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일체류섭수인경(佛說一切流攝守因經)

불설일체류섭수인경(佛說一切流攝守因經)

후한(後漢)안식국(安息國) 삼장 안세고(安世高) 한역
이미령 번역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구류국(拘留國)의 모여서 법을 생각하는 곳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비구들을 부르시자 비구들은 ‘예’ 하고 대답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었다. 부처님은 곧 이렇게 말씀하셨었다.

“지혜로운 자며, 보는 자인 비구는 번뇌[流]1)를 끊게 되고, 지혜롭지 못한 자와 보지 못하는 자는 번뇌를 끊지 못한다.

를 끊게 되고, 지혜롭지 못한 자와 보지 못하는 자는 번뇌를 끊지 못한다.

무엇이 비구로서 지혜로운 자와 보는 자는 번뇌를 다할 수 있고, 지혜롭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이는 번뇌를 다하지 못하는 것인가. 오직 근본을 관찰하는 일과 근본을 관찰하지 못하는 일 때문이다.

근본을 관찰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직 생기지 않은 욕심[欲流]이 곧 생기고, 이미 생긴 욕심은 더욱 생겨서 끝이 없으며, 아직 생기지 않은 존재의 번뇌와 어리석음의 번뇌[癡流]가 곧 생기고, 이미 생긴 존재와 어리석음의 번뇌는 곧 더욱 많아져 끝이 없게 된다. 어리석은 비구와 무식한 세간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을 보지도 않고, 지혜로운 사람에게서 법을 듣지도 않으며, 또한 지혜로운 사람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지도 않고, 또한 지혜로운 사람에게다라 분별하고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곧 근본이 아닌 생각을 가지게 되어 아직 생기지 않은 번뇌를 곧 생기게 하고 이미 생긴 번뇌를 더욱 더하게 하여 끝이 없게 하여 아직 생기지 않은 존재의 번뇌와 어리석음이 곧 생기고, 이미 생긴 존재와 어리석음을 더욱 더하게 하여 끝이 없게 된다.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함으로써, 생각하지 말아야 할 법은 곧 생각하고 생각하여야 할 법은 생각하지 않으며, 생각하여야 할 법을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지 말아야 할 법을 생각함으로 말미암아 곧 탐애의 번뇌[愛流]가 생기고, 이미 생긴 탐애의 번뇌는 곧 더욱 많아져 끝나지 않게 되며, 아직 생기지 않은 탐애의 번뇌와 어리석음의 번뇌는 곧 생기고 이미 생긴 탐애의 번뇌와 어리석음의 번뇌는 곧 더욱 많아져 끝나지 않는다.

법을 들은 비구와 도덕이 있는 제자는 지혜로운 사람을 봄으로써 지혜로운 사람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지혜로운 사람을 좇아 분별하고 이해하여 곧 이와 같이 안다.

‘근본이 아닌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생기지 않은 탐애의 번뇌가 곧 생기고 이미 생긴 탐애의 번뇌는 곧 더욱 많아져 끝이 없으며, 아직 생기지 않은 탐애의 번뇌와 어리석음의 번뇌는 곧 생기고 이미 생긴 탐애의 번뇌와 어리석음의 번뇌는 곧 더욱 많아져 끝이 없게 된다. 그러나 근본을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생기지 않은 탐애의 번뇌는 생기지 않고 이미 생긴 탐애의 번뇌는 능히 버리며, 아직 생기지 않은 탐욕의 번뇌와 어리석음의 번뇌는 생기지 않고 이미 생긴 탐애의 번뇌와 어리석음의 번뇌를 능히 버린다.’

만일 그런 줄을 알면 그는 곧 생각하지 말아야 할 법은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여야 할 법은 곧 생각하나니, 생각하지 말아야 할 법은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여야 할 법은 생각함으로 말미암아 아직 생기지 않은 탐애의 번뇌는 생기지 않게 하고 이미 생긴 탐애의 번뇌는 곧 버리며, 아직 생기지 않은 탐애의 번뇌와 어리석음의 번뇌는 생기지 않게 하고 이미 생긴 탐애의 번뇌와 어리석음의 번뇌는 곧 버리게 된다.

