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아사세왕경(佛說阿闍世王經) 02. 상권-2

불설아사세왕경(佛說阿闍世王經) 02. 상권-2

부처님께서 또 대목건련(大目揵連)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발우를 찾아오너라.”

대목건련도 자신의 신통력[神足力]에 부처님께서 내리신 위신력을 받들고 8천 삼매에 들어가서, 8천의 부처님 세계를 지나 끝까지 찾아보았으나, 보이지 않아서 가져올 수가 없었다. 대목건련은 삼매로부터 깨어나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찾아보았으나 보이지 않아서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須菩提)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발우를 찾아오너라.”

수보리는 곧 1만 2천 삼매에 들어가서 1만 2천의 부처님 세계를 지나 끝까지 찾아보았으나, 역시 보이지 않으니 가져올 수가 없었다. 곧 삼매로부터 깨어나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찾아보았으나 보이지 않아서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뛰어난 5백 비구가 차례로 각각 신통을 일으켜 발우를 찾아보았으나, 보이지 않아서 가져오지 못했다.

수보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미륵(彌勒)보살에게 아뢰었다.

“당신은 훌륭한 능력을 지닌 일생보처(一生補處)32)로서, 분명 미래의 부처님입니다. 우리들은 발우를 찾아보았으나, 찾아올 수가 없었습니다. 하오니 부디 가서 찾아 주십시오.”

미륵보살이 말했다 “당신이 말한 대로 일생보처는 사실이지만, 현재로서는 문수사리보살이 닦은 삼매를 따를 수 없을 뿐 아니라 그 삼매의 이름조차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제 말을 들어주십시오. 제가 성불(成佛)했을 때도 저 항하(恒河)의 모래 수와 같은 중생들은 다 문수사리보살이 교화할 대상입니다. 또 나로서는 그 분의 발을 올리고 내리는 일도 알 수 없습니다.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그 분을 따를 수 없으니, 문수사리에게 부탁하여 찾아오게 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수보리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제발 문수사리보살을 보내어 찾아오도록 하옵소서.”

부처님께서 문수사리보살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발우를 찾아오너라.”

문수사리보살은 조용한 소리로 부처님의 분부를 받들고 혼자 생각하였다.

‘부처님과 법회대중을 벗어나지도 않고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채, 이 자리에 발우를 가져오리라.’

이렇게 생각하고 곧 삼매에 드니 두루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 없었다. 바로 법회 대중 가운데 있으면서, 손으로 땅을 가리키니, 그 손은 아래로 내려갔다.

그 손은 부처님의 세계를 지날 때, 만나는 부처님마다 발에 대어 예를 올리면서 석가모니불의 문안인사를 전하였다. 아래쪽 세계에서는 문안인사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곳이 없었다.

그리고 그 팔뚝의 낱낱 털에서 백억 천 광명을 놓으니, 낱낱 광명에서는 억백천의 연화가 솟아났고, 낱낱 연화 위마다 보살들이 있었으며, 그 보살들은 각각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을 찬탄하였다. 그 손이 지나간 세계는 여섯 가지로 진동을 반복하였고, 그들 세계에는 매우 장엄한 온갖 당기(幢旗)와 번기(幡旗)가 세워졌다.

또 손이 이미 거쳐간 세계에서는 모두들 ‘문수사리의 오른손이 만나는 부처님마다 낱낱이 발에 대어 예를 올림과 동시에, 석가모니 부처님의 문안인사를 전하면서, 72항하의 모래 수와 같은 세계를 지나 명개벽(明開闢 : 漚呵沙) 세계에 도달하는 것’을 보았다.

문수의 오른손은 마침내 광명왕(光明王 : 多毘羅耶)부처님의 처소로 가서 예를 올리고 석가모니불의 문안인사를 전하였다. 그러자 그 팔뚝의 낱낱 털에서 억백천의 광명을 놓으니, 억백천의 연화가 솟아났다. 또 낱낱 연화마다 앉아 있는 보살들은 모두 석가모니불의 공덕을 찬탄하였다. 그 보살들의광명과 저 부처님의 광명은 서로 섞이지 않으니 각각 서로 볼 수 있었다.

광명왕(光明王)부처님을 곁에서 모시는 시자(侍者) 광존(光尊)은 뛰어난 보살이었다.

광존보살이 광명왕부처님께 여쭈었다.

“이 누구의 손이기에 그 털에서 이토록 훌륭한 광명을 놓아 연화를 내며, 그 연화의 보살들은 노래로 저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는 것입니까?”

광명왕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위쪽으로 72항하의 모래 수와 같은 세계를 지나면, 인(忍)이라고 이름하는 세상에 석가모니라는 부처님이 지금 현재 설법하고 계시느니라. 바로 그 법회에 문수사리라는 보살이 있는데 본래 불가사의한 서원을 세웠으므로, 그 지혜는 해탈하지 못한 경계가 없느니라. 지금 계속 저 부처님 앞에 머물고 있는 가운데, 앉은 자리에서 저 발우를 가져가기 위해 일부러 손을 내려 여기에 이른 것이니라.”

이 말씀을 들은 그 보살들은 생각하였다.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는 것처럼 몹시 저 분들이 보고 싶구나.’

모두 광명왕부처님께 아뢰었다.

“저희들은 석가모니불과 문수사리와 그 세계를 보고자 하오니 보여주옵소서.”

그러자 광명왕부처님께서 두 눈썹 사이의 백호상[兩眉間中央相]에서 광명을 놓으시니, 72항하의 모래 수와 같은 세계를 사무쳐 비추고, 인(忍)세상에 이르니, 인(忍)세상은 다 환하게 활짝 열렸다. 그 광명을 본 사람들은 다들 전륜성왕(轉輪聖王)처럼 그 몸이 안온해졌고, 보통 비구들은 수다원(須陀洹)33)을 얻었으며, 3도(道)34) 를 벗어난 이들은 다 8해탈[惟務禪]35) 에 들어 즉시 나한(羅漢)을 얻었다. 또 그 보살로서 몸에 이 광명을 받은 이들은 다 일명삼매(日明三昧)를 얻었다.

