슨 강론을 하였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러 보살들은 각자가 자신들의 과거세의 인연을 말하였나이다.”
그 때 세존께서는 편안하고 조용한 모습으로 마치 위엄을 갖춘 큰 코끼리[龍象]처럼 걸으시면서 승가리(僧迦梨)를 입으시고 대중 속으로 들어와 여러 보살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이제 각각 무슨 이치를 말하였기에 그 큰 음성이 이 세계를 두루 가득하게 하는가?”
발타바라보살이 곧 자리에서 일어나 직접 부처님을 위해 사자좌(師子座)를 깔고는, 머리를 부처님 발에 대어 예배하고 부처님께 사자좌에 앉으시기를 청하면서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오늘 세존께 여쭙고 싶은 것이 약간 있사오니, 원컨대 세존께서는 저를 위하여 해설하여 주옵소서.”
이 말씀을 아뢸 때에 8만 4천의 보살들이 제각기 영락(瓔珞)을 벗어 부처님께 흩뿌려 공양하자, 그 뿌려진 영락이 부처님의 정수리 위에 머물러 마치 수미산(須彌山)처럼 볼 만한 장엄을 나타내고, 거기에 변화로 나타난 천 부처님이 산굴(山窟) 속에 앉아 있었다.
이 때에 여러 보살들은 부처님 발에 정례(頂禮)를 올리고 이구동음(異口同音)으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이 현겁(賢劫)의 천 부처님과 더불어 과거세에 어떠한 공덕을 심고 어떠한 도(道)의 행을 닦았기에 항상 같은 곳에 태어나 같은 집에 살면서 한 겁 동안에 차례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성취하게 되며, 나아가서는 이 더럽고 나쁜 중생들을 교화하고 인도하여 그들로 하여금 견고히 세 종류의 청정한 보리심(菩提心)을 내게하나이까? 원컨대 저희들과 미래세의 중생들을 위해 이 현겁의 천 보살이 과거세에 모든 바라밀을 닦는 그 본사(本事)의 과보를 자세히 분별하여 말씀해 주옵소서.”
그러자 세존께서는 여러 보살들에게 말씀하셨다.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여라. 내 그대들을 위해 분별하여 자세히 말하리라. 발타바라야, 너는 이제 알아 두라. 지금으로부터 과거 한량없고 셀 수 없는 백천만억 아승기겁(阿僧祇劫)보다 더 오래된 그 어느 때에 대장엄(大莊嚴)이란 세계가 이 사바세계에 있었으니, 겁의 이름은 대보(大寶)이고, 그 세계에 출현하신 부처님의 명호는 보등염왕(寶燈焰王) 여래(如來)·응공(應供)·정변지(正遍知)·명행족(明行足)·선서(善逝)·세간해(世間解)·무상사(無上士)·조어장부(調御丈夫)·천인사(天人師)·불세존 (佛世尊)이셨다. 그 부처님이 세간에 출현하실 때에도 역시 이 3승(乘)으로써 중생을 교화하셨는데, 부처님 수명은 반겁이었지만 바른 법[正法]이 한 겁 동안 세간에 머물고 형상법[像法]이 두 겁 동안 세간에 머물렀으며, 형상법 동안에 광덕(光德)이란 한 대왕(大王)이 있어 10선도(善導)로써 백성을 교화하기를 마치 전륜성왕(轉輪聖王)과 같이 하여 그 국토를 안락하게 하였다.
이 대왕은 모든 백성에게 비타론(毘陀論)을 외우게 하였다. 당시 학당(學堂)에 1천 동자(童子)가 있었는데, 그 동자들은 나이 각각 15세로 총명하고 민첩하였으며 지식이 풍부하였다. 여러 비구들로부터 불·법·승을 찬탄함을 듣고는, 그 중에 연화덕(蓮華德)이란 동자가 선칭(善稱) 비구에게 물었다.
‘어떤 것을 불(佛)이라 하고, 어떤 것을 법(法)이라 하고, 어떤 것을 승(僧)이라 합니까?’
선칭 비구가 곧 게송을 읊어 대답하였다.
바라밀을 원만히 갖추어
청정한 성품 지혜 깨닫고
수승한 마음을 성취하기에
이를 일러 불이라 하며
더러움 없는 성품 청정하여
영원토록 이 세간을 여의고
세간의 5온(蘊)을 보지 않고서
항상 머물므로 이를 법이라 하며
몸과 마음 항상 함이 없어[無爲]
길이 네 종류의 음식을 여의고
세간의 훌륭한 복밭[福田] 되므로
이를 일러 비구승이라 하네.
이렇게 1천 동자는 3보(寶)의 이름을 듣자, 각각 향과 꽃을 지니고 그 비구를 따라 승방(僧房)에 나아가 탑(塔)에 들어가 예배하고 불상(佛像)을 보게 되었는데, 그 불상의 너비와 높이는 62나유타 유순이고 8만 4천의 모든 상호문(相好門)을 다 구족하여 있었다.
1천 동자들은 이 불상을 보고 나서 비구에게 물었다.
‘이같이 수승한 사람이며 위없는 대사께서는 과거세에 어떤 공덕을 닦았기에 위없고도 수승한 이 같은 모습을 얻었습니까?’
비구가 대답하였다.
‘선남자여, 그대들은 이제 자세히 들어라. 그 부처님은 과거세 8만 4천의 모든 바라밀(波羅蜜)을 수행하였고, 다시 37품(品)의 보리 돕는 법[助菩提法]을 닦아 익히셨으므로 이같이 단정하고 장엄한 몸을 얻으셨다. 또 여래의 몸은 이 8만 4천의 상호문을 지닐 뿐만 아니라 부처님의 10력(力)과 4무소외(無所畏)와 18불공법(不共法)과 대비(大悲)의 3념처(念處)와 3명(明)·6통(通)·8해탈 등을 모두 갖추셨다.’
1천 동자는 부처님을 찬탄한 그 비구의 말을 듣고 나서 온몸을 땅에 엎드려 예배를 올리면서 곧 불상 앞에서 큰 서원을 세웠다.
‘저희들은 이제 각각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어 앞으로 많은 겁수를 지난 뒤엔 지금의 세존과 다름없이 꼭 성불하겠습니다.’
세 번째 동자인 연화장(蓮花藏)이 또 서원을 세웠다.
‘저희들이 이제 이 비구를 인하여 3보의 이름을 들었고, 다시 여래의 색상(色像)을 뵙게 되었으니, 미래세에 틀림없이 성불할 것이므로 성불하기 전까지 그 동안에는 항상 비구와 함께 같은 처소에서 살겠습니다.’
발타바라여, 너는 이제 알아 두라. 그 때에 1천 동자가 3보의 이름을 듣고 몸과 마음으로 기뻐했기 때문에 그들은 수명의 길고 짧음에 따라 목숨이 끝날 때에 가서는, 3보의 선근(善根)을 들은 그 인연의 힘으로 51겁에 걸친 생사의 업을 다 제거했으며, 목숨이 끝난 뒤에는 범천 세상의 여러 하늘에 태어나 법을 자라게 하고, 혹은 범천의 궁전에 태어나 곧 3념처를 얻음으로써 스스로 과거세에 3보의 명칭을 들은 것을 기억한 인연을 말미암아 천상에 태어나기도 하였는데, 그 때에 1천 범왕은 각각의 궁전에 올라 여러 범천들과 함께 7보(寶)의 꽃을 가지고 옛날의 탑 앞에 이르러 불상을 공양하였다. 그리고 1천 범왕은 또 이구동성으로 이러한 게송을 읊었다.