또한 어떤 비구는 일곱 가지 번뇌 때문에 번민하고 흥분하며 근심한다. 어떤 것이 일곱 가지인가. 어떤 비구는 번뇌가 봄으로써 끊어지고[見斷], 거둠으로써 끊어지고[攝斷], 피함으로써 끊어지고[避斷], 씀으로써 끊어지고[更斷], 참음으로써 끊어지고[忍斷], 깨우침으로써 끊어지고[曉斷], 생각함으로써 끊어진다[念斷].

어떤 것이 비구가 번뇌를 봄으로써 끊는 것인가? 이것은 법을 들은 비구와 어리석고 들은 것이 없는 세간 사람으로서, 어진 이를 보지도 못하였고 어진 이로부터 깨침을 받지 못하였고, 또한 어진 이로부터 가르침을 받지 못한 이가 이와 같이 이러한 근본이 아닌 생각을 한다.

‘전생에 내가 있었던가, 전생에 나는 없었던가, 전생에 나는 무엇이던가, 전생에 나는 어떠했던가. 미래세에도 내가 있을 것인가, 미래세에는 나는 없을 것인가, 미래세에는 나는 어떠할 것인가, 미래세에는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이렇게 스스로의 몸에 의심을 일으켜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사람은 어디서 와서 또 어디로 갈 것인가, 이것은 반드시 어떻게 될 것인지를 따진다.

이러한 근본이 아닌 생각을 함으로써 여섯 곳의 의심이 생겨 갖가지 번뇌가 생기니, 장차 이 몸은 있는가, 장차 이 몸은 없는가 하는 갖가지 번뇌를 일으키며, 이것이 의심이 되어 스스로 몸을 헤아려 몸이라는 견해를 내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의심이 생겨 스스로 이 몸은 곧 내 몸이라고 헤아리고, 이 의심이 생기기 때문에 몸에 대해서 몸이라는 소견이 생기고, 이 의심이 생기기 때문에 몸이 아닌 것을 몸이라고 보고, 이 의심이 생기기 때문에 이것이 내 몸이라는 헤아림이 생긴다. 그리하여 그의 깨닫고 말하고 짓고 느끼고 행하고 일으키는 모든 곳에서 짓고 행하는 바의 착하고 악한 것은 다 죄를 받나니, 생기지 않는 것과 생기는 것도 또한 모두 그러하다.

이 비구는 번뇌를 번뇌하게 하고 의심을 의심하게 하며, 나쁜 의심과 바르지 않은 견해와, 들뜨는 의심과 번뇌의 의심이 서로 달라붙는다. 비구들이여, 무식한 세간 사람은 이로 말미암아 괴로움과 그 원인이 있고 이로 말미암아 남[生]을 존재한다.

그러나 도를 들은 비구와 제자는 이 괴로움의 진실을 알고 그 원인의 진실을 알며 그 멸함의 진실을 알고 그 괴로움을 멸하게 하는 행의 진실을 안다. 이렇게 안 뒤에는 이렇게 보아 곧 세 가지 번뇌의 결박을 다 끊으니, 첫째는몸에 대한 번뇌요, 둘째는 의심의 번뇌며, 셋째는 행원(行願)의 번뇌다. 이 세 가지 번뇌가 다함으로 말미암아 곧 도(道)를 따라 첫 번째 과보인 수다원과를 얻고 다시는 나쁜 곳에 떨어지지 않고 세상을 건너게 될 것이며, 인간과 천상에 있어서는 7세(世)를 넘지 않고 7세를 지낸 뒤에는 곧 괴로움을 모두 마치게 된다.

만일 비구로서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자는 번민과 흥분과 근심으로 말미암아 번뇌가 생기는데, 그 번뇌를 몸으로써 끊는다면, 이 번뇌의 번민과 흥분과 근심은 다시는 없게 될 것이니, 이것을 비구가 몸으로써 번뇌를 끊는 것이라 한다.

어떤 것을 비구가 번뇌를 지킴[守]으로써 끊는다고 하는가? 들은 것이 있는 비구 수행자는 눈으로 색(色)을 보되 안근(眼根)을 거두어 스스로 지키고, 오로관(惡露觀)2)을 행하여 본래 생겨난 곳을 생각한다. 비구가 안근을 거두어 지키지 않으면, 오로관을 행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본래 생겨난 번뇌를 생각함으로써 번뇌하고 흥분하며 근심한다. 그러나 안근을 거두어 지킴으로써 멈추어서 오로(惡露)의 근본을 관찰하면 곧 번뇌에 대한 번민이나 흥분, 근심은 없어진다. 이것을 비구가 번뇌를 지킴[守]으로써 끊는 것이라고 한다. 귀·코·입·몸·뜻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다.