그 광명왕불(光明王佛)세계의 보살들은 그 자리에서 인(忍)세계와 그 곳의 성문(聲聞)들과 보살들을 보았다. 그 보살들은 인(忍)세상을 보더니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청정한 유리와 마니(摩尼)보배가 진흙 속에 떨어진 것처럼, 참으로 애석하기 그지없습니다. 왜냐 하면 인(忍)세상의 보살들은 가엾게도 저런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광명왕부처님께서 파기두(波羇頭)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말을 하지 말라. 왜냐 하면 이 세상에서 천겁 동안이나 닦아야 할 선정(禪定)의 공덕으로, 저 부처님 세계의 새벽으로부터 식사 때까지 행하는 자비의 공덕에 비하면, 절반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저 보살들은 비록 과거의 업[宿命]이 있을지라도, 법을 행하여 손가락 튀기는 사이에 그 죄업을 다 없애느니라.”

이 인(忍)세상의 보살들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이 광명은 어디에서 왔기에 이렇게 몸을 조용하고 평온케 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래쪽으로 72항하의 모래 수와 같은 세계를 지나면, 명개벽(明開闢)이라고 이름하는 세계가 있는데, 그 곳의 광명왕부처님께서 두 눈썹 사이의 중앙상(中央相)으로부터 광명을 놓은 것이니라.”

이 말씀을 들은 보살들은 다 부처님께 아뢰었다.

“명개벽(明開闢)세계와 광명왕(光明王)부처님을 보고자 하오니 보여주옵소서.”

그러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즉시 발바닥으로 광명을 놓으셨다. 그 광명은 아래쪽으로 72항하의 모래 수와 같은 세계를 지나서 명개벽(明開闢)세계와 광명왕(光明王)여래를 비추니, 그 세계는 다 환하게 활짝 열렸다. 저 세계의 보살들은 그 광명이 비춰 몸에 드는 것을 보고, 다 원만하게 수미광명(須彌光明 : 摩仳低)삼매를 얻었다. 이 곳의 보살들은 저 광명왕부처님과 그 세계를 보았는데, 마치 땅에 멈춰 있으면서 해와 달과 별들을 보는 것과 다르지 않았으며, 아래쪽에서 이 곳을 보는 것도 역시 이 곳에서 아래쪽의 광명왕 여래와 명개벽의 세계를 보는 것과 같았다.

문수사리보살의 오른손은 헤아릴 수 없는 백천 보살들에게 호위(護衛)되어 그 발우를 가지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올라오는 동안 지나온 모든 세계를 밝게 비췄던 털의 낱낱 광명과 연꽃들은 차츰차츰 사라져 갔다.

발우를 잡은 손이 이 곳 영취산(靈鷲山)에 이르자, 문수사리보살은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그 발우를 부처님께 드렸다. 부처님께서는 그 발우를 받으셨다.

문수사리의 손을 따라 아래에서 올라온 보살들은 다 부처님께 예를 올린 뒤에, 각각 자신들이 모시는 부처님의 이름으로 석가모니부처님께 안부인사를 전했다. 부처님께서 각기 자리에 앉도록 분부하시니, 그들은 모두 분부를 받들어 자리로 가서 앉았다.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좀 전에 문수사리에 대하여 물었기 때문에 이제 너를 위하여 설하리라.

아득히 멀고 먼 옛날, 헤아릴 수 없는 아승기겁(阿僧祗劫)의 일이다. 이 때 무상(無常)이란 세상에 용막능승(勇莫能勝)이란 부처님께서 그 회상(會上)의 8만 4천의 성문들과 만 2천의 보살들을 거느리고 계셨는데, 그 부처님께서는 3승의 성자들[三道家]36)을 위하여 설법하셨느니라.”

부처님께서 이어 말씀하셨다.

“본래 용막능승여래께서 성불(成佛)하셨을 때는 5탁악세(濁惡世)37)였느니라. 이 때 경법(經法)에 밝은 혜왕(慧王)이란 비구가 있었다. 이 비구는 발우를 가지고 유치국(惟致國)에 들어가서 걸식[分衛]하여 온갖 맛있는 음식을 얻었다.

이 때 존자의 아들 이구왕(離垢王)이란 동자가 유모(乳母)의 품에 안긴 채 성문 밖에 있었다. 그 동자는 멀리서 경에 밝은 비구를 보자, 유모의 품으로부터 빠져나와 비구에게 그 음식을 달라고 했다. 비구는 곧 꿀떡을 주었다. 그 동자는 먹어보더니 단 맛을 알고 비구를 따라갔다. 유모는 돌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곧장 따라가서 용막능승부처님의 처소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비구와 함께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한쪽으로 가서 앉았다.

혜왕[若那羅耶]비구는 음식이 담긴 발우를 동자에게 주면서 ‘이 발우의 음식을 부처님께 올려라’고 하자, 동자는 받아서 부처님께 받들어 올렸다. 부처님께서는 발우의 음식을 받아 충분히 드셨으나, 그 동자의 발우 음식은 부처님이 드시기 전과 다름없이 남아 있었다. 또 8만 4천 비구와 1만 2천 보살에게도 이 음식으로 각각 배가 부를 만큼 충분히 공양 올렸으나, 그 동자가 가진 발우의 음식은 역시 전과 같이 줄어들지 않았다. 그 때 동자는 자신을 기쁘게 해주신 부처님의 위신력(威神力)과 자기 본래의 공덕이 일치한 상태에서 그 믿음을 다한 것이니라.

동자는 앞으로 나아가 서서 그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공양발우 받아들어 부처님께 올렸더니
여래께서 만족하게 발우 음식 드셨으나
발우 속에 들어 있는 온갖 진미 음식들은
공양 전과 다름없이 줄어들지 않는구나.