혜일(慧日)의 큰 명칭
선적(善寂)한 자리에 오래 머물러
3보 이름 듣고 악업을 제거했기에
자연히 이 범세에 태어났으니
나 이제 머리 조아려 예배하고
큰 해탈한 이께 귀의합니다.
이 게송을 읊고는 각각 범천 세상으로 돌아갔다.
발타바라여, 너는 이제 알아 두라. 그 때 국왕으로서 10선도로써 사람을 교화하여 오랜 뒤 성불한 이는 비바시(毘婆尸)여래가 바로 그이고, 선칭 비구는 바로 시기(尸棄)여래이다. 그리고 1천 동자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지금의 구류진(拘留秦)부처님과 내지 최후의 누지(樓至)여래가 그 사람이다.
발타바라여, 너는 이제 알아 두라. 내가 현겁의 천 보살과 더불어 저 부처님으로부터 3보의 명칭을 듣고 처음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낸 그 사실이이와 같노라.”
부처님께서는 다시 발타바라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제 알아 두라. 내가 기억하건대 과거 한량없고 셀 수 없는 아승기겁에 어떤 큰 나라가 이 사바세계에 있었다. 그 나라의 이름은 바라내(波羅)이고 임금의 이름은 범덕(梵德)이었는데, 그 국왕이 항상 착한 법으로써 백성들을 교화하였기 때문에 그 때 사람들 수명은 8만 4천 겁이었다. 그런데 어느 때 국왕 범덕은 자신의 늙어 가는 모양[衰相]을 보고는 나라를 아들에게 맡기고 출가하여 선인(仙人)이 살고 있는 우담발(憂曇鉢) 숲 속에서 도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그는 이른 아침에 출가하여 단정히 앉아 생각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거꾸로[逆] 바로[順] 12인연(因緣)을 관찰하되 무릇 열여덟 번을 되풀이한 나머지 곧 벽지불(辟支佛)의 도를 얻어 허공에 몸을 솟구쳐 열여덟 가지 변화를 일으켰는데, 우담발 숲 속의 5백 범지가 그 벽지불의 발바닥에 12인연의 문자가 있음을 보게 되었다. 곧 ‘무명은 행을 인연하고[無明緣行], 행은 식을 인연하고[行緣識], 식은 명색을 인연하고[識緣名色], 명색은 6입을 인연하고[名色緣六入], 6입은 촉을 인연하고[六入緣觸], 촉은 수를 인연하고[觸緣受], 수는 애를 인연하고[受緣愛], 애는 취를 인연하고[愛緣取], 취는 유를 인연하고[取緣有], 유는 생을 인연하고[有緣生], 생은 노사우비고뇌를 인연한다[生緣老死憂悲苦惱]’라는 이 같은 문자가 있음을 보게 되자, 5백 비구들이 이 문자를 보고 무명(無明)에 인연한 행은 아무 데도 일어나는 것이 없음을 관찰함으로써 그 중의 3백 비구는 곧 벽지불의 도를 얻고, 또 2백 비구는 무명에 인연한 행과 애(愛)·취(取)·유(有)를 관찰함으로써 곧 벽지불을 성취하였으며, 또 어떤 비구는 무명으로부터 내지 노사우비고뇌를 관찰함으로써 무상(無常)한 행을 인하여 곧 벽지불을 성취하였으니, 하루 동안에 우담발 숲 속의 5백 한 사람 벽지불이 세간에 출현하였다.
그러자 그 때 온 땅이 여섯 가지로 진동하여 내지 범세(梵世)의 여러 하늘 궁전까지 진동하였고, 1천 범왕은 각각 옷 자락[衣]에 만다라(曼陀羅)꽃·마하만다라꽃·만수사(曼殊沙)꽃·마하만수사꽃을 가득 담아 우담발숲 속에 나아가서 그 벽지불들에게 공양하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대덕이시여, 저희들을 위해 설법하여 주소서.’
그리하여 벽지불이 허공에 몸을 솟구쳐 열여덟 가지 변화를 일으켜 손을 펴고 발을 드러내자 1천 범왕은 그 발바닥에 12인연의 문자 모양이 있고, 손바닥 안에는 10선도의 글이 있으며, 정수리 광명 속에는 5계(戒)와 8재계[支齋]의 글이 나타남을 보았다. 그래서 1천 범왕은 몸과 마음으로 기뻐하여 그 문자를 받아 지니고 읽어 외우면서 큰 서원을 세웠다.
‘우리들이 이제 여러 쾌사(快士)들을 보니 가부앉음[結跏趺坐]은 마치 선정에 들어간 모습 같은데, 몸에 광명을 나타내어 이 문자를 보임은 우리들로 하여금 읽어 외우게 함이리라.’
그 때에 범왕의 무리 가운데 혜견(慧見)이란 범왕이 다른 범왕들에게 말하였다.
‘우리들이 이제 벽지불을 보고서 5계와 8재계를 받아 지니고 10선도를 행하고 12인연을 관찰해야 할 것을 알았으니, 이 선근으로써 깊고 깊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되, 우리가 벽지불이 될 때엔 지금의 벽지불보다 백천만 배나 많은 설법으로 사람들을 제도하며, 우리가 성불할 때엔 우리의 명칭을 들은 이거나 우리의 형상을 본 이라면 모두 그들의 한량없는 장애를 없애게 하기를 마치 오늘날 우리가 벽지불을 본 것처럼 해야 하리라.’
그리하여 1천 범왕은 공양을 마치고 각자의 처소에 돌아가 안정하면서 그들의 수명에 따라 각각 목숨을 끝냈는데, 목숨을 끝낸 뒤에는 사바세계의 1천 사천하에 1천 전륜성왕으로 태어나 10선도로써 교화하니, 그 지난 생의 선업의 원력 때문에 인연에 따르지 않고 8만 4천 세의 수명을 누렷다. 또 목숨을 끝내려는 무렵에 설산(雪山)에 있는 한 바라문(婆羅門)을 만났다. 그는 총명하고도 지혜가 많아 반겁 동안을 살면서 열 가지 부처님 명호를 갖추신 전단장엄(栴檀莊嚴)이란 여래를 따라 그 여래로부터 보시바라밀[檀波羅蜜]의 깊은 설법을 들은 큰 선인이었다. 곧 ‘보시하는 자나 보시 받는 자를 보지 않고 평등한 마음으로 보시를 행해야 한다’는 설법이었다.
이 때 큰 선인이 이 사실을 듣고는 설산에서 나와 1천 성왕에게 이르러 재보(財寶)를 요구하면서 여러 성왕들을 위해 이 깊고 깊은 보시바라밀을 널리 찬설하는데, 그는 오른발로 발돋움을 하고 오른손을 올려 성왕들의 앞에 서서 다음의 게송을 읊었다.
보시는 묘하고도 좋은 약이므로
그 약 먹는 자 항상 죽지 않나니
몸과 마음을 조금도 아끼지 않고
모든 재물을 공적(空寂)하게 보며
그 보시 받는 자도 허공처럼
이같이 참된 보시를 행하여
보시하는 자와 받는 자가 없어야만
이것을 곧 보살행이라 하네.
1천 성왕은 각각 그 태자들에게 국토를 맡기고 온 나라에 선포하였다.
‘우리들이 이제 모든 보시를 닦고자 하니 재보가 필요한 모든 빈궁한 자는 우리의 처소에 오라. 우리는 원하는 바에 따라 보시하겠노라.’
그러자 온 나라의 백성들이 다 1천 성왕의 처소에 모여 와서 성왕에게 말하였다.
‘저희들이 필요한 것은 다름이 아니고 다만 두 가지 일이온데, 첫째는 천악(天樂)과 둘째는 천녀(天女)입니다.’
그리하여 1천 성왕은 마니주(摩尼珠)를 높은 당기[幢] 위에 두고서 큰 서원을 세웠다.