을 행하여 본래 생겨난 곳을 생각한다. 비구가 안근을 거두어 지키지 않으면, 오로관을 행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본래 생겨난 번뇌를 생각함으로써 번뇌하고 흥분하며 근심한다. 그러나 안근을 거두어 지킴으로써 멈추어서 오로(惡露)의 근본을 관찰하면 곧 번뇌에 대한 번민이나 흥분, 근심은 없어진다. 이것을 비구가 번뇌를 지킴[守]으로써 끊는 것이라고 한다. 귀·코·입·몸·뜻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다.

어떤 것이 비구가 번뇌를 피함[避]으로써 끊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 들은 것이 있는 비구 수행자는 응하는 바를 따라 스스로 지켜, 사나운 코끼리를 피하고 사나운 말·사나운 소·사나운 개·사나운 뱀·깊은 구덩이·납가새3)·개울·위험·언덕과 못·산·편하지 않은 곳·강·깊은 시내·악지식·나쁜 동무·나쁜 구호처·나쁜 장소·나쁜 곳·나쁜 침구를 피한다. 어진 이로부터 의심이 생긴다면 비구는 마땅히 이런 것을 피해야 하나니, 위에서 말한 것을 버리지 않으면 생겨난 번뇌와 번민·흥분·근심을 다시 있게 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비구가 번뇌를 피함으로써 끊는 것이라 한다.

·개울·위험·언덕과 못·산·편하지 않은 곳·강·깊은 시내·악지식·나쁜 동무·나쁜 구호처·나쁜 장소·나쁜 곳·나쁜 침구를 피한다. 어진 이로부터 의심이 생긴다면 비구는 마땅히 이런 것을 피해야 하나니, 위에서 말한 것을 버리지 않으면 생겨난 번뇌와 번민·흥분·근심을 다시 있게 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비구가 번뇌를 피함으로써 끊는 것이라 한다.

어떤 것을 비구가 번뇌를 씀[用]으로써 끊는 것이라 하는가? 이 들은 것이 있는 비구 수행자는 옷을 입되 꾸미지 않고 좋아하지 않으며 탐하지 않고 장식하지 않음으로써 입으며, 다만 그것은 이 몸에서 모기·등에·바람을 막거나 강한 햇볕이나 독(毒)을 물리치기 위하여 입으며, 서로 접촉할 때 어지러운 뜻이 생기더라도 스스로 지키기 위해 옷을 입는 것이다.

또 밥을 먹되 먹는 일을 즐겨 하거나 살 찌우기 위해서 먹거나 겉모습을 단정하게 하려고 먹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 몸을 부지하여 도(道)를 행하기 위해서만 먹어야 하며, 먹음으로써 통증을 없애고 새로운 통증은 다시 일어나지 않으며, 병이 나음으로써 죄를 짓지 않게 하고 힘을 얻어 안온하게 수행할 수 있기 위해 밥을 먹어야 하는 것이다.

또 와구(臥具)나 상과 자리는 꾸미지 않고 좋아하지 않으며 탐하지 않고 장식하지 말아야 하며, 다만 그것을 씀으로써 이 몸의 심한 괴로움과 피로를 그치게 하기 위해서만 사용해야 한다. 또 필요한 곳에 약을 쓰되 꾸미지 않고 즐겨 하지 않으며 탐하지 않고 장식하려고 쓰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것으로써 이 몸을 큰 아픔과 심한 고통과 불쾌한 생각에서 구원하고 풀어 주기 위해 약을 쓸 뿐이며, 만일 비구가 약을 쓰지 않으면 그로 말미암아 번뇌와 번민·흥분·근심이 생겨나지만 그 약을 쓰면 번뇌와 번민과 흥분·근심이 멈추고 다시는 자라나지 않게 될 것이다. 이것을 비구가 번뇌를 씀으로써 끊는 것이라 한다.