8만 4천 비구들과 1만 2천 보살들도
그 발우의 그 음식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차례대로 고루 나눠 넉넉하게 공양해도
본래대로 변함없이 줄어들지 않는구나.

줄어들지 아니하고 불어나지 아니함은
부처님의 공덕임을 지금에야 알게 되어
부처님을 받들어서 진심으로 섬겼으니
청정공덕 바른 법이 어김없이 불어나리.”

부처님께서 이어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이 동자는 이렇게 한 발우의 음식으로 7일 동안 충분하게 공양을 베풀었으나, 그 음식은 줄어들지 않고 이전대로 남아 있었느니라.

그 용막능승[阿波羅耆陀他]부처님께서는 그 동자를 가르치고 인도하여 스스로 부처님과 법과 비구승에게 귀의케 하셨으며, 5계(戒)를 주시어 잘못을 뉘우치게 하시고 공덕을 닦도록 도와주시니, 동자는 결국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깨달음[阿耨多羅三耶三菩提]의 마음을 일으켰느니라.

그 부모가 동자를 찾아 여러 곳을 헤매다가 마침내 그 부처님의 처소에 이르러 부처님 앞에 예를 올리고 머물렀다. 그 동자는 부모를 보자, 앞에 나아가 예를 드리고 부처님을 기리면서 말했다.

‘저는 이제 보살법(菩薩法)에 들어가서 중생들을 건지려는 서원을 세우고 발심하였습니다. 왜냐 하면 부처님은 만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 동자는 이어 부모에게 말했다.

‘부처님의 32상(相)38) 과 80종호(種好)39) 를 보옵소서. 그 지혜는 고루 미치지 않는 곳이 없으시고 그 도는 모든 경계를 해탈하셨으니, 저는 이제 사문(沙門)40)이 되기를 원합니다. 왜냐 하면 여래(如來)를 만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말했다.

‘참으로 훌륭하구나. 너의 원을 따라서 네가 구하는 일을 즐겁게 구하리라. 또 우리들은 다 너의 소원대로 발심하여 마땅히 너를 따라 불법(佛法)을 위해 살아가리라. 그리고 이제 집으로 가서 모든 것을 정리하여 버리고 너를 본받아 사문(沙門)이 되리라.’ ”

부처님께서 이어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이 동자의 말대로 그 부모와 5백 사람은 모두 다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깨달음의 마음[阿耨多羅三耶三菩提心]을 내어, 용막능승(勇莫能勝)부처님의 처소로 가서 다 사문이 되었느니라.”

부처님께서 이어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의심을 풀어주리라. 그 때의 혜왕(慧王 : 若那羅耶) 비구가 바로 지금의 문수사리이고, 존자의 아들 이구왕(離垢王 : 惟滅和耶) 동자가 바로 나의 몸이니라. 문수사리는 음식을 나에게 주고 공덕을 짓게 하여 발심하게 하였다. 그러니 이 비구는 지난 겁[本]에 나를 처음으로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깨달음의 마음을 내도록 은혜를 베풀어준 스승이니라.”

부처님께서 또 이어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지금 이 부처의 열 가지 힘[十種力]41)과 네 가지 두려움이 없는 법[四無所畏]42)과 그 불가사의한 지혜43)를 얻은 근거가 무엇인지 알고 싶은가? 다 문수사리가 발심시켜 준 일이 그 근거이니라. 왜냐 하면 마음이 바로 근본이기 때문이니라.”

부처님께서 또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이 몸과 마찬가지로 헤아릴 수 없는 세계의 모든 부처님들도 다 문수보살에 의해 발심하여 석가모니불이라고 이름하였다. 이들 부처님 외에도, 제식비불(提式沸佛), 식불(式佛), 제화갈불(提竭佛), 유위불(惟衛佛) 등 한없이 많은 부처님들이 계시느니라.”

부처님께서 이어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부처님의 이름들을 다 말하려면, 이 겁에서 저 겁까지 설한다 해도 끝이 없으리라. 이 셀 수 없는 부처님들도 다 문수사리가 발심시켰느니라. 이 밖에도 지금 현재 법륜을 굴리는 이, 열반에 드는 이, 보살도를 행하는 이, 도솔천상에 있는 이, 어머니의 뱃속에 들어 있는 이, 태어나는 이, 집을 버리고 불법(佛法)을 구하는 이, 보리수[佛樹] 아래에 앉아 있는 이, 성불(成佛)하는 이 등 다 헤아릴 수 없느니라.”

부처님께서 또 이어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니 문수사리는 보살의 부모이자, 선지식(善知識 : 迦羅密)44)이니라.

너는 아까 이 여래가 어떤 은혜를 입었느냐고 물었느니라. 내가 성취한 일은 다 문수사리의 은혜를 입었기 때문이니라.”

이 말씀을 듣고 있던 2백 천자는 스스로 생각했다.

“모든 법은 무엇을 배울지라도 반드시 성취할 수 있으니, 우리들도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지금의 석가모니부처님도 문수사리보살에 의해 발심하고 성불하셨는데, 무엇 때문에 우리들은 게으름에 빠진다는 말인가.”

2백 천자는 이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모두 그 마음이 견고해져서,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깨달음의 마음을 완벽하게 믿었다.

문수사리보살은 손의 신통변화로 발우를 찾아와서, 감동(感動)시키지 않음이 없었으니, 이를 본래의 학습(學習)이라고 한다. 이 세상에서 아래쪽 세계에 이르기까지 그 사이에 있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거쳐왔는데, 모두가 다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깨달음의 마음을 일으켰다.

지금 시방에서 현재 설법하시는 모든 부처님께서 보배 꽃 일산으로 법공양(法供養)을 베푸셨다. 그 일산은 삼천대천세계를 덮었고, 또 그 꽃 일산에서는 저절로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석가모니불의 말씀 소리와 다르지 않았다. 이 또한 문수사리보살이 감동(感動)시킨 일이다.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남자나 여인이 빨리 열반에 들고자 한다면, 반드시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깨달음의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왜냐 하면 어떤 사람은 생사의 해탈을 두렵게 여겨서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깨달음의 마음을 일으킬 수 없게 되자, 성문(聲聞)에 머물러 아라한(阿羅漢)이 되어 빨리 열반에 들려고 하기 때문이다. 나는 계속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이 생사에서 벗어나지 못한 경우를 보아왔다. 그러나 또 어떤 보살은 부지런히 정진하여 이미 성불(成佛)한 경우도 보았다.