‘저희들의 복덕이 착한 과보를 받을 수 있게끔 진실하여 헛되지 않다면 여의주(如意珠)로 하여금 천악을 널리 내려 모든 중생에게 공급하소서.’
그러자 그 염원에 따라 곧 갖가지 악기를 퍼붓는데, 때마침 모든 악기가 허공에 머물러 있으면서 두드리지 않아도 스스로 울렸다.
다시 염원하였다.
‘저희들의 복덕 착한 것이 진실하여 헛되지 않다면 여의주로 하여금 널리 천녀를 내려 주옵소서.’
그러자 역시 그 염원에 따라 곧 많은 천녀를 내리는데, 마치 마천(魔天)의 왕후같이 용모와 위의가 단정하였고 낱낱 천녀는 각기 5백 권속을 거느리고 있었다.
1천 성왕은 많은 백성들의 염원을 만족케 하고 나서 곧 국토를 버리고 출가하여 도를 배우기 시작하니, 왕의 천 아들과 여러 신하, 백성들이 다 울부짖으면서 왕의 뒤를 따라 대왕을 설산에까지 전송하였다.
1천 성왕이 그의 신하와 백성들에게 말하였다.
‘모든 행이 덧없고 나의 몸도 주인이 없나니 성품[性]과 형상[相]이 다 공하여 있는 것이란 마침내 사라지는 것이다. 내 이제 이 이치를 이해하고 믿게 되었으므로 국토를 버려도 아무런 애착이 없다.’
그리고는 곧 바라문을 따라 설산으로 들어갔으며, 왕의 아들·신하·백성들은 하직하고 다 본국으로 돌아갔다.
1천 성왕은 설산 속에서 각각 초암(草菴)을 짓고 단정히 앉아 생각하면서 큰 서원을 세웠다.
‘마땅히 모든 중생을 제도하고 위없는 도를 구하여 크게 보시하리라.’
이렇게 생각하자, 성왕들은 전생에 열 가지 착한 도를 행한 그 과보 때문에 설산의 1천 귀신이 각각 선과(仙果)를 바쳐 날마다 공급함으로써 다시는 음식을 구할 필요가 없게 되었으며, 때마침 5신통(神通)을 얻어 허공에 날아다니고 한 겁의 수명을 누렸다.
그 때 설산 속에 큰 야차(夜叉)가 있었으니, 몸의 길이가 4천 리요, 위로 솟은 송곳니의 높이가 80리며, 얼굴에는 열두 개의 눈이 있어 눈으로부터 내는 피의 빛깔이 마치 불에 녹은 구리쇠 같았는데, 그 야차가 왼손에 칼을 잡고 오른손에 몽둥이를 들고서 성왕 앞에 멈추어 큰 소리로 외쳤다.
나는 지금 굶주리고 목마르나 먹을 것이 없으니, 원컨대 자비한 성왕은 가엾이 여겨 나에게 먹을 것을 조금 주시오.’
성왕들은 야차에게 대답하였다.
‘우리들의 서원이 바로 모든 시여(施與)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각각 물을 가져와 야차의 손을 씻게 하고 선과(仙果)를 주어 먹게 하였는데 야차는 선과를 받고는 성을 내어 그것을 땅에 던져버리면서 성왕들에게 말하였다.
‘나는 아버지 야차는 사람의 정기를 빨아먹으며, 나의 어머니 나찰(羅刹)은 항상 사람의 심장을 빨고 사람의 뜨거운 피를 마셨다. 내 이제 몹시 굶주려 사람의 심장과 피가 필요할 뿐이거늘 어찌 과일을 먹으라 하는가.
그러자 1천 성왕이 야차에게 말하였다.
‘모든 버리기 어려운 것 가운데 자기 몸보다 더한 것이 없다. 우리들은 오늘에 심장을 버려 그 것을 갖고 너에게 보시할 수는 없노라.’
그러자 야차는 곧 다음의 게송을 읊었다.
심장을 보아도 심장이란 모양이 없고
몸은 네 원소로 이루어진 것이라 생각하여
모든 것을 다 버릴 수 있어야만
곧 보살행이라 말할 수 있네.
그 때 설산에 또 뇌도발제(牢度跋提)라는 한 바라문이 있어서 야차에게 말하였다.
‘원컨대 대사는 나를 위해 설법하시오. 나는 이제 심장과 피를 아끼지 않으리다.’
그리고는 곧 홑옷[單衣]을 벗어 높은 자리에 깔아 두고 야차를 청하여 그 자리에 앉게 하니 큰 야차는 곧 다음의 게송을 읊었다.
함이 없는 도를 구하려면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고
베고 끊는 온갖 고통 받을지라도
마치 땅처럼 참을 수 있으며
또 받은 자를 보지 않아
법 구하는 마음 뉘우치지 않고
모든 것을 조금도 아낌없이
불붙은 머리털 구제하는 것처럼
굶주리고 목마른 중생 널리 구제해야만
곧 보살행이라 말할 수 있다오.
이 게송을 들은 뇌도발제는 몸과 마음이 기뻐서 곧 날카로운 칼을 갖고 가슴을 찔러 심장을 내려고 하는데, 그 때 땅에서 지신(地神)이 뛰어나와 뇌도발제에게 말하였다.
‘원컨대 큰 선인께서는 저희들을 비롯한 산과 나무의 신들을 가엾이 여기사 저 한 귀신을 위해 신명을 버리지 마옵소서.’
뇌도발제는 다음의 게송으로 여러 귀신들에게 말하였다.
이 몸은 눈홀림과 아지랑이 같아
나타나는 대로 곧 변하고 사라지고
또 부르는 소리와 메아리 같아
부름이 끝나면 다시 응하지 않으며
4대와 5온의 힘도
그 세력 오래 머물지 않나니
한량없는 천만억 세를 지나도록
아직 법을 위해 죽은 적 없네.
나 이제 법을 위한 까닭에
심장과 피로써 보시하노니
부디 나를 굳게 막지 말고
나의 위없는 지혜를 방해하지도 말라.
나 이 보시의 과보로써
서원 세워 불도를 이룩하리니
만약 뒷날 성불할 때엔
먼저 너희들을 제도해 주리라.
이 게송을 읊고는 야차 앞에 누워서 칼로 목을 찔러 그 피를 야차에게 보시하며, 다시 가슴을 도려 심장을 내어 주었다. 그러자 하늘·땅이 크게 움직이고 햇빛이 정기가 없어지고, 구름도 끼지 않고 우레 소리만 나는데, 다섯 야차들이 사방에서 모여와 서로 경쟁하면서 뜯고 찢어 다 먹은 뒤에 크게 부르짖고는, 허공에 뛰어올라 1천 성왕에게 말하였다.
‘누가 뇌도발제와 같이 보시를 행할 수 있겠느냐? 이러한 보시를 행해야만 성불할 수 있으리라.’
1천 성왕이 놀라고 겁내어 물러나면서 다시는 보리심을 내려고 하지 않는 한편, 그 마음을 바꾸어 각각 그들의 국토로 돌아가려 하자, 다섯 야차가 곧 다음의 게송을 읊었다.
살생하지 않음이 부처님 종자이고
인자한 마음이 좋은 약이 되므로
대비는 언제나 안온하여서
늙어 죽을 때까지 끝내 변함 없나니.
몸을 받은 모든 중생들
죽음을 겁내어 도리어 남을 해치니
그러므로 여러 보살들
살생하지 않는 계율을 가르치노라.
그대들 이제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마땅히 살생하지 않는 일 행할지니
어찌 각자의 국토에 돌아가서
이 고요한 곳 버리고 시끄러움 구하려 하나.
