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제석소문경(佛說帝釋所問經)

불설제석소문경(佛說帝釋所問經)

서천 역경(譯經)삼장조봉대부(朝奉大夫) 시광록경(試光祿卿)
명교대사(明敎大師) 신 법현(法賢) 지음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에 부처님께서 마가타국(摩伽陀國) 왕사성(王舍城)의 동쪽 암라(菴羅) 동산 큰 바라문 촌락의 북쪽 비제희산(毘提呬山) 제석 바위[帝釋巖]에서 대중들과 함께 계시었다.

그 때에 제석천주(帝釋天主)가 부처님께서 마가타국 비제희산 제석 바위에 계신다는 말을 듣고 오계건달바(五髻乾闥婆) 왕자에게 말하였다.

“너는 아느냐? 내가 들으니 부처님께서 마가타국 비제희산 제석 바위에 계신다 하니, 너와 함께 가서 부처님을 모셔다 공양하려고 한다.”

오계건달바 왕자는 이 말을 듣고 제석천주에게 말하였다.

“네, 매우 좋습니다. 천주시여.”

오계건달바 왕자는 곧 유리 보배로 장식한 공후(箜篌)를 들고 제석의 뒤를 따라 나섰다. 그 때 마침 하늘 무리들이 제석천주가 오계건달바 왕자와 함께 부처님을 모셔다 공양하려고 떠난다는 말을 듣고 그들도 각기 마음을 내어 부처님을 모셔다 공양하기를 원하였다. 그 때 제석천주는 오계건달바 왕자와 하늘 무리들을 데리고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건강한 사람이 팔을 한번 굽혔다 펴는 동안과 같이 잠깐 사이에 마가타국 비제희산 곁에 도착하였다.

이 때에 문득 커다란 광명이 그 산을 두루 비추었는데 마침 산 주위에 살던 사람들이 이 빛을 보고 서로 말하였다.

“저 산이 무슨 까닭으로 불빛이 밝아서 본 모양을 가리워 꼭 보배 산 같구나.”

그 때 제석천주가 오계건달바 왕자에게 말하였다.

“너는 이 산에 저렇게 미묘하고 이상한 빛이 있는 것을 보느냐? 부처님께서 이 산에 계시어서 네 가지 일이 깨끗하기 때문이다. 또 이 산에 있는 전당(殿堂)들은 다 보배로 이루어진 것이며, 이 주위에 사는 사람들도 번뇌가 다하고 모두 성자의 도를 증득하였으며, 나아가 큰 힘을 가진 여러 하늘도 늘 여기에 머무른다.”

또다시 말하였다.

“이러므로 우리들이 이런 곳을 다시 만나기가 어려우니 먼저 말한 대로 부처님을 모셔다 공양하는 기회는 바로 이 때이다. 너 오계건달바 왕자는 가지고 있는 악기로 음악을 공양하여라. 이 때를 놓치면 실로 만나기 어려우니라.”

오계건달바 왕자는 이 말을 듣고 제석천주에게 말하였다.

“네, 매우 좋습니다. 정말로 좋은 일입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생각하였다.

‘모든 부처님께서는 천이통(天耳通)을 갖추셨으므로 멀고 가까움에 관계없이 능히 다 들으시리라.’

그리고 나서 곧 가지고 있던 유리 보배로 장식한 공후를 타니, 그 소리에서 노랫가락[伽陀]이 나오며 노래 속에서 다시 좋아하는 일을 말하였다. 그 노래는 이러하였다.

여보 어지신 일광 아씨여 
마땅히 아버님께 청을 들여서 
나랑 함께 짝을 지어 같이 삽시다.


이내 맘 알아주오, 어진 아씨여.



그대를 연모하는 이내 심정은 
열병에 걸린 이가 몸이 달아서 
시원한 자리를 생각하는 듯 
목마른 저 사람이 물 생각하듯 

병들어 앓는 이가 약 생각하듯 
굶주린 젊은이가 밥 생각하듯 
커다란 코끼리가 고리에 걸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함과 같네.



그리고 성현님네 아라한들이 
즐거이 열반 법을 구하듯이 
내 지금 온갖 소원 바라는 것은 
그 뜻도 또한 다시 이와 같구려.



탐심과 욕심 번뇌 더욱 더하여 
이것이 참다운 것 아니건마는 
소원을 바라도 이루지 못해 
괴로운 온갖 번뇌 모두 받았네.



이내 몸 지은 복과 좋은 업으로 
아라한 성현님께 공양하여서 
과보를 얻게 되면 모두 다 바쳐 
마땅히 그대 함께 같이 하리다.



내가 일광 아씨 그리워함은 
이 마음 단단하여 변치 않으리.


저 모든 하늘 무리 제석천주여 
마땅히 나의 소원 이뤄 주소서.

이 때에 부처님께서 제석 바위에서 천이통으로 그 소리를 들으시고 곧 신통력으로 멀리 오계건달바 왕자에게 말씀하셨다.