그 이유를 말하리라. 과거 헤아릴 수 없는 아득히 먼 겁의 일이다. 이 때 일체도(一切度)라고 이름하는 부처님이 계셨는데, 수명은 1만 세였으며, 백억 제자를 거느렸느니라. 이 가운데 막능승(莫能勝)이란 비구는 뛰어난 제자로서 그 지혜가 대단히 훌륭하였으며, 또 그 다음 득대원(得大願)이란 비구도 역시 뛰어난 제자로서, 그 신통(神通)이 매우 훌륭하였다.

이 때 일체도(一切度)여래께서는 비구들과 함께 법복(法服)과 발우를 바르게 갖추고 상명문(常名聞)이란 나라에 들어가서 걸식(乞食 : 分衛)을 행하셨다. 그 지혜를 원만하게 갖춘 비구는 부처님의 오른쪽을 모셨고, 그 신통을 원만하게 갖춘 비구는 부처님의 왼쪽을 모셨으며, 훌륭한 비구 회지(悔智)는 부처님을 모시고 뒤를 따랐으며, 8천 보살은 앞장서 인도하였다. 또 이 가운데는 제석(帝釋)과 같은 이, 천자처럼 옷을 입은 이, 하늘과 같은 이, 사천왕과 같은 이들이 여래께서 불편하지 않게 행하실 수 있도록 사람들에게 길을 청소하고 비켜서게 하였느니라.”

부처님께서 이어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일체도(一切度)부처님께서 성안으로 들어가시기 위해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市]을 지나가시다가, 세 귀한 집[尊者]의 아이들을 보셨다. 그들은 아직 어렸으나 매우 장엄한 복장을 차려 입고 함께 앉아서 놀고 있었다. 그 가운데 한 동자가 먼저 저 멀리 부처님께서 비구 보살들과 함께 드높은 광명을 찬란하게 비추시면서 오시는 모습을 보았다.

그 동자는 두 동자에게 손가락으로 먼 곳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자. 보아라. 부처님께서 오시는 모습이다. 찬란한 부처님의 광명을 따라 오시는 저 분들의 모습은 이보다 더 멋지고 훌륭할 수 없다.’

두 동자는 말했다.

‘그래. 보이는구나.’

그 동자는 이어 말했다.

‘이 분이야말로 일체 가운데 가장 훌륭하셔서 그 누구도 따를 자가 없는 분이시니, 우리들은 마땅히 공양해야 한다. 왜냐 하면 공양한 복이 한량없기 때문이다.’

그 두 번째 동자가 응답하였다.

‘꽃도 향도 없는데 무엇으로 공양한다는 말인가?’

그 동자가 몸에 걸고 있던 하얀 구슬을 풀어 손에 쥐고, 두 동자에게 말했다.

‘이것이면 부처님께 공양할 만하다. 부처님을 뵈었으면 욕심을 버려야지.’

그러자 두 동자도 그 동자를 본받아 머리에 걸린 하얀 구슬을 풀어 손에 쥐고, 각기 찬탄하면서 말했다.

‘가자,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부처님께 가면 마치 험난한 강을 건넌 것처럼 아늑하고 편하리라. 왜냐 하면 그 마음이 청정하여 평등하게 머물기 때문이지.’

한 동자가 두 동자에게 물었다.

‘이 공덕으로 무엇을 구하려는가?’

한 동자가 말했다.

‘부처님 오른쪽의 비구처럼 지혜가 뛰어나기를 바라노라.’

또 한 동자가 말했다.

‘부처님 왼쪽의 비구처럼 신통[神足]이 뛰어나기를 원하노라.’

이 두 동자는 각각 이렇게 원하면서 한 동자에게 물었다.

‘너의 소원은 무엇이냐?’

그 동자는 곧 대답하였다.

‘나는 부처님처럼 그 누구도 당할 수 없는 광명을 지니고, 사자처럼 홀로 걷는 위대한 사람이 되고 싶다.’

이 동자가 이렇게 말하자, 허공에서 8천 천자가 다 함께 말했다.

‘훌륭하고 장하구나. 그대가 말한 대로 행한다면 하늘과 인간은 다 그대의 은혜를 입게 되리라.’

이 세 동자는 하얀 구슬을 가지고 부처님의 계신 곳으로 향하였다.

그 일체도(一切度)여래께서는 시자(侍者) 사갈(沙竭)을 부르셨다.

‘너는 이제 하얀 구슬을 가지고 오는 세 동자를 보느냐? 그 중앙에서 오는 동자는 지난 겁에 기쁜 마음으로 정진해 왔으므로, 그 발을 한 번 들 고 내릴 때마다 각각 백 겁(劫)의 죄를 물리치리라. 또 뒤에 하는 일마다 백 차례에 걸쳐 전륜성왕(轉輪聖王)의 자리에 오르게 되고. 백 차례에 걸쳐 제석(帝釋)에 오름도 이와 같으며, 백 차례에 걸쳐 범천(梵天)에 오름도 이와 같다. 뿐만 아니라 그 한 번 발을 드는 가운데, 부처님을 백 번 만날 수 있는 공덕이 들었느니라.’

마침 일체도(一切度)여래의 말씀이 끝나자마자, 이 세 동자는 바로 도착하여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나서, 각각 가지고 온 하얀 구슬을 부처님의 머리 위에 뿌렸다. 성문(聲聞)의 뜻을 일으킨 두 동자의 구슬은, 부처님의 어깨에 멈춰 있었으나,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깨달음의 마음을 일으킨 한 동자의 하얀 구슬은, 부처님의 머리 위에 멈춰 있다가 허공에서 구슬 꽃 교로장(交露帳)45)으로 변하였다. 그 교로장은 사방이 바르고 평등하였다. 여래께서는 교로장의 중앙에 놓여 있는 의자에 앉아 계셨다. 이 때 그 여래께서 웃으셨느니라.