1천 성왕은 이 말을 듣고 나서, 다 잠잠히 머물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발타바라여, 너는 이제 알아 두라. 맨 처음에 보시바라밀을 찬설한 바라문은 바로 과거의 정광명왕(定光明王)부처님이시고, 뇌도발제는 과거의 연등(然燈)부처님이 그이니라.
그 때 1천 성왕이 출가하여 도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연등부처님을 뵙고 모든 고행을 닦다가 중도에 후회하는 마음을 냄으로써 한 겁 동안 큰 지옥에 떨어졌다. 그러나 지옥에 떨어져도 보리의 원력으로 마음을 장엄하였기 때문에 지옥의 불에 타 죽지 않고서 그 때부터 다시 등명왕(燈明王)보살을 만나게 되었는데, 보살이 그들에게 설법하기 위해 지옥으로부터 나오게 하여 과거의 해탈칭장엄(解脫稱莊嚴)부처님을 비롯해, 내지 최후의 묘자재왕(妙自在王)부처님까지 천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때에 1천 성왕이 천 부처님의 명호를 듣고 기뻐하여 공경히 예배하였으므로 그 인연에 따라 9억 나유타 항하사 겁의 생사의 죄를 초월하였느니라.
발타바라여, 너는 이제 알아 두라. 그 때의 1천 성왕이 어찌 다른 사람이겠느냐? 우리들 현겁의 천 부처가 바로 그들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모든 대중이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다 매우 기뻐하여서, 대중 가운데 80명의 사람은 위없는 도의 마음을 내고, 2백 50명의 사람은 번뇌가 다 사라져 아라한(阿羅漢)을 이루었다.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발타바라여, 이제부터 과거 한량없고 셀 수 없는 아승기겁에 어떤 큰 나라가 이 염부제(閻浮提)에 있었으니, 왕의 이름은 수사제(須闍提)이고 나라의 이름은 승번(勝幡)이었다.
그 왕은 출생할 때부터 7보를 구족하였고 하늘에서 서른네 가지 서응(瑞應)이 내렸다. 왕은 또 모태에서 땅에 내려지자 곧 다닐 수 있어 7보가 스스로 이르며, 사방 여러 산에는 각각 1억의 신선이 있어서 5신통을 갖추어 궁전 앞에 날아 모이고 다시 백만억 항하사의 7보로 된 큰 산이 궁전 앞에 솟아나기도 하며 허공 속에 벌려 머물기도 하여 그 신선들에 응하였다.
수사제왕이 점차 자라 사천하의 왕이 되어서는 그 위덕(威德)이 자재로워 10선도로써 사람을 교화하니, 왕의 위덕의 힘으로 말미암아 모든 백성이 다 도리천(忉利天)과 같은 쾌락을 받았다. 그 때 여러 선인들이 각각 선경(仙經)을 가지고 왕에게 바쳐 읽게 하자, 왕이 그 선경을 읽고 과거세 부처님으로서 열 가지 명호를 갖추신 보화유리공덕광조(寶華琉璃功德光照)여래에 대해 듣게 되었다. 왕이 부처님의 명호를 듣고 몸과 마음으로 기뻐한 나머지 곧 보배 관을 벗어 사방을 향해 예배하고 큰 서원을 세워 말하였다.
‘나는 오늘부터 이 사천하의 모든 보배를 다 버리고 출가하여 도를 배우기 위해 광명 보리수 아래 앉아 몸과 마음을 움직이지 않으리니, 만약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지 못한다면 나는 끝내 일어나지 않으리라.’
이 때에 욕계의 여섯 천왕 중 금강마니주(金剛摩尼珠)라는 천왕이 마군의 무리 8만억천을 거느리고 그 낱낱 귀신 군사로 하여금 아주 겁나고 두려울 만한 백억 가지 모양을 변화로 지어 그 보리수에 모여 왔다.
때마침 수사제왕은 보리수 아래 단정히 앉아 지인자심왕(智仁慈心王)삼매에 들었기 때문에 그 삼매의 힘으로써 마군의 군사를 한꺼번에 파괴하고 49일이 지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였다. 그리하여 여러 신선들이 함께 와서 미묘한 법 바퀴를 굴리기 청하였는데, 그 선인들 중에 광과(光果)라는 큰 선인이 먼저 게송으로 말하였다.
대덕이시여, 수사제왕은
금수레로 사방을 굴리신 왕이건만
이제 이 일곱 보배 다 버리기를
마치 새가 깃털 하나를 버리듯 하고
광명 보리수 아래 앉아서
만억의 마군을 항복 받으며
감로의 법을 듣고는
도 배워 이미 성취하고
상호(相好)도 견줄 데 없어
그 위신의 광명 시방을 비추시네.
저희들 이제 땅에 엎드려 예배하오니
원컨대 대 선적(善寂)께서는
반드시 저희들을 제도해 주시고
나아가선 법 바퀴 굴리옵소서.
두 번째 광장(光藏)이란 선인이 또 다음의 게송을 읊었다.
큰 성인 중생을 가엾이 여기사
서원 세워 보리수 아래 앉아
온갖 마군을 꺾어 부수매
번뇌의 바다 이미 말라 버렸네.
원컨대 더욱 이 중생 위하사
감로의 법을 자세히 연설하소서.
그 때에 세존께서 여러 선인들의 청을 잠잠히 받아들여 광명 보리수 아래 앉아서 미묘한 법 바퀴를 굴리고 온몸을 광명을 놓아 시방세계를 비추시자 그 광명이 마치 금 빛깔 같으며, 4제(諦)와 12인연과 백억의 게송을 자세히 말씀하시매, 처음 모임에서 사방 산의 신선들은 다 생사 없는 법의 지혜[無生法忍]를 얻었고, 그 밖의 백천 사람은 위없는 도심(道心)을 냄으로써 출가하여 도를 배우고, 무수한 사부대중은 수다원(須陀洹)의 도를 얻고, 보리심을 내는 자는 그 수를 알 수 없었다. 또한 부처님의 수명은 25만 겁인 한편, 바른 법이 2백만 겁 동안 세간에 머물고, 형상법이 4백만 겁을 머물렀으며, 그 부처님의 법이 사라지려는 때에는 모든 비구들이 돌아다니면서 교화하였느니라.
그 때에 또 어떤 나라가 있었으니 나라 이름은 전광(電光)이었다. 거기서 뇌도발제(牢度跋提)란 장자가 있어서 외도의 법을 수행하고 범천을 섬기었는데, 전광국의 대왕이 1천 동자를 그 사람에게 보내어 필요한 물품을 공급하고 천신을 모신 사당을 청소하게 하였다. 1천 동자들이 각각 하늘 꽃을지니고 천사(天寺)에 가려고 할 무렵, 중도에서 어떤 비구들이 불상(佛像)을 모시고 다니는 것을 보고, 동자들이 물었다.
‘이는 어떤 신선이기에 단정한 위광(威光)이 그같이 뛰어났습니까?’
비구들이 대답하였다.
‘이는 바로 대선적(大善寂)의 상이라오.’
동자들이 다시 물었다.
‘그는 어떤 종성(種姓)에 태어나 어떤 이치를 깨달았습니까?’
비구들이 대답하였다.
‘그대들은 모르겠는가? 오랜 과거세에 국토를 버리고 출가하여 위없는 도를 이룩한 수사제왕의 명호가 대선적이신데, 그 분은 정광림(淨光林)에서 반열반에 드셨고, 우리는 바로 그 분의 제자로서 이제 이 대선적의 상을 모시는 것이오.’
그래서 1천 동자가 부처님의 인연을 듣고 각각 연꽃으로 공양하고 불상의 발에 정례(頂禮)를 드렸느니라.