“참 잘한다. 건달바 왕자여, 네가 악기를 어루만져 줄을 탈 적에 나오는 미묘한 소리는 마치 아름답고 묘한 노랫소리와 같고, 노랫소리를 지을 때는 다시 줄에서 나는 소리와 같구나. 이것이 무슨 이유인가 하면, 오랫동안 줄로써 음악을 단련하였으므로 그 줄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속에 노랫가락이 연주되었기 때문이니라. 또 노래 속에 세 가지 소리를 연주하였기 때문이니, 사랑스럽고 즐거운 소리[愛樂音]·용의 소리·아라한의 소리이니라.”

그 때 오계건달바 왕자는 부처님의 신통력을 받아서 멀리서 들려오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바로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제가 생각하옵건대 지난날에 건달바 왕이 있었으니, 이름이 동모라(凍母囉)였습니다. 그 왕에게 일광(日光)이라는 딸이 있었는데 제가 좋아하여 권속을 삼으려고 여러 가지 방법을 다 써 보았으나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그녀 앞에서 이와 같은 음악을 하여 악기의 줄에서 노랫가락이 연주되고 노랫가락 속에 세 가지 소리를 연주하였나이다.

부처님이시여, 제가 이 음악을 연주할 때에 선법회(善法會)에 있던 하늘 무리들이 서로 말하기를 ‘오계건달바 왕자가 보지도 듣지도 못했나 보네. 우리 부처님께서 열 가지 명호를 갖추셨으니, 여래(如來)·응공(應供)·정변지(正遍知)·명행족(明行足)·선서(善逝)·세간해(世間解)·무상사(無上士)·조어장부(調御丈夫)·천인사(天人師)·불세존(佛世尊)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제가 여러 하늘에게 말하기를 ‘너희들 모든 하늘들이 부처님의 덕을 잘 찬양하는구나’라고 하니, 모든 하늘들이 대답하기를 ‘오계건달바 왕자여, 우리들이 부처님 찬양한 공덕을 너와 함께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이 말을 듣고 문득 깨달은 바가 있어 대답하기를 ‘그대들이여, 내가 이제 부처님께 귀의하리라’고 하였나이다. 제가 이러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부처님을 향하여 이런 음악을 아뢰었나이다.”

그 때 제석천주가 생각하기를 ‘이제 오계건달바 왕자는 인연이 성숙되어 부처님 앞에 가기도 전에 벌써 공양을 베풀었도다’고 하고 나서 오계건달바 왕자에게 말하였다.

“너는 내 말을 자세히 듣고 부처님께 가서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 발에 절하고 여쭙되 ‘천주 제석이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께 절을 하고 문안하기를 병이 없으시고 괴로움도 없으며 기거가 편리하시고 기력이 건전하시며 드나드시는 데 피로함이 없으시옵니까? 제가 이제 도리천 무리들과 함께 부처님께 나와 모시고 공양하려 하오며 부처님 뜻을 듣잡고자 하나이다’고 하여라.”

이 때 오계건달바 왕자가 이 말을 듣고 제석에게 말하였다.

“참 좋습니다, 천주시여.”

그리고 부처님께 가서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 발에 절을 하고 한쪽에 물러 서서 제석의 분부대로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제석천주와 도리천 무리들이 저를 시켜서 이곳에 가 부처님 두 발에 절하옵고 병이 없으시고 피로가 없으시며 기거가 편리하시고 기력이 건전하시오며 드나드심에 피로함이 없으신가 물으며, 그들이 오늘 부처님께 와서 모시고 공양하려 하여 저를 보내어 부처님의 뜻을 듣잡고자 하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말을 들으시고 대답하셨다.

“돌아가서 제석과 하늘 무리들에게 전하기를 ‘지금이 바로 때이니라’고 하여라.”

오계건달바 왕자가 부처님의 분부를 받고 바로 제석의 처소에 가서 그대로 전하였다.

“지금이 바로 때라고 하셨습니다.”

이 때 제석과 도리천 무리들은 곧 부처님께 가서 두 발에 절을 하고 한쪽에 물러가 있었다.

이 때에 제석천주가 생각하기를 ‘이 제석 바위가 이렇게 좁으니 이 많은 하늘 무리들이 다 어떻게 앉을까?’ 하였다.

부처님께서는 벌써 제석의 그러한 생각을 아시고 곧 신력으로 바위를 넓어지게 하여 모든 하늘 무리들이 서로 걸리지 않게 하였다. 제석천주와 하늘 무리가 각각 부처님께 절을 하고 차례로 앉은 다음에 제석천주가 합장하고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저희들이 긴 밤에 부처님을 뵈옵고 바른 법을 듣고자 했나이다. 부처님이시여, 제가 생각하오니 어느 때에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타 숲의 급고독원(給孤獨園)에 계시어 화계삼매(火界三眛)에 드시었을 적입니다. 이 때에 우리가 비사문궁(毘沙門宮)에 있었는데 그 궁중에는 묘비(妙臂)라는 한 부인도 있었습니다. 부처님께서 화계삼매에 드신 것을 보고 합장하고 공경하여 한마음으로 부처님을 생각하였습니다. 제가 부처님께서 삼매에서 깨어나지 않으신 것을 뵈옵고 묘비에게 말하기를 ‘부처님께서 삼매에서 깨어나시기를 기다려 나의 정성을 전하여 부처님께 문안하되 (병이 없으시고 피로가 없으시며 기거가 편리하시고 기력이 건전하시어 드나드심에 피로하심이 없으시옵니까?) 하라’ 하고, 또다시 말하기를 ‘부처님께서 삼매에서 깨어나시기를 기다려 나의 정성을 전하여 잊어버림이 없게 하라’ 하였사온데, 부처님이시여, 그런 사실이 있었사옵니까?”