그러자 시자(侍者) 사갈(沙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여래의 웃음에는 반드시 뜻이 있으시니, 그 뜻을 말씀하여 주옵소서.’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성문(聲聞)의 뜻을 일으킨 두 동자를 보느냐? 왜냐 하면 두 동자는 다 생사의 해탈을 두렵게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살의 마음을 일으키지 못했느니라. 그 이유는 빨리 열반에 들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 시자가 여쭈었다.

‘그 한 동자는 앞으로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부처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그 중앙의 동자는 뒤에 스스로 성불(成佛)하게 되리라. 이 두 동자는 성문이 되어, 한 동자는 지혜가 대단히 훌륭하게 되고, 한 동자는 신통(神通)이 매우 뛰어나게 되리라.’ ”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중앙의 동자가 누구인지 알겠느냐?”

사리불이 말했다.

“모르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바로 나의 몸이니라. 오른쪽 동자는 알겠느냐?”

사리불이 말했다.

“모르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했다.

“그때의 오른쪽 동자가 바로 사리불이고, 그 왼쪽의 동자는 대목건련(大目揵連)이니라.”

부처님께서 이어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생사의 해탈을 두렵게 여겼기 때문에, 보살의 마음을 일으키지 못하고 열반에 들려고 한 것이니라.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깨달음의 마음을 일으킨 동자를 보라. 지금의 나로서, 나 홀로 정진하여 성불하였으며, 너희들도 이렇게 나를 따라 불법(佛法)을 떠나지 않고 성문(聲聞)의 해탈을 얻었느니라.”

부처님께서 이어 또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진정으로 빨리 열반에 들고자 한다면, 마땅히 나와 같이 성불하겠다는 마음을 일으켜야 하느니라. 좀 전에 말한 빠른 방법이란, 일체를 다 아는 지혜[一切智]보다 더 나은 법이 없느니라. 왜냐 하면 걸림이 없고, 무엇보다 훌륭하고, 다함이 없으며,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깨달음의 마음으로서,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경지이고, 특별히 뛰어난 법이며, 모든 성문과 벽지불을 뛰어넘은 경지이기 때문이니라. 그 열반을 빨리 얻으려고 한다면, 곧바로 일체를 다 아는 지혜[薩云若]의 뜻을 얻는 경지도 이와 같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대승품[摩訶衍品]46) 을 설하시자, 1만 사람이 다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깨달음의 마음을 일으켰다.

사리불(舍利弗) 마하목건련(摩訶目揵連) 아난(阿難) 사비(舍比) 마하가섭(摩訶迦葉) 라월난(蠡越難) 두야화치(頭耶和致) 난리분뇩(難離分耨) 두타수보리(頭陀須菩提) 등 낱낱 뛰어난 비구들은, 머리를 부처님의 발까지 조아려 예를 올리면서 모두가 다 기려 말했다.

“만일 남자나 여자가 도를 구하려면, 마땅히 훌륭한 뜻을 일으켜야 하겠습니다. 만일 훌륭한 뜻을 일으키지 않는다면[所以者何], 비록 부처님께서 저희들을 위하여 백천 가지로 법을 설해주신다 해도, 저희들은 보살의 마음을 일으킬 능력이 없어서, 나한(羅漢)의 경지에 머물러 있는 것을 후회하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전세[本]에 5역죄(逆罪)47)를 범한 것보다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죄는 벗어나고 나면 오히려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깨달음의 마음을 일으킬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저희들은 깨달음의 종자를 태워버렸기 때문에 아무런 이익이 없습니다. 보살심(菩薩心)을 감당할 그릇도 못되니, 마치 죽은 사람이 산 사람에게 이익이 없듯이 지금 저희들의 해탈은 이익이 없습니다.

두 발 혹은 네 발 달린 천상천하(天上天下)의 중생은 다 땅을 의지하여 살아가듯, 만일 어떤 사람이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깨달음의 마음을 일으킨다면, 모든 하늘과 사람들은 다 그 은혜를 입을 것입니다.”

이 때 아사세왕(阿闍世王)48) 이 네 말이 이끄는 수레를 타고 여러 신하와 함께 부처님의 처소에 이르렀다.

아사세왕은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나서 아뢰었다.

“모든 사람은 어떤 인연으로 죄를 짓습니까?”

부처님께서 아사세왕에게 말씀하셨다.

“우리와 나와 사람을 집착하기 때문에 곧 죄를 지으며, 몸을 탐하기 때문에 몸으로 죄를 행하느니라. 그러므로 그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니라.”

아사세왕이 또 여쭈었다.

“탐욕과 애착을 돕는 근원은 어디에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진리를 알지 못하는 데[無黠]49)에 있느니라.”

아사세왕이 또 여쭈었다.

“무엇이 진리를 알지 못하는 근원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지은 일이 생각과 다른 것이 바로 그 근원이니라.”

아사세왕이 또 여쭈었다.

“생각과 다르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근본과 다르게 지은 일이니라.”

아사세왕이 또 여쭈었다.

“그 근본과 다르다는 뜻은 무엇을 말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환영(幻影)처럼 변화하는 일은 존재하지 않으니라. 그러므로 달라지느니라.”

아사세왕이 또 여쭈었다.

“누가 변화시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드는 자가 없느니라. 그러므로 변화하는 것이니라.”

아사세왕이 또 여쭈었다.

“생기는 일도 없고 존재하는 일도 없다면, 마땅히 어떻게 헤아리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생기는 일도 없고 존재하는 일도 없으므로 헤아릴 수 없느니라.”

아사세왕이 또 여쭈었다.