발타바라여, 너는 이제 알아 두라. 불상에 공양한 그 인연으로, 그 때 동자들은 각자의 길고 짧은 수명에 따라 목숨을 끝내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곧 60억 나유타의 여러 부처님을 만나게 되어 친근 공양함으로써 위없는 도에서 퇴전하지 않았느니라.
발타바라여, 너는 이제 알아 두라. 그 부처님 때에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던 사방 산의 선인은 지금 시방에서 각각 성불하신 부처님이고, 꽃으로써 공양한 1천 동자는 어찌 다른 사람이겠느냐? 우리들 현겁의 천 부처가 바로 그들이니라.
발타바라여, 너는 이제 알아 두라. 부처님 멸도한 뒤에 만약 사부 중생이 꽃 한 송이를 갖고 불상에 공양하더라도 그는 두 가지 복을 받으리니, 무엇이 두 가지인가? 첫째 항상 화생(化生)할 수 있고, 둘째 모습이 단정할 것이다. 또 두 가지 복을 얻을 것이니, 첫째는 항상 여러 부처님을 만나게 되고, 둘째는 많은 생을 천상에 태어나게 될 것이다.”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모두 매우 기뻐하였다.
부처님께서는 또 발타바라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제 알아 두라. 내 기억하건대, 과거 한량없고 셀 수 없는 천만억 겁 때에 어떤 부처님이 계셨으니, 그 부처님은 열 가지 명호를 갖추신 보개조공(寶蓋照空)여래이셨다.
그 부처님이 출현하실 때엔 이 삼천대천세계가 금강불찰(金剛佛刹)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으며, 보개조공여래께서도 이 3승(乘)으로써 중생을 교화하셨다. 부처님 멸도하신 뒤 형상법이 머무는 동안에 월집(月集)이란 한 장자가 있어, 부락을 돌아다니면서 중생을 교화하고 게송을 읊어 보개조공여래의 명호를 찬탄하였다.
보개조공 여래·정변지
무상사·조어장부·천인사·불세존은
영원히 생사를 여읜 석사자(釋師子)로서
더러움 없고 청정한 참된 지혜이시라.
능히 세간 위해 훌륭한 복밭 되어
의왕(醫王)처럼 모든 중생 구제하시리니
명호만 들어도 큰 해탈 얻을 것이므로
나 이제 위없이 거룩한 이께 예배합니다.
그 장자가 이 게송을 읊고 나서, 갖가지 꽃과 향으로 보개조공여래의 불상에 공양하였는데, 꽃 공양을 마치자 1천 비구가 강당에 들어와서 그 큰 장자가 꽃과 향으로 공양하고 부처님 찬탄하는 게송 외우는 것을 보고, 일장(日藏)이란 우두머리 비구가 장자에게 물었다.
‘그대가 이제 날마다 꽃과 향으로 공양하고 부처님 명호를 찬탄함은 무엇을 구하려 함입니까?’
장자가 대답하였다.
‘대덕 비구시여, 전일한 마음으로 들으십시오. 내가 이제 공양함은 위없고 평등한 대도를 구하기 때문입니다.’
비구가 또 장자에게 물었다.
‘어떤 것을 위없는 도라 합니까?’
장자는 다음의 게송을 읊어 대답하였다.
집착 없고 의지하는 곳도 없고
더러움[累] 없이 마음 고요하여
본래의 성품이 허공 같으므로
이를 위없는 도라 일컬으며
대인(大人)다운 마음을 행하되
자비로써 가장 으뜸을 삼아
서른일곱 가지 도 돕는 품으로
생각 없애는 그 힘 장엄하고
여섯 바라밀의 배를 타고서
영원히 생사의 흐름을 건너되
그곳에 집착하는 마음 없으므로
이를 위없는 도라 일컬으며
부처님의 지혜 수미산과 같고
곱게 피는 연꽃 같기도 하여
공한 성품 길이 깨달았으므로
이를 위없는 도라 일컬으며
조절하고 제어하여 마음을 알다시피
실제의 성품도 그렇게 하여
삼계의 모든 존재가
다 공적 속에 들어감을 알고
생사 없는 모든 형상까지
함께 법계의 성품에 들어가
이같이 아무것도 없음을 알므로
이를 위없는 도라 일컫는다네.
이 때에 장자가 이 게송을 읊고는 비구에게 말하였다.
‘원컨대 대덕도 이 위없는 도를 행하십시오.’
그러자 비구는 다시 게송을 읊어 말하였다.
그대가 말한 이치와 같이
행함도 없고 의지함도 없어
본래의 성상(性相)이 공적하다면
나는 어떤 법을 행해야 하오.
내가 큰 도를 물음은
부처님 지혜를 알려는 것이온데
이제 법계의 모양을 말하되
허공같이 앎이 없다 하니
이 앎이 없는 속에
욕심 없고 구하는 것도 없어
이같이 성상이 사라진다면
나는 무엇을 행해야 하리까.
이 때에 장자도 다시 게송을 읊어 대답하였다.
해의 광명이 공중에 머물러
모든 곳을 두루 비춤은
그 또한 어둠을 파괴하려는
심상(心相)이 있어서가 아니라
다만 광명의 힘이 밝게 비추어
모든 어둠을 넘어서므로
어둠과 광명 그 두 가지가
함께 아무런 생각이 없나니
광명의 본성이 어둠에 머물지 않고
어둠의 본성도 잠시 머물지 않는 것처럼
부처님 지혜 또한 그와 같아
사라짐도 없고 나는 것도 없으시네.
지혜·힘·도의 장엄함은
다섯 가지 눈을 따라 일어나고
여섯 신통은 연꽃과 같아
세간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으며
계율·선정·지혜의 장엄함은
세간의 모양을 벗어남이니
그러므로 이 위없이 평등한
큰 도에 귀의해야 한다오.
이 때에 장자가 이 게송을 읊고 나서 비구에게 말하였다.
‘대덕이여, 그대는 이제 위없는 도를 구하려 합니까?’
그러자 일장 비구는 장자의 말을 듣고 깊이 그 이치를 깨달아 불상의 발에 정례하고 게송을 읊었다.
크게 해탈하신 부처님께 예배하오니
오래 열반에 머물러 모든 존재 없애고
번뇌 없는 지혜 힘으로 장엄하시매
장자의 말씀처럼 적멸하신 그 지혜입니다.
내 이제 더러움에 물들지 않아
세간을 초월하여 공한 모양 구하려 하고
나 이제 얽매이지도 풀려나지도 않아
물질에 머물지 않는 적멸한 도 구하려 하며
다시 얽매임과 풀려남 속에 들지 않고
생사에 벗어나 해탈 모양 얻으리니
이 자리가 이른바 감로의 도이오매
나의 소원대로 그 과를 이룩하렵니다.
여섯 바라밀을 수행해 거리낌 없고
결정코 수릉엄에 머물며
부처님 지위와 위의의 행을 갖추어
과거 부처님처럼 지혜를 만족하니
금강같이 파괴되지 않는 공의 지혜
이것이 일체지(一切智)이신 대인의 일이라.
마니보주여의왕(摩尼寶珠如意王)
나도 그에 합치되는 모습 얻으리니
평등한 바라밀 닦아
위없는 성품 이룩하렵니다.