부처님께서는 제석에게 말씀하셨다.

“그런 사실이 있었노라. 그 부인이 너를 대신하여 공경스럽게 문안한 일이 있었노라.”

부처님께서는 또 이어 말씀하셨다.

“천주여, 내가 삼매에 들었을 적에도 또한 너의 말을 들었고, 그 뒤에 오래지 않아서 바로 삼매에서 깨어 나왔노라.”

그 때 제석이 이 말씀을 듣고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제가 일찍이 듣자오니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시어 큰 이익을 지으실 적에 커다란 방편으로 중생의 근기를 따라 인도하시와 혹 사람의 형상을 숨기시고 하늘의 형상을 나타내신다’ 하옵더니, 제가 이제야 알았나이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셔서 큰 이익을 지으시와 좋은 방편으로 중생의 근기를 따라 인도하실 적에 혹 숨기도 하시고 혹은 나타나시기도 하옵니다. 부처님이시여, 여러 성문(聲聞) 제자들이 부처님을 따라 집을 나와 깨끗한 계행을 닦아 지니므로 목숨이 다한 뒤에 도리천에 나게 되옵니다. 저 하늘 사람들은 세 가지 좋아하는 것이 있으니 수명(壽命)과 좋은 모습과 명예이옵니다. 부처님이시여, 옛적에 석가 족의 딸로서 밀행(密行)이라는 이가 부처님을 따라 출가하여 깨끗한 계행을 지니오며 늘 여인의 몸을 싫어하고 남자의 형상을 바라옵더니 목숨이 다한 뒤에 도리천에 태어나서 저의 아들이 되었는데 이름을 밀행이라 하였습니다. 큰 위력을 갖추었으니 이것이 대장부입니다. 부처님이시여, 또 세 비구니가 성문의 행을 닦았으나 탐욕을 끊지 못하였더니 목숨을 마친 뒤에 하늘에 와서 미나건달바(尾那乾闥婆)의 아들로 태어나 언제나 밀행 천자를 섬기는 시자가 되었는데, 밀행 천자가 미나건달바 왕자에게 게송으로 말하였습니다.

이내 몸 옛적에는 여인이 되어 
지혜를 갖추었고 이름은 밀행이라.


여인이 싫어져서 남자 되려고 
언제나 3보(佛·法·僧)에게 공양하였네.



이 때에 너희 모두 세 사람들이 
성문의 행을 닦음 나는 보았지.


지금은 낮은 가문 태어났기에 
이내 몸 위하여서 섬기게 됐네.



너희들 지금 마땅히 알아두어라.


내 지금 너를 위해 사실 말하리.


옛적에 너희들이 사람 됐을 때 
네 가지가 모두 다 풍족했었네.



부처님 계행법을 지키지 않은 
옛날의 부끄러움 이제 알아라.


마을을 깨달으면 바른 법이라 
슬기로운 사람만이 능히 깨치리.



이내 몸 옛적에는 너와 다 같이 
부처님 가까이에서 바른 법 듣고 
신심을 일으키어 계행 지니고 
거룩한 대중들을 공양하였네.



바른 행을 닦음으로 말미암아서 
내 이제 제석천의 아들로 났네.


하늘의 큰 위력을 모두 갖추어 
그 이름 밀행이라 스스로 아네.



수승한 저 궁전에 머물러 있어 
여인 몸 바꾸어서 남자 되었네.


너희들 건달바의 아들들이여 
부처님 행을 따라 범행 지녀라.



부처님 최상법을 들었지마는 
도리어 이내 몸을 섬기게 됐네.


내 하늘 세계 그 가운데서 
아직껏 못 보던 일 지금 보았네.



성문의 행을 닦아 지녔지마는 
하찮은 저 가문에 태어났으니 
너희들 건달바의 아들들이여 
이내 몸 밀행의 교화 받으라.



너희들 받아 태어난 몸 지금 그 몸은 
저 모든 부처님의 제자 같잖다.


건달바 아들들은 말을 하였지 
하늘님 그 말씀은 진실하다고.



우리들 탐욕으로 말미암아서 
건달바 무리들에 떨어졌나니 
우리도 이제부터 정진하여서 
부처님 바른 법을 염하리라고.



탐욕이 허물됨을 어서 알아서 
탐욕심 모두 모두 빨리 끊으라.


탐욕은 번뇌 속박 근본 되나니 
그 힘이 마군보다 훨씬 더하네.



부처님 참된 법을 버림으로써 
훌륭한 저 하늘에 나지 못하네.


제석천 하늘님과 범천의 왕은 
선법회 이 모임에 앉아 계시네.



저 모든 하늘들은 묘한 행으로 
저 모든 하늘들 세계 놀고 계신데 
이내 몸은 낮은 가문 태어났으니 
하늘의 좋은 세계 구경왔도다.



이내 몸 온갖 행실 바르지 못해 
훌륭한 좋은 과보 얻지 못했네.


그 때에 밀행 천자 저분께서는 
아버지 제석에게 말하였도다.