“의심은 어떤 인연으로 일어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믿음의 근거가 없는데서 일어나기 때문이니라.”

아사세왕이 또 여쭈었다.

“믿음의 근거가 없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가령 말을 듣고 의심한다면, 이를 믿음의 근거가 없다고 하느니라.”

아사세왕이 또 여쭈었다.

“무엇이 도이며, 무엇이 믿음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탐욕[]과 성냄[怒]과 어리석음에서 벗어남이 도이니라.”

아사세왕이 또 여쭈었다.

“믿음은 무엇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법의 근원을 체득하지 못했을지라도 달라지지 않는 마음이니라. 그러므로 이를 믿음이라고 하느니라.”

아사세왕이 곧 말했다.

“참으로 훌륭합니다. 여래의 말씀대로 한다면, 모든 사람은 무엇 때문에 믿지 못하겠습니까? 믿지 못함은 스스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제 나는 나쁜 사람의 말을 믿고 신하에게 명을 내려 스스로 아버지를 죽였습니다. 나라를 탐내었기 때문이고, 재물과 보배를 탐내었기 때문이며, 벼슬과 백성을 탐내었기 때문이고, 존귀한 자리를 탐내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신하를 시켜 아버지를 해쳤으니, 몸의 탐욕에서 생긴 무서운 의심을 스스로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마시고 먹는 연회의 즐거운 자리에서도, 나라의 일을 듣고 살피는 정전(正殿)에서도, 5욕락(欲樂)50)이 넘치는 중궁전(中宮殿)에서도, 홀로 있거나 많은 사람과 함께 있는 곳에서도, 밤낮으로 그 무서운 의심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마시거나 먹어도 소화시킬 수가 없고, 잠자리에 들어도 잘 수가 없으며, 얼굴빛은 초췌하여 기쁜 빛이 없고, 때마다 두려움으로 심장은 두근거리니, 지옥을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사세왕은 이어 부처님께 말하였다.

“부처님을 받들어 모시면 눈먼 사람도 눈을 뜰 수 있고, 부처님을 의지하면 물에 빠진 사람도 벗어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고통받는 사람을 편안케 해주시고, 두려움에 떠는 사람을 보호해 주십니다. 또 부처님께서는 가난으로 헐벗은 이에게 보배를 베풀어주시고, 길을 잃고 헤매는 이에게 바른 길을 보여주십니다.

또 부처님께서는 가엾게 여기는 마음[大哀]51)을 일으키시어 괴로운 경계도 괴롭게 여기지 않으시고, 일체 흔들림이 없는 평등한 마음으로 다 받아들이시어 두터운 덕을 베푸시며, 언제나 괴로움과 즐거움을 함께 견디면서 모든 사람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지금 저의 몸은 두려움으로 떨고 있사오니, 부디 부처님께서는 보호하시어 위험에 처한 저를 편안케 해주시고, 아무도 구제해 주지 않는 이 몸을 구제해 주시고, 돌아갈 곳이 없는 저를 가엾게 여기시고 몸과 목숨을 다 바쳐 향하는 정성을 받아 주옵소서.

또 저는 눈먼 사람이나 다름없사오니, 부디 볼 수 있도록 해주시고, 쓰러지려는 사람이나 다름없으니, 제발 넘어지지 않고 설 수 있도록 하옵소서. 이제 저는 마땅히 무간지옥[阿鼻地獄]52)에 이어 다른 큰 지옥[大泥犁]으로 가야 하오니, 이러한 지옥으로 들어가지 않게 하옵소서.

원하오니 부처님이시여, 이제 마땅히 알맞은 설명으로 마음이 열릴 수 있도록 제 의심을 풀어주시어 죽을 때까지 남은 의심이 없게 하시고, 이 크고 무거운 죄가 작고 가벼워지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옵소서.”

부처님께서는 아사세왕과의 대화를 생각해 보셨다.

“왕의 말은 매우 깊고 미묘하니, 나 또는 문수사리가 감응(感應)을 내리지 않는다면 이 병을 치료할 수 없겠구나.”

사리불이 부처님의 위신력(威神力)을 받들어 아사세왕에게 말했다.

“의심을 결단하시려면, 내일 아침 음식공양을 준비하여 문수사리보살을 초청하십시오. 만일 문수보살이 그 궁전으로 가서 공양을 받는다면, 왕의 관리들은 다 마땅히 그 복을 받을 것이며, 아울러 나열국(羅閱國)53)의 백성들은 그 공덕으로 반드시 본보기를 삼을 것입니다.”

사리불의 말을 듣고 아사세왕은 문수사리보살에게 아뢰었다.

“부디 큰 은혜를 베푸시어 덕을 낮추시고 내일 아침 궁전으로 오셔서 공양을 받아주십시오.”

문수사리보살이 답했다.

“그 말씀만으로도 충분히 공양을 받았습니다.”

문수사리보살이 또 이어 말했다.

“불법은 의복이나 음식으로 그 대가를 바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사세왕이 곧 아뢰었다.

“그렇다면 마땅히 무엇을 보답으로 베풀어야 합니까?”

문수사리보살이 답했다.

“왕께서는 깊이 미묘한 경지에 들어가서 그 죄[其事]를 자세히 살피고 헤아려서, 더러운 일이 없고 집착하는 일도 없고 의심하는 일도 없고 어려운 일도 없고 두려운 일도 없고 한 점의 겁낼 일도 없어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만 대비(大悲)를 내려 청을 받아드릴 수 있습니다.”

문수사리보살이 또 이어 아사세왕에게 말했다.

“모든 법을 생각할 때,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없다고도 생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래야만 대비(大悲)를 내려 청을 받아드릴 수 있습니다.

또 마땅히 과거의 마음도 생각하지 않아야 하고, 미래의 마음도 생각하지 않아야 하며, 현재의 마음도 생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렇게 행해야만 대비(大悲)를 내려 청을 받아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왕은 마땅히 일체를 볼 수 있는 대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진실로 이렇게 생각하지 않아야만 대비를 내려 청을 받아드릴 수 있습니다.”