이 때에 비구는 이 게송을 읊고 나서 장자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이제 알아두시오. 내가 이미 그대가 말한 게송의 이치를 알았으므로 보리의 그릇 되는 것을 감임(堪任)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 1천 비구는 오늘부터 성불할 때까지 항상 대자(大慈)를 닦아 모든 중생을 널리 사랑하되 모든 중생을 헐뜯거나 원망하지도 않을 것인데, 하물며 죽이고 해를 입히겠습니까? 또 우리는 오늘부터 보리에 이르기까지 항상 대비(大悲)를 일으켜 널리 모든 중생을 거두어 주되 대비에서 가엾이 여기는 모양을 나타내거나 애착하는 마음을 내지 않겠으며, 또 우리는 오늘부터 성불하기까지 다른 사람의 즐겨함을 볼 때에 마음으로 기뻐하기를 마치 비구가 셋째 선정[三禪]의 묘락을 얻어 즐겨 하는 감촉과 즐겨 하는 모양을 일으키지 않는 것처럼 하겠으며, 또 우리는 오늘부터 성불하기까지 중생이나 중생의 모양을 보지 않고 기쁨에 머물지도 않는 한편 버림[捨] 속에 들어가지도 않겠습니다. 또 우리는 오늘부터 성불하기까지 아흔다섯 종류의 모든 나쁜 계율을 끝내 짓지 않겠으며, 또 우리는 오늘부터 성불하기까지 내 몸을 위하여 여덟 종류의 깨끗하지 못한 물건을 모으거나 불리지 않을 것이니 만약 쌓아둔 것이 있다면 이는 반드시 중생을 요익(饒益)하게 하기 위한 까닭일 것입니다. 또 우리는 오늘부터 성불하기까지 보살의 법장(法藏)을 헐뜯거나 비방하지 않을 것이며, 만약 어떤 사람이 훌륭한 변재(辯才)와 끝없는 지혜를 갖고 있으면서 백천 세 동안 삿된 소견과 의존을 말한다면 우리는 차라리 몸이 가는 티끌처럼 부수어질지언정 끝까지 믿어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 또 우리는 오늘부터 성불하기까지 설사 어떤 중생이 착한 업을 짓는 데 힘쓰지 않고 5역죄(逆罪)를 범하더라도 반드시 그들을 교화하여 요익하게 하겠으며, 또 우리는 오늘부터 성불하기까지 서원을 세워 오탁악세의 고통에 헤매는 중생을 제도하겠으며, 또 우리는 오늘부터 성불하기까지 항상 모든 바라밀을 수행하여 그 변제(邊際)를 없애고 큰 지혜의 언덕에 도달하겠으며, 또 우리는 오늘부터 성불하기까지 끝내 모든 중생을 버리지 않고 반드시 이치로써 위안하여 요익하게 하겠으며, 또 우리는 오늘부터 성불하기까지 원력을 세워 모든 불사를 두루 장엄하고 온갖 청정한 행을 닦되 열 가지 진귀한 보배로써 각족(脚足)을 삼고 원 없는[無願] 해탈문으로써 안목(眼目)을 삼아 큰 허공의 궁극의 열반에 노닐겠습니다.’
이 때 1천 비구들은 이러한 서원을 세우고 나서, 온몸을 땅에 엎드려 여러 부처님께 두루 예배하고 다음의 게송을 읊었다.
부처님 지혜 해탈에서 일어나므로
그 누구도 움직일 수 없고
본래의 성상(性相)이 스스로 공하여
금강삼매에 유희하셨네.
이미 번뇌의 마군을 부수었고
쌓임과 덮개를 길이 제거하신
청정하고 크게 지혜로운 이께
저희들 이제 엎드려 예배합니다.
이 게송을 읊고 나서 시방 부처님께 두루 예배하자 이 때 공중에는 구름 없이 우레가 치고 여러 하늘·용·귀신들은 하늘 꽃을 널리 퍼부어 공양하면서 게송을 읊었다.
거룩하도다, 훌륭한 대사님들.
출가하여 범행(梵行) 닦되
깨끗이 살기 위해 걸식하고
항상 네 종류의 음식을 여의시네.
1천에 가득한 대중 스님들
먹물 옷에 발우 잡아
이제 다시 가장 높고 미묘한
그 보리심 내시오니
복밭 중에 가장 뛰어난 복밭
비구 스님보다 앞설 이 없으므로
저희들 이제 머리 조아려
대승(大乘) 수행한 이에게 예배합니다.
이 때 1천 비구가 이 게송의 공덕 찬탄함을 듣고 몇 배로 정진을 더하여 곧 깊고 깊은 관불삼매(觀佛三昧)를 얻고 나서, 장자에게 말하였다.
‘거룩합니다. 장자시여, 우리들이 그대를 인하여 보리심을 내었으니, 그대도 이 불법의 바다 속에 출가하여 도를 배우소서.’
그 때 장자는 비구의 가르침을 받아 바른 법 속에 출가하여 도를 배웠는데, 항상 두타(頭陀)를 닦고 모든 고행을 겪고서 49일 지난 뒤 생사 없는 지혜[無生忍]를 얻었느니라.
발타바라여, 너는 이제 알아 두라. 그 때 장자로서 많은 사람을 교화하여 보리심을 내게 한 사람은 바로 오래 전에 성불하신 수승월왕(殊勝月王)부처님이시니, 만약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그 부처님의 명호를 듣는다면 항상 부처님을 만나게 되어 보리심에서 물러나지 않는 동시에 곧 12억 겁 동안의 지극한 무거운 악업을 벗어날 것이다. 그 때 1천 비구로서 서원을 낸 이들은 바로 우리들 현겁의 천 부처가 그들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백천 범왕은 보리심을 내어 부처님을 생각하고, 천 우바새(優婆塞)들은 생사 없는 법의 지혜를 얻었으며, 울다라의 어머니[鬱多羅母] 선현(善現)비구니를 비롯한 5백 비구니들은 모든 번뇌[漏心]를 끊고 해탈하여 아라한을 이룩하였다. 이 말씀을 하실 때에 모여 있던 대중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모두 매우 기뻐하였다.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발타바라여, 너는 이제 알아 두라. 내 기억하건대, 과거 한량없고 셀 수 없는 아승기겁 때에 부처님이 계셨으니, 그 부처님은 열 가지 명호를 갖추신 정음(淨音)여래이시다. 그 부처님이 출현하실 때에 이 삼천대천세계가 마치 보배로 장엄한 나라와 다름없이 7보로써 장엄되었으며, 부처님의 수명은 20대겁이었다. 그리고 바른 법이 40겁 동안 세간에 머물고 형상법이 그 배로 80겁을 머물면서 역시 3승으로써 중생을 교화하였다. 그 형상법 동안에 일체인(一切忍)이라는 한 비구가 있어서 보살 갈무리[藏]를 지니고 보살법을 행하였는데 촌락을 돌아다니면서 항상 이 게송을 읊었다.
부처님의 평등한 공에 머무르고
법의 성상(性相) 또한 그러하며
승가의 함이 없는 모임에 의지하니
3보의 이치는 다름없다네.
성상의 본래 공함을 깨닫고
적멸한 곳에 귀의하여
항상 진리 그대로의 도를 행해야만
곧 보살행이라 말할 수 있네.
인욕진(忍辱進) 비구가 항상 이 게송을 읊었는데, 그 때 화광림(華光林)속에 있는 1천 범지(梵志)들이 자·비·희·사의 네 가지 범행(梵行)을 닦고 있다가, 이 비구가 3보의 이치를 나타내는 명칭을 찬탄하는 게송을 듣자 몸과 마음이 기뻐져서 곧 비구에게 물었다.
‘어떤 경전 가운데 그러한 이치가 있습니까?’
비구가 대답하였다.
‘큰 조어사께서 『대방등진실경(大方等眞實經)』 속에 불·법·승 3보의 평등한 공의 지혜는 하나의 상(相) 가운데 머문다고 말씀하셨소.’