마땅히 아바마마 아시오리다.


우리의 높으신 분 부처님께서 
인간의 저 세상에 출현하시어 
저 모든 마군들을 항복 받음을.



그 이름 석가모니 훌륭하셔라.


이네들 건달바의 세 사람들은 
높은 분 부처님의 제자들로서 
참되고 바른 생각 잃어버리어 

건달바 무리들에 떨어졌다네.


저네들 건달바의 세 사람 중에 
오직 하나는 깨닫지 못하였지만 
나머지 두 사람은 바른 길 들어.



언제나 부처님의 깨달음을 향하여 
바른 법 받아 지녀 수행하나니 
내가 본 모든 사람 성문 중에는 
이 사람 따를 이가 하나 없도다.



욕심과 탐내는 맘 멀리 여의고 
일체의 번뇌 법을 끊어 버렸네.


오로지 부처님만을 생각하며 
딴 생각 손톱만치 내지도 않네.



아직껏 깨닫지 못한 법들을 
저이들 두 사람은 바로 알아서 
마땅히 훌륭하온 과보 받아서 
범천의 저 세계에 태어나리다.

부처님이시여, 저는 밀행 천자가 말하는 이 게송을 듣고 의심되는 일이 있기에 부처님께 여쭈려 하옵니다. 부처님이시여, 저희들을 가엾이 여기시어 말씀하여 주옵소서.”

그 때 부처님께서는 이 말을 들으시고 생각하시기를 ‘제석천주가 긴 밤중에 게으름이 없고 중도에 폐지함이 없으며 번뇌와 허물도 없으니 그가 묻는것은 진정코 몰라서 묻는 것이요 부질없이 마군(魔軍)의 희롱을 하는 것이 아니니, 묻는 것을 마땅히 대답해 주리라’고 하시고 곧 게송으로 제석에게 말씀하셨다.

제석아 듣거라, 너는 알아라.


네 마음 그 속에서 좋아하는 것 
묻고자 하는 일이 만약 있거든 
물어라. 너를 위해 말해 주리라.

이 때 제석천주는 이 게송으로 하시는 말씀을 듣고 자기도 게송으로 여쭈었다.

이제야 부처님의 허락 받자와 
이내 몸 마음속에 좋아하는 것 
마땅히 제가 이제 묻자 오리니 
원컨대 부처님께서는 말씀해 주소서.

제석천주는 게송을 마치고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모든 하늘·인간·아수라·건달바와 다른 온갖 중생들이 무엇을 번뇌라 하옵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미워함과 사랑함이 번뇌가 되느니라. 제석천주여, 모든 하늘·인간·아수라·건달바와 다른 온갖 중생들이 생각하기를 ‘아, 내가 저들에게 먼저 침해한 일이 없고, 또 억울하게 한 일도 없으며 싸우지 않고 다투지도 않았으며, 소송하거나 대립한 일이 하나도 없는데 어찌하여 나에게 도리어 이런 일을 하는고?’ 하나니, 온갖 허물을 남에게 원망만 하나니라. 이와 같은 일이 미움과 사랑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것이니, 미움과 사랑이 일어나므로 드디어 번뇌가 생기느니라.”

제석이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정말 그러하옵니다.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과 같이 제가 이제 그런 줄을 알았습니다. 미움과 사랑이 번뇌가 된다는 말씀에 의혹을 끊고 즐거운 마음이 만족하였사옵니다.”

이 때 제석천주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다 들은 뒤라 기뻐하여 의심 없이 믿고 그대로 받아 지니고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이 미움과 사랑의 번뇌가 어떤 원인에서 어떻게 모이며 어떻게 생기며 어떻게 인연하옵니까? 또 어떤 원인으로 있게 되오며 어떤 원인으로 없어지게 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제석천주여, 미움과 사랑의 번뇌는 원망하는 것과 친절한 것이 원인이 되고, 원망하고 친절하므로 모음[集]이 되며, 원망과 친절함으로부터 생기고 원망하고 친절함이 인연이 되느니라. 원망함과 친절함으로 말미암아 미움과 사랑의 번뇌가 있나니, 만일 원망함과 친절함이 없으면 미움과 사랑이 없느니라.”

제석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러하옵니다.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제가 이제 부처님에게서 이 뜻을 깨달았습니다. 정말로 미움과 사랑의 번뇌가 원망함과 친절함의 원인이 되옵니다. 만일 원망함과 친절함이 없었다면 곧 미움과 사랑도 없으리이다.”

제석은 또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원망함과 친절함은 무엇 때문에 있으며 무엇으로 좇아 모이며, 무엇으로 말미암아 생기며 무엇을 의지하여 반연하며, 무슨 원인으로 있게 되며 무슨 원인으로 없게 되옵니까?”

부처님께서 제석에게 말씀하셨다.

“욕심이 원인이 되며 욕심으로 좇아 모이며, 욕심으로 말미암아 생겨나며 욕심에 의하여 반연하며, 욕심으로 인하여 원망함과 친절함이 있느니라. 만일 욕심을 내지 아니하면 원망함과 친절함이 곧 없게 되리라.”

제석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러하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원망함과 친절함이 욕심 때문에 생기는 줄로 아옵니다.”

그리고 나서 제석은 다시 말을 이었다.