어떤 것을 비구가 번뇌를 참음[忍]으로써 끊는 것이라 하는가? 들은 것이 많은 비구 수행자는 정진하는 행으로써 나쁜 법을 끊게 하고 청정한 법행(法行)을 받아 담력(膽力)을 더욱 내고, 견고한 정진 방편으로 청정한 법을 버리지 않아서, 방편으로 이 몸의 살과 뼈와 골수와 지방과 가죽이 마르고 부서지더라도, 오직 정진하여 얻어야 할 것을 얻게 하는 것이다. 담력이 있는 이와 뜻이 견고한 이와 방편으로 정진하는 이는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였으면 정진을 중도에 그만두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방편을 지닌 수행자 비구는 능히 추위·더위·주림·목마름·모기·등에·바람·뜨거운 태양을 참으며, 비록 형언하지 못할 말을 듣고 상대가 교만한 마음으로 오더라도 능히 참고 능히 쉬어야 한다. 견딜 수 없는 고통과 불쾌감과 지독한 아픔도 능히그대로 참고 지내야 하는데 만일 비구가 참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번뇌와 번민·흥분·근심도 그대로 지내고 이런 수행으로 지낸다면 다시는 번뇌와 번민·흥분·근심이 생겨나지 않고 그치게 될 것이니, 이것을 비구가 번뇌를 참음으로써 끊는 것이라 한다.

어떤 것을 비구가 번뇌를 깨우침[曉]으로써 끊는 것이라 하는가? 이 들은 것이 많은 모든 비구들은 이미 욕심을 내고도 살피지 않고 사과하지 않으며, 깨우치기를 버리고 서로 물리쳐 떠나게 하고, 이미 성을 내고도 말을 듣지 않고 사과하지 않으면, 깨우침을 버리고 서로 물리쳐 떠나게 하며, 이미 죽이고 속이고 도둑질할 마음을 내고도 말을 듣지 않고 사과하지 않으면, 깨우침을 버리고 서로 물리쳐 떠난다. 만일 모든 비구가 깨우침을 따르지 않으면 번뇌와 번민·흥분·근심이 생길 것이요, 깨우침을 따른다면, 곧 번민과 번민·흥분·근심이 다시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모든 비구가 번뇌를 깨우침으로써 끊는 것이라 한다.

어떤 것을 비구가 번뇌를 행을 더함으로써 끊는 것이라 하는가? 이 들은 것이 많은 모든 비구는 의각(意覺)으로 생각을 더해 나가는 행이 있어 혼자 앉으며 멈추고 들뜸을 떠나고 악을 여의어 법을 굴려야 한다. 분별각(分別覺)도 그러하고 정진각(精進覺)도 그러하며, 희각(喜覺)도 그러하고 의각(猗覺)도 그러하며 정각(定覺) 또한 그러하고 관각각행(觀却覺行) 또한 그러하다. 만일 모든 비구가 생각을 더해 나가는 행을 하지 않으면 번뇌와 번민·흥분·근심이 생겨나고 더해 가는 행을 하면 번뇌와 번민 흥분·근심이 다시는 생겨나지 않는다. 이것을 모든 비구기 번뇌를 더해 나가는 행으로써 끊는 것이라 한다.

만일 모든 비구가 봄으로써 끊어야 할 번뇌를 봄으로써 끊고, 만일 지켜 거둠으로써 끊어야 할 번뇌를 지켜 거둠으로써 끊고, 만일 번뇌의 인(因)이 씀으로써 끊을 것이면 씀으로써 끊고, 만일 번뇌의 인이 참아 지냄으로써 끊을 것이면 참아 지냄으로써 끊고, 만일 번뇌의 인이 깨우침으로써 끊을 것이면 깨우침으로써 끊고, 만일 번뇌의 인이 더해 나가는 행으로써 끊을 것이면 더해 나가는 행으로써 끊어 마쳐야 한다. 이것을 이름하여 모든 비구가 일체 번뇌를 거두어 지키는 인(因)이라 하나니, 그리하면 이미 세간을 따르는 탐애를 부수고 세간을 건너 결박을 풀어서 출요(出要)를 얻어 반드시 괴로움을 떠날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이 말씀을 들은 비구들은 마음으로 기뻐하고 세간을 건너 마침내 도(道)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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