이 때 1천 범지들은 불·법·승 3보의 평등한 공의 지혜를 듣고 곧 깊고 깊은 큰 공의 지혜의 이치를 생각하며 8천 세(歲)에 걸쳐 단정히 앉아 선정에 들었으나, 그 공의 법에서 결정된 깨달음을 얻지 못하여 다시 모든 법의 공함을 생각하였는데, 역시 진리다운 그 실제(實際)의 결정된 깨달음을 얻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의심하지 않고 비방하지도 않으면서 이 생각만을 계속하였다. 때마침 지장(智藏)이란 비구가 여러 범지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들은 아시는가? 과거세에 열 가지 명호를 구족한 삼매존풍(三昧尊豊)이란 여래가 계시어 똑같은 자호를 가진 백천억 부처님이 다 깊고 깊은 반야바라밀(般若波羅密)을 말씀하셨소. 그 경전에 이르기를, 모든 법은 머물지 않아 법의 본성이 다 공하다 하였으니, 그렇다면 범지여, 이 공한 법을 마음에 아직 분명하게 깨닫지 못한 이로서는 다만 전일한 마음으로 공의 지혜에 돌아가야 될 줄 생각하오.’
이 때 1천 범지들은 이 말을 듣고 나서 마음으로 매우 기뻐하여 비구에게 대답하였다.
‘반야바라밀이 바로 큰 공의 지혜이었건만 저희들은 무명에 덮여 공의 이치를 깨달을 길이 없었습니다. 이제 대덕께서 말씀한 법을 들으니 몸과 마음이 따라 기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발타바라여, 설법을 잘하는 저 두 비구 중에 첫째의 비구는 이제 이미 묘락국(妙樂國)에서 성불한 환희장엄주왕(歡喜莊嚴珠王)부처님이시니, 어떤 사부 중생이라도 저 부처님의 명호를 듣고서 온몸을 땅에 엎드려 예배하고 귀의한다면 그는 곧 5백만억 아승기겁에 쌓인 생사의 죄를 벗어날 것이며, 또 둘째의 비구는 오래 전에 성불하여 열 가지 명호를 구족한 제보당마니승광(帝寶幢摩尼勝光)여래이시니, 그 부처님께도 어떤 사부 중생이라도 명호를 듣고서 온몸을 땅에 엎드려 예배하고 귀의한다면 곧 7백만억 아승기겁에 쌓인 생사의 죄를 벗어나게 되리라.
그 때의 1천 범지는 이 깊고 깊은 반야바라밀을 듣고서도 놀라고, 의심하거나 겁내고 비방하지 않음으로써 곧 50억 겁에 쌓인 생사의 죄를 벗어나는 동시에 몸을 다른 세계에 버리고 곧 16억 부처님을 만나 그 여러 부처님으로부터 염불(念佛)삼매를 얻어서 마음을 장엄하고 또 염불삼매로 마음을 장엄한 까닭에 점점 공한 법 가운데에서 마음의 깨달음을 얻었느니라.
발타바라여, 그 때의 1천 범지는 다른 사람이 아닌 우리들 현겁의 천 부처가 바로 그들이니, 공한 법을 듣고서도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사바세계에서 점차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 그러므로 모든 중생은 마땅히 이 공의 이치에 대해 의혹을 품는 마음이 없어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모임의 대중들이 부처님 말씀을 듣고 초과(初果)를 얻은 자와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를 발심한 자는 그 수가 너무 많아서 이루 말할 수 없었으며, 모든 대중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다 매우 기뻐하여서 부처님 발에 엎드려 예배하였다.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발타바라여, 내 기억하건대 과거 한량없고 셀 수 없는 아승기겁 때에 어떤 부처님이 계셨으니, 그 부처님은 열 가지 명호를 구족한 해혜(海慧)여래이시고 나라의 이름은 정락(淨樂)이었다.
일곱 가지 보배로 장엄하고 땅에서 보배 꽃이 피어 나는 그 국토는 마치일곱 가지 보배가 어우러진 수미산 같아서 장엄하고 뛰어나게 드러나 가히 사랑할 만하였고, 그 부처님 세존은 항상 선정에 들어 잠잠히 말씀하지 않고 끝내 설법하지 않으면서 다만 대인(大人)의 모습인 백호(白毫)로부터 광명을 놓아 불사를 일으키셨다.
그런데 어떤 중생은 이 백호의 광명을 10선도(善道)의 인(印)처럼 보고 10선도의 이치를 말하였고, 어떤 중생은 백호의 광명을 5계(戒)의 인처럼 보고 5계의 이치와 5계의 인연을 말하였으며, 어떤 중생은 백호의 광명을 8계(戒)의 인처럼 보고 8계의 이치와 8재계의 인연을 말하였다. 또 어떤 중생은 백호의 광명을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의 인처럼 보고 바라제목차의 이치와 바라제목차의 인연을 말하였고 어떤 중생은 백호의 광명을 6바라밀의 인처럼 보고 8만 4천 가지 모든 바라밀의 이치를 말하였으며, 어떤 중생은 백호의 광명을 4제(諦)의 인처럼 보고 4제의 이치와 37조보리분법(助菩提分法)을 말하였다.
그리고 어떤 중생은 백호의 광명을 독각(獨覺)의 인처럼 보고 12인연의 이치를 말하였고, 어떤 중생은 백호의 광명을 지상(智相)의 인처럼 보고 보살의 첫째 지위[初地]로부터 열째 지위[十地]의 경계까지를 말하고, 수릉엄광인(首楞嚴光印)삼매를 말하기도 하고 금강(金剛) 선정의 파괴할 수 없는 경계를 말하기도 하였다.
발타바라여, 이와 같은 백호의 대인의 모습 속에는 한량없고 셀 수 없는 항하사의 인(印)이 있어서 어떤 인 속에서는 두려움 없는 법을 연설하고, 어떤 인 속에서는 아흔다섯 종류 외도의 삿된 술법을 연설하고, 어떤 인 속에서는 모든 하늘 무리의 가장 미묘한 보응(報應)을 말하며, 또 어떤 인 속에서는 겁의 이루어짐과 겁의 무너짐을 말하고, 어떤 인 속에서는 해·달과 다섯 성좌·스물여덟 열수(列宿)의 재앙과 이변, 변괴와 그 밖의 모든 세간 일을 말하고 어떤 인 속에서는 모든 신선과 귀신의 도를 말하였으니, 이 백호의 인은 널리 시방을 두루 비추어 중생을 교화하매, 인연 있는 것에 따라서 불사를 나타내 보였다.
그 부처님의 수명은 12대겁이며 바른 법은 12겁을 머물고 형상법이 24겁을 세간에 머물렀는데, 그 형상법 중 1천 바라문이 있어 그 중의 첫째 바라문인 단나세기(檀那世寄)로부터 제일 마지막 바라문 분야세라(分若世羅)에 이르기까지 1천 바라문이 각각 총명하고 지혜가 넓어 모두 4비타론(毘陀論)을 통달하였다. 또 해혜여래의 형상법 중에 정룡풍장엄(淨龍豊莊嚴)이란 비구가 있어 그 여러 바라문과 더불어 함께 논란하였는데, 바라문들이 모두 비타론 경전의 신아(神我)의 법을 말하는 반면 사문이 다시 12부 경전의 깊은 공의 이치로써 무상(無相)을 연설하여 그 탐착을 깨뜨리자. 1천 바라문이 그 무상의 이치를 듣고 비구에게 물었다.
‘그대는 어느 곳에서 이 나 없는[無我] 공적한 이치를 얻었습니까?
비구가 대답하였다.
‘열 가지 명호를 구족한 3세의 부처님들께서 다 선설하신 법이오. 해혜여래의 백호인(白毫印) 속에서 항상 이 게송을 읊었다오.’