“부처님이시여, 욕심내는 바는 무엇을 인하여 있으며 무엇으로 좇아 모이며, 무엇으로 말미암아 생겨나며 무엇에 의하여 반연하고, 무슨 원인으로 있게 되며 무슨 인연으로 없게 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제석이여, 욕심은 의혹으로 인하여 있으며 의혹을 좇아 모이며, 의혹으로 말미암아 생겨나고 의혹에 의하여 반연하느니라. 의혹에 의하여 욕심이 있나니, 만일 의혹이 없으면 곧 욕심낼 바가 없느니라.”

제석이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그러하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욕심이 의혹으로 인하여 있사옵니다.”

제석은 또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의혹은 무엇에 원인하고 무엇으로 좇아 모이며, 어떻게 나며 어떻게 반연합니까? 또 이 의혹이 무엇을 인하여 있게 되오며 무엇을 인하여 없게 됩니까?”

부처님께서 제석에게 말씀하셨다.

“허망한 것이 원인이 되며 허망으로 좇아 모이며, 허망으로 말미암아 생겨나며 허망에 의하여 반연하느니라. 허망한 까닭으로 의혹이 있기 때문에 욕심낼 바가 있고, 욕심으로 인하여 원망함과 친절함이 있게 되고, 원망함과 친절함으로 말미암아 결국 미움과 사랑이 있게 되며, 미워하고 사랑하므로 칼을 잡고 서로 겨누며 소송하고 다투며 아첨하고 꾸며대어 말이 진실치 못하나니,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죄업의 좋지 못한 법을 일으키느니라. 이로 말미암아 많은 고통의 무더기가 쌓이게 되는 것이니라. 제석천주여, 만일 허망함이 없으면 곧 의혹이 없고, 또 의혹이 없으면 욕심낼 것이 없으며, 욕심낼 것이 없으면 원망함과 친절함이 어찌 있으며, 원망함과 친절함이 성립되지 않으면 미워함과 사랑함이 저절로 없어지리라. 미움과 사랑이 없으므로 칼을 서로 겨누거나 소송하거나 다투고 아첨하며 꾸며대는 마음과 진실치 못한 말을 하는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죄업의 좋지 못한 법이 다 없어질 것이니라. 이렇게 되면 커다란 고통의 무더기가 저절로 없어지리라.”

제석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러하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허망으로 인하여 곧 의혹 됨이 있었나이다.”

또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그러면 허망한 것은 무슨 법으로 없애오며 비구는 마땅히 어떻게 수행하오리까?”

부처님께서 천주에게 말씀하셨다.

“허망함을 없애는 데는 여덟 가지의 바른 길[八正道]이 있느니라. 여덟 가지의 바른 길이라 함은, 바른 소견[正見]·바른 생각[正思惟]·바른 말[正語]·바른 행위[正業]·바른 생활[正命]·바른 노력[正精進]·바른 기억[正念]·바른 선정[正定]이니라. 이 여덟 가지 법으로 말미암아 허망함을 없앨 수 있느니라. 만약 모든 비구들이 이 법을 실행하면 이는 곧 허망을 없애는 행이 되느니라.”

제석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러하옵니다. 부처님이시여, 허망을 없애는 것은 오직 이 여덟 가지 바른 길이라 생각하나이다.”

제석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없앨 바의 허망한 법을 만일 비구가 행하려면 별해탈법(別解脫法) 가운데 몇 가지 법이 있사옵니까?”

부처님께서는 천주에게 말씀하셨다.

“허망한 법이란 것은 별해탈법 가운데 여섯 가지 법[六種法]이 있으니, 그 여섯 가지는 눈으로 빛을 보는 것, 귀로 소리를 듣는 것, 코로 냄새를 맡는 것, 혀로 맛을 보는 것, 몸으로 부딪힘을 아는 것, 뜻으로 법진(法塵)을 분별하는 것 등이니라. 천주여, 눈으로 빛을 보는 데 두 가지 뜻이 있으니 가히 볼 것과 가히 보지 못할 것이 그것이니라. 가히 보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온갖 더러운 법 경계는 가히 보지 않는 것이요, 가히 볼 것이라 함은 온갖 좋은 법의 경계는 가히 관찰하는 것이니라. 이와 같이 눈으로 빛의 경계를 보는 것처럼 귀로 소리를 듣는 것으로부터 뜻으로 법진을 분별하는 것까지도 또한 다 그러하니라.” “부처님이시여, 제가 이제 부처님께 듣자와 이러한 뜻을 알았나이다. 가히 보지 못할 것이라 함은 눈으로 보는 경계의 좋지 못한 법이니, 만일 그것을 보았다면 더러운 법이 늘어서 좋은 법을 덜어 버리는 것이요, 가히 볼 것이라 함은 눈으로 보는 경계의 모든 좋은 법이니, 만일 그것을 보았다면 좋은 법을 늘리고 더러운 법을 덜게 되는 것이옵니다. 이와 같이 뜻으로 법진을 분별하는 데 이르기까지도 다 그러하옵니다. 부처님이시여, 제가 이제 이러한 법을 듣잡고 바라던 마음이 만족하여 의혹을 끊었습니다.”