아사세왕이 또 문수사리보살에게 아뢰었다.

“보살의 말은 다 경전에 실려 있는 법과 다르지 않습니다. 부디 이 몸을 위하여 마땅히 대비를 내리시고 청을 받아주십시오.”

문수사리보살이 또 말했다.

“그렇게 말하지 마십시오. 그 도는 이 몸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비록 마시거나 먹을지라도, 왕은 우리와 나와 수명의 길이와 목숨과 사람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아야만 대비(大悲)를 내려 청을 받아드릴 수 있습니다.

왕의 마음에도 가지는 일이 없어야 하고, 인연하는 일도 없어야 하며, 4대(大)도 생각하지 않아야 하고 5음(陰)도 생각하지 않아야 하며, 6쇠(衰 : 塵)도 생각하지 않아야 하고 삼계를 붙들어 지니지도 않아야 하며, 공덕이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아야 하고 공덕이 없다고도 생각하지 않아야 하며, 세속을 생각하지도 않아야 하고 출세간의 도를 생각하지도 않아야 하며, 죄가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아야 하고 죄가 없다고도 생각하지 않아야 하며, 남음이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아야 하고 남음이 없다고도 생각하지 않아야 하며, 해탈의 경지가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아야 하고 해탈의 경지가 없다고도 생각하지 않아야 하며, 생사라고 생각하지도 않아야 하고 열반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아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만 대비(大悲)를 내려 청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아사세왕이 또 문수사리보살에게 아뢰었다.

“이 법을 들으니 더욱 기쁩니다. 그렇기 때문에 청하려는 것입니다. 제발 저를 이 법의 인연으로 안온한 경지에 들게 하소서.”

문수사리보살이 답했다.

“당신은 인연의 대상을 두고 안온한 경지에 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연하지도 않아야 하고, 안온한 경지를 바라지도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그 법에는 인연의 대상도 없고 안온한 경지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를 생각하지도 않고 자신을 떠받쳐 교만하지도 않아야 합니다. 일체에 생각하는 대상이 없어야만 그대로가 인연이요, 그대로가 안온한 경지입니다.

이 가운데 나쁜 뜻이 없어야만 뒤에 다시는 재앙의 변고가 없습니다. 뒤에 재앙의 변고가 있으면 불안하게 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이 없어야만 비로소 편안하게 됩니다.”

아사세왕이 또 물었다.

“변하지 않는 법이란 무엇이기에 안온한 경지에 들 수 있다고 설하는 것입니까?”

문수사리보살이 말했다.

“만일 공(空)하여 작용도 없고 작용시킬 수도 없으면, 모양도 없고 바라는 욕망도 없습니다. 작용도 없고 작용시킬 수 없음에도, 나에게 작용하는 일이 있다거나 작용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달라지고 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구하지도 않고 인연의 대상도 없는 가운데 몸과 입과 뜻이 작용해야 합니다. 왜냐 하면 생기고 사라지는 생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법에 비록 인연의 대상이 있을지라도, 마땅히 다 인연의 대상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아사세왕이 또 물었다.

“생기고 사라지면서도 생기고 사라짐이 없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문수사리보살이 말했다.

“과거는 이미 사라졌다고 생각하지 않아야 하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생각하지 않아야 하며, 지금 현재도 무상(無常)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야 하고, 모든 법에 더하거나 덜함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생기고 사라지면서도 생기고 사라짐이 없는 것입니다.”

아사세왕이 또 물었다.

“아직 해탈하지 못한 이는 어떻게 해야 도(道)와 합하게 됩니까?”

문수사리보살이 말했다.

“해의 밝음이 어둠과 합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사세왕이 말했다.

“합하지 않습니다. 해가 떠오르면 온갖 어둠은 다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문수사리보살이 말했다.

“왕은 과연 그 어둠이 사라져서 어느 곳으로 갔는지 아십니까?”

아사세왕이 답했다.

“그 어둠이 사라져서 어느 곳으로 갔는지 볼 수 없습니다.

문수사리보살이 말했다.

“마치 해가 떠오르면 온갖 어둠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없는 것처럼 이른바 도의 지혜가 올 때에도 아직 해탈하지 못한 경계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문수사리보살이 또 이어 말했다.

“도는 해탈하지 못한 경계와 평등하고, 해탈하지 못한 경계는 도와 평등합니다. 왜냐 하면 다 함께 공(空)하기 때문입니다. 해탈하지 못한 경계와 도가 평등하므로 모든 법이 평등합니다. 이렇게 아는 사람은 아직 해탈하지 못함을 도라고 생각합니다. 왜냐 하면 해탈하지 못한 자체를 찾아보아도 그 자리를 알지 못함이 바로 도이며, 해탈하지 못한 자리를 찾아보아도 볼 수 없음이 바로 도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아사세왕이 또 물었다.

“어째서 해탈하지 못한 자체를 도라고 하십니까?”

문수사리보살이 말했다.

“해탈하지 못한 자체를 도라고 할지라도, 도라고 생각하지 않음을 도(道)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아사세왕이 또 물었다.

“그 도는 마땅히 어떻게 배워야 합니까?”

문수사리보살이 답했다.

“모든 법을 배우는 그대로 배워야 합니다.”

아사세왕이 또 물었다.

“모든 법을 배우는데 어찌 처소가 있겠습니까?”

문수사리보살이 말했다.

“배운다고 생각하면 도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아사세왕이 또 물었다.

“그렇게 배운다면 반드시 열반에 도달합니까?”

문수사리보살이 말했다.

“다시 말해서 어떤 법이 열반으로부터 왔다면, 나는 열반에서 왔노라고 말하겠습니까?”

아사세왕이 곧 말했다.

“가는 것도 없고 오는 것도 없습니다.”

문수사리보살이 아사세왕에게 말했다.

“도를 배우면 처소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라고 합니다.”

아사세왕이 또 물었다.

“마땅히 어떻게 해야 도에 머문 그대로 도를 배울 수 있겠습니까?”