본 성품의 뜻은 나지 않으므로
받을 것 없고 가질 것도 없네.
네 원소의 성품은 눈홀림 같고
다섯 쌓임은 아지랑이나 번개 같네.
일체의 여러 세간은
마치 불바퀴[火輪] 돌리는 것처럼
다 무명을 따라 구르니
업력으로 나는 것을 장엄하네.
성상(性相)은 본래 덧없으므로
나[我] 없고 나는 것[生]도 없다고 관찰하고
그 본말의 인연 이치를
슬기로운 자 응당 잘 관찰하지만
본 성품의 실제 공한 것을
얽매이고 집착하여 잘못 있다고 보네.
만약 공의 이치를 통달해 안다면
원(願) 없고 조작하는 곳도 없고
형상 없고 의지하는 곳도 없어서
반드시 부처님처럼 그 도를 얻을 것이며
뭇 마군과 원수를 항복받아
모든 하늘·사람을 다 도탈케 하고
또 큰 해탈에 들어가
공이 바로 본보(本報)임을 알리니
이것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
나 없고 공한 이치라 이른다네.
이 게송을 읊고 나자 1천 바라문이 마음이 몹시 기뻐 그 비구의 발에 엎드려 예배하고 각자 돌아가서 숲 속에 단정히 앉아 나 없음과 공의 이치를 8천만 해가 지나도록 생각하였으나 아직 그 큰 공의 이치에 대해 마음 속에서 결정된 깨달음을 얻지 못하였다. 그러나 공의 이치를 생각한 그 공덕의 힘 때문에 곧 공 속에서 백천 부처님을 뵙고 여러 부처님으로부터 염불삼매를 얻는 한편, 그 삼매 속에서 곧 해혜부처님을 뵈었는데, 그 백호의 인 속에서 감로와 같은 게송을 설하셨다.
만약 도의 마음 내려면
보살의 계율을 닦아 지니고
진실한 공을 구하려면
보살의 도를 따라 배우며
항상 인자한 마음 행하여
성냄과 해치는 생각 제거하고
모든 중생 가엾이 여겨
저 몸의 공적함을 관찰할지라.
나의 몸 성상 없어
네 원소를 빌려 존재하나니
모든 불법에 수순하여
살생하거나 성내지 않고
모든 법을 다 감수하여
그 마음 마치 땅과 같으며
항상 집착 없음을 행하여
한 마음으로 한 뜻에 머물고
법의 평등을 두루 관찰하여
저것 없고 이것도 없이
바른 마음으로 이 이치 생각해야만
곧 보살행이라 말할 수 있네.
이 때 1천 바라문이 이 게송을 듣고는 몸과 마음이 기뻐서 배로 정진을 더하여 곧 제불현전(諸佛現前)삼매를 얻었고, 그 삼매를 바로 받아 굳게 지님으로써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퇴전하지 않았느니라.
발타바라여, 그 때의 용풍장엄(龍豊莊嚴) 비구는 바로 오래 전에 성불하여 화광(華光) 국토에 계시는 용자재왕(龍自在王)부처님이시다. 1천 바라문은 어찌 다른 사람이겠느냐? 우리들 현겁의 천 부처가 바로 그들이니라.
발타바라여, 나는 현겁의 천 부처와 함께 해혜여래의 남기신 법에서 큰 공의 게송을 듣고 단정히 앉아 생각하여 마음으로 결정된 깨달음을 얻지는 못하였으나 그래도 한량없는 억겁 동안에 쌓인 생사의 죄를 벗어났노라. 그러므로 그대들은 마땅히 공의 이치를 생각하여 증득해야 하리라.”
이 때에 대중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서 초과(初果)를 얻은 이도 있었고, 위없는 정진(正眞)의 도를 발심한 이도 있었으며, 벽지불도의 인연을 심은 이도 있었다. 그 때 모인 대중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모두 매우 기뻐하였다.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발타바라여, 내 기억하건대 과거 한량없는 억겁 때에 자재승(自在勝)이란 부처님이 계시어 열 가지 명호를 구족하셨으니, 그 부처님이 세간에 출현하실 때엔 이 사바세계의 온 땅이 금 빛깔이어서 금 꽃과 금 광명이 세계에 두루 가득하였다. 그리고 자재승여래의 수명은 50대겁이며 바른 법이 30대겁 동안 세간에 머물고, 형상법이 백20대겁을 세간에 머물렀는데, 그 형상법 동안에 1천 거사가 있어서 그들은 다 재보가 많아 각각 1억을 갖고 있었으나 비록 세속의 이익을 얻어도 그것을 기뻐하지 않고 항상 괴롭고 공하고 덧없는 상(相)을 닦았다.
그 때의 세간에 총명하고도 지혜가 많은 마하나가(摩訶那伽)라 하는 한 우바새가 있어서, 그가 거사의 처소에 이르러 큰 소리로 다음의 게송을 읊었다.
재물은 주인 없는 것이므로
국왕과 도적에게 침략 당하고
물과 불에 해를 입고 바람에 날려
편치 않고 오래 가질 수도 없나니
이 몸 또한 덧없는 것이므로
항상 늙고 병듦의 시달림 받고
바삐 뭇 일을 경영할 뿐
그 적해(賊害)에 죽는 줄을 모르네.
덧없음은 바람 힘에 흩어짐 같고
재물은 큰 독사와 같아
그 해독이 용보다 사나워서
이 세간의 온갖 원수 되나니
그러므로 모든 부처님·성인은
재물 보기를 부스럼처럼 보고
또 사람들이 콧물과 침을
대지에 내뱉는 것처럼 하셨네.
보시 닦는 선사(善士)라면
항상 나 없음을 관찰하여
재물과 주는 자·받는 자
세 가지 법이 함께 공적하게
이것으로 마음을 장엄하여야만
곧 보살행이라 말할 수 있으리.
1천 거사는 우바새가 읊은 게송 이치를 듣고 마음 깊이 전에 없던 기쁨을 얻어서, 곧 서로 이끌고 승방(僧房)에 이르렀다. 승방에 이르러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이 대중 가운데 누구라도 지혜 있는 이라면, 원컨대 저희들에게 감로의 법을 말씀하여 주소서.’
이 때에 대중 가운데 정음(淨音)이란 한 비구가 있어서 여러 거사들에게 보시바라밀을 널리 찬탄하고 곧 이어 다음의 게송을 읊었다.
과거에 부처님 계셨으니
부처님 명호 자재승이시라.
그 부처님 세존께서
항상 이 법 말씀하셨으니
보시야말로 묘취(妙聚)여서
끝없는 과보 받으므로
천상·세간의 모든 사람들
다 보시로 인해 성립한다 하셨네.
그러므로 슬기로운 자
마땅히 보시를 행할지니
보시는 보배 덮개[寶蓋]여서
빈궁한 이를 덮어 옹호하고
그 과보로 금세나 후세에
태어나는 곳마다 안락하네.
만약 그 보시의 뜻을 넓혀서
공의 슬기로운 마음 닦아
모든 존재[有]에 머물지 않고
더욱더 보시를 행한다면
이같이 보시하는 자
반드시 불도를 이룩하리.
옛날의 모든 부처님들
이 보시의 법 말씀하셨으니
때맞추어 수행할 것을
장자들은 응당 생각할지라.
1천 거사가 비구로부터 다시 보시바라밀 찬탄함을 듣고 몸과 마음이 기뻐서 곧 국왕의 처소에 나아가 대왕에게 말하였느니라.
‘저희들이 오늘 여러 비구로부터 보시바라밀 찬탄하는 말씀을 들었으니, 원컨대 대왕은 저희들을 위해 명령을 선포하사 나라 안의 모든 빈궁한 백성들에게 두루 듣고 알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