또다시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만일 비구가 허망한 것을 없애려 하면 마땅히 몇 가지 법을 끊고 몇 가지 법을 실행해야만 되옵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천주여, 만일 비구가 허망한 법을 없애려 하면 마땅히 세 가지 법을 끊고 세 가지 법을 실행해야 하느니라. 첫째는 의혹이요 둘째는 희망이요 셋째는 뜻 없는 말이니라. 이 세 가지 법에도 할 것이 있고 하지 못할 것이 있으니, 하지 못할 것이라 함은 세 가지 좋지 못한 법은 마땅히 끊어 버리고 행하지 말 것이요, 만일 이것을 행하는 이는 좋지 못한 법을 더하고 좋은 법을 덜게 되느니라. 가히 할 것이라 함은 이 세 가지 좋지 못한 법을 부지런히 닦아 끊어 버리면 좋지 못한 법은 줄고 좋은 법은 더 늘어나게 되느니라.”

제석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그러하옵니다. 제가 이제 부처님께 듣자와 이 뜻을 알았습니다. 의혹과 희망과 뜻이 없는 말 등의 세 가지 법을 만일 다시 한다면 좋은 법이 줄어들고 좋지 못한 법이 늘어날 것이요, 만일 비구가 이 세 가지 법을 부지런히 닦아 끊어 없애 버리면 좋지 못한 법은 줄어들고 좋은 법이 더할 것이옵니다.”

또다시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만일 비구로서 허망함을 없애는 법을 행하는 이는 몇 가지 몸이 있사옵니까?”

부처님께서는 천주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비구가 허망함을 없애는 법을 실행하는 데는 세 가지 몸이 있느니라.

세 가지 몸이라 함은, 알맞은 몸[適悅身]과 괴로운 몸[苦惱身]과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는 몸[捨身]이니라. 알맞은 몸이란 것이 두 가지 뜻이 있으니, 가히 행할 것과 가히 행하지 못할 것이니라. 가히 행할 것이란 온갖 좋은 법을 말함이요, 가히 행하지 못할 것이란 온갖 좋지 못한 법을 말하는 것이니라. 괴로운 몸과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몸도 이와 마찬가지니라.”

제석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정말 그러하옵니다. 이제 부처님에게서 이 뜻을 알았나이다. 만일 비구가 허망함을 없애는 법을 실행하려 하면, 알맞은 몸·괴로운 몸·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몸, 이 세 가지의 몸에서 온갖 좋은 법을 행할 것이요, 온갖 좋지 못한 법은 다 행하지 않을 것이옵니다.”

이 때 제석은 다시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모든 중생이 욕심내는 것과 생각하는 것과 빛깔 모습이 다 같습니까, 같지 않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은 같지 않느니라. 천주여, 중생들이 욕심내는 바가 같지 않으며, 생각하는 바도 같지 않으며, 빛깔과 모습도 다 같지 않느니라. 천주여, 모든 중생들이 비록 각각 자기 세계에 살더라도 또한 각기 그 세계의 차별을 알지 못하느니라. 세계의 차별을 알지 못하므로 캄캄한 길을 걷고 있으면서 도리어 어리석은 법에 집착하고도 진실하다고 여기느니라. 이러한 모든 중생들이 세계의 여러 가지 차별을 알지 못하고 안다는 것은 오직 캄캄한 세계뿐이며, 비록 안다손 치더라도 또한 늘 캄캄한 길을 걸으며 어리석은 법을 집착하여 진실한 것이라 하느니라.”

제석은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그러하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제가 이제 부처님께 듣자와 이 뜻을 알았나이다. 모든 중생들이 욕심내는 바가 같지 않으며 생각하는 바도 같지 않으며 빛깔 모습도 같지 않사옵니다. 중생들이 차별됨을 알지 못하므로 어리석고 어두움을 집착하여 진실하다고 여기나이다.”

그 때에 제석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모든 사문·바라문들이 모두 끝끝내 깨끗한 범행(梵行)을 얻나이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다 얻지 못하느니라. 여기에 두 가지 뜻이 있느니라. 천주여, 만일 사문·바라문들이 저 애욕의 법을 다하지 못하면 결정코 구경(究竟 : 理法의 지극한 경지)의 깨끗한 범행을 얻지 못하느니라. 만일 사문·바라문들이 애욕의 법을 다하였다면 이내 가장 높은 해탈과 심정(心正) 해탈을 얻을 것이니, 이것을 구경의 깨끗한 범행을 얻었다고 하리라.”

제석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그러하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제가 이제 부처님께 배워 뜻을 알았나이다. 만일 사문·바라문이 애욕의 법을 다하지 못하였으면 결정코 구경(究竟)의 깨끗한 범행을 얻지 못할 것이요 만일 사문과 바라문 등이 저 애욕의 법을 다하였다면 결정코 가장 높은 해탈[無上解脫]과 심정 해탈(心正解脫)을 얻으리니, 이런 것을 구경의 깨끗한 범행을 얻은 것이라 이름하는 것이옵니다.”