문수사리보살이 답했다.

“머무는 대상이 없는 것이 도를 배우는 것입니다.”

아사세왕이 또 물었다.

“그렇게 도를 배운다면 청정한 계율과 삼매와 지혜에 머물렀다고 생각하지 않아야 합니까?”

문수사리보살이 답했다.

“그 도는 계율을 인연하지도 않고, 삼매를 구하지도 않으며, 지혜에 머물렀다고 교만하지도 않습니다.”

문수사리보살은 이어 아사세왕에게 말했다.

“다시 말해서 가령 계율을 인연하고 삼매를 구하며 지혜를 높여 교만 한다면 머무는 곳이 있겠습니까?”

아사세왕이 말했다.

“없습니다.”

문수사리보살이 말했다.

“그러므로 마땅히 도에는 머무는 대상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아사세왕이 또 물었다.

“남자나 여인이 마땅히 도에 나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문수사리보살이 말했다.

“도를 배워 나아가려면, 법에 영원하다 영원하지 않다는 견해가 없어야 하고, 법에 해탈의 경지가 있다, 해탈의 경지가 없다는 견해도 없어야 하며, 법에 편안하다든지 괴롭다는 견해도 없어야 하고, 또 법에 나의 존재가 있다든지 모든 사람의 존재가 있다는 견해도 없어야 하며, 또한 법에 생사가 있다거나 열반에 이른다는 견해도 없어야 합니다. 이렇게 도를 배운다면 도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아사세왕이 곧 말했다.

“대단히 훌륭합니다. 문수사리보살께서 말씀해 주신 법은 틀림이 없습니다. 부디 이제는 그 청을 받아 주십시오. 왜냐 하면 의심을 풀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듣고 혼자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저 모든 법에는 우리도 없고 나도 없으며, 수명의 길이도 없고 목숨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의심을 품은 것입니다.”

문수사리보살이 말했다.

“없는 그 자체를 있게 할 수는 없습니다. 없는 그 자체는 벗어날 수도 없고 벗어날 대상도 없습니다. 가령 나에게 해탈이 있다고 말할지라도 해탈이 없으므로, 해탈도 없고 해탈할 대상도 없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모든 법은 다 그 자체가 해탈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문수사리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아사세왕의 청을 받아들여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제도하여라.”

문수사리보살이 말했다.

“예. 여래의 분부를 어길 수 없으니 받들도록 하겠습니다.”

아사세왕은 뛸 듯이 기뻐하였다.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과 모든 비구와 문수사리보살에게 예를 올리고 그 곳을 나왔다.

아사세왕은 가다가 잠시 멈춰 사리불에게 물었다.

“문수사리보살이 거느린 대중은 몇 분이나 됩니까?”

사리불이 말했다.

“5백 사람입니다. 이들은 다 궁전의 음식을 드실 분입니다.”

아사세왕은 길을 따라 성(城)으로 돌아오자, 곧 대신들에게 모든 것을 준비하도록 명하였다. 궁전의 권속들은 온갖 맛있는 음식을 장만함과 동시에, 그 날로 궁전을 청소하고 당기(幢旗) 번기(幡旗) 휘장(揮帳) 꽃 일산 등을 설치하였으며, 온갖 꽃을 땅에 깔고 좋은 향을 뿌렸다. 또 5백 개의 의자[床]를 진열하고, 그 의자마다 온갖 빛깔의 보배구슬로 짜여진 피륙을 깔아놓았다. 그러자 온 궁전은 곳곳마다 두루 꽃과 향으로 깨끗하게 장식되었다. 그리고 칙령을 내려, 성곽의 모든 거리와 시전(市廛)의 마을들을 다 깨끗하게 소제하여 꽃을 흩고 향을 뿌리게 하였으며, 길가에도 휘장(揮帳)을 치고 당기와 번기를 달게 하였고, 그 마을의 문에는 양쪽으로 꽃다발을 걸어 놓게 하였다. 또 백성들에게는 “내일 아침 모두 거리로 나와 문수사리보살을 맞이하여 공양하라”고 명하였다.

그 날 초저녁[初夜]에 문수사리보살은 홀로 생각했다.

“내가 이렇게 적은 수의 비구들만 거느리고 왕의 청에 따른다면, 저를 감동시키기 어렵다. 이제 다른 세계로 가서 여러 보살들을 청하여 그들을 왕궁의 공양법회에 참석케 하고, 그들에게 나의 설법을 들려 주리라.”

이렇게 생각한 문수사리보살은 팔을 한번 펴는 사이에, 곧 이 곳에서 사라져 나타나지 않았다. 곧장 동쪽으로 가서 8만 2천의 부처님 세계를 지나 상명문(常名聞)이라는 세상에 이른 것이다. 그 곳 부처님의 이름은 유정수(惟淨首)로서, 현재 많은 보살을 거느리고 있었다. 또 그 세상에는 불법(佛法)이외의 다른 도가 없었고, 언제나 물러남이 없는 법륜[阿惟越致法輪]54)이 구르고 있었다. 그 땅의 모든 나무는 다 온갖 보배로서, 잎사귀들과 꽃들과 열매들은 헤아릴 수 없는 빛깔로 어우러졌는데, 바람이 한번 불어와서 흔들릴 때마다 그 온갖 나무에서는 단지 부처님의 소리와 법의 소리와 물러남이 없는 승보[阿惟越致僧]55)의 소리만 들려왔다. 이렇게 항상 끊임없이 삼보(三寶)의 소리가 들려오기 때문에 그 세상의 이름을 상명문(常名聞 : 沙陀惟瞿)이라고 하였다.

이미 그 곳에 온 문수사리보살은 유정수(惟淨首)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아뢰었다.

“저는 소원이 있어서 여기에 왔습니다. 이 보살들을 다 인(忍 : 沙呵)세계로 보내시어 아사세왕의 궁전에서 공양을 받도록 하옵소서.”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가고 싶은 보살은 가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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