이 때 제석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저는 어떻게 해야 모든 견해의 병을 여의어 다시 나지 않게 되오리까? 이 모든 견해의 병이 심식(心識)으로부터 생겨났다면 저의 이 심식이란 어떠한 것이옵니까? 또 제가 비록 부처님께 여러 가지 뜻을 여쭈었는데도 어찌하여 성인의 과보를 얻어서 부처님과 같은 정등각(正等覺)을 얻지 못하였습니까? 원하옵나니 저를 위하여 의혹의 근본이 되는 온갖 견해의 병을 끊어 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천주여, 너는 아느냐? 옛적에 사문과 바라문도 이 뜻을 물은 일이 있는 것을 모르느냐?”

제석이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제가 생각하오니 어느 때에 큰 위력이 있는 모든 하늘들이 도리천의 선법회에 모였을 적에 그 회중에 있는 모든 하늘 사람들이 법을 모르면서도 부처가 되려고 하여 이와 같은 뜻으로 부처님께 아뢰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그들의 어리석고 어두움을 살피시고 수기(授記)를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니까 여러 하늘들이 저희들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고 마음에 불평을 품고 일어나서 각기 제 곳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제 곳에 가지 못하고 타락하고야 말았습니다. 그 때에 모든 하늘들이 타락한 까닭에 크게 놀래어 마음으로 의혹을 일으키고 각기 생각하기를 ‘본 곳[本界]에 나타나지 않으니 필연코 타락한 것이로다. 내가 만일 사문과 바라문을 만나면 곧 가서 당신이 여래·응공·정등정각이냐고 물어보리라’고 벼르고 있었습니다. 이 때 마침 제가 혼자 거닐고 있으려니까 모든 하늘들이 저를 보고 달려와서 묻기를 ‘그대여, 당신은 어떤 사람이오?’ 하였습니다. 저는 답하기를 ‘나는 제석천주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하늘들이 마음이 괴로우므로 말하기를 ‘천주여, 어찌하여 우리들이 고뇌 받는 줄을 모르시오. 우리들이 부처님께 마땅히 법을 물어야 할 것인데도 묻지 않고, 귀의해야 할 것을 귀의하지 않고, 마음으로 불평을 품고 본 곳으로 돌아갔는데 본 곳에 나타나지 않은걸 보니 필연코 타락한 모양입니다. 이러므로 걱정하고 있는 중이니 바라건대 우리들을 좀 구원하여 주시오. 천주여, 그러면 우리도 오늘부터 맹세코 부처님께 귀의하여 성문 제자가 되겠습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그들에게 게송을 읊어 대답하였습니다.”

너희들 삿된 생각 일으키고서 
말까지 올바르지 못하였고나.


부처님 되려는 맘 차별되어서 
이래서 길이길이 고통 받누나.



어쩌다 사문들을 만나 보거나 
때마침 바라문을 만나 보거든 
나아가 어서어서 물어보아라.


당신이 바로 정각(正覺)이냐고.



만일에 그가 바로 정각이거든 
내 이제 귀의하여 공양하려고 
이내 몸 그대에게 묻자옵나니 
마땅히 어떠하게 공양할까.



네 지금 물은 것이 저 부처님의 
진실한 바른 도를 알지 못하고 
때마침 모든 하늘 저 무리들이 
마음에 좋아함을 알지 못하고 

마음과 마음 할 바 그 모든 법을 
의혹하고 분별할 뿐이리라.


내 아노니 저들의 마음 쓰는 법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그냥 그대로 

내가 마땅히 말해 주리라.


저 삼계 가운데서 
오직 부처님 세존만이 
이 세상의 가장 높은 스승이시라.



큰 마군을 잘도 항복 받으시고 
모든 중생들을 능히 제도하시어 
열반의 저 언덕에 이르게 하시니 
여래는 크게 깨친 어른이시라.



하늘이나 또 인간 세상에 
어깨를 같이할 이 하나 없으니 
두려움 없는 대장부시라, 
탐욕의 모든 병을 잘 끊으시리.


여래는 큰 태양과 같으신 어른 
너는 지금 머리 숙여 경례하여라.

이 때 제석천주가 모든 하늘들에게 이렇게 말하여 마치자 부처님께서는 이 말을 들으시고 말씀하셨다.

“천주여, 너는 지나간 일을 기억하느냐? 저 분별의 이로움과 기쁨의 이로움에 대해서 말이다.”

제석이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제가 생각하오니 ‘옛적에 하늘이 아수라와 싸워서 하늘이 이기고 아수라가 졌었습니다. 저는 생각하기에 하늘 사람의 쾌락과 아수라의 쾌락을 나 혼자 받아 기쁘도다. 이러한 기쁨의 이로움을 얻기 위하여서는 한 평생을 마땅히 싸우고 칼과 군사로 서로 해치게 되나니, 이런 것을 말하여 기쁨의 이로움을 얻기 위함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분별의 이로움이라 함은 한평생 싸움이 없고 다툼이 없으며 칼과 군사를 서로 겨눔이 없나니, 이것이 분별의 이로움이 된다고 봅니다.”

제석이 다시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제가 이제 부처님에게 바른 법을 듣잡고 더욱 믿음이 깊어지고 행원(行願)을 일으키되 ‘원컨대 제가 목숨이 다하고 인간의 부귀한 가문에 태어나서 재물과 곡식이며 보배며 연(輦)이며 수레와 완구(玩具)를 많이 쌓아 두고 권속이 왕성하며 여러 가지가 구족하여 늘 모자람이 없을 것이니, 원컨대 제가 마땅히 이러한 훌륭한 집의 지혜로운 이에게 태어나서 신체가 원만하고 형상이 미묘하며 상품 음식을 먹고 존귀하고 자재하여 목숨이 길며 바른 믿음을 일으켜 부처님께 출가하여 머리를 깎고 법복을 입고 비구가 되어서 항상 범행을 지니되 결함되거나 범하는 일이 없으며, 수다원(須陀洹)·사다함(斯陀含)의 과(果)를 증득하며 마침내 고통의 변제(邊際)가 다함을 얻어지이다’ 하였습니다. 부처님이시여, 제가 들으매 색구경천이 있다 하오니, 원하옵건대 제가 인간에서 목숨을 마친 뒤에 그 하늘에 태어나지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천주여, 참으로 착하다. 천주여, 그대가 원하는 바와 같으리로다. 무슨 인과 무슨 연으로 그런 수승한 과보가 있게 되었는가?”

제석이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제가 별다른 원인이 없고 다만 부처님에게 바른 법을 듣잡 고 깊이 믿음을 일으키어 원력을 세웠으므로 이러한 과보를 얻게 되었나이다. 부처님이시여, 제가 이제 이 회중에서 바른 법을 듣잡고 법의 힘으로써 그 지혜를 더하고 또 수명을 길게 하였나이다.”

이 때에 제석천주가 이러한 원력을 내었으므로 번뇌의 때를 멀리 여의고 법의 눈이 깨끗함을 얻었으며, 또 8만 하늘 사람들도 법의 눈이 깨끗하여졌었다.

그 때에 제석천주가 법을 듣고 법을 보고 깨달아 법에 머무는 것이 견고하고 온갖 의혹을 끊었다. 이렇게 법을 증득하고는 곧 일어나서 오른쪽 어깨를 벗어 메고 합장하고 머리를 조아리고 나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제가 해탈을 얻었나이다, 제가 해탈을 얻었나이다. 오늘부터 죽을 때까지 부처님과 법과 승가에 귀의하여 우바새의 계를 지니겠나이다.”

이 때 제석천주가 부처님 앞에서 오계건달바 왕자를 돌아다보며 말하였다.

“네가 이제 나에게 좋은 이익을 많이 끼치었으며, 또 많은 사람들에게 이익을 주었도다. 네가 전에 묘한 음악으로 부처님께 공양하였으므로 우리들이 법을 듣고 좋은 결과를 얻었도다. 내가 천궁에 돌아가서 너의 소원을 이루어 주리라.”

그 때 제석천주는 다시 도리천 대중에게 말하였다.

“그대들이여, 그대들은 마땅히 범천(梵天)의 음성으로 ‘부처님께 세 번 귀의하옵니다’고 하여라. 너희들 뜻에는 어떠하냐? 이제 부처님께서 고요한 열반에 머물러 계시느니라.”

이 때 하늘 대중들이 제석의 말을 듣고 부처님을 빙 둘러싸고 세 번 돌고는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 발에 절을 하고 서서 이구동성으로 범천의 소리를 내어 부처님께 귀의함을 제창하였다.

제석천주와 하늘 대중들이 부처님께 세 번 귀의하는 제창을 반복하고는 오계건달바 왕자와 같이 회중에서 사라져 하늘 세계로 돌아갔다.

그 때에 사바세계의 주인 되는 대범천왕이 이 날이 지나고 밤이 되매 부처님께 나오는데 몸의 광채가 휘황찬란하여 제석 바위에 비추며 부처님 앞에 이르러서 두 발에 절하고 나서 한쪽에 물러가 앉아서 합장하고 게송을 읊었다.

제석이 많은 이익을 위하여 
부처님께 바른 법을 물었네.


부처님께서 미묘한 음성으로 
의혹을 모두 끊어 주셨네.

그 때 대범천왕은 이 게송을 읊고 나서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부처님께서 바른 법을 말씀하실 적에 제석천왕이 번뇌의 때를 여의고 법의 눈이 깨끗하여졌으며 8만 하늘 사람들도 또 법의 눈이 깨끗함을 얻었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도다.”

사바세계의 주인인 대범천왕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믿고 그대로 받고 예배하고는 몸을 숨겨 하늘 세계로 돌아갔다.

그 때에 부처님께서 그 날 밤중에 비구들에게 가셔서 둘러싸여 앉으셔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날이 지나고 밤이 되어서 사바세계의 주인인 대범천왕이 나의 처소에 와서 내 발에 절을 하고 합장 공경하여 게송을 읊으리라.

제석이 많은 이익을 위하여 
부처님께 바른 법을 물었네.


부처님께서 미묘한 음성으로 
의혹을 모두 끊어 주시었네.

또 나에게 말하기를 ‘제석천주가 정법을 들을 때에 법의 눈이 깨끗해졌으며, 8만 하늘 사람들도 또한 법의 눈이 깨끗함을 얻었다’고 하였나니, 그리하여 내가 말하기를 ‘그러하니라’고 하였노라.

그 때에 범왕이 나의 말을 듣고 기뻐하여 믿고 받고 내 발에 절을 하고는 몸을 숨기어 하늘 세계로 돌아갔느니라.”

이 때에 모든 비구들이 부처님께서 이 법을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매우 기뻐하여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